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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번역] 나치스의 우익 반대파 에트가어 율리우스 융앱에서 작성

ㅇㅇ(220.120) 2020.05.22 14: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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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Alexander Jacob - The Neo-Conservative Reich of Edgar Julius Jung



바이마르 공화국시절 신보수주의[보수 혁명] 운동은 독일 고유의 정신과 중세 독일 민족의 신성 로마 제국의 기수로서의 세속적 입지를 복원하고자 하는 엘리트주의적 정치 기획이었다. 오스발트 슈펭글러, 아르투어 묄러 판 덴 브루크, 그리고 에트가어 율리우스 융과 같은 지식인들로 구성된 신보수주의자들은 독일의 적들이 강요한 자유주의적인 바이마르 공화국의 이질적인 사회-정치적 에토스를 파괴하는데 목표를 두었다. 대부분의 신보수주의자들은 당대 엘리트주의자의 모임이자 묄러 판 덴 브루크가 만든 모임인 Juniklub, 그리고 이것의 후신인 Herrenklub의 멤버였으며, 따라서 모든 포퓰리즘적 자유민주주의 전반에 대한 거부를 표했다.

 

신보수주의자들 중에서, 아마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이론가이자 정치 운동가였던 사람은 의심의 여지없이 뮌헨의 법률가였던, 에트가어 율리우스 융일 것이다. 융은 단순히 정치사상가이자 선전가였을 뿐만 아니라 바이마르 공화국에서의 활동적인 정치인으로, 1차 세계대전 이후 곧바로 자신의 법률 사무업과 동시에 정치 경력을 시작했다. 융은 1894년 팔츠의 바이에른에서 태어나 전쟁에 자원입대 했었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자유 군단에 가입하여 1919년 봄 바이에른 소비에트[평의회] 공화국으로부터 뮌헨을 해방시키는 데 참여하였다. 프랑스-벨기에가 루르지역을 점령하기 이전(1923-25), 융은 법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츠바이브뤼켄(Zweibrücken)에서 업무를 시작했다. 이 때의 그의 정치 활동은 루르를 점령한 세력들에 대한 테러리스트 저항세력을 조직하고 독일인민당의 지시를 송달하는 것을 포함했다.

 

루르 위기 이후, 융은 그가 죽을 때까지 머물렀던 뮌헨에서 변호사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융은 Deutsche Rundscha에서 기고한 그의 몇몇 정치 저작들과 그의 주요한 정치 논문인 열등의 지배(Die Herrschaft der Minderwertigen) – Jean Neuhrohr에 따르면 “신보수주의의 바이블” 중 하나로 여겨진다 – 를 통해 명성을 얻었다.

 

1930년 1월, 융은 알프레드 후겐베르크가 이끄는 독일국가인민당(Deutschnationale Volkspartei)에서 이탈한 12명의 의원들로 조직된 우익 정당인 인민보수협회(Volkskonservative Vereinigung)에 가입했다. 급부상하는 히틀러의 민족사회주의 정당에 대한 융의 태도는, 민족사회주의 운동에서의 “긍정적인 에너지”에 대해 존경을 표하긴 했으나, 미온적이었다. 히틀러가 무지한 대중들에게 환상을 심어주는 우상으로서 “민족”을 주창한 데 반해, [융이 생각한] 진정한 보수주의 운동은 확고히 확립된 교회로부터 리더십을 축성하도록 함으로써 대중들을 향상시키기는 방향으로 추구되어져야 했었다. 즉, 민족사회주의자들은 모든 사람들이 초감각적, 형이상학적, 그리고 종교적 층위로부터 영감을 이끌어 내지 않는 선에서 개개인에게 매달리는 개인주의로부터 충분히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익 정당들은 민족주의 세력들에 대한 견고한 대안을 제시하기에는 너무나 분열된 상태였는데, 특히 독일국가인민당의 두 번째 분리로부터 또 다른 분화된 정당인, 보수인민당(Konservative Volkspartei)이 만들어진 이후 더욱 심해졌다. 자신만의 “혁명적” 보수주의의 유형을 인민보수협회에 부여하고자 했던 융의 시도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독일국가인민당과 보수인민당이 1930년 12월 서로 협력을 다짐했을 때, 이 새로운 연합의 리더십은 융이 아닌 파울 르죈-융(Paul Lejeune-Jung)에게 승계되었다. 다음 해 1월, 융과 소수의 바이에른 보수주의자들은 “파르티잔의 정치 생명에서 비롯된 구호와 마법의 공식으로부터 훼손되지 않은 채, 당대의 정치적 문제들을 독일 인민의 역사적 사명이라는 온전한 관점으로부터 바라볼 준비가 된 모든 자들을 위한 정치적 근거지”로서 ‘독일 운동에 대한 인민 보수주의 운동’(Volkskonservative Bewegung zu deutscher Bewegung)을 설립했다.

 

그러나, 자신만의 혁명적 보수주의의 분파를 촉진시키기 위해, 하인리히 브뤼닝과 G.R 트레비라누스와 같은 좀 더 온건한 보수주의자들과의 협력을 거부한 것은 자신의 운동에 도움이 되지 못했으며, 이는 사실상 1931년 봄에서의 모든 정치적 세력을 상실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브뤼닝의 수상 재임 기간 동안에서의 융의 열의 상실은 1931년 8월 14일 페첼에게 보낸 편지에 첨부된, 브뤼닝에게 보내는 편지의 초안에서 나타나있다:


“오로지 정부가 권위의 개념을 복원시키고 독일 의회주의의 빈곤함으로부터 자기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는 데 충실했을 때에만 이러한 세력들은 전체로서의 민족에 대한 봉사의 자리에 놓일 수 있습니다. 내각의 재구성은 정당의 기반을 완전히 폐기시키는 것에 목적을 두어야 합니다. 정당의 승인이 아닌, 전문적이고 실용적인 기능만이 존경받는 수상, 바로 당신이 이러한 난제들을 능숙히 처리하는데 도움을 주는 일에 필요로 하는 자들의 선별을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히틀러와 민족사회주의당이 1932년 4월 24일의 선거에서 대승을 거두었을 때, 융은 실제로 나치의 합법적 권력 승계를 환영했었다. 비록 융은 여전히 나치의 극단주의적인 경향에 대해 우려를 가지고 있었으나, 그는 이 합법적 과정이 이보다 더 거대한 “대실패”를 불러 일으킬 수 있는 강압적인 장악을 제거할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전국적으로 일어나는 나치의 열광적 파도는 막을 수 없었고 보수 연합은 그저 1932년 12월의 의원선거에서 NSDAP의 완승을 속절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히틀러가 보수주의자 파펜과 연합하여 1933년 1월 연립 정부를 구성했을 때 융은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융은 언제나 히틀러의 포퓰리즘에 대해 보다 더 우월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었고, 그렇게 믿었었는데, 보수주의자들은 “이런 사람이 권력을 취하게 된다면, 이제 우리는 그를 제거해야 할 책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프란츠 폰 파펜이 브뤼닝 이후 1933년에 부수상으로 임명되었을 때, 융은 파펜에게 연설 원고 작성과 지식인 참모의 역할을 수행하길 희망한다는 글을 보냈었다. 그의 가까운 동료인 한스 하우만의 조언에 따라, 파펜은 융을 자신의 정부에 기용하여 자문과 조직관리 직책을 담당하도록 하였다. 파펜 행정부에 이바지하는 것에 숨겨진 융의 의도는 “[파펜을] 보수주의자의 장벽으로 에워싸는 것”에 있었으며, 그 보수주의자들은 권력을 향한 히틀러의 급부상에 대항하는 필수적인 도덕적 성채를 부수상에게 제공할 것이다. 그의 보수주의 이데올로기로 히틀러의 극단주의를 제한하기를 희망하며, 융은 파펜, 휴겐베르크, 그리고 철모단 출신인 프란츠 젤테가 보수적인 흑-백-적 전선(Kampffront Schwarz-Weiss-Rot)을 구성하는 데 참여했을 때, 파펜의 연설 원고 작성가의 일을 수행했다. 그의 연설은 극단주의적인 나치보다는 우익 세력들의 새로운 연합에 보수주의의 각인을 새기는 일에 철저히 계획되었다. 융은 자신들을 반동주의의 혐의로 비난하는 나치의 공세에 맞서 새로운 우익의 혁명적 성격을 강변하고 히틀러와 그의 정당이 가지고 있는 정신적 이데올로기적 결함들을 강조함으로써 파펜 정부를 방어하고자 했다.

 

융은 종교와 보편주의적 세계관에 기초하는 새로운 국가를 호명했다. 대중이 아닌 새로운 귀족, 혹은 자의식을 갖춘 엘리트가 이 새로운 정부에게 영향을 주어야 하며, 기독교정신은 국가의 근저에서 도덕적인 힘을 발휘해야 한다. 사회 그 자체는 위계적으로 조직되어야 하고 설령 민족주의가 “민족적(völkisch) 투쟁이 구성하는 것으로부터 기인한 불멸의 민족적 토대”에 기반을 둔다 할지라도 민족주의의 범위를 초월해야 한다. 민족주의의 한계를 넘어서자는 언급은 당연히 범-유럽 제국을 재구성하고자 하는 그의 열망에서 촉발되었다. 융의 보수주의는 또한 선거에 의해 선출된 군주제의 탄생과 제국의 통치자를 새로운 독일 유럽 제국의 초점으로서의 임명을 호명하는 것으로부터 차별점을 가진다. 그러나 제국의 계획과 민족 토대의 강조는 그 어떠한 보수주의 지도자들이 행할 수 있는 것 보다 더욱 극적인 방식으로 실현되었는데, 다소 무모한 방식일지라도, 히틀러에 의해서 말이다.

 

히틀러에 대한 융의 반대는 그가 히틀러 체제를 전복하는 데 조력하게 될 보수주의 지지자들의 관계망을 형성하고자 독일 전역을 광범위하게 돌아다니던 1934년 초에 더욱 결연해졌다. 파펜 자신은 이런 방향으로 움직이는 융의 노력들에 대해 인지하지 못한 상태였고, 헤르베르트 폰 보세, 귄터 폰 체르스키, 그리고 케틀러로부터 융은 상당한 협조를 받을 수 있었다. 융은 심지어 개인적으로 히틀러를 암살하는 것도 고려했는데, 물론 그러한 과감한 행동은 나치의 독재가 1934년 6월 17일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연설했던 파펜의 또다른 연설문을 작성하는 데 있어 이론적인 대안을 채택하도록 야기한 이후의 새로운 지도부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상정하는 데 있어 자신의 자격을 박탈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히틀러 체제의 위법을 향한 반복적인 공세와 그 연설에서 언급하는 현 체제의 실용적이고 정치적인 실패들은 히틀러가 괴링, 힘러 그리고 그의 조력자인 하이드리히와의 협조 하에서 융이 제기한 위협들을 제거하길 결심하도록 만들었다. 따라서 1934년 6월 30일 “장검의 밤”에서 융은 룀과 [히틀러 체제에] 저항적 태도를 취하게 된 SA 대원들과 함께 목숨을 잃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융의 정치 경력을 양면적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한편에서는 자유주의자들의 해로운 의회 시스템을 파괴하게 될 신-중세적인 독일 제국에 대한 그의 진심 어린 철학적 비전에 동기를 부여받아, 히틀러에 대한 융의 반대 그리고 그의 동료 우파 보수주의자들에 대한 거부는 분명 개인적인 야망 그리고 아마 히틀러의 계획이 거둔 성공에 대한 질시에서 부분적으로 촉발되었을 것이다. 물론, 융이 제시한 보수주의 계획은 히틀러의 극단적인 방식과 정도는 다를 수 있으나 본질은 동일하다. 융이 독일 인민들이 변하길 소망하던 공동체는 거대한 대중 운동과 같이 나타난 나치 운동을 주조해낸 히틀러의 방식으로써 상당부분 실제적으로 결합되었다. 물론, 이러한 포퓰리즘은 융이 요구하는 공동체의 정신적 요지가 부재한 것은 사실이나, 나치스는 최소한 균일한 정신적 문화에 있어 필수적인 민족 토대를 둔 것은 다름아닌 자신들이라고 주장할 수 있었다. 이 외에도, 융의 죽음 이후 히틀러가 만들어낸 극적인 대외 정치 움직임은 실제로 융이 제기한 문화적 제국주의와 매우 세세한 부분까지 흡사하다. 요하임 페촐트가 바로 바라본 바와 같이, “사실 민족사회주의 운동은 파시즘의 또다른 변형일 뿐이며, 파시스트의 다양한 성향들 또한 독일에서의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 싸워왔으며, 융은 파시스트의 입장에서 나치당을 비판한 것이다.”(In Wirklichkeit war die Nazibewegung nur eine Spielart des Fascismus, rangen auch in Deutschland verschiedene faschistische Strömungen um die Führung, kritisierte Jung die Nazipartei durchaus von faschistischen Positionen a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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