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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문서] [괴문서] 설계사ch.3 - 28

머스크메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5.12 00:46:19
조회 276 추천 16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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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 그리고 비너스 트레이너와 화해하고 맛있게 저녁을 다같이 먹고 온 메이드장은 숙소에 돌아와 한참 전부터 침대 위에 누워 계속 생각에 잠겨있었다.


"팀 비너스 트레이너..."


딱히 흉계를 꾸미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해야할까나. 마침내 눈을 가리던 것들이 떨어져나가고 드디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메이드장은 머리속을 정리하며 비너스 트레이너에 대해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


"두말할 것도 없지..."


최근 3일간 축제에서 보았던 그와 팀 비너스 팀원들 간의 거리감을 떠올린 메이드장은 피식 웃으면서 입꼬리를 올렸다.


당장 첫째 날부터 목격한 브라이언과 설탕이 쏟아지던 모습, 아침 점검 때 팔에 찰싹 붙어 연인 행세를 하던 맥퀸, 그녀들을 위한 공연, 다이아 아가씨를 지키는 모습이나 그 외에도 다른 팀원 모두 늘 행복한 표정으로 그를 따라다녔다. 그리고 그에 보답하듯 트레이너 역시 그녀들에게 상냥하고 온화한 모습을 보였다.


[ 혹시나 제가 아니라 저의 담당들을 노리는 건가 해서 말이죠. ]


다시 떠올려보면 말 못할 정도로 부끄러웠지만 그렇게 담당들을 챙기는 트레이너였으니 자신의 미행을 오해하고 화를 내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리고 둘째 날에 맥퀸이라는 학생이 보였던 연극.


"조금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었는데..."


만약 연극의 내용이 곧이곧대로 사실이라면, 그는 학대에 시달리던 학생을 구하기 위해 대신 악평을 뒤집어썼다는 것이 된다. 그뿐인가, 드디어 위화감을 깨닫고 비너스 팀원들의 출주기록 일지와 트레이너 계약일지만으로도 그녀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충 진상을 파악했다.


"낙하산이자 실력이 없는데 담당 빨로 승승장구한다는 소문의 출처는 이거였나요."


처음부터 하나같이 모두 성적이 낮은 아이들을 5명이나 끌어안아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지금의 위치까지 끌어올렸다는 건 보통 실력이 아니다. 메이드장 자신 역시 트레이너였으니 트레이닝과 레이스의 작전지휘를 완벽히 해내기란 얼마나 어려운지 뼈저리게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걸 한명이라면 모를까 팀원 전부를 그렇게 만든다는 건 꼴랑 낙하산이나 담당 피지컬 따위로는 택도 없었다.


"어쩌면 소문의 진상을 밝히는 걸 피하는 이유가 담당들에게 피해가 갈까봐...?"


팀원들의 사건 사고와 트레이너의 이적, 분명 그 일에 무슨 사건이 있던 것이 분명하지만 자세한 내막까지는 파악하지 못해 추측만 할 뿐이어도 이제 인정할건 인정해야한다. 그의 본모습은 그 무엇보다 담당들을 아끼고 있다는 걸. 그리고 또, 무엇보다 그 사람의 피지컬.


[ '마, 말도 안돼!!' ]


강당에서 설비를 점검하던 날, 그리고 오늘 낮에 보았던 그의 신체능력에 메이드장의 입이 떡 벌어졌었다. 벽을 차고 올라 손이 다치든 말든 추락하는 학생을 구해내고 우마무스메 학생 옆에서 나란히 달리는 그의 모습은 두 눈으로 직접 보고도 믿기 힘들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문득 전에 우마튜브에서 봤던 다리에 이상한걸 달고 두 명의 우마무스메와 같은 속도로 달리며 추월하는 남자의 영상이 떠올랐다. 지금은 영상이 내려가 유명세를 타지는 않았지만 지금 떠올려보면 영상 속 남자의 얼굴에는 검은 색 가면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만한 피지컬이라면 담당들의 달리기를 바로 옆에서 조정할 수 있겠죠... 과연, 그 대담한 실력과 배짱의 출처는 피지컬에서 나온 건가요."


VR세계속에서 시험해본 그는 몇 번이고 몸을 던져서 담당들을 구해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반복되는 시험속에서 전혀 굴하지 않고 믿지 못할 신체능력과 정신력에 처음에는 그 신체능력이 버그라고 생각했지만 오늘 낯에 봤던 다이아 아가씨를 물 한방울도 묻히지 않고 지켜낸 것으로 확신했다.


[ 진심으로 좋아하거든요. ]


아까 공연장에서 말했던 그의 대화를 생각해보면 이 정도의 신뢰도를 보이는 관계는 사토노 가문내에서도 찾기 힘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메이드장의 머리속에서 모든 정보가 한 가지 결론으로 모아졌다.


'이 남자는...반드시 사토노가 확보해야만 해!!'


실력은 초 일류, 상냥한 인성도 합격, 담당과의 신뢰성도 합격, 신체 밸런스도 발군, 헌신적인 성격과 그에 걸맞은 경이로운 신체능력과 학생회장 루돌프와 함께 시설을 점검하던 모습, 유독 이사장실을 자주 방문하는 걸 생각해보면 나름의 연줄도 갖추고 있을 것이 분명하니 가면을 써서 맨 얼굴을 모르지만 그 점만 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최고의 엘리트 중에 엘리트였다.


'어째서 이런 인재를 지금껏 알지 못했지?'


트레이너의 나이를 모르지만 메이드장이 보기에 겉보기에는 20대 중반이나 후반 정도로 보여 살짝 늦은 감은 있어도 이전에 가문 내 고위 임원들이 제멋대로 정한 다이아의 배우자감으로 늙어빠진 뼈다귀 후보들에 비하면 차라리 훨-씬 나았다. 그리고 약간의 뒷조사로 알아낸 정보로 그는 지금 미혼이었다. 이미 이뤄낸 팀 담당들의 성적은 말할 것도 없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메이드장의 계산기 속, 트레이너의 가치는 기하급수적으로 치솟았다. 문제는...


'이번 팬 감사제로 그 사람의 가치를 모두가 알게 됐어.'


축제에서 비너스 트레이너의 진면목을 트레센을 찾아온 사람 모두가 알게 됐다. 그의 실력, 담당을 대하는 자세, 그리고 인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피지컬까지. 즉 이제 슬슬 그의 가치를 알아보기 시작한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할 것이다. 그 와중에 문득 메이드장의 머리속에 팀 비너스의 팀원 중 메지로가의 영애가 있다는 것이 스쳐지나갔다.


"...잠깐만, 생각해보니 그 트레이너님 팀에는 메지로가의 영애도 있었는데!! 그렇다는건 메지로가도 그 남자를 알거 아니야?!"


메지로가의 맥퀸 역시 트레이너와의 사이도 다이아 못지않게 가까워 보였다. 그렇지 않아도 메지로가와의 사이가 마냥 좋다고 말하기 힘든 상황에 이런 인재를 다른 가문에 빼았겼다간 사토노에게 있어 크나큰 손실이 될게 분명했다. 그마나 이 와중에도 이런 최고급 인자를 미리 찾아내 점찍어둔 다이아가 대견했다.


'과연 아가씨. 이런 인재를 벌써부터 찾아내셔서 계약을 하다니, 남다른 안목이세요!'


왜 그토록 다이아가 그 남자를 따르는지 이해한 메이드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머리를 굴렸다. 그의 가치를 깨달은 다른 사람들의 경쟁이 시작되기 전에 서둘러 그를 사토노로 끌어들이기 위해 선점해야 했으니까. 그렇게 그녀는 인사의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자신의 위치상 당장 그를 가문에 추천, 아니 영입을 위한 계획을 짜며 하나하나 엄밀히 검토를 시작했다.


'다이아 아가씨가 그분을 따르기는 하지만, 아쉬운건 지금 다이아 아가씨는 팀에 있다는거죠.'


가장 베스트는 다이아와 트레이너가 서로 연인이 되어 사토노로 들어오는 것. 그러나 그는 다이아만 챙기지 않았다. 공연 때 말한 것도 그렇고 그가 담당하는 다른 팀원들 모두 다이아와 똑같이 챙기는 걸 봤기에 메이드장의 고민이 점점 깊어져만 갔다. VR 시뮬레이터로 확인한 그의 심성으로 봤을 때 아무리 돈을 준다고 해도 의미가 없을 테고, 다른 담당을 포기할 사람도 아니었다.


'만약 그 사람이 다이아 아가씨를 선택하지 않는다면...'


만일의 경우 트레이너가 다이아와 이어지지 않을 경우 혹시 모를 메지로가로 빼앗기는 크나큰 손해만큼은 막아야만 했다. 그러나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트레이너가 다이아를 포기하고 다른 담당을 선택했을 때 뚝심있는 그를 어떻게 해야 사토노로 끌어들일 수 있을지 좋은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어찌해야할까 고민하던 그때, 메이드장은 고개를 숙여 자신의 몸을 바라보았다.


"...승산이 없는 몸은 아니니까 한번...?"


무언가 생각이 하나 떠올랐는지 메이드장은 진지한 얼굴로 트레이너를 어떻게든 사토로 끌어들이기 위한 다른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어째서인지 이제 그에게 남은 악감정은 없음에도 계획을 세우는 그녀의 뒤에서 불길한 오오라가 흘러나왔다.



"그래서...이렇게 다짜고짜 납치해 왔다구요?!"


다음 날, 해가 내려간지 한참 지난 저녁. 트레센의 구석진 건물의 작은 방안에서 비너스 트레이너의 어이없는 외침이 울려 퍼졌다.


"에이~ 납치라뇨~ 일종의 설득을 위한 만남을 주선하기 위해서! 라고요~"


"팔다리 이렇게 다 묶어놓고?!"


트레이너의 말대로 철제 의자위에 앉혀진 그의 양 손은 뒤로, 양 다리는 의자 다리에 하나씩 테이프로 칭칭 감겨있었다.


"그건 도망방지~♪"


항의하는 트레이너에 메이드장은 상큼한 미소와 함께 손가락을 뺨에 올리고 찡긋 윙크를 보냈다. 그 모습에 트레이너는 억울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우리 화해한거 아니었습니까?"


"맞아요. 화해했어요. 저도 지금 트레이너님에게 악감정은 없는데요?"


"그럼 이건 무슨짓인데요!"


당장 오늘 낮, 메이드장이 저번에 미안했다며 고급스러운 박스에 포장된 초콜릿 과자를 들고 부실에 왔다. 마침 부실에 담당들도 수업을 자리를 비우기도 했고 화해하는 기념으로 같이 먹자는 메이드장의 말에 트레이너는 아무런 의심 없이 찬장에서 차를 꺼내와, 둘은 초콜릿과 차를 마시며 잠깐의 티타임을 즐겼다.


[ 이거 맛있네요. 맛의 밸런스가 좋은데요. ]


[ 그쵸? 이래보여도 고급제라고요~ 초고급 향신료를 듬뿍 쓴 장인제거든요. ]


한입 먹어본 초콜릿은 평범한 초콜릿이 아닌 여러가지 각종 향신료가 조화롭게 느껴지는, 한입만 먹어봐도 고급제라는 걸 알 수 있는 초콜릿이었다. 트레이너가 초콜릿이 맘에 들었다는 모습에 메이드장은 싱긋 웃으면서 이번엔 그가 내려준 차를 칭찬했다.


[ 근데 메이드장님은 안 드시나요? ]


[ 저도 먹을 거예요. 근데 차가 너무 훌륭해서 차의 향기를 먼저 즐겨보고 싶네요. 후훗~ ]


늘 주변에 도사리는 위협을 경계하던 트레이너였지만 전날 담당들의 공연에서 메이드장과 화해한 그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그녀가 건네는 초콜릿을 맛있게 먹었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예상하지 못했다.


[ ...? 으음... ]


[ 괜찮으세요? 조금 피곤해보이네요. ]


[ 그냥 살짝..졸...Zzzz.. ]


이전에, 다이아가 실패한 걸 교훈 삼았는지 메이드장이 고급제라며 가져온 초콜릿 속에 온갖 자극적인 향신료가 조화롭게 듬뿍 들어가 있어 안에 강력한 수면제가 들어가 있으리라곤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의아함을 눈치 채는 순간에는 이미 잔뜩 골아떨어진 후였고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늦었었다.


“전에 다이아 아가씨가 트레이너님에게 수면제를 먹였는데 눈치 채셨다면서요? 그거, 제가 구한 거였거든요~”


“...설마 당신이 다이아에게 가르친 겁니까?”


애한테 뭘 가르치냐는 말투에 메이드장은 어깨를 움츠리면서 가볍게 반론했다.


“가르친건 아닌데요? 그냥 도움만 드렸을 뿐이죠. 흠흠, 아무튼 지금 이건 일종의 회유랍니다. 트레이너님."


"회유...?"


그런 것 치고는 이렇게 꽁꽁 묶어놓고 하는 회유가 도대체 어디있는가. 어제 기분 좋게 화해 했으니 설마 자신을 납치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한 트레이너는 그녀가 뭘 요구하는지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그의 앞에 앉은 메이드장은 말을 꺼내기 전에 싱긋 미소짓고 입을 열었다.


"바로 본론을 꺼내죠. 우리 사토노로 들어오시는 게 어떠세요?"


"사토노..?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음, 여기까지 했는데 아직 눈치 못 챈 건가요. 좋아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죠. 다이아 아가씨를 선택하세요."


"선택? 다이아를요? 아...!"


처음은 메이드장의 말을 이해 못했지만 뒤늦게 깨달은 트레이너의 가면이 갑자기 [ ! ] 이모티콘으로 바뀌었지만 곧바로 시선을 피하면서 무겁게 중얼거렸다.


"그건...안됩니다."


"어째서요? 아가씨가 다른 애들에 비해 꿀릴 분은 전혀 아닐 텐데요?"


"물론 저에겐 다이아도 있죠. 하지만 다이아만 있는 게 아닙니다. 전...다이아도 소중하지만 적어도 이런 식으로 다른 애들을 실망시킬 수는 없어요."


"흐음~"


거절의 대사였지만 메이드장의 표정이 만족스러운 입꼬리가 더욱 올라갔다. 이 정도의 충성심을 오로지 다이아, 혹은 사토노로 돌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생각한 메이드장은 마지막으로 한번 더 트레이너를 떠봤다.


"그럼 팀 비너스를 유지하는 조건은 그대로 하고 사토노에 소속되는 건 어때요? 팀을 유지하면서 가문에 소속되는 트레이너는 많잖아요?"


"그것도 거절하겠습니다. 딱히 가문에 소속되고 싶은 마음도 없을 뿐더러, 이리저리 휘둘리는 것도 싫고, 팀 내에 다른 가문의 아이가 있에 굳이 분란의 씨앗을 만들고 싶지는 않습니다."


"팀의 담당 아이들의 졸업 기간까지 유예를 둬도요?"


"메이드장님, 팀 비너스 말고도 저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어요. 때문에 지금 저는 어디 소속될 여유도, 마음도 없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전 이미 트레센 소속입니다."


그러나 트레이너는 단호했다. 마지막으로 꺼낸 트레센이라는 소속에 메이드장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트레센 소속...그렇죠. 당신은 중앙 트레센의 트레이너니까. 정 그러면 가문에 트레이닝을 자문을 해주는 트레이너는 어때요? 저 같은 정규직이 싫으시다면 일종의 알바 같은 거라도 좋아요."


"어쩌다 한번이라면 몰라도 역시 정기적으로 가야하는 거라면 거절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하고 있는 일도 많아 시간을 내기도 힘들어요."


"흐응...그렇단 말이죠..."


요리저리 회피하면서 어떻게든 가문에 끌어들이려는 제안을 거절하자 이번엔, 메이드장이 도발적인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가 트레이너의 마음속 불안감을 몇 배로 더욱 치솟게 만들었다.


"음~ 아무튼 그러니까 뭘 하든 결국 제 제안은 거절이겠죠?"


"그렇...습니다만. 뭘, 하시려는 겁니까..?"


회유작전은 실패. 그렇다면 다음 작전을 실행하기 위해 메이드장은 입꼬리를 다듬어 도발적인 미소를 우아한 미소로 싱긋 바꾼다음, 다음 작전으로 넘어가 옆에 놓여져 있는 배낭에 손을 넣었다.


"어쩔 수 없네요. 그 전에 우선."


그 불길한 미소와 함께 메이드장의 팔뚝만한 데킬라 술병이 그녀의 손에 딸려 나왔다. 아직 뚜껑을 따지 않은 새 술병이라 안에는 진한 황금빛 액체가 메이드장의 손길을 따라 출렁이고 있었다.


"뭐, 뭘 하려고요?"


다짜고짜 술병을 눈앞에서 꺼내들자 심상치 않음을 느낀 트레이너가 결박된 몸을 꼼지락 거리면서 물었지만 메이드장은 대답 대신 웃는 그대로 술병의 뚜껑을 열었다.


"아무리 저라도 이건 일종의 도핑이..아니, 다짐이 좀 필요해서요."


퐁하는 소리와 함께 뚜껑을 딴 메이드장은 그대로 병 입구를 입에 가져대 대고 병나발을 불기 시작했다.


"무슨..."


"꿀꺽, 꿀꺽, 꿀꺽-"


도수 높은 황금빛 술이 순식간에 메이드장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광경을 눈앞에서 직관 중인 트레이너의 경악에 찬 목소리가 가면 뒤에서 흘러나와도 메이드장은 계속해서 데킬라를 들이켰다.


"푸하아-!"


마침내 병 하나가 깔끔하게 비워낸 메이드장이 시원하게 숨을 내뿜자 트레이너는 고개를 뒤로 빼면서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저, 그...괜찮습니까?"


"괜찮냐고요? 그-으-럼요! 후후. 후아아~ 한결 낫네요. 어라?"


하지만 오히려 메이드장은 방금 전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술병을 뒤로 툭 굴리더니 갑자기 균형을 잃고는 트레이너의 위로 쓰러지더니 대뜸 그대로 와락 껴안았다.


"?!"


"아, 미안해요~ 조금 비틀거렸어요옹. 음~ 어차피 상관없으려나."


순간 놀란 트레이너가 움찔거리자 메이드장은 트레이너의 허벅지 위에 앉은 상태로 몸을 추스리며 헤실헤실 웃었다.


"상관있어요! 이러시면 안 됩니다!"


"흥~ 비너스 트레이너님. 이번엔 아까와는 다른 주제로 제안을 드릴게요."


아까의 우아한 미소가 아닌 이번엔 매혹적으로 유혹하는 미소와 함께 메이드장은 트레이너의 귓가에 입을 가져대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비너스 트레이너님, 이도저도 싫다면 저와...연을 맺는 건 어떤가요?"


"...옣?"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은 마음과 아니 지금 무슨 말을 하는거야라는 감정이 듬뿍 담긴 트레이너의 쉰 목소리가 가면 뒤에서 흘러나왔다. 하지만 곧이어 강력한 부정과 함께 자신의 위에 올라탄 메이드장을 떨어트리기 위해 몸을 비틀며 외쳤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지금 취하셨습니다. 내려오세요!"


"헤헤...안 취했거든요. 저는 지금 제정신인데요? 겨우 데킬라 한 병가지이고오...딸꾹*"


그제서야 트레이너는 메이드장에게서 풍기는 진한 알코올 향과 그녀의 뒤쪽, 굴러간 술병이 멈춘 방 한구석에 쌓여있는 수많은 술병들을 알아챘다. 즉 그러니까 그녀는 지금 술 한 병이 아니라 저걸 전부...


"아, 진짜! 다쳐도 모릅니다!"


만약 저걸 다 들이킨 거라면 지금 그녀의 상태는 물론이요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아무래도 이건 진짜 위험하다는 걸 느낀 트레이너는 이 상황을 빠져나가기 위해 팔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그러나 힘을 가득 준 두 팔과 다리는 움찔거리거나 철제 의자가 그저 덜컹거릴 뿐, 칭칭 감겨있는 테이프는 끊어지지 않고 멀쩡했다.


"어..?"


생각치 못 한 질긴 테이프의 내구도에 트레이너가 아연실색하자 메이드장이 귀엽다는 듯이 씩 웃었다.


"헤헤..놀랐죠? 특수 제작 고탄성 덕트테이프, 무려 군용이에요. 트레이너님의 피지컬은 이미 잘 알고 있죠. 그래서~ 성인 우마무스메도 쉽게 끊지 못하는 물건으로 준비했답니다~♪(히꾹*)"


"잠깐만, 잠깐만 좀 기다려 봐요. 갑자기 연을 맺자니..저, 지금 엄청 혼란스럽거든요?"


물리적으로 구속됐다는 걸 깨달은 트레이너는 눈앞에서 폭탄과도 같은 발언에 보기 드물게 당황하면서 꽁꽁 묶인 몸으로 펄쩍 뛰었다.


"알아요~ 알죠~ 그냥 받아들이시면 되요~"


"받아들이긴 뭘 받아.."


"얍!"


하지만 다급한 트레이너의 모습에는 안중에도 없는 메이드장은 막무가내로 트레이너의 셔츠를 양 옆으로 휙 잡아 뜯었다. 순식간에 사방으로 단추가 튀어나가고 전날 낮에 멀리서 보았던 늠름한 근육이 메이드장의 눈앞에 드러났다.


"하아아~ 단단해. 보는 것만으로도 어찌나 우수한 인자인지 알 수 있겠어요."


트레이너의 몸 상태를 점검하며 복근을 꾹꾹 눌러보는 메이드장이 입맛을 다시자 그제서야 트레이너는 그녀가 뭘 하려는지 깨달았다.


"우, 우리 이러지 맙시다. 충분히 대화로 해결할 수 있잖아요?"


"맞아요. 대화로 해결할 수 있죠. 몸의 대화~"


"그 대화 말고!!"


방금 전 연을 맺자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뒤늦게서야 파악한 트레이너가 다급하게 외쳤지만 오히려 메이드장의 눈빛을 더욱 매섭게 만들었다.


"그러지 말고 즐기자구요. (딸꾹*) 어라? 이거...안 열리네. 이거 어떻게 벗겨요? 트레이너님 얼굴 함 보고 싶은뎅-"


"알려줄 것 같습니까? 제가 허가한 사람 외에는 아무도 못 벗겨요. 이럴 때를 대비해 특수제작한 물건입니다. 그보다 메이드장님, 이러지 마시고.."


메이드장이 분위기를 타기 시작하면서 가면을 벗기기 위해 그의 가면을 이리저리 만지기 시작하자 어떻게든 그녀를 만류하기 위해 말을 걸어봤지만 택도 없었다. 금방 포기하고 다른 곳을 바라보기 시작했으니까.


"그래요? 아무렴 어때요. 그럼 이제 가장 중요한 것도 점검해볼까요?"


"뭐요?! 아, 안돼!"


메이드장의 시선이 점점 고간 아래로 향하자 트레이너가 방금 전보다 더욱 격하게 꿈틀거렸다. 별 소용은 없었지만.


"여기서부터는 내리기 힘드니까 가위 좀 쓸게요~ 얍!"


"지금 술 마신 상태로 사람에게 가위를 들이대는, 흐이익!"


술을 그렇게 들이키고도 메이드장은 순식간에 트레이너의 벨트를 풀어버리고 어디서 들고 온건지 쪽가위를 화려하게 휘두르면서 순식간에 그의 팬티를 입고 있는 채로 잘라냈다. 맨살에 금속이 닿는 오싹한 느낌의 트레이너의 가면에서 질겁한 비명이 튀어나왔지만, 메이드장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이제는 천조각이 되어버린 속옷을 저 멀리 버리고는 그대로 훤히 드러난 인자봉을 한손으로 재보며 눈을 반짝였다.


"과연... 피지컬 만큼이나 이것도 무시무시한 건가요? 헤헤..."


"제발 좀, 진짜 안 된다고요!!"


"왜요?"


계속해서 트레이너가 거부하면서 외치자 그의 허벅지 위에 올라탄 메이드장의 입가에서 미소가 싹 사라졌다. 갑자기 바뀐 그녀의 분위기에 트레이너는 메이드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예?"


"아까부터 계속 거부하시는데 솔직히 전혀 이해가 가지를 않네요. 왜 싫다는 건가요?"


이제야 좀 대화가 가능한 건가하며 트레이너는 숨을 고르면서 메이드장을 설득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 그야 다짜고짜 이런 식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런 식이 왜요? 안될 것 없지 않나요? 저, 당신에 대해 미리 조사를 좀 해왔거든요. 그리고 이래보여도 저, 성인이거든요?"


설마 어려보이는 자신의 모습 때문이냐며 눈을 흘기는 모습에 트레이너는 고개를 빠르게 좌우로 저었다.


"그것 때문이 아니잖아요. 지, 지금은 술김에 이런 겁니다. 이런걸로 메이드장님이 굳이 이런 짓을 할 필요 없어요!"


"...글쎄요?"


"예?"


트레이너의 말에 메이드장은 눈을 살짝 감고 손가락을 입가에 대며, 생각하는 재스쳐를 보였다. 그리고 지금 자신이 이런 짓을 하는 이유를 그에게 꺼내기 시작했다.


"어차피 저희는 성인이잖아요? 그리고, 전 하나도 아깝지 않아요. 담당에게 대하는 당신을 보면 그...마음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당신에게 안기는 것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아서...게다가 미혼이시잖아요."


"미혼...이다면 미혼입니다만. 그, 그래도 이러면 다이아가 슬퍼할 거라고요!!"


아직 만나는 사람이 없다는 말에 트레이너가 고개를 저으면서 반박하자 메이드장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잠시 뜸을 들이더니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리면서 물었다.


"왜 아가씨가 저와 트레이너님과 맺어지는데 슬퍼해요? 오히려 트레이너님이 사토노로 들어오게 되니 좋아하시지 않을까요?"


"그야 저는 다이아와..."


그 말에 자연스럽게 다이아 말고도 팀원 담당들에 추가로 미노루와의 연인관계를 말하려던 트레이너는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당장 다이아뿐만 아니라 그녀들과 모두 연애중이라는 것과, 다이아도 포함해서 모두 같은 침대에서 6P로 밤을 보냈다는 건, 특히 다이아의 집안사람에게는 죽어도 말할 수 없었다.


'크, 큰일 날 뻔했다. 이 아가씨에게 그대로 말했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감당하려고...'


서로 다른 성향을 가진 두 가문의 영애들과 하렘을 차려 연애질을 하고 있다는 걸 들켰다간 뒷감당을 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메지로가 맥퀸이나 사토노가 다이아, 두 가문에게는 비밀리에 서로 연애중이었고, 둘 다 스릴 있다면서 오히려 더 좋아해줬다. 하지만 이런 트레이너의 사정을 모르는 메이드장은 갑자기 말을 멈춘 그의 모습을 보고 드디어 우위를 점했다고 생각해, 다시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쵸? 생각해보면 다이아 아가씨도 좋아하실 거예요. 걱정마세요! 요즘엔 중혼이라는 것도 유행이잖아요? 언젠가 다이아 아가씨께서 졸업하시고서도 두 분의 관계가 유지되길 원하시면 전 얼마든지 첫째 부인 자리정도는 내어줄 수 있어요!"


"그,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트레이너와 다이아 아가씨의 관계를 그저 두터운 신뢰감을 형성한 트레이너와 담당으로 착각한 메이드장은 술김에 판단이 제대로 안되는지, 헤실헤실 웃으면서 본심을 털어놨다.


"헤헤...사토노로 들어오기만 하면 분란 없이 당신을 고스란히 다이아 아가씨에게 가져다 바칠 수 있고...그 (딸꾹*) 개같은 정치싸움도 집어치우고 아가씨에게 원하는 사람을 붙여 드릴수도 있고...으히히.."


헤실거리는 미소로 메이드장이 천천히 자신의 다리 사이로 내려오자 트레이너는 자신의 목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걸 느꼈다. 지금 여기까지 온 이 상황에서 다이아나 다른 애들을 핑계대서 빠져나가기에는 늦어버렸고, 미노루를 까발릴 수도 없는데다가, 그렇다고 가만히 있자니 이 여자가 벌이는 짓에 그대로 사토노로 끌려가는 미래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몰렸다 생각한 트레이너는 3배 빨라진 목소리로 어떻게든 뒤늦게나마 다시 그녀를 설득시켜보기 위해 입을 열었다.


"말이되는소리를, 아무리그래도이건아니잖아요! 아직늦지않았어요! 우선멈추고말이라도..!"


"헤헤...그럼 시작할 테니까 잠깐 눈만 감고 계세요?"


"되겠습니까!"


트레이너의 의사에는 안중에도 없이 그의 다리 사이에 앉아 인자봉을 붙잡은 메이드장이 씩 웃으면서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왜..왜..."


5분쯤 지났을까. 어두운 조명이 비치는 방안에서 짜증이 섞인 메이드장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어째서 안 서는 거야아얏!!"


그녀의 말대로 메이드장이 움켜쥐고 있는 트레이너의 인자봉은 서있기는커녕 축 늘어진 채 흐물거렸다. 이런 상태면 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으니 어떻게든 트레이너의 인자봉을 세우기 위해 메이드장이 고군분투했지만 조금 살짝 커지기만 인자봉은 축 쳐진 그대로 일어날 생각을 안했다.


"..으으...으우...!"


심지어 마음을 다잡고 메이드복의 앞가섬을 내려 가슴까지 까고 어색한 실력으로 문질러봤지만 인자봉은 계속해서 말랑말랑한 상태였다. 정 안되겠다 싶어 큰맘먹고 입에 넣어봤지만, 너무 깊숙이 넣었던 걸까, 버티지 못하고 금방 캘록거리면서 뱉어내고 말았다.


"으으으...하웁! 으웁..우욱! 콜록콜록!"


"어...혹시 메이드장님, 경험 없으십니까?"


목젖이 찔렸는지 콜록거리고 있자, 트레이너의 가면에 떠오른 안쓰럽게 바라보는 이모티콘을 본 메이드장의 얼굴이 더욱 빨개졌다.


"책으로만...그, 그그, 그게 무슨 상관인데요?! 그쪽도 경험 없을 거 아니에요!! 그런데 왜, 왜!! 왜 안 서?! 당신 설마 고자였어?!"


"고자라니, 실례잖아요!"


설마 트레이너가 동정일 것이라 생각하고 여유를 부렸던 걸까, 여기까지 했는데도 반응이 없자 점점 수치심이 올라오는 메이드장이 울먹거리면서 외치자 트레이너는 억울하다는 듯이 맞받아쳤다. 그리고 이어서 작은 한숨과 함께 그 이유를 말해줬다.


"그야...당신은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니까요."


"뭐라고요?!"


그 말에 메이드장의 표정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를 보며 트레이너는 타이르듯이 부드러운 목소리를 꺼냈다.


"이제 그만 포기하세요. 굳이 사토노에 들어가지 않아도 전 다이아를 소중히...메이드장님?"


"그런 말에 포기할 것 같나요?"


내심 포기하려니 싶어 그녀를 다독이는 말로 위로해주니, 다시 도발적인 표정을 지은 메이드장이 표정을 다잡고는 자신의 위로 올라오기 시작하자 아까보다 몇 배는 더 불안해진 트레이너의 목소리가 가면 뒤에서 흘러나왔다.


"어..뭐, 뭘 하시려는 거죠?"


긴장감에 더듬거리면서 물어봤지만 위에 올라탄 메이드장은 씩 웃는 얼굴 그대로 허리를 숙인 채 메이드 스커트 밑에 손을 넣고 무언가 부스럭거렸다.


"흥, 고작 서지 않는 걸로 제가 그만둘 것 같았나요? 메지로가에서 당신을 채가는 건, 절대로 보고만 있을 수는 없죠!"


"예? 메지로가가 왜 나와요?"


어리둥절한 트레이너의 질문에 그녀는 대답 대신 뭔가를 스커트 밑에서 꺼내더니 뒤로 휙 던졌다. 저 멀리 포물선을 그리며 바닥에 떨어진 그것이 뭉쳐진 새하얀 천조각이라는 것과, 방금 전까지 메이드장이 입고 있던 속옷이라는 것을 알아채자마자 포기하지 않았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알아채고 그녀를 휙 올려다보았다.


"어어, 자, 잠깐만요!! 그러지 말..!"


다급하게 그녀를 말리려던 순간, 다리 사이 인자봉에 따듯하면서 말캉한 점막이 닿았다는 감각이 막무가내로 뇌리를 스치자 순간 트레이너의 숨이 헉 들어가면서 있는 힘껏 주먹을 꽉 쥐며 몸에 힘을 줬다. 동시에 조금 방심을 해버린 걸까, 인자봉에 혈류가 조금 돌기 시작하면서 아주 살짝 심이 살아나기 시작한 것을 알아챈 메이드장의 표정이 사냥감을 잡은 표정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후후후...역시 당신도 남자인 이상, 어쩔 수 없어요. 그러니 얌전히 있으라고요."


"이, 이러지 말고 내려와요! 아무래도 역시 그것까지는 안 되지 않나 싶은 데요!"


서투른 움직임으로 허리를 움직이며 가랑이로 인자봉을 비비기 시작하자 이제 진짜 안 된다며 트레이너가 외쳤지만 그녀는 여전히 막무가내였다.


"안될 것 같나요? 이쯤하고...뭐, 온전히 서지 않아도..이..정도라면..어떻게든 쑤셔 넣으면...들어가겠지..요!"


순식간에 전희를 건너뛰더니 이제는 스커트를 들추고 트레이너의 인자봉을 잡은 손을 이리저리 돌리는 메이드장에 트레이너가 홧김에 열을 올리면서 외쳤다.


"안 된다고!! 아니, 무슨 가문 특성이야?! 왜 당신네 사람들은 한번 시작하면 좀 쉽게 물러서지를 않는 거냐고!!"


다이아가 한번 달려들기 시작하면 막기 힘들다는 것쯤은 평소에도 자주 느꼈지만 설마 메이드장에게서도 똑같은 기운이 흘러나오자 트레이너는 온힘을 다해 몸부림치며 고개를 휘저었지만 몇 겹이나 칭칭 감겨있는 우마무스메용 덕트테이프에 조금 움찔거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큭...심이 있어도 물렁하니 역시 잘 안 들어가네요...! 후우, 괜찮아요. 이제 어떤지 감 잡았으니까! 어차피 홀몸이시잖아요..! 저도 경험 없으니까아..!"


트레이너의 외침에도 메이드장은 이제 메이드복 스커트 때문에 아랫도리가 잘 보이지 않자 이번엔 허리를 쭉 편 채로 눈을 꾹 감은 채 손의 감촉만으로 이리저리 인자봉을 맞추면서 중얼거렸다. 마침내 입구를 찾아 허리에 힘을 주면서 내리기 시작하는 그녀의 표정이 아픔으로 꾸욱 구겨지자 트레이너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으면서 어떻게든 그녀를 떨어트리기 위해 마지막까지 설득을 시도했다.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당신 몸도 생각하라고!! 고작 이런 걸로 낭비하지 말란 말이야!!"


"당신이라면..하나도 안..아깝거든요? 조금만 기다려..봐욧.. 살짝 아프긴 한데, 일단 넣기만 하면...금방 세우게 될테니...! 으읏..! 이제 조금만 더..들어..."


"그, 그만해!"


여기까지 와버렸으니 이제 더 이상 막을 방도가 없어 트레이너는 마지막으로 온몸에 힘을 주면서 발악이 담긴 절규를 터트렸다.


"하지마!!! 미친년아!!"


콰아앙!!


트레이너의 절규가 방에 울려퍼지는 순간, 동시에 방안의 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폭발하듯이 박살났다.


"히끕?!"


"?!"


깜짝놀란 메이드장과 그녀의 밑에 깔린 트레이너가 그대로 얼어붙어 있는 사이, 통로의 먼지가 가라앉자 정체를 드러낸 건 다름아닌 다이아의 경호원, 요르카였다.


"...찾았습니다. 아가씨."


메이드장을 향해 경멸하는 표정을 지어보인 요르카는 뒤돌아 통로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누군가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자리를 비켰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온 그녀의 인사를 받은 그 누군가는 다름아닌 다이아였다.


"메이드장. 지금 뭐하는 거야?"


방으로 들어와 눈앞의 광경을 바라보는 다이아의 얼굴은 평소 보이던 헤실거리는 미소도, 화를 내는 표정도, 경고를 주는 웃음도 아니는 그 어떠한 감정 하나 없는 무표정이었다.


"아, 아가씨. 이건 그런게 아니라..."


감정하나 없이 서리가 끼는 것 같은 싸늘한 목소리에 후다닥 트레이너에게서 내려온 메이드장이 변명을 시작으로 입을 열자 다이아는 표정하나 변하는 것 없이 이제 선을 제대로 넘은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다시 차갑게 말을 꺼냈다.


"그런게 아니면? 왜 메이드장이 트레이너님을 덮치고 있어?"


"사, 살았다. 다이아.."


"트레이너님은 조용히 계셔주세요. 죄송해요. 가문의 문제를 좀 먼저 해결하고 풀어드릴게요."


뒤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트레이너가 고개를 빼꼼 내밀면서 도움을 구했지만 다이아는 팔짱을 낀 그대로 메이드장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그의 말을 잘랐다.


"다이아, 그것보다 먼저 이것 좀.."


"메이드장. 내가 분명 저번에 경고하지 않았어? 이 이상 트레이너님에게 해를 가하면 가만있지 않을 거라고?"


어딘가 급해보이는 트레이너의 말에도 다이아는 메이드장을 향해 날카로운 시선을 보냈다. 어찌나 화가 단단히 난건지 늘 언니언니하던 말투는 싹 사라지고 딱딱한 메이드장이라는 단어가 그 자지를 차지하고 있다는 걸 깨달은 메이드장은 황급히 손을 내저으면서 변명을 시작했다.


"이, 이건 이분에게 해를 끼친 게 아니에요!"


"해를 끼친 게 아니면?"


그녀의 변명에 다이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러고는 한쪽 눈썹을 들어올려 한번 들어나보자라는 제스쳐를 취하자 메이드장은 있는 힘껏 웅변을 시작했다.


"이, 이건 아가씨를 위해서기도 해요!"


"흐응?"


"제가 트레이너님을 사토노로 데려오게 되면 아가씨도 트레이너님 곁에 계속 있을 수 있잖아요."


그녀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트레이너가 사노토로 오기만 한다면 지금까지의 수고로운 독점 계획이나 경쟁 없이도 손쉽게 그를 차지할 수 있을 테니까. 가문내의 다른 영애들이 탐을 낸다 하더라고 처음부터 그와 함께한 자신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사토노의 입장.


"아가씨네 팀에서 귀찮은 싸움도 안해도 되고, 귀찮은 가문 내 파벌싸움에도..."


"하아아...메이드자아앙..!"


그녀의 말이 계속 될수록 화가 올라오는 건지 눈을 꾹 감은 다이아가 더는 버티기 힘들다는 듯이 소리를 확 질렀다.


"메이드장 언니가 자꾸 이런 식이니까 크라운이 버티지 못하고 언니를 다른 곳으로 보낸 거잖아!!"


"에엣?!"


설마 내쳐진 것이라 생각 못한 것일까, 메이드장의 표정이 당혹으로 물들었다. 이번엔 다이아의 짜증이 가득한 설교가 시작되었다.


"나를 생각해주는 건 좋아. 그런데 거기에 트레이너님이나 다른 선배님들의 의견은 있었어? 항상 이런 식으로 무대뽀로 밀어대니까 크라운도, 다들 메이드장 언니를 피곤해 했다구!"


"그, 그런.."


"방금 연락을 받고 왔어. 가문에서도 다른 애들에게 엄청 들이댔다며?! 모두 관심을 주는건 좋지만 최근에는 심해졌다면서 부담스러워했어!"


아무도 자신을 평가해준 적이 없었던 걸까, 다이아의 외침에 메이드장은 입을 헤 벌리고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불도저같이 밀어붙이는 실행력과 그를 뒷받침하는 권력과 실력이 지금의 그녀를 있게 만들었지만 그만큼 피해를 본 사람도 적잖아 있었다는 걸 드디어 깨달은 것 같았다.


"그리고 말야."


설교는 계속되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해야 뾰이를 하면 트레이너님이 사토노로 올 거라 생각한 거야?"


"그, 그야...하지만 이 방법 밖에는 없었어요! 아가씨도 잘 아실 거 아니에요. 이 분을 끌어들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요! 게다가 언제 주변사람들이 이분을 채갈지도 모르는데, 트레이너님을 빼앗기고만 있는 건 볼 수 없잖아요! 아가씨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


메이드장의 말에 잠시 다이아가 눈을 반쯤 뜨고 침묵하는 사이 뒤에서 트레이너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다이아..? 저기, 부탁인데 우선 이것부터 먼저 빨리 풀어주면.."


"트레이너님, 잠시만요. 거의 다 끝났어요. 후우...메이드장."


아까보다 훨씬 조급한 트레이너의 도움을 구하는 목소리를 손을 척 들어 막은 다이아의 표정이 이번엔 무표정에서 입술이 올라가기 시작하자 메이드장은 어째서인지 위화감을 느꼈다.


"아니, 제바알..!"


뒤에서 트레이너가 화장실이라도 급한 것 마냥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고개를 흔들면서 부탁했지만 다이아는 눈앞의 메이드장을 보며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있잖아. 메이드장 언니. 언니 뒤에 있는 이 분이 누구인지 알아?"


"그야...아가씨의 트레이너님이시잖아요. 정확히는 아가씨가 속한 팀 트레이너..."


"아니 그거 말고. 트레이너님이 나에게 있어 누군지 말이야."


같은 말을 반복하는 다이아의 질문에 메이드장의 눈썹이 대답대신 영문을 모르겠다며 크게 휘어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다이아는 피식 웃으면서 팔짱을 풀고 트레이너를 가리켰다.


"이 분은 내가 어렸을 적 납치 됐을 때 날 구해주신 분이란 말이야!"


"...예?! 아가씨의 트레이너님이 그때 그 사토노 방계 사람이었다고요?!"


그러자 이번에 다이아의 말에 대답을 꺼낸 건 메이드장이 아니라 방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요르카였다.


"이분이 그때 사라졌다던 그분?! 언제부터 알고 계셨어요?! 아니, 처음부터 알고 그렇게 계약에 집착하셨던 거예요?"


"신기한 인연이지? 나도 처음에는 몰랐고 최근에 알게 된 거야. 아무튼! 이미 트레이너님은 사토노 사람이란 말이야!"


"트, 트레이너님이 이미 사토노 사람?"


하지만 놀란 요르카와 달리 트레이너의 출신(?)을 들은 메이드장의 얼굴은 새파래지다 못해 핼쑥해지기 시작했다. 트레이너가 이미 사토노 사람이라면은 굳이 그를 가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헛수고한 자신은 뭐가 된단 말인가. 더구나 이미 그가 가문 사람이라면 팀 내에서도 다이아와 더 가까운 사이 일 것이 뻔했다.


"그렇다면 제가 한 짓은..."


트레이너가 사토노 뿐만 아니라 메지로가 방계문장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메이드장이 그제서야 자신이 무슨 짓을 한 건지 깨달아 얼굴이 새파래지는걸 보며 다이아는 톡 쏘아붙이듯이 말했다.


"그냥 내 트레이너님이 끌리니까 우수한 인자니 뭐니 핑계대면서 덮치려 한 거겠지."


"윽.."


"무려 '내' 트레이너님을 말야."


"우.."


폐부를 찌르는 다이아의 독설이 한 마디 한 마디 덮쳐올 때마다 메이드장의 어깨가 점점 안쪽으로 움츠러들었다. 그런 메이드장을 보면서 다이아는 의기양양한 태도로 허리에 손을 착 올리고는 자신의 트레이너를 가리켰다.


"아무튼 이제 알겠어? 트레이너님은 내가 선택한 사람이라고! 그러니까 지금 당장 트레이너님께 사과..드.."


그리고 트레이너를 향해 가리키며 말하던 다이아의 말이 점차 느려지더니 끊겼다.


"? 왜요? 어..."


"엇.."


눈이 점점 휘둥그래지는 다이아를 먼저 바라보고 뒤이어 트레이너를 바라본 메이드장과 요르카도 숨을 헉 들이키며 놀랐다.


"...."


의자에 앉은 채로 묶여있는 트레이너의 다리 사이에 커다란 인자봉이 천장을 향해 고개를 들고 우뚝 솟아있었다.


"다들...그냥 나가주면...안될까...?"


숯불과 견줄 정도로 수치심에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는 가면 밑에서 차라리 죽는게 나을 것 같은 느낌의 기어가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으이이이....으으으..잉잉잉..."


그날 밤. 다시 숙소로 돌아온 메이드장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눈물을 흘렸다.


[ 지금 제정신인가!? 사토노의 메이드장으로서 어찌 이런 추태를 부렸단 말인가!!! ]


트레이너가 자리를 떠난 뒤, 요르카의 보고를 받고 뒤늦게 현장에 도착한 다이아의 집사는 극극극, 극 대노를 터트렸다. 사노토 VR우마레이터 홍보를 망칠 뻔한 것도 모자라 다이아의 은인이자 가문의 숙원을 이뤄준 같은 가문 출신의 트레이너를 겁탈하려 했으니, 이런 망신이 어디 있을 수 있을까.


[ 아가씨를 보필하면서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반성하게!! ]


[ 네... ]


그렇게 그녀가 받은 징계는 메이드장의 직위 해제는 물론이요, 1년간의 감봉과 한달 간 트레이너에게 접근 금지, 마지막으로 다이아와 집사가 직접 감시하기 위해 해제된 직위로 다이아의 직속 메이드로 위치가 한참 내려가게 되었다. 그나마 지금까지 사토노 가문의 베테랑 트레이너로서 헌신해온 것과 트레센의 트레이닝 자문 계약 때문에 신고나 해고를 당하지 않은 거지, 사실상 가문의 인사를 책임지던 자리에서 일반 메이드로 내려온 것이니 좌천이나 별다를 바 없었다.


"잉잉잉....으이이이잉..."


하지만 메이드장이 지금 이렇게 눈물을 터트린 이유는 직급을 강등당해서도 아니고, 계획에 실패해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엉엉 우는 그녀의 머리속에 방금 전, 수치심에 침몰한 트레이너를 수습하던 다이아가 날린 한마디가 계속해서 맴돌고 맴돌고 또 맴돌았다.


[ 그리고, 아쉬울지는 모르겠지만 난 이미 트레이너님과 뾰이한 사이거든? 트레이너님은 내가 먼저 선점했어. ]


[ 뭐라고요?! 뾰, 뾰이를 했다고요?! 그런 말은 없었잖아요?! ]


다이아의 폭탄발언에 지금껏 보지 못할 정도로 눈을 크게 뜨며 요르카가 항의했지만 그것보다 메이드장은 트레이너를 가문에 끌어들이기 위해 아무리 술김이라도 무슨 혼기를 놓친 노처녀 말딸들이나 할 법한 짓을 벌였다는 것과, 자신은 아직 해보지도 못한 걸 설마 그 동생과도 같던 귀여운 다이아가 자신보다 먼저 경험했다는 것에 크나큰 데미지를 입었다.


"왜...왜...으이이잉...."


나름 가문에서 여러번 헌팅도 받아보고, 여자로서 귀여움이나 몸매로서 나쁘지 않다고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자신이 아무리 주물러도, 가슴을 까 봐도, 그것도 모자라 위에 올라타 구멍을 대보고 나서야 겨우 심만 살아난 인자봉이 옷 한올 벗지도 않은 다이아를 보자마자 한계까지 치솟아 올랐다는 걸 깨닫고는 왜인지 모를 여성으로서의 짙은 패배감이 한가득 밀려와 이불속으로 기어들어가 엉엉 눈물을 흘렸다.


비록 트레이너가 사토노 방계문장 뿐만 아니라 메지로가의 방계문장도 가지고 있었다는 거나, 다이아 말고도 비너스 팀원 전체 + 추가 1명까지 트레이너와 뾰이했다는 건 몰랐기에 자세한 진상을 알리는 없었지만 그래도 자신의 직업로서의 자존심이 개박살 난 것과 더불어 여성으로서 패배감에 울음을 터트리는 메이드장...아니, 다이아의 메이드가 울음을 그치기까지는 한참 걸렸다.



그리고 같은 시각. 부드러운 무드등이 켜져있는 비너스 팀 부실.


"훌쩍...훌쩍..."


부실의 소파 위, 담요를 뒤집어쓴 트레이너가 몸을 웅크린 채로 훌쩍이고 있었다.


"에이- 괜찮아요, 트레이너님. 전 아무렇지도 않다니까요?"


"난 안 괜찮아.. 훌쩍.."


그리고 옆에서 다이아가 쓴 미소와 함께 트레이너를 위로하고 있었지만 웅크려있는 트레이너의 훌쩍거림은 멈추지 않았다.


"훌쩍...그러니까 말했는데.."


자신이 조절할 수 있을 때까지 뾰이 금지를 선언해버린 탓에 나날이 욕구가 쌓여가던 와중 하필 메이드장이 올라타면서 정말로 아슬아슬 했었다. 겉보기에는 평온함을 유지했지만 속으로는 이를 꽉 물면서 악착같이 버티던 와중 다이아의 등장으로 살았다고 안도했었다.


[ '사, 살았다! ...어? ]


다만 그러는 바람에 트레이너는 방심하고 말았다. 억눌러온 욕구가 다이아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날의 기억과 욕망을 다시 불러와 참아왔던 댐을 한방에 무너트렸고 걷잡을 수 없이 터져나간 욕망은 순식간에 부풀어 올라 결박된 팔다리에 속수무책으로 치솟은 욕망을 고스란히 노출시키게 되었다.


"훌쩍.."


본인의 입으로 금지해 놓고서 누구도 아니고 담당인 다이아를 보자마자 그녀와 뾰이하고 싶다는 걸 온몸으로 표현한 꼴을 보였을 뿐만 아니라 그 꼴을 다이아 말고 다른 두 여성의 앞에서 훤히 드러내 보였으니 트레이너로서, 그리고 남자로서의 자존심이 와장창 박살나버린 트레이너는 담요 속으로 기어들어가 한참동안 훌쩍였다. 그런 그에게 다이아는 부드럽게 토닥이면서 괜찮다며 위로해주고 있었다.


"괜찮아요. 자아~"


"내 말은..듣지도 않고...훌쩍."


"미안해요..설마 그런 건지는 몰랐어요..후훗."


그러나 정작 다이아의 기분은 지금 날아갈 것만 같았다. 비록 겉으로는 내심 트레이너와 정을 나누었으니 괜찮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다른 담당들에 비해 밀리는 건 아닐까, 그냥 원나잇 엔조이는 아니었을까, 내심 불안한 마음이 티끌만큼 남아있었다. 하지만 방금 전 일로 그런 의심은 싸그리 날아가 버렸고, 오히려 메이드장의 헐벗은 몸이 아니라 자신을 보고 그런 반응을 보였다는 것만으로도 지금 당장 그의 옷을 찢어버린 뒤에 그날의 밤처럼 잔뜩 뾰이하고 싶었다.


"훌쩍..."


"정말로 잘 참았어요. 트레이너님."


물론 그랬다가는 돌이킬 수 없을 테니 그저 참아낸 다이아는 담요를 뒤집어쓴 트레이너의 어깨를 대견하다는 듯이 토닥이며 작게 중얼거렸다. 한동안 그렇게 트레이너를 위로하고 있던 중 트레이너가 이불 속에서 울먹거리는 얼굴로 다이아에게 조그맣게 말했다.


"다이아...이제 돌아가줘...나, 더 이상은 힘들어...훌쩍..."


한번 터진 욕망은 다이아가 트레이너를 부실에 데리고 오는 순간까지도 계속해서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때문에 트레이너는 트레센 부지를 담요를 뒤집어 쓴 채로 웅크려서 부실까지 와야 했으며 지금도 뒤에서 사랑스럽게 토닥여주는 다이아의 숨결이나 향기에 인자봉은 수그러들 생각을 안 하고 있었다.


"그럴까요? 우황청심원은 여기다 두고 갈게요~"


트레이너가 욕구를 조절하기 위해 옆나라에서 가져온 강력한 한방약을 먹고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던 다이아는 서재 책상을 자연스럽게 뒤적거려 종이로 감싸여진 약봉투를 찾아 쇼파 앞 테이블에 턱하니 올려두었다. 그리고 부실을 나가기 전, 트레이너의 볼에 입맞춤을 쪽 남기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부실을 떠났다.


"훌쩍..."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부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조금 지나고 나서야 부실의 불은 겨우 꺼졌다. 조용히 밖에서 불이 꺼지기만을 기다리던 다이아는 마침내 부실의 창문이 깜깜해진 것을 보고 난 뒤 발걸음을 돌렸다.


"♪♪~"


돌아가는 발걸음은 무척이나 가벼웠다. 사실 축제 당일, 메이드가 벌였던 행보에도 다이아가 가볍게 용서를 한 이유가 있었다. 자신을 속이고 트레이너를 의식 불명에 빠트린 메이드에게 따끔하게 혼을 내자 옆에 있던 부스 직원이 그녀의 행보를 녹화본과 함께 보고했기 때문이다.


[ 다이아는 내가 맡는다. 니놈들과는 다르게 내가 평생 책임질 거니까 당장 내 앞에서 꺼져! ]


비록 트레이너의 약점을 잡기 위해서라며 메이드가 멋대로 벌인 일이기는 했으나, 트레이너가 자신을 버리라는 말에 자신이 다이아를 맡겠다, 평생 책임지겠다는 그 대사가 지금 다이아의 스마트폰에 녹화된 그대로 나오고 있었다. 그걸 아까전부터 계속 돌려보는 다이아는 마치 자신이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된 기분에 헤실헤실 웃으면서 기숙사로 돌아갔다. 다만 다이아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 키타짱. 밖에서 뭐하고 있어?"


"다이아짱..."


기숙사, 자신의 방 입구에서 키타산 블랙이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으로 다이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이아짱, 괜찮아? 다이아짱네 집사님하고 요르카 언니가 엄청 무서운 얼굴로 다이아짱을 기다리던데..."


"...엣?"


긴장된 얼굴로 키타산을 남겨두고 방에 슬며시 들어간 다이아에게 대뜸 집사의 분노의 질책이 떨어졌다.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지르신 겁니까, 아가씨!!"


"지, 집사님 왜요..."


무릎을 꿇은 채로 움찔거리며 집사의 분노를 맞닥뜨린 다이아는 귀를 접어 내리고 떨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지만 그런 반응에도 집사에 구겨진 미간은 조금도 펴지지 않았다.


"저에게, 심지어는 요르카에게 상의도 없이 아가씨네 트레이너님과 시도 때도 없이 몸을 섞었단 말입니까?!"


"하, 한번이었어요! 그 뒤로는 저도 하고 싶어도 못하고...합."


가장 뼈아픈 말에 반박하려던 다이아는 자신의 본심이 튀어나가는걸 손으로 막았음에도 집사의 분노는 멈추지 않았다.


"휫수가 중요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 그래도 그날 이후 트레이너님도 반성하고 있고...트, 트레이너님...이랑 한게 어때서요! 제 은인이에요! 그리고 저도, 트레이너님도 서로 좋아하고 있고, 또..."


다이아가 허겁지겁 반론하기 시작하자 집사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 아까보다는 조금 누그러진 투로 말을 꺼냈다.


"물론 아가씨의 트레이너님에게 큰 은혜를 입었고, 또 우리 사토노의 방계로 같은 가문의 사람인건 알겠습니다. 하지만 모름지기 순서라는게 있지 않습니까. 아직 트레이너님이 먼저 저희에게 출신을 꺼내지 않은 건 다 이유가 있을 겁니다. 또 한 남녀가 차근차근 서로를 알아가는 것부터 시작해야지 이렇게 대뜸 한 침대에 들어가는 것부터 시작하면 어떡합니까..."


가문이 애지중지하는 금지옥엽이 벌인 하룻밤의 불장난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이 아가씨가 알고 있기나 한 건지,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한 집사는 골을 부여잡고 고개를 저었다.


"하아...이걸 어찌해야 할지...아가씨네 부모님께서 이 일을 아셨다간..."


그 한마디에 머리속에 앞날이 그려졌는지 방금 전 혼나던 메이드와 똑같이 안색이 새파래진 다이아가 고개를 붕붕 저었다.


"저, 절대로 안돼요! 트레이너님도 가문에 아직 말씀 안하셨다고 했는데...게다가 출신도 알려지기 싫다고 하셨단 말이에요!"


"...아가씨, 그럴 때는 보통 말펜사님과 당주님께 따끔하게 혼날 테니 들키면 안 된다고 하지 않나요?"


당황한 다이아의 말을 들은 여태껏 한쪽에서 조용히 있던 요르카가 어이없는 투로 말을 내뱉었지만 정작 다이아는 두 손을 불끈 주먹 쥐고 반론했다.


"나야 들키면 혼나는 걸로 끝나지만 트레이너님에게 걱정거리가 늘어나는 건 싫어! 이미 트레이너님은 신경써야할게 한두 개가 아니란 말이야!"


이런 다이아의 발언에 둘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 쥘 뿐이었다.


"아무튼, 그나마 다행인건 아가씨가 먼저 트레이너님을 선점했다는 거다. 실력도 월등하고 인성도 합격점이야."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일. 이럴 땐 주어진 상황속에서 최선의 결과를 내기 위해 (아직 모든 정황을 모르는)집사는 신중하게 다이아에게 조언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러니 이렇게 된 이상, 아가씨께서는 반드시 팀원분들을 제치고 트레이너님과 연인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이미 연인 관계인데...'


아직 트레이너와의 비밀연애까지는 말하지 않지만 우선 지금은 조용히 집사의 말을 귀담아 듣는 다이아였다.


"그렇게 트레이너님을 사로잡아 반려자로 받아들여 사토노 직계로 들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 방법만이 제일 안전하면서 납득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어...'


집사의 마지막 말에 무릎을 꿇고 경청하던 다이아는 문득 한 가지 문제를 떠올렸다. 지금 집사가 가진 잘못된 정보의 근원. 그것을 지금 밝힐지 말지 고민에 빠진 것이다. 그러나 보통 이럴 때 문제를 묵혀놨다가 나중에 더 커지기 때문에 다이아는 떨리는 목소리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집사님..."


"네, 말씀하세요."


불호령이 떨어질 것을 예감한 다이아는 불길함을 지우지 못하고 귀를 착 내린 채 시선을 피하며 기어가는 목소리로 대답을 꺼냈다.


"저어..저만..트레이너님하고 한 게 아니라...처음 때..저 말고 다른 팀원..선배님들도..모두 다 같이 잔뜩 했었는..데요...뾰이.."


""...""


충격적인 발언이었는지 다이아의 그 한마디에 요르카와 집사 둘 다 꿀 먹은 벙어리, 혹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이-아-아-가-씨-이이이이이이!!!!"


"히익?!"


방 밖에서 다이아의 훈계가 얼마나 길어지려나 끝나길 기다리던 키타산은 난데없이 문을 뚫고 터져나오는, 주인의 문란함을 나무라는 분노 가득한 집사의 외침에 우마미미를 펄쩍 세우면서 화들짝 놀랐다.


"이 건은 그냥 못 넘어갑니다! 이건, 메지로가에도 알릴 겁니다!"


"히이이! 그, 그건 안돼요오오!!"


안에서 들려오는 다이아의 비명에 키타산은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면서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문을 바라보았다.


"다이아짱...괜찮을까...?"


이래저래 한순간의 욕망을 참지 못한 대가를 치루는 패배자들 밖에 없는 그런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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