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례로서 니시는 박유하가 서술한
1 조선인 위안부와 일본 병사의 동지적 관계
2. 조선인 중간업자의 존재
두가지를 든다. 1에 관해서 니시는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조선인 위안부와 일본 병사의 관계가 구조적으로는 '같은 일본인'으로서의 '동지적 관계'였기 때문입니다"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 그 직후에는 "그런 의견을 배반하는 차별을 내포하면서도"라는 문장이 추가되어있고.......
피해자였을 터인 위안부들을 마치 협력자였던 것처럼 보이게 해버리는 구조를 만들어냈던 것이 제국일본의 폭력성(요컨대 민족정화)의 본질이었다는 논지입니다
이렇게 해설하여, 박유하가 말하는 '동지적 관계'의 진의가 오해되고 있다며 옹호한다.
니시는 "일본 병사와 '조선인 위안부'의 '동지적 관계'(라는 일종의 환상,착각)라고 서술하여,
이 동지적 관계가 박유하에 의해 "문학 작품등을 포함하는 일본이나 한국측의 서술"에 의해 재구성된
"일종의 환상,착각"이라고 인정한 다음,
이러한 '환상,착각'을 그녀가 도리어 강조하는 것은, '한일,북일 대립의 패러다임'을 넘어,
오히려 일본군의 전쟁수행 협력자로서의 역할을 강요당한 남녀가 각각 '피해자'였을지도 모른다는 새로운 인식의 가능성을 시각에 넣기 위해서였다.
라고한다. 여기에 니시가 그 책을 평가하는 이유가 가장 확실하게 응축되어있다고 생각된다.
한국인 측으로부터의 피해자였던 조선인 위안부가 실은 협력자이기도 했다는 인정을 통해,
일본 병사도 '피해자'였다는 인정을 받기를 원했던 것이 아닐까.
뒤집어 말하면 일본 병사를 피해자로 인정하게 하기 위해서는,
담론구조적으로 조선인 '위안부'가 '협력자'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 '동지적 관계'가 "일종의 환상,착각"이었다고 해도.
그것은 다음과 같은 제안에도 잘 나타나있다
a) 위안소제도가 일본병사에 의한 위안부의 강간을 일상화하게 만드는 장치라는 견해로부터 본다면,
일본군 병사와 위안부는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식으로 확연하게 구분되는 존재였다라는 것이 될 것입니다
b)그러나 양자가 함께 '제국일본'의 전장으로 보내진 협력자이며 피해자이기도 했다는 것에 의해, '경계횡단'적인 동지감각을 품었을 가능성("우리가 징병을 거부할 수 없었듯이, 그녀들도 징용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었던 것이다")이란,
c)일본인 vs 조선인 이라는 이항대립을 뛰어넘어, 오히려 "제국일본 vs 징병" 이나 <"징발징용"으로부터 도망칠수 없었던 내지 및 외지의 민중>이라는 도식으로 이를 치환할 것을 제안하는 것입니다
니시는 "일본병사와 위안부의 '연대가능성'"을 "가시화 하기 위해서 박유하에 의해 "에피소드가"가 선택되어있다라는 것을 긍정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인용의 학문적 절차에 관해, 비판측의 정영환 등이 '애국'적 존재나 동지의식,동지적 관계를 논하는 부분의 증언,사료의 독해가 자의적이며 파탄하고 있다고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지적,비판해도, 니시에게는 전혀 영향이 없다.
-제국의 위안부와 소거되는 가해책임- 일본 지식인미디어의 담론구조를 중심으로, 김부자-
위안부 관련 연구들 보는 사람은 아는 문제인데
박유하가 쓴 제국의 위안부가 끼친해악이 장난이 아님
발췌한 지식인들은 일본제국의 범죄를 직시하는 양심적인 지식인에 해당하는 편인데도
위안부를 전쟁협력자로 설정해서 자기들의 전쟁피해자로서의 지위를 굳히려드는 지경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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