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국의 미스터리 작가 딕 프랜시스(1920~2010, 본명은 리처드 스탠리 프랜시스.)가 1979년에 발표한 작품인 '채찍을 쥔 오른손'(원제는 Whip Hand.)을 완독했다. 참고로 필자가 읽은 해당 번역본은 동서문화사에서 출간한 동서 미스터리 북스이라는 것을 미리 밝혀둔다.

2. 이 작품은 1979년에 발표된 이후 미국 미스터리 작가 협회에서 최고의 미스터리 소설에 수여하는 에드거 상과 영국 범죄 작가 협회에서 최고의 범죄 소설에 수여하는 골드 대거 상을 모두 수상한 이력이 있다. 다시 말해서, 상업적인 인기는 기본이고, 비평적으로도 굉장히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이다. 필자는 "경마 스릴러 거장 딕 프랜시스 초대"라는 문구와 함께 작품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작성되어 있는 휘황찬란한 빨간 색 띠지를 보고 커다란 기대를 가지며 천천히 탐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작가 본인이 350번 이상이나 경마 경기에서 우승한 경마 기수 출신이라는 사실을 함께 상기하면서 3시간에 걸쳐서 358쪽에 이르는 작품을 모두 읽었다.

3. 채찍을 쥔 오른손에 대한 감상평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그야말로 '명불허전'이다. 주인공에 대하여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이 작품에서는 과거에 잘 나갔던 경마 기수였던 시드 하레이가 등장한다. 하지만 하레이는 불의의 사고로 왼쪽 팔을 절단하고 의수를 달게 된 뒤에 사립 탐정으로 변신한다. 물론 하레이는 탐정이 등장하는 형식의 미스터리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천재형 탐정은 아니다. 그 대신에 자신을 도와주는 조력자인 티코 번스와 그 외의 인물들에게도 많은 도움을 받으면서 자신이 의뢰를 받은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고 해결하는 전형적인 '행동파 탐정'이다. 이 작품에서 하레이는 영국 경마계를 둘러싸고 있는 문제점을 차근차근 밝히면서도 그러한 문제점들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떻게 보면 대단히 모순적인 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구체적인 재판 과정의 복잡함과 그에 대한 불신, 개인으로서의 안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심리가 분명하게 작용했다고도 볼 수 있다.

4. '경마 스릴러'라는 용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에서는 경마라고 하는 스포츠를 소재로 하고 있으며 미스터리적인 요소도 반영되었지만, 독자로 하여금 상당한 긴장을 불러 일으키는 스릴러적 요소도 확실하게 가미되어 있다. 예를 들어 주인공을 틈만 나면 협박하고 납치하며, 거칠게 폭행하고, 그 것도 모자라서 총기로 살해하겠다면서 노골적으로 압박하는 악당 캐릭터들의 등장으로 스릴러스러운 소설적 매개가 이어진 특징을 볼 때에 더욱 그러하다. 아울러 주인공은 그러한 악당에 대적하고 싸우면서도 때로는 크게 두려워하는 공포를 여실하게 드러내는데 이는 일반적으로 차용되는 '영웅'적 서사가 아닌 '현실'적 서사가 차용되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는 묘사인 것이다.

5. 이 작품의 작가인 딕 프랜시스는 이른바 '미스터리'와 '스릴러'로 여겨지는 자칫하면 매우 어색하게 보일 수 있는 두 개의 세부 장르 사이의 훌륭한 결합을 통하여 자신의 작품의 완성도가 올라가게 하는데 성공했다. 그러한 작업은 결코 쉽지 않은 것이지만 그는 이 지점에서 보다 명료하고 깔끔한 솜씨를 발휘함으로써 자신이 어째서 '경마 스릴러의 거장'이라고 하는 명실상부한 호칭을 받을 만큼의 훌륭한 작가라는 사실을 충분히 입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