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이 기억 잃은 채로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상에 바이오로이드들에 의해 발견되면서 시작한다.

기억, 포스트 아포칼립스, 바이오로이드 이 기본적인 세 가지부터가 개판이다.

일단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너 이런 상황에서 깨어나면 어떤 고민이 생길 것 같냐?

나는 왜 기억을 잃었지?

근데 5지까지 이런 묘사 한 줄도 없다. 내가 기억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의심쩍은 상황인데 뇌가 철충 애벌레 몸에 들어 있으니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할 테고 씻지도 못할 테고 좆도 안꼴리고 화장실도 못 가고 밥도 못 먹을 테고 잠수함 천장에 얼굴만 비춰봐도 이상한 거 보일 텐데 아무 의심도 안 하고 산다.

다시 말해서 이 게임 스토리는 이런 병신 캐릭터에 플레이어가 자기 감정을 이입하라고 하고 있는 거다.

주인공이 병신이라 치자. 주인공을 발견한 바이오로이드들은 어떠냐.

아무리 인류 멸망 이후에 만들어졌어도 멸망 전 유적들은 주변에 안 널려있냐? 인간의 모습을 볼만한 흔적이 안 남아 있겠냐?

기억 잃은 철충 똑 닮은 생명체가 널려있는 걸 주워왔는데 뇌파가 같다는 이유만으로 그게 인간이라고 받아들이고, 그리폰은 인간은 좀 특이하게 생겼네~ 하고 아무 생각도 없이 지시 따른다는 게 납득될 만한 상황이냐는 것이다. 얘들 자원탐사하러 와서 영양 400개 주워가는 상황이냐?

다시 말해서 이 게임 스토리는 앞뒤 안 맞는 것뿐만 아니라, 이런 단세포 수준의 판단력을 가진 캐릭터들을 플레이어가 물고빨고 콘챠쟝 예쁜 스킨 사줄게 하라는 거다.

이 어설픈 떡밥 문제가 제대로 터지는 게 바로 이번 사건 아니냐. 주인공이 인간의 몸이 아니라는 큰 반전이면 그에 상응하는 떡밥을 5지까지 꾸준히 뿌려줬어야 사람들이 아 그랬었군 하고 받아들일 거 아냐.

30초만 생각해보자. 갤에도 많이 올라왔지만 방법이야 얼마든 있다.

주인공이 몸을 잘 움직일 수 없어서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 있어야 하는데, 그 이유를 궁금해하는 주인공에게 마리가 휩노스 병과 인류가 어째서 멸망했는지 설명해주면서, 그 병 후유증 때문에 그런 것 같다고 거짓말해서 주인공이 좀 이상해도 넘어갔더라면? 그러면서도 뭔가 미심쩍은 상황이 꾸준히 나온다면? 세계관 설정+떡밥뿌리기 원큐에 끝나는 거 아니냐.

그리고 솔직히 주인공 정체가 철충 몸에 인간 뇌 박힌 거였지만 그 다음에 바로 인간 몸 될 거면 무슨 소용이냐. 상황을 조성했으면 스토리에 써먹으란 말이야. 철충인 거 주인공이 깨달은 상태에서 주인공이 인간이길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바이오로이드가 갑자기 명령을 거부하면서 갈등이라도 벌이던가, 이것만으로도 전개할 스토리 분량 많지 않냐. 가뜩이나 스토리 분량 없는 게임인데 그걸 그렇게 순식간에 끝내냐.

다음으로 세계관 한 번 보자. 세계관 설정 자체는 열심히 짰다. 역시 게임상에서 구현된 게 개판일 뿐이지.

구현이 개판인 걸 알기 위해서는 게임 가장 기본적인 설정만 봐도 된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라면서? 이거 은근히 강조 많이 된다.

위에 게임 광고 함 봐라, 세상의 마지막까지 함께해요 그런다. 도감에서 그리폰 설명 보면 자기들 상황이 절망적이지만 자기가 있으니 승률 50%는 된다고 하고 콘스탄차 설명에서는 자기들이 망할 수도 있다 그러지, 샌드걸이나 여타 캐릭터 설명 보면 하나같이 지금은 불리한 상황이에요 어쩌고저쩌고 한다.

근데 지금까지 게임상에서 상황이 절망적이라는 묘사가 한 줄이라도 있냐? 자기들 진짜 불리하고 포스트아포칼립스에 미래가 암울하고 철충들 너무 압도적이라 도망다녀야 하고 뭐 그런 묘사는 사실상 없다.

실제 게임상에선 그냥 다 때려잡고 진행하는 전개일 뿐이다. 게임 스토리로 치면 최하급임. MMORPG에서 NPC가 쓰잘데없는 핑계 대고 몹 20마리 잡아오세요 잡아오면 다음 몹 30마리 잡아오세요 하는 수준의 퀘스트에 지나지 않는다.

스테이지 미는 게 어렵다고 해도 그건 게임 밸런스가 불합리한 것으로 느껴질 뿐, 실제로 얘들이 절망적인 상황으로 싸우고 있다는 생각은 물론 안 들지.

게다가 보스란 보스는 다 때려잡는데 뭐가 불리하게 느껴지겠냐. 설정이 저러면 무슨 압도적 적 앞에 도망쳐야 하는 스테이지 같은 거라도 넣던가. 주인공 편성이 아닌 부대가 개고생하면서 싸우는 이야기를 보여주던가. 위기가 없는데 이야기 읽는 사람 흥미 유발할 거리가 뭐가 있음. 그리고 위기가 없으면 캐릭터들이 활약할 여지도 없는 거고, 마찬가지로 플레이어도 활약할 여지가 없는 거다. 걍 시키는 대로 몹만 잡을 뿐.

마지막으로 바이오로이드 캐릭터도 마찬가지임.

스토리상에서 캐릭터들이 제대로 뭘 하는 게 없다. 콘스탄챠하고 그리폰이 이 게임 주연인데 얘들이 게임상 뭐 제대로 활약하거나 매력을 어필하는 부분이 얼마나 있냐?

설정 함 보까? 콘스탄챠는 주인을 가져본 적이 없다고 한다. 머리 좀 굴려보자. 미션 깨다보면 어느날 콘스탄챠가 함장실에 찾아오는 거임

"원래 메이드 바이오로이드들은 주인이 있어야 해요. 그런데 저는 주인을 가져본 적이 없어서...주인이 생기면 해보고 싶었던 게 있었어요. 그게 뭐냐면..."

매력 터지지 않냐? 다음은 라붕이들이 알아서 상상해보도록 하고.

애초에 얘들은 캐릭터 활용이 가능한 상황 만들어 놓고도 그걸 못함. 사이드스토리에 마리가 수첩 찾는 이야기 기억나냐? 수첩 찾아오면 브라우니를 존나 훈련시키겠다는 계획이 있다며. 왜 거기서 이야기가 끝나지?

당연히 브라우니 훈련시키는 이야기로 연결이 되어야 하지 않음? 마리가 브라우니 존나 훈련시킨 다음에 훈련의 성과를 봐야 한다 하면서 적과 싸우러 가는 거임. 특별 스테이지로 브라우니 강제편성해서 철충과 싸우는 맵 하나 나오고, 브라우니 개고생하면서 몸개그 좀 쳐서 분위기 풀고.

근데 왜 마리는 이렇게 자기 부하들 훈련 빡세게 시키는 거야? 뭔가 상세한 이유가 있어야 하지 않겠음? 이쯤 되어서 마리 과거 전쟁 기억 좀 털어놓을 좋은 기회인데 말이야. 세계관 설명+캐릭터 설명 바로 각 들어가지 않냐. 떡밥도 좀 풀고.

5지까지 스토리 전개상 초반부라는데 초반부라면 이런 메인스토리와 별 상관없는 이벤트들 넣어서 스토리 채우고, 앞으로 나올 반전 떡밥 뿌리고, 세계관과 캐릭터를 플레이어 기억에 남겨야 하는 게 상식적인데 그런 걸 전혀 못함.

애초에 씹덕 게임이라 캐릭터 스킨 팔아서 돈 벌어야 하는데 스토리부터가 캐릭터의 매력을 못 살리면 얘들은 땅파먹고 살겠다는 거냐?

솔직히 그나마 스토리상 벌어지는 일도 몇 가지 없는데 병신같은 부분이 너무 많다. 포춘 참치캔 만들기라던가.

이거는 참치구해오세요 캔재료구해오세요 캔따개구해오세요 3연타로 끝난다. 참치캔을 만들겠다는 게 애초에 굉장히 흥미로운 상황 아니냐? 여기서 배 타고 진짜 바다로 나가서 개그를 치든, 진지모드로 참치는 어떻게 만드는 건지 연구에 들어가든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얼마든 있는데 여기서는 그냥 아이템 구해오세요 3번에 끝난다. 마지막은 그나마 되도않은 캔따개다. 캔에 채울 식용유라도 구해오라고 하던가. 시발 이거 딱 양산형 MMORPG 복붙 퀘스트 수준 아니냐

설정 좋은데 좀 쓰란 말이야. 게임상 상점 NPC조차 설정 있다면서? 얘가 튀어나와서 참치캔이 왜 화폐로 쓰이는지, 삼안산업이 뭔지 설명 들어가고 포츈이랑 위조화폐 만들지 마시죠 싸움이나 벌이면 좀 흥미 유발도 되고 좋지 않겠냐. 근데 이 이야기는 3연타 복붙퀘스트에 이어서 결말조차 흐지부지함. 만들어보니까 못 먹을 물건이 나왔다고 하는데, 왜 실패한 건지조차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끝나버린다. 포츈이 든든충이라서 자신감 넘쳐서 실수한 거냐? 인류 멸망 후 원전이라도 터져서 참치가 못 먹을 돌연변이라도 된 거냐? 뭐 어쩌라는 거냐.

예시 좀 많이 들었는데 내가 원래 작가가 꿈이어서 내가 써도 진짜 이것보다는 잘 쓰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다. 어디 아무 웹소설 작가 데려와서 써도 솔직히 이것보단 볼만한 스토리 나올 거다.

설정과 상황이 멀쩡한데 그걸 이야기로 못 만들어서 이렇게 낭비하는 게임은 내 살아오면서 처음 보는 것 같다. 설정 짜던 작가 퇴사해서 규동이가 남는 시간에 몸비틀면서 스토리 땜빵 중이지 않으면 도무지 설명이 안 되는 상황이다. 진심 존나 아까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