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더샌즈 나오는 소설 2편머더샌즈 나오는 소설 1편'형 가지 마.'
샌즈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그의 마음속에 불꽃이 점점 꺼져가고 있었다. 그의 마음에 기대 조용히 사태를 관망한다. 해골은 자기 피붙이에 관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을까. 그것은 환영 또는 실재 그 경계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미안해. 난 널 사랑해. 의심하지 마. 그렇지만 각자에게 각자의 할 일은 따로 있어. 나는 그것을 선택하였어. 네가 나의 부채감에 최대가 될 것이야. 이것은 온전히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겠지.'
그럼, 동생은? 그건 순전히 네 독단이 아니야? 동생에게 끔찍한 상처를 남기고 결국 잿더미로 만들어도 될 중요한 일이란 게 뭐지? 네 소중한 모든 것을 파괴하면서까지 얻은 결과가 하하! 고작 이런 것? 그렇다면 나는 자살해버리고 말겠어. 빌어먹을 세상 따위 왜 네가 책임지고 있어야 하는 거야!
'시끄러워! 팝! 너한테 한 말은 아니야. 네 형은 너무 불안정한 상태야. 나를 이해해줘. 결국 괴물의 해방인 거야. 모든 일의 원인, 어떠한 결정, 실천한 행동력. 이것은 전부 괴물의 행복과 연결돼 있어. 어떤 이들은 말할 테지. 살해자라고! 나는 그들의 저런 인식들에 일일이 답변하지 않겠어.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야. 그들은 나를 결코 이해하지 못해.'
'형 가지 마.'
'왜 그렇게 똑같은 말만 반복하는 거야?'
아직도 모르겠어? 너는 생각보다 더 멍청하구나. 아니, 멍청하기보단 너무 외로워하고 있구나. 너는 네가 하는 살해가 모순적인 걸 알면서도 그걸 계속할 수밖에 없었지. 일단 시작해 버렸으니까 말야.
나는 계속 속삭인다. 시간을 들여 천천히 해골의 뇌 속에 깊은 자상을 수놓는다. 해골의 재 가루 덮인 고뇌에 색깔을 덧씌운다. 괴물은 피가 없지만 샌즈 자신은 피를 가지고 있었다. 애초에 그는 '괴물'일까? 맞을까? 괴물일 리가 없다. 정말로 그렇다면 자신의 동족을 그런 식으로 살해할리 없다. '어쩔 수 없는 이유'? '난 너희를 위해서'? 이 죄악의 문장은 기만함을 넘어선 악이다. 선으로 결코 넘어갈 가능성이 보이지 않고, 오히려 선을 들먹이는 게 자신만의 정당화 이상도 되지 않는 악의 절대값이다.
꽃봉오리처럼 여물어 있는 샌즈의 의지에 침입했다. 우리의 영혼은 밀도가 다른 두 가지 액체와 같이 섞이지 않고 경계를 가졌다. 샌즈의 내부는 곰팡이 핀 스펀지처럼 썩은 빛으로 오염되고 좀먹은 구멍이 온통이었다. 각자의 구멍은 각자의 이름표를 달고 있다. 그것에 절망, 체념, 후회, 환각 등이 적혀있었다. 파피루스는 높낮이가 없는 어조로 마치 구령을 외치듯하였다.
'형 가지 마.'
뭐하고 있어? 저건 그냥 허상이잖아. 내가 그랬을 텐데. 너무 말을 많이 하지 마라. 생각을 깊게 하지 마라. 그것이 너에게 독이 될 것이다. 생각을 거듭하면 네가 하는 일에 의구심이 들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 계획은 거품처럼 흩어져 없어질 것이다. 회상 또한 마찬가지이다. 좋은 기억을 떠올릴수록 고뇌가 깊어진다. 너는 앞만 보고 계속 죽이는 거야. 어차피 너도 동의한 일이잖아? 그렇지? 돌이킬 수 없어. 그럴 수 없어.
너는 이제껏 내 의지를 잘 실천해 주었다. 하지만 가끔 네가 불안해질 때가 있어. 그렇게 된다면, 우리의 신뢰관계는 위태로워질 거야. 너는 나를 버릴 수 있어? 이미 동생을 버렸잖아. 결국 네 옆에 남아있는 건 나, 하나뿐이라고! 어서, 그냥, 죽여. 저런 허상 따위로 너와 나의 관계를 망치고 싶지 않구나.
이해하겠지?
'닥쳐, 닥쳐, 닥쳐, 닥쳐! 이 악마!'
보랏빛이 반짝반짝 빛났다. 흔들흔들 울렁거리며 꺼졌다 켜졌다 위태롭게 흔들렸다. 해골이 보는 게 진실인지, 내가 보는 게 진실인지. 아니면 둘 다 허상인지. 해골은 이것에 대해 해답을 찾고자 하였다. 동생을 쳐부수기 전에, 갈기갈기 찢어 먼지 더미로 만들기 전에, 고아의 손길을 마주 잡기 전에, 자신이 온전히 '괴물'일 수 있을 때까지. 필사적으로 해답을 찾고자 하였다. 나는 샌즈의 입을 억지로 벌린다.
'죽여, 아, 죽여, 하지 마! 죽여, 제발, 난 동생을 사랑해. 죽여, 동생은 내 모든 것이야. 죽여, 나는 동생을 위해서라면 모든 괴물을 다 죽일 수 있어. 죽여, 네가 원하는 게 이런 거야? 죽여, 너는 결국 내 자살을 바라고 있는 거야? 죽여.'
파피루스를 죽이는 것이 곧 그의 죽음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모든 것이 진절머리 나며 구차한 절차에 불과하다. 살해를 원하는 나의 의지와 안식을 원하는 그의 의지가 서로 충돌했다.
나이자 샌즈는 끊임없이 주도권을 갖고자 애썼다. 모든 것은 모래 알갱이처럼 흩어진다. 나는 그의 흔들림이 거북하고 불쾌했다. 오로지 나만 바라봐주었는데, 너 같은 것도 변덕을 부리는 거야? 나는 팔을 움직여 그것을 치켜들었다. 팔뼈가 두툼한 점퍼 안쪽에서 덜그럭 거리며 서늘한 감촉을 준다. 그의 영혼은 더 극심한 히스테릭 상태로 떨어졌다. 또한 다른 한편으로 해골의 정신은 미처 갈피를 잡지 못하고 곧 꺾일 수수깡처럼 텅 빈 껍데기뿐이었다. 손뼈가 달착지근하게 감겨있는 칼자루가 드러났다.
자 이제 무대는 완성되었어. 주연이 등장할 차례이지. 극을 완성시키는 거야. 물론 대본은 없어.
해골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슬픔을 느꼈으나 정작 검은 눈구멍 사이로 재 가루만이 휘돌아나갈 뿐 사막처럼 메말라 있었다. 좀 더 위쪽 머리에선 혈관이 터져나갈 듯이 빠르게 돌았다. 피가 있는 것은, 이것이 유일한 단점이다. 소유자의 감정에 따라서 여러 가지 귀찮은 반응이 나올 수 있었다.
그는 나사 빠진 인형처럼 볼품없이 비척거리며 걸음을 내디뎠다. 작은 파피루스는 몸집에 맞지 않은 커다란 겉옷으로 둘러싸여 있어 애처로운 모습이었다. 그것을 한꺼풀 벗겨내면 곧 먼지가 되어 사라져버릴 것 같았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파피루스는 파피루스가 아니었다. 전혀 해골처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가면을 쓴 인형 같았다. 형제는 서로 같은 무정물을 흉내 내고 있었다. 파피루스의 입술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여닫혔으며 거기서 나오는 음성은 과연 녹음을 한 듯이 빈틈없이 되새겨지고 있었다.
샌즈는 박제된 천사를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다. 파피루스를 사랑하기 때문에 영원한 안식으로 돌려줘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그는 동생을 넝마 조각이 될 때까지 난자했다. 계속, 계속 녹화된 행동을 통해 파피루스는 어린 해골을 닮은 원형에서 점차 세계로 퍼져나갔다. 파피루스를 구성하고 있는 조각들이 해체되 흩어졌기 때문이다. 각설탕을 난도질하는 것처럼 꼭 그런 것처럼 동생은 바스러졌다.
'악!'
'일어났어?'
'여긴 어디야?'
'주위를 둘러봐.'
샌즈는 비몽사몽 한 표정으로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역시 우리가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장소는 이곳밖에 없다. 환희의 복도. 그와의 여행은 즐겁지만 체력을 많이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나는 최대한 지하 밑으로 유랑을 피하고 더는 바깥으로 나서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괴물들의 적대적인 태도는 매우 놀라운 것이었다. 그러나 그 자체보다는 리셋이 기록된다는 것이 더욱 큰 문제이다. 시스템에 혼탁한 이물질이 끼어들어간 듯싶었다. 걸리적거리는 바이러스를 잡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미끼가 필요했다. 샌즈는 그것을 위해서 적절한 역할을 수행해 주었다.
'어떻게 된 거야?'
'넌 내가 궁금하지 않아?'
'궁금해.'
'그런데 어째서 한 번도 묻지 않았지?'
'넌 이 세계의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했어.'
'난 이렇게 네 앞에 이렇게 있잖아. 뭘 두려워하는 거야?'
'네가 없어질까 봐 두려워.'
'그런 생각의 출처는 어디지?'
'너의 호의가 없어질까 봐 두려워.'
'그래서 괴물을 죽인 거야?'
'그건 내 사정이야.'
'재 가루 앞에서나 실컷 떠들도록 해. 그런 사정 따위.'
'나는 정당해.'
'질문을 바꾸지. 살해의 종말은 어떤 거야? 너의 처형점을 보아. 우주처럼 팽창하고 있어. 그 끝은 어디지? 빛의 속도가 닿지 않는 우주의 부분은 우리가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없어. 눈앞에 있는 것은 이미 오래전에 없어진 파편일 수도 있어. 네 생각이 우주, 빛의 관계와 같다고 생각지 않아? 괴물의 해방은 어떻게 된 거야?'
'계획대로 잘 되어가고 있어.'
난 코웃음을 내뿜었다. 재미있는 상상을 하는 해골을 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나는, 배를 끌어안고, 목을 젖히며 웃었다. 해골은 한마디도 말이 없었다. 나는 웃으면서도 샌즈의 눈치를 살피면서, 맞받아주기를 기다렸지만, 끝내 묵묵히 있을 뿐이었다. 웃음에 지친 나는, 복도 바닥에 엎드려 소리를 죽여 울었다. 그가 미웠다. 아무 말도 않는 그가.
'외롭고, 또한 외롭구나. 너는 역시 괴물이야. 감정이 구현되지 않아 살해하는 것만 반복하는 프로그램이 아니었어. 네 동족을 죽이는 것에 책임과 부채, 그리고 연민을 느끼고 있구나. 그런데 너는 그 아이가 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지. 끝내 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불쌍한 것.'
해골의 고개가 스프링처럼 튀어 올랐다. 샌즈는 발작했다. 그의 어깨부터 진폭을 이루며 온몸 전체에 떨림이 퍼진다. 그는 듣지 말아야 할 것을 들은 모양이다. 설마 이 상황에서 모퉁이 한켠에 처박힌 옛 기억을 떠올리게 될 줄은 결코 몰랐던 모양이다. 푹 꺼진 채 침잠하는 것이 꼭 그런 감정을 담은 눈이었다. 그의 이가 딱딱 부딪혔다. 그의 주위로 재가 흩어져 날린다. 매캐한 연기를 이룬 사이로 뭔가 보인다. 저것은, 빨간 머플러를 한 괴물의 머리 같았다. 그러다 다시 시선을 돌리니 어느새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너 누구야?'
'이제야 물어봐 주는 거야?'
'내가, 내가 실수를 한 것 같군. 넌 나를 선동하고 있어. 넌 구제불능이야. 조금이나마 네게 유대감을 가졌던 나를 반성한다. 넌 그냥 죽어주는 게 도움이 돼.'
'하하! 미친놈...'
샌즈는 안광이 폭발하며 번쩍 타올랐다. 빛 속에서 진한 살의의 냄새를 맡았다. 등줄기를 타고 전율 같은 죄악이 몸체를 키웠다. 척추를 따라 목덜미까지 그것이 타고 올라온다. 나는 눈물이 덮인 얼굴을 한채 어른거리는 그가 달려오는 모습을 지켜본다. 아름다웠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그것의 색깔은 붉은빛을 띠고 있는 것인가. 파괴의 잔해 속에 그것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가. 여러 상념의 연속성, 그리고 해골이 가져올 죽음. 이 모든 것이 나의 은혜이다. 하지만 난 이번에 너의 품을 파고들어 네 갈비뼈를 가져올 거야. 상아색 뼈에 네 온기가 스며들어 있겠지. 이상해, 넌 왜 뼈로 이뤄져 있는 거야? 시체에 영혼을 불어넣어 따스함을 가지게 한 것 같잖아. 마치 유령처럼.
나는 내 목을 겨냥해 내찔러오는 칼날을 가까스로 피한 뒤 텅 빈 그의 가슴으로 바짝 다가섰다. 그리고 손을 갈퀴처럼 뻗어 그의 구성물을 잡고 손목을 강하게 꺾어 올렸다. 명쾌한 소음이 들리며 그의 일부가 시원스레 떨어져 나왔다. 그의 비명이 멀듯 가까운 듯 두 귓가에 요동친다. 그러나 더 이상 커지지 않고 끊길 것처럼 이어졌다.
그가 가슴을 움켜쥔 채 반대쪽 팔을 들어 내 목을 부러뜨리려 했다. 나는 그 느린 동작을 우스울 정도로 쉽게 피했다. 해골의 다리를 걷어차고 무게를 실어 내리눌렀다. 작은 몸이 애처롭게 구겨졌다. 허무한 느낌에 혀를 찼다. 바닥으로 떨어지려는 해골의 심장 쪽을 무릎으로 차올렸다. 샌즈는 터져 나오는 침과 피를 참아내지 못하고 토했다. 뼈다귀는 정신이 온통 고통으로 쏠려있을 것이다.
'죽을 수 없어. 너의 진심을 알기 전까지.'
샌즈는 고개를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도 미칠듯한 분노로 어쩔 줄 몰라 했다. 네온사인처럼 황홀하게 빛나는 보랏빛 안광이 나를 직선으로 겨냥했다. 그 모습이 지나는 동안 시간을 영원에 가깝게 늘린 것처럼 한 장의 장면이 뇌리에 새겨진다. 해골은 찬 바닥에서 뒹굴었다.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난 너를 알고 싶다.'
말을 미처 끝마치기도 전에 샌즈가 다시 사라졌다. 어디로 갔지? 멍청히 서있는 순간 옆구리에 불이 붙은 듯 엄청난 열기가 돋아 오른다. 샌즈가 칼을 뽑아내자 뜨거운 피가 한꺼번에 터졌다. 해골의 동그란 얼굴에 우리 둘의 피가 섞여 질척하고 지저분한 인주를 남겼다. 샌즈는 그런 식으로 더는 대화에 집중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완벽하게 표현해냈다. 나는 그에게 고개를 돌린 채 속삭였다.
'괴물의 완벽한 해방에 대해 생각해보았지. 인간의 영혼은 이제 구식이야. 우리는 각자의 살길을 찾아야 했지. 인간을 넘어선 괴물만의 진짜 '해방'에 대해서 말이야....'
샌즈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정말로 살해 기계가 된듯하다. 무서움에 떨 수밖에 없었다. 인정을 잃어버린 채 마치 시스템에 입력된 데이터 조각처럼 그렇게 하찮은 찌꺼기에 불과한, 고개를 돌리면 금세 잊힐 그따위 디지털 인형같이. 나는 그에 대한 책임, 부채, 그리고 연민을 느꼈다. 그가 휘두른 칼날을 뽑아낸 그의 갈비뼈로 쳐냈다. 그는 마법을 사용하는 방법을 잊은 것일까? 이런 지루한 육탄전 대신 그가 가진 마력이라면, 나는 이미.
'모든 실험은 완벽하지 않은 법이지. 필연적인 희생이 필요했어. 남아 있는 괴물들은 플랜에 참여할 수 없었지. 단순해서 오히려 귀찮은 매듭을 묶는 일을 네가 맡게 된 거야. 그 괴물들에, 네 동생도 들어있었다.'
'왼쪽.'
해골은 그렇게 말하며 왼쪽 뺨으로 칼을 쑤실 듯이 덤볐다. 나는 가까스로 고개를 돌려 피했다. 그 순간 하얀 것이 번뜩이며 오른쪽 뺨을 파헤치고 지나갔다. 그의 손에 내 살점이 덜렁거리고 있었다. 입안에 피가 차올라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그의 뼈를 던지고 옷을 벗었다. 거추장스러운 허례를 모두 벗어던진 채 발가벗은 모습으로 샌즈에게 두 팔을 벌린다. 전기가 내리쬐는 심판의 복도에서 결코 그럴 리 없지만 나는 혈관에 빙하가 흐르는 듯이 강렬한 한기를 느꼈다. 그것이 진통제가 되어 주었다. 나는 이제 고통에서 점차 멀어져 간다.
해골의 표정은 반대로 화산 같았다. 뜨겁게 활동을 마친 후 식어서 딱딱한 돌로 변한 것이다. 그는 기회를 엿보았다. 어느 때보다도 민첩한 몸놀림으로 우리가 연결된 운명의 굴레를 끊어낼 의지를 보였다. 샌즈는 더 그럴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한 각도로 내 심장을 찔렀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나는 새처럼 날아다니는 샌즈보다 빠르게 그의 손목을 부러뜨려 칼을 빼앗았다. 그리고 방향을 바꿔 그를 깊게 꿰뚫었다.
...스노우딘 그릴비에는, 판에 박은 말과 앞뒤가 있을 뿐이었다. 웃음이 아니고 웃음 진 흉내였다. 친절이 아니고 친절의 흉내였다. 안락이 아니고 안락의 흉내였다. 해방이 아니고 해방의 소문뿐이었다.
그날 실험실에서, 괴물의 진정한 해방을 귀띔한 그 악마를, 나는 수태고지의 천사로 알았다.
나는 울고 싶었지만 눈물을 흘리는 방법을 잊고 말았다. 슬픔과 환희가 씨실과 날실이 되어 베틀에 얹혔다. 그곳에서 하늘거리는 천상의 비단이 뽑아져 나온다. 그것은 최후의 서막을 위한 융단이었다. 내 손목은 갈피를 못 잡고 허우적거렸다. 빗나간 일격이 출렁거렸다. 나는 영문을 모른 채 바닥으로 쓰러졌다.
해골이 내 몸뚱어리 위에 올라타 나의 두 눈을 찔렀다. 나는 완전히 만신창이가 되었다.
내 앞에 있는 이것은 흉측한 몰골이었다. 나의 작품이다. 쓰레기가 된 '저것'은 피가 끓어 부정확한 발음으로 거북한 소음을 내었다.
'어차피 선택한 건 너잖아! 네가 감히 불행을 논해? 지하를 넝마 조각으로 만들어놓고 감히 날 죽이려 들어?'
'저것'이 계속 떠들었다.
'이 멍청이, 너는 괴물의 진정한 해방을 믿는 거야? 그따위 것! 당연히 거짓말이잖아? 정말 믿은 거야? 그게 정말이야? 넌 폐기된 코미디언이야.'
'저것'이 계속 떠들었다.
'나, 나잖아! 기억안나? 우리 계획...너도 동의했잖아! 설마 날 죽일거야? 이 가증스런 괴물아, 자살해!'
'저것'이 계속 떠들었다.
'자살, 자살해버려. 너 스스로 죽으란 말야. 네가 원하는 엔딩이 결국 이런 거였어.'
먼 곳에서, 새소리가 들린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자. 처음으로 돌아가는 거야. 리셋을 기억하겠지. 나는 몸을 바로잡고 '저것'과 마주 볼 수 있도록 고개를 숙였다. 팔을 추켜올린다. 마지막이 될 것이다. 팔 사이로, 재 가루가 흘러나왔다. 먼지들은 이미 나의 구조 중 하나가 되었다. 피처럼 소중한 일부가 되어 버린 것이다. 재가 뭉친 먼지는 흐르는 물처럼 빛처럼 조용히 '저것'의 얼굴에 뿌려졌다.
얼굴은 해저와 같았다. 그것을 토대로 피의 바다가 수면을 채운 것처럼. 괴이한 일이 일어났다. 바다 가운데 틈이 서서히 갈라지기 시작했다. 피는 그 사이로 폭포처럼 굴러떨어진다. 조금 후 어지러운 형체가 자리 잡고 더욱 또렷이 드러났다. 오른쪽 눈 위, 왼쪽 눈 아래. 재 가루가 뿌려진 흔적을 따라 양쪽에 선명한 절취선이 떠올랐다. 그 자와 꼭 닮은 모습이었다. 나는 팔을 치켜든 채 석고상처럼 굳어버렸다.
새소리가 골 껍질 안쪽에서 요동치고 있었다. 모순적이게도 맥박 소리처럼 생명의 냄새를 맡았다.
그 옛날, 괴물을 죽이기로 결심했던 그때, 그가 나에게 베푼 다정함과 청결한 유약 냄새가 희미하게 느껴졌다. 동생이 차마 채워주지 못 했던 숭고한 체념을 그 자에게 찾을 수 있었다. 그는 그 시점에서 가장 나를 잘 이해하는 존재였다. 나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원이 된 것이다. 그러나 나는 결심을 번복할 수밖에 없었다. 의지가 점차 흩어지는 것과 인정과 이해를 갈구하던 밝은 시절이 대조되어 내 골안에 자리 잡았다. 나는 칼을 떨어뜨리고 만다.
마지막은 마지막이 아니라 진실인 것 같다. 새소리가 아이의 울음소리로 바뀌었다. 파피루스가 찾아왔다. 나는 피곤한 눈을 치켜떠 그 애를 돌아보았다. 붉은색 스카프는 재 가루에 뒤덮여 있었다. 그런데 잿빛으로 얼룩지기커녕 붉은색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 애가 내 눈을 마주 보았다. 팝의 얼굴에 보랏빛 조명이 통과한다.
'형, 뭐 하는 거야? 아직 죽이지 못했잖아?'
환영은 나에게 뭔가 기대를 걸고 있는 듯이 보였다. 하지만 나는 이제 평범한 감정을 가진 괴물이 되었다. 눈의 고장에 생명을 가진 그들같이. 평범한 감정을 가졌다는 것은 평범한 경험을 하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뜻이다. 그런 일상적 존재는 모순적이게도 가장 획일적일 것 같지만 오히려 각자의 개성을 일상 그 이상으로 소유하고 있었다. 개성의 문제에 대해 나는 이렇다. ... 사랑, 그리고 죽음. 그러나 내가 사랑한 모든 것들은 내게 살해를 강요하였다. 그것이 견딜 수 없이 깊은 수렁으로 나를 빠뜨렸다.
나는 마침내 행동하고자 하는 의지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마력을 사용해 뼈 모양 칼날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의지를 이용해 그것들이 내 온몸을 난자하게 내버려 두었다.
'판단이 흐려질 테다. 반드시 그럴 때가 올 거야. 특히 너같이 '파피루스'를 가지고 있는 것은. 참기 힘들 테지, 그걸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샌즈. 하지만 우리는 나아가야 해. 더는 도태되는 걸 바라지 않는다.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눈을 떴다. 선명한 온기 선명한 감촉 선명한 색채 선명한 음성 온통 선명한 것들뿐이었다. 나는 누군가의 품에 깊게 파묻혀 있어 고개를 들기 힘들었다.
낯설면서도 익숙한 풍경이었다. 나는 어떠한 이유 때문인지 처음으로 되돌아왔다. 그런 게 아니다. 사실 내가 겪은 모든 것은 다행스러운 예지몽이었다. 식은땀이 흘렀다. 어쩌면, 이것은 나에게 다시 한번 적절한 기회가 되어줄지도 모른다. 꿈속에서 펼쳐진 끔찍한 풍광을 다시 올바르게 고칠 수 있는 기회였다! 나를 품은 그 자의 실험 가운에서 소독약 냄새가 났다. 말을 계속하고 있었기 때문에 웅웅거리는 진동이 가슴과 맞닿아 있는 내 뺨으로 전해진다.
거짓말쟁이. 모든 게 너 때문이야. 너 같은 정교한 사기꾼은 가려내기 힘들지. 하지만 난 그렇게 쉽게 당하지 않아. 감히 내게 그따위 감언이설을 지껄이다니. 용서할 수 없어!
나는 분노에 모든 정신이 빼앗기고 말았다. 내 몸을 안고 있는 그 자는 여전히 휴지조각에 불과한 망언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 가증스럽고 추악한 소음을 참아줄 만큼의 인내심이 증발해버리고 만다. 나는 마력을 끌고 왔다.
나는 바닥에 처참하게 쓰러져 있는 그 자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흑백이 점층된 그의 본바탕에 검붉은 피가 채색되어 있었다. 하하, 나는 드디어 악마의 손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기쁨에 박장대소를 해야 옳지만 나는 오히려 찌그러진 표정밖에 지을 수 없었다. 희극도 비극도 아닌 그 어디쯤에서 나는 낯서리만치 현실과 동떨어진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결코 그럴 의도는 아니었지만 극심한 권태감이 스며들었다.
내 꿈이 정답이기를. 그러나, 아니라면?
절망이라는 단어를 그 자체로 표현해내는 듯한 해골의 뒷모습이 비친다. 아이는 어둠이 좀먹은 공간의 모퉁이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었다.
아이가 입을 벌렸다. 그리고 섬뜩한 미소를 머금었다.
'... 남았다.'
<끝>
플롯 설명 : 머더샌즈가 어떤 계획을 '그 자'와 모의하게 된다. 그 계획은 괴물의 진정한 해방과 관련되어 있다. 계획의 실현을 위해 반드시 괴물을 죽여야 한다. 그것이 샌즈의 책임이 된다. 그 괴물 안에 파피루스가 포함되어 있다. 비록 샌즈는 '그 자'의 계획에 동의했지만 동생을 너무 사랑함과 동시에 괴물들에 대한 연민 때문에 자신에 대해 극심한 환멸을 느끼게 된다. 계획의 끝엔 '그 아이'가 있는데...
원래 제목 : 마지막은 마지막이 아니라 진실인 것 같다
모티프 : 머더샌즈가 괴물들한테 정29현 당하는 만화 & MEGALOMANIA & 광장
화자는 샌즈 한 명
영혼이 벼랑 끝에 몰렸을 때 과대망상증 환자에게 나타나는 일련의 정신적 코마 상태를 표현하고 싶었다.
실제로 '그 자'의 계획은 옳은 것일지도 모른다. 아닐지도 모른다.
또한 '그 아이'가 모든 것을 꾸며냈을 수도 있다. 동시에 아무런 관련이 없을 것이다.
이들은 착란과 함께 영원의 공간 속에서 서로 뛰어놀며 즐거운 합창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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