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더웠습니다. 진짜 더웠어요. 공지에 러닝 페이스가 5:30/km라기에 가볍게 생각하고 나갔는데요. 체감상 어제의 달리기보다 더 힘들었어요. 실제로 훈지를 보니 4:35/km로 15km를 달렸던 어제 새벽의 달리기보다 평심이 더 높습니다ㅎ. 그런데 사실 오늘 같은 달리기에서 그게 뭐가 중요할까요?

2. 21년 9월에 달리기를 시작했어요. 디씨에 러닝 정보가 많다는 것을 10월 경 알았고, 마라톤갤러리를 눈팅하며 많은 것을 배워나갔습니다. 그러다 마라톤갤러리 유저들이 대거 러닝갤러리로 옮겨갔기에, 저도 따라서 런갤에 정착했어요. 주로 글을 쓰기보다는 글을 읽으며 정보를 얻는 쪽이었습니다. 10k 40분의 벽을 돌파하기 위하여 몇번이고 탐독했던 이론왕님의 글이 아직도 기억나네요. 그야말로 러닝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저는 런갤에서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3. 너무 많은 도움을 얻었기에, 무언가 부채 의식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달리기에 관하여 알게 되고 깨닫게 되었던 것들을 부지런히 글로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대회 후기도 올렸지요. 성공적이었던 23년 동마와 아쉬웠던 23년 제마 후기를 열심히 작성해서 올렸고, 많은 분들이 축하와 공감을 해주셨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4. 그런데 사실 요즘은 런갤에 대한 관심이 예전 같지는 않게 되더라고요. 늘 반복되는 답답한 질문들, 디씨 특유의 떡밥과 논쟁들. 이런 것은 항상 있어왔기에 사실 별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것보다도, 예전에 활발하게 활동하여 서로 응원과 화이팅을 외치던 익숙한 유저들이 하나 둘씩 보이지 않으니 뭔가 묘한 상실감이 들더라고요. 약간 런갤에 정(?)이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며 뭔가 열의를 쏟았던 대상이 사실은 실체가 없는 것이었다는 허무함이 올라왔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정보글, 긴 글은 잘 안 올리게 되더라고요. 그저 생존을 신고하는 개념으로 훈련 일지나 올리곤 했습니다.

5. 그러다 정모 게시글을 보았고, 늘 혼자 달리던 저는 용기를 내어 모임에 한번 나가보기로 했습니다. 물론 어색했습니다. 동그랗게 서서 각자 닉네임, PB를 소개할때 되게 쑥스럽더라고요.

6. 그런데, 이러한 어색함은 달리기를 시작하고 금세 허물어졌습니다. 마주 보고 이야기하는 것보다 나란히 뛰는 것이 더욱 자연스러웠나 봅니다. 모두들 러너였으니까요. 조금씩 숨소리가 가빠지고, 발구름의 박자가 맞춰지면서 주위에 계신 분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즐겁게 나눌 수 있었습니다.

7. 달리기를 다 마치고 집에 와서 생각했습니다. 항상 모니터 너머로 글자로만 보던 사람들이 실제로 진짜 세상에 존재하는 러너였다는 것, 그리고 그분들이 저랑 굉장히 비슷한 사람들이라는 것을요. 각자 다이어트, 건강 및 체력 증진 등등의 이유로 러닝을 시작했으며, 잭다니엘의 책이든 아니면 인터넷이던 간에 훈련프로그램을 고민하고 기록 향상을 위해 노력하지요. 그러기 위해 체중에 늘 신경쓰고요(잘 되지는 않지만요ㅎ). 가을이나 내년에 목표한 국내/국제대회는 하나씩 꼭 있고요. 주위에 런갤만큼은 다른 디씨갤러리와 다르다고 늘 강변하지요. 심지어 이렇게 즐겁게 러닝을 마쳐놓고 뒤풀이 없이 사진 한방 박고 바로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까지 비슷합니다.ㅎ

8. 제가 사는 세상에서 저는 굉장히 괴짜입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42km를 달리는 고문을 돈 내고 하는 사람이거든요. 달리기를 위해 새벽에 일어나고 회식자리도 별로 즐기지 않습니다. 매주 6번은 달리고 짬내어 보강운동까지 해요. 가끔은 별 상관 없지만 가끔은 또 조금 외롭다는 생각을 합니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인지라 내가 가장 관심있어하는 것을 주위사람에게 공유하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인데, 마라톤 이야기만 하면 그저 완주했어? 말고는 관심들이 없으니까요.

9. 그런데 오늘은 저와 비슷한 사람이 25명이나 모여있었습니다. 각자 러닝을 시작한 시기가 다르고 실력도 다른 것은 확실합니다만, 적어도 모두가 열정이 있는 러너라는 것은 확실해 보였어요. (중요: 열정이 없으면 2인치 쇼츠를 입고 감히 밖에 나오지 못합니다ㅎ) 그래서, 그렇게 되게 비슷한 사람들과 가장 좋아하는 러닝을 같이 하고 오니, 정신적인 만족감이 정말 크네요. 오늘 러닝 모임은 제게 두고두고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10. 그래서 이 자리를 기획해주신 러닝과의전쟁님과 사진을 찍어주신 우후님, 그리고 페이서역할을 해주신 분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또 정성스럽게 스티커를 포장해서 나눠주신 오산을달리다님께도 감사드립니다.

11. 오늘 화창하고 강한 햇빛 아래서 같이 달린 분들 모두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편하고 즐거운 휴일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