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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008년 '미칠 것 같은 한국 애니메이션 [2]' 모바일에서 작성

한국의 애니(14.35) 2019.08.11 13:49:07
조회 143 추천 0 댓글 1
														
글로벌, 글로벌, 글로벌

지원제도가 문제라고 해도 적확한 작품에 제대로 지원만 이뤄진다면 문제될 게 없다. 당연하다. 하지만 그렇지 못해서 문제다. 올해 문화콘텐츠진흥원이 계획한 애니메이션 지원사업의 핵심 키워드는 ‘글로벌’이다, 라고 진흥원측 홍보자료에 소개돼 있다. 2008년 진흥원의 애니메이션 지원 사업은 다음과 같이 4가지로 구분된다. 첫 번째, 글로벌 애니메이션 프로젝트 발굴 본편 애니메이션 부문. 두 번째, 글로벌 애니메이션 프로젝트 발굴 파일럿 부문. 세 번째, 글로벌 애니메이션 프로젝트 발굴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 네 번째, 글로벌 애니메이션 프로젝트 발굴 대학생 애니메이션 부문. 도대체가 지겨운 그놈의 글. 로. 벌.

‘해외에서 수상해 한국 애니메이션의 위상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작품을 선별한다’는 소개말이 뒤따랐다. 지원제도에 손을 벌리려면 상업성과 작품성에 우선해서 ‘해외에서 수상해 한국 애니메이션의 위상을 널리 알릴’ 수 있어야 한다. 올해 심사에 참여한 B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해외에서 수상할 것 같은 작품을 선정하겠다는 기준 자체가 얼마나 천박한가. 심사위원들이 점쟁이도 아니고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나. 그걸 내가 알면 그냥 내가 지원받고 말지 왜 다른 사람 것을 심사하겠나.”

요컨대, 재능이 있어도 그 재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장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 숱하게 많은 애니메이션 학과에 먼지처럼 많은 학생들은 졸업 후 어디로 가야 하나. 모 예술대학교 애니메이션 학과를 졸업한 C씨는 운 좋게도 꽤 규모 있는 애니메이션 회사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무려 3년 동안 잔심부름과 기계적인 공정만 반복했다. 이대로는 평생 원화나 동화 그리다가 나이 들어 길바닥에 나앉는 수밖에 없겠다, 싶었다. 회사에서 C씨는 그저 값싼 20대 노동력에 불과했다. 독하게 마음먹고 회사를 때려 치웠다. 그리고 각종 지원제도에 손을 벌렸다. 번번이 떨어졌다. 결국 있는 돈 까먹어가며 주변 도움을 얻어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그걸 가지고 다시 영화제를 돌아다녔다. 수상하지 못했다.

C씨는 지금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중이다. 그는 울분 섞인 목소리로 덧붙였다. “도대체 세계시장에 어울리는 작품이라는 게 무얼 의미하는 건지 모르겠다. 애초 학과에서 가르치는 내용부터 웃기다. 지금 전국 대학의 애니메이션 학과에서 강의하는 교수들 가운데 현장경험이 있는 자가 드물다. 감독의 꿈을 키우는 학생들이 그런 교수들 밑에서 무얼 배울 수 있겠는가. 일본 같은 경우는 애니메이션 전문학교에서 실무위주의 교육을 한다고 들었다. 일본의 4년제 대학에는 애니메이션 학과가 없다. 그들에게 애니메이션은 학문이 아니라 철저한 오락산업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애니메이션을 하고자하는 20대를 보면 정말 때려서라도 말리고 싶어진다.”

해외에서 통하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논리가 하루 이틀된 건 아니다. 현재 한국 애니메이션 시장은 흡사 아동용과 영화제 수상용으로 구분돼 있는 듯 보인다. 시장이 원해서가 아니다. 일반 대중이 아동용이나 영화제용 작품에 열광할 리 없다. 내수용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지원제도 자체의 방향성이 저 드넓은 세계를 먼저 향해있다. 문민정부의 <쥬라기 공원>=자동차 몇 십만 대, 노다지 논리가 여전히 작동되고 있는 것이다.

그게 그나마 정교한 노다지 논리고 해외시장 개척이 가능한 것이라면 다행이다.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하면 시장성이 확보되나. 아니다. 그런데 해외에서 통하는 작품성을 요구한다. 여기서 한국 애니메이션을 둘러싼 분열된 욕망이 드러난다. 입으로는 한국의 미야자키 하야오를 논하면서 실제 만들고 싶어 하는 건 하나 같이 오시이 마모루나 안노 히데야키의 작품 같은 작가적 텍스트, 그것도 대작이다. <공각 기동대>는 <이웃집 토토로>나 <달의 요정 세일러 문> <명탐정 코난> <원피스>가 존재하는 가운데 나올 수 있는 작품이다. 엄청난 돈을 들여 사과나무 한 그루를 푹, 쑤셔 심는다고 해서 거대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 같이 풍요로운 과수원이 뚝딱, 만들어지는 건 결코 아니다. 그런데 자꾸 심는다. 빠른 시일 안에 성과를 보고 싶어서 그런다. <원더풀 데이즈>는 그렇게 비뚤어진 욕망이 투영돼 만들어진 희대의 실패작이었다.

왜 비싼가. 왜 오래 걸리나. 어떻게 해야 하나.

<원더풀 데이즈>의 제작비는 알려진 바로 126억 원이다. 제작하는데 꼬박 7년이 들었다. 2003년 개봉해 3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면서 재난으로 기록됐다. <원더풀 데이즈>는 유독 천문학적인 제작비로 만들어진 경우지만, 다른 경우도 평균 잡아 30억 가까운 예산이 소요되곤 했다. 기획에서 개봉까지 8년이 걸린 <아치와 씨팍>은 35억 원이 들었다. 3년 6개월이 걸린 <천년여우 여우비>는 27억 원이 들었다. 나름의 미덕이 있는 작품도 있었지만 하나 같이 흥행에 실패했다. 제작비가 30억에 가까워지면 배급 수수료와 마케팅비용을 고려할 때 최소한 1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해야만 한다. 극영화나 애니메이션이나 공히 쉽지 않은 목표다. 지금에 이르러 우리 머릿속의 애니메이션이란 만드는 데 오래 걸리고 제작비도 많이 들며 흥행하기는 더 어려운, 그렇게 고약한 애물단지다. 한국에서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게 30억에서 100억 원이 넘게 필요할 만큼 많은 비용을 요구하는 걸까?

일단 프로덕션 과정을 따져보자. 90분 분량 풀 애니메이션을 기준으로 들어가는 동화가 넉넉하게 따져 총 6만 장 정도다. 장당 단가 평균 천원을 잡으면 6천만 원이다. 배경은 보통한 장에 10만 원이다. 총 1000개의 배경 컷이 들어간다고 했을 때 1억 원이 소요된다. 원화와 작화에 드는 비용을 추가하면 3억, 혹시 예산에서 누락된 부분이 있을지 몰라 아주 후하게 더 쳐도 4억 원이다. 애니메이션 한 편을 제작하는데 4억 원이면 가능하다. 프리 단계? 사전에 기획이 완벽하게 끝나있다면 (원작 만화를 애니메이션화 하는 경우)A급 캐릭터 디자이너를 고용하고 원작 만화 구입과 시나리오, 배경 설정, 기타 잡다한 비용을 모두 합치더라도 2억 원으로 해결이 가능하다. 프로덕션 비용 합해서 총 6억 원이면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 모든 과정이 빠듯하게 2년이면 족하다. 그렇다면 6억 원의 저예산으로도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는데 굳이 30억, 100억 원을 들여 작품을 만드는 이유가 대체 무엇인가.

모두가 한 방에 한국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새로 쓰고 한국의 미야자키 하야오가 되기를 열망하기 때문이다. 한 방에 <아키라>(80억 원)를, <공각기동대>(75억 원)를, <왕립우주군>(70억 원)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돈을 쏟아 붓는다. 분열증이다. 언론도 시스템에 대한 고민 없이 한국의 미야자키 하야오, 같은 수사를 동원해 창작자들에게 괜한 바람을 넣는다. 그래서 한 편 만드는데 7년이 걸리고 10년이 걸린다. 대부분 프리 프로덕션에 소요되는 시간이다. 눈을 좀 찢어볼까, 머리카락을 흰색으로 해볼까, 외국인이 좋아할만한 캐릭터를 만들고 이야기를 개발하는 동안 제작비는 속수무책으로 늘어만 간다. 도무지 돈이 적게 들 수가 없다. 여기선 모두가, 영웅이 되고자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걸 영웅 개인의 힘으로 해결해보고자 하는 의지는 위험한 것이다. 영웅은 세계를 바꿀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바꾼 세계는 결국 영웅들을 위한 구조일 수밖에 없다. 학생들은 영웅이 될 것을 강요받을 것이고 시장에 이미 뛰어든 자들은 영웅이 되지 못한 것에 좌절할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미야자키 하야오가 아니라 시장을 가득 메워 다양하게 선보일 수 있는 저예산 애니메이션 작품들이다. 30억, 100억 들여 작품을 만든 사람들이 돈을 빼돌렸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 돈을 잘게 쪼개 6억, 10억 예산의 다양한 작품을 만들었어야 했다는 말이다.

대안은 뚜렷하다. 국가 지원 제도는 이제라도 글로벌에 끼워 맞춰진 방향성을 수정해, 내수 시장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저예산 애니메이션의 지원에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내수 시장에서 국내 애니메이션이 사랑받아야 해외에서도 좋아할만한 작품이 나올 수 있다. 한 방에 모든 걸 해결하려는 조급증을 씻어내야 한다. 창작 애니메이션에 대한 욕심을 조금 줄이고, 대신 상품성이 어느 정도 증명된 원작 만화의 애니메이션화에 적극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또한 애니메이션의 배급 활로를 뚫어야 한다. 일본의 TV에선 프라임 타임이라 할 만한 저녁 8시에서 9시 대에 애니메이션을, 뉴스는 10시에 방영한다. 영웅이나 국가가 나서서 키운 애니메이션 산업이 아니다. 관객과 시청자가 키운 것이다. 모든 게 너무나 명확하다. 당장 방향감각을 새로 설정하지 않는 이상, 한국 애니메이션에 미래 따윈 없다.

허지웅 (<프리미어>173호 '딥 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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