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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천재 조향사의 성실한 인생 이야기
프란시스 커정이 25세 때 만든 장폴 고티에 르 말. (출시는 26세 때인 1995년)당시 커정은 퀘스트 인터내셔널에 갓 입사한 막내였고아직 조향사 경력을 시작하지 않은 견습에 불과했으나혼자서 장폴 고티에 향수 기획자를 만나 프로젝트를 따내고소속 회사의 아무런 지원 없이 혼자서 르말을 만들었으며오늘날까지 레전드로 남아있는 초대박 성공을 거두었음.향수 역사에서 데뷔 때부터 천재성을 보였던 사례는 단 둘뿐.하나는 르 말을 만든 커정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이 양반이다.커정은 소년 시절 맞아가며 발레를 배우다가 무용수로서 실패하고뒤늦게 조향을 배워서 향수 회사에 들어간 케이스였다.이 양반은 소년 시절 맞아가며 공장 시다바리로 일하다가그 공장이 우연히 향수 만드는 공장이었기에 조향사가 된 케이스다.오늘날 스페인 조향계의 거장이자 원탑으로 기억되는 이 양반은바로 로젠도 마테우. 전쟁이 막 끝난 1945년에 태어났다.카탈루냐의 찢어지게 가난한 가정 출신인 그는15살 때 부모 없이 홀로 바르셀로나 읍내에 가서 소년공이 되었다.지금은 스페인이 멋있고 자유롭고 여유로운 나라가 되었지만프랑코 독재 시절인 1960년 당시에는 스페인 내전의 영향으로언어와 문화가 다른 카탈루냐 출신에 대한 차별이 엄청났다.쉽게 이해하려면 총기를 들고 일어난 7시 출신이다 이 말이야.로젠도 마테우가 취직한 공장은 바로 이곳이었는데,오늘날은 향수업계에서 세계적으로 ㅈㄴ 큰 대기업이 되었지만1960년 당시에는 스페인의 보잘 것 없는 가족 경영 기업이었던이곳의 이름은 바로 푸이그(Puig, 스페인에선 푸지라고 발음함).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1959년 경제개혁을 단행하면서폐쇄적 농업국가였던 스페인을 산업국가로 바꾸고자 하였고그에 따라 마드리드에 있던 푸이그가 바르셀로나에 공장을 설립해,가장 처음 고용한 심부름꾼 중에 로젠도 마테우가 있었던 것이다.이것은 1960년대 스페인 향수 공장의 모습이다.농장에서 수확한 원료를 가난한 여공들이 수작업으로 분류하면,향수 기술자들이 알코올 증류 등의 방법으로 향수를 만들었고,로젠도 마테우 같은 어린 소년들은 보관, 정리, 세척, 청소 등허드렛일을 하면서 어깨너머로 기술을 익혔다.회사 사정은 열악했지만 로젠도 마테우는 운이 좋은 세대에 속했다.억압된 정치적 조건으로, 아직 사치품으로서의 향수는 만들 수 없던스페인의 작은 향수 회사는 똘똘하고 유망해보이는 젊은 놈을 골라스위스 산골에 있던 쥐좆만한 향수 학교에 유학을 보냈다.그라스에 있는 유명 퍼퓨머리가 아닌 그곳으로 보낸 이유는단지 학비가 쌌기 때문인데, 당시엔 쥐좆만한 시설이었던 그곳은바로 장 카를이 설립한 루르 향수학교. 지금의 지보당이다.그리고 학생이 몇 명 있지도 않았던 그곳에서로젠도 마테우와 같은 시기에 동문수학한 다른 학생은훗날 샤넬의 조향사가 되는, 마테우보다 2살 연상의 자크 폴주였다.그리고 다른 학생이 모니크 슐리엔제(훗날의 ISIPCA 교수).중학교까지만 나와서 공장 시다로 끝날 운명이었던 마테우는정말 운이 좋게도 세계 최고가 될 조향사들과 매일 같이 지냈다.또 그는 장 카를의 아들인 마르셀 카를의 직접 지도를 받았다.(로젠도 마테우 본인의 인터뷰에서 본인의 은사라고 자주 언급함)그리고 1968년, 기초 조향교육을 마치고 드디어견습조향사가 된 로젠도 마테우는, 학생 실기 시간에 만든자작 향수 레시피를 푸이그 회사에 보낸다. 그의 나이 23살 때였다.곧바로 생산을 시작한 이 향수의 이름은 아구아 브라바.이 향수는 스페인을 포함, 스페인어권 남미에 집집마다 놓이게 되는기록적인 베스트셀러였으며, 지금도 대단한 사랑을 받는 걸작이다.영미권에서 사화적으로 기억된 남자 냄새가 올드 스파이스라면스페인어권에서 남자냄새는 아구아 브라바라고 봐도 된다.이 향수의 대단한 성공으로 푸이그는 현재의 재벌이 될 수 있었다.막내 견습조향사였을 때 데뷔작 르 말을 성공시킨 커정이다른 조향사들의 시기와 견제에 시달려 퀘스트를 떠난 데 비해,아구아 브라바를 성공시킨 로젠도 마테우는 반대로,푸이그 회사에 묶여 옴짝달싹할 수 없이 평생을 보내야 했다.그는 회삿돈으로 최신 향수기술을 습득한 자원이었기에,루르 향수학교의 동기들이나 심지어 그의 몇 년 후배인도미니크 로피옹 등이 세계적인 스타 조향사가 되는 동안에도푸이그의 연구개발부서의 그냥 회사원으로 살았다.회사는 아구아 브라바의 성공으로 벌어들인 돈으로파코 라반, 케롤라이나 헤레라 등의 라이센스를 마구 사들였다.그래서 로젠도 마테우의 조향사 경력은 거의 전부가푸이그 산하 브랜드들의 상업 향수들로 가득차있다.심지어 푸이그가 생산했던 자라의 초기 향수들도 그가 만들었다.로젠도 마테우는 공식적으로 정년을 훌쩍 넘긴 2017년까지푸이그에 재직했다. 15세부터 72세까지 같은 회사에 몸담았다.잠시 유학을 떠났던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짧은 기간 외에는그는 거의 매일 연구실에 쳐박혀 냄새 맡고 조향하는 일만 했다.유학 갔을 때도 그랬으니 평생 쳐박혀 냄새 맡고 조향만 한 것이다.다만 은퇴를 앞둔 말년에는 회사로부터 자유롭게 되었던 것 같다.그의 이름으로 5종의 향수를 출시하며 새 브랜드를 런칭했으니.데뷔작으로 이미 세계를 휩쓸었던 그는 나이 70이 된 2015년부터본인만을 위한, 본인이 만들고 싶었던 향수를 만들기 시작했다.너무 늦은 출발이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특히 로젠도 마테우의 2번, 4번, 5번, 7번 향수는향수 비평가들과 니치 십덕들에게 대단한 충격을 주었다.그러나 그는 성공을 앞둔 2022년 고령으로 세상을 떠났다.그의 연구노트에 남아있던 스케치를 아들 호안 마테우가 발굴해올펙토리 져니 컬렉션의 향수 4종으로 세상에 내놓았다.그중 1968은 로젠도 마테우가 루르 향수학교에서 교육을 마치고아구아 브라바를 만들었던 그 1968년도에 만든 또다른 향수다.그의 생전에는 출시되지 않았다가, 2023년에야 이름을 달았다. [시리즈] 조향사 시리즈 · 현대향수의 애비, 향버지를 araboza· [인터뷰] 모리야스는 어떻게 향수를 만들노?· [인터뷰] 올리비에 크레스프는 어떻게 향수를 만들노?· [인터뷰] 파트리샤 드 니콜라이는 어떻게 향수를 만들노?· [인터뷰] 크리스틴 나겔은 어떻게 향수를 만들노?· [인터뷰] 소니아 콩스탕은 어떻게 향수를 만들노?· [인터뷰] 퀭탱 비쉬는 어떻게 향수를 만들노?· [인터뷰] 프란시스 커정은 어떻게 향수를 만들노?· [인터뷰] 장끌로드 엘레나는 어떻게 향수를 만들노?· [인터뷰] 크리스틴 나겔은 어떻게 향수를 만들노? 2· [질싸] 크리스틴 나겔에게 질내사정한 조향사· [사진] 자크 카발리에의 작업실 풍경· 퀑탱 비쉬 최신 인터뷰· 유명 조향사들의 헤어스타일을 알아보자.araboja· 칼리스 베커와 향기의 민주주의 그리고 빨통· 도미니크 로피옹은 향수저가 아니었다· 아웃사이더 삼류 조향사의 특별한 삶· 조향사 인생스토리 중에 인상적이었던 것· 싱글벙글 조말론 우드세이지 앤 씨솔트 탄생비화· 조향사도 실력이 늘어난다 (feat.바이레도)· [인터뷰] 조쉬 마이어는 어떻게 향수를 만들노?· [인터뷰] 에밀리 보지는 어떻게 향수를 만들노?· [인터뷰] 아멜리 부르주아는 어떻게 향수를 만들노?· 향수 디자인,,, 충격과 공포,,,, 인디 레전드.sex· [인터뷰] 아무아주 디렉터, 르노 살몽과 여자팬티· [인터뷰] 알렉상드라 카를랑은 어떻게 향수를 만들노?· [인터뷰] 도미니크 로피옹은 어떻게 향수를 만들노?· [인터뷰] 셀린 바렐은 어떻게 향수를 만들노?· 피에르 부르동의 스승과 제자의 불쌍한 이야기· 조향계 최고 금수저는 누구일노?· [인터뷰] 베르트랑 뒤쇼푸르는 어떻게 향수를 만들노?· 조향사를 꿈꾸는 향붕이들 봐라· 커뮤니케이션 오류가 빚어낸 마르지엘라 향수· [인터뷰] 크리스토퍼 셸드레이크는 어떻게 향수를 만들노?· 프랑수아 코티: 역사상 최고의 조향사· 비운의 조향사 크리스 바틀렛 이야기
작성자 : 안태우고정닉
중국이 파로호 명칭을 싫어하는 이유
국군 "제6보병사단"이짱깨군 3개 사단을 섬멸하여당시 대통령은깨트릴 파, 오랑캐 로, 호수"오랑캐를 깨트린 호수" 파로호라 명명함짱꼴라들은 이 명칭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중국외교부 공식채널 차원에서 파로호 명칭을 바꾸라며 지랄 해댔었다.정작 지들은 항미원조니 장진호니 쑈하는 주제에 말이지국내 일각에선 파로호를 뭔 대붕호로 개명해야 한다느니 난리 쳤었는데웃긴건 '원래 이름'이 대붕호라는 주장의 어리석음이다. 파로호는 1944년 조선전업주식회사가 화천발전소를 건설하면서 만든 '인공 호수'다. 그때 이름이 '대명제(大䳟堤)'였다. '명(䳟)'은 민물에서 사는 전설 속 큰 새다. 작명 시기는 일제강점기이고, 작명가는 일본 기업이었다. 대동여지도를 비롯한 그 어떤 고지도에도 대붕호라는 지명이나 지형지물은 보이지 않는다. 당연하다. 호수 자체가 없었는데 무슨 원래 이름이 있다는 말인가.이건 흡사고구려가 수나라와의 전쟁에서 승전한 기념으로패전한 수나라 군인들 해골로 경관(해골)탑을 만들었었는데시간이 흘러고구려를 방문한 당나라 사신이 불편한 기색을 비추자사대주의자였던 고구려 영류왕이 경관탑을 허물어선고구려 무사계급들이 격분해 했었던 것과 비슷하지그리고 이는 고구려에서 큰 반발을 가져와 연개소문이 쿠데타를 일으켜 영류왕을 죽이는 계기가 됨다시 현실로 돌아와서국군은 용문산 전투, 파로호 전투, 파평산 전투, 백마고지 전투, 수도고지 지형능선 전투 등 짱깨군을 갈아버리고 승리해 전선을 사수한국군 1사단은 4월 공세에서 엄청난 병력 열세 하에서도 절대 물러나지 않고 중공군으로 부터 방어진지를 사수했으며, 불가항력으로 진지가 피탈되면 끈질기게 역습을 가해 추가적인 돌파를 저지하고 적 공세탄력을 꺾음으로써 왜 1사단이 "미군이 가장 신뢰한 한국군 사단"이었는지를 입증함은 물론 명예를 지켜냈었다.파평산 전투에 대한 미 육군의 높은 평가는 여러 곳에서 드러난다. 미 1군단장 프랭크 밀번 중장은 1사단이 중공군 5차 공세 기간 미군 사단 수준의 전투수행능력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했으며, 미 1군단 참모장 해럴드 K. 존슨 대령 역시 이에 동의했다. 미 육군의 한국전쟁 전반기 공간사(South to the Naktong, North to the Yalu)를 쓴 로이 애플먼은 중공군 춘계공세를 다룬 Ridgway Duels for Korea에서 사단 중앙 돌파구 형성과 이어진 15연대의 역습 상황을 서술하며 밀번 중장의 판단을 인용하여 1사단이 훌륭하게 싸웠다고 호평했다.미 8군 사령관 제임스 밴 플리트 장군 역시 중공군 4월 공세가 사실상 종료된 29일 기자회견에서 "한국군 제1사단이 지난 1주일간에 발휘한 전투는 그 어느 때의 전투에 비하여도 훌륭한 것이었다. 그들은 매일 밤마다 적의 맹렬한 공격에 맞서 과감히 전투를 벌였고, 작전지역 내의 북한군과 중공군에게 막대한 피해를 안겼다"고 1사단의 전투 수행을 공개적으로 극찬했다.
작성자 : 대갤러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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