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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플] 애가(愛歌) _ 07

..(118.42) 2020.06.17 02:3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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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밤바람과 함께 창 너머로 들어온 서희의 금을 타는 소리가 막 제 방에 발을 들여놓은 이혁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의 시중을 들기 위해 따라 들어온 홍씨에게 자켓을 벗어 건네고는 넥타이를 풀다 무심하게 말을 건넸다.


“별채에서 저 소리가 들려온 건 언제부터지?”

“두 식경은 훨씬 넘은 듯 합니다.”

“그래... 이만 나가 봐.”

“저녁을 안으로 들일까요?”


“아니, 난 됐어.

........... 별채에선... 식사는 잘 하던가?”


“서희 아가씨께서 원체 적게 드시는데, 오늘은 더 입에 대는 둥 마는 둥 하셨어요.

유라, 그 아이의 말로는 연회 앞두고는 곧잘 그러신다더군요.”


홍씨는 이전에도 그래왔던 일이라 부연 설명을 하며 그의 부담감을 덜어주려 했지만,

이혁은 홍씨의 부연 설명 따위는 귀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저 서희가 식사를 입에 대는 둥 마는 둥 했다는 것만이 마음에 남아 신경이 쓰였다.

홍씨가 근심어린 이혁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다 조용히 뒷걸음질을 쳤다.

문을 열고 나가려는 그 때, 그녀의 등 뒤에서 이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요기가 될 만한 것과 함께 술상 준비해서 별채로 가져 와.”

“네, 도련님.”


홍씨가 문지방을 나서서 문을 닫더니 살며시 웃었다.

돈 밖에 모르는 악독한 사업가라 사람들의 평판이 자자했지만,

이렇게 간혹 인정 많던 예전의 도련님의 모습이 나타날 때가 있었다.

그래서 홍씨는 별 말 없이 그의 옆을 지키면서도 내심 바랐다.

언젠가 이혁이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고.






저벅저벅-

비죽 열린 문 틈 사이로 들려오는 이혁의 발소리에 서희가 금을 타던 손을 멈췄다.

그녀의 연주가 멈추자 신기하게도 이혁의 발소리도 뚝 끊겼다.

서희가 고개를 갸웃하고는 끝내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사장님이십니까?”

“들어가도 될까?”

“들어오십시오.”


문이 삐걱거리며 열리더니, 문턱을 넘어 제게로 오는 그의 발걸음 소리가 서희의 귀전을 때렸다.

이제는 익숙해진 그 소리에 맞춰 서희의 심장이 쿵쿵 함께 뛰는 듯 했다. 이상하고도 위험한 신호였다.

이혁이 서희의 앞까지 오더니 그녀와 마주하고 앉았다.

그의 눈에 가야금 줄 위에 살포시 놓인 서희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제일 먼저 들어왔다.

가느다랗고 예쁘지만, 별반 특별할 것 없는 그 손이 어떻게 그리도 아름다운 음색을 만들어 내는 지 궁금했다.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저녁을 입에 대는 둥 마는 둥 했다는 소릴 들었어.”

“연회를 앞두고 의례적으로 그렇습니다. 심려치 않으셔도 돼요.”

“홍씨에게 술상을 봐오라고 했어.”

“절위해서요?”


서희의 말에 뜨끔했지만, 이내 목소릴 가다듬고 이혁이 애써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날 위해서. 내일 연회의 목적이 무엇인지 정도는 알아야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테니까.”


서희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작게 끄덕이더니, 제 손이 닿아있는 금을 옆으로 치웠다.

그녀가 알고 그러기라도 한 것처럼 곧 홍씨가 방 안으로 술상을 들고 들어왔다.

짧은 시간에 제법 훌륭한 술상을 마련한 홍씨는 서희와 이혁의 사이에 상을 놓고 사라졌다.

먹음직스러운 냄새가 방 안을 채우고 서희의 코끝을 자극했다. 미소가 떠올랐다.


“아주머니께선 솜씨가 참 좋으세요. 냄새만으로도 침이 꼴깍 넘어갑니다.”

“그런데, 왜 젓가락을 들지 않지?”

“아...”


이혁은 젓가락을 들어 제 앞의 음식을 맛있게 집어 먹는 서희의 모습을 기대하며 뚫어져라 그녀를 쳐다봤다.

하지만, 그의 눈에 들어온 건 조심조심 더듬거리며 젓가락을 찾는 서희의 어색한 손놀림이었다.

머리에 갑작스런 충격이 가해졌을 때와 같은 꽤나 생경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아마도 서희가 금을 잘 다루는 탓에 젓가락질도 응당 그러려니 생각했던 것 같다.

서희의 하는 양을 지켜보던 이혁은 곧 자신이 어찌해야 하는 지 깨달았고 행동했다.


이혁이 불쑥 손을 뻗어 서희의 손목을 잡았다.

갑작스레 손목을 잡힌 서희가 깜짝 놀라 그의 손에서 제 손목을 빼려 무던히 애썼다.

서희의 그런 모습에 이혁은 마음이 시렸다. 제 좋은 의도가 의심 받는 상황이 가슴 아팠다.


“널 어찌하려는 게 아니야. 그저 손에 수저를 들려주려는 것뿐이다.”


이혁이 제 뜻을 서희에게 밝히며 상 위에 놓여 있던 수저를 그녀의 손에 들려주었다.

그리고 젓가락으로 전을 찢어 수저 위에 먹기 좋게 올려주었다.


“이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간전이야.”


서희는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의 마음에 대한 보답으로 수저를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입 안에 넣었다. 평소 좋아하는 음식은 아니었지만, 그가 준 탓인지 입에 달았다.

이혁은 제가 준 것을 입에 넣고 오물거리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잔에 술을 따라 마셨다.

흡사 자식의 입에 먹을 것을 넣어주는 아비의 마음이 이런 것일까 싶기도 했다.

마음 한 구석이 몽글몽글해지며 흐뭇한 미소가 입가에 떠올랐다.


잔을 내려놓고 다시 젓가락을 들었다.

이번에도 간전을 찢어 수저에 올려주자, 서희가 제 입으로 가져가 오물거렸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자, 아무 불만 없이 먹던 서희가 자신도 모르게 손을 가슴으로 올렸다. 목이 멘 탓이었다.


“왜? 어디가 불편하기라도 한 거야?”

“제게도 술을 주시겠습니까? 목이... 메여서요.”


비로소 서희가 처한 상황을 이해한 이혁은 상대방을 헤아리지 못한 자신을 내심 탓하며 서희 앞에 놓인 잔에 술을 따랐다.

졸졸- 물 흐르듯 하는 소리가 멈추고 이혁이 서희의 손에 들린 수저를 조심스레 건네받아 상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술잔을 들어 서희의 손에 들려주었다.

서희의 손에 든 술잔이 그녀의 입술에 닿자 두 입술이 살짝 벌어지며 술이 흘러 들어갔다.

평소에도 붉던 그 입술이 더욱 진한 색을 드러내며 자신을 유혹하는 것 같았다.

이혁이 자신도 모르게 큼큼- 하고 목을 가다듬더니 술을 따라 마셨다. 기분 좋은 취기가 자신을 감쌌다.


“내일 있을 연회의 목적에 대해 알려주러 오셨다 했지요?”

“그래. 그랬지.”

“말씀하세요.”

“좀 더 먹지 않고? 홍씨가 준비한 것 중엔 간전만 있는 게 아니거든.”

“아니라고 하시더니...”


“뭐?”

“절위한 것이 아니라고 하셨지요. 그런데... 정작 사장님께선 술만 드시더란 말입니다.”


또다시 뜨끔하여 맑디맑은 눈으로 저를 보는 서희를 바라봤다.

분명, 보이지 않는 눈일 텐데... 너무 맑은 탓인지 꼭 제 마음을 꿰뚫는 힘을 지닌 것 같았다.


“막상 술상을 보니, 손이 가지 않아.”

“사장님께서 제일 좋아하시는 간전이 부들부들 맛있게 요리되어져 있는 데도요?”

“그건...”

“제게 마음을 두지 마시라 말씀 드렸을 텐데요.”

“오서희!”

“차라리 오늘 밤 저를 안으시고, 그 마음을 접으시는 건 어떠실런지요?”

“뭐라... 고?”


“간혹 사내의 욕정과 사랑을 혼동하시는 분들이 있어 하는 말씀입니다.

사장님께서도 그러신 듯 하구요.”


“하... 넌 진짜 날 그렇고 그런 사내로 안 것이로구나..”


서희의 도발에 이혁은 한 쪽 손의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녀의 말에 화도 났지만, 한편으론 마음이 한없이 저릿했다. 제 마음을 터부시 한 그녀가 원망스러웠다.


서희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거리를 가늠하여 이혁의 앞으로 왔다.

그리고 자리에 다소곳이 앉더니 손을 뻗어 그를 향했다.

다른 때 같으면 그 손을 잡아주었겠지만, 이혁은 그러지 않았다. 나름의 소심한 반항이었다.

해볼 테면 해봐라. 난 그런 놈이 아니다. 말하고 있는 듯 했다.


허공을 맴돌던 서희의 손이 이혁의 가슴에 안착했다.

스륵... 그의 몸을 훑으며 거슬러 올라가더니, 그의 입술에서 손이 멈췄다.

서희가 이혁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쓸더니, 상체를 일으켜 천천히 제 입술을 그의 입술에 포갰다.

그녀의 적극적인 공세에도 이혁은 한 쪽 주먹을 꾹 쥔 채 입을 열어주지 않았다.

제 감정을 한낱 사내의 욕정 따위로 매도당하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이었다.

써니가 입술을 떼고는 나른한 음성으로 이혁에게 속삭였다.


“제 머리를 올려준 이에 대해 물었던 적이 있었지요?

그 분은 몰락한 양반 가문의 자제분이셨습니다.”


“듣기 싫다. 궁금하지 않아.”


“전 그 분의 글 읽는 소리가 좋았고, 그 분은 저의 금을 타는 소리가 좋다하셨죠.

그리고... 그 분과 처음으로 혀를 섞고 몸을 섞던 날 알았습니다.”


서희가 손을 뻗어 이혁의 두 뺨을 감싸 쥐었다.

그리고 그의 입술과 제 입술이 맞닿을 만큼 가까이 하고는 말을 이었다.


“그 분이 아니고서는 절 요부로 만들 사내는 없을 거란 사실을요.

제 몸과 마음을 동시에 가질 수 있는 이는 그뿐이란 것을요.

그러니, 제게 사장님과의 하룻밤은 그저 수많은 사내들과 가졌던 아무 의미 없던 그 밤들과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날 더러 먹고 떨어져라?”

“사장님을 위해서도, 절위해서도... 그게 좋지 않겠습니까?”


이혁이 빤히 서희를 바라보더니 주먹을 풀고 서희의 허리에 제 팔을 감았다.

살짝 끌어당기자 여리여리한 서희의 여체가 속절없이 이혁에게 끌려와 그에게 밀착됐다.

이번엔 이혁이 먼저 서희의 입술에 제 입술을 부딪혔고, 그녀의 입술 사이로 제 혀를 밀어 넣었다.

급할 것 없이 진득하게 서로의 타액을 주고받으며 입맞춤을 이어갔다.

이혁의 뺨을 감싸던 서희의 손이 미끄러지듯 내려와 그의 가슴을 짚었다.

정신이 아득해지고 숨이 막힐 것만 같아 그를 밀어내지 않고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서희가 그를 밀어내자 이혁의 입술이 떨어져나갔다.


“하아... 하아...”


서희가 뜨겁고 가쁜 숨을 몰아쉬는 동안 이혁은 그 찰나의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고

그대로 서희의 길고 가느다란 목에 제 입술을 묻었다. 입을 맞추고, 또 맞추고...

이혁의 손이 서희의 스커트를 밀어 올리며 은근하게 서희의 허벅지를 어루만졌다.

서희의 손이 내려와 다급하게 이혁의 손을 잡았다. 그제야 이혁이 서희에게서 입술을 거두고 속삭였다.


“처음엔 네가 내 감정을 가지고 장난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어. 넌 두려운 것이지?”


좀처럼 동요하지 않던 서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가 이혁을 밀어내려 하자, 이혁이 더 힘껏 서희를 끌어안았다.


“무엇이 그렇게 두려울까... 너나 나나, 참으로 쓸데없이 복잡한 사람들이구나.”


이혁은 아무 말이 없는 서희에게서 작은 파란을 느꼈다.

쉼 없이 뛰고 있는 그녀의 심장 소리가 평소보다 강하게 느껴지는 듯 했다.

그 소리가 제게 기대감으로, 설레임으로 다가왔다.


이혁이 서희를 안아 들고 침대로 가 그녀를 앉혔다.


“홍씨에게 술상을 물리라 하지. 생각이 많을 테니 나는 이만 가보겠다.”


그의 말처럼, 이혁은 서희에게서 곧장 돌아 방 밖으로 사라졌다.

한동안 그의 발걸음 소리가 느껴졌으나, 그마저도 들려오지 않을 즈음...

서희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작은 손에 불끈 힘이 들어가며 주먹이 쥐어졌다.


‘어쩌려고 그러니... 오서희...

이렇게 또 속절없이 마음을 줘버리면... 어쩌려고.’


제 마음을 확인했으니, 이제라도 그에 대한 마음을 거두려면 거둘 수 있는 것일까.

한동안은 계약에 묶여 마주할 수밖에 없는 사이인데 말이다. 이것 또한 운명의 농간일까.







애가(愛歌) _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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