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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갤문학] 소원나무 (귀농테일 플라위, 거슨)앱에서 작성

흐븜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6.04.25 11:46:20
조회 3628 추천 48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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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적절한 짤이 없네...
맞춤법 검사 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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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소원이 뭐야?'

누가 속삭였다. 속삭인다는 것을 모르는 어린 생명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어두웠다. 빛을 몰랐기에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가끔, 목이 마르곤 하면 애가 탔다. 주변이 좀 더 푹신하게 몸을 그러안아 주던 날이면 사방에서 단물이 스며나왔다.

소리가 들리곤 했다. 같은 소리들끼리 어울려 높고 낮은 음을 냈다. 따뜻한 때가 몇 번, 추운 때가 몇 번 지나던 어느 날 이었다. 머리맡을 슬쩍 건드려 보았다. 꿈쩍도 않던 것이 스륵 하고 밀렸다. 눈이 부셨다. 빛이 새어들어오는 곳을 향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싹이 피어 올랐다.

*

위태롭게 뿌리를 디딘 어린 싹은 자라났다. 흙이 뿌리를 더욱 푹신하게 그러안는 날이면 단비가 쏟아졌다. 따뜻해지면 흰 빛이 떡잎 위로 쏟아져 맛있는 알갱이들을 몇 방울 위에 발라 주었다. 싹은 배가 불렀다. 땅 위에 움직이는 생명들은 흙을 비집고 피어난 싹 하나를 신경쓰지 않았다. 그 싹이 키가 커지고 줄기가 딱딱해지고 나무가 되어 자라나는 동안 토끼풀을 뜯는 사슴도, 나무껍질에 발톱을 긁어대는 살쾡이도,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어린 나무는 외로웠다. 그가 지나오는 건 밝고 어두운 하늘 뿐만 아니라 따뜻하고, 습하고, 시원하고, 다시 건조해지는 공기의 연속이었다.

나무는 두꺼워졌다. 옆구리가 간지러웠다. 누가 붓으로 줄 같은 것을 그어내는 기분이었다. 어른 나무에게는 고민이 있었다. 꽃도 피지 않았고, 열매도 생기지 않았다. 아기 씨앗들을 퍼뜨릴 수 없었다. 해가 갈수록 늙어가는 나무는 외로웠다. 봄이면 사방에서 만개하는 꽃이 풍기는 향기를 자기만 퍼뜨릴 수 없었다. 밤이면 하늘에도 꽃이 피어올랐다. 멀리 있어 향기를 맡을 수는 없지만 새까만 가지 위에 내려앉은 매화꽃잎처럼 눈이 아리도록 빛났다. 내 가지에도 별이 피어오르면 좋으련만. 늙은 나무는 슬펐다.

어느 날은 폭음이 들려왔다. 천둥같은 것이 아니었다. 거센 태풍도, 범람하는 강물도 단단히 뿌리를 박아버린 나무는 두려울 것이 없었다. 하지만 폭음은 달랐다. 그건 하늘이나 바람이나 바다, 땅, 강이 내는 힘이 아니었다. 먼 곳에서 새까만 연기가 피어 올랐다. 연기는 금방 이 곳의 공기까지 집어삼켜 탁하게 만들었다. 숨이 막혔다. 그 때 나무는 처음 두 발로 걷는 짐승을 보았다. 깎아지른 절벽같은 검고 긴 돌을 옆구리에 끼고 저들끼리 비슷한 색의 가죽을 덮은 채 들을 누볐다. 돌에선 이따금 작은 폭음이 들리며 불꽃과 연기를 쏟아냈다. 두 발로 걷던 짐승들은 스러져 네 발로 땅을 기기 시작했다. 땅 위에 그들이 흘린 진한 피가 스며 들었다. 비렸다. 땅도 하늘도 역하도록 비렸다.

'네 소원이 뭐야?'

오래 전에 들었던 목소리가 또 속삭였다. 반가움에 늙은 나무는 작게 웃었다. 두 발로 걷는 이들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네 발로 기게 된 짐승 하나가 늙은 나무에게 기대왔다. 밑둥에 몸을 뉘이고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늙은 나무는 짐승들의 이런 모습을 수차례 봐왔다. 토끼도, 고라니도 흙으로 돌아갈 때가 되면 땅 위에 몸을 기대고 생애 가장 단 잠을 잤다. 하지만 이 짐승은 쉽사리 잠에 들지 못했다. 불안하고 위태로워 보였다.

'괜찮아.'

조용히 말을 걸었다. 플라위가 휑한 가지로 봄을 보낼때면 바람이 속삭여 주던 위로였다. 괜찮아. 짐승의 숨이 조금씩 잔잔해지고 있었다. 태풍이 불기 전 날 밤의 비단결같은 바다처럼. 짐승은 스러질 때면 작게 웃었다. 이제 끊어질 때였다. 늙은 나무는 최선을 다해 그늘을 드리워주었다.

'넌 이 곳에서 오래 살았지?'

짐승이 말했다.

'한 자리에서 깊게 뿌리를 내린 채, 같은 들과 같은 하늘을 보면서.'

짐승의 입은 움직이지 않았다. 다만 이 짐승은 늙은 나무처럼 말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늙은나무는 흩어져가는 여린 생명에게 대답해주었다.

'아냐 늘 달랐어. 흙 한 줌도 바람 한 점도 이 곳은 매일 달라.'

'같은 곳에서 난 모든 것을 봤단다.'

대답이 들려올 줄 몰랐는지 흠칫 놀라던 짐승은 나무와 대화하기 시작했다.

'난 많은 곳을 누비고 다녔어. 끝내주는 모험이었지.'

'야망을 쫓아다니고 쫓고 또 쫓기고...'

'내 맘대로 움직일 수도 없게 되서야 겨우 멈췄네.'

짐승이 힘없이 떨리는 한 쪽 팔을 뻗어 늙은 나무의 뿌리 위에 얹어 놓았다. 나무는 싹일 때 받아먹던 초여름의 햇살만큼 따뜻하다고 느꼈다.

'궁금해. 한 곳에서 맞는 바람은 어떤 기분이야? 별이 수놓는 밤 하늘은? 귀를 간질이는 풀벌레 소리는...'

'머물러서 행복하고 싶어. 그런 곳이 있었으면 좋겠어. 나처럼 쫓고 쫓기는 지친 사람들이 편히 쉴 수 있는 따뜻한 집.'

짐승이 몸서리쳤다. 추위를 느낀다고 생각한 늙은 나무는 그늘을 가르고 빛을 쬐여주었다.

'네 소원이 뭐야?'

누군가 속삭였다. 늙은 나무는 그제야 알았다. 기원없이 뿌리를 묻고 꽃없이, 열매없이, 향기없이, 한 자리에서 살아온 나무에게는 씨앗을 퍼뜨리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있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낮엔 해가 떠오르고 밤하늘엔 별이 박히는 것처럼 아름답고 고결한 섭리였다.

'네 소원이 뭐야?'

그것은 어느 날 들려올 늙은 나무의 스스로의 목소리였다.

'소원?'

'무엇이든 들어줄 수 있어.'

늙은 나무는 가지에 바람을 걸어다 짐승에게로 흘려보내주었다. 바람이 쓰다듬는 짐승의 표정이 편안하다.

'내 소원은...'

생명이 작게 웃었다.

*

쌍둥이 별이 떠올랐다. 하나 뿐이었던 별은 언제 부터인가 마치 오랜 친구가 손을 맞잡고 있는 것처럼 사이좋게 하늘 위에서 춤을 추었다. 그 아래 등딱지를 인 영감하나가 마을의 오래된 나무를 찾았다.

"소원이 뭐야?"

"지겹지도 않은가 보구먼."

"내년에 다시 생각해보라고."

"음, 그래."

영감이 등딱지를 치켜 올렸다.

"내년에도 잘부탁하네."

영감은 두 손을 모아 나무 앞에 고개를 숙이며 마을의 안녕과 기원, 평화를 빌었다. 지친 영혼이 고인 따스한 마을에 늙은 나무는 한 번 더 뿌리를 깊게 내려 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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