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투어 쇼펜하워는 아래와 같이 말했지.

"인생은 고통과 권태의 앙상블이다."

고통스럽지 않으면 권태롭고, 권태롭지 않으면 고통이 찾아와 인간을 괴롭히기에,

우리 인간은 어느 장단에도 춤출 수 없는 삐에로의 운명이라는 것을 축약적으로 제시한 아포리즘인데.

그런 인간에게 추리소설은 무더운 혹서의 폭염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아이스크림 같은 존재로서 의미가 있지.

비록 아이스크림의 단맛과 시원함이 혀 끝에 오래 머물지 않더라도, 우리가 그것을 마다할 이유는 없겠지.

권태로운 일상, 무덤덤하게 흘러가는 어제와 같은 오늘, 그리고 마치 예정되기라도 한 듯한 내일을 살아가는 현대인은

말초신경을 자극해 줄 그 무언가를 갈망하는데,

만약 추리소설을 읽는 행위가 단지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저급한 욕구 충족에 그친다면, 독자는 퇴폐의 나락으로 접어들겠지.

하지만 추리소설은 단순히 잔혹한 살인사건들과 트릭만으로 이루어진 수수께끼가 아니라,

그 배후에 나열된 인간들의 이야기가 본령이기에, 그것이 곧 인간의 삶과 직결된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독자를 지켜주고 있는 것이지.

또한

독자는 권태에서 벗어나지만, 그 댓가로 고통을 맞이하러 나가지 않아도 되는 이점이 있기에,

쇼펜하워가 제시한 '고통과 권태의 앙상블'에서 잠시 빗겨갈 수 있는 것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