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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로맨스발전형야설] Gloomy Sans - 上

선악의저편(221.140) 2016.05.27 23:29:11
조회 4017 추천 55 댓글 9
														
야설발전형로맨스나 로맨스발전형야설이나 결국엔 뽕빨인건 똑같은거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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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주점에 갈 때마다 비가 내린다. 굴러들어온 인간들 몇 명이 거나하게 취해 있는 것도 이젠 익숙한 상황이지만, 어찌됐든 샌즈는 우산 자락 몇 개만 덩그러니 걸쳐진 입구만 봐도 기분이 좋지 않다. 그릴비가 배수처리를 어떻게 해 놓은 건지 빗물이 하수구로 흘러가기는커녕 웅덩이만 수두룩하다. 물론 발바닥에 물 좀 차는 거야 별 상관할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꽃 피고 화창한 날이 그럭저럭 몸에 감기는 것이 더 낫지 않은가. 음습하기 짝이 없던 연구실에서 지낸 나날도 이미 오래됐고, 알피스는 지상에서 내려온 사람들에게 강제로 리모델링을 당해 세련된 통유리 건물에서 연구를 하고 있다. 몇 주 전에 가보니 융합체들이 득시글 거려야 할 알피스 주변에 요상한 토끼 로봇들만 모여있길래 박장대소를 하면서도 쓴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나름대로 아스고어가 외교활동을 잘 하긴 했다. 위쪽이 궁금해서 딱 한번 아스고어를 따라갔는데, 어찌나 목소리를 굵게 내던지 토리엘이 당황한 표정을 지을 정도였다. 물론 샌즈는 웃음을 참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며칠 동안 바닥을 굴렀지만. 아무튼 덕분에 지하에 학교가 생긴지도 꽤 오래됐다. 프리스크도, 아스리엘도 다음 달이면 졸업이고 어쨌든 성인이다. 이젠 꼬맹이들도 지상으로 올라가야 할 것 같다. 최근 들어 감자칩이고 소파고 다 집어치우고 이리 저리 방황하는게 어째 아쉽긴 아쉬운 모양이다.


"형도 올라가면 되잖아? 위대하신 파피루스님이 커다란 궁전을 지어주지!"


아이들이 다음 달이면 올라간다고 말할 때마다 동생의 밝은 목소리를 들었다. 굳이 그렇게 달랠 필요는 없었는데. 팝은 여전히 천진난만하다. 이쯤 되면 프리스크도 같이 놀아줄 정신이 없을 텐데 팝이 땅바닥에 쭈욱 뻗을 때마다 자지러지게 웃는 것이 일부러 맞춰주는 것 같다. 물론 샌즈도 다를 게 없다. '골'때리는 개그는 이제 그만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벌써 10년째 놓지 못하고 있다.


"샌즈, 이번엔 위쪽에서 좋은 게 많이 들어왔어요. 마셔보면 속이 활활 불탄다구."


정말로 흉골이 주인장 면상처럼 활활 타올랐으면 좋겠지만, 웬만큼 도수가 높아도 샌즈가 마시기엔 별 느낌이 없다. 그저 향만 즐기다가 도망가는 수준이지만, 그래도 습관이 되어놨으니 그릴비네 주점에 오는 것을 끊을 수는 없다. 주점 등불은 이상하게도 더 음침해졌다. 아무래도 그릴비가 있어서 가게 조도가 어느정도 보장되는 까닭에, 지상에서 내려온 전기기사들이 배선을 대충 깔아놓고 주광색 전구 두 어개만 넘겨주고 갔다. 아무래도 의욕이 없는 시간을 보내기엔 이보다 적절한 분위기가 없다. 천장에 달아놓은 전구마저 별 규칙이 없고 우왕좌왕이다. 때문에 구석진 곳으로 가면 테이블에 올려놓은 양초를 제외하면 거의 얼굴조차 보이지 않는데, 그렇게 목소리만 주거니 받거니 하는 곳에서 괴물들 둘이 턱수염이 진한 인간 남성과 시덥잖은 개그를 나누고 있다. 샌즈는 그릴비에게서 보드카를 건네 받아 자기 향초를 들고 슬쩍 고개를 돌려보았다. 자세히보니 턱수염만 진했지 기껏해야 프리스크와 나이가 비슷할 만한 젊은이였다.


다시 프리스크를 생각해본다. 꼬맹이가 여기로 떨어지지 않았다면 지금쯤 지상에서 저만한 남자친구라도 하나 만들고 잘 놀고 있겠지 싶었다. 어린 나이에 처참한 광경을 보지 않을 수 있었는데. 그래도 어릴 때보다는 잘 웃고 먹는 것도 가리지 않는 아이가 되었으니 샌즈는 입가에 묻은 보드카를 쓰윽 닦으며 입꼬리도 같이 올려본다. 여전히 먼저 말 걸지도 않고 그다지 활동적이지 않은 것은......샌즈도 마찬가지라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고 본다. 돌아가면 파피루스가 무언가를 만들고 있을 것 같다. 프리스크는 저녁 쯤 들어와서 자기가 그린 그림을 보여주고 감상평을 들으려고 무진 애를 쓸 것이다. 샌즈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그림들이거나 별 감흥이 없어 보이는 소재들 뿐이다. 궁정 옆의 가로등에 구름을 걸어놓거나, 그릴비 앞에서 비를 맞고 있는 자화상을 그려놓고 제목은 항상 '샌즈' 아니면 '파피루스'였다. 이상하게도 아스리엘은 이해를 하는 것 같았는데 도통 논리성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샌즈는 그림을 볼 때마다 '잘 그렸네. 수고했어.' 라고 말하는 것 뿐이지만, 아스리엘이나 팝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송하곤 했다. 알피스가 그림 한 장을 가져가서 연구실에 걸어놓기도 한 걸 보면 샌즈가 그림에 관심이 없는 건 확실하다.


"형! 오늘은 그래도 맛있는 그림이야. 내가 만든 초고급 양고기 수프!"


샌즈는 동생을 향해 윙크를 날려주었다. 굳이 학교에 보내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냅뒀는데 정말 잘한 것 같다. 이제는 팝이 둥둥 떠다니는 꼴을 꿈에서라도 보지 않는 게 다행이다. 엎어진 스파게티 그릇도, 찢어진 소파와 깨어진 TV도 보지 않을 수 있다. 그게 몇 번째 리셋이었는지도 이미 잊었다. 흉악한 미소를 짓던 플라위의 목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는다. 아주 가끔, 두개골이 저릿할 때가 있긴 하지만 이렇게 비가 오는 날에는 오히려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음. 그 아주 가끔 두개골이 저릿할 때가 있긴 한데.


"샌즈. 오늘도 그림을 그려왔어."


이제는 익숙해질 법 한데, 샌즈는 꼬맹이를 올려다 보는 일이 영 어색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계단 위에서 프리스크를 내려다 보면 소름이 돋는다. 저 초롱한 눈망울이 피로 물들지 않을까 걱정한다. 그래도 조금만 참으면 된다. 올라간 입꼬리만 유지하고 있으면 프리스크가 웃으며 달려오기 때문이다. 다행히 프리스크가 커다란 종이를 들고 샌즈의 머리 위로 펼쳐들었다. 이 정도 구도라면 프리스크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리셋은 없을 거야.


"헤. 잘 그렸어. 오늘도 참 멋진 그림이야."


늘 하던대로 던져주고 프리스크는 싱긋 웃을 뿐이다. 연이어 터져나오는 팝의 흥분한 목소리도 예상했던 바다. 오늘 그림은.....더 이해하기 힘들다. 학교 주변에 세워 놓은 나무들과 풍경을 그린 것 같은데 인간들이 조성해 놓은 꽃밭이 어째 저 그림에서는 나무 위. 도화지 끝에 깔려있다.


"지상에 올라가면 온통 꽃밭이래. 여기 있는 공원보다 더 아름다운 곳들이 많을 거야."


샌즈의 마음 한 켠이 쿵 떨어졌다. 프리스크가 이런 식으로 지상을 직접 언급한 적은 없었다. 입으로 머지않아 여기를 떠난다는 말은 하지 않았으면 했다. 토리엘이 요즘 들어 프리스크가 멀어진 느낌이라며 몰래 눈물짓는 것을 보긴 했는데, 아마 집 밖에서는 지상에 대해 말을 많이 하고 다니는 모양이다. 샌즈는 애써 두개골을 양 손으로 부여잡고 헤 웃어보였다. 돌연 팝이 뒤에서 형을 들어올렸다.


"형! 우리도 가끔씩 놀러가자구. 해골 머리에 꽃을 달면 얼마나 재미있겠어."


도화지 위로 보이는 프리스크의 눈이 보였다. 저 아이가 이렇게 아름답고 안타까운 적이 없었다. 샌즈는 미소를 잃지는 않았지만,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식사가 끝나고 소파에 누웠지만 잠이 오질 않는다. 저녁잠은 언제나 소중한 것이고 팝을 재우려고 중간에 퍼뜩 깨어나 나른한 느낌을 즐기는 게 좋았다. 그릴비가 준 보드카 몇 병과 칵테일이 있길래 일단 마시기로 했다. 프리스크가 관심을 보이길래 아직은 알콜이 들어갈 때가 아니라고 했더니 샐쭉 웃으면서 발을 톡 치고 올라가 버렸다. 뭐, 프리스크가 전력으로 때린다고 해도 발이 얼얼하진 않을 테지만, 이상하게 발이 간지러워 참을 수가 없다. 지금처럼 꼬맹이를 의식해 본 적이 없었다. 일어나서 올라가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선뜻 몸을 일으킬 수가 없다. 샌즈는 창문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따라 고개를 움직여 보았다. 목뼈가 삐걱대는 소리를 내며 창문을 기웃거리는데, 이미 그쳐버린 빗방울이 벽을 타고 주르륵 미끄러진다. 소름이 돋는다. 물방울만 보다가 어느새 집중을 잃은 듯 하다. 한껏 바람에 휘날리던 나무가 고개를 따라가다보니 좀체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 샌즈는 이리저리 눈망울을 굴려보았다. 맑은 날 구름이 항상 원하는 모양으로 바뀌듯이, 창문에 흐르는 물방울도 프리스크의 얼굴을 그렸다. 가슴 한 쪽이 아련해지다가, 창문의 프리스크가 눈물을 흘린다. 창문을 닦아주려고 몸을 일으키는 순간, 아이의 붉은 눈빛이 스쳐지나간다. 눈을 비빈다. 이젠 프리스크가 없다. 샌즈는 다시 소파에 몸을 묻고 머리를 무릎 사이에 떨구었다. 아직도 프리스크가 두렵다. 이 모든 것이 다 두렵다. 지금의 아쉬움도 사라질텐데. 그러면 마음은 편해질테지. 심각한 이율배반이다. 힘겹게 몸을 일으켜 계단으로 향했다.

 

파피루스는 일찌감치 자는 것 같다. 내일 옆 집 사는 인간 꼬맹이들과 놀기로 했다는데, 참 즐거워 보이는 동생이라 기분이 좋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곤히 잠들어 있는 파피루스가 보였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렇게 동생의 얼굴을 보니 씁쓸한 기분이 더 커지고 만다. 이 평화를 잃고 싶지 않다.

 

"샌즈?"

 

등을 타고 한줄기 차가운 기운이 솟아오른다. 살짝 열려있는 문 사이로, 프리스크의 얼굴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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