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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팬대]녹슨 철로

장기짝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7.08.27 22:55:13
조회 489 추천 10 댓글 11
														

 트럭은 쉬지않고 위 아래로 덜컹거렸다. 렌코는 그런 트럭이 익숙했는지 태연히 자리에 앉아있었지만 메리는 천장에 달린 손잡이를 꽉 붙잡고 있어야만 했다. 운전이 난폭해서인지, 아니면 포장도로 상태가 나빠서인지 메리로서는 이유를 확신할 수가 없었다. 그런 난폭한 운전의 주인곤인 렌코의 사촌 언니는 호탕하게 웃으면서 기어를 바꿨다.


 "렌코는 여전하구나. 대학생이 되어서도 이렇게 쏘다니다니. 어릴 적에도 그냥 목적지도 없이 훌쩍 걸어다녀서 아주 가족들이 골치를 썩였지. 몇살 때였지? 하여튼 어릴 적에도 이 근처까지 걸어와서 다들 찾아헤맸는데 기억 나니?"


 "에이, 과장하지마. 언니는 항상 그런 식이라니까. 내가 어떻게 혼자 여기까지 와? 트럭으로도 한참 걸리는구만."


 "아, 여기까진 아녔나? 그렇네. 그래도 꽤나 멀리 나가긴 했어. 아빠가 나도 한밤중에 깨워서 너 찾으러 같이 나갔다니까? 너 근데 어디서 찾았는지는 기억나?"


 "글쎄, 그 뒤로 혼난 기억밖에 안 나."


 렌코의 시큰둥한 대답에 사촌 언니는 더욱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맞아! 너 그때 엄청 혼나서 엄청 울었지. 나도 너한테 화 좀 내고 싶었는데 너가 너무 질질 짜서 그러질 못하겠더라고. 하여튼 그래, 그때 너 찾은 데가 철도 옆이었어. 알고보니 넌 그냥 철도 따라서 쭉 걸었다지 뭐야! 폐쇄된 노선이라 다행이었지, 안 그랬다간 큰일날 뻔했다니까."


 "으음... 난 기억 안 나는 걸. 애초에 제대로 기억하는 거 맞아? 언니는 항상 과장이 심해서 못 믿겠어."


 "이따 집에 돌아가서 큰 아버지에게 물어보렴. 너 말곤 다 기억할 걸?"


 사촌언니의 폭소에 맞춰 트럭이 다시 덜컹거렸다. 렌코는 사촌언니와 메리의 중간 자리에서 용캐도 자세를 잡고 있었지만 메리는 하마터면 창문에 얼굴을 부딪칠 뻔했다. 그런 메리의 불편을 비로소 눈치챘는지 사촌언니가 화제를 바꿨다.


 "그런 렌코가 용캐도 이런 친구도 데려올 줄은 몰랐네. 저기, 렌코만큼 괴짜에요? 렌코가 이런 괴짜인 줄은 알았어요? 그렇지, 렌코가 한번은 뭘 했는지 알아요?"


 "언니, 그만해. 난처해하잖아. 언니 말은 무시해도 돼, 메리."


 "왜, 친구도 네 어릴 적 이야기 듣고 싶어할 거 같은데? 안 그래요?"


 메리는 살짝 망설이다가 자그맣게 답했다.


 "뭐, 궁금하긴 해요."


 "윽, 메리!"


 메리의 대답에 렌코의 얼굴이 살짝 붉게 물들었다. 언니는 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지, 렌코 이야기는 아직도 한 보따리 남았으니 걱정할 거 없어. 가는 동안 해도 끝이 없을 걸."


 "아아, 정말. 언니한테 태워다 달라는 게 아니었어."


 렌코의 볼멘 소리에 트럭이 또 덜컹거렸다.




 렌코와 메리의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렌코의 사촌 언니는 렌코가 가족 행사에도 항상 늦어서 혼나던 이야기를 하던 참이었다.


 "아이고, 아쉬워라. 아직도 할 이야기 많은데 벌써 와버렸네."


 "아니, 더 안해도 되거든? 이미 없는 이야기까지 다 지어서 했으면서."


 렌코는 사촌 언니에게 입술을 삐죽 내밀면서 트럭에서 내렸다. 사촌 언니는 그런 렌코의 심통난 표정이 재밌는지 깔깔 웃으면서 운전석 뒷편을 손으로 가리켰다.


 "맥주, 몇 개 가져가렴. 아저씨 아줌마들이 가져오라고 한건데 뭐 한두개쯤 너희들이 가져가도 상관없겠지. 아저씨들은 술 좀 줄여야되니까."


 "뭐, 그건 고맙게 받을게. 그래도 메리한테 그런 이야기한 건 용서 안해."


 "네 친구도 좋아했잖아. 이런 데까지 온 이유야 모르겠다만 둘이서 재밌게 즐기렴. 이따 밤에 돌아오는 길에 전화할게. 그럼 친구쪽도 안녕."


 사촌 언니는 손을 가볍게 흔들면서 트럭을 몰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멀어지는 트럭을 보면서 메리가 짖궂게 중얼거렸다.


 "넌 대학 오기 전에도 한결같았구나."


 "메리, 아니거든?"


 렌코는 차마 화는 내지못하고 속으로 분을 삭이면서 되받아쳤다.




 렌코와 메리는 트럭을 뒤로 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그 둘은 아무 이유 없이 렌코의 사촌 언니의 트럭을 빌려타고 그곳까지 온 게 아니었다. 이건 나름 비봉구락부 활동의 일환이기도 했다.


 "메리, 어때? 대충 느껴져?"


 렌코의 질문에 메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둘은 지금 도로 옆에 난 간이역에 앉아 있었다. 그 간이역은 꽤 오래동안 방치된 듯했다. 메리는 그 간이역 주위를 찬찬히 걷다가 손가락으로 철로가 향하는 방향을 가리켰다.


 "대충 희미하지만... 저쪽에서 보이는 것 같아."


 "흠, 메리가 히로시게에서 느꼈다는게 정말이구나. 이 밑으로 히로시게가 지나가는 것 같아."


 "렌코, 내가 이런 거로 거짓말을 할 리가 없잖아."


 "알아, 알아. 제대로 찾아와서 다행이라는 거지."


 둘은 그렇게 가볍게 티격태격하면서 철도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이미 녹이 슬대로 서서 본래의 색을 찾아볼 수 없게 된 철도였지만 형태만은 온전했다. 메리와 렌코가 이 버려진 철도를 찾아온 이유는 메리가 히로시게에서 느낀 기묘한 감각 때문이었다.




 며칠 전 메리와 렌코는 교토에서 히로시게를 타고 도쿄로 왔다. 53분 밖에 안 걸리는 짧은 여정이었지만 메리는 그 와중에 무언가 기묘한 감각을 느꼈다. 그건 경계를 볼때마다 느꼈던 감각이었다. 메리는 렌코의 집에 도착한 뒤 히로시게에서 느꼈던 그 기묘한 감각을 렌코에게 설명했다. 렌코는 메리의 말이 끝나자마자 소리쳤다.


 "그럼 당장 가봐야지!"


 렌코는 한치도 망설이지 않고 핸드폰으로 히로시게의 노선도와 근처 지도를 하나씩 펼쳐보기 시작했다. 메리는 다행히도 그 감각을 느낀 시간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었다. 렌코와 메리는 복잡한 계산을 거친 끝에 목적지를 충분히 좁힐 수 있었다. 폐쇄된 철로가 지나는 작은 마을 근처였다. 다행히도 도쿄 근처라 서두른다면 하루만에 다녀올마한 거리였다. 이제 그곳까지 갈 방법을 고민하던 차에 둘이 전혀 예상치 못한 행운이 찾아왔다. 사소한 일로 잠시 렌코의 집에 들렀던 렌코의 사촌 언니가 그 둘의 수다를 우연히 주워들은 것이다.


 "어라? 나도 내일 그쪽 방향으로 가야되는데. 너희도 거기 갈 일 있어? 태워줄까?"


 렌코와 메리는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아침 일찍 사촌 언니의 트럭을 얻어 타고 온 메리와 렌코는 느긋하게 철도를 따라 걸었다. 메리는 여전히 경계의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렌코는 그런 메리 옆에서 전날에 조사했던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다.


 "원래는 기차가 많이 지나다녔는데, 이런저런 크고 작은 사고들이 많았다나 봐. 히로시게도 지어지고 다른 노선들도 있어서 이 철도는 꽤 전에 폐쇄됐대. 근처 마을이야 원래 다른 마을까지 가서 기차를 탔다는 것 같고."


 "크고 작은 사고?"


 메리의 질문에 렌코는 어깨를 으쓱했다.


 "응. 묘하게 이 노선에서 잔고장이 많았다나. 생각해보면 좀 무섭네. 한참 달리고 있는 기차가 고장난다니. 그래도 재난이라고 불릴만한 사고까지는 없었던 모양이야. 지나가던 사람이 죽은 사고는 한두건 있었던 것 같지만."


 "경계와 상관이 있을까?"


 "글쎄, 그건 모르겠네. 애초에 이 이야기도 그냥 호사가들이 할법한 소문 같더라고. 그런 사고가 워낙 많아서 이 지역 정치인이 철도 폐쇄를 강하게 주장했다나? 어쨌거나 다방면으로 노력해서 성공한 모양이야. 그 이야기도 인터넷에 꽤 올라와 있더라고."


 "재밌는 이야기네."


 "뭐, 우린 경계가 관련되어 있는 편이 재밌지만 말이지. 그래서 어때, 메리? 뭐 보여?"


 "응. 조금씩이지만 점점 자주 보이는 것 같네. 이쪽 방향이 맞나 봐."


 "흠, 역시 메리를 도쿄로 데려오길 잘 했다니까."


 그렇게 둘은 쉬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계속 철도를 따라 걸었다.




 렌코와 메리는 정오를 너머서도 한동안 계속 걸었다. 배가 출출해질 무렵, 둘은 철로 옆의 적당한 둔덕을 발견해내고 자리를 잡았다. 렌코는 배낭에서 샌드위치를 꺼내 메리에게 건냈다.

 

 "꽤 걸었는데 딱히 특별한 건 없는 것 같네. 메리는 뭐 더 보이는 거 없어?"


 "글쎄. 조금씩 강해지기는 하지만 딱히..."


 "히로시게가 지나는 구간은 이미 꽤 멀어진 거 같은데. 이대로 쭉 계속 가야하는 걸까."


 렌코는 샌드위치를 한입 베어먹으면서 핸드폰으로 지도를 확인했다. 폐쇄된 녹슨 철로는 아직도 한참 남아있었다. 하지만 렌코는 이렇게 와놓고서는 정작 허탕을 칠까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메리도 샌드위치를 한입 깨물고는 입안에서 우물거리면서 자기 의견을 피력했다.


 "지금 와서 드는 생각인데, 우린 경계를 찾아서 철로를 따라 걷고 있었잖아? 철로가 경계로 이어진다고 생각했으니까. 어쩌면 우리가 착각한 걸지도 모르겠네."


 "그게 무슨 뜻이야?"


 "이 철로 자체가 경계일지도 모른다는 거지. 아까부터 경계 자체는 조금씩 보이고 느낄 수도 있었거든."


 "흠. 그건 재밌네. 철로가 경계라."


 "철로가 지나가면 많은 게 그 자체로 많은 게 나뉘잖아? 도로도 중간에 끊기기도 하고. 철로가 그 자체로 지리적 경계선도 된다고 하고. 그런 것 아닐까?"


 "음. 확실히. 재밌는 경우네. 역시 직접 와보길 잘했어."


 렌코는 메리의 추측에 만족스러운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메리는 샌드위치를 한입 더 깨물면서 다시 생각에 잠겼다.


 "렌코가 말했잖아. 옛날에 크고 작은 사고들이 있었다고."


 "응. 그랬지."


 "역시 경계와 상관 있는 걸까? 철로가 경계라서 사람들을 그렇게 다치게 한 걸까?"


 렌코는 뚱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그럴지도 모르지만... 기차는 그 자체로 위험한 걸. 이렇게 무방비하게 철로가 놓여있었다면 사람들이 다치는 일은 충분히 있을 법해. 굳이 경계와 상관없이 말이지."


 "아마 그렇겠지. 괜한 생각이었나봐."


 메리의 대답에는 정작 확신이 느껴지지 않았다.




 점심을 먹고 휴식을 취한 렌코와 메리는 다시 철도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시간쯤 더 걸어 발이 아파지기 시작할 무렵 메리가 무언가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


 "렌코, 저기야."


 "응? 저기?"


 "저쪽이 강해. 경계가."


 렌코는 바로 메리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이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철로에서 조금 떨어진 그곳에는 자그마한 목조건물이 있었다. 철로처럼 오랫동안 제대로 관리를 받지 않았는지 후줄근한 느낌이 들었다. 렌코와 메리는 서로 시선을 교환하고는 그곳으로 향했다. 렌코는 그 목조건물로 걸어가면서 핸드폰으로 자신들의 위치를 확인해봤다.


 "이 건물, 지도에는 안 나와있어. 뭐하는 건물일까?"


 "글쎄, 역무원들이 쓰던 휴게소나 숙소일까? 철로 근처에 있는 걸 보면."


 "여기서 조금만 더 걸어가면 작은 역이 있긴 해. 그 역도 철로처럼 안 쓰인지 오래됐지만. 메리 말이 맞을지도."


 "직접 살펴보면 알겠지."


 메리는 목조건물에 다가가 자신이 말한대로 세심하게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방마다 나 있는 듯한 창문은 빗살이 쳐져 있었다. 먼지가 쌓여있긴 했지만 망가진 빗살은 없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방 안을 살짝 들여다볼 수 있었다. 메리가 창문 너머를 조심스레 살펴보자 렌코도 옆에서 끼어들었다.


 "그래도 누가 쓰는 것 같은데? 좋은 상태는 아니지만 철로보다는 훨씬 괜찮은 편이야."


 메리의 말에 렌코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답했다.


 "안에 가구가 남아있는 것 같네. 먼지가 쌓인 걸 보면 가끔씩만 오는 걸까."


 메리가 렌코에게 뭐라 답하려고 할때, 건물 반대편에서 나무가 끼익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둘은 바로 숨을 죽인채 건물 모퉁이를 향해 조심스레 걸어갔다. 하지만 정작 그 다음 소리는 둘의 뒤편에서 들려왔다.


 "거기서 뭣들 해요?"


 뒤에서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렌코와 메리는 화들짝 놀라서 허둥지둥 돌아섰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낡은 역무원 코트를 입은 여자였다. 딱 봐도 나이가 지긋해보이는 그녀는 렌코와 메리를 위아래로 재빠르게 훑어보고 있었다. 렌코는 재빨리 손짓을 섞어가면서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 그게요. 저희가 이 철로에 관심이 있어서... 직접 탐방을 왔거든요."


 "철로에?"


 "아, 네. 그... 옛날 유적에 관심이 있거든요. 철로도 유적이라면 유적이죠? 그래서 유적 탐방을 하다가... 이 건물이 보여서... 그렇지, 메리?"


 렌코의 어색한 변명에 메리는 바로 고개를 과장스럽게 끄덕였다. 즉석에서 지어낸 황당한 변명이긴 했지만 경계를 찾으러 왔다는 수상쩍은 이유보다는 훨씬 그럴싸했다. 메리의 동조를 얻은 렌코는 바로 이야기를 더 지어내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 철로가 어떤 식으로 쓰였는지, 어쩌다가 폐쇄됐는지. 그런 게 궁금해서요. 죄송해요. 안에 계신 줄은 미처 모르고...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


 역무원 코트를 입은 여자는 렌코와 메리를 여전히 의심스러운 시선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둘이 은근슬쩍 철로 쪽으로 돌아가려는 순간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잠깐. 이 철로가 궁금하다고?"


 "아, 네. 네. 그렇죠."


 "폐쇄된 사정도 알고 싶고?"


 "그렇죠. 그렇지, 메리?"


 메리는 이번에도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역무원 코트를 입은 여자는 그런 둘에게 매서운 눈초리는 거두지 않으면서 등을 돌렸다.


 "그럼 따라와요."


 "네?"


 "따라오라니까."


 그렇게 건물 반대편으로 돌아가는 그녀를 메리와 렌코는 말없이 지켜보다가 허둥지둥 뒤따라갔다.




 렌코와 메리는 쭈뻣쭈뻣대며 어색하게 건물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거실은 창문 너머로 살펴본 방보다는 훨씬 더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몇 개의 탁자와 책장, 장식대가 배치되어 있고 그 위에 다양한 크기의 사진들이 각각 액자에 넣어져 진열되어 있었다. 몇몇 사진 옆에는 이미 수십년 전의 연도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방 안에는 사진 외에도 정확한 용도를 알 수 없는 잡동사니들이 여기저기 진열되어 있었다. 예상 외의 광경에 렌코와 메리가 당황해하는 사이, 역무원 코트를 입은 여자는 어디선가 머그컵을 하나 들고 와서 빈 탁상에 앉았다.


 "뭐해요? 앉아요."


 "아? 네?"


 "이야기를 하려면 앉아야죠."


 렌코와 메리는 살짝 망설이다가 마지못해 그 여자와 마주보는 자리에 앉았다. 의자는 조금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긴 했지만 앉아있기엔 별 무리가 없었다. 역무원 코트를 입은 여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컵의 내용물을 한모금 마시고는 물었다.


 "그래서, 뭐가 궁금하죠?"


 "네?"


 "철로에 대해서 궁금하다면서요. 물어볼 게 있으면 물어봐요. 여긴 그러려고 있는 곳이니까."


 그 순간 렌코와 메리는 주변에 놓인 사진들의 정체를 깨달았다. 그 사진들은 이 철로의 역사를 담은 사진들이었다. 이 건물은 철로의 역사를 담은 기념관이었던 것이다.




 렌코와 메리는 그 뒤 약 30분간 지루한 역사 강의를 꼼짝없이 자리에 앉아 들어야만 했다. 안 그래도 철로에 관심이 있어서 탐방을 왔다고 변명을 늘어놓았으니 빠져나올만한 구실도 없었다. 자신을 이 건물의 관리인이라고 밝힌 여자는 이제 철로가 어떤 용도로 이용되고 있었는지까지 세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결국 지루함을 견디다 못한 렌코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저기, 저희가 궁금한 건 그쪽이 아니라..."


 "그럼 어느 쪽인데요? 가끔 노선도 들고 찾아오는 그런 사람들인 줄 알았는데. 그 사람들은 어떤 열차가 쓰였는지 관심이 많던데."


 "저흰 그런 건 아니고요... 아, 그렇지! 저흰 노선이 폐쇄된 이유가 특히 궁금해서요. 뭐 별다른 이유가 있는가 싶어서... 그... 안 좋은 소문도 있었다고 하고."


 "소문? 무슨 소문? 그런 건 어디서 들었어요?"


 관리인이 갑자기 눈을 찡그리자 렌코가 황급히 손을 흔들면서 변명을 늘어놓았다.


 "아! 뭐 이런저런 사고가 있었다는... 그냥 누가 인터넷에 올렸더라구요. 그래서 대체 무슨 소문인가 궁금해져서..."


 "흠."


 관리인은 다시 머그컵의 내용물을 한모금 마시고는 짧게 신음했다. 지금까지 유창하게 설명했던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그렇게 잠시 곰곰이 생각에 잠겼던 관리인은 다시 입을 열었다.


 "그건 사실이에요. 이런저런 사고가 있긴 했죠."


 "인명피해도 있었고요?"


 "종종. 죽은 적도 있죠. 폐쇄된 원인이긴 했죠. 그것만으로는 아니었지만."


 렌코의 질문에 관리인은 담담하게 답했다. 렌코가 무언가를 질문하려는 순간 갑자기 메리가 끼어들었다.


 "사고의 원인은 뭐였죠? 그러니까, 공통적인 원인 같은 게 있었나요? 황당한 이유라거나..."


 "황당한 이유? 뭐, 그런 게 당시에 있긴 했죠. 그렇지. 그래서 정치인도 그런 소문이 돌았죠. 황당한 이유로 철로를 폐쇄하려는 거 아니냐는."


 관리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근처의 진열장에서 작은 액자 하나를 가지고 왔다. 깔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중년 남자의 사진이었다. 렌코는 그의 얼굴이 어딘가 낯이 익었다. 그녀가 그 얼굴을 어디서 봤는지 기억해내기 전에 메리가 먼저 질문을 던졌다.


 "이 분은 누구죠?"


 "이 철로를 폐쇄한 사람이죠."


 "아!"


 렌코는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사진 속의 남자를 어디서 봤는지 기억해냈기 때문이었다. 렌코는 철로에 대해 인터넷에서 검색하면서 그 사진을 보았던 것이다. 철로 폐쇄를 이끌었던 지역 정치인으로.




 "정치인으로서 대단했던 사람은 아니었죠. 굳이 업적이란 게 있다면 이 철로를 폐쇄한 거였죠. 그것도 업적으로 보지 않는 사람들도 많지만."


 관리인은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렌코와 메리가 궁금한 건 그 정치인의 행적이 아니었다. 과연 철도가 경계와 관련이 있는지 여부일 뿐. 그러나 관리인에게 경계 이야기를 해봐야 이상한 시선만 되돌아올 게 분명해 직접 물을 수가 없었다. 결국 둘은 관리인의 이야기를 잠자코 들어야만 했다.


 "철로 폐쇄 공약을 가지고 선거에 나갔을 때도 당선될 거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별로 없었어요. 운이 좋았는지 당선이 되긴 되더군요. 그리고 이제 사람들은 공약은 별로 신경 쓰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그 공약을 진지하게 밀고 나가더군요. 관료들과도 여러번 만나고, 켐페인도 펼치고 그랬죠. 결과는 영 신통치 않았지만요. 딱히 대체할 노선도 없고, 안전 문제는 알아서 해결하겠다, 그런 핑계도 많이 나오고."


 "그럼 사고는 그 뒤로는 없었나요?"


 렌코의 질문에 관리인은 고개를 절레 저었다.


 "딱히요. 그 뒤에도 사람이 죽은 적도 있고. 사소한 사고는 심심할 때마다 벌어졌죠. 그때마다 정치인이 나섰는데도 별 성과가 없었어요. 다른 정치인들이 호응도 안 해주고, 관료들에게도 우선순위가 아니니까."


 "그건... 심하네요."


 렌코는 그렇게 답하면서도 살짝 기대가 담긴 눈빛을 메리와 교환했다. 철로가 정말 경계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관리인은 그런 렌코의 눈빛은 눈치채지 못했는지 설명을 계속했다.


 "그렇게 몇년을 지지부진하게 끌었는데 히로시게가 만들어지면서 상황이 달라졌죠. 히로시게가 만들어지니 기존 노선들의 존치가 검토 대상이 됐어요. 히로시게 운영 예산도 필요했고, 인력을 돌릴 필요가 있으니까. 그때 정치인이 또 나선 거죠. 이번엔 다른 지역에서도 호응이 있었어요. 자기네 노선은 유지하고 싶으니 다른 노선이 폐쇄되길 원한 거죠. 그런 지역들과 함께 압력을 행사하고, 지역 주민들의 지지도 얻고. 대신 다른 대중교통을 유치하고. 그런 식으로 정신 없이 움직였었죠."


 "그래서 폐쇄된 건가요? 히로시게 덕분에?"


 관리인은 메리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은 그런 셈이죠. 그 정치인이 기민하게 나선 덕분에 히로시게 공사가 시작되면서 폐쇄됐죠. 그러니 당연히 사고는 안 나고. 이렇게 기념관 같지 않은 기념관만 만들고 방치된 거죠."


 "아, 그 사고 말인데요.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주시겠어요?"


 렌코가 그렇게 질문을 하려는 순간 그녀의 배낭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전화기에서 울리는 소리였다. 렌코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가방을 꺼내들었다.


 "앗, 사촌언니가 전화했네. 잠시 전화 좀 받고 올게요."


 렌코는 양해를 구하고는 건물 밖으로 나가 사촌 언니의 전화를 받았다. 이제 일이 끝나 렌코와 메리를 데리러 온다는 내용일 게 분명했다. 스피커 너머에서는 무언가 소란스러운 목소리들이 여럿 들려왔다. 렌코도 덩달아 목소리를 높이며 물었다.


 "아, 언니. 일 끝난 거야?"


 "어, 렌코. 그게 말이지. 일은 끝났는데. 하하. 이걸 어쩌지?"


 사촌 언니의 평소와는 다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렌코는 갑자기 불안해졌다. 렌코는 그런 목소리를 들은 적이 종종 있었다. 그건 사촌 언니가 술, 특히 구형주를 마셔서 혀가 꼬일 때였다.


 "언니, 술 마신 거야? 운전해야되는데?"


 "앗, 벌써 들켰네. 그게 어르신들이 나한테 억지로 마시게 하지 뭐야. 그래서 한두잔만 마시고 빠져나오려고 했는데 다른 어르신들도 계속 몰려와서... 이걸 어쩌지?"


 "잠깐, 언니. 설마 지금 못 온다는..."


 렌코가 불안한 목소리로 묻자 사촌 언니가 무안하게 웃으면서 말을 중간에 가로챘다.


 "미안, 그냥 오늘은 그 근처에서 자고 오지 않을래? 음주 운전을 하다가 큰일이라도 나면 안 되잖아. 내일 아침 일찍 갈게. 알았지? 미안해, 미안. 아, 갈게요! 렌코, 내일 아침에 다시 연락할게! 미안!"


 그리고 통화는 일방적으로 끊어졌다. 망연자실해진 렌코는 다시 건물 안으로 돌아왔다. 관리인과 메리는 무슨 일인가 싶어 렌코를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렌코는 혼이 빠진 표정으로 관리인에게 물었다.


 "혹시 근처에 잘 만한 곳이 있나요?"




 “그래도 쓸만한 방이 있어서 다행이네. 벌레는 안 나오겠지?”


 메리는 방바닥에 이불을 펼치면서 살짝 걱정이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렌코도 그 옆에 자기 이불을 펼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하필 언니가 술을 마실 줄이야. 하여튼 술을 자제할 줄을 모른다니까.”


 “렌코네 가족다운 걸 뭐.”


 “그게 무슨 의미야?”


 렌코가 찌릿 째려보자 메리는 시치미를 떼면서 방을 둘러봤다.


 “글쎄, 렌코라면 술집에 가서 밤을 새자고 할 줄 알았다는 거지.”


 “나도 술이 좋지만 그 정도는 아니거든?”


 “하여튼 빈 방이 있어서 천만다행이지 뭐야. 근처에 마땅한 숙소도 없다는데. 방 상태가 아주 엉망도 아니고. 돈도 안 받는다니 운이 좋았네.”


 “그건 그래. 술이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으이구. 렌코도 남 탓할 처지 아니라니까.”


 메리는 벌써 술을 찾는 렌코를 나무라면서 방을 나섰다.




 관리인은 여전히 거실에 앉아 멍하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렌코가 생뚱맞게 숙소를 찾자 그녀는 이 기념관의 빈 방을 쓰면 된다고 즉답했다. 관리인이 심지어 이불까지 꺼내오자 렌코와 메리를 이 건물의 옛 목적을 새삼 다시 깨달았다. 이 건물은 지금은 이상한 기녀관이긴 해도 예전에는 철도 직원들의 숙소였던 것이다.


 “쓸만 한가요?”


 “네. 덕분에 오늘 밤은 걱정 없겠네요. 정말 그냥 써도 괜찮은 건가요?”


 “내일 아침 일찍 나가기만 하면 돼요.  아침에는 제가 없을 테니 방만 적당히 정리하고 문만 닫고 가세요. 어차피 누가 오지도 않을 테니까. 더 필요한 건?”


 관리인은 메리의 공손한 대답이 마음에 든 눈치였다. 하지만 렌코는 관리인의 질문에 방정맞게 술부터 찾았다.


 “저기, 혹시 마실만한 건 없나요? 혹시 술이라거나...”


 “렌코!"
 
 “술? 술이야 있는데. 마시고 싶어요?”


 “딱히 여기선 할 일도 없다보니...”


 “그럼 잠깐 기다려요.”


 관리인은 어색하게 웃는 렌코를 두고 갑자기 건물 밖으로 나갔다. 렌코와 메리가 무슨 영문인가 싶어 서로 시선만 교환하는 사이, 관리인이 무언가를 들고 다시 건물 안으로 돌아왔다.


 “손님들 입맛에 맞을진 모르겠지만. 일단은 술이에요.”


 관리인은 그러고는 호리병 두 개를 탁상 위에 올려놓았다. 요즘은 보기 힘든 고풍스러운 호리병이었다. 렌코는 바로 호기심에 끌려 그 호리병들을 세심히 살펴봤다.


 “앗, 혹시 이거 구형주인가요? 효모로 만든...?”


 “굳이 말하면 그렇죠. 마시면 취하는 종류의 술.”


 “우왓, 역시나! 어디서 구하신 거죠? 굉장히 귀한 것 같은데?”


 “그럴 수밖에요. 내가 직접 만든 거니까. 그러니 맛은 장담 못해요.”


 “우와! 아직도 술을 직접 만드는 분이 계셨다니! 이거 마셔도 괜찮은 건가요? 어쩌지? 함부로 마셔도 되나?”


 “술동무만 되어준다면 상관 없죠.”


 관리인은 그러면서 어디선가 작은 잔들을 내와 탁상 위에 올려두었다. 렌코는 이미 신이 나서 도저히 주체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메리! 메리! 구형주라니까? 요즘은 맥주 아니면 마시지도 못하는 술! 이런 거 마실 기회가 얼마나 있겠어? 역시 메리랑 같이 다니니 이런 것도 마실 기회가 있구나!”


 “저기, 렌코. 좀 진정해.”


 “으아, 이거 어쩌지? 안줏거리 없나? 집에서 뭐 싸왔던가? 잠시만요! 배낭 좀 확인하고 올게요!”


 렌코는 그렇게 혼자 호들갑을 떨면서 침실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메리는 술을 한모금 더 목으로 넘기면서 자연스레 미간을 찡그렸다. 구형주는 역시나 씁쓸했다. 메리는 조금씩 올라오는 취기를 버티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지만 렌코는 전혀 그런 기색을 보이질 않았다.  어느새 렌코는 관리인과 철로에 대해 별별 이야기를 다 하고 있었다.


 “그래서 말이죠, 사실 저희가 궁금했어요. 이 철로, 터가 안 좋은 건 아닐까.”


 “터가 안 좋다?”


 관리인은 렌코의 허무맹랑한 표현에 관심을 보였다. 렌코도 그런 반응에 신이 났는지 바로 목소리를 높였다.


 “네! 이런저런 사고가 많다고 하셨잖아요. 그게 이 철로가 안 좋은 위치에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그랬던 거죠.”


 “재밌네요. 누가 그런 이야기를 했나요? 아니면 다른 이유라도?”


 “네? 아, 아뇨. 그...그냥 우리가 그런 생각을 한 거죠!”


 렌코는 순간 자신이 너무 신을 내버렸다는 걸 깨닫고 재빨리 말을 얼버무렸다. 관리인은 그런 렌코를 다소 의뭉스럽게 쳐다보았다. 렌코가 그 시선에 무안하게 머리를 긁는 와중에 관리인이 입을 열었다.


 “사실 그런 이야기는 예전에도 있었죠. 심지어 정치인에 대한 소문도 있었고.”


 “어, 지...진짜요?”


 렌코는 갑자기 나온 정보에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메리와 관리인을 번갈아 쳐다봤다. 메리도 멍하던 머릿속이 관리인의 대답에 갑자기 명료해졌다. 관리인은 둘의 그런 반응이 재밌는지 술을 한 잔 더 마시면서 무심히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옛날에 이 철로를 건설할 때부터 이야기가 많았죠. 여러모로 사람들에게 좋지 않을 거라나. 처음엔 대부분 무시했는데 계속해서 사고가 나니 그런 소문도 계속 이어졌죠. 워낙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았는데 대부분은 철로가 영 위험한 지맥을 지나간다. 뭐 그런 이야기였죠. 특히 영적인 땅을 둘로 나누어버려서 그런다는 류의 이야기가 많았어요.”


 “영적인 땅이요?”


 메리가 관심을 보이자 관리인은 어깨를 으쓱했다.


 “어느 마을에나 으레 있는 그런 땅들이죠. 신사가 지어졌다거나. 이러저런 전설이 있다거나. 그런데 그 정치인이 어렸을 적에 그런 쪽에 관심이 많았단 말이죠.”


 그 대목에서 렌코와 메리는 서로 시선을 교환할 수밖에 없었다. 다름아닌 자신들 이야기였으니까. 관리인은 둘의 그런 속내는 미처 모르고 하던 이야기를 마저 했다.


 “그래서 노선 폐지 공약을 내세웠을 때도 그런 소문이 돌았죠. 오컬트 때문에 정치하는 게 아니냐고. 그래서 좋지 않게 본 사람들도 좀 있었고. 당선되고 나서도 마찬가지였죠. 이상한 이유로 철로를 폐쇄하려고 한다고.”


 “혹시... 정말이었나요? 그 정치인이 오컬트에 관심이 있던 건? 진짜로 그런 이유로 노선도 폐쇄하려고 했고? 그런 거로 아시는 게... 있나요?”


 렌코의 직설적인 질문에 관리인은 잠시 입을 다물고 고민했다. 렌코와 메리는 그런 관리인을 재촉하지도 못하고 침만 꼴깍 삼키면서 답을 기다렸다. 이윽고 관리인은 그런 둘의 눈빛을 보고 마음을 굳혔는지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이었어요. 그 정치인은 그런 쪽에 관심이 많았죠. 심지어 당선되고 나서도.”




 관리인이 들려준 이야기는 렌코와 메리가 원하던 바로 그런 이야기였다.


 “그 정치인도 종종 농담으로 친한 사람들한테 그랬어요. 자긴 신령님이랑 이야기도 한다고.”


 “신령님이요? 요괴나 신 같은 걸까요?”


 렌코는 애써 태연한 척하며 물었다. 하지만 질문에서 흥분이 새어나오는 것만은 숨길 수 없었다.


 “이 근처 지역에 사는 신령이었다나봐요. 젊을 때 우연히 만났다나. 서로 죽이 잘 맞아서 친구가 됐다고 하고. 어디까지나 자기 말로는요.”


 “그렇담 혹시 철로가 지난다는 땅의...”


 “대충 그런 거겠죠. 허무맹랑한 이야기지만요.”


 관리인도 메리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정작 자기 입으로 그 말을 하면서도 본인은 별로 믿지 않는 눈치였다.  신이 난 렌코는 관리인에게 꼬치꼬치 깨묻기 시작했다.


 “저기, 다른 이야기는 더 없나요? 그 신령님과 정치인 이야기...”


 “그 이야기에 관심이 많네요.”


 “아, 그렇죠. 하하. 안줏거리로 좋은 이야기잖아요?”


 “확실히 술이나 마시면서 할 법한 이야기긴 하죠. 더 황당한 이야기도 있지만.”


 “더 황당한 이야기요?”


 렌코의 목소리가 자연스레 더 높아졌다. 이제 렌코는 호기심을 숨길 생각조차 없었다. 관리인은 그런 렌코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그 정치인과 신령님이 친했다고 말했죠? 정치인이 철로를 폐쇄한 것도 그래서였다는군요. 신령님이 알려준 거죠. 철로가 그 땅을 지나서 계속 안 좋은 일이 일어나는 거라고.”




 그 뒤에 관리인이 한 이야기에 렌코는 너무 흥분한 나머지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관리인은 그걸 술기운 때문이라고 생각했는지 대수롭지 않은 표정이었다.


 “신령님이 그렇게 말했다더군요. 철로 때문에 땅에 경계가 생겨서 좋지 않은 일이 생기는 거라고.  철로는 완전히 못 없애도 기차가 다니지만 않으면 괜찮아 질 거라나? 그래서 정치인이 선거에 나갔다는 이야기죠. 신령님의 충고를 받고.”


 “그건... 재밌네요!”


 렌코가 너무 신이 나자 메리는 무릎으로 렌코를 툭툭 건드리며 주의를 줬지만 허사였다. 렌코는 완전히 신령님 이야기에 빠져버린 상태였다.


 “이 철로가 경계를 만들다니... 게다가 그게 영험한 땅을 지나서라니... 게다가 신령님이 그걸 정치인에게 알려줬다니! 딱 저희가 찾던 이야기에요!”


 “특이한 이야기를 좋아하네요. 철로 때문에 온 줄 알았더니. 처음부터 이 이야기나 해줄 걸 그랬나.”


 “앗, 하하. 뭐, 그렇죠.”


 렌코는 비로소 자신이 너무 흥분했음을 깨닫고 무안한 표정을 지었다. 반면 메리는 아직 술기운이 깨지 않은 뚱한 표정으로 관리인에게 물었다.


 “그 이야기는 어떻게 알고 계신 거죠?”


 “내가 어떻게 알고 있냐고요?”


 “네.”


 “그야 전해들은 거죠. 정치인이 친한 친구에게 그런 말을 했다고 하고, 그 이야기가 사람들한테 새나가고. 그러다보니 저도 들은 거죠.”


 “직접 전해들으셨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요?”


 “그럴 리가요. 난 고작 이런 건물 관리하는 사람인 걸요.”


 관리인은 담담하게 답하고는 자기 술잔을 다시 채웠다. 하지만 메리는 여전히 석연찮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왜 메리가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지 이해 못한 렌코는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메리는 그런 렌코의 반응은 무시한 채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 정치인은 어떻게 됐나요? 철로를 폐쇄한 다음에요."


 "그 뒤로도 몇 년 더 의원으로 지냈죠. 딱히 큰 일을 하진 않았지만. 그래서 철로 폐쇄로 힘을 다 소진해버렸다는 이야기도 많았어요. 다른 일을 할 힘은 남아있지 않았다는 거죠. 그래서 그 다음 선거에는 출마하지 않았어요. 그 뒤로는 그냥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지내다가 작년에 세상을 떴다는 소식만 들었어요."


 "아앗, 진짜요? 그럴 수가... 직접 만나보고 싶었는데... 신령님에 대해 꼭 묻고 싶었는데!"


 렌코는 그렇게 혼자 열을 내면서 술잔을 들이켰다. 하지만 그녀의 술잔은 이미 텅 비어 있었다.




 술병은 얼마 지나지 않아 둘 모두 텅 비었다. 렌코는 혹시 한 방울이라도 더 떨어지지 않을까 거꾸로 뒤집어보기까지 했지만 허사였다. 관리인은 렌코와는 달리 별로 아쉬워하지도 않고 술병을 챙겨서 집으로 돌아갔다. 다만 그녀는 마지막으로 렌코와 메리에게 간단한 주의를 줬다.


 “이왕이면 내일 누가 오기 전에 나가세요. 공짜로 재워준다고 소문나면 안 되니까.”


 “공짜 술도 비밀로 할게요.”


 “그래요. 그것도.”


 관리인은 메리의 농담이 마음에 들었는지 가볍게 웃어보이고 돌아갔다. 그렇게 그 건물에는 렌코와 메리만 남았다. 메리는 술기운에 머리가 지끈거려 방으로 돌아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지만, 렌코는 아직도 못내 아쉬운지 탁상에서 일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아아. 더 마시고 싶어... 엄청 맛있었는데...”


 “엄청 독하던데. 렌코는 어째서 멀쩡한 거야?”


 “메리가 약한 거라고 생각해.”


 “아니, 렌코가 강한 거겠지... 난 안 되겠어. 이만 잘래.”


 “아, 맞다! 메리, 그래서 경계는 어때? 여기, 뭐가 보여?”


 렌코의 질문에 방으로 돌아가던 메리는 그 자리에서 우뚝 멈춰섰다. 그녀는 무언가를 말하려고 머뭇거리다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왜 그래? 메리, 그렇게 힘들어?”


 “...음. 내일. 내일 이야기할래.”


 “그래? 그렇담 별 수 없지.”


 메리는 그리고 방으로 바로 돌아갔다. 이제 술도 없고 대화 상대도 없어진 렌코는 탁상에 엎드려 혼자 발만 동동 굴렀다.




 여전히 아쉬움을 달래지 못한 메리는 탁상에서 일어나 혼자서 전시물들을 찬찬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철로의 구구절절한 역사에 대한 전시물이 여럿 있었지만 렌코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그나자 옛날 사진들이 조금 흥미로운 정도였다. 렌코는 어느샌가 글은 읽지 않고 진열대에서 사진만 찾아서 하나씩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진 몇 개를 살펴보던 중에 렌코는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응? 이 사람은?”


 렌코의 시선을 빼앗은 사진은 철로를 폐쇄한 정치인의 사진이었다. 그 정치인이 이 건물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었다. 정치인 옆에는 역무원이 한 사람 나란히 서 있었는데, 렌코는 그 얼굴을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방금 전까지 함께 술을 마시던 관리인의 얼굴이었으니.




 다음 날 메리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간신히 일어날 수 있었다. 렌코의 자리에 있던 이불은 이미 치워져 있었다. 메리도 끙끙대면서 이불을 개서 수납장에 집어넣은 뒤 방을 나왔다. 전시실에서 무언가를 살펴보던 렌코도 메리가 나온 걸 깨닫고 등을 돌렸다.


 “아, 메리. 일어났어? 일찍 일어났네.”


 “그야 일찍 나가랬으니까. 너야말로 일찍 일어났네. 피곤하지도 않아?”


 “별로?”


 “난 머리도 깨질 것 같아. 뭐라도 얼른 먹고 싶어. 렌코 언니한테선 전화 안 왔어?”


 “아까 왔는데... 아, 맞다! 메리! 이것 좀 봐! 꼭 봐야할 게 있어!”


 렌코는 메리의 질문도 무시하고 억지로 메리의 소매를 붙잡고는 진열대 앞까지 데려왔다. 아직도 머리가 깨질듯이 아픈 메리는 그런 렌코에게 반항도 못하고 질질 끌려갔다.


 “뭐야, 뭔데. 뭔데. 살살 당겨. 렌코. 나 머리 아프단 말야.”


 “봐, 봐! 여기 이 사진! 이 사진! 그리고 이 사진!”


 렌코가 진열대에서 사진 몇개를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메리도 눈을 찌푸리면서 살펴봤다. 이내 메리도 렌코가 왜 자신에게 그 사진을 보라고 했는지 깨달았다.


 “어제 관리인 아주머니네.”


 “그렇지? 맞지? 그것도 매번 그 정치인이랑 같이 찍혀 있어!”


 렌코의 말대로 그 관리인은 전시된 사진 곳곳에 숨어 있었다. 주름이나 복장이 사진마다 다르긴 해도 확연히 알아볼 수 있는 얼굴이었다. 게다가 매번 그 정치인과 함께였다. 단둘이 찍은 사진도 있고, 단체 사진 속에서 떨어져 있지만 어쨌거나 함쩨 찍힌 사진도 있었다.


 “어때, 이상하지 않아? 그 아줌마 되게 남의 일처럼 말하더니! 정작 그 정치인이랑 아는 사이였잖아?”


 “그렇네. 대충 그럴 것 같았지만.”


 렌코와는 달리 메리는 딱히 놀라는 기색도 없었다. 렌코는 그런 메리의 반응을 이해하지 못하고 더욱 목소리를 높여 자기만의 이론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 아줌마, 역시 이 정치인이랑 친한 사이였던 게 분명해. 내색은 안 했지만 말야! 대체 무슨 사이였을까? 혹시 서로 사랑하던 사이 아녔을까? 그래! 부인이었을지도 몰라! 무슨 이유에선지 아닌 척 했지만! 대체 왜일까? 그래, 이것도 경계와 관련된 거 아닐까?”


 그렇게 혼자 신이 난 렌코의 호주머니에서 갑자기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휴대폰에서 난 소리였다.




 렌코와 메리는 건물을 나와서 철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어제 왔던 길과는 반대 방향이었다. 렌코의 사촌 언니는 대략적인 설명만 듣고도 둘이 어디 있는지 바로 간파했다. 그녀의 설명에 따르면 철로를 따라 걷다보면 큰 길과 교차하는 건널목이 나올테니 자신은 거기서 기다리고 있겠다는 것이었다. 렌코는 그렇게 건널목까지 걸어가면서 투덜거렸다.


 “후, 언니도 참. 그 놈의 술 때문에 우릴 이런데서 자게 하고 말야.”


 “딱 렌코다운 걸 뭐. 렌코도 덕분에 귀한 구형주를 마셨잖아.”


 “음. 그건 그래. 게다가 재밌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지. 이건 언니 덕이라고 해둘까. 그렇지, 다음 번에 또 올래? 관리인 아줌마가 신령님 이야기를 했잖아. 조금만 찾아보면 우리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신령님이라니! 경계가 보였던 건 역시 그래서였을까? 아, 그 정치인 아저씨가 살아있었다면 직접 물어볼 수도 있었을 텐데!”


 “글쎄.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응? 그게 무슨 뜻이야, 메리?”


 렌코는 메리의 묘한 반응에 당황했다.  평소라면 메리도 신령님 이야기에 신을 낼 게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의 메리는 무언가 담담한 표정이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메리가 그렇게 말하려는 순간 경적이 그녀의 말을 가로챘다. 그 경적이 들려온 곳에서는 둘의 눈에 익숙한 트럭이 기다리고 있었다.




 트럭이 덜컹거리는 와중에도 렌코의 사촌 언니는 연신 렌코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아이참, 렌코. 미안하다니까? 어르신들이 계속 술을 권해서 있지. 그걸 마다할 순 없잖아? 그러자니 음주운전을 할 순 없고. 미안해, 미안하다니까?”


 “으휴, 사과는 됐어. 언니가 그렇지 뭘.”


 “그래도 다행이네. 그 기념관에서 자고 올 줄은 몰랐는데. 거기 아는 사람도 별로 없거든. 심심했겠네. 거긴 기념관인데 딱히 볼 것도 없으니까.”


 “흠. 그런 것만도 아녔어. 술을 마셨거든. 그것도 구형주. 언니가 심심한 맥주나 마시는 동안 말야.”


 “뭐? 구형주? 진짜? 부럽다! 어떻게? 누가 줬는데?”


 렌코는 언니가 부러워하는 게 고소한지 어깨를 으쓱하면서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 기념관 관리인 아줌마가. 얼마나 맛있었는데. 언니 몫은 못 가져왔네. 이거 아쉬워라.”


 “뭐? 진짜? 응? 관리인 아줌마?”


 렌코의 설명에 사촌 언니는 갑자기 미간을 찌푸렸다.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눈치였다. 렌코는 그걸 구형주가 부러워서라고 생각하고는 더 약을 올리려 했지만 사촌 언니의 반응은 어딘가 이상했다.


 “그럼! 관리인 아줌마가 직접 만든 술이래! 얼마나 맛있었는데! 아, 그런데 그 관리인 아줌마가 사실...”


 “렌코, 갑자기 무슨 소리야. 관리인 아줌마라니.”


 “응? 왜? 관리인이랬는데? 그렇지 메리, 으악! 뭐야, 그렇게 갑자기 멈추면 어떡해!”


 사촌 언니는 갑자기 트럭을 멈추고 렌코에게 눈을 돌렸다. 어딘가 진지한 표정이었다.


 “렌코, 네가 착각한 거겠지. 애초에 그 건물 관리인은 아줌마가 아니라 아저씨야. 게다가 그 아저씨는 어제 나랑 같이 있었고.”


 “응? 무슨 소리야?”


 “어제 나한테 술을 퍼먹인 게 그 아저씨였어. 그 건물 관리인은 어제 거기 있었을 리가 없다고."


 전혀 예상치 못한 설명에 렌코는 순간 당황하더니 갑자기 박수를 쳤다.


 “아! 그렇지! 맞다! 어쩐지! 영 수상하더라고! 그래, 안 그래도 이상했지! 내 생각엔 관리인이 아니라 미망인이었던 것 같아. 그, 어젯밤에 그 이야기 했거든. 철로 폐쇄한 정치인 이야기. 그 아줌마가 이상하게 잘 알더라고. 지금 생각하니 그 아줌마, 그 철로 폐쇄한 정치인의 미망인이었던 것 같아! 그런 말은 안 했지만! 어쩐지 친한 사이 같더라고!”


 “렌코, 아까부터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어, 왜?”


 “그 정치인 아저씨, 아내 없었어. 아니, 애초에 어제가 그 정치인 아저씨 기일이었어. 1주기 행사였단 말야. 그래서 나도 술 가지고 불려간 거고. 그 정치인이랑 그렇게 친한 사람이라면 거기 왔겠지. 어제 너희랑 같이 있었을 리가 없잖아.”


 “어? 어? 그럴 리가? 메리? 너도 있었잖아. 뭐라 말 좀 해 봐.”


 전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렌코는 메리와 사촌 언니를 번갈아쳐다봤다. 사촌언니는 렌코를 의심쩍은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고, 메리는 뚱한 표정으로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렌코가 살짝 울상을 지으며 메리에게 도움을 청하자 메리는 담담하게 답했다.


 “렌코가 어제 술을 너무 마셔서 잘못 기억하고 있나 봐요.”


 “메리!”


 메리는 렌코의 원망 섞인 외침을 태연히 외면했다.




 렌코의 집에 돌아온 둘은 배낭을 풀고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렌코는 그 와중에도 울상으로 메리에게 투덜거렸다.


 “메리, 나 진짜 취한 거 아니라니까. 어제 진짜로 만났잖아. 그 아줌마.”


 “나도 알아. 그래서 그런 거야.”


 “응? 그래서 그런 거라고?”


 메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경계를 봤냐고 물었었지? 사실 봤어. 제대로 말할 기회가 없었지만. 술 때문에 너무 힘들었거든.”


 “진짜? 역시 그 건물이...!”


 “그 건물에서도 봤고. 그 관리인한테서도 봤어. 자칭 관리인.”


 “...어? 그 관리인한테서도?”


 “응. 처음엔 그냥 건물 때문에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술을 마시면서 확실해졌어. 그 자칭 관리인한테서 경계가 분명 보였어.”


 “그럼 그 아줌마는...”


 “렌코, 신령님을 보고 싶다고 했었지? 아까 답하려다 말했던 거. 우린 이미 신령님을 본 거 같다는 거였어. 이젠 확실해. 아마 그 자칭 관리인이 아마 신령님이었겠지. 아까는 괜히 렌코네 언니한테 의심사기 싫어서 그런 거야."


 렌코는 메리의 설명에 입을 쩌억 벌렸다.


 “시...신령님! 그랬구나! 그래서 그렇게 자세히 알았구나! 철로 이야기도, 정치인 이야기도! 신령님에 대한 소문도! 어, 그럼 왜 거기 있었던 거지?”


 “나도 그게 궁금했어. 진짜 신령님이라면 왜 하필 그런 곳에 있었을까. 그런데 렌코네 언니가 말했잖아. 어제가 그 정치인의 기일이었다고. 그래서 확신했어. 그 정치인과 신령님은 친구였고...”


 “친구를 기리기 위해서였구나. 그 술도.”


 “그런 거겠지. 그 정치인과 관련된 장소기도 하고. 그 날은 진짜 관리인이 자리를 비울 테니까. 하필 우리가 찾아오긴 했지만 말야. 아침 일찍 나가라고 신신당부한 것도 그래서 아닐까? 진짜 관리인 아저씨가 돌아오면 우리가 곤란해지니까. 내 추측이긴 하지만.”


 “그래도. 신령님을 진짜 만난 거네 우린.”


 “술도 같이 마시고. 진귀한 경험이네. 덕분에 난 숙취로 고생중이지만.”


 렌코와 메리는 서로를 바라보면서 히죽 웃었다.




 “정치인이 신령님과 친구라니. 지금 생각하면 뭔가 기묘한 느낌이네.”


 렌코는 김이 모락 나는 커피를 한모금 마시면서 중얼거렸다. 둘은 근처의 카페로 자리를 옮겨 전날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직도 두통에 시달리는 메리는 냉수만을 홀짝거리면서 대답했다.


 “그러게. 신령님을 위해서 정치인이 되다니. 그런 일도 있구나. 게다가 진짜로 철로를 폐쇄하고.”


 “쉬운 일도 아녔을 텐데 말야. 조금 찾아봤는데 진짜 말이 많았나봐. 이런저런 정치인이나 관료들이랑 험악하게 싸우기도 했다나봐. 신령님 지시를 받았다고 그렇게까지 하다니. 잘 이해가 가질 않는 걸.”


 렌코의 궁금증에 메리는 입술을 살짝 삐죽거렸다.


 “글쎄. 어쩌면 신령님 덕에 그렇게까지 할 수 있었던 걸지도 모르지.”


 “신령님 때문에?”


 “신령님과의 친구니까, 그리고 신령님이 진짜 이유를 알려줬으니까. 그걸 해결하려고 정치를 한 걸지도 모르지. 바보 같다면 바보 같지만 말야. 정치인치고는 너무 작은 꿈이기도 하고. 아니면 권력으로 자기 배나 불릴 수도 있었을 텐데. 신령님이 있었으니까 그러지 않았던 거겠지. 그래서 신령님에게 더 특별한 친구 아녔을까? 신령님 입장에서도 사람들이 다치는 건 원치 않았을 테니까. 정작 신령님은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그래서 친구가 정치인까지 되서 해결해줬으니”


 “으음. 소명이었다는 건가.”


 “뭐, 비슷한 거지. 사람들이 정치하는 이유야 다양하잖아. 그런 이유도 있을 수 있는 거겠지. 결국은 덕분에 덕을 본 사람들도 분명 있고. 그 철도가 계속 쓰였다면 사람들이 더 많이 다칠 수도 있었잖아. 수는 많지 않아도. 사실 나도 그게 신경 쓰였어. 정말 경계 때문에 사람이 다치는 건 아닐까. 내가 그냥 흥미로 보는 경계가 그런 위험한 건 아닐까.”


 렌코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메리가 그런 걸 신경 쓰고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메리는 무언가 짐을 털어놓듯이 작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그런데 어제 일 생각이 바뀌었어. 뭐, 자기중심적이긴 하지만. 경계가 괜히 보이는 게 아닐지도 몰라. 어쩌면 내게도 무슨 소명 같은 게 있어서일지도 모르지. 아닐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내 눈 덕에 남들을 도울지도 모르고. 그렇게 생각할래. 그 정치인 아저씨처럼 정치까진 못하겠지만 말야.”


 “그럼 비봉구락부 활동 목표가 늘었네.”


 “뭐가?”


 렌코는 자신의 생각을 미처 짐작하지 못한 메리에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메리의 눈. 메리가 보는 세계로 남들을 돕는 거야.”


 “내가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굉장히 막연하네. 구체적인 방법이라도 있어?”


 “글쎄? 책이라도 만들어보지 뭐.”


 “무책임한 발언이네.”


 “난 진지한데?”


 “그러시겠지.”


 메리는 그러면서 냉수를 한모금 더 홀짝였다. 렌코에게 내색하진 않았지만 메리도 기분이 썩 나쁘진 않았다. 동아리 활동 같은 사소한 일에도 그런 소명 의식이 있어서 나쁠 건 없었으니까. 물론 친구와 함께 한다는 게 가장 중요했지만.


 “신령님도 그랬겠지.”


 메리의 나지막한 혼잣말에 렌코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뭐가?”


 “별 것 아냐.”


 메리는 신령님이 그랬던 것처럼 시치미를 뚝 뗐다.




끝.





원래 텐구로 뭐 쓰고 있었는데 너무 별로라 관두고 이거 부랴부랴 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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