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이후, 학생의 권리만 강조하면서 ‘교권 추락’의 원인이 되었다는 주장이 지난 해 7월 있었던 ‘서이초 사건’ 이후로 점화되었다. 이러한 주장을 늘어놓는 이들은 학생의 자유를 너무 강조한 나머지 학교 운영의 자율성이 침해되었을 뿐 아니라, 학칙(혹은 교칙)을 무력화했다고 공공연히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앞서 이야기한 근거들뿐 아니라,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등 사회적으로 합의되지 않은 항목을 차별받지 않을 권리에 포함해 ‘불필요한 논란을 만들고 있다’라는 것을 폐지의 근거로 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실제 학생들의 생활상을 비춰보았을 때 적합하지 않다고 보인다.
우선 이러한 주장은 현실정치에 개입하여 지난 4월 26일에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되었을 뿐 아니라, 5월 3일에는 서울시의회의 제323회 임시회에서 조례를 대체할 ‘학교구성원의 권리와 책임에 관한 조례안’을 제정하였는데, 이의 무용론에 대해서는 후술하고자 한다.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된 파급은 앞서 이루어진 충남에서의 폐지에 영향을 받았을 뿐 아니라, 경기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실정에 있다. 이러한 학생인권조례의 내용은 지역별로 대체적으로 다르겠지만, 차별에 대한 금지와 체벌의 금지, 강제 야간자율학습 및 보충수업의 금지, 두발, 복장의 개성 존중 및 두발 길이 규제의 금지, 학생 동의 없는 소지품 검사 금지, 휴대전화 소지의 부분적 허용, 인권교육의 의무화 및 학생인권 옹호관 설치 등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으나, 이러한 내용들이 “동성애, 성전환, 조기 성행위, 낙태 등 비윤리적 성행위들과 생명 침해행위를 정당화”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주장들이 종교단체와 학부모단체에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며 과도한 억측이 마치 사실인 것 마냥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폐지에 대한 반발이 이어지자, 서비스형 블로그인 얼룩소를 통해서 정지웅 서울시의회 의원이 문답을 나누었는데, 이를 기반으로 사실이 아닌 주장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그가 수많은 장문의 실효적인 질문에 답변하지 않은 만큼, 아쉽게도 폐지론자들의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변론을 듣지 못한 점은 아쉽게 생각한다.
첫째로, 폐지를 요구해온 이들이 교권 보호라는 명목 아래 숨겨놓은 또 하나의 목적인 성소수자에 대한 논란을 막기 위함이라는 주장에 대해서 논박하고자 한다. 서울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된 4월 26일은 2003년 한 청소년 성소수자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날이기도 하다. 정말 우습게도, 폐지론자들은 사회적으로 합의되지 않은 항목이라면 차별받지 않을 근거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의 논쟁적인 부분과는 별개로, 이러한 문제들은 국제적인 차원에서도 보편적 인권기준에 따라 보호되어야 한다고 합의 되어있다. 유엔과 유네스코는 성소수자 뿐 아니라 모두를 포용하는 아동 친화적 학교를 만들 것을 계속해서 권고해왔는데(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는 2023년 1월 25일, 한국 정부에 학생인권조례의 폐지가 국제적인 인권 기준에 반하는 처사이므로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고 서한을 보내왔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정지웅 의원이 내세운 답변이 참 재밌다. 그대로 인용하자면, “UN이라는 공식 기구의 공식 서한과 우려는 잘 알고있습니다. 하지만 권리에 대한 부분을 폐지만 한 것이 아닌 대체 조례를 제정하였기 때문에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충분히 합의를 이루면 될 것입니다. UN의 입장을 경청하겠지만 그 기구가 대한민국의 상위에 있는 기구도 아니고 의견이 무조건 정답이라곤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의 상황에 맞게 법과 원칙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한 왈가왈부를 제하고(헌법 6조 1항이 우리나라가 승인한 조약 및 규약을 대한민국의 법률과 동일한 위치에 두도록 한 사실을 우리 스스로 포기해주겠다는 것이다.), 참 재미있는 답변이 아닌가? 북한도 북한만의 상황에 맞게 법과 원칙대로 하고 있을텐데,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제재할 수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둘째로, 폐지론자들이 주장하듯, ‘학생인권조례가 없는 곳과 있는 곳의 차이가 크지 않다’는 주장은 새빨간 거짓말에 불과하다. 정지웅 시의원은 “학생인권조례가 없는 지역에서 학생인권침해가 더 많이 일어나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국민의 힘 서울시의회의 논평 또한 대동소이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어떠한가? 국가인권위에서는 작년 전국 538개교를 대상으로 ‘학생인권 보장위한 학교규칙 실태조사’를 시행하였다. 결론적으로 이 조사에서는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지역 내 논의가 학교규정 및 학교문화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학생인권/기본권 보장에 대해 조례의 제정 및 논의가 있는 지역에서, 통계적 차이가 뚜렷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또한 교육부의 연간 교육활동 침해 건수 통계에 따르면, 2017~2021년, 5년의 기간 동안 ‘교원 100명 당 교육활동 침해 현황’의 자료를 보면, 5년 평균을 추산했을 때, 조례 제정 지역은 0.50정도에 달하는 반면, 조례 미제정 지역이 0.54로, 주장과 달리 조례 미제정 지역에 더 교육활동 침해건수가 많았다. 박환보(2021) 역시 연구를 통해 조례가 학교의 인권침해 환경 개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국민의 힘에서 주장하는 것들은 어떠한 근거자료를 통해 이러한 주장을 펼쳤는지 알 길이 없을 따름이다.
셋째로, ‘폐지한다고 해서 과거로 회귀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반박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주장에 따르면,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었던 당시와는 다르게 세대가 바뀌며 인권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이루어진 것에 대한 후퇴가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가정하는데, 우습게도 폐지 이후 며칠이 지나지 않아 용의복장에 대한 불시검문을 계획하는 학교가 나오는가 하면, 최근 학칙을 인권친화적으로 개선하기로 한 학교에서도 학칙 개정이 보류되기도 하였다. 이미 학생인권조례가 있을 때에도 학생인권 침해는 상당했다. 학생인권교육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학생인권 침해 관련 상담 건수는 391건, 권리구제 접수는 167건으로, 유형별 상담 현황을 보면 언어폭력, 체벌 등 학생인권조례 제6조에 관한 것이 138건에 달했던 사실은 의도적으로 묵살된다.
넷째로, ‘법과 원칙에 따라, 인권보편성에 따른 폐지’라는 주장에 반박한다. 대법원은 지난 2015년 판결(2013추98)을 통해 학생인권조례가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에서 당연히 도출되는 학생의 권리를 학교생활의 영역에서 구체화하여 열거한 것”이기에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또한 이번 학생인권조례 폐지 사유 중 하나로 김혜영 국민의힘 서울시의원이 언급한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등 사회적으로 합의되지 않은 내용 포함”에 대해서도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9년 “표현의 대상이 되는 학교 구성원의 존엄성을 보호하고 학생이 민주시민으로서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하도록 하며 인권의식을 함양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그 정당성과 수단의 적합성이 인정된다”며, “이로 인해 달성되는 공익이 매우 중대한 반면 제한되는 표현은 타인의 인권 침해 정도에 이르는 표현으로 보호가치가 매우 낮다”고 전원일치 의견으로 기각했다. 즉, 국가의 최고법률기관인 헌법재판소에서 이미 적법한 절차를 통해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여러 번을 거쳐 확인하였는데, 어떤 법과 원칙이 대한민국의 특정한 자치 지역에서 널리 통용되고 있는지가 궁금할 따름이다.
다섯째로, ‘학생인권조례만 존재하고 다른 학급 구성원들에 대한 보호가 없다’는 주장이 의도가 다분한 선동임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폐지론자들은 학생인권조례가 학교 운영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학칙을 무력화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헌법 제31조 제4항의 교육조리에 대한 것, 제117조 제1항의 지방자치와 관련된 교육자치 뿐 아니라, 교육기본법, 초중등교육법 및 시행령, 학교자치에 관한 조례 등으로 다분하게 보호되고 있다. 그러나 학교에서 학생이 쓸모없는 군기를 위해 존엄한 존재를 침해 받는 여러 상황을 막고자 기본적 인권을 규정하는 것이 과연 ‘자율성을 침해하고 학칙을 무력화하는 것’인가?
여섯째로, 학생인권조례에 학교구성원의 책임과 의무가 없다는 재밌는 주장에 대해 반박한다. 인권은 의무를 지키는 자에게 선택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보편적’ 권리임을 망각한 반헌법적 주장임을 명확히 하고자 한다. 또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는 이미 책무를 규정하고 있는데, 제4조의 5항에서는 ‘학생은 인권을 학습하고 자신의 인권을 스스로 보호하며, 교사 및 다른 학생 등 다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이야기하고 있고, 6항에서는 ‘학생은 학교의 교육에 협력하고 학생의 참여 하에 정해진 학교 규범을 존중하여야 한다. ‘고 굉장히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책무성이 부족한 부분에 대하여 서울시교육청이 발의한 개정안(교육활동을 방해하는 민원인의 학교 출입을 제한하고 교권 침해 사안에 대한 교원 소송비 지원에 대한 논의가 담겨 있었음)이나 학생을 중심으로 한 추가적인 논의 없이 무작정 폐지에 나서면서, 그들 스스로의 조례에 대한 무지나 음험한 협잡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더불어, 교사는 ‘가르치는’ 의무가 발생하였고, 생기부 등 학생의 진학에 대한 권리를 갖게 되며, 학교 행정으로 대표되는 책임을 갖는다. 그러나 학생은 의무와 책임은 갖지만, 실질적인 권리 대부분이 학부모에게 대부분 이양되어 있으며, 일부 사례를 빌미로 대부분 억압 받는 학생사회의 취약성을 강화하고자 하는 전체주의적 사고를 엿볼 수 있다.
서울시의회는 학생인권조례의 폐지 과정에서 당사자인 학생사회와 어떤 소통도 진행하지 않았다. 특정 법안을 통과시킬 때는 마땅히 그 법안에 의해 가장 큰 영향을 받는 당사자를 대상으로 의견청취 등의 과정을 진행하는 것이 마땅히 ‘사회적으로 합의가 이루어지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강행되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청소년 자살율은 OECD에서 제일 높은 비율에 속한다. 심지어는 더 늘어가는 추세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과 구조의 분석은 어디에도 없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서울시의회의 법안 또한 극히 드물다. 과연, 이러한 상황 속에서 도대체 어떤 조례가 발의되었을까, 무너져가는 학생층과 각종 인권 문제 속에서 이들이 대안으로 제안한 ‘학교구성원의 권리와 책임에 관한 조례’는 과연 제 기능을 할 수 있을까?
당연하게도, ‘학교구성원의 권리와 책임에 관한 조례’는 이름만 요란할 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명확히 학생인권을 겨냥하고 있는 유해하고 독소조항으로 가득 찬 조례안일 뿐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이 조례안에서는 각 구성원의 권리와 책임은 아주 추상적으로만 짧게 언급하고 주된 내용은 학교 구성원 간 갈등 조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실질적으로 갈등이 조정 가능하지 싶을 정도로 허무한 조항들로 가득하며, 갈등조정위원회를 교육청에 ‘둘 수 있다’고만 하고 있어 실질적인 기능을 기대하기 어렵다. 아주 우스운 것은 이 ‘갈등’이라는 표현에서부터 학생과 교사 등 폭력의 주체를 동등한 위치로 올려두고자 하는 실질적인 폭력의 의도인데, 직장 내 괴롭힘을 ‘사원 간 갈등’, 가정폭력을 ‘부부싸움’, 정당방위를 ‘쌍방폭행’이라고 부르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명백한 기준이 부재한 권력의 폭력이나 다를 바 없는 정략적 희생양에 불과하다고 보인다. 이 갈등조정위원회가 해오던 일은 학생인권옹호관과 학생인권센터가 지금까지 해왔던 역할과 접근인데, 말만 바꾸고 기준을 무력화하는 것이 악법, 아니 악조례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4월 26일, 조례 폐지를 주도한 국민의힘 김혜영 의원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학생인권조례를 인정한다면 부모 인권 조례, 기업인 인권 조례, 소상공인 인권 조례, 변호사, 의사, 간호사 인권 조례 등 학생 외에도 특정집단만을 위한 인권 조례 제정도 용인되어야 할 것”이라면서 특정 집단만을 위한 인권 조례가 인권 보편성에 반한다고 주장하나, 이러한 주장은 근로기준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을 폐지하고자 하는 논리적 귀결에 닿으니,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냉혹하고도 엄숙한, ‘차가운 자본주의’로 걸어 들어가는 길에 불과하지 않겠는가? 사회 속에서 상대적 약자에 대한 법률적이고 인권적인 보호가 필요하지 않다면 그것은 과연 개인의 인권에 무슨 도움이 되는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서울시의회에서 통과시킨 조례안에서 학생의 권리에 대한 내용을 읽어본 적이 있다면,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 심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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