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한거 조금 나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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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나는군. 나는 이런 식으로밖에 느끼지 못하는 머저리였다. 그래서 어떻게 하란 말이지? 해골은 어느 시점부터 시간선을 거듭할수록 감상적으로 변해갔다. 그것이 그의 잘못이랄 수는 없지만 숱하게 죽어나간 지난 세월을 헤아려보면 이런 급격한 반전은 미심쩍은 의문을 남겼다. 물론 개인적으론 바라마지않은 일이지만. 그에게 동생이라니, 그랬었다는 기억이 날듯하다.
"괴물들은 그런 식이었어. 활기가 넘치고, 새침한듯하면서 배려해주는 마음씨가 고마운 존재들이었지."
"그런데 그들이 결국 '그걸' 알아차린 모양이야, 그렇지?"
"맞아.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어. 시간선에 균열이 생기고 있는 거야! 빌어먹을..."
"복잡한 생각은 그만해. 다시 시간선을 돌리면 명확해지겠지. 그전까진 즐기는 거야."
나는 손을 뻗었다. 해골이 부드럽게 응수해온다. 그의 두 눈이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내 손과 맞닿은 해골의 하얀 뼈가 가시처럼 살갗으로 파고들었다. 역시 그와 나는 달콤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비정함을 초월한 공허의 공간 속에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열정적이고 모순적인 행위를 한다. 그가 차라리 눈을 감아주었으면 하였다.
그가 점퍼 지퍼를 열자 몸의 구조물이 널리 드러났다. 늘 뒤집어쓰고 다니던 후드는 이미 벗어던진 채 팔을 늘어뜨리자 매달린 옷가지가 후드득 떨어졌다. 빠져나온 팔 끝에 익숙한 것이 보인다. 저 칼은 샌즈를 설명하는 전부라도 되는 것처럼 몸에서 떼어놓는 일이 결코 없었다.
"무서운데, 나 죽어버릴지도 몰라. 다른 방향으로."
"네가 그런 헛소리를 지껄일까 봐 남긴 보루야. 걱정 마, 오늘은 될 수 있으면 길게 살려줄 테니 말야."
뼈는 아무런 맛이 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보면 그렇지만 나는 상상에 집중했다. 그의 웃음소리가 낮게 머리 위쪽에서 울렸다. 나는 고개를 처박고 가슴뼈를 조근 거리며 깨물다가 혀로 문질러댔다. 입을 닫고 계단을 내려가듯 그의 갈비뼈를 윗닙술과 아랫닙술 부드러운 부분으로 거꾸로 떨어트렸다. 해골이 간지러워 참을 수 없다는 듯 내 머리칼을 온통 제비집으로 만들었다.
나는 손을 들어 골반뼈를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삽입을 했는데 약간 바보 같은 심정도 든 건 어쩔 수 없었다. 골반뼈는 생각보다 넓었고 내 자지로 전부 채워 넣을 수 없어 손으로 안쪽을 함께 애무해야 했다. 내가 차올리는 박자에 맞춰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해골의 움직임이 이어졌다. 어쨌든 샌즈와 나는 서로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셈이었다.
"괜찮아?"
"입다물어."
그가 내 입에 칼자루를 쑤셔 넣고 움직이지 못하게 양손을 깍지 꼈다. 해골이 말한 칼의 다른 용도는 굉장히 단순한 것이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내가 사정하기 직전에 이런 짓을 하다니. 나는 칼을 떨어트려 적절하지 못한 상처를 만들지 않기 위해 턱에 힘을 주고 이를 사려물었다.
사포질하는 것같이 건조한 소리가 우리 둘 사이의 허전함을 메꿔 넣는다. 샌즈는 내가 사정하는 것과 동시에 내 이를 부수고 칼을 잡아 내 목을 잘랐다.
어떤 기억이 떠오른다. 그것은 매우 색이 바래있었다. 온통 잿빛이었는데 음울한 느낌이 짙고 공기가 가라앉아 하늘 꼭대기거나 바다 깊숙한 곳이거나 현실과 전혀 관련이 없는 공간이었다. 희박한 숨을 내쉬려 보니 뜨거운 열기가 목구멍으로 내쳐들어온다. 기분이 몹시 불쾌했다. 땀을 흘리고 싶은데 마음대로 되지 않아 눈구멍에 끈적하고도 집요한 오물을 담고 있는 것 같다. 입김을 되삼켰다.
나는 누군가의 품 속에 있었다. 몸이 바닥과 다소 분리된 느낌을 깨자마자 받았는데 이것이 이유였다. 나를 안고 있는 자의 얼굴을 보고 싶었지만 너무나도 깊숙이 감겨든 모양새라 고개를 들기는커녕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재 냄새가 난다. 나를 단단히 붙잡고 있는 존재에 대해 생각해본다. '존재'가 말을 걸어왔다.
"그 아이가 올 때까지 기다려. 그게 내가 너에게 부여한 형벌이 될 것이다."
앞 뒷말이 생략된 문장. 이 세상 그 어느 것보다 더 소중한 것처럼 나를 품고 있는 그의 어조는 강철과 같았다. 흠집을 낼 수 없는 단호하고 냉철한 그의 말에 나는 진한 괴리감을 느꼈다. 나는 무엇 때문인지 그가 다음에 뱉을 말을 알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 무한에 가까운 반복으로 이루어진 환각이었다.
"샌즈, 난 널 위해서 이 모든 걸 이루어낸 거야."
세상이 모든 방향에서 허물어졌다.
마지막은 마지막이 아니라 진실인 것 같다. '나'는 다시 살아났다. 샌즈와 섹스를 시작하고 난 이후로 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이전까진 죽음 이후 부활까지 그 어떤 간섭도 없었다. 적절히 죽는 것이 완료된다면 곧바로 현실로 리스폰 된다는 의미이다. 죽지도 않고 살지도 않은 경우는 오로지 해골과 몸의 대화를 나누고 난 다음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 사이 나는 샌즈가 되어 샌즈의 기억을 답습했다. 기억이 어떤 기준을 가지고 등장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가장 선명한 것이 이번의 저것이다. 괴물이 살해자가 되기로 마음먹기 전의 추억인 듯싶었다. 나는 궁금증을 견딜 수 없어진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해골이 고민하다 내뱉은 말이 저따위다. 나는 곰팡이 때문에 발이 묶여버려서 같은 자리에서 움직일 수가 없다.
"그러니까 네 말은, 괴물들이 네가 자기들을 죽이는 걸 알고 있다는 거잖아."
"그래. 더 이상 '똑같이'반복되지 않아. 그들은 리셋의 기억이 축적되는듯해. 그 세계에 따라 각각 다른 태도를 가지고 날 대한다고."
"솔직히 말할게. 너 어디 잘못된 거 아니야?"
해골은 우뚝 멈췄다. 눈빛이 괴괴하게 타올랐다. 그는 세차게 고개를 도리질 치더니 후드를 손안에서 종이처럼 구겼다. 그는 어깨를 들썩거리며 괴로워했다. 어떤 생각의 파편이 그의 뇌 속에 깊게 박힌듯싶었다. 주머니에서 칼이 떨어지는 동시에 손가락뼈를 타고 손목을 지나 바닥으로 추락하는 것이 보였다. 눈물이었다.
"너 미쳤어? 어떻게 네가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지? 내 말은 모두 사실이란 말야! 그들이, 그렇게 친절했던 그들이! 이제 나를 피하고 있어. 나와 시선이라도 마주칠까 봐 고개조차 섣불리 들지 않는다고! 그들은 두려움을 가지고 있어. 그 대상은 나야."
"그렇다면 증명해봐."
나는 지금 워터폴이다. 조금만 더 뒤돌아간다면 곧 스노우딘에 도착할 것이다. 설레는 마음이 생긴다. 아직까지 괴물을 만나지 않았다. 그의 말이 사실인 건가. 정말 괴물들이 샌즈를 무서워하여 숨어버렸을까? 뼈다귀는 틀림없이 그러하다고 했다. 오히려 그러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고. 살해 예고장이 날아온 상황에 자신들의 운명을 최대한 피해보려 하는 것이라고. 최선을 다한 발악이라고. 그는 이렇게 말하며 나를 죽였다.
나는 리스폰 할 수 있는 장소가 매우 한정적이었다. 가장 간편한 곳이 심판의 복도이다. 왜냐하면 그곳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방해를 받는 것이 불쾌하기도 하고 세상의 종말이 다가온 순간에 최후변론과 같이 해골과 만담을 나눌 수 있는 것이 만족스럽기도 하였다. 물론 다른 장소를 선택할 수도 있다. 그곳은, 심판대와는 다른 종류의 것이다. 감상을 밝히자면 나는 성의를 다해 피하고 싶어지는 곳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곳은 한 번 간섭받은 적이 있다. 시간선의 균열이든 우연의 일치이든 엄청난 힘의 압력이든 아니면, 관음증 변태 같은? 평화를 되찾은 지금에 와서야 이런 하릴없는 추측을 늘어놓지 당시엔 온 정신을 빼놓았다. 침입자의 뇌리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나는 아직 기억돼서는 안된다.
침해의 진실은 실눈을 한 '그 아이'가 쥐고 있는 것이다. 나의 해답이 되어줄 존재! 하지만 아직 너를 만나기엔 적절한 시기가 아니야.
우울한 폭포를 지나서 물먹은 화강암을 찰박거리며 내달린다. 어디선가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동굴 속에서 들리는 것 마냥 커다랗게 울리며 고막 안으로 떨어졌다. 워터 폴은 지하에서 가장 어두운 곳이다. 산의 죽은 세포, 각질 같은 부분이기 때문이다. 고개를 들면 희망이 곧 떨어질 듯 위태로운 자태로 박혀있었다. 괴물들은 그것을 두고 '별'이라고 불렀다. 내가 종종 해골의 눈 속에서 체득하는 잠언같은 것이었다. 나는 공간의 전체 속에 입자처럼 흩어져 존재하고 있었다.
해골이 업무를 하는 모습을 직접 보는 기회가 오다니. 나를 자신의 일과시간에 초대한 호의에 감사했다.
눈마을에 도달했지만 여전히 괴물들은 보이지 않았다. 샌즈 역시 마찬가지였다. 길을 잃거든 간판을 찾아오라. 뼈다귀가 한 말이었다. 스노우딘 안에는 간판이 하나밖에 없었다. 특별한 건물 위 철제를 덧대어 못으로 박아 세운 나무판에 그릴비라고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저것을 의미하는 모양이다. 나는 창문 곁으로 바짝 다가갔다.
모든 괴물들이 그곳에 있었다. 그 안은 빈 곳을 찾기 힘들 만큼 괴물들로 빽빽이 채워져 있다. 그런데 그들은 눈이 바닥에 쌓이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침묵하고 있었다. 팽팽하게 당겨진 긴장감이 그대로 살이 되어 목을 옥죄어오는 공기 속에 낯익은 자들은 없다.
그 분위기는 단상에 선 키가 큰 괴물이 입을 열자 반전되기 시작했다. 차단한 창의 유리 때문에 그들이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까지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해석은 필요 없었다.
기조 연설이 곧 종료되었다. 그리고 불꽃의 얼굴을 한 괴물이 뒤쪽 문으로 사라지더니 곧 다시 나타났다. 손에 커다란 통을 들고 있는 채로. 괴물들이 웅성거린다. 각자 상념에 잠긴 듯 고개를 도리질치는 토끼, 머리를 짚고 있는 늑대, 시무룩한 표정의 곰 이런 개체들의 감정이 촉감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종이를 나눠가지고 불꽃이 들고 있는 통 안으로 그것을 던져 넣었다.
그리고 창을 든 물고기의 결의에 찬 표정이 등장했다. 그녀는 굉장히 큰소리로 떠들었기 때문에 내 쪽에서도 충분히 알아들을만하였다. 내용은 이렇다.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 고맙습니다. 그렇다면 역시 그 방법밖에 없겠군요."
그녀가 쥐고 있는 창이 파란빛을 토해내며 급격히 타올랐다. 실내에서 이룬 악행의 절차와 함께 하늘에서는 눈이 조용한 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얼마간 자취를 감춘 그들은 다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며 내 어깨에 하나둘씩 쌓여갔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해골은 여전히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처단."
창의 외침과 함께 문을 열고 들어온 해골의 잿빛 후드가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왔다. 그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지? 고개를 처박고 있어서 보이지 않았다. 그는 웅얼거리며 무슨 말을 지껄이는듯했다. 그러나 창을 든 여인은 인내심이 없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라 주체할 수 없이 빨개진 모습으로 해골의 멱살을 잡아올렸다. 샌즈는 그때까지 중얼거림을 멈추지 않았다. 해골이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실내의 광경은 점차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극단으로 치달았다.
"살해자의 등장!"
나는 비웃으며 속삭였다. 그의 말이 진실인지는 관심 없다. 뼈다귀와 나 사이 어떤 다른 이물질이 첨가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다. 이렇게 그의 말을 확인하러 몸소 움직인 것도 그가 내게 보낸 신뢰에 대한 답변에 지나지 않았다. 자신의 결말을 예상하고 있었으면서 나를 이 장소에 초대한 것은 자신의 슬픔을 알아달라는 외침이었다. 그래, 해골은 이미 자기가 괴물들에게 죽을 것을 알고 있었다.
"이 개새끼, 그동안 가면을 쓰고 우리를 농락하고 있었어? 감히 네까짓 게 괴물들을 장난감 취급하다니! 몹쓸 것이 얼마나 뒤에서 우리를 비웃었을까? 너 같은 건 죽어야 해. 지옥으로 떨어져야 해!"
"곤두박질치는 절망이 뭔지도 보여줘, 창."
나는 창가에 서서 조용히 읊조렸다. 입김은 나오지 않는다. 나는 존재하고 있는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유령이었으니까. 유령은, 실존할 수 없다. 다들 알고 있잖아? 나는 최대한 성자처럼 보이려 애썼다. 이 모든 연극들이 관객들 앞에 비극으로 비추어지길 바랐다.
해골의 머리에서 후드가 떨어져 내린다. 그 현상은 슬로모션처럼 천천히 각을 재어 이루어졌다. 나는 시선을 한 곳에 고정시켰다. 해골은 연신 뭐라고 떠들며 고개를 이리저리 도리질 쳤다. 눈구멍에서 눈물이 자꾸 올라와 뺨을 타고 입안에 고이는 모습, 그것 때문에 괴물의 말은 가래 끓는 듯 부정확한 소음을 낼 것이다. 그걸 상상하니 매우 즐거웠다.
"미친 놈, 아직도 그런 소리를 지껄이다니. 넌 양심이란 게 없는 거야? 네가 죽는 게 우리한테 도움이 된다고!"
쇠꼬챙이가 해골의 보석을 하나 깨트렸다. 그것이 조각나는 환청! 쪼개진 샌즈의 얼굴은 눈물과 피가 한데 뒤엉켜 지저분하게 범벅되었다. 그의 눈구멍이 세차게 피를 토해냈다. 그런데 샌즈는 고통을 잊은 듯 보였다. 자신이 마구잡이로 파헤쳐지기 직전에 무언가 계속 필사적으로 설명하려 애썼다.
"난.... 때문에...... 그렇기에..... 너희는..... 모르는?....."
해골의 말은 이물질이 끼어 반사될 뿐이었다. 간헐적으로 연결되는 전압선처럼 무분별하고 친절함이 완전히 결여된 상태이다.
"널 죽일 거야. 너도 우리 입장이 돼서 다시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 나는 신사니까 너처럼 망나니처럼 굴지 않을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해골은 비참하게 구겨졌다. 시궁창에 처박힌 그의 정신은 과연 어느 누가 구원해줄 수 있을까. 나? 아님, 너? 샌즈는 살해의 수치를 축적하는 것만큼 나약한 영혼에 대한 면역이 없어진 모양이다. 괴물들은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살해에 살해로 되갚는 것에 대해 딱히 유감을 표현하는 '양심'을 가진 것들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이 처형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간직하려 몸이 달아오른 무뢰한들도 보였다. 필름 안에 새겨진 샌즈가 도륙된 모습은 좋은 구경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술에 취한 채 안줏거리로 삼기 적절한 주제였다.
나는 몸이 간질거려 견딜 수 없었다. 어서 처형이 시작되길 바라는 동시에 그냥 이 모든 것이 다시 리셋되길 바라는 잔인한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마법으로 이뤄진 창이 아닌 쇠로 이뤄진 창을 쥐고 있는 것이 그 증거였다. 그녀는 반드시 그다음 행동에 샌즈의 골통을 박살내버릴 것이다.
"이제 증명됐어?"
해골이 가슴을 들썩이며 힘을 쥐어짜냈다. 그의 무한한 처형 점수는 이 상황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쓰레기였다. 그는 무참하게 살해당할 것이다. 각자의 일은 각자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였다.
"이제 증명됐어?"
뼈다귀는 온몸에서 수분을 토해나는 것처럼 다시 한번 비명을 질렀다. 샌즈를 잡아든 그녀는 그 무의미한 외침을 무시했다. 구제할 수 없는 버러지에게 살충제를 듬뿍 뿌려주어야 한다. 그래야 흉년을 피할 수 있다. 그녀는 쇠창을 빛처럼 내찔렀다. 그건 마치 내게 칼을 휘두르던 샌즈의 모습과 꼭 닮아 있었다.
"이제, 증명됐어?"
그의 말에 담긴 처연한 진실을 입안에 넣고 잘근잘근 씹어 삼킨다. 해골은 고개를 돌려 정확히 창문 쪽을 쏘아보았다. 내 시선과 그의 시선이 끈적하게 얽혀들어 풀어낼 수 없는 매듭을 완성시켰다. 해골은 언제나 나를 죽이려 쫓아다닌다. 이것이 그와 나의 어깨를 짓누르는 과업이었다. 이번엔 칼이 아닌 목소리로, 비명과 터져 나오는 침과 피로, 들썩이는 뼈마디들로 나를 죽이는 듯했다. 해골과 나는 서로 삶과 죽음의 양 끝단에 연결된 실로 매여있었다. 지독한 운명론이었다.
쇠창이 피눈물 흘리는 해골을 완전히 박살내는 것과 함께 나의 위치가 점점 좁아지는 것을 느꼈다. 이것은 구체화되어 나타났다. 세상이 점점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아이러니지만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익숙한 것이었다. 뼈다귀에게 살해당하며 늘 겪는 일과와 같은 광경의 반복이기 때문이다. 단지 이번엔 필름을 인위적으로 잡아당긴 것처럼 엄청난 버퍼를 수반하고 있는 점에 차이가 있었다. 세계는 고무 장판을 좁게 만들어 곡선이 생긴 것 마냥 투박한 굴곡을 만들어내며 천천히 허물어졌다.
누군가의 눈물을 떠올리게 하였다.
시간선은 감정의 영향을 받는 모양이었다. 매우 이상하지만 그건 샌즈의 감정을 확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샌즈의 사고, 느낌, 감상에 따라 재구성되었다. 어디선가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샌즈, 네 동생을 포기해."
울음소리가 점차 뻗어나간다. 그 사이로 이전에 들은 적이 있는 목소리가 섞여들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심판이었다. 적어도 샌즈에게 받아들이기 힘든 끔찍한 일임은 틀림없었다. 회상이 계속된다.
"판단이 흐려질 테다. 반드시 그럴 때가 올 거야. 특히 너같이 '파피루스'를 가지고 있는 것은. 참기 힘들 테지, 그걸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샌즈. 하지만 우리는 나아가야 해. 더는 도태되는 걸 바라지 않는다.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네가 내 목표이자, 희망이다."
역시 그 자였다. 연옥에서 만날 수 있는 기형 같은 존재. 샌즈의 모든 행동을 통제하고 있는 근원이었다. 이리 와, 따스한 아이보리빛이 갑자기 채색된다. 이 부분은 샌즈에게 있어 '행복'에 해당하는 기억인 듯싶었다. 나는 샌즈가 되어 기억 저 너머의 존재에게 안긴다. 정신을 새로 태어나게 하는 맑은 기운이 온몸을 구석구석 채워 넣는다. 그리운 냄새가 진하게 나는 동시에 나, 또는 샌즈는 안식을 되찾는다. 그에게 더없는 편안한 휴가가 될 것이다. 샌즈이자 나를 품은 악마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속삭인다.
"네가 내 목표이자, 희망이다. 불쌍한 것."
다시 시공간이 뒤틀린다. 이번엔 어디로 나를 데려갈 거야, 샌즈? 여행은 즐겁니?
"가지마, 제발."
키가 작은 어린 해골이다. 저 괴물은 샌즈와 같은 뼈다귀인 것 말고 전혀 닮은 구석이 없었다. 동생은 눈물 콧물이 섞인 얼굴을 한채 울부짖었다. 온통 가지 말라는 말뿐이다.
<계속>
3편 완결 굿밤
모티프 있는데 나중에 정리해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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