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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갤문학]하얀 결혼 (1)

태지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9.11.06 19:31:35
조회 1088 추천 17 댓글 5
														

*샌즈프리 요소 주의.

*성애묘사 없음.




“...해서, 두 사람은 부부의 연을 맺을 것을 맹세하겠습니까?”


  햇살이 유독 눈부신 날이었다.


“네.”

  광활한 들판에서 울리는 메아리처럼 네 목소리만이 세상을 뛰어간다. 나무 의자에서 나는 냄새, 물을 머금은 채 짙어진 꽃향기, 주례를 선 메타톤의 손에서 나는 쇠냄새, 그리고 너의 면사포에서 나는 감귤향기까지. 세상을 그린 사람이 있다면 오늘 그 사람은 투명하고 맑은 색만 골라 섬세하게 휘저었을 것이다. 

  너는 몸을 숙여 내게 손가락을 내밀었다. 이 손가락이 이렇게 길었던가. 하얀 장갑을 낀 다섯 손가락은 흰 꽃잎 같기도 하고 몸을 곧게 뻗은 백사(白蛇)같기도 하였다. 

  나는 그 손가락에 반지를 끼운다. 너도 내 손가락에 반지를 끼운다.

  너는 아이에게 눈높이를 맞추듯 허리를 숙이고, 그 때문에 토리엘이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지었을 드레스가 볼품없이 구겨진다. 그러나 너는 눈썹 한 번 깜박이지 않고, 호흡 한 번 크게 뱉지도 않고 앞으로 걸어간다. 낮게 내리깐 갈색 눈썹을 타고 흘러내리는 감귤향기가 어지럽다.

  파피루스는 벌써 눈물을 한 바가지 쏟아낸 참이었고 알피스와 언다인도 서로 손을 마주잡은 채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외에도 많은 친구들이, 정말 부득이한 사정으로 참여하지 못 한 친구를 제외한 모두가 이 자리에 모여 꽃을 바닥에 던졌으며 너는 살며시 꽃 위를 걸어갔다. 즈려밟지 않고 사뿐하게, 구름 위를 밟는 선녀처럼. 

  사진을 찍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꽤 많은 인원을 적절하게 배치하는 것도 어려웠으며, 간신히 자리를 잡아도 셔터를 누른 순간 표정이 일그러지거나 눈을 감아 표정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등 한 장을 제대로 찍는 데만 해도 5분 이상은 족히 걸렸다. 막 더워지기 시작한 계절에 두꺼운 드레스를 입고 짙은 화장을 한 만큼 누구보다 힘들 텐데도, 너는 일그러짐 하나 보이지 않고 내 손을 놓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네 손에 붙들린 채 윙크를 하며 렌즈를 응시한다.

  모든 절차가 끝난 뒤 너와 나는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온다. 요란하게 하고 싶지 않다는 네 소망에 따라 피로연 또한 그리 규모가 크진 않았다. 간단한 다과와 음료. 그렇긴 해도 이 많은 다과를 준비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토리엘과 그릴비는 흐트러지는 기색 하나 없이 모두가 먹을 음식을 준비한 것이었다. 너는 인간 쪽 친구들과 괴물 쪽 친구들 한 명 한 명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남겼고, 그들은 엉엉 울거나 환한 미소를 짓거나 포옹을 하며 네 앞길을 빌어줬다. 내게 다가오는 사람들도 비슷한 말을 보였고 나는 나대로 대처했지만.


“프리스크를 울리면.... 알지?”


  이런 말을 열 번도 넘게 들었지만 말이다. 특히 언다인이 저 말을 하며 팔 근육을 꿈틀 거릴 땐 등골이 서늘했지만. 평소 행동거지의 차이라는 점이겠지. 내가 너를 울릴 수도 있겠단 생각은 해도, 너가 나를 울릴 거란 생각은 들지 못 하겠지. 이해한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니까.

  사방에 장식된 꽃이 눈부시다. 빨간색도, 보라색도, 분홍색도 한 점 없는 노란색. 저녁노을과도 퍽이나 닮은 그 노란색이 사방을 채우며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의 고집이다. 네가 지하에 떨어진 순간 처음 배웅 인사를 한 색깔이라는 너의 말 때문이다. 나는 그 꽃잎을 조심스럽게 쓸어내렸다가 뒤돌아 네게 다가간다. 


* * *


“난, 결혼하고 싶지 않아.”


  오랜만에 만나자마자 네가 꺼낸 말은, 참으로 현실적이면서도 그 나이쯤 되면 끈질기게 달라붙을 화제였다. 너는 옛날부터 표정 변화가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싫다는 말을 하는 것치곤 표정은 그대로였지만, 목소리의 높낮이라던가 눈썹의 미세한 꿈틀거림을 통해 네가 분명하게 싫다는 감정을 품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그렇지만 다들 가만 두질 않아. 어머니도 누가 내 신랑 후보로 적절할지 고민 중이고.”


  그럴 법도 하다. 지금의 넌 혼기가 꽉 차다 못 해 넘어갈려 하니까. 거기다 괴물과 인간의 대사로 활동한 만큼, 프리스크의 행동은 하나 하나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으니까. 학교를 어떻게 다니는지부터 해서 어느 학교를 갔으며 어디에서 밥을 먹었으며 누구랑 사이가 좋은지 까지.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괴물이 지상으로 다시 올라온 역사를 쓰게 만든 장본인인 만큼, 근황을 궁금해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 화제의 중심인물이 누구랑 결혼을 할지, 아니면 독신으로 살아갈지도 나름 요긴한 화젯거리겠지.


“부탁이 있어.”

“신랑 후보를 찾아달라는 얘기면 좀 곤란한데. 아는 사람이 없어서.”

“나랑 결혼해줘.”


  핵폭탄이 터졌단 생각이 들었다. 눈부신 빛이 터지고, 사방에 열 폭풍이 몰아치며, 무서운 고요가 찾아오는 그 느낌. 며칠 전 본 영화의 한 장면이 왜 자꾸 반복 재생이 되는 건지. 왜 입에서 음료수가 줄줄 흘러내리는 건지.


“프러포즈 연습?”

“아니.”

“너무 빠른데. 아니 그 전에 넌 인간이고 난 괴물이잖아.”

“결혼하기 싫으니까.”


  앞뒤가 안 맞는다. 결혼하기 싫다면서 나하고 결혼하자니? 새로운 퀴즈인가? 


“너는 한 걸음 멀리서 나를 바라보니까.”


  너는 그렇게 말하며 빨대로 음료수를 휘저었다.


“나는, 누군가랑 가까이 하고 싶지 않아. 친구도 가족도 없이 살고 싶단 소리가 아니야. 사랑, 좀 더 근접한, 누군가랑 매우 가까운, 그런 관계를 원하지 않는다는 거야.”

“근데 그게 왜 나랑 겨, 결혼 하겠단 소리로 이어지는 거지?”


  터무니없는 소리라 말이 꼬이고 말았다.


“독신으로 살겠다고 해도 계속 결혼해야하지 않냐, 이런 소리에 시달리겠지. 그렇다고 마음에도 없는 사람이랑 결혼하고 싶지도 않고.”

“그런 사람이라면, 대충 마음 맞는 인간이랑 결혼하면 될 텐데?”


  사회적인 필요성을 위해 결혼하는 인간도 꽤 있단 소리를 들었으니까. 이 애라면 조건도 나쁘지 않으니, 적당한 인간을 만나 결혼이란 타이틀만 획득하는 건 누워서 떡먹기일 텐데. 


“인간이랑 결혼하면 아이 이야기가 꼭 나올 테니까.”

“....그런 이유 때문에 괴물이랑 결혼한다면, 다른 좋은 괴물도 있을 텐데?”

“너여야만 해.”


  너는 나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고요하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깊이를 알 수 없었다. 한없이 투명하고 깊은 열대 바다를 보는 느낌. 그 심해 속에 무엇을 기르고 있는 것일까.


“너는 나를 신뢰하지 않으니까.”


  결혼하잔 말을 하면서 잘도 저런 소리를 하는 구나 싶었으나, 딱히 반박할 이유도 없어 가만히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너는 나랑 이 이상 가까워질 수 없어. 살다보면 더 가까운 사이가 될 수 있는 다른 인간이나 괴물과 달리, 너는 결코 가까워지지 않으니까.”


  나는 웃음을 흘리며 컵을 내려놓았다. 아이러니 하다. 누구보다도 서로 가까워질 수 없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가까운 사이가 되길 원한다니. 


“거절하면?”

“글쎄.... 어떻게 될까.”


  너는 잠시 창밖을 바라본다. 아주 먼 곳을 바라보듯, 오랫동안 그저 그렇게. 마치 돌아올 수 없는 무언가를 그리워하듯.

  한없이 불길한 풍경이었다.


“토리엘이 날 반 쯤 죽이려 들 텐데.”

“어머니라면 내가 뭘 하든 상관하지 않을 거야.”

“친구들도 하나같이 말할걸. 네가 너무 아깝다고. 이런 게으르고 짤뚱막한 해골한테 널 보내고 싶겠어?”

“그건 하나도 문제가 안 돼.”


  어린 아이처럼 고집이 서린 말투였다. 어릴 때가 엊그제 같은 데 언제 이렇게 큰 건지. 파피루스의 어린 뒷모습과, 네 어린 모습, 그 외에도 어렸던 아이들의 앙증맞은 발걸음이 아른 거린다.


“혹시 사귀는 해골이라도 있어?”

“아니.”


  그런 일은 우주가 멸망하고 다시 태어나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내게서 결혼하란 소리만 지워주면 돼. 네가 양말을 집에 던져놓든, 케첩으로 냉장고를 채우든 뭐라 안 할 거야.”


  물러설 기미가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나를 굳이 콕 집어 말한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릴 적부터 봐서 익숙하다던가, 이런 감성적인 이유는 분명 아닐 거다. 네가 나에게 그럴 이유는 조금도 없으니까. 차라리 좀 더 날카로운 이유라면 모를까. 이를테면 앙갚음이라던가. 짐작 가는 거야 한 두 개가 아니니.

  그래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망칠 수 없단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니까.


* * *


“어디 가고 싶은 곳은 없었어?”

“없어. 내가 원하는 건 소파와 텔레비전이야. 너야말로 어디 가고 싶었던 건 아니고?”

“나도 없어.”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짐을 풀고 먼지를 쓸고 닦았다. 그럴싸한 집이 완성됐지만, 신혼집이라고 하기엔 꽤 밋밋한 느낌이었다. 몇 번 찾아본 신혼집을 보면 좀 더 활기차고 산뜻한 분위기지만 너는 그런 것에 그닥 흥미를 갖지 않았으니. 어째선지 신혼집이라기보단 노후를 즐기는 노부부의 느낌이 좀 더 강하게 들었다.


“잠깐 쉬자.”

“좋아. 마침 뼈가 쑤셔서.”


  그렇게 말하며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틀었다. 철 지난 영화가 재생되고 있었다. 너는 채널을 바꾸지 않고 영화를 감상했으며, 나 역시 하릴 없이 영화를 본다. 줄거리는 사랑하는 척 했던 남녀가 사랑에 빠졌으나 비극적인 이별을 맞이한다는, 한 때 꽤 화젯거리가 됐던 영화다. 우리는 단 한 마디도 없이 영화를 감상했으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쯤엔 노을이 짙어진 상태였다.


“저녁 먹어야겠네.”

“사올 거.”

“여기.”


  지름길을 쓰면 금방 왔다 갈 수 있기 때문에 장보기는 내 몫이다. 두부, 양파, 우유, 돼지고기. 


“갔다 와.”


  너는 가볍게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부부라기 보단 어린 아이를 챙기는 엄마 같았다. 실없는 생각을. 가볍게 손을 흔들며 뒤돌아서 지름길로 향한다. 긴 어둠 속에 어떠한 빛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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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글 써보고 싶어서 써봄. 그리고 이것도 한 번 써보고 싶은 내용이었고.

문제는 그 내용이 샌즈프리라는 게 문제지. 


갖고 있는 라노벨에 '하얀 결혼'이란 단어가 나오는데

거기선 그 단어에 대해 '남녀가 육체관계 없이 정신적 결합만을 하는 결혼'을 지칭하는 단어로 썼더라.

검색해봐도 나오는 단어는 아닌데 생각보다 마음에 들어서 사용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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