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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자가 서울충이라 어설픈 사투리 번역을 하느니 그냥 표준어 번역을 하는게 낫겠다 판단해 사투리는 전부 표준어로 번역했습니다. 처음에 잠깐 나오고 말긴 합니다.
【제 3장 "재연"】
―1―
긴 시간 흔들리고 있자니 지금 자신이 타고 있는 열차가 정말로 목적지를 향하고 있는 것인지, 앱으로 알아보고 있음에도 그런 불안에 잠겨버린다. 돈이 있으니까 신칸센으로 가면 좋을것이다. 그렇게도 생각했지만, 여관에서 신세를 지려면 적지 않은 숙박비가 필요한데다가 체류가 얼마나 이어질지도 불명확하기에 현지까지 가는데 필요한 교통비는 줄이려 하는 것이 당연했다.
누마즈. 연락했을 때 지정해준 역에 내렸다. 그 이름을 들은 적은 몇 번이나 있지만 방문하는 건 물론 처음이었다. 출발이 늦었던 탓에 겨울의 오후는 빠르게도 지나가려 하고 있었다. 남쪽 출입구로 나왔을 때, 밋밋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역도 넓고 로터리도 크고, 그 나름대로 번화한 듯이 보이는데도 무언가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조금 생각해보고, 도쿄에 있는 비슷한 규모의 역과 비교해 극단적으로 사람이 적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간의 이목구비 수가 적은 탓에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가마쿠라 역의 주변은 항상 관광객으로 붐벼 곤란할 정도였지만, 그런 대외적으로 열린 분위기도 아니었다. 2월의 시작이라고 하는 애매한 시기 탓인지 시간대 탓인지, 무척이나 조용하고 폐색감이 있었다. 시즈쿠는 편의점에서 따뜻한 차를 샀다. 노조미에게서 받은 50만엔은 봉투 그대로 들고 왔다. 낚아채인다면 이제 '오사카 시즈쿠'라 하는 여배우는 철저히 불운했던 것으로 하고 본가로 가라앉는다고 결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뭐, 그런 어리광과도 비슷한 가정이 실현되는 건 경험상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건 이른바 '공돈'이니까 말이지. 없던 것으로 생각해야 해. '없었다'는 의미, 알고 있지? 저금이라든가 집의 보증금이라든가, 리얼에는 쓸 수 없는 돈이야'
고용주인 노조미가 그렇게 말했기에 은행 계좌로 옮기지는 않았다. 시간이 조금 일렀기 때문에 관광 안내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상점가가 있고 커다란 항구가 있고 그 너머에는 거대한 이즈 반도가 펼쳐져 있었다. 도쿄의 극히 작은 범위에서 살고 있었으니까 마치 대륙처럼 보였다. 자신이 신세를 질 장소는 꽤나 시가에 가까운 곳인 듯 했다. 그렇다면 부족한 것이 있어도 금방 살 수 있겠지. 이제와서는 애착마저 샘솟고 있는 파트너인 캐리어 가방과 보스턴 백에 눈을 향하고, 시즈쿠는 스마트폰을 열고 있었다.
극단에는 당분간 쉰다고 전해 두었다. 구체적인 내용은 차치하고 시즈쿠가 트러블에 휘말려 전전하고 있다는 것은 많은 사람이 알고 있었기에 다들 걱정은 했지만 시즈쿠를 만류하거나 자세한 내용을 묻지는 않았다. 그리고 극단의 사이트를 확인해보니 다음 연극 공지가 올라와 있어서 자신이 없어도 공연에 아무런 지장이 없는 듯 했다. 시즈쿠는 스스로를 타일렀다. 만약 유명한 여배우가 갑자기 사라진다고 해도, 이런 저런 대역에 어울리는 배우가 빈 자리를 메우고 세계는 불편 없이 돌아가는 법이다.
"시즈쿠쨩?"
갑자기 등 뒤에서 말을 걸어와 정신을 차렸다. 돌아보자 노조미와 비슷한 나이의, 스웨터에 롱 스커트를 맞춘 여성이 온화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유치원의 선생님이라도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네". 시즈쿠는 대답하고 스마트폰의 메시지를 확인했다. '가게 이름이 쓰여진 경차로 모시러 가겠습니다'라고 쓰여있다. 어쩌면 일찍부터 와서 기다리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부탁해요"라고 머리를 숙이자, 여성은 부드러운 어조로 "이쪽이야"라고 안내를 시작했다. 노조미는 그녀를 '시마씨'라고 '씨'를 붙여서 불렀기 때문에 조금 연상일지도 모른다.
"거리가 먼가요?"
"길이 막히지 않는다면 30분 정도려나. 먼 게 좋아?"
시마는 핸들을 쥐고 사뿐히 악셀을 밟았고, 시즈쿠는 병을 양손으로 감싸곤 "모르겠어요"라고 대답했다. 이 누마즈라 하는 동네 그 자체가 도쿄에서 너무 가까운 것 같았다. 그런데도 달려갈 때에 차창으로 보이는 풍경은 정취를 바꾸어, 전에 본가에서 미우라 해안에 해수욕을 하러 가는 도중에 본 듯한, 반도를 따라 가로놓인 해변의 마을이 되어 있었다. 강력한 겨울 햇살이 바다부터 마을 전체를 황금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쇠퇴했다기 보다는 시간의 흐름 그 자체가 정체된 듯한, 방치된 이미지가 감돌고 있었다.
"여기야"
"분위기가 있는 건물이네요"
여관 '토치만'은 해변에 있었다. 도로 하나만 건너면 해변에 갈 수 있지만 한겨울인 지금은 왕래가 뜸했다. 바로 옆에 편의점이 있으니 물자 조달은 어렵지 않을 듯 했다. 메이지 시대부터 계속해 왔다고 팜플랫에는 써 있었지만, 역사를 느끼게 하는 본관이 아닌, 별채라고 하기에는 민가 같은 가옥에 안내 되었다. 가는 도중 그다지 질문 받지 않았고 질문도 하지 않았지만, 도착한 곳에서 시마가 안내를 시작했다.
"여동생 둘이 결혼해서 집을 나갔으니까 이 별채를 민박으로 개조해 '타카미야'라는 이름으로 영업하고 있어. 시즈쿠쨩이 살 곳은 여기야. 기본적으로 소문만으로 손님을 모으고 있으니까 손님은 거의 없고, 지금은 시즈쿠쨩뿐. 어머니가 아직 활발한 현역 여주인이시니까 내 취미 같은거야"
"1박에 얼마인가요?"
"밥을 내는 것 뿐이라면 2000엔으로 괜찮아. 식사의 정리라든가 방의 청소라든가 이불을 깔고 개는것 같은 걸 스스로 해준다면, 이긴 해도"
"그 정도는 할게요"
차분한 어조의 말에 즉답하자 시마는 가방을 두 개 가지고 있는 시즈쿠를 안내해 2층으로 올라갔다. 세 개 있는 방 중 하나에 들어가자, 벽에는 9인조 스쿨 아이돌의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여동생이 고2 때 아이돌을 했었어"라고 시마는 간단히 설명했다. 그 여동생은 현재 남편과 요코하마에서 살고 있다는 듯 하다. 이어 액자에 끼워진 여성 해상 보안관의 사진을 가리키며 "여동생의 절친이야. 보이시해서 멋지지"라고, 마치 자신이 그녀의 팬인 것처럼 기쁜 듯한 톤으로 설명했다.
"시마씨는 결혼하셨나요?"
"나는 독신이야? 어머니가 오랜 시간 도쿄에서 이 지방의 홍보 활동을 하고 있고, 여동생 둘의 어머니 대역을 하고 있는 사이에 왠지 연애하는 법을 잊어버린 것 같아. 요리랑 집안일만은 잘하니까 걱정하지 마. 맞다, 저녁은 6시긴 한데, 혹시 밖에서 먹고 올 거라면 일찍 알려줘. 오늘은 벌써 저녁시간이라 간단한 것밖에 준비할 수 없지만"
시마는 거기까지 전하곤 "이제 자유시간"이라고 명랑하게 선언했다. 지금부터 저녁 준비를 하겠다고 말하곤 만약을 위해 시즈쿠의 취향을 확인해 왔다. 특별히 먹지 못하는 음식은 없지만, 맛이 너무 진한 음식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노조미씨도 여기에 묵었던 건가요?"
"응. 묵었다 해야할까 1개월 정도 살았어"
"이유, 물어봐도 될까요? 신세를 졌으니까 그녀에 대해 알고 싶어서"
"그렇네. 노조미쨩은 타인의 마음의 소리가 너무 들려. 그러니까, 대학안의 작은 커뮤니티에서 조용히 공부하던 아이가 사회에 나오자마자 커다란 회사의 넓은 층에서 일하게 되어 병들었던 거야. 다니고 있던 심료내과의 의사 선생님이 우연히 우리에 대해 알고 있어서 소개해 줬대. 뭐, 경마에서 50만엔 땄으니까 오래 머물겠다든지 하는 말을 했지만, 진심과 농담을 구분하기 힘든 아이야"
그러곤 시즈쿠를 바라보더니 "그렇지, 여배우님?"이라며 미소지었다. 어디까지 알려졌는지 확인할 생각도 없지만 어디까지 알려졌다고 해도 상관 없을 것 같았다. 20살에 살 곳이 없는 여자아이라는 것 만으로도 상상력을 지나치게 부추기는 자기소개일 것이었기 때문에.
"저, 갑자기 죄송하긴 하지만 오늘 밤은 저녁 필요 없어요. 새로운 거처에 오면 방전되어 졸려서 아무것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아요. 죄송해요"
그렇구나. 배 고프면 꼭 말해줘. 그 말만 남기고 시마는 신경 쓴 기색도 걱정도 나타내지 않고 계단을 내려갔다. 파트너인 두 개의 가방을 열고 옷을 갈아입고 화장품을 정돈하자 스스로 말했던 것처럼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졌다. 목욕은 온천을 끌어오고 있다고 이야기 했었지만, 모든 것이 아무래도 좋아졌다. 따뜻한 잠자리가 있다면 다른 건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피로가 쌓인 스무살의 심신이 호소하는 것이었다.
잠옷 대신인 스웨트로 갈아입고, 벽장에서 이불과 모포를 꺼내 비틀비틀 기어 들어갔다. 지금부터 잔다면 분명, 숙면의 도중에 깨워지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설령 너무 많이 잔다 해도 시마는 에리처럼 짓밟아서 깨우지는 않을 것이다. 일단은 손님이라는 것 만으로도 꽤 안심할 수 있었다. 안심한 순간, 아무 생각도 못하고 잠에 들었다. 아마 영원히 잠들고 싶었다. 오전 2시에 훌쩍 저승에 간다면 오히려 행운이었다.
※
잠에서 깨서 벽의 시계를 보고, 잘 때 분명 5시 30분을 가리키고 있던 시계가 지금은 5시를 가리키고 있어서 시즈쿠는 마이너스 30분 정도 잔 줄 알고 픽 웃었다. "엄청 잤다"라고 무의식중에 말할 정도로 잠을 잘 잤다. 눈이 선명했다. 아직 커튼의 저편은 어둡고, 어제는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다다미의 파랗고 건조한 냄새가 났다.
겨울 다다미가 차가운 것을 알면서 요에서 그대로 굴러 보았다. 본가의 방에서 언니와 어머니와 백인일수(百人一首)를 했던 것을 떠올렸다. 초등학교 때의 시즈쿠는 스토쿠 덴노의 '빠른 여울이 바위에 부딪히고 갈라진대도 끝내는 다시 만나 하나 되어 흐르리'라는 시를 좋아했다. 당시에 즐겨 읽던 비련의 희곡과 겹쳐졌다. 자신에게 지금, 시로 읊고 싶을 정도로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는 것일까 하고 생각하곤 고개를 흔들었다. 반대로, 멀리 떨어진 자신을 다시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는 것일까 생각하곤 한숨을 쉬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곤 저지로 갈아입었다. 타월을 목에 걸고 세면대에서 세수를 하고, 조금 더 자란 머리를 빨간 리본으로 묶었다. 아래층에 갔더니 시마는 벌써 일어나 있었고 부엌에서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시즈쿠의 낌새를 느꼈는지 돌아봤다. 옅은 화장을 하고, 35살 정도인데도 천진난만함이 있는 미인이었다. 에리나 노조미처럼 개성이 강한 캐릭터가 아니고, 이렇게나 가정적인 여성이 고지식한 시골에서 아직도 독신이라니 믿을 수 없었다.
"다행이다. 좋은 아침"
"좋은 아침이에요. 뭐가 다행인건가요?"
"여기에 오는 사람은 적잖이 마음을 상처입은 사람이니까, 내가 무심코 한 말로 이상한 방향으로 생각해버리면 어쩌나 하고, 특히 첫날밤은 불안해져"
"괜찮아요. 시마씨는 상냥한 사람이에요"
대답하고 나서 새삼 지금의 자신에게는 특별히 잃을 것이 없구나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목을 맬 정도라면 시시하더라도 아가씨의 연극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너무 가라앉아 있어 죽을 동기부여마저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 본심이었다. 무언가 도우려 하자, 시마는 미소지으며 거절하고 오히려 정중하다고도 생각되는 접객을 해왔다.
"아직 해도 뜨지 않았고, 목욕하는게 어때? 자랑하진 않았지만 여관과 같은 온천이야"
시즈쿠는 그러기로 했다. 방에서 타월을 가지고 와 욕실로 가자 어젯 밤 혹은 아침 일찍 시마가 사용한건지 사람이 이용한 기색이 보였다. 식객을 전전하고 있었을 때는 계속 샤워만 했었으니 욕조에 느긋하게 몸을 담그는 것은 크리스마스의 러브호텔이 마지막이었다. 천연 온천이라고 하면 더 이상 기억에 없었다. 발을 뻗을 수 있는 넓은 욕조에 따뜻한 물이 가득했고, 하얀 탕화가 드문드문 떠 있었다.
알몸이 되어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자 온기가 전신을 감싸고 이윽고 거친 마음까지 치유해 주었다. 이불에서 자고 밥을 먹고 목욕을 하고, 마치 근대의 문호 같았다. 지금이라면 자신의 반생(半生)을 글로 쓸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부끄러움의 덩어리에 지나지 않을 것 같았다. 젖어도 상관 없을 것 같은 책을 사 와서 내일부터는 목욕하며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자신 외에는 시마밖에 없으니까, 본가나 얹혀 살던 곳에서는 있을 수 없는 사치도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 목욕을 마치고 저지로 돌아오자 마침 아침밥이 완성되어 있었다.
소매 있는 앞치마를 입은 시마와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밥과 된장국과 구운 건어물과, 절임과 김과 계란말이와 녹미채 반찬. 이런 아침밥은 가족 여행에서 호쿠리쿠의 여관에 묵었을 때 이후로 처음인게 틀림없었고, 자신이 외국인인가 하고 당황할 정도로 신선하게 느껴졌다.
"건어물은 오랜만이네요"
"금눈돔. 받은거니까 특별해. 낚시를 좋아하는 마츠우라씨가 준거야"
된장국을 조금씩 홀짝거리며, 생선 구이의 살을 정성스레 뼈에서 발라내 하얀 밥에 얹어 함께 먹었다. 거기까지 어떠한 조짐 비슷한 것도 없었다. 느긋하게 목욕을 하고 아침밥을 먹는다고 하는, 우아하기도 한 시간에 반동을 예감하거나 하진 않았다. 그래서 '그것'은 너무나도 갑작스러웠다. 생선과 밥이 맛있다는 느낌을 혀로 느꼈을 때, 처절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강한 감정이 북받쳐 올라 시즈쿠는 기억에 없을 정도의 기세로 눈물을 흘렸다.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로 울고 있다는 것을 겨우 알아챌 정도로 갑작스런 범람이었다.
"앗, 어라, 싫다, 어째서, 죄송해요"
젓가락을 놓고 얼굴을 가렸다. 아침밥을 먹은 것 만으로도 정체불명의 눈물이 계속해서 흘러내렸다. 어쨌든 사과한 뒤, 시즈쿠는 거듭 오열을 터트리며 흐느꼈다. 어제 막 알게 된 사람 앞에서 얼굴을 엉망진창으로 망가트리고, 그걸 손바닥으로 마구 닦아내며 울었다. 기억에 없을 정도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자신이 어디에 얼마만큼의 마음을 숨기고 있었는지, 그것을 얼마나 누르고 있었는지, 아무것도 상상하지 못한 채 시즈쿠는 목이 메어가며 계속해 울었다.
물론 맛에 감동해서 운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결코 슬픔은 아니다. 그래도 깊고 무거운 감정이었다. 만약 시즈쿠가 난폭한 인간이었다면 닥치는대로 접시를 던지며 소리쳤을지도 모른다. 만약 시즈쿠가 명랑한 인간이었다면 미친듯이 계속 웃었을지도 모른다. 시즈쿠는 조심스럽고 예의바르고 내성적인 여자아이기 때문에 맛있는 아침밥을 계기로 터트린 격정을 전부 감격의 눈물로 바꾼 것이었다.
시마는 먹던 손을 멈추고 일어나서 시즈쿠의 옆에 서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시즈쿠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게 되어 "냥"하고 울었다. 시마는 그것에 무척이나 놀라고, 이번에는 전신으로 감싸안듯이 시즈쿠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금방이라도 호흡이 이상해질 것 같던 시즈쿠는 그 포옹을 통해 조금씩 진정할 수 있었다. 덕분에 혈안이 되어 비닐봉지를 찾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 울고는 있었지만 눈물은 잦아들었다.
"죄송해요. 모처럼 맛있는데"
"시즈쿠쨩. 착한 아이니까 사과하지 마"
"착한 아이가 아니에요. 착한 아이 같은게"
수많은 추악한 포학을 돌이켜 보고 있었다. 파트너가 있는 유우와 섹 스를 거듭했던 것. 세츠나의 알몸을 인터넷에 뿌렸던 것. 카스미의 우정을 악용한데다 그녀의 키스를 빼앗았던 것. 착한 아이인 척을 해 자신의 어두운 부분을 전혀 제어할 수 없던 것. 후우타의 선량함을 이용했던 것. 선배의 자신에 대한 호의를 역이용했던 것. 무엇이든지 사람의 탓으로 돌리며 자신만이 피해자인 듯한 얼굴을 하고 있던 것.
"나 같은 건 살아있을 가치가 없어"
"그건 시즈쿠쨩이 정해도 되는게 아니야"
끄덕이고 아침밥으로 돌아갔다. 이렇게나 맛있는 식사를 했던 것은 아마도 태어나서 처음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식사하는 것을 이렇게나 의식한 것은 처음이었다. 시즈쿠는 몇번이나 젓가락을 멈추고 코를 훌쩍이며 눈물을 흘렸다. 마음을 덮고 있던 두꺼운 껍데기가 깨져버린 것처럼 감정을 숨기고 연기를 하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해졌다.
"잘 먹었습니다"
"시즈쿠쨩, 개는 괜찮아?"
"본가에서 기르고 있으니까 좋아해요"
"진정하고 나면 우리 애를 데리고 산책하러 갔으면 좋겠어"
마음 속의 거센 파도는 이미 가라앉고 있었다. 시즈쿠는 충혈된 눈으로 식기를 정리하고 빨래까지 도운 후 시마가 기르고 있는 개를 소개받았다. '마이타케'란 이름의 암컷으로 귀가 버섯의 우산처럼 늘어져 있는 본 적 없는 견종이었다. 시즈쿠는 아주 오랜만에 개를 산책시키기로 했다. 아직 아침 8시 즈음이었지만 개를 산책시키기에는 조금 늦은 시간이라 생각했다. 본가에서는 아침에 일어나 곧바로 산책시켰으니까 더 그런 생각을 했다. 저지에 베이지색 더플을 걸치고 운동화를 신은 채 걷기 시작했다.
(시야가 넓어서 기분이 좋아)
시즈쿠는 도로를 건너 해변을 걸었다. '마이타케'는 무척이나 얌전해서 초면인데도 전혀 손이 가지 않았다. 만에는 거북같은 섬이 떠 있었다. 섬의 이웃처럼 보이지만 바다 건너편 아득히 먼 곳에는 눈 덮인 후지산이 우뚝 서 있었다. 시간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세심하게 사물을 바라보도록 유의하기로 했다. 섬에는 훌륭한 호텔과 몇 개의 작은 건물이 있었다. 바람도 파도도 잔잔해서 작은 배가 오가고 있었다. 몸을 굽혀 해변의 모래를 손에 쥐어 보았다. 아무렇게나 뒹굴어 보았더니 '마이타케'가 얼굴을 핥았다.
포장도로를 걷고, 편의점에서 서서 잡지를 읽으려다 그만두고, 어딘가 적당한 곳에서 길을 건너고, 다시 걸어서 여관의 부지로 돌아온 지 1시간 정도가 지나 있었다. 몸이 식어서 목욕을 하고, 할 일이 없어서 일과인 발성 연습을 했다.
"한가하지?"
"한가해요. 뭔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렇네. 누구든지, 노조미쨩도 그랬어. 계속 스마트폰을 바라봤어. 뭔가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게 '뭔가 하고 싶다'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면 좋겠네"
"노조미씨는 뭘 하고 싶어졌나요?"
"그녀는 시즈쿠쨩과는 다르니까, 물론 나온 대답도 다르지"
점심은 우동을 먹었다. 시즈쿠는 시마가 가지고 있는 책을 빌려 읽기로 했다. 뭔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분명 자신이 어떤 사람도 아니기 때문이겠지 하고 생각했다. 조금 있으면 손이 떨리는 듯한 발작이 일어나 극단 멤버의 페이스북을 보거나 과거의 연극 대본을 진지하게 다시 읽거나 끝에는 타카사키 유우가 준 감상문을 보며 미소짓거나 하는 것이었다. 그런 자신을 2시간 후에 다시 보고 중독이라고 판단했다. 도쿄에 돌아가지 않아도 괜찮은 걸까 하고, 그런 것을 무심코 생각하고 있는 자신이 무서웠다.
"금단 증세라 해야할까, 충동적으로 도쿄에 돌아갈 것 같아 불안해요"
어리광 부리는 것을 오랫동안 하지 않았단 생각이 들었다. 방법은 잘못된 것이 틀림없었지만 시즈쿠는 시마에게 어리광 부리고 싶다 생각했다. 저녁 식사를 함께 한 후, 시마는 이불을 빈틈없이 늘어놓고 '이러고 있으니까 시집을 못가는 거겠지'라고 웃으면서 시즈쿠의 고독을 꽤 치유해 주었다. 따뜻하고 부드럽고, 부엌과 온천의 냄새가 났다. 시즈쿠는 그날 밤도 아주 잘 잤지만, 사흘 후에는 벌써 '두근거림'이 독이 되어 심신을 좀먹었다.
"유우씨, 유우씨"
시즈쿠는 도쿄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된다고 격하게 쫓기고 있었다. 타카사키 유우가 준 달콤한 말이나 온기——세포에 심어져 있던 '두근거림'의 씨앗이 둘 곳도 없이 차례차례 발아해 시즈쿠의 이성을 혼란에 빠트렸다. 시즈쿠는 당장이라도 짐을 꾸리기 시작할 듯한 기세로 불을 켰다. 도쿄에 돌아가 연습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극단에 돌아가 다음 배역을 받지 않으면 안된다. '두근거림'을 방출하고 싶다. 그것을 유우가 마셔주었으면 한다. 맛보아지고 싶다. 시즈쿠쨩 뿐이라며 웃어주었으면 한다. 이런 시골에서 얼빠져 있을 때가 아니야.
이불을 걷어차고 움직이려던 시즈쿠는, 하지만 옆에서 자고 있었을 시마에게 꼼짝 못하게 껴안아져 멈추었다. 시즈쿠를 멈춘 것은 모성이라 이름 붙여도 좋을 정도로 무상(無償)의 온기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 싸워 뿌리친 것에 이제와서 감싸여진 것 같았고, 그건 '착한 아이'를 연기해 왔던 시즈쿠가 처음으로 자각하는 성질의 상냥함이었다. 이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엄마인거라 생각했다. 이미 엄마니까, 이제와서 결혼할 필요 같은 건 없다고 확신했다.
"돌아가야 해요"
"돌아가지 마"
돌아가지 않아도 괜찮다고는 하지 않았다. 시마는 아주 제멋대로 '돌아가지 마'라고 속삭였다. 그건 낳아 놓고 '건강하게 자라라' 라고 바라는 듯한, 너무나 순수한 명령이었다. 시즈쿠는 움직임을 멈추는 대신 눈물을 흘렸다. 단 3일만에 이런 식으로 회유되는 것은 본의가 아니었지만 누군가에게 멋대로 어리광부리고 싶은 욕구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 시마의 잠옷 앞부분을 풀어 헤치고 일방적으로 브래지어의 후크를 푼 뒤, 풍만한 젖가슴에 얼굴을 마음껏 묻었다. 머리를 쓰다듬어졌을 때 저절로 새어나온 말은 '냥'이 아니라 "네" 였다. "네"를 무수히 반복하며 평온한 잠에 빠졌다.
※
10일 남짓, 가끔씩 거칠어지긴 했지만 대체로 평온했다. 증상이 나타나면 과거의 대본을 다시 읽거나 타카사키 유우에게 문자를 쓰려 하거나 극단의 페이스북에 자신의 존재를 새기고 싶어지거나 했지만, 그 때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 시마를 끌어안고 참았다. 시마는 그럴 때마다 일손을 놓고, 시즈쿠가 모든 감정을 토로하고 진정될 때까지, 때로는 아침까지라도 참회든 자조든 반성이든 함께 해주는 것이었다.
'두근거림' 중독은 유우가 아닌 자신 쪽이었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사실, 침대에서 '시즈쿠쨩 뿐'이라고 속삭여준 유우에게서는 도쿄를 떠난 이후로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반대로, 극단 멤버나 알던 친구나 부장이었던 선배는 근황을 물어 왔지만, 모두 읽음 표시만 남기고 무시했다. 자신을 둘러 싸고 있던 인간 관계의 모든 것에서, 저 개미지옥 같은 사이클 그 자체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깨달은 것에 더해 본가에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고, 시마는 한 번도 그 방법을 제안하지 않았다.
보름쯤 지난 어느 날 저녁, 시즈쿠는 일과가 된 개의 산책을 하고 있었다.
'마이타케'의 엄마는 2년쯤 전에 죽어서 세 마리 있던 새끼 중 두 마리는 입양을 보낸 듯 했다. '마이타케'가 선택된 것은 우연이라, 그녀가 우수하다든가 말을 잘 듣는다든가, 다른 아이가 반항적이라든가 부모 곁을 떠나고 싶어했다든가, 그런 구체적인 분별 작업이 행해진 것은 아니었다. 시즈쿠는 고등학교 시절의 저지에 더플을 걸치고 아스팔트를 걷다가 모래사장으로 내려갔다. 이 지방은 석양이 아름답다고 시마가 자랑스레 이야기 했기에 그 시간대에 산책을 하기로 정하고 있었다.
날씨가 좋은 늦겨울의 황혼이었다. 만에 떠 있는 녹색 섬과, 나무들이 무성한 녹색 절벽과, 그 사이에는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비좁은 듯 후지산이 껴 있었다. 왼쪽 멀리 내밀어진 반도에는 고등학교가 있었지만, 학생 수가 줄어 7년 정도 전에 폐교되었다고 한다. 1000명을 넘는 큰 학교에 있던 시즈쿠는 전교생을 합쳐 겨우 100명이 되지 않는 고등학교에서의 생활 같은 건 상상할 수 없었지만, 그런 것을 상상해보는 데에 시간을 쓰려고 폐쇄된지 오래된 교사(校舎)를 물가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시즈쿠는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선 '마이타케'에게 온기를 나눠받고 있었다. 본가에는 언니가 있어서 이런 식으로 기르는 개를 독차지할 수는 없었다. 시즈쿠는 가만히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다는 고요했지만 바람이 불 때마다 작은 파도가 일었고, 석양을 고운 알갱이로 바꾸며 오렌지 색으로 빛내고 있었다. 구름이 거의 없는 하늘은 조금씩 푸른빛에서 쪽빛으로, 시즈쿠의 등 뒤에서부터 신중하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시즈쿠는 황혼을 느꼈다. 그리고, 그 풍경이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눈물의 뜨거운 것을 느꼈다. 볼을 타고 흐르는 것을 느꼈다.
시즈쿠는 간신히 떠올린 것이었다. 몸을 관통해 오는 강한 석양도, 봄이 멀었음을 들이대는 차가운 바닷바람도, 저지의 엉덩이를 싸늘하게 하는 해변의 모래도, 푹신푹신한 개의 털도, 모두 '오사카 시즈쿠'가 연극 중에 경험하고 있던 것이 아닌, '내'가 닿고 있는 것이라고, 그런 셀 수 없을 정도의 경험이 '오사카 시즈쿠'를 '나'로 있게 하는 것이라고, 마침내 깨달아버려 눈물이 멈추질 않게 되었다.
코트의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스마트폰이 활기차게 울렸다. 너무 오래 있어서 시마를 걱정시켜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시즈쿠는 죄송하다는 생각을 하며 스마트폰을 귀에 댔다. 이 보름 정도의 전화는 산책 도중에 시마에게서 심부름을 부탁받았을 뿐일 정도였으니까 그녀 이외의 인간에게서 전화가 온다는 것 따위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시즈코? 저기, 살아있어?'
나카스 카스미의, 안색을 살피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시즈쿠가 알고 있는 그녀의 쾌활함과는 너무나 차이가 났다. 도쿄에서 자신을 휘말리게 하고 있던 발전 없는 사이클이 뇌리를 스쳐 순식간에 통화를 차단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카스미는 그 사이클 안에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고쳐 생각하며 "살아 있어"라고 대답을 하고, 그러고선 한 번 더 "응, 살아있어"라고, 아까 흘린 눈물을 한쪽 손등으로 연신 닦아내며 반복했다.
'어디에 있는지 물어도 돼?'
크리스마스의 밤과는 다르게 카스미는 무척이나 겁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의 성격상, '어디에 있는거야?'라고 묻는게 당연한 장면인데도 질문 그 자체가 '허락되는'지 아닌지를 확인해 왔다. 시즈쿠는 카스미의 입술을 훔쳐 자기만족에 잠긴 죄와, 카스미가 진지하게 골라 준 선물과 그녀의 감정을 함부로 다룬 죄, 양쪽을 속죄하기 위해 "괜찮아"라고 대답했다. 방심했다가는 다시 행패를 부릴 것 같은 한심한 자신을 격려하기 위해 옆에서 쉬고 있는 '마이타케'를 끌어 안았다.
'시즈코, 어디에 있어?'
"나중에 문자할게"
카스미는 '알겠어'라고 대답하고 그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통화를 끝냈다.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 싶다는 마음과, 어디에 있는지 자신이 알아도 괜찮은지 아닌지 알고 싶다는 마음, 둘만을 안고 전화한 것 같았다. 시즈쿠는 그런 카스미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만날 자격이 있는지를 의심하고도 있었고, 만났을 때 다시 어리석은 태도를 취해 버린다면 하는 생각을 하니 몹시 불안하기도 했다.
시즈쿠는 앉아있는 장소에서 보이는 풍경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했다. 빛은 아직 충분히 남아있어 온화하게 빛나는 만과 푸른 후지산과 초록빛의 섬이 올바르게 담긴 사진이 찍혔다. '여기에 있어요'라고 글을 새겨 그 사진만을 카스미에게 보냈다. 인터넷의 이른바 '지혜 주머니' 같은 사이트에서 질문하면 쉽게 발견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불성실한 태도로 인해 카스미에게 자신을 내버려 둘 가능성을 남겨 주었다. 자신 같은 인간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찬스'라 이름 붙여도 상관 없었다.
"미안해요. 카스미양"
한참이 지나도 아무런 답장도 없었기에, 시즈쿠는 입밖으로 내 사과하고 나서 석양과 바다를 등졌다. '마이타케'를 데리고 해변에서 포장도로로 걸어갔다. 평소와 같은 황혼으로 돌아갔으니까, 한 달 뒤에 자신이 여기를 떠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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