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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문학)담배 냄새 올라오는 프리스크를 바라보는 차라의 이야기

정의망치거슨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6.04.23 02:3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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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했다.


인간에게 닿으면 피부가 썩고 살이 타들어가며 뼈가 오염되는 듯한 기분을 느끼는 그였지만 그녀만큼은 확실히 사랑했다.


말라버린 가슴 속 감정의 연못에 비처럼 내리던 그녀의 미소를 그는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인사라며 자신에게 날카로운 마법 탄을 날려대고, 영혼을 뽑기 위해 창을 던지고 뼈를 날려도, 전기 공격에 당해도..


작은 몸에는 지렁이가 기어가는 듯 한 잔혹한 상처가 붉은 입을 벌리고 신경을 통각으로 가득 채워도 그녀의 얼굴은 언제나 의지로 충만했다.


그가 잠들었던 황금꽃밭의 만개한 황금꽃 같이 아름답고 순수한 그녀의 마음을 그는 알 수 있었다.


'그'는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꽃밭에 누워 있던 그녀의 생명은 비록 받아주는 것이 있었어도 낙하의 충격으로 구멍이 뚫려 새어나가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처럼 붉은 피가 흙을 적시고 꽃을 물들였으며 피부는 조금씩 창백해지고,


생명이 스러지며 육신과 영혼의 결합 또한 서서히 풀려가고 있었다.


그대로 내버려뒀다면 아마 괴물 세계는 다시 한 번 서서히 흐르는 비극을 맞아들여야 했을 것이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이지만 그가 그렇게 혐오스러워 하는 인간의 영혼을 메워주는 것으로 괴물 세계에는 평화가 찾아왔다고 할 수 있었다.


목숨을 건진 그녀는 '그'의 힘이기도 한 충만한 '의지' 로 지하 세계의 결계를 부수고 땅 아래 수용소의 난민들을 밖으로 해방시켰다.


생전 태양을 볼 기회가 없었던 괴물들도 얼마든지 충만한 황금빛 햇살 속에서 몸을 뎁힐 수 있었다.


시원하고 산뜻한 산들바람과 냇물도, 꽃도 즐길 수 있었다.


물론 그 행복이 오래가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그'는 인간의 증오스러운 본성에 대하여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자신과 가족을 학대하고 차별한 마을 인간들부터 그 일을 방조하던 바깥의 인간들까지.


모조리 산 채로 가슴을 찢고 심장을 꺼내어 씹어먹고 싶었다.


무디고 약한 칼로 배를 찌르고 부러진 칼날이 내장에 박히도록 난도질하고 싶었다.


증오는 마치 끈적끈적한 타르처럼 가슴에 고여 검은 덩어리를 이루었다.


인간 세상에 나오고 괴물을 위해 활동하면서 어느샌가 사랑스러운 그녀가 피우기 시작한 담배의 연기처럼 말이다.


아마 그 감정이 없었다면 그는 당장 그녀의 몸을 뺏고 괴물들을 살해하며 자신의 목표를 향해 거침없이 나아갔을 것이었다.


의지가 아무리 충만하다고 해도 근본적으로 의지는 그의 것이기도 했으니 주도권을 잡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가끔 그녀에게 살의를 투영하거나 주도권을 뺏어 손목에 잇자국을 남기는 등 괴롭히기는 했지만 결코 선을 넘지 않았다.


반쯤 새 생명을 얻은 그녀의 심장이 가고 싶어하는 데로 가도록 내버려 두었다.


쓰던 칼을 내던져도, 코미디언 같은 증오스러운 해골 녀석을 공격하지 않아도..


멍청한 생선 녀석이 그녀의 몸에 손을 대더라도 결코 반격하지 않았다.


그는 어느새 상처보다 사랑하는 이의 눈물이 두려워졌다.


고통의 눈물이 아닌, 절망과 포기의 눈물이 흐르는 것이 무서워졌다.


자신이 생전에 흘렸던 눈물이 그녀의 눈에 찾아가는 것을 원치 않게 되었다.


그녀를 어떻게 이렇게까지 사랑하게 되었는지, 그도 잘은 몰랐다.


무언가에 치이듯 갑작스럽게 사랑은 찾아왔고 빈 가슴은 따스한 붉은 빛 감정으로 차올랐다.


여전히 인간을 보면 욕지기가 났지만 그녀에게는 신기하게도 그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


그였다면 증오의 불길을 활활 불태우며 분노하였을 상황에서도 자비와 용서로 상황을 해결하고 종국에는 모든 이를 구해낸 것에 대한 경외심일까?


자신마저 구하려고 미소지으며 손을 내밀던 그 모습이 아름다웠던 걸까.


그들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고 인간들 틈에서 고통 받으며 아둥바둥 살아가는 모습이 애처로웠던 걸까.


어떤 이유를 붙이더라도 감정의 발단을 쉽게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사랑은 진하고 뚜렷하면서도 모호했다.


그가 가진 증오의 뿌리는 캐어본다면 분명 명확했지만 사랑의 뿌리는 마치 안개처럼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그저 생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은은한 향기를 남기고 도망칠 뿐.


그녀가 피우는 담배의 향기던, 그녀가 아끼는 황금꽃의 향기던, 지금 피어오르고 있는 싸구려 향의 향기던 간에.


절에서 법제한 향은 조용히 자신을 불태우며 진혼의 향을 사방에 퍼뜨리고 있었다.


그 은은한 불꽃과 연기에서 그는 또다시 그녀를 떠올렸다.


담배연기보다는 훨씬 옅었지만 아련한 회색 빛의 메아리에는 그녀의 목소리가 담긴 것만 같았다.


잔잔한 스님의 독송과 목탁 소리 사이에서 또렷하게 말이다.


그는 그녀를 너무나도 사랑했기에, 그녀에게 이별을 고했다.


그녀에게 고통을 주며 이승에 남아 있느니 차라리 망자가 가야 할 길로 떠나가고 싶었다.


자신이 저지른 죄악 때문에 지옥에 떨어져 펄펄 끓는 구릿물을 마시고 쇠꼬챙이에 온 몸이 찔려 고통받더라도 상관 없었다.


그녀가 인간을 상대할 때마다 격렬해지는 그의 감정이 그녀의 영혼의 빛을 더럽힌다는 것을 느끼게 된 순간부터 마음은 정해져 있었다.


언제였던가, 더러운 인간들이 사무실에 찾아와 소리치고 비아냥대고 침을 뱉으며 폭력까지 행사하려고 할 때.


그의 마음은 마치 생전의 것처럼 검붉은 핏빛의 분노와 증오, 살해 욕구로 가득 차올랐고,


그 마음은 그대로 그녀에게 투영되어 그녀의 아름답던 눈동자는 주도권을 가져간 그로 인하여 붉게 물들었다.


그녀는 그 때 처음으로 주도권을 빼앗긴 채 마음 속에 처박혀 두려운 마음으로 밖을 지켜보는 입장이 되었고


'그'의 손에 쥐어진, 문서에 서명하는 용도로 쓰는 만년필의 날카로운 펜촉은 먹이를 찾아 포물선을 그렸다.


쑤걱.


당장이라도 침을 뱉은 녀석의 눈동자를 향해 파고들 것 같은 펜촉의 끝은 부드러운 그녀의 어깻살을 뚫고 박혀 있었다.


펜이 휘둘러지던 순간 마음 속에 갇혔던 그녀는 단숨에 주도권을 빼앗은 후 펜의 끝을 자신의 몸으로 향했던 것이다.


뚝, 뚝.


어깻죽지에서 터져나온 붉은 피가 잉크처럼 펜을 타고 바닥을 적셨다.


그 모양을 본 녀석은 낌새의 이상함을 느끼고 부리나케 사무실 밖으로 도망쳐 버렸다.


지끈지끈한 통증이 어깨로 전해지는 것을 느끼며 그는 주도권이 다시 자신에게 돌아왔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엄습하는 자괴감과 자신에 대한 증오가 뒤섞인 엉망진창인 감정.


그녀가 인간들의 세상 속에서 겨우겨우 힘겹게 쌓아 올린 탑을 손찌검 한 번으로 무너뜨릴 뻔 한 것이다.


게다가 약한 몸에 이제는 어울리지 않는 상처까지 입혔다.


하지만 그가 자신을 증오하는 이유는 '겨우' 그 정도가 아니었다.


그녀는 마음 속에서 울고 있었다.


아직도 서슬 퍼렇게 살아 있던 그의 어두운 감정과 지금까지 쌓아온 것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는 충격에 놀랐던 것이다.


영혼에서 영혼으로 전해지는 슬픔과 두려움의 감정이 와닿을 때마다 죄책감은 그를 사정없이 채찍질했다.


여분의 옷을 찢어 지혈한 후 사무실의 문을 잠그고 누운 채로 그녀에게 주도권을 넘겨주려던 그는 그녀의 영혼이 마음 속에서 자신을 부르는 것을 깨달았다.


반성을 위해 조용히 마음의 구석으로 향하려던 그는 그녀의 부름에 응하였다.


'차라.'


'응.'


'나.. 두려워. 이대로는 자신을 잃을 것만 같아.'


'....'


'얼마나 많은 고통이 날 지나쳐야 행복해질 수 있을까?'


'...'


'포옹해 줘.'


차라는 말없이 프리스크를 끌어안았다.


자신이 자신을 끌어안는 것 같은 이상한 모양새였지만 그에게는 익숙했다.


끌어안긴 그녀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빗방울처럼 주륵주륵 흘러내렸다.


이미 체온도 육체도 잃어버린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런 것 밖에 없었다.


사랑하는 이에게 별 다른 것을 해줄 수 없다는 무기력감은 영혼만 남은 그에게도 충분할 만한 좌절감과 절망감을 제공했다.


문득 그는 자신의 그림자가 그녀에게 드리울 때마다 상처만을 남길 거라는 사실을 자각했다.


그런 관계라면 이별은 빠를수록 좋을 것이라는 것도.


그는 프리스크의 붉고 아름다운 영혼이 더 이상 자신의 어두운 감정에 더럽혀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자신은 차가운 겨울의 바람과 눈을 버티며 피어나는 동백꽃의 뿌리부터 썩게 만드는 비열한 세균과 같은 존재였다.


더 이상 그녀에게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살아 있는 그녀가 누려야 할 삶과 행복을 죽은 자신이 빼앗고 싶지 않았다.






그가 차가운 땅에 다시 묻힌 지도 벌써 여러 해가 흘렀다.


그녀는 그가 잠든 무덤 위에 지붕이 되도록 황금꽃의 씨앗을 한가득 뿌렸다.


입에 물린, 이미 생활처럼 익숙해진 담배에서는 어느때와 같은 연기가 흘렀다.


서툴렀던 그의 사랑 고백, 이제는 떠나야 한다는 말.


그 속에서 느껴지던 그의 감정은 오롯이 그녀를 향하여 있었다.


정말로 사랑한다면 자신의 영혼에 남아달라는 그녀의 말에 그는 처음으로 살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죽은 사람이 살아 있는 사람의 기회를 빼앗으면 안 되는 거야. 너는.. 너의 운명은 나보다 좋은 인간을 분명히 만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어.'


'하지만, 하지만 차라..'


'나는.. 이미 육신조차 썩어 문드러진.. 죽은 사람이야. 너의 삶에 간섭해서는 안 되는, 그런 존재야.. 더 이상 너의 영혼을 더럽히고 싶지 않아.'


'차라..'


'난 이미 의지를 굳혔어. 미안해.. 부디, 나 같은 건 잊어줘. 언젠가 널 찾을 행복을 쥐는 것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


'사랑해.'


그 말을 마지막으로 차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눈물만 뚝뚝 흘렸을 뿐.


프리스크는 가방에서 제주를 꺼내 뚜껑을 열었다.


알싸한 알코올의 향이 코를 찔렀다.


그녀는 챙겨온 술잔에 술을 따라 같이 사온 다크 초콜릿과 함께 그의 무덤 앞에 올렸다.


벌써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워도 아무도 제지하지 않는 나이가 된 것을 떠올리며 프리스크는 세월이 참 빠르다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차가워 보일 정도로 푸른 하늘을 잠시 바라본 후 다시 무덤으로 시선을 돌렸다.


"지옥은 좀 지낼만 하니? 설마 천국으로 간 건 아니지? 에이, 니가 한 짓이 있는데 천국에 갔을 리가 없지."


자신의 말이 우스워서 못 견디겠다는 듯 낄낄대던 프리스크는 습관적으로 연초를 꺼내어 물었다.


뿌연 연기가 향불처럼 묘를 감돈 후 하늘을 향해 올라갔다.


따로 향을 준비한 것은 아니지만 그를 위로하기에는 충분해 보였다.


"나야 뭐 늘 똑같이 지내고 있어.. 인간들은 늘 싸가지가 없고, 괴물들은 사회에 적응하기 힘들어하고.. 그 틈바구니에서 열심히 뛰어다니지..


정말, 정말 가끔이지만 니 심정을 이해할 것도 같아. 우습지? 이것도 네 흔적일까?"


그녀의 물음에 대답할 사람은 여기 없었다.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이었다.


그녀와 그가 함께였다는 사실은 그들만의 비밀이었으니까.


"여전히 행복은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도 않고.. 인생 참 어렵더라. 넌 좋겠다. 어렵기도 전에 죽었으니."


그와 함께 했던 추억을 되새기고 있으니 어느새 연초는 자신을 끝자락까지 태우고 있었다.


프리스크는 담뱃재를 툭 떨어낸 후 산불이 나지 않도록 발로 잘 짓이기고 생수통을 꺼내어 물까지 뿌렸다.


"친구네 집에 불을 낸 불한당이 될 수는 없지. 하하.. 쨌든, 자식아. 어디에 있던간에 말이지.."


그녀는 잠시 이으려던 말을 멈추고 숨을 골랐다.


기일마다 하는 말이면서도 늘 할 때마다 새롭고 가슴이 막히는 말이었다.


가끔은 눈물까지 찔끔 새어나올 정도로.


"행복하렴. 차라."


프리스크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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