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스타인 베블런-유한계급을 비판하다
소스타인 베블런(Thorstein Veblen, 1857-1929)은 미국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로, 제도경제학의 선구자다. 노르웨이 이민 가정 출신으로 1884년 예일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1892년 시카고대학 경제학과 교수가 되었다. 1919년에는 뉴스쿨대학 창립에 참여해 1926년까지 경제학과 교수로 일했다. 주요 저서로 「유한계급론」(1899년), 「영리기업론」(1904), 「미국의 고등교육」(1918), 「기득권층과 일반대중」(1919), 「기술자와 가격체계」(1921), 등이 있다.
베블런이 활동했던 시기는 소설가 마크 트웨인이 이름 붙인 대로, ‘도금시대’(Gilded Age, 1865-1901)였다. 급속한 공업화, 도시화 과정에서 부를 축적한 신흥 부호들은 ‘강도귀족’(Robber Barons)으로 불렸다. 철강왕 카네기, 석유재벌 록펠러, 금융재벌 모건, 철도왕 밴더빌트 등 거물 산업자본가들이 부와 권력을 축적하는 과정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유럽 귀족을 흉내 내 호화 저택을 짓고, 고가의 서화와 골동품으로 치장하고 연일 호화스런 연회를 열었다. 이들 부호들은 1930년대 대공황 후 루즈벨트 대통령 시대의 기업과 금융규제 강화로 지배력이 약해졌고, 기부를 통해 재단과 대학을 설립하여 사회에 기여하게 된다.
유한계급의 과시적 소비와 여가
베블런은 「유한계급론」에서 신흥 부호들의 행태를 야만시대의 지배층에 빗대 ‘유한계급’이라 부르고 조롱했다. 현대의 유한계급은 부의 축적만을 지상목표로 삼았고, 돈에 구애받지 않고서 소비하며, 일하지 않고도 살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음식, 장신구, 의복, 주택, 가구 등의 과시적 소비와 과시적 여가활동을 한다. 하인과 여성의 의복도 과시적인 대리 소비의 대상이 되고, 스포츠 역시 여가를 과시하는 표시가 된다. 그의 주장에서 ‘베블런 효과’라는 개념이 나왔다. 재화의 가격이 올라가면 소비가 줄어야 정상인데 명품 등 일부 사치재의 경우는 값이 비쌀수록 더 소비하는 비정상적 구매행태가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우월성을 드러내기 위한 부르주아 계급의 속물근성 때문이다.
베블런에 의하면 과시적 소비와 여가활동에 대한 집착은 계급적 대립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사회적 안정을 가져다주는 효과가 있다. 대중들 또한 유한계급의 과시적 소비와 여가를 우러러 보는 통념에 젖어들어 유한계급을 없애려 하는 대신 그들을 부러워하고 그 자리로 올라가려 한다는 것이다.
베블런은 「영리기업론」에서 현대 기업에서 기업가의 역할을 비판했다. 기술자들은 기계를 잘 작동시켜 최대한 효율적으로 생산하려고 하는데 반해, 기업가들은 채권, 대부 및 가공자본(주식) 등의 금융책략으로 상품의 정상적인 흐름을 교란시켜 가치가 변동되도록 하고 이를 이용해 이익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당시 독점기업가들이 제품 생산에 대한 관심보다는 합병과 독점으로 막대한 이윤을 올린 현실을 꼭 집어낸 셈이다. 베블런은 또한 「미국의 대학교육??에서 대학 운영을 기업가가 주도하는 것은 과학적 창조의 기반이 되는 ‘한가한 호기심’을 침해한다고 비판했다.
제도주의 경제학의 창시자
베블런은 개인의 소비와 기업가의 행동이 효용과 효율을 극대화하는 합리적 판단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속한 계급, 사회관습과 제도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밝힘으로써 한계효용학파를 반박하고 제도주의경제학, 진화경제학의 토대를 놓았다. 베블런은 당시 유행한 다윈주의의 영향을 받아 경제와 사회가 진화해간다고 보았지만 스펜서 식의 사회적 다윈주의,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을 주장하지는 않았다.
베블런의 유한계급 비판은 오늘날 한국사회에 만연하는 황금만능주의와 과시적 소비의 허구를 되돌아보게 해준다. 또한 오늘날 경제위기를 초래한 주요 원인이 금융자산과 부동산의 거품 형성 등 기업가들이 단기적ㆍ투기적 이윤을 지나치게 추구한 데서 비롯된 점을 고려할 때 그의 기업가 비판은 참고할 부분이 있다.
베블런은 생물학, 인류학의 기반 위에서 진화경제학을 정립하려고 했지만 개인과 사회의 상호작용과 사회변화의 동력에 대한 일관된 이론을 정립하지는 못했다. 또한 그는 독점자본주의에 대해 비판적이었지만 이것을 해결하는 데 있어서 기술자들의 역할이 클 것으로 기대 했을 뿐, 효과적인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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