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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소설핫산) 뒤틀리고 일그러진 종착점의 끝 - 프롤로그 -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3.12.18 21:40:46
조회 4944 추천 37 댓글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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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15자


원본


부제 「선생님을 너~~~~~무 좋아하는 100명(이상)의 학생(들)」


선생님과 학생들이 꽁냥대는 러브코미디를 나도 써보고 싶었다. 누가 뭐래도 러브코미디.


――






......아아. 나는 또 실패했나.


위아래 감각도 시간 감각도 없는 새하얀 공간. 비현실적인 공간에서 흔들리며 나는 내가 또 실패했다는 걸 깨달았다.


이 공간에 온 건 이게 처음이 아니다. 원치 않는 종착점에서 내 목숨이 사라질 때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 공간에 와 있었다.


생매장당한 세리카를 구하지 못하고 헬멧단에게 살해당했을 때.


호시노를 구하려다 역부족으로 카이저 PMC에 처형됐을 때.


아리스를 멈추지 못하고 그녀가 다루는 힘의 편린에 몸이 불타올랐을 때.


미카의 쿠데타를 막지 못하고 아리우스에게 총살당했을 때.


사오리에게서 히나를 감싸고 그 몸으로 여러 발의 총알을 맞았을 때.


베아트리체의 흉계 앞에 패배하고 아리우스 모두를 구하지 못한 채 갈가리 찢겼을 때.


FOX 소대의 각오를 제지하지 못하고 기화폭탄 폭발에 삼켜졌을 때.


백귀야행 연합학원을 덮친 괴이 앞에 무릎 꿇고 고통 속에서 죽어갔을 때.


몇 번이나 실패했고 그때마다 내 의식은 이 공간에 던져진다. 나조차 잃어버릴 듯한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떨어질 때마다 나는 절망하고 자신을 책망하며 다시 일어섰다.


나는 아무리 목숨을 잃어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 몸을 색채에 먹히는 그 순간까지, 나는 학생들의 행복을 잡을 때까지 계속 싸우겠다고 프레나파테스[또 다른 나]에게 맹세했으니까.


그리고 다시 시작한다. 몇 번이고 계속되는 시간의 루프가 다시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나의 의식이 강한 빛에 삼켜지는 걸 느끼면서 나는 마음에 백절불굴의 불길을 태운다.


모든 행복을 실현한 종착점에 도달하는 그 순간까지, 나는 몇 번이라도 일어날 것이다――.




"――님, 선생님."


검은색 뿐인 시야 속에서 나의 고막에 날카롭고 다부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를 부르는 그 목소리에 눈꺼풀을 천천히 뜨고 검은색 뿐이던 시야에 선명한 빛깔이 한꺼번에 들어온다.


뻥 뚫린 듯한 푸른 하늘.


광고와 네온으로 꾸민 빌딩들.


엄숙한 일상품으로 정돈된 집무실.


여러 번 본 광경이 내 눈에 들어온다. 수십, 아니 수백은 보아온 광경에 나는 나 자신이 다시 스타트 지점[시발점]에 내려섰음을 깨달았다.


"듣고 계시나요, 선생님?"


내 시야에 한 학생이 들어온다. 그 학생 또한 여러 번 본 인물이며, 내가 반드시 가장 먼저 만나는 학생.


"아아, 미안해. 조금 생각하고 있었어――린."


나나가미 린. 학원도시 키보토스를 운영, 관리하는 조직 『연방학생회』에 소속된 수석행정관. 지금은 행방을 감춘 연방학생회장의 대행을 맡고 있는 재녀. ........응, 내 기억에 차질은 없다.


"그러셨나요. 눈을 감고 대답도 없으시길래 푹 주무시는 줄 알고."


"잤다니, 너무해. 나는 괜찮아. ........응, 괜찮아."


마치 자신의 각오를 다지려는 듯 나는 몇 번이고 괜찮다고 말했다. 괜찮다. 내 마음은 아직 꺾이지 않았어. 루프를 반복할 때마다 학생과의 관계가 리셋되는 건 괴롭지만 그래도 다시 인연을 키우면 된다.


"......선생님? 또 생각하시는 건가요?"


나는 린의 목소리를 들으며 다시 눈을 감고 뇌리에 자신이 걸어온 다수의 말로[배드 엔드]를 떠올린다. 내 죽음 옆에는 항상 학생들에게 최악의 결말이 함께하고 있었다. 때로는 구원 없는 미래에 절망하고 때로는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마음이 어둠에 빠지며 때로는 저항할 수 없는 불합리 앞에 목숨을 잃는다.


그런 결말, 나는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그 각오를 가슴에 간직하고 수없이 루프를 반복했다. 그렇기에 이번에야말로 나는 쥐고 말 것이다. 학생들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최고의 결말을. 모두가 원하는 최고의 종착점을.



"선생님. ........선생님."


나는 각오를 다지고 나 자신을 북돋웠다. 그리고 이쪽을 몇 번이고 부르는 린에게 사과의 한마디를 하려고 눈을 뜨자.


――린의 단아하고 아름다운 얼굴이 시야에 가득했다.


".........어?"


린은 놀라는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얼굴을 가까이 하더니 내 뺨에 양손을 얹고 다가와....... 부드러운 감촉이 입술을 통해 전해져 왔다.


"음......."


"......!?!?!?"


린에게, 키스당했어. 그 고지식하고 연애라고는 조금도 흥미가 없어보였던 린쨩이. 이 루프에서는 처음 만났을 나에게 갑자기 키스를 한 것이다!


"음, 으음......."


혼란의 극치에 빠진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린쨩은 몇 번이고 반복해서 내 입술에 연이어 키스해온다. 혀를 섞는 게 아닌 버드 키스를, 마치 연정을 드러낼 줄 모르는 소녀처럼 몇 번이고 퍼부었다.


뭐야 이건!!!


"으음........ 하아."


만족스러울 때까지 키스를 마쳤는지 린쨩은 입술을 떼며 요염한 한숨을 흘렸다. 지금까지의 루프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던 사건을 앞에 두고, 나는 망연자실한 채 그저 린쨩을 바라보는 것 밖에 할 수 없다.


"놀란 표정을 하고 있군요, 선생님. 뭐, 무리도 아니겠죠."


나를 바라보는 린의 시선은 초면의 차가운 것이 아닌, 마치 연인을 바라보는 것처럼 따스하고 부드러운 것이었다. 나의 혼란은 더욱 커져간다.


"간결하게 말씀드리자면 선생님. 저와 당신은 초면이 아닙니다. 아뇨, 이 시간축에서는 초면이지만, 저는 선생님의 기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기억을 유지하고 있어.......?"


혼란으로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 나는 린의 말을 앵무새처럼 되돌려주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멍한 나를 보며 린쨩은 부드러운 미소를 보이더니 한 발짝 이쪽으로 내딛으며 내 오른손을 양손으로 꼭 잡았다.


"제가 어째서 이 기억을 유지할 수 있었는지, 그 이유는 전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선생님의 노력을 알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몇 번이나 저희 학생들을 위해 말 그대로 몸을 던져왔던 것, 그리고....... 학생들을 위해 몇 번이나 그 목숨을 다해왔던 것도. 선생님께는 아무리 감사해도 부족합니다...... 정말, 정말로 감사합니다."


"린쨩......."


이유는 불분명하지만 지금의 린쨩에게는 반복되는 루프의 기억이 유지되고 있는 것 같다. 린쨩의 나를 위로하는 올곧은 말과 자애로운 시선을 받아 가슴 속에 뜨거운 것이 복받친다.


"그리고...... 제가 선생님의 반려가 되어 인생을 함께하는 맹세를 나누었던 기억은 저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추억입니다."


"뭐야 그거, 잠깐, 나 그런 거 전혀 모르는데."


잠깐 기다려봐. 나에겐 린쨩을 반려로 삼은 기억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그렇다고 할까, 학생과 그런 깊은 관계가 된 기억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습니다만!?


"그럴 수가........"


나의 그런 걸 모른다는 말에 린쨩은 극도로 상처받은 표정을 지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나에게 필사적으로 다가온다.


"서, 선생님은 기억하지 못하시나요......? 그날, 석양에 비친 샬레의 부실에서 저에게 그, 당신이 사랑을 속삭여 준 것을....... 이런 무뚝뚞한 여자를 필요로 한다고 말씀해 주신 맹세의 말을.......!"


"어, 어어어......"


마치 기도하듯 내 오른손을 두 손으로 움켜쥔 린쨩의 눈동자에서 눈물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나는 이렇게 상처받은 표정을 한 린쨩을 루프 속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우와아아아아. 존재하지 않는 기억으로 죄책감이이이이!!!


"......그렇, 습니까. 선생님에겐 잊고 싶은 기억이라는 거군요."


"자, 잠깐 린쨩........"


"아뇨, 괜찮습니다. 이런 붙임성 없는 여자와 깊은 관계가 된 기억 따위는 잊고 싶다고 생각하시는 건 저도 잘 이해할 수 있으니........ 훌쩍."


"아니 그러니까 정말 부탁할게, 혼자서 판단하고 결정짓지 말아줄래, 린쨩!?"


눈물을 닦아도 멈추지 않고 계속 우는 린쨩을 보며 죄책감에 마음이 도려져 나갈 것 같다. 뭔가 말을 건네려는 나를 보며 린쨩은 고개를 떨구고 잡고 있던 내 손을 살짝 놓는다.


"......선생님, 응접실에서 다른분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서 그녀들을 만나러 가 주세요. 저는...... 죄송합니다, 조금만 더 마음의...... 정리를.......!"


".........아아아아아아아!!! 진짜!!!"


눈물이 넘쳐 흐를 것 같은 린쨩을 보고 있을 수 없었던 나는 충동에 휩쓸려 그녀를 꼭 껴안고 있었다. 그대로 린쨩의 귓가에 중얼거린다.


"미안 린쨩. 나는 린쨩과 그...... 깊은 관계가 된 기억은 정말 없어. 하지만 나에게 린쨩은 (학생으로서) 소중한 존재야. 키보토스에 와서 아무것도 몰랐던 나를 이끌어준 린쨩을 싫어할 리가 없잖아."


".......선, 생님. 그런, 저를 (반려로서) 소중하다고 말씀해 주시다니.......!"


내 품에 안긴 린쨩은 내 따스함을 놓치지 않으려고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뭐지, 둘 사이에 치명적인 엇갈림이 일어나고 있는 거 같아.


"......감사합니다, 선생님. 저는 이제 괜찮습니다. 그러니 모두에게. 선생님을 기다리는 건 다른분들도 마찬가지일 테니까요."


".......알았어, 린쨩."


린의 말을 듣고 나는 껴안고 있던 그녀를 놓아준다. 나와 마주한 린쨩의 얼굴에는 조금 전까지의 상처받은 표정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얼굴을 붉히고 촉촉한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 나중에 천천히 이야기할까. 분명 시간은 앞으로 잔뜩 남았으니까."


".......! 네, 그때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이 방에서 나오려는 내가 본 린쨩의 표정――그것은 지금까지의 루프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수줍은 듯 하면서도 부드럽고 귀여운 미소였다.


린쨩의 미소를 본 나는 살짝 미소를 머금고 방문 손잡이에 손을 얹는다. 심호흡 후 새로운 스타트에 각오를 다지고, 나는 힘을 줘 문을 열었다.




응접실에 들어간 내 눈동자에 들어온 것은.......엄청난 숫자의 학생들이었다. 응접실을 가득 채울 정도의 광경에 내가 할 말을 잃은 가운데 인파 속에서 누군가가 이쪽으로 달려온다.


"――선생님!"


이쪽으로 달려온 한 학생은 나를 부르더니 그대로 가슴팍으로 뛰어들었다. 등에 두 손을 두르고 나를 놓치지 않도록 힘껏 껴안는다.


".......유우카?"


"선생님, 보고싶었어요......! 정말, 정말로.......!"


나를 껴안은 학생, 그것은 반복되는 루프 속에서 몇 번이나 신세를 진 『하야세 유우카』였다. 본래라면 초면일텐데, 이렇게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껴안은 걸 보니..... 그녀도 기억을 유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선생님......! 아아, 다시 만나서 정말 다행이에요.......!"


"선생님, 정말 선생님이에요.......!"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선생님.......!"


"하스미, 스즈미, 치나츠........"


유우카에 이어 세 학생이 이쪽으로 달려와 마치 내 존재를 확인하듯 달라붙었다. 『하네카와 하스미』 『모리즈키 스즈미』 『히노미야 치나츠』 유우카와 마찬가지로 내가 키보토스에 와서 처음으로 전투를 지휘한 학생들이다.


원래라면 이 네 사람이 린쨩에 이어 처음 만나는 학생들이지만....... 이 응접실에는 이 4명 이외에도 안면이 있는 학생들이 많이 있다. 지금까지의 루프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던 현상이다.


"다, 다들, 날 알고 있어? 초면일 텐데......."


"초면이 아니에요! 선생님은 제대로 기억하고 있어요.......!"


"네, 유우카의 말대로 전부 기억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저희 학생들을 위해 애써주신 그 전부를........"


"저희를 위해 몇 번이고 자신을 희생해주시고........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선생님. 저희도 앞으로는 선생님에게 힘이 될 수 있으니가요. 그러니 이제 무리는 하지 말아주세요......!"


"유우카, 하스미, 스즈미, 치나츠......."


아무래도 내 예상대로 왠지 그녀들도 반복된 루프의 기억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 눈물 섞인 눈동자로 이쪽을 바라보는 네 사람은 나를 잡고 있는 손에 꼭 힘을 준다. 마치 나라는 존재를 다시는 놓지 않을 것처럼.


"치나츠씨 말대로 선생님이 무리할 필요는 이제 없어요! 저희가 붙어있으니까요!"


"정의실현위원회 부위원장으로서의 힘, 선생님을 위해 분발하겠습니다......!


"트리니티 자경단의 일원으로서 미력하지만 선생님께 힘이 될 것을 맹세합니다!"


"풍기위원회 구호담당으로서 선생님의 부상과 위험을 간과할 수 없어요. 이번에야말로 선생님께서 평온무사하게 지내셨으면 하니까......!"


네 사람의 힘찬 눈빛이 일제히 나를 향한다. 그 눈빛을 받은 나는...... 무심코 울 것만 같았다. 무한하다고 착각할 것 같은 루프 속에서 마음이 깎여나가던 나에게 학생들이 나를 기억해주고, 거기에 협조를 제안해 준 것은 그야말로 구원의 손길이나 다름없었다. 학생들을 지키겠다고 다짐한 바로 직후라 복잡한 마음도 있지만 그래도 기쁜 건 기쁘다.


"얘들아......! 고마워, 정말, 정말로.......!"


"게다가 선생님과는 빨리 결혼식을 올려야 하니까요. 안심하세요, 선생님. 결혼부터 노후까지 예정은 정확하게 만들어뒀으니!"


"이런 철면피 같은 여자인 저를, 사, 사랑한다고 해주신 선생님과 빨리 함께하고 싶기에. 선생님도 같은 마음이시죠........?"


"자경단원으로 활동하는 저의 이념을 인정해주시고 지탱해주신 선생님이 저를 받아주신 추억도 물론 잊지 않았습니다. 그, 무뚝뚝하고 재미없는 저이지만 다시 한번 잘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기억하세요? 선생님께서 저에게 옆에서 자신을 지탱해 달라고 하신 그 말을....... 저에게 전부 맡겨주세요, 선생님. 이번에야말로 선생님을 완벽하게 서포트해낼테니......!"


"모처럼 나온 눈물도 다 들어가버렸잖아 젠장!!!"


대체 몇 명의 학생에게 손을 댄 거야, 내가 모르는 「나」는!!! 내 반응을 보고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는지, 네 사람의 얼굴이 비통으로 일그러진다.


"뭐...... 서, 선생님, 기억 안 나세요......? 그럴 수가, 어째서. 거짓말이라고 해주세요!"


"......그렇, 겠죠. 정의에 몸을 바친 여자따위, 선생님 입장에서 보면 시시한 여자일 수밖에. 선생님과 보낸 그 날들은 제가 꿈꿔버린 편리한 환상에 불과했을 뿐."


".......죄송합니다, 선생님. 잊어주세요. 그건, 그, 농담이니까요. 저는 괜찮...... 으니까.......!"


"......선생님? 어째서 그런 표정을 하고 계신 건가요? 기, 기억하시죠? 저에게 일생을 서포트해달라고 해주신 그 말을, 저에게 해주신 특별한 말을 잊어버리신 건 아니죠.......?"


"우와아아아, 네 사람 몫의 죄책감이 한꺼번에 몰려와아아아아!!!"


네 사람의 상처받은 표정이 내 마음을 찌른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내가 원인이 되어 학생들에게 침통한 표정을 짓게 하는 건 괴로운 일이다.


"아, 그게. 나, 방금 눈을 떠서 말이야. 기억이 혼란스럽거든! 분명 조금 있으면 여러가지 생각날 거야! ........아마."


학생들의 슬픈 얼굴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던 나는 그만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하고 말았다. 어투는 움츠러들고 목소리도 떨렸지만 내 말을 믿어줬는지 학생들의 얼굴에 희망의 빛이 비친다.


"그, 그렇죠. 선생님도 이곳에 막 부임하셨을 테고....... 분명 시간이 지나면 기억해 주실 거예요!"


"죄송합니다, 선생님. 불안한 나머지 선생님의 심신을 고려하지 못해서....... 시간은 많이 있고, 저도 선생님을 서포트해 드릴 테니 천천히 기억해 주셨으면..."


"........다행입니다. 아, 아뇨, 이건, 아직 저에게도 희망이 있구나 하고 안심해서....... 훌쩍."


".........안심해 주세요, 선생님. 선생님의 업무를 보좌할 준비는 전부 끝났으니까요. 그러니 분명 떠오를 거예요."


"으, 응. 그렇구나........"


학생들의 이쪽을 믿는 순수한 눈동자가 괴롭다. 그만 고개를 돌려버린 나는 힘내자는 긍정적인 자세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분명 미래의 내가 어떻게든 해줄 거다. 부탁한다, 미래의 나.


"그럼 선생님, 일단 모두와 이야기를 나누면 어떨까요?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다보면 기억이 자극받을 수도 있고, 어쩌면 기억이 분명해질 수도 있으니까요....... 저에 대한 것도 포함해서."


"......그러네. 이렇게 많은 학생들이 와줬으니 한 번쯤 이야기해두는 게 좋을 거 같아."


나는 유우카의 조언을 받고 방에 모인 학생들에게 의식을 향한다. 내 기억에 이 응접실은 꽤 넓었었지만, 지금은 많은 학생들로 가득차 있다. 모여 있는 학생의 수는 대략 백 명이 넘어 보인다.


"그건 그렇고 이 정도의 학생이 나를 만나러 왔단 말이지. 꽤나...... 아니, 굉장히 기쁘네."


원래라면 이 자리에는 연방학생회에 민원과 진정서를 제기하러 온 학생들로 넘쳐났었지만, 지금은 나를 만나러 오는 것만으로 이렇게 많은 학생들이 몰려들고 있다. 반복되는 루프 속에서 내가 쌓아 온 행동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라는 걸 실감해 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그럼 선생님. 저는 세미나 멤버들과 이야기할 게 있기 때문에 다음에 또, 나중에 선생님의 시간을 실례할테니까요!"


"저도 일단 정의실현위원회로 돌아가겠습니다. 선생님이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을게요."


"저도 자경단과 합류하는 게 좋을까요. ......저기, 선생님. 저도 잊지 말아주세요."


"아코 행정관이 부르고 있으니 일단 실례하겠습니다. 선생님이 저를 보러 오시기를 계속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유우카, 하스미, 스즈미, 치나츠 네 명이 각각 소속된 조직의 멤버에게 돌아간다. 학생들은 아무래도 학원마다, 위원회나 동아리같은 조직끼리 모여 있는 것 같았다. 이 시간축에서도 학생들간의 사이는 변하지 않은 모양이라 안심이다.


"그럼...... 나도 모두와 이야기해 볼까."


유우카가 말했던 되찾을 기억같은 건 없지만, 학생들이 어느정도의 기억을 유지하고 있는지 그것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무엇보다, 나 같은 걸 만나러 와 준 사람들과 제대로 이야기해 두고 싶으니까.


이쪽으로 힐끗 시선을 향하는 학생들을 알아챈 나는 그녀들에게 한 걸음을 내딛는다. 이때의 나는 아직 몰랐다.


――앞으로 자신에게 기다리고 있는 지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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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헨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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