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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sterhood 번역 52-1

ㅇㅇ(223.33) 2020.03.28 16:19:56
조회 77 추천 0 댓글 1
														

01


지금이 몇시인지 모르겠다. 


안절부절 못하며 선잠에서 막 깨어나 낯선 장소에서 눈 뜬 당황을 털어내려 애쓴다. 


방은 거의 어둡지만 내 방은 아니었다. 분위기가....다르다. 야마쿠의 내 방은 정말 내 방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내 고등학교 시절처럼 임시방편이었던 걸까. 내 남은 인생에의 짧은 유예처럼 느껴진다. 


졸음은 서서히 사라지지만 여전히 피곤하고 지쳐있다. 이곳이 어딘지 떠오를 정도로는 마음이 맑지만 얼마나 오래 잠들어 있었을지는 잘 모르겠다. 9시쯤 들어왔었나? 할 일이 없었고, 혼자 있고 싶었다. 유미 씨가 처방해 준 수면제를 먹었음에도 몇 주 동안 전혀 잘 수 없었다. 간신히 눈을 감으면 악몽이 이어졌다. 지난 이틀은 좀 나았지만 그렇다고 덜 소름끼친 건 아니었다. 


서서히 눈이 적응해 내부를 어렴풋 볼 수 있었다. 커튼 사이로 새어나오는 빛이 없으니 밤이겠지. 더 자야 할까? 알람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오미의 간질때 고장난 시계를 바꿀 시간도 없었고, 이후로는 줄곧 휴대폰을 자명종 대신 사용했었다.


내 휴대폰은....


잠깐만 켜자.


피곤한 채로 침대에서 일어나 옷을 걸친 다음 의자로 향한다. 주머니에서 꺼내지만 불안감에 손가락이 마비된다.


켰을 때 전화가 오면 어쩌지?


말도 안 되는 생각인건 나도 안다. 얼마나 운이 안좋아야 그럴 수 있을까?


잠깐만. 시간만 확인하고 끌게.


손가락은 여전히 굳어있었다. 


커튼을 조심스레 옆으로 치워서 확인한다. 아직 밤이나 새벽이었다. 나 말고는 깨 있는 사람은 없었다. 


잠시만. 시간만 볼 거야.


걱정을 억누르며 휴대전화의 전원을 켰다. 바로 끄려고 하는데, 화면에 메세지가 떠 있었다 .


오전 5시 45분.

부재중 전화 16통


02


고문이라도 당한 듯 훌쩍이며 든 것을 떨어뜨린다. 다행히 의자 위 옷더미에 들어갔다. 


16통.....


보통 사람이라면 전화 정도는 더 일찍 확인했겠지. 보통은 답장했으리라. 


하지만 어쩌면 좋지? 뭐라고 하면 좋냐고?


그리고....


저 사람들은 나한테 뭐라고 할까?


음성메시지가 있는지도 궁금하지만 어차피 들을 배짱은 없었다. 


그들은 내게 뭐라고 할까.


자꾸만 머릿속에 그 질문이 맴돌아서 쉽게 떨쳐낼 수 없었다. 설상가상 마음 한구석에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내게 뭐라고 할까.


하나코, 어디야? 걱정돼.


미안해....


말도 없이 도망치다니 무슨 생각이었어? 우리가 그렇게까지 애써줬는데?


미안해....


하나코, 정말 실망이야. 내가 머무르기로 결정할 때 우리가 한 약속은 잊어버렸니? 같이 졸업하기로 했잖아. 난 지켰어. 그런데 왜 너는 못했어?


미안해....


시험에 붙을 정도로 머리가 좋다는 건 알아. 센터 시험도 결국 통과했지. 그런데 왜 함께 졸업하지 못했지? 무엇이 그렇게 두려웠어?


미안해....


같이 붙었어야지. 같은 대학에 붙은 걸 축하할 수도 있었어. 네가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을 망쳤어. 고등학교 졸업은 한 번 뿐인데, 추억이 완전 망가졌네.


미안해!


우리가 함께 살면서 같이 공부하고 시간을 보낼 작은 장소가 생길거란 기대에 무척 흥분했었어. 그냥 시험만 붙으면 괜찮았는데. 나는 내 역할을 해 냈는데 왜 너는 그러지 못했니? 네가 이걸 바라지 않았던 거야? 동기부여가 부족했어? 난 이제 너때문에 1년동안 기숙사 행이네.


정말 미안해!


이제 우리 관계는 어떻게 되지? 장거리 연애는 불가능해. 고민해 본 적은 있어? 더 열심히 해야 했던 거 아니야?


미안....


적어도 우리 성생활보다 나빠지진 않겠네.


미안해! 미안하다고!


이마에 땀방을이 맺히며 곧 호흡이 격렬해졌다. 자제력을 되찾으려 몸부림치지만 그럼에도 다리에 힘이 풀리고 나는 바닥에 쓰러졌다. 아무리 숨을 쉬려 해 봐도 폐는 계속해서 공기를 달라고 소리지를 뿐이었다. 


제발....


가슴이 정말 심하게 아프고, 심장이 멎지 않을까마저 걱정된다. 숨이 막히지만 기절할 수도 없었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마시고, 내쉬고


가슴이 망치질이라도 당하듯 두근거리다 번득이는 통찰력에 부딧힌다. 힘을 다해 몸을 추스르고 간신히 의자 위 옷더미에 손을 뻗어 휴대폰을 집었다. 전원버튼을 간신히 누를 수 있었다. 


들이쉬고, 내쉬고....


긴장이 서서히 줄어들지만 여전히 숨쉬기가 힘들다. 문 쪽으로 몸을 돌린다. 바람을 좀 꾀야겠다. 


비틀대며 복도로 나가지만 다들 자고있었다. 호흡은 조금 편해졌다. 하지만  방금 심장마비라도 겪은 꼴로 여기 있기 싫어서 화장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세면대 근처 세탁물을 적셔 이마의 땀을 훔친다. 시원한 천이 욱신대는 머리를 진정시키고, 방에서 겪은 일로 분출된 아드레날린이 줄어들며 압도적인 피로가 밀려왔다. 욕탕 가장자리에 앉아 마음을 진정시킨다. 결국 피로는 사라지지만 그다지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03


우울감. 


공황발작이었다. 내 앞에서 남자친구가 죽어가던 것도, 사람들도 가득찬 강당에서 주목받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냥 핸드폰을 보고 발작을 일으켰다. 


다시 그걸 본다.


사람이 이토록 비참해질 수 있을까?


내가 정말 이렇게까지 약해진 건가?


그렇겠지.


마음은 5개월 전으로 돌아간다. 우리는 같은 대학에 들어가려고 했었다. 릴리, 히사오, 나오미, 그리고.....나. 그때도 좀 불안했다. 결국 야마쿠를 떠나겠지만 적어도 릴리와 같은 아파트를 쓸 수는 있었다. 내겐 최선이었다. 


하지만 그때, 발작을 일으켰다. 릴리는 자신을 탓하며 뭐든 해주려고 했지만 그녀의 잘못도, 책임도 아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전화가 꺼진 뒤에 좀 어색한 채 그럼에도 계속 살아갔겠지. 그 사건은 나의 나약함을 일깨워줬을 뿐이다. 미래가 어두워졌고, 그것때문에 두려워졌다. 


릴리는 독립을 허락받았을 때 행복했겠지만 나는 은근히 굴욕감을 느꼈다. 왜냐면, 내 역할이 중요했으니까. 합격해야만 했다. 릴리가 내 약점때문에 피해를 입는다면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되었다. 내 나약함이 결국 승리했다. 센터 시험에서, 나는 놀랄 만큼 잘 해냈다. 아마 나오미 때문에. 그녀의 짐을 덜어주려고 했었다. 하지만 입학시험이 다가왔고, 나는 악몽이 잦아지는것도 개의치않고 계속 공부하려 애썼다. 머릿속의 속삭임도 그때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그저 내겐 합격해야 할 이유가 부족했다. 조금만 더 마음이 강했고, 내가 조금만 덜 나약했더라면 합격했겠지. 문제가 쉽지는 않았지만 역시 머리가 제대로 안 굴러갔다. 제대로 시험을 친다 해도 미래가 있을까?


결국 나는 시험 뿐만 아니라 릴리와 히사오에게도 멀어졌다. 


방에 숨어 그 사실을 숨겼다. 처방전을 얻어야 해서 유미 씨를 방문할 때만 몰래 빠져나갔다. 졸업식이 다가올 때는 항우울제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결국 모두 알게되겠지. 그 다음은?


그리고 나는 여기 있었다. 깨진 정신의 파편을 그러모아 낯선 땅에.


머릿속을 맴돌던 생각들을 떠올린다. 릴리와 히사오에 대한 생각. 그 아이들에 대한 나쁜 생각들. 내 우울함은 이제 조금 나아졌고, 수치심이 고개를 들었다. 


세션 중에 들었던 유미 씨 이야기가 다시 떠오른다. 심리 투영법. 자신의 부정적인 생각을 다른사람의 것인 듯 느끼는 현상. 심한 스트레스 속에 죄책감이나 자신의 무능함에 대한 방어기제.


그 아이들은 나를 비난하지 않을거야. 


나는 나를 비난했다. 


나는 정말 끔찍한 사람이었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방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그 전에 거울을 한참 들여다봤다. 


평소보다 더 끔찍한 몰골이었다. 얼굴이 야위었다. 사실, 시험을 준비하며 시작된 스트레스때문에 체중이 꽤 줄엏다. 다크서클은 축 늘어져 있었고, 그리고 흉터는....


얼굴을 가린 앞머리를 조심스레 치워 본다. 흉터가 넓어진 듯 보이는 건 내 상상인가, 아니면 진실인가?


미친 생각인 건 안다. 그럼에도 보자마자 떠올랐다. 


이대로는 잠들 수 없었다. 어떻게든 생각을 돌려야했다. 


어쩌면...... 집안일좀 하다 보면 나아질지 모른다. 다른 생각이 안 날 거야.


씻고 옷을 입자. 그리고 일을 시작하자.


아침식사를 준비하기엔 좀 이르고 진공청소기를 돌리기엔 시끄럽겠지. 그래도 방을 청소할 수는 잇었다. 다림질도 할 수 있을 거고. 


가서....내 쓸모를.....


------------------------


04


"음.... 선생님, 저기...."


몸을 움츠리며 부엌으로 향한다. 냄새로 판단하기에 볶음밥이 든 냄비를 살피다 닭고기를 손질하느라 바쁜 여자에게 다가간다. 


이름이 뭐더라?


"저....부인?


그녀가 돌아섰다.


"아아. 이케자와 양?"

"네, 네. 음....저기, 빨래 다 끝냈다고 하려고 왔어요."

"아, 반가운 소식이네요. 빨리 해 줘서 고마워요.

"이, 이 다음에.....청소기라도 돌릴까요?"

"식사는 했어요? 아침에 못봤는데."

"머, 먼저 끝내고 싶었어요."

"벌써 정오가 다 돼 가는데 아직 밥도 안 먹었어요?"

 "벼, 별로 배고프지는 않아요."


그다지 듣고싶던 이야기는 아닌 모양이다. 부인의 시선에 초조해졌다.


"뭘 좀 먹지 않으면 언제 쓰러질걸요. 잠시 여유를 가져요. 여기 사람 손이 모자라지는 않잖아요."


여러가지 이유에서 좀 바쁜 편이 나았다.


"..."


내 침묵에 체념한 한숨이 돌아왔다.


"할 일이 필요하면 뒷마당을 좀 쓸어줘요. 하지만 여기 아침때 남은 음식은 좀 가져가고. 좀 먹고, 고기 먹기 싫으면 개 주고."

"알겠어요...."


식탁에서 남은 음식이 담긴 가방을 들고 뒤뜰로 가 벽에 등을 대고 땅바닥에 주저앉는다. 신선한 공기에 머리가 맑아지지만 부인이 나를 안심시키려 했을 때 느낀 불안감은 여전했다. 


인원이 부족한 건 아니다. 


침울한 한숨을 내쉬었다. 가방에서 빵을 꺼내 조금 뜯어먹는다.  문득, 골든 리트리버 한 마리가 고개를 돌리곤 다정히 다가왔다. 나를 보려는 건지, 가방 속 고깃조각 냄새를 맡은 건지 모르겠네.


"아, 안녕?"


녀석은 킁킁대며 내가 음식을 나눠먹을지 간을 쟀다. 닭고기를 한 조각 꺼내 내어놓으니 녀석은 바로 다가와 냄새를 맡곤 재빨리 먹어치웠다. 다 먹고는 더 달라고 하듯 나를 바라봤다. 


"음..... 앉아?"


녀석은 고분고분 앉아서 내 허벅지에 머리를 올렸다. 오래간만에 처음으로 웃었다. 훈련이 잘 된 개였다. 가방에서 다른 고기를 꺼내서 손에 쥐고 내밀었다. 손에 얼굴을 묻고 먹는다. 개가 음식을 먹는 동안 나는 그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먹이주기를 계속하니 다시 현재의 상황이 떠올랐다.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 지 정할 때까지 여기 있으려고 했는데 아직도 갈피를 잡지 못했다. 릴리와 히사오는 내게 화났을 거고, 나는 그 아이들에게 짐이 되고싶지 않다. 하지만..... 여기서도 그럴지 몰라. 


그저 생각할 공간이 필요하다 생각해서 이곳에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정말 모두의 반응이 두려워 여기 있는지도 모른다. 여기라면 아무도 날 찾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계속 여기 있을 순 없을 거야, 그렇지?


근처에서 두 명의 대화가 들렸다. 개는 벌써 들었겠지만 나한테 음식을 더 얻어먹으려고 가만 있었겠지. 마지막 고기조각을 넘겨주고 머리르 부드럽게 쓰다듬어 줬다. 녀석은 내 관심을 즐기며 자리를 잡았다. 


언제나 사람보다 동물이 더 좋았다. 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슬픈 미소를 짓는다. 


"저, 저기, 니지. 우리가....음....그렇게 잘 아는 사이는 아니잖아?"


이름을 들어서 그가 귀를 잠깐 펄럭였다.


"그다지 많이 놀진 않았지만....그래도 다시 만나서 기뻐. 난....너를 꽤 좋아했어.

나는....음...하나코고, 여기 살았었어. 너....나 기억해?"


개의 가벼운 울음소리가 안다는 의미인진 모르겠지만 조금 미소가 나왔다.


정신이 좀 가라앉는다. 돌아서서 머리를 비워 보자. 곧, 근처의 대화가 내게 조금씩 들렸다. 


"....너무 불편한 거 아니야?"

"....얼굴이 변했어. 그건..."

"잘 모르겠는데.....전화를 한 통..."

".....잘 한 거야.  어쨌든.....항상 여기가 걱정이었어."

"어디 있는지 좀 찾아볼게."


마당으로 통하는 문이 열리고 고아원 원장이 나타났다. 그녀는 나를 보곤 다정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하나코. 거기 있었ㄱ나."


나한테 뭘 바라는 거지? 일단 재빨리 일어난다.


"부, 부인. 다, 당장 시작할게요."


그녀는 내 반응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 괜찮아. 나중에 다른 사람이 할 수 있어. 잠시 시간 좀 내 주겠니?"

"아, 알겠습니다. 뭐, 뭔가 말씀하실 게 있나요?"

"사실, 널 보러 온 사람이 있단다."

"이케자와 양!"


05


누군가 나를 보러 왔다. 그리고 그 사람은 내가 여기 있는 걸 알고 있었다. 문이 조금 더 열리고, 두 번째 목소리의 주인이 앞으로 나섰다. 드러난 정체에 충격으로 비틀거린다. 공황이 곧바로 내 숨을 앗아갔다. 


"유, 유, 유미 씨!"


어떻게 날 찾았지? 왜 여기 있는 거야? 고아원에서 학교에 전화했나? 무슨 일이야? 나를 책망하려고? 어떻게 해야 하지? 도망가? 도망갈 수 있어? 간다면 어디로?


평화롭게 누워있던 니지가 내 두려움을 감지한 듯 크게 짖기 시작했다. 유미 씨는 원장과 잠시 시선을 주고받은 뒤에 천천히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잠시 킁킁대던 니지는 긴장을 풀고 그녀의 손을 몇 번 핥은 뒤에 경계태세를 풀었다. 유미 씨는 니지를 보고 웃는다.


"착하구나."


원장이 미소지었다.


"하하하. 원아들은 전부 저 애를 좋아한답니다."


그러면서 분 날카로운 휘파람에 니지가 재빨리 원장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문 쪽을 가리켰다.


"들어가렴."


개는 공동실 안의 개집으로 들어갔다. 원장은 내게 시선을 돌린다. 자신없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하, 학교에 연락하셨어요?"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아침에 타카와 양에게 네게 왔는지 묻는 전화가 왔단다. 네가 이틀 전에 직원들 도와줄테니 잘 곳 좀 부탁한다고 확인해줬을 뿐이란다."


유미 씨는 확인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밤늦게까지 찾아다녔단다. 아직 고아원 연락처가 학교 기록에 남아있어서 한 번 전화해봤지. 괜찮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단다. 그리고, 아직 우리는 처리해야 할 서류작업이 남아있어.


원장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06


"학교에 여기 온다고 얘기하지 않았니?"


핑계를 대려고 머리를 쥐어짠다. 두려웠다. 하지만 미스 유미는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졸업식 전까지는 학교가 정신없이 바쁘거든요. 그냥 행정부에서 연락에 혼선이 있었던 모양이에요."

"그렇군요. 긴 여행이었을 텐데 차 좀 드시겠어요?"


유미 씨는 원장에게 미소지었다. 


"폐가 되지 않는다면, 기꺼이."

"전혀요. 잠시 휴게실에 계세요."


원장님은 안으로 들어가지만 유미 씨는 내게 손짓할 뿐이었다.


"이케자와 양, 안내해 주렴."


묵묵히 건물 안으로 들어가 휴게실로 향했다. 도중에 느껴지는 유미 씨의 시선이 나를 긴장시켰다. 바짝 따라올 때, 거의 나를 수감하는 교도관처럼 느껴졌다. 원장 선생님은 아무것도 눈치 못 챈 모양이지만, 유미 씨는 나를 하나코 양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거의 일년 반 넘게 그래왔던 것이었다. 얼굴의 상냥한 미소도 지금은 거짓처럼 느껴졌다.


아마도 내가 전혀 얘기하지 않고 떠난 데 화났겠지. 정말 무서웠다. 나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노부인을 무서워 하는것도 이상하지만, 유미 씨는 누구보다 내 감정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만약 그녀가 정말 화나서 나를 망가뜨리려고 한다면 몇 분도 필요없겠지. 어젯밤 이후로, 어차피 크게 몰아붙일 필요도 없었다.


휴게실에 도착하자 유미  씨는 마주앉으라고 내게 손짓했다. 원장님이 부엌으로 향하고, 유미 씨는 구석의 개 침대에 누워 행복하게 낡은 슬리퍼를 씹어대는 니지를 힐긋거렸다.


"좋은 개구나. 개인적인 취향은 개보다는 고양이야. 하지만 이틀 전에 본 유키는 개가 터득할법한 묘기를 몇 개 익혔단다."


고양이나 개 이야기 하려고 여기 온 건 아니겠지.


"솔직히 말하면, 어릴 때는 개를 믿지 못했어. 공원에서 한 번 쓰다듬어 보려고 했다가 물렸거든. 아마 내가 너무 거칠게 다가갔거나, 개가 훈련받지 않았거나, 기분이 안좋았는지도 모르지. 내가 알 방법은 없었단다. 대단한 일은 아니었어. 어머니는 사어를 깨끗이 치료해주고 붕대를 감아주셨는데, 2주 뒤에야 치료가 됐단다."


왜 여기 있는거지?


"그래도 옛말에도 있지 않니?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고. 나도 그랬어. 그때부터 개를 경계하기 시작했던 거 같단다. 대부분의 사람이 가진  방어기제이지. 이게 없으면 장수하거나 성공한 삶을 살지는 못하는 편이야."


왜 여기에? 어째서?


"10대가 됐을 때 그런 불편함은 꽤 줄어들었단다. 여전히 개를 애완동물로 기를 생각은 없지만. 


슬슬 잡담에 짜증이 났다. 혼내려고 온 거면 왜 안 그러는 거야?


"심호흡을 하고 상황에 대해 생각해 보는 건 종종 도움이 된단다. 언제나 그러지는 않지만, 보통은. 예컨데, 마당에서 나는 사람을 잘 무는 개라면 보육원에 없을거라고 자신을 설득했어. 이 아이는 사람과 친할 거야. 아..... 감사합니다."


원장님이 우리에게 차를 두 잔 내주셨다. 그녀가 유미 씨에게 미소짓는다.


"입에 맞으시면 좋겠네요. 해야 할 일이 좀 남았는데, 그 전에 도와드릴 일이 있을까요?"

"음.... 좋은 방이지만, 개방돼 있는 거 같네요. 이런 부탁이라 죄송합니다만, 좀 더 둘이서 얘기할 장소가 있을까요?"

"원하시면 하나코 방을 쓰세요. 지금은 아무도 없어요."


안돼...


"감사합니다. 정말로 도움이 됐어요."


원장은 공손히 인사하고 떠났다. 유미 씨는 본론을 꺼내기 전에 잠시 차로 목을 축였다.


"사실, 그냥 개를 불편해 해도 상관엇었을지 몰라. 생산적이고 태평하게 사는 데 개를 믿고 말고는 중요하지 않거든."


한 모금 더 차를 넘기고, 처음으로 유미 씨의 눈이 나를 마주봤다.


"불행히도, 사람을 믿지 못하는 건 달라."


움츠러든다. 무슨 이야기인지는 아는데, 말장난이 나를 후벼팠다. 유미 씨를 외면하며 손의 떨림을 진정시키려 한다. 유미 씨는 잔을 비우고는 서서히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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