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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하, 늦었잖아? 마지막 날인데?"
그러게나 말이다. 은이누나한테 들키지 않고 나오려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사실 어제 이후로 딱히 심하게 눈 뒤집힌 적은 없었는데, 혹시 모르잖아. 비록 그 인형의 저주로 인한 감정이더라 해도 어찌됐건 가장 비슷한 감정은 애정이니까. 들키면 뭔 사단이 벌어질지. 비록 데이트는 아니라지만 어쨌든 정미는 여자사람이니까.
"아...그 그냥. 아무튼, 들었어. 유니온 본부로 간다며?"
정미는 어깨를 으쓱하며 앉아있던 벤치에서 몸을 일으켰다. 예전에 비해 확실히 밝아진 모습을 보니 괜히 나도 미소가 지어졌다. 솔직히 유리슬비 석봉이 이 정도를 제외하면 가장 친한 애니까,나한테는(그래. 인정한다. 클로저 시작하기 전까진 석봉이 뺴곤 친구 없었어). 잘 되는 걸 보니까 역시 기분이 좋네.
"응.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캐롤씨...아니 캐롤 선생님이 날 좋게 봐주셔서. 유니온에서 제대로 교육을 받기 시작하면 조금 도움이 되겠지. 나도 재미있을 것 같고. 뭐ㅡ 제이 아저씨 말이 약간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니까. 그...그리고 정말 위험한 일이 있으면 너가 지켜줄 거고."
더 이상 복수심이나 증오 같은 건 찾아볼 수 없는 얼굴. 나만큼 어리고 미성숙했겠냐마는 예전의 그런 울고 있는, 달래줘야 할 것만 같은 아이의 얼굴에서 어느새 이렇게 멋진 여성으로 변한 모습을 보면, 난 그사이에 얼마나 변한 건가-싶기도 하다. 난, 아니 우리 팀은 강남을 구했다고 꽤나 명성도 얻었고 칭찬도 듣지만, 난...
그건 그렇고...방금...
"응? 내...내가?"
"아...아니아니! 언제 너랬어! 너희랬지! 너희 검은양 팀!"
그렇지? 역시 잘못 들은거지?
"그래 그래. 다른 애들하곤 다 인사 했어?"
"응. 유리하곤 오늘 하루종일 놀고 왔고."
"그럼 언제 출발할 거야? 오늘 밤에?"
"오늘 밤에 이동하기로 했어. 나처럼 이쪽 진로로 갈 애들을 유니온에서 뽑아서 교육하는 그런 거니까. 미리 가서 기숙사 체크 해야지. 왜. 빨리 갔으면 좋겠어?"
"그럴 리가. 많이 아쉽지. 정말로. 나랑 가장 친한 사람 중 하난데."
말실수라도 한건지 내가 친하다고 생각하는 만큼 정미도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 건지 그 말을 들은 정미는 고개를 휙 돌렸다.
"그...그래? 뭐...나...나도 아쉬울 거야. 보고도...싶을 거고."
"에이, 어짜피 주말이면 나오는 거 아냐? 가끔 문자도 할 수 있고."
새로운 환경에 나가는 것이 긴장되기라도 한 걸까. 아까부터 정미는 계속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가만히 벤치에 앉아있는 내 주위로.
"그래, 기다릴게. 그리고...아 몰라, 안되겠어. 가기 전에 이 말은 꼭 해둬야겠는데..."
빠악.
악-하는 얊게 퍼지는 신음소리. 순식간이었다. 정미가 무언가에 옆구리를 맞고 나가떨어진 건.
"정미야!"
정미의 얼굴이 고통으로 확 일그러졌다. 다행히 눈으로 둘러본 결과 딱히 심하게 다친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뭐에 맞은 거지? 라고 생각하며 정미 옆에 떨어져 있는, 고무와 솜으로 이뤄진 작은 공을 본 순간,
불길한 예감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이건 설마..."
"으으...난 괜찮아. 이건 뭐..."
그 순간 한번 더 날아오는 공. 이번엔 그대로 정미의 머리를 강타하며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튕겨져 나갔다.
빠르다. 나름 주시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차하는 순간에. 결국 대응을 못했어. 게다가 이 공은, 분명, 같이 장난감으로 변해버린 제니버 잭슨 4세에서의, 포탄...!
은이누나다.
이미 정미는 머리에 맞은 순간 기절해 버린 상황. 어디가 찢어지기라도 했는지 피까지 흐르고 있었다. 이렇게 될 까봐 안 들키려고 노력했는데. 빨리, 빨리 옮겨야 한다. 병원으로, 보호하면서.
사실 저 공이 워낙에 가벼운 건데다 총도 장난감이라 빨라 봤자 실제 충격은 학교에서 축구하다 날아오는 공을 맞은 정도일 거다. 축구공을 머리에 정통으로 맞으면 위험한 건 맞지만, 그건 일반인들 기준이고 위상능력자한텐 진짜 딱 장난감 수준이라 이거지. 내가 감싸고 달린다. 문제는 속도랑 정확돈데.
마음같아선 당장 은이누날 찾아서 제압하고 어떻게든 은이누나도 보호하고 싶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이미 인형은 저격하는데 자리를 잡았어. 은이누나 정도 되는 사람이, 아무리 인형으로 변했다고 한들 실전 경험이 내 몇 밴데 나 따위가 찾아내서 잡을 수 있을 리가 없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빨리...
"미안. 정미."
진짜 우리 민폐다. 사과해야 할 사람이 하나 더 늘었어. 정미를 업어? 안아? 업으면 후방을 노릴텐데, 안으면. 어떻게든...막을 수 있으려나.
정미를 그대로 어깨랑 다리를 받친 채 안아올렸다. 그리고 우린 그저, 대책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가장 가까운 곳을 향해.
저 포탄들은 내가 맞는 건 상관 없으니 가능하면 위상력까지 써가면서 막아주고 있기는 한데, 그 순간에도 두어 방 정도 더 정미를 맞췄다.
역시 은이누나. 정말 미쳤네 이건. 내 눈에 잡히지도 않는 거리에서, 내 속도를 따라오면서.
가장 가까운 응급실 안으로 정미를 데리고 들어갔다. 그 순간 사격은 뚝 멈췄다. 사격이 멈추는 걸 알아채며 다시 내 머릿속은 걱정이 하나하나 올라오기 시작했다. 저 폭주 상태에서 만약 인형이 아니란 걸 들켰다가. 또 네 번째 줄 그어지고 죽을 위험에 처할 수도 있고, 제일 중요한 건...이거 괜찮으려나? 하루가 다르게 심해지는데.
일단 보호자는 나다. 정미 어머니한테 걱정을 시키고 싶진 않으니까. 다행히 정미는 응급실에 온 지 얼마 안 지나 깨어났다. 두어 방 더 맞으면서 팔뼈가 뚝 부러지는 바람에 제대로 치료를 받아야 하긴 하지만. 더 크게 잘못되진 않았으니...
사과를 했다. 이 모든 게 나 때문일지 모른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마음같아선 치료 끝날 때 까지 있고 싶지만 지금 이 일을 수습해야 한다고.
정미는 예상외로, 아니 예상 외라기엔 너무 그런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말했다. 돌아오면 진짜로 나한테 할 말이 있다고.
착각하는거면 그냥 쪽팔리고 말 각오로 대답했다. 무슨 말을 할려는지 알 것 같으니까. 미리 미안하다고.
책임감? 물론 있다. 책임감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내 마음을 정말로, 제대로 마주봐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니까. 내가 인형...아니 은이누나에게 가지고 있는 감정이 뭔지. 그냥 고백받을거 같으니까 은이누나가 생각났다 같은 게 아니다. 사실 맞다. 은이누나가 생각나서 거절한 것도 있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캐롤이 가능성을 제시한 대로 이 사건은 저주가 아니라 기생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정말로, 내 솔직한 마음을 마주보고 깨달아야 한다.
만약에 그 퍼펫마스터가 내가 생각하는 그런 성격이 맞다면 말이다.
그러기 위해선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밤은 늦어있었다.
은이누난 집에 들어와 있었다. 역시 분위기가 이상했다. 마치 요일던전에 나온 것처럼 흐...흐콰...되어있는 그런 어두운 표정.
"은이누나."
말을 거는 순간, 인형의 펀치가 내 배를 그대로 가격했다. 벽 쪽에 그대로 현대아트처럼 쳐박혔다. 아찔했다. 이 정도였나? 저 인형의 위상력이?
이에서 까드득 하는 소리가 났다. 종소리가 들렸다. 열두시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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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마지막날이에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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