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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팬대]도쿄 플라네타리움

장기짝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7.08.26 22:04:03
조회 568 추천 15 댓글 17
														

예전 인연과의 결별 새로운 인연과의 만남 그런 걸 쓰고 싶었던 거 같은데 모르겠당 으헿헿




 조금 전까지 술기운으로 떠들썩하던 목소리들은 어느새 잠잠해졌다. 렌코는 이제 모닥불이 타는 소리만을 들을 수 있었다. 혼자서 그렇게 뜨겁게 타오르는 모닥불을 보자니 이 광활한 우주에서 홀로 남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렌코는 모닥불을 꺼트리고 싶지 않았다. 환송 파티의 친구들이 모두 술기운에 나자빠져 버렸으니 모닥불을 지켜볼 사람이라곤 렌코 뿐이었다. 렌코는 적당한 장작을 하나 더 모닥불에 집어넣었다. 다시금 맹렬하게 타오르는 모닥불에서 연기가 솟아올랐다. 렌코는 무심코 그 연기가 어디까지 올라갈까 궁금해져서 하늘을 쳐다봤다. 별들이 반짝이는 밤하늘에서 렌코는 연기의 행방을 찾을 수 없었다. 무심코 우주까지 올라가겠거니 추측만 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우주까지 올라가서는, 수많은 별들 중 하나까지 닿을지도 몰랐다. 물론 렌코도 그게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생각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뭐해, 렌코? 지금 몇 시인지 보려고?"


 그리고 진짜로 별이 찾아왔다. 호시는 어느샌가 렌코 옆에 나란히 앉아 모닥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언제나 종잡을 수가 없었다. 렌코는 그런 그녀를 괜히 무시하면서 애꿎은 모닥불만 나뭇가지로 쑤셨다.


 "왜 그래. 나랑 말하기 싫어?"


 호시는 그렇게 깔깔 웃으면서 자연스레 렌코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렌코와 달리 노란 머리카락이 렌코의 뺨에 닿았다. 그런데도 렌코는 아무것도 못 느끼는 것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몇 시야?"


 호시가 그렇게 물었지만 렌코는 답하지 않았다. 호시도 손목시계를 차고 있었지만 굳이 그걸 보진 않았다. 렌코가 있었으니까 굳이 볼 필요가 없었다. 그녀도 렌코가 밤하늘에서 뭘 볼 수 있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호시는 일부러 렌코의 팔뚝을 콕콕 찌르며 재촉했다. 렌코도 마지못해 밤하늘을 다시 쳐다보고는 답했다.


 "3시. 3시 10분."


 "아직 9시간 남았네. 교토 가기까지."


 호시는 그런 야속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렌코가 호시와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은 그보다 더 짧은 것도 알면서. 렌코는 날이 밝으면 집에 돌아가야 했다. 렌코는 이미 짐을 다 꾸려놨다. 무거운 짐은 이미 기숙사로 보냈고, 간단한 옷가지만 직접 챙겨서 기차에 타기만 하면 됐다. 이곳 도쿄에서 교토까진 기차로 1시간도 안 걸렸지만 렌코에게는 땅과 별 사이만큼 멀게만 느껴졌다. 렌코는 의미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마지막으로 호시에게 물었다.


 "안 갈 거야?"


 "어딜?"


 호시는 다 알면서도 그렇게 되물었다. 렌코는 그런 호시에게 야속함을 느끼면서도 답했다.


 "교토. 나랑 같이 교토 가자. 호시는 자유로우니까... 굳이 도쿄가 아녀도..."


 사실 거짓말이었다. 렌코는 모닥불을 지키려고 안 자는 게 아니었다. 렌코는 호시에게 한 번 더 부탁하고 싶었던 것이다. 교토에 같이 가자고. 남들이 없을 때, 단둘만 남았을 때. 이럴 때 부탁하면 호시도 생각을 바꿀지도 모르니까. 술을 마시다가 못 버텨 자는 척하는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원래라면 밤새도록 마실 수도 있었다. 그러고도 남을 친구들이었다. 하지만 그 친구들도 눈치는 있었다. 렌코와 호시가 둘만이 남을 수 있게 일부러 자리를 비켜준 게 분명했다. 그 친구들은 렌코에게도 호시에게도 그런 말은 하지 않았지만, 바보가 아니라면 누구라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리고 렌코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 봐야 다 허사라는 걸. 렌코는 이미 호시에게 몇 번이나 애원했다. 태연하게 부탁도 해보고, 울면서 부탁도 해봤다. 협박에 가까운 말까지 하기도 했지만 의미 없었다. 렌코가 진심으로 그러는 게 아니란 걸 호시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호시는 언제나 똑같이 답했다.


 "교토에 가면, 교토 별자리를 봐야지. 도쿄 별자리가 아니라."


 호시는 렌코의 손을 꽉 잡으면서 그렇게 답했다. 


 모닥불은 그 와중에도 야속하게 혼자 타오르고 있었다.




 그렇게 호시는 도쿄에 남고, 렌코는 교토로 왔다. 렌코는 바보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호시가 말한 대로 살아보려고 했다. 교토에서는 교토의 별자리를 찾아보려고 했다. 대학에서 처음 만난 친구들과도 어울리고, 그럴싸한 동아리에도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정신 차려보니 렌코는 신입생들 사이에서도 겉돌고 있었고, 처음엔 그럴싸해 보였던 동아리도 선배들이 하나둘씩 핑계를 대며 빠지기 시작하더니 레밍 떼처럼 탈퇴가 이어져 결국 남은 건 렌코 뿐이었다.

 그리고 모든 게 렌코의 몫이 되어버렸다.


 상황인즉슨 간단했다. 선배들은 각자 할 일이 있다며 동아리에서 발을 빼버렸다. 그 와중에도 관성적으로 학교 축제에 참가 신청을 해버렸고, 축제준비위원회에서는 기계적으로 이를 처리해버렸다. 덕분에 렌코의 동아리는 빈 강의실에서 무언가를 해야 했다. 전시회를 하든, 가게를 열든. 그리고 동아리에 남은 건 렌코 뿐이었다.


 "이미 자리가 확정되어서 어쩔 수 없어요. 이제 와서 공석을 만들면 위약금을 내야 되는데..."


 재무부장은 이마에 볼펜을 콕콕 누르면서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렌코는 그런 재무부장에게 양손을 펼쳐 보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치만 아무도 없는 걸요. 모두 나갔어요. 선배도, 신입생도. 저뿐이란 말이에요. 저 혼자서 동아리 축제를 준비하라고요?"


 "사정은 알겠지만 어쩔 수 없어요. 작년에 그런 식으로 악용한 동아리가 있어서... 축제 지원금만 받아서 유흥비로 탕진하고 동아리를 해산해버렸죠. 그래서 생긴 규정이에요.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돼요. 사소한 거라도 좋아요. 적어도 신입부원을 받을만한 소개회라도..."


 "남아있는 사람도 없고, 신입부원 혼자 남았는데. 무슨 소개회를 해요?"


 "예를 들자면 그렇다는 거죠."


 재무부장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렌코의 시선을 피했다. 평소 칼처럼 단호하던 그녀의 모습과는 너무 대조적인, 비겁하기까지 한 모습이었다. 덕분에 렌코는 깨달았다. 이건 재무부장조차도 어쩔 수 없는 문제라는 걸. 학교의 돈을 함부로 써선 안 된다는 원칙을 재무부장 본인이 어길 순 없었다. 지금 여기서 렌코의 사정을 봐줬다간 누군간 악용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렌코는 더는 화를 낼 기분도 들지 않았다.


 "알겠어요. 그렇담 어쩔 수 없죠."


 "간단한 거라도 좋아요. 원래 동아리 활동과는 상관없어도 되니까... 미안해요. 그 정도밖엔..."


 "그거 다행이네요."


 렌코는 가볍게 쏘아붙이고는 축제준비위원회실을 나왔다. 그게 재무부장의 탓이 아니란 건 그녀도 잘 알았지만 괜히 화를 내고 싶었다. 그녀는 대체 누구 때문에 이렇게 화가 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무책임하게 자기 갈 길만 간 선배들? 어찌할 줄 모르고 덩달아 도망친 신입생들? 아니면 렌코를 따라오지 않은 호시?


 렌코는 하필 그 덕에 호시를 떠올려 버렸다. 지금껏 안 떠올리려고 그렇게나 노력했는데. 덕분에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도쿄의 별자리까지 기억해버렸다.




 렌코는 빈 강의실을 둘러봤다. 렌코의 동아리가, 정확히는 렌코 혼자서 사용해야 할 공간이었다. 적당한 규모의 동아리였다면 평범하게 카페라도 하면 무난할 크기였지만 렌코에겐 너무 넓게만 느껴졌다. 강의실을 몇 번 돌아봐도 무얼 할지 도무지 감이 오질 않았다. 결국 렌코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책상에 걸터앉아 큰 한숨을 내쉬었다.


 "교토 따윈 오는 게 아니었어."


 렌코는 교토에 와서 처음으로 그렇게 말했다. 물론 지금까지 몇 번이고 했던 생각이었지만 입 밖으로 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런 말을 했다간 호시를 떠올릴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렌코는 이미 질릴 대로 질려버렸다. 지금이라도 당장 도쿄로 돌아가고 싶었다. 도쿄로 돌아가서 호시를 만나고, 둘이 함께 도쿄의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싶었다. 호시가 도쿄에 온 뒤로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호시는 언제나 종잡을 수가 없었다. 처음 렌코와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렌코와 친구들이 도쿄의 공허한 벌판에서 자기들끼리 놀고 있을 때 그녀는 그냥 자연스럽게 끼어들었다. 그녀에 대해 물어도 언제나 이해할 수 없는 답변만 돌아왔다. 아버지는 천문학자고, 어머니는 우주인이며, 자기는 우주를 여행하다가 잠시 도쿄에서 쉬어가고 있다나. 그 노란 머리 때문에 일본인인지도 확실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다른 나라 출신이냐면 그런 것 같지도 않았다. 애초에 국적과 나라 자체가 그녀에겐 별로 의미 없는 개념 같았다. 호시는 언제나 자기는 그냥 우주에서 사는 사람이라고 답하기만 할 뿐이었다. 이름조차도 너무 이상해서 렌코가 제멋대로 호시라고 부를 정도였다.


 그리고 가장 종잡을 수 없었던 건, 렌코와 호시가 그렇게나 가까운 사이가 된 것이었다. 렌코와 친구들 중에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심지어 호시 본인도. 그 둘은 그냥 정신을 차려보니 그렇게 친해져 버렸다.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가 없었다. 둘은 틈만 나면 같이 붙어 다니고, 밤에는 함께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호시는 렌코에게 별을 하나하나 가리키며 이야기했다. 그 별이 어떤 별인지, 저 별자리엔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우주인과 천문학자들은 무얼 하는지. 절반 정도는 호시가 지어낸 이야기였고 그나마 나머지 절반도 도통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그래도 렌코는 상관없었다. 호시가 해주는 이야기라 상관없었다. 렌코는 호시 옆에 무릎을 모아 앉은 채로 호시의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밤새 듣곤 했다.


 렌코는 책상 위에 드러누운 채로 호시가 해줬던 이야기를 하나씩 떠올려봤다. 여름의 대삼각형, 별자리 이야기, 우주여행. 차마 말로 하기도 부끄러운 속삭임까지.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렌코는 괜히 얼굴이 달아올라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렇지만 덕분에 렌코는 무언가를 떠올렸다.


 "별자리..."


 렌코는 손을 천장으로 뻗었다. 물론 그 정도로는 천장까지 닿을 리가 없었다. 밤하늘에 손을 뻗어도 별에 닿을 리가 없는 것처럼. 그래도 천장에 펼쳐진 밤하늘을 상상할 순 있었다. 렌코는 교토에 와서 좋은 일이라곤 없었다. 그리고 도쿄의 밤하늘도 볼 수 없었고. 그래서 렌코는 결심했다. 이렇게 된 거, 도쿄의 밤하늘을 여기에 옮겨버리자고.




 렌코는 그 뒤로 축제 때까지 모든 걸 혼자 준비했다. 혹시나 중간에 누가 양심의 가책이라도 느껴서 돌아오지 않을까 살짝 기대도 해봤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렌코는 상관하지 않았다. 어차피 모든 게 그녀 머릿속에 있어서 누가 도와줘도 그걸 알려주고 지시하는 것도 고생이었다. 또 뭣보다 서로 어색하고 불편할 테고. 오히려 와주지 않아 고맙기까지 했다.


 물론 그렇게 생각은 해도 혼자는 힘들었다. 렌코는 재료 조달부터 조립, 설치까지 모두 혼자 해야만 했다. 특히 조명장치를 만드는 게 어려웠다. 별자리는 렌코의 머릿속에 이미 완벽하게 그려졌지만, 다른 사람들도 그걸 볼 수 있게 구현하는 건 역시나 어려운 일이었다. 렌코는 구멍을 하나하나 뚫으면서 호시를 떠올렸다. 렌코가 별자리를 모두 기억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 호시 때문이었다. 호시가 아니었다면, 호시와 나눈 이야기가 아니었다면 별자리 따윈 매일 보더라도 진작에 잊었을 터였다.


 그리고 이건 사소한 복수였다. 지금까지 도쿄의 별자리는 호시 때문에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별자리를 떠올리면 호시만 생각났다. 이제 그런 건 더는 싫었다. 호시가 알려준 별자리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자. 호시도 나를 따라오지 않았으니까 이 정도는 괜찮겠지. 렌코는 그렇게 원망과 추억을 담은 복잡한 심경으로 축제를 준비했다.


 렌코가 비로소 마음에 드는 결과물을 만든 건 축제 시작을 겨우 몇 시간 앞둔 새벽이었다. 그것도 그날 수업을 모조리 빠져가면서 종일 매달리고, 실패작을 수십 개씩 만들고 난 뒤에야 겨우 해낸 것이었다. 렌코는 자기 방에 간신히 돌아가 잠시 눈만 붙일 수 있었다.




 렌코는 학교 축제 시작에 간신히 맞춰 강의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미 다른 유명 동아리에는 사람들이 줄까지 서고 있었지만 렌코의 동아리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렌코는 자신이 만든 검은 반구형 구조물을 마지막으로 한 바퀴 둘러보고 직접 안으로 들어가 보기까지 했다. 안으로 빛이 새어 들어오지도 않았고, 조명장치도 제대로 작동했다. 조명을 쓰지 못할 일이 없도록 건전지도 충분히 갖춰놓았다. 안에는 세 명 정도는 문제없이 들어갈 수 있었고, 여차하면 렌코 본인도 들어가서 설명해줄 수 있었다. 렌코는 이 동아리에서 사람을 많이 모을 거라는 기대도 하지 않았으니 이 정도면 충분했다. 마지막 점검을 마친 렌코는 뿌듯한 표정으로 손을 탁탁 털었다.


 "혼자 다 한 거예요?"


 그렇게 혼자 감상에 빠져 있던 렌코의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며칠 전에 축제 참가 문제로 렌코와 다퉜던 재무부장이었다. 그녀는 동아리들의 참가 현황을 준비하고 있었는지 전자수첩과 펜을 들고 있었다. 자아도취 하는 현장을 들킨 렌코는 약간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윽. 네. 뭐 아무도 안 도와줘서..."


 "...대단하네요. 전에도 이런 걸 만들어봤어요?"


 재무부장은 렌코의 결과물을 한 바퀴 둘러보면서 말했다. 렌코가 살짝 부끄러워하는 것과 달리 정말로 인상을 받은 표정이었다.


 "음. 고향에서 애들이랑 워낙 이것저것 만들어본 적이 있어서요."


 "그러니까 일종의... 천문관?"


 "그런 거창한 건 아니고... 플라나테리움이죠."


 재무부장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전자수첩에 무언가를 적었다.


 "전시 이름은요? 그냥 플라나테리움?"


 "아, 아뇨. 간판도 만들었는데..."


 렌코는 급하게 강의실 한쪽구석으로 달려나가 작은 팻말을 하나 가져왔다. 그 팻말에 적혀 있는 문구를 보고 재무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쿄의 밤하늘... 됐어요. 이 정도면 충분했어요. 사실 훨씬 더 엉망일 줄 알았는데."


 "어, 딱히 안 이용해봐도 돼요?"


 "다른 동아리도 들러야 해서요. 그래도... 솔직히 놀랐어요."


 "칭찬으로 받아들일게요."


 "칭찬 맞아요."


 재무부장은 그렇게 말하고는 다른 교실로 향했다. 렌코는 묘하게 쑥스러운 느낌을 받아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여전히 혼자서 축제를 버텨야 하는 상황은 바뀐 게 없었지만.




 칭찬을 받아 기쁜 것도 잠시, 렌코는 밀려오는 무료함과 싸워야 했다. 렌코는 혼자라서 다른 동아리들과 달리 복도나 광장에서 호객행위를 할 수도 없었고 자리를 오래 비울 수도 없었다. 플라네타리움 옆에 의자를 갖다 놓고 앉아있는 것 외에는 할 일도 없었다. 렌코도 일단 동아리 문제를 해결하고는 의욕이 빠져서 적극적으로 나설 기분이 들지 않았다. 결국 방문객 몇 명이 관심을 두고 기웃거리긴 했지만 직접 이용해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단 두 명을 빼고는.




 첫 번째 손님이 왔을 때 렌코는 아예 거의 잠들기 직전이었다.


 "저기... 지금 들어갈 수 있나요?"


 "네? 아, 네! 들어갈 수 있어요!"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렌코는 허겁지겁 의자에서 일어나면서 흘러내리던 침을 닦았다. 워낙 허둥지둥하느라 렌코는 손님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부랴부랴 플라네타리움 입구를 만지작거렸다.


 "플라네타리움인가요? 도쿄의 별자리..."


 "네! 간단한 플라네타리움인데... 어?"


 플라네타리움 입구를 열고 비로소 손님을 쳐다본 렌코는 순간 넋이 나가버렸다. 그녀의 눈에는 노란 머리카락이 제일 먼저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호시를 떠올리게 하는 머리카락. 렌코는 아무 말 없이 손님을 뚫어지라 쳐다봤다. 다만 호시처럼 노란 머리카락을 지니긴 해도, 호시라면 절대 입지 않았을 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호시는 언제나 바지를 입었다. 우주에서 누가 치마를 입겠냐면서. 그렇게 렌코가 손님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하자 정작 당황한 건 손님 쪽이었다. 손님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렌코에게 다시 물었다.


 "저기요?"


 "아, 네?"


 "그냥 들어가면 되나요? 따로 준비할 거라도...?"


 "어...없어요! 괜찮아요! 그냥 바로 들어가시면 돼요!"


 손님의 말에 간신히 정신을 차린 렌코는 고개를 성급히 끄덕이면서 플라네테리움의 입구를 열었다. 몸을 크게 숙이고 무릎도 굽혀야 겨우 들어갈 만한 자그마한 입구였다. 마음만 같아선 렌코도 더 크게 만들고 싶었지만 혼자 구조물을 만들어야 해서 어쩔 수가 없었다. 렌코는 직접 시범을 보이기 위해 먼저 입구를 통과하고 안에서 손님을 기다렸다.


 "생각보다... 좁네요. 아야, 꺅."


 노란머리의 손님은 결국 입구에 머리를 한번 부딪치고 나서야 플라네타리움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렌코는 손님이 자신의 옆에 제대로 자리 잡기까지 기다렸다가 물었다.


 "음... 제가 설명해드리는 게 낫겠죠?"


 "네?"


 "별자리... 제가 설명할까요? 혹시 다 알고 계시면..."


 "어... 원래 어쩌려고 하셨는데요? 다른 손님들은 어땠는데요?"


 렌코가 정작 플라네타리움 안에서 우물쭈물하자 손님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렌코는 어둠 속에서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변명했다.


 "그게... 첫 손님이셔서..."


 "아."


 손님도 순간 말문이 막혀서 답하지 못했다. 잠시 어색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말문을 다시 연 건 손님 쪽이었다.


 "그럼... 설명해주실래요? 전 일본 별자리는 잘 몰라서..."


 "아, 네! 그럴게요!"




 렌코는 부랴부랴 자기 앞에 놓인 조명기구에 손을 뻗었다. 조명기구는 더없이 간단했다. 간단한 조리용 그릇에 구멍을 뚫고 그 안에 광원을 설치한 정도였다. 물론 그런 간단한 기구도 그럴싸한 별자리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렌코가 수많은 착오를 거쳐야만 했다. 그녀가 스위치를 켜자 광원에서 내뿜는 빛이 구멍으로 새어 나와, 검은 천장과 벽으로 퍼졌다.


 그렇게 도쿄의 별자리가 둘의 주위에 펼쳐졌다.




 렌코가 만든 플라네테리움은 좋게 말해도 조잡한 수준이었다. 도쿄의 밤하늘을 제대로 재현하는 건 당연히 무리였고, 인상적인 별자리만 식별하는 게 고작이었다. 렌코도 딱 그 정도만을 기대하고 있었고. 손님도 딱히 실망한 기색이 없이 렌코의 설명을 귀 기울여 듣고 있었다. 중간중간 렌코에게 질문까지 던질 정도였다. 다소 엉뚱한 질문들까지 포함해서.


 "남십자성은 없나요?"


 "네?"


 "아, 혹시 일본에선 보이지 않나 했어요. 제 고향에선 본 적이 없어서..."


 "외국에서 오셨어요?"


 손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렌코는 가볍게 피식 웃으며 답했다.


 "도쿄에서도 안 보여요. 충분히 남쪽은 아니라서. 일본에서도 볼 수 있는 곳은 있다지만. 거의 최남단으로 가야 할 거에요."

 "아, 그랬군요. 일본에 오고 나서 본 적이 있어서 당연히 볼 수 있을 거라고..."


 "남십자성이요? 일본에서 봤다고요?"


 "앗. 아... 아뇨. 다른 데서 봤어요."


 손님은 갑자기 대답을 얼버무렸다. 무언가 말해선 안 될 걸 무심코 말한 것처럼. 렌코는 어딘가 찝찝한 느낌을 받았지만 손님에게 더 캐묻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그녀는 지금 도쿄의 별자리를 설명하기 위해 여기 앉아있었으니. 렌코는 자신의 미묘한 기분은 치워두고 하던 설명을 이어나갔다.




 렌코가 설명을 끝낸 건 10분쯤 후였다. 손님은 렌코의 이야기가 퍽이나 마음에 들었는지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그녀는 렌코에게 질문을 더 던졌다.


 "도쿄의 별자리, 여기와는 많이 다른가요?"


 그 질문에 렌코는 어깨를 으쓱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별 차이 없을 걸요?"


 "그럼 왜 하필 도쿄의 별자리로 플라네타리움을...? 아, 혹시 이 동아리 천문부인가요? 아니면 도쿄 관련된..."


 렌코는 이번엔 쓴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딱히 그런 건 아니에요. 사실 이 동아리가 이제 뭐 하는 동아리인지도 전 잘 모르겠네요."


 "네?"


 손님은 당연히 렌코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렌코는 그런 손님에게 조금 전까지 별자리를 설명하던 것처럼 지금까지의 사정을 하나하나 다 설명하기 시작했다. 동아리에 렌코 혼자 남았던 사연, 렌코가 혼자서 동아리 행사를 진행하게 된 사연, 그리고 누가 렌코에게 도쿄의 별자리를 알려주고 그게 렌코에게 중요한 이유까지. 물론 호시와의 사적인 이야기는 조금 빼고. 손님은 그 모든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 깊은 인상을 받은 것 같았다.


 "심하네요. 모두 혼자 준비해야 했다니."


 "별수 없죠. 혼자 남으면 혼자서라도 해야죠."


 "도쿄의 친구 생각도 많이 났겠네요. 굉장히 친했던 거 같은데. 그 친구를 생각하면서 만든 건가요?"


 "아... 뭐. 그렇죠."


 렌코는 갑자기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었다. 손님에게 호시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얼마나 가까운 사이인지는 대충 얼버무렸기 때문이었다. 약간의 복수도 겸했다는 이야기도 빼먹었고. 플라네타리움 안이 어두운 덕에 손님은 그런 렌코의 미묘한 변화는 깨닫지 못했는지. 자기 무릎을 더욱 끌어안았다.


 "저도 그런 친구가 있었으면 했어요."


 "친구요?"


 "그냥 별 이야기도 하고... 좀 엉뚱한 이야기도 같이할 수 있는 친구요. 그런 친구가 없었어요. 그것도 내 탓이긴 하지만..."


 "왜요? 왜 자기 탓을..."


 "제가 좀 엉뚱해서요. 이상하다고 해야 하나...? 내 정신 좀 봐. 왜 이런 소릴 하지?"


 손님은 무안하게 웃었다. 렌코는 하필 그 웃음 때문에 호시를 다시 떠올려버렸다. 호시는 항상 엉뚱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렌코와는 이상하게 잘 통했다. 렌코가 밤하늘에서 시간을 알 수 있다는 엉뚱한 이야기조차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일 정도로, 호시는 너무 엉뚱해서 렌코와 잘 통하는 친구였다. 그래서 렌코는 호시와 계속 함께했으면 했고. 렌코는 무심코 눈앞의 손님에게 말해버렸다.


 "저한텐 말해도 괜찮은데. 저 엉뚱해요."


 "네?"


 "아... 아뇨. 그게. 저도 지금 그 친구랑 못 만나니까. 그런 이야기를 할 친구가 없어서... 아니, 딱히 꼭 그런 이야기는 아니고. 그냥 저도 지금 딱히 말동무가 없어서."


 손님은 렌코의 우발적인 발언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렌코도 자신의 충동적 발언에 당황해 횡설수설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손님은 그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묵묵히 듣다가 가볍게 웃었다.


 "알았어요. 한번 생각해볼게요."


 "어, 네?"


 "진짜 엉뚱한 이야기라 저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해서... 생각해보고 다시 올게요."


 "아, 네! 얼마든지 생각해보세요!"


 렌코는 그저 고개만 끄덕거렸다. 자신도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지만 상관없었다. 사실 그녀도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교토로 오는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쭉.




 렌코와 손님은 살짝 얼굴이 붉어진 채로 플라네타리움에서 기어나왔다. 들어갈 때와는 반대로 손님이 먼저 입구로 기어나가고, 그 뒤를 렌코가 조심스레 따라 나왔다. 둘은 일어서서 각자 옷을 털고 어색하게 웃었다. 손님은 약간 우물쭈물하면서 렌코를 칭찬했다.


 "어... 덕분에 재밌었어요. 아쉽네요. 이렇게 멋진데 다들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아서."


 "그래서 다행이죠. 인기가 많으면 사람들에게 일일이 설명하느라 죽어 나갔을 거에요."


 "그럼 저도 괜히 왔나요?"


 "아, 그... 그건 아니고! 그래도 와주시면 좋죠!"


 렌코가 허둥지둥 양손을 흔들며 변명을 하자 손님은 킥킥 웃었다.


 "그럼 내일도 혼자서 여기 지키시는 거예요?"


 "아마... 그렇겠죠?"


 "아쉽네요. 축제를 좀 더 즐기면 좋을 텐데. 혼자라서 바꿔줄 사람도 없고..."


 렌코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그녀도 이미 혼자서 여러번 했던 생각이었다. 하지만 렌코는 굳이 그 생각에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렌코는 이미 교토로 왔고, 그건 되돌릴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렌코는 잘못된 동아리를 선택했고, 그것도 되돌릴 수 없었다.


 "어쩌겠어요. 잘못된 동아리를 선택한 탓이죠."


 그리고 렌코와 손님은 어색한 작별인사를 주고받았다. 렌코는 플라네타리움 안에서 자신이 했던 제안을 손님이 기억하고 있을지 궁금했지만 굳이 다시 묻지는 않았다.




 첫 손님이 그렇게 떠난 후 렌코는 다시 플라네타리움 앞에 앉아 시간을 때워야 했다. 다행히도 렌코가 슬슬 지루해질 때쯤, 다음 손님이 찾아왔다. 다만 불행히도, 렌코에게는 불편한 손님이었다.


 "안뇽? 오랜만이야."


 "엥?"


 난데없이 들려온 친근한 인사에 고개를 든 렌코는 어안이 벙벙해질 수밖에 없었다. 렌코의 눈앞에는 노란 머리에 헐렁한 티셔츠, 꽉 끼는 바지를 입은 소녀가 서 있었다. 렌코는 처음에 자신이 헛것을 본 줄 알았다. 첫 손님에게서 호시를 겹쳐본 것처럼. 하지만 이번엔 아니었다.


 "어라? 렌코? 나 기억 안 나? 나야, 나. 호시. 아니 정확히는 내 이름은 아니지만. 넌 그렇게 불렀잖아. 어라, 벌써 잊었나? 하하."


 그리고 태연하게 싱글벙글 웃으면서 인사하는 그녀를 보자 렌코의 속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는 점이나, 이제 와서 잘도 그렇게 웃으면서 나타났다는 점이나. 모든 게 렌코의 속을 박박 긁어놓았다.


 "와, 진짜 잊었나 보네. 그래도 우리 그렇게 친한 사이였는데. 너무한다."


 결국 렌코는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게 네가 할 말이냐?!"




 "빨리 들어가! 어서!"


 렌코는 눈앞의 호시의 엉덩이를 계속 밀어 넣으면서 불평했다. 호시는 그 와중에도 싱글벙글 웃으면서 대응했다.


 "아야, 렌코. 너무 보채지 마. 안그래도 너무 좁아서..."


 "내가 그딴 거 신경 쓸까 보냐? 궁시렁대지 말고 어서 들어가기나 해!"


 "렌코, 오랜만에 봤는데 너무 각박하네..."


 "그게 누구 탓인데?"


 "아, 그거 혹시 내 탓이라는 거야? 하하, 렌코도 참."


 "얼른 들어가기나 해!"


 렌코가 한 번 더 엉덩이를 밀자 호시가 플라네타리움 안으로 미끄러지듯이 들어갔다. 렌코도 그 뒤를 따라 재빨리 안으로 들어가고 문을 닫았다.


 "렌코, 그렇게 소리를 지르면 여기 들어온 의미가 없잖아."


 "너 지금 일부러 그러는 거지?"


 "못 보던 사이에 날카로워졌구나. 교토 생활이 그렇게 각박했던 걸까?"


 "반쯤은 너 때문이야. 아니 거의 전부 네 탓."


 렌코는 계속해서 높아지는 언성을 참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호시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통에 복도에서까지 시선이 쏠리는 통에 둘은 플라네타리움에 급한 대로 피신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렌코는 진정할 수가 없어서 얼굴이 불으락푸르락해졌다. 호시는 그 와중에도 속 편하게 계속 웃기만 하면서 렌코를 어린이처럼 대했다.


 "이야, 이거 렌코 네가 만든 거야? 동아리에서 만든 거? 어디, 이렇게 키면 되나?"


 "어, 잠깐! 만지지 마!"


 "앗, 켜버렸다. 오. 대단하네. 어, 그러고 보니 도쿄의 밤하늘이랬나? 앗. 그럼 혹시... 아, 하하."


 "으..."


 조명이 켜지고 플라네타리움의 내부에 도쿄의 별자리가 펼쳐지자 호시는 갑자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도쿄의 별자리가 렌코에게 무슨 의미인지는 그녀가 제일 잘 알았으니까. 게다가 렌코와 단 둘이서 있는 지금, 그때 생각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었다. 렌코는 얼굴이 더 벌게져서 도저히 버티지 못하고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저기 렌코. 그렇게까지 부끄러워할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시끄러. 다 너 때문이야. 그냥 뜬금없이 나타나서는..."


 "알았어. 미안해. 갑자기 나타난 것도. 널 안 따라온 것도. 그 외에 내가 모르는 것도 다 미안해."


 호시는 렌코에게 살며시 다가가서 어깨를 토닥였다. 렌코는 코를 훌쩍이면서 빨개진 눈가를 손으로 연신 비볐다. 그렇게 보고 싶었던 친구인데 정작 보고나니 섭섭한 기분이 먼저라서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렌코는 그런 자신의 속마음을 숨기려고 괜히 더 날카롭게 물었다.


 "그래서, 왜 갑자기 찾아온 거야? 도쿄에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 안 그래도 우주여행을 시작했거든. 그 와중에 교토를 지나가다 마침 네 생각이 났지 뭐야. 그래서 무작정 학교로 와봤지. 그런데 축제중이길래 혹시 렌코도 뭘 하지 않을까 궁금했지. 그래서 좀 둘러봤더니 웬걸, 렌코가 뚱한 얼굴로 앉아있지 뭐야. 아, 그 전에 누구랑 이야기하는 것도 봤는데. 혹시 새 친구?"


 "...손님. 그냥 손님이야."


 "그래? 아쉽다. 예쁘던데. 노란 머리도 귀엽고."


 "벌써 추근대는 거야?"


 "하하, 그럴 리가. 말했잖아. 우주여행 중이라고."


 "우주 여행 중이라니. 그게 뭐야..."


 "뭐긴 뭐야. 말그대로지. 지구도 우주. 그러니까 지구 여행은 우주여행이지."


 "넌 정말 안 변했구나..."


 렌코의 그 말에 호시는 갑자기 깔깔 웃었다.


 "그럴 리가. 도쿄에서 재밌게 잘 사다가 갑자기 여행하는 이유가 뭐겠어? 렌코 네가 도쿄에 없으니까지."


 "뭐어?"


 그 말에 간신히 식었던 렌코의 얼굴이 다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플라네타리움의 미약한 조명에서도 렌코의 얼굴빛이 변하는 건 확연히 드러났다. 호시도 그걸 눈치채고 다시 난처한 웃음을 지었다.


 "렌코, 왜 그래? 뭐가 그렇게 부끄러워서 그래?"


 "아... 아니. 그냥 내 생각 같은 건 안 할 줄 알았지."


 "응? 내가? 그럴 리가 없잖아."


 "그...그렇지만 내가 같이 교토에 가자고 했을 땐..."


 "아, 그거 거절해서 그런 거야? 아, 그거 아직도 신경 쓴 거였어? 하하. 이건 내가 실수했네."


 호시는 푸핫 웃음을 터트렸지만 그녀의 얼굴도 덩달아 렌코만큼 붉어졌다. 렌코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자신의 무릎을 더욱 강하게 끌어안았다.


 "뭐가 실수란 거야?"


 "그때 제대로 말 안 한 거. 딱히 렌코 네가 싫어서라거나, 보기 싫어서 그랬던 게 아냐. 렌코 널 따라가지 않은 건... 짐이 될 것 같아서였거든."


 "그게 무슨 뜻이야?"


 "우리가 서로 했던 이야기 기억해?"


 "그런 걸 어떻게 일일이 다 기억해? 한두 개도 아니고."


 "별을 보면서 했던 대화."


 "그러니까 그게 한두 번이야? 우린 매일 별을 봤어."


 "하긴. 그렇네. 그리고 이야기만 한 것도 아니었지. 안 그래?"


 "윽. 징그러워. 저리 떨어져."


 호시가 살짝 짓궂은 미소를 지으면서 다가오자 렌코는 다시 얼굴을 붉히면서 살짝 뒤로 물러났다. 덕분에 렌코는 자신이 호시와 어떤 사이였는지 다시 기억할 수 있었다. 렌코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옛 기억을 머릿속에서 밀어냈다. 그렇게 옆으로 밀어낸 기억 대신 새로운 기억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렌코와 호시가 언제나처럼 별을 보면서 대화를 나누던 기억이었다. 렌코는 그때 자신의 꿈을 말했다. 언젠가는 도쿄를 벗어나서 더 많은 걸 배울 거라고. 호시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이내 렌코가 진지하다는 걸 그녀도 느낄 수 있었다. 호시가 우주로 가고 싶어하는 것처럼, 렌코도 도쿄보다 넓은 세상을 탐험하고 싶어했다.


 "이제 기억나?"


 "뭐, 대충은. 그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어?"


 "렌코랑 한 건 다 기억하는데."


 "잘도 그런 말을...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는 건데. 내가 도쿄로 벗어나고 싶었던 거랑 네가 안 따라온 거랑 무슨 상관인데?"


 "이런 말 하긴 미안한데... 렌코가 진짜로 교토에서 대학을 다닐 줄은 몰랐지."


 "가족들도 그랬지. 시험 칠 때도 다들 헛고생이라고 하더라."


 "그런데 렌코가 떡하니 대학에 붙으니 나도 고민하게 된 거야. 이대로 계속 도쿄에 있을까, 그냥 렌코를 따라갈까... 아니면..."


 "...그래서 우주를 가겠다고?"


 "정답. 그래서 렌코를 못 따라가겠다고 한 거야. 서로 가고 싶은 길이 다르면 갈라져야지."


 호시는 렌코에게 손가락으로 총을 쏘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렌코로서는 여전히 알듯말듯 기묘한 설명이었다.


 "그럼 교토의 별자리 운운은 뭐였는데?"


 "감성적으로 표현한 거야. 우주적 감성이랄까. "


 "넌 정말 이상하구나..."


 "남의 이름을 맘대로 줄여서 부르는 렌코가 할 말은 아니야. 알잖아. 내 원래 이름 호시가 아닌걸. 너가 그냥 다짜고짜 호시라고 불렀잖아. 원래 이름은 너무 길고 외우기 어렵다고. 별을 좋아하니까 그냥 호시라고 부르겠다고. 처음 그 소리 들었을 때 얼마나 황당했는지 몰라."


 "그건 인정. 그렇지만 너뿐이었어."


 "뭐가?"


 "이름을 줄여서 부른 거. 호시 너만 그렇게 불렀어. 알고 있었어?"


 "당연히 알고 있었지. 처음부터."


 그리고 호시와 렌코는 서로에게 씨익 웃어 보였다.




 렌코와 호시는 잠시 뒤에 플라네타리움에서 기어 나왔다. 다행히도 렌코의 동아리에 아직도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렌코와 호시는 플라네타리움 앞에 서서 다시 서로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먼저 입을 연 건 렌코였다.


 "이제 어쩔 거야?"


 "나? 난 렌코한테 말한 대로 해야지.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별자리를 봐야지. 언제까지나 도쿄의 별자리만 볼 순 없으니까."


 "너답네."


 "렌코는?"


 "글쎄. 일단 대학을 다니고... 모르겠네. 막막해."


 "그렇다고 도쿄의 별자리에 언제까지고 매달리진 않을 거지?"


 "그래야지 뭐."


 "미안해. 렌코랑 교토에 눌러앉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네가 말했잖아. 교토에선 교토의 별자리를 보라고."


 "그랬지."


 호시는 피식 웃었다. 렌코도 이젠 그런 미소가 딱히 얄밉지 않았다. 진작에 그렇게 느꼈어야 했는데. 너무 오랫동안 거기에 얽매였던 것 같아 한심했다.


 "그럼 난 갈게. 축제 언제까지지? 내일인가? 고생하겠구나. 누가 도와주러 오면 좋겠는데."


 "그러게. 너처럼 괴짜 같은 친구가 있으면 좋겠는데."


 "렌코 너만큼 엉뚱해야 할 텐데."


 "그것도 그렇지."


 호시는 그러고는 등을 돌렸다. 그리고 호시가 교실을 나서기 바로 직전, 렌코가 갑자기 외쳤다.


 "아, 맞다. 진짜 마지막으로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응? 그게 뭔데?"


 "교토의 별자리. 도쿄랑 달라?"


 "뭐? 하하!"


 호시는 그 질문에 갑자기 엉뚱한 웃음을 터트렸다. 렌코는 호시의 그런 반응에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왜? 뭐가 그렇게 웃겨?"


 "교토에서 별자리 본 적 없어?"


 호시의 질문에 렌코는 어깨를 으쓱했다.


 "딱히. 그냥 볼 생각이 안 들었어."


 "내 생각날까 봐?"


 "그렇다고 치지 뭐. 애초에 볼 수 있기나 한지도 모르겠네. 도쿄처럼 밤하늘이 맑질 않으니까."


 "하긴. 뭐... 달라 봐야 얼마나 다르겠어? 위치나 조금 다르겠지."


 "그걸 알면서 도쿄의 별자리니 교토의 별자리니 그런 거야?"


 "비유였어. 비유."


 "넌 정말이지."


 "어때, 괜찮잖아. 그래도 다르기야 하겠지. 그렇게 달라지다 보면 북두칠성이 안 보이고, 남십자성이 보이겠지. 말 나온 김에 나도 남십자성이나 보러 갈까?"


 "넌 정말 속도 편하다."


 "안 그러면 우주에서 못 살지."


 호시는 그러고 손을 가볍게 흔들고는, 이번에야말로 교실 밖을 확실히 나갔다. 렌코는 다시 플라네타리움과 함께 교실에 홀로 남았다. 이제 더는 별 의미도 없는 도쿄의 별자리와 함께.




 호시가 다녀간 뒤로 렌코의 동아리에 찾아온 손님은 없었다. 플라네타리움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은 종종 있었지만 직접 들어가 보는 사람들은 없었다. 렌코는 그때마다 사람들에게 플라네타리움에 대해 설명만 해줬다가 다른 손님이 관심을 보이기까지 기다리고, 또 누군가 관심을 보이면 설명했다가 다음 손님을 기다리는 일을 반복해야만 했다.


 그렇게 축제 첫날이 끝나고, 다른 동아리들은 제각각 술자리를 가지러 놀러 갔지만 렌코는 혼자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전 같았으면 외로움을 느낄만한 상황이었는데도 그녀는 어쩐지 홀가분해졌다. 호시도, 별자리도, 동아리도 이젠 아무래도 좋게 느껴졌다. 렌코는 자신의 첫 손님이었던 금발의 소녀만 신경 쓰였다.




 다음 날의 학교 축제도 렌코에겐 지루하게만 느껴졌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몇몇 손님들이 관심만 보일 뿐, 직접 플라네타리움 안에 들어가는 손님들은 없었다. 그렇게 점심시간이 다 되어갈 때쯤, 지루해하던 렌코에게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오늘도 혼자에요?"


 렌코의 첫 손님이자 호시를 제외하면 유일한 손님이기도 했던 바로 그 금발의 손님이었다. 한 손에는 음료수 두 병이 담긴 봉투를 들고 있었다. 렌코는 그 봉투를 보자마자 그녀가 다시 온 이유를 깨달았지만 내색하지 않고 가볍게 웃었다.


 "그러게요. 다행히도 손님은 더 없었어요."


 "그럼 저뿐이었어요? 아쉬워라. 괜찮았는데."


 "뭐, 정확히는 한 명 더 왔다 갔는데... 교토에서 온 친구였어요. 그 친구가 별자리를 알려준 거라서 할 말도 없었죠. 그러니 진짜 손님은 한 명이었던 셈이죠. 오늘은 무슨 일로 오셨어요? 한 번 더 보실래요?"


 "아, 딱히 그런 건 아니고... 혹시 목 안 마르세요? 음료수가 있어서..."


 "저야 고맙죠."


 소녀가 봉투를 들어 올리자 렌코는 망설이지 않고 넙죽 받았다. 소녀는 뭔가 어색한지 시선을 피하고 자신의 금색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면서 우물쭈물했다.


 "저기, 어제... 이상한 이야기 해도 된다고 하셨잖아요. 그게... 진짜 황당한 이야기인데, 괜찮나요?"


 "얼마나 황당한데요?"


 "글쎄, 어느 정도라고 해야 하지..."


 여전히 우물쭈물하면서 망설이는 소녀에게 렌코는 살짝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물었다.


 "별을 보고 시간을 알거나, 장소를 알 수 있다는 이야기 정도로 황당해요?"


 "네? 뭐...그 정도로 황당해요."


 소녀는 렌코의 말에 두 눈을 동그렇게 뜨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무슨 이야기인데요? 여기 앉아도 돼요."


 렌코가 근처에 있는 빈 의자를 끌어당기자 소녀는 조심스레 거기 앉았다. 의자에 앉아서도 소녀는 여전히 무언가를 망설이고 영문 모를 말만 우물쭈물거렸다.


 "그게... 꿈 이야기인데요. 너무 황당해서... 민폐 아닐까 싶어서... 어제 그런 이야기도 좋다고 하셨는데..."


 "남의 꿈 이야기는 민폐죠. 전 그래도 그런 민폐도 좋아요."


 "어제... 밤에 꿈을 꿨는데요. 꿈에서 밤하늘을 봤어요. 별거 아닌데... 전에는 남십자성을 봤는데. 어제는 플라네타리움과 똑같은 걸 봤어요... 아마 교토였던 것 같아요. 어제 플라네타리움에서 알려주셨잖아요. 그거랑 배치가 똑같았던 것 같아요. 아마도요. 그냥 그렇게 착각한 걸지도 모르지만..."


 "꿈에서 교토의 별자리라..."


 렌코는 소녀의 이야기에 갑자기 흥미를 느꼈다. 꿈에서 별자리를 보다니, 별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였지만 이상하게 끌렸다. 예전에 호시와 나눴던 이야기처럼. 렌코는 호기심이 동해 소녀에게 더 캐물었다.


 "그래서, 주위는 어땠어요? 교토는 어땠어요? 별은?"


 "아, 그게... 꿈에선 공터였던 것 같은데... 모닥불이 피어오르고... 수풀이 우거지고..."


 소녀는 그렇게 하나하나 렌코의 질문에 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대답을 들으면서 렌코의 호기심은 더 커졌다. 신기하게도 소녀는 렌코가 호시와 별을 보던 바로 그곳에 있었던 것 같았다. 렌코가 세세한 사실을 물어도 소녀는 진짜로 본 것처럼 줄곧 대답해냈다. 소녀가 렌코의 뒤를 캐기라도 했던 것일까, 너무 황당한 이야기였다. 그래서 렌코는 더욱 흥미가 생겼다.


 "저기요, 혹시... 다른 꿈 이야기도 있어요?"


 "네. 전에 남십자성 본 적도 있고... 이상한 곳에 떨어진 적도 있고... 근데 말할 사람이 없었어요. 누군가에게 말해보고 싶었는데, 다들 들어도 황당하다고만 하고."


 "그럼, 지금 같이 밥 먹으러 갈까요? 밥 먹으면서 천천히 이야기도 하고... 더 들어보고 싶거든요. 그쪽 꿈 이야기. 맞다, 사실 저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아주 황당해요. 그러니까..."


 "그렇지만... 동아리는요?괜찮아요?"


 소녀는 플라네타리움을 살짝 바라보면서 물었다. 렌코는 소녀가 무얼 걱정하는지를 깨달았다. 동아리에 렌코 뿐이었으니 플라네타리움을 지킬 사람도 렌코 뿐이었다. 어제는 말짱 꽝이었지만 더 손님이 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내 렌코는 마음을 굳혔다. 어제 호시와 작별한 뒤로 교토의 별자리는 렌코에겐 별 의미가 없어졌다. 이제 눈앞의 소녀에게서 이야기를 더 듣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꿈속에서 영문 모를 장소에 떨어진 이야기를.


 "상관없어요. 이제 교토의 별자리 따윈 아무래도 좋아서."


 "네? 정말요? 갑자기 왜..."


 "더 재밌는 게 있으니까요. 어서 가요. 사실 아까부터 배가 고파서 얼른 먹고 싶거든요. 그래서 아까 무슨 이야기 중이었죠? 남십자성 이야기였나? 그러니까... 어... 그러고 보니 이름을 모르네요. 제 이름도 말 안했던가요? 전 우사미 렌코에요."


 "아, 전 마에리베리 한이에요."


 렌코는 소녀의 이름을 듣고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음. 어려운 이름이네요."


 "많이들 그러더라고요."


 "다른 부르기 좋은 이름이 없을까... 그렇지, 그래서 남십자성이 어땠다고요? 메리?"


 "네? 아, 그러니까..."


 렌코는 소녀를 무작정 메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왜 그랬는지는 정작 자신도 알지 못했지만 그렇게 불렀다. 마에리베리 한, 메리도 그 기세에 휩쓸려 뭐라 대꾸하지도 못하고 자기 꿈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렇게 둘은 황당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식당으로 향했다. 앞으로 그 둘이 더욱 황당한 일을 경험하리라곤 둘 중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끝.







흠 대학생 신입생 때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도 이제 다 연락이 끊겼군. 이건 내가 아싸인 탓이지만


뭐 비봉클럽도 이런 식의 인연의 하나 아닐까 싶어서 써본 이야기인 듯 아닌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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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닉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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