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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번역] 알랭 드 브누아 - 인종주의란 무엇인가? (2)앱에서 작성

ㅇㅇ(218.147) 2020.03.17 18: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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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Alain de Benoist - What is Racism?

다소 희소한 또 다른 구분법으로는, 정확히 말하자면 인종주의와, 더 나은 용어를 필요로 하는, "인종본질주의"(racialism) 라고 아마 부를 수 있는 것 - 예컨대 인종적 요인 혹은 좀 더 일반적으로 민족적 요인이 인류 사회 진화를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는 개념을 기초로 하는 이론 - 과의 구분이 있다. 이 관점에서, 사회문화적 뿌리는 민족 집단의 측면에서 주되게 혹은 배타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인류 역사의 커다란 사건들은 조직적으로 인종 질서의 "사건들"로 환원된다. 즉, 인종본질주의는 인종이란 개념이 주류 사회 지형의 근본적인 결정 요인을 이해하는 열쇠라고 상정한다. 따라서 빅터 코르테에게 "문제의 거의 모든 요점은 인종에 관한 것을 가리킨다." 1850년 스코틀랜드 해부학자 로버트 녹스(Robert Knox)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 "인종은 모든 것이다 : 문학, 과학, 예술 - 한 마디로, 문명이다 - 모든 것은 인종에 달려있다." 독일에서, 전 사민주의자이자 사회 다윈주의자인 루드비히 볼트만(Ludwig Woltmann)은 르네상스를 북부와 중부 이탈리아에서의 "게르만" 혈통의 존재에 의거하여 설명했었다. 잉글랜드의 벤자민 디즈레일리(Benjamin Disraeli) 또한 인종본질주의의 옹호론자였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그를 "역사와 정치의 결정요소로써 자신의 인종적 신념과 인종의 우월함을 끊임없이 주장한 첫 영국인"으로 여겼다. 고비노도 이와같이 모든 인간의 역사를 인종의 용어로 번역했다. 물론, 대부분 사람들에게 알려진 인식과 달리, 고비노가 민족사회주의에 끼친 영향은 거의 미미한 수준이나, 이와 유사한 관점은 1930년대와 40년대의 독일에서 유행했었다. 에드워드 맹골드(Edward Mangold)에게 인종적 차이는 "인류 역사의 모든 주류 사건들의 이해를 이끄는 열쇠를 제공한다." 인종을 결정요인으로 바라보는 이와같은 주제는 뉴턴, 몽테스키외, 오귀스트 티에리(Auguste Thierry), 카미유 줄리앙(Camille Julian), 귀스타브 데히탈(Gustav d'Eichthal), 뷔레(Virey), 뷔퐁(Buffon), 그리고 기조(Guizot)에게서도 다양한 수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진정한 인종본질주의는, 인종적 요인을 단순히 수많은 타인들을 고려하는 기초요소로 여기는게 아닌 태고적인 것으로 여긴다. 더욱이, 참된 인종본질주의는 주로 기계론적 방식으로 인종적 질서가 사회문화의 영역을 결정짓는다는 관점에서 이 둘 사이의 인과적 관계를 주장한다. 게다가 인종본질주의는 인종적 불평등을 암시하지 않으며 이는 근본적으로 인종주의로부터 인종본질주의를 식별하는 것이다. 얼핏 보기에 이 노골적인 형태는, 인종주의를 인종본질주의와 인종적 불평등의 혼합으로 나타난 결과물로 보여진다. 더욱이, 이는 무언가가 다른 성질의 것으로 어떻게 나아가게 하는지 명백히 보여준다 : 만약 인종이 인류의 문제에서 중심적인 결정요인이라면, 과장할 것도 없이 전세계적으로 서로 반대되는 부류의 "인종적 특징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힘의 균형을 설명하려는 유혹을 받는다. 그러나, 인종본질주의와 인종주의는 항상 접점을 이루지 않는다. 인종본질주의는 그 자체로 계층적 가치 판단을 시사하지 않는다. 인종본질주의는 인종간의 식별 그리고 결과적으로 분류화를 통해 사회 생활의 결정적 역할을 부여하는 역할에 국한되어 있다. 그러나 식별과 분류는 위계질서를 만들어내는 것과 같지 않다. 범주화는 다양한 인종간의 몇몇 경계들을 구분하는 것을 허용함으로써 나타나는 유사성과 차이점, 관련성을 비교하는 것이다. 반대로 위계질서는 패러다임을 암시하며, 이 패러다임은 인종주의 이데올로기의 구분되는 특징이다. 더욱이, 이 패러다임은 거진 대부분 민족중심적 - 예컨대 자기참조적인 - 이다. 이것이 인종본질주의가 때로는 인종친화적(raciophile)이지만 인종주의 이데올로기는 항상 인종적대적(raciophobia)인 - 이것은 불가피하게 그들이 싫어하는 대상을 비난한다 - 이유다. 인종본질주의는 인종의 핵심적인 중요성을 개인과 집단의 물리적 특성과 생물학적이고 사회적인 정신적 특징과 연결고리를 형성하는 간단한 개념에 덧붙인다. 인종주의 이데올로기는 인종본질주의를 분별있는 가치 판단에 덧붙인다. 인종들은 계층적으로 배열된다. 그러나 인종주의 이데올로기는 필수적으로 인종본질주의를 암시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실제로 모든 사회적 현상이 인종적 요인으로 환원된다는 믿음이 없이 우열 인종이 항상 존재한다고 믿을 수 있다. 인종적 불평등에 대한 믿음과 인종이 인류 역사에 있어 주된 요인이라는 개념은 동일한 관념에서 나온 다른 두가지의 변형이 ​아니다​.

인종주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만들어진 인종적 위계질서는, 하나의 인종을 언제나 정상에 상정하는, 대개 직선적 성향을 나타내며 즉각적으로 인종의 문명이 이에 뒤따른다. 전반적인 도식은 곧 근본적인 민족중심주의의 신호를 보내는 "질서정연함"으로 각인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인종본질주의가 ​인종​의 결정상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 반해, 인종주의 사상은 ​예컨대 특정 인종​의 중요성을 - 고비노의 "아리아인" 또는 빅터 코르테의 "게르만인"을 "민족의 기름"으로 바라보는 - 강조한다. 체임벌린이 다음과 같이 기록한 것 처럼 : "우리의 총체적 문명과 현재 우리 문화의 모든 것은 하나의 인종, 게르만의 산물이다."(이 주제에서 켈트와 슬라브 또한 근저에 위치시켰다.) 히틀러는 "아리아인은 모든 인류가 이룬 성과의 기반을 다지고 틀을 만들었다. 이 모든 위대한 과거의 문명들은 한 때 창조적이었던 인종이 후대의 패혈증[무분별한 혼혈?]으로 인해 죽어간 덕분에 몰락의 길에 접어들었다."

고비노의 ​인간 불평등론(Essai sur l'inegalite des Races Humaines, 1853-1855)​은 이전에 정의된 인종본질주의와 인종주의 두가지에 명백히 기초하고 있다. 책의 제목에서 말해주듯이, 그리고 챕터 8의 제목에서 반복하듯이 "인종들은 지적으로 불평등하다."는 것을 주장한다. 이 저작은 인류 역사의 모든 것을 자연적 현상으로 설명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토크빌(Tocqueville)이 동시기에 아랍 문화를 업신여긴 것과 달리 고비노는 이슬람 문명에 대한 존경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고비노는 반유대주의자도 아니었다. 그는 아시아적 요소가 주요한 인종적 혈통의 시의적절한 혼합의 결실로 바라본 그리스 예술을 찬미하며, 흑인들을 그가 예술적 감각이라 부르는 것의 시조로 여겼다. 그가 열정적으로 옹호한 "아리아인"의 우월함은 오랜 시기를 거쳐 진화한 산물이다. 자신 스스로 지중해 문화와 근동의 문화의 감정가(connoisseur)로 자부한 고비노는 토착민들을 향한 대다수 그의 동포들의 태도와 공유하는 부분이 없다. 1855년 3월 22일, 그는 카이로에서 프로케쉬(Prokesch)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 "유럽인들은 대단한 찬사를 받을 자격이 없으며, [그들의 문명에] 토착민들의 지분이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증오하는 것을 꾸준히 정당화시키려 한다." 모든 것을 고려해 볼 때, 그의 저작들은 이데올로기적인 것 보다는 문학적 영향, 특히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인종주의 이데올로기는 상이한 두가지 관점을 내포하고 있는데, 하나는 비관주의 다른 하나는 낙관주의다. 대다수의 인종주의 이데올로그에서 인종적 현상은 [역사를] 돌이켜보면 "몰락"의 상태가 아마 "백인종"의 몰락을 가리킨다는 설명을 하기 위해 주로 쓰이고 있다. 이러한 유형의 인종주의 이데올로기는 "타락 이론"의 일부이며 다른 비관주의적 시각과 동등하게 속한다. 이것은 "혈통의 쇠락", "혼혈"등의 측면에서 현 상태의 문제들을 설명한다. 현재의 문제들은 "유색인종에 의한 백인종의 지배"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여긴다. 이러한 인과관계는 되돌릴 수 없는 ​기정 사실​(fait accompli, 고비노) 혹은 이미 구체화되기 시작한 위협으로 묘사된다. 다른 저자들은 인종의 투쟁을 "낙관주의적" 관점에서 인지했는데, 이는 사회 다윈주의(Social Darwinism)의 각인을 품은 것으로 보인다. 체임벌린은 다음과 같이 기록했을 때 이 관점을 공유했다 : "설령 과거에 아리아 인종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지더라도, 우리는 미래를 위해 그것을 원하게 될 것이다." 나중에,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 "인종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고, 오랜 시간동안 발전을 이뤘으며, 인종적 순수함만이 느리게나마 성취해 낼 것이다."(이 점에서, 많은 다른 사람들이 그랬듯이 그는 고비노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다.) 흥미롭게도 히틀러는 이 낙관주의적 관점을 공유했다. 그의 인종 프로젝트는 "인종 위생" - 인종은 보존되어야 하는 습득 성질이라기 보다는 이루고자 하는 목적이며, 불러일으키는 실재이다 ; 인종은 "과거의 목소리"가 아닌 "미래의 부름"이다 [즉, 인종을 역사적 주체로서 긍정하는 것] - 의 측면에서 "우생학적" 관점과 유사하다. 생물학과 사회학의 연속체에 대한 믿음은 인류 사회의 자연 선택이 "최선"을 촉진시키는 측면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믿음을 불러 일으켰다. 이러한 관점에서, 역사는 근본적으로 ​교정​(correct)의 과정이다 : 가장 강하고, 적합하고, 기타 등등의 조건을 갖춘 자가 승리를 거둔다.

사회 다윈주의자의 두가지 큰 모순적 요소가 바로 여기에 존재한다. 한 쪽에서는, 마치 자연 상태처럼 인류 사회에서더 자연 선택이 작동한다고 믿는 자들이 있다.(특히 앵글로색슨 작가들, 그리고 히틀러가 지지하는 믿음!) 다른 쪽에서는, 사회 영역에서의 자연 선택의 자유로운 유희가 어떠한 "열생학적 선택"(counterselection)과 - 자발적인 교정을 필요로하며 따라서 간섭을 언급하는 - 충돌을 일으킨다(바쉬 드 라푸지, Vacher de Lapouge). 여기서 이 첫번째 변천과 리버럴 사상간의 교점이 명백히 나타난다 : 자동적으로 "최적의" 경제적 상태를 복원해야 하는 [경제학과 메커니즘이] 동일한 "보이지 않는 손"은 또한 "최적의" 사회적 관계와 상호작용을 보장해야 한다. 두번째 변천은 명백히 최초의 상정과 역설적으로 모순되는 간섭주의로의 변천이다(만약 생물학과 사회 영역이 하나의 연속체라면, 왜 자연 선택은 인류 사회에서 자연적으로 기능하지 않는 것인가?).

조제프 가벨(Joseph Gabel)은 "인종주의가 사회 다윈주의의 변형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증명이 필요하다. 분명히, 사회 다윈주의의 지원을 토대로 다윈의 개념이 19세기 인종주의적 개념을 강화한 것은 맞다. 명백히, 이는 백인종을 인종의 분파중에서 가장 전반적으로 진화하고 발전한 종족으로 묘사하는 것에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인종주의는 그것의 이론적 토대를 포함하여 다윈 이전에도 확실하게 존재했었고 많은 인종주의 저자들이 다윈과 진화론에 근본적으로 적대감을 표출했다는 사실(진보 이론의 주류 화신 중 하나였다는 근거로)을 상기해야 한다. 역으로 생각하면, 모든 사회 다윈주의자들이 인종주의자였던 것은 아니다. 사회 다윈주의는 엘리트주의자의 인종주의와 궤를 달리한다. 인종주의 논리에 투철한 백인이 중국인 노벨상 수상자보다 자신과 같은 "인종"의 거리 청소부에게 더 친밀감을 느끼는 반면,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사회 다윈주의는 민족적 고려사항에 전적으로 예속되지 않는다.

현실은, 사회적 관계를 생물학화(biologize)하려는 경향을 제외하면 인종주의와 사회 다윈주의와의 공통점은 "인종 전쟁"의 개념에서 찾을 수 있다. 이 관점에서, 인종간의 분쟁은 보편적 선택의 기본요소 중 하나가 된다. 여기서 바쉬 드 라푸지와 그와 반대되는 사상을 가진 독일의 오토 암몬(Otto Ammon)을 즉각적으로 떠올릴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들이 가장 핵심적인 인물은 아니다. 사실, 인종간의 투쟁을 다룬 핵심 이론가는 폴란드의 루드비히 굼플로비치(Ludwig Gumplowicz)이다. 독일 사회학자 구스타브 라첸호퍼(Gustav Ratzenhofer)와 함께 그의 개념들은 앨비언 스몰(Albion Small)덕분에 미국에서 유행을 한 바 있었다. 굼플로비치에게 투쟁은 서로 다른 인종 집단간의 태고적이고 필연적인 관계요소며 국가는 승리한 인종이 정복당한 인종에 대한 지배를 보장하고자 만들어진 정치적 도구이다.

따라서, 인종본질주의와 인종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은 명백해진다. 애써 보편적인 관점을 취해보면, 인종본질주의는 환원주의적인 것이 되어버린다. 인종적 요인을 중추적인 책임으로 돌림으로써, 인류 문제를 이해하는 결정적인 역할의 자리는 그들만의 "최후의 범주"를 상정하는 유사 체계와 나란한 위치에 둔다 : 경제, 계급, 성적 취향, 잠재의식, 기타 등등. 더 나아가, 인종과 문화 사이의 기계론적인 인과관계는 옹호되서는 안되는 것이 된다. 이와같은 관계를 상정하는 것은 모든 사회에서의 사회적 상호관계를 묵살하고 역사적 요인과 사회적 관계의 특수한 성질을 거부하는 것이다. 역사에 대한 모든 조사는 과거에 있었던 거대한 사회 문화적 변형의 절대다수는 인종 혹은 민족적 현상이 아님을 드러낸다. 이 관점에서, 인종본질주의는 사회 현상의 수용불가능한 이입(移入)을 시사한다. 고비노의 에세이에서 낸 결론에서, 그는 자신의 목표를 "역사를 자연과학의 영역으로 이끌어내는" 것으로 설정했다. 이 계획은 흥미로운 사실을 나타낸다. 그는 인간 사회 또한 살아숨쉬는 조직이라는 사실 혹은 인간 또한 동물이라는 사실을 간과했다. 오히려 그는 인류 현상의 모든 전형성을 조직적으로 제거했다. 인종과 사회는 그럼으로써 인과적으로 연결된다. "인종적인 것"은 그것과 별개로 여기게 된다면 이해할 수 없는 부수현상(epiphenomenon)밖에 안되는 "사회적인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오로지 그저 생물로 환원되며, 사회학은 동물학으로 환원된다. 이와 유사하게, 인종으로의 의존은 이론상 정당화의 대용물과 같은 완전한 정당화로서 기능한다. 선택과 인생경험을 통해 구성된 인간의 능력은 그들의 천성적 유전의 구성물에 기초하여 거부된다. 또한 교육은 사전에 프로그램화 된 개성의 훈련 그 이상의 것도 아닌 것이 된다. 자유 또한 사라질 것이다. 궁극적으로, 사회 생활은 실재하는 사람과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무언가가 되버린다.

인종주의 이데올로기에서 관찰할 수 있는 요인 중 하나는 ​자연스러움​에 대한 근본적인 집착이다. 이 집착은 생물학 분야에서 벗어나고 사회정치 분야로 견실하게 나아가고 있는 ​자연​에 대한 새로운 관념의 등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인종주의 담론에서, "천성적으로 열등한 사람"과 같은 표현은 동시에 ​생물학적이고 확정적인​ 열등함이라는 개념으로 인도한다. 생물학은 ​운명​의 대체, 혹은 표상이 된다 : 따라서, "천성적인" 열등함은 곧 그 어떠한 방법으로도 교정과 수정이 불가능한, 영구적인 열등함이 되버린다. 인종본질주의는 일정 부분 사회 집단의 다양한 구성원들에게 미치는 것으로 규명되어야 하는 역사, 사회 혹은 문화적 상황과 무관하게, 인종을 불변의 ​이상적 유형​으로 정의하여 본질주의로 전락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교묘한 평등주의자를 만들어 낸 이 관점으로부터, 모든 개인은 동등하고 심지어 대체가능한 존재가 된다 : 그들은 그 무엇보다도, 그리고 독특하게, "보편적" 성격을 가진 집단의 전형이 되버린다. 따라서, 집단의 모든 구성원들을 수용하는 것은 곧 모든 타자들을 수용하는 것으로 이끌어낼 것이다. 이 측면에서 개인의 가치는 자신의 인종적 가치와 동의어가 된다. "자연"에 대한 호소, 생물학적 자연에 특정한 호소는 인종 그 자체로 있는 것의 영속화를 합리화하는 기능을 한다 : 모든 것은 한 번 결정되면 영원히 존재한다 ; 그것들은 바뀔 수 없다. ​선험적인​(a priori) 판단은 동시에 ​영구화​되고 ​일반화​된다. 인종주의적 사고는 ​예외를 허용하지 않기에, 이와 같은 방식으로 편견이 탄생하고 성장한다.

이 "본질주의"적인 인종주의자라는 낙인을 찍기위해, 콜레트 기요맹은 ​공간화​(sasie spatialisante)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시간의 흐름을 중단함으로써 통시적 현실을 공시적(共時的)으로 재구성한다. 공간의 연속성은 일시적 불연속성에 대한 완전한 우선권을 얻는다. 문화와 사회에 대한 이 개념들의 혼합은 루카치, 만하임 그리고 코쉬같은 몇몇 마르크스주의 작가들이 인종주의의 반변증법적인 성질을 지적하도록 이끌었다. 따라서, 범주를 "구체화"(reify)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즉, 사료의 영구적이고 지속적인 측면을 무시하고 관계와 동적인 변화의 측면에서 마땅히 파악되어진 사료들의 근본적인 안정성을 역설하는 경향과 같이, 상황에 의거하여 사고하려는 경향을 뜻한다. 이 접근법은 흥미로운데, 이는 심지어 다윈주의(사회적 의미 혹은 그 밖의 것이든지 간에)와 인종주의 사이에서 현재 시도되고 있는 ​관계 회복​(rapprochement)의 한계를 명백히 드러내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만약 인종주의가 본질주의적인 것이고 이데올로기가 자연의 관념을 불변의 "본질"로 간주하는 것이라면, 변이와 변화를 시사하는 핵심 이론을 나타내는 진화론에 의지하고 있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나, "본질주의자"들의 사고 방식이 인종주의에 (혹은 인종본질주의에 대해서도) 국한되는 것이 아닌 점도 마땅히 지적되어야 한다. 오히려, "본질주의자"의 사고는 인간 정신의 특정 경향에 상응하는 것으로 보이며, 이 같은 사고의 다른 수많은 예시를 드는 것은 쉬운 일이다. 이것으로 인종주의자 혹은 그들의 피해자를 관조해보면, 그 관조는(일련의 묘사를 불러일으키는) 단지 하나의 기본요소를 그것이 속한 전체로부터 구분하는데 엄청난 난해함을 식별해 낼 뿐이다. 그러므로, 레이먼드 아론(Raymond Aron)은 "모든 식민주의자, 반유대주의자, 미국 남부 백인들을 본질적으로 토착민들에 대한 업신, 유대인을 향한 증오, 분리에 대한 열망으로 정의된 것으로서 묘사하려는 경향이 있는" 자들의 "역전된(inverted) 본질주의"를 이야기한다. 그는 덧붙여서 이와 같은 접근법은 "유대인, 토착민, 혹은 흑인들에 대한 편견과 동일한 성격의 식민주의자, 반유대주의자, 혹은 남부 백인에 대한 묘사"를 이끌어 낸다고 말한다.

인종주의 사상에서의 "인종"은 마르크스 사상에서의 "계급"과 동일한 방식으로 기능한다. 이 관계회복은 사회 계급내 구성원들이 타고난 인종에 속하는 결정적이고 보편적인 결정요인이라고 주장하는(물론 분명하게도, 인종을 바꾸는 것은 사회 계급을 바꾸는 것 만큼 쉬운 일이 아님에도) 작가들에 의해 정당화된다. 계급 투쟁에 관한 마르크스의 이론과 굼플로비치의 가장 최신 이론인 ​인종투쟁​(Rassenkampf)과 유사한 대칭성을 그려나갈 수 있다. 이 두 가지 경우 모두 특정한 적대감(antagonism)이 모든 인류의 역사를 설명하는 요인이 된다(마르크스와 엥겔스에 따르면, "지금까지 존재해왔던 모든 공동체의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이다"). 둘의 경우 모두, 아마 다윈의 "적자생존"과 "삶의 투쟁"의 영향 하에 제시된 시각은 하나의 광범위한 전쟁이다 : 특정 계급은 ​반드시​ 일소되어야 한다(맑시즘); 특정 인종은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인종주의). 한쪽에서는 인종간의 전쟁, 다른 쪽에서는 일반적인 내전을 가리킨다 : 각각의 경우, 타자에 대한 경멸적이고 무서운 인상을 상기시켜(부르주아는 "착취하는 존재"로, 유색인종은 "위협적인 존재"로) 그들을 분리 혹은 일소하는 것을 합리화한다. 공통적으로, 근본적인 개념은 작동상의 절대적 경직성을 타고났다 : 계급과 인종은 부수현상과 "상부 구조"하에서 일어나고 있는 본질적인 현실을 명확히 이해하고자 호소할 수 있는 준-형이상학적인 실재가 된다. 인종주의적 행동이 빈번하게 지배를 야기하는 것과 달리 "계급"적 행동은 최소한 이론상으로는 착취를 종식한다는 사실은, 그 어떠한 방식으로도 이 근본적인 구조적 유사성을 바꾸지 못한다.

놀랍게도, 이 두 사상 사이에는 상대적인 관념적 교대가능성이 존재한다. 인종과 계급은 동일한 해석의 역할을 맡을 수 있다. 인종본질주의의 일부 지지자들에 따르면 민족성은 "계급 차이"를 설명할 수 있다. 앙리 드 불랭빌리에(Henry de Boulainvilliers)의 저서 귀족에 관한 에세이(Essai sur la Noblesse, 1732)에서 그는 귀족을 구성한 "프랑크 족"과 평민에 위치한 "갈리아 족"간의 적대의 측면에서 프랑스 역사를 연구하는 초석을 쌓았다. 프랑스 귀족을 "게르만인" 혹은 "프랑크인" 조상으로, 평민을 "갈리아인" 혹은 "갈리아-로마인"의 후손으로 동일시 한 이 이론은 18세기와 19세기에 상당한 인기를 누렸다. 또한 과거 사회적 긴장관계를 "두 부류의 사람들"이 하나의 "국가"내에서의 불편한 동거에 따라 나타난 현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이론은 보날드(Bonald)와 뱅자맹 콩스탕(Benjamin Constant)에 의해 논박당했지만, 빅터 코르테, 오귀스탱 티에리, 그리고 심지어 기조와 몽로시에(Montlosier)에게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것은 동일한 것이다 : 인종주의 이론가들에게 계급 투쟁은 인종적 용어로 해석할 수 있고, 마르크르주의 이론가들에게 인종 투쟁은 계급의 측면으로 해석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2차 세계대전 이전 조르주 폴리처(Georges Politzer)는 나치즘을 프롤레타리아의 의식에서 "계급 의식"을 "인종적 관념의 소유물"로 대체하도록 오도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더욱 최근에는, 소비에트의 인류학자 미하일 네스토흐(Mikhail Nestourkh)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 "반동주의 학자들은 계급 투쟁의 원칙을 인종 분쟁의 유사 이론으로 대체하여 인종 발전의 원동력으로 여기는 중대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인종적 불평등을 향한 믿음에 대해 말하자면, 이는 분명히 자민족중심주의에 기초하고 있는데, 자민족중심주의는 보통 그와 같은 방식으로 이해되고 있지 않기에 보편적인 "사실"로 받아들여지게 됐다. 특정한 형질들은 보편적 진리로 여겨지며, 보편적 진리는 특정한 형질을 나타내는 것으로 여겨진다. 문화와 문명에 대한 이와 같은 시각에서부터 인종적 위계질서를 만들어내는 것은 어떤 특정한 문화의 투영이 아닌 그 모든 것들을 ​객관적으로​ 서열화할 수 있게 만드는 ​기준​의 존재를 시사한다. 그러나 그런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독보적인 제 1의 원칙과 보편적 척도로 다뤄질 수 있는, 그 어떠한 특정 사회와 문화에서 독립적인 사회문화적 기준에 대한 바로 그 개념은 모순에 기초해있다. 문화적 서열의 윤곽을 나타내곤 하는 그 어떠한 기준들은 오직 주어진 문화에 적합한 규범 혹은 사회적 가치들의 추정에서만 이끌어 낼 수 있다. 이는 그 자체로 왜 그것이 적합한 척도인지 이해를 이끌어낼 수 없으며, 왜 그것이 보편타당하게 적용되야 하는 지 그 어떠한 객관적 증거를 제시할 수도 없다. 인종적 불평등에 의한 서열을 확립하는 것은 어떠한 인종 - 주로 서열을 확립한 인종 - 의 행동과 성취를 기준점으로 평가하는 것을 필요로 하게 된다. 이 접근법을 설명하기 위해 굳이 나쁜 의도나 지배 혹은 수익을 향한 불가항력적인 욕망의 책임으로 전가할 필요는 없다. 이것은 단지 인류의 정신이 타자를 평가할 수 있고, 반드시 평가해야 한다는 것과 관련된 "표준"을 고려하려는 기질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문화의 "가치"는 그 문화의 맥락과 구성원들이 그것을 어떻게 인지하는지의 측면에서 평가될 수 있다. 문화 상대주의의 기초적인 원칙 중 하나는 문화에 속한 개별 구성원들의 경험에 근거하여 형성된 준거점만이 자신들의 문화적 환경에 대한 언급으로 해석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문화는 주로 적응성에 따라, 그 자신의 규범과 관련하여 혹은 그 자체로 세워진 목적에 따라 대략 훌륭히 "수행"해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그 자체로 사실인 것, 혹은 사실이라고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에 준거하여 각각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다"고 하는 것과, 모든 인종들은 그들이 누구든지 간에 동등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추론은 그저 전적으로 동어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문화를 하나로 압축하고 절대적인 판단을 허용하는 이 부실한 패러다임은 사람과 인종의 법적 불평등에 대한 인종주의적 믿음에 도전을 하고 있다. 이것은 또한 "원시적인" 사람들은 어째선지 "퇴보한" 존재들이고, "더욱 진보한" 사람들이 지지하는 모델에 따라 그들을 ​타 문화에 동화시키는 것​이 적절하다고 여기는, 더 선한 의도를 지녔지만 똑같이 자민족중심적인 믿음으로 격하시킨다. 이전에 지적한대로, 이 믿음은 식민지 제국주의의 동화 정책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오늘날 이는 여전히 일련의 "경제 발전의 논리"에 따라 상정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공간적인 환경은 시간에 예속된다(temporalized) : 소위 원시적인 사람들은 서구의 "과거" 인상을 필히 자아내는 한편, 그들의 "미래"의 비전을 제공받는다. 서구는 달성해야 될 일련의 사회적 이상의 모범적인 모델로서 다시 한번 제시되고 있다. 그 결과는 고전적인 인종주의 전략의 결과와 전혀 다를게 없다 : 이것은 지역 사회 구조를 열등한 것으로 치부하며, 집단적 정체성과 분화된 생활 방식을 말소하고, 제시된 모델의 행동적 모방을 부추기며, ​사실상​(de facto) 불평등의 제도화를 부추긴다.

인종주의 이데올로기의 철학적 기원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보다 더 방대하다. 서구의 유일신교는 결코 관용을 쉽사리 베풀지 않았다. 오래 전, 오직 하나의 신과 하나의 진리만이 존재하며, 따라서 하나의 문명 형태는 인종적으로 무자비한 행동을 가하는 것을 절대적으로 합리화해왔다. "피에 굶주린" 누명을 쓴 이교도의 의식을 억압하는 것은 곧 악을 근절하고 영혼을 구제하는 것이었다 - 심지어 그들의 구원받고 있는 영혼에게서 목숨을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몇몇의 경우에는, 이것은 전체 인구의 소멸로 인도했다. 이 전형적인 예시는 라틴 아메리카의 원주민이 대표적이다. 한동안 신학자들은 심지어 그들이 진정 영혼을 가지고 있는지 토론을 하기도 했다. 성경은 신성한 의무로써 "우상숭배자들"의 처형을 허락한다. 1215년 라테란 공의회 선언에서 하나의 계율이 채택되었다 : "이교도를 죽인 자는 살인 혐의를 지우지 않는다(homicidas non esse qui heretici trucidant)." 스콜라 철학의 합리주의는 분류화의 특권을 가지고 있었다. 존재론적 실재론의 학파는 자연적 실재의 개념을 제시했고, 이는 차후 생물학적 "자연"의 개념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타불라 라사(tabula rasa - 백지상태로 태어난 인간은 외부의 경험을 통해 지적능력을 얻게 된다는 개념) 그리고 환경이 모든것을 결정한다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는 경험주의는 이보다 더 긍정적인 영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반-실재론자인 로크는 모든 인간의 형질은 첫 실체에 기원하고 있다고 강변한다 : 그러므로 인간의 본질을 데카르트 철학이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설명하는 것이 가능하다. "인간"은 무한한 가변성을 가진다는 개념은 생물학적 결정주의 이론에 "선호되는" 것으로 나타나겠지만, 무한히 변하는 인류의 개념은 기준과 선택된 모형의 유효성을 나타내는 "조건부"의 타당성을 고려할 때 상당한 문제를 제기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는 자민족중심주의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이 모든 것을 둘러본 시점에서, 인종주의 이데올로기를 정의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은 명확해진다. 그들이 상세한 부분을 다루게 될 때까지 대부분의 정의들은 심대한 질문을 제기할 것이고 너무 많은 예외조건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이데올로기 측면에서 인종주의의 유용한 정의는 모든 경우에 적용가능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인종주의 담론의 주의깊은 검토는 오직 하나의 상수만을 드러낸다 : 문화와 문명의 불평등. 이 점에서, 인종주의 이데올로기는 [혹은 앞으로 새롭게 정의되어야 할 대안적 인종주의에서는]

(a) 생물학이 인지하고 있다고 믿어지는 인종적 불평등의 생물학적 해석을 추구하거나 ​추구하지 않을 것이다.​

(b) 인종본질주의를 고수 혹은 ​고수하지 않을 것이다.​

(c) 지배 혹은 그 반대의 의미를 가진 배제와 고립을 합리화 혹은 ​합리화 하지 않을 것이다.​

(d) 혼혈을 배제 혹은 ​배제하지 않을 것이다.​

(e) 인종주의가 상정하는 불평등을 불변적 요인 혹은 그 반대로 불평등을 절대적인 자민족중심의 모형을 통해 "타자"를 다른 문화로 동화시킴으로써 극복할 수 있는 것으로 주장 혹은 ​주장하지 않을 것이다.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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