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대전 독일이 제플린으로 영국 본토를 공격하자
사실 그 피해가 그다지 큰 것은 아니었음에도 대영제국의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났고,
탱크라는 무기를 개발했을 때, 신무기 개발로 신문에 떠들석하게 선전선동하던 것과 비슷한 맥락임.
아이러니하게 전쟁을 막타친 것은 영국 탱크가 아닌 프랑스 르노 전차의 무지막지한 양산이었고.
우주 개발 역사에서 빼놓 수 없는 것이 소련의 핵 개발과 뜬금없지만 6.25임.
공포와 혐오가 동시에 심어졌고, 전쟁이 끝나고도 냉전이 지속됐는데,
1955년에 스푸트니크 쇼크가 나면서, 미국에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거임.
사실 그때까지는(머지않아 ICBM이 개발되기는 하지만) 엄청난 공포감을 가질 이유는 없었는데,
그나마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가 도쿄와 독일, 런던 같은 곳에 핵무기 사용?
매카시즘이라는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 대중들에게는 마치 미국 본토에 언젠가 핵이 떨어진다와 같은 위협을 줬음.
이 맥락이 실제 핵전쟁 위기로까지 번질 수 있었던 사건이 케네디 시절의 쿠바 미사일 사태였고.
이는 소련도 마찬가지였던 것이 터키에 준중거리 탄도 미사일을 배치한 것이 그 시발점이었음.
다시 1950년대로 돌아와서,
미국과 소련, 이들이 처음 가진 우주와 항공 관련 기술들은 사실 나치에서 가져나온 전리품이었음.
그래서 1950년 한반도 상공에서 조우한 미그기와 미국의 제트전투기가 서로 비슷한 모양인 것도 있었음.
헷갈려서 페인트 칠을 바꿨던가(?) 그 정도.
소련의 우주 개발 첫 시작은 독일의 헬무트 그뢰트룹에서 나온 것이었고,
미국 또한 계속 실패하자 독일의 폰 브라운에게 전권을 맡기고 개발자에게 모든 것을 총괄하게 하는 방식으로 개발을 진행함.
즉, 초기에는 미국이나 소련이나 개발 방식에 별 차이가 없어.
나치가 V2를 개발하던 방식에서 개량 발전된 식이었고.
소련 또한 그 당시에는 관련 기술들이 엄청나게 발전하고, 과학자들 논문이 쏟아졌고, 그래서 우주 개척이나 관련 기술은 정체되었지만,
로켓(이것 또한 우주지만) 기술은 아직도 미국, 중국이 못 따라오는 기술이 있을 정도로 세계 탑급임.
둘의 스타일 차이가 발생된 것은 좀 나중의 일인데, 소련이 냉전으로 인한 너무 많은 지출로 예산 부족을 겪던 것과도 관련이 있음.
달착륙 음모론자들은 달을 간 이후로 왜 달에 안 가세요? 라고 말하고 다녔지만,
그때 아폴로 계획이 국가 예산을 엄청 투입한 결과물이기 때문이었음.
나사 예산은 국가 예산의 0.75%, 아폴로 계획에 들어간 돈은 국가 예산의 10프로가 넘는 수준이었음.
그리고 달에 착륙한 이후로, 엄청난 체제 선전 효과와 함께 미국인들의 관심은 완전히 식었고,
그 다음 우주 개발부터는 아무리 기를 써도 그 관심과 온도 차를 되돌릴 수는 없었지.
당시 소련은 흐루쇼프 시절인가(?) 경쟁은 해야할 것 같은데, 그 정도로 돈이 없어 처음에는 골머리를 앓다가
우주정거장 발사 같은 걸로 계획을 이어나가다가
나중에는 더 이상 행성 간 이동이나 이런 것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이름.
결국 우주 개발이 최초에는 공산주의 우월성을 선전하는 프로파간다로 시작한 계획이라 우주 경쟁은 소련 해체와 함께 끝나게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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