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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플] 애가(愛歌) _ 10

..(118.42) 2020.07.13 01:36:56
조회 604 추천 32 댓글 6




서희의 눈동자를 바라보는 다카하시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떠올랐다.

죽은 듯 공허하지만 너무도 맑고 영롱해 그 속내가 고스란히 투영되는 것 같았다.

그는 제 목표인 상대에게 물음을 던져주고 지켜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 물음으로 인해, 상대가 즐거우면 즐거운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고통스러우면 고통스러운 대로 만족을 느꼈다.

언제든 상대보다 우위에 있는 저는 가만히 지켜보다 그저 몇 번 상대의 약점을 들추기만 하면 됐다.

그러면 결국, 상대는 제 의도대로 움직였고 어느 샌가 제 손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갈등 어린 서희의 얼굴을 즐기듯 바라보고 있던 다카하시의 귀에 인기척이 들렸다.

불청객의 등장으로 그의 표정은 돌연 서늘하게 바뀌었고, 날카로운 시선이 곧 옆을 향했다.

이혁이 다급하고 큰 걸음으로 다카하시와 서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제 앞의 사내를 견제하는 눈빛으로 자연스럽게 서희를 뒤로 밀어내며 앞을 막아섰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녀에 대한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애쓰던 것과는 달랐다.

수컷의 직감인가. 다카하시가 소리 없이 묘한 웃음을 흘렸다.


『비서관께서 많이 취하셨습니다.』


『하려던 일을 못하게 막았으니, 그 자존심에 취하지 않으면 안 되었겠죠.

그럼, 저 친구와 함께 나도 그만 가봐야겠군요.』


『한씨에게 일러 비서관을 차로 모시라 이르겠습니다.』


이혁이 다카하시에게서 돌아서며 은근 슬쩍 서희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제가 가는 방향으로 서희를 이끌어 두어 걸음 내딛었을 즈음, 침묵하던 다카하시가 목소리를 냈다.


『내게 준 선물 말입니다. 내 집으로 가져가려 합니다.』


다카하시의 말에 이혁의 걸음이 멈췄다.

절대 빼앗기지 않으려는 것처럼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가며 서희의 손을 꼭 움켜쥐었다.

서희의 염려스런 얼굴이 이혁을 향했다.

신중한 그가 경솔히 행동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섣부른 판단을 할까 걱정이 됐다.


『이 아이에게도 선택을 하라 일러두었습니다.

물론, 이번엔... 그냥 받지 않을 생각입니다.

값어치가 큰 선물엔 그만한 답례가 따르는 법이니 말입니다.』


『저는 이 아이를...』

『내일! 들러주세요. 고민은 하룻밤이면 충분할 듯 합니다.』


서희의 말에 다카하시가 느른한 미소를 입가에 띠우며 걸음을 느릿하게 옮겼다.

그러다 이혁과 서희 앞에서 멈추어 서더니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차에 먼저 가 있을 테니, 저 친구 좀 부탁합니다.』


인사를 대신한 부탁의 말을 남기곤 그가 몸을 돌려 다시 걸음을 옮기자, 서희가 고개를 숙여 예를 갖췄다.

이혁은 제 마음이 어떤지 알면서도 그를 향해 깍듯이 예를 갖추는 서희가 원망스러워 꼭 잡고 있던 그녀의 손을 툭 놓았다.

서희의 눈이 다시 그를 향했다.


“사장님...”

“여기 꼼짝 말고 기다려.”


서희를 그대로 둔 채 이혁이 사랑채로 향했다.

한씨를 불러 비서관을 차에 태우기 위함이란 걸 서희도 알았지만,

제 마음 한 켠에 스산한 밤기운이 스며드는 것 같았다.

잠깐 동안이나마 그가 꼭 쥐었던 제 손을 살며시 꾹 쥐었다 다시 폈다.

뜨겁던 그의 체온이 어느 새 사라지고 없었다. 울컥했다.


‘저 이도 다를 바 없겠지...’


서희가 조심스레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할 수만 있다면, 그냥 사라져버리고 싶었다.

여기서 그를 기다린다한들 달라질 게 무엇이 있으랴.

누군가는 성공했다 말하겠지만 그는 여전히 힘이 없는 조선인 사업가였고,

자신은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갈대와 같은 하찮은 인생이었다.

그런 두 사람이 아무리 긴긴 밤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는다고 한들,

총독부가 뒷배인 다카하시를 이길 수는 없었다.

게다가 그는 이제껏 제가 겪었던 사내들과는 뭔가 달랐다.



서희가 두 번, 세 번...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방향성을 잃지 않으려고 애는 썼지만, 사실 제가 제대로 나아가고 있는 건지 확신할 수 없었다.

예민한 감각과 청각을 가졌다지만, 아무래도 눈을 대신할 수는 없었다.


“아...”


돌부리에 발이 걸려 넘어지려는 찰나, 누군가 손을 뻗어 저를 붙잡았다.

이혁이다. 그의 냄새가 났다. 역시, 무의미한 몸부림에 불과했구나.


“오서희, 꼼짝 말고 기다리라고 했잖아!”

“추워서...”


서희는 자신이 무슨 말을 내뱉고 있는지도 모른 채 무심코 말을 내뱉었다.

다카하시의 일로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이혁이 다시 버럭 소리를 지르려다가 서희를 보곤 입을 다물었다.

아직은 밤 기온이 서늘했다. 여름 한복을 입은 서희는 저보다 훨씬 오랫동안 밖에 서 있기도 했다.

정말 추울 법도 했다. 이혁이 서희의 손을 잡았다.


“일단 들어가지.”


서희의 손에 다시금 이혁의 온기가 돌았다.

그의 따뜻함이 왜 이렇게 좋은지. 또 왜 이렇게 마음을 시리게 만드는 지 혼란스러웠다.


‘오서희, 정말... 더는 안 되겠다.’


두 사람은 말없이 그저 한 걸음, 한 걸음 발맞추어 안채로 향했다.

하인들이 분주히 오가는 사랑채를 벗어나자,

멀리서 들려오는 동물의 소리들을 제외하고는 정적이 흘렀다.

서로를 안 지 얼마나 됐다고, 이혁은 두 사람 사이의 정적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서희와 함께 걷는 걸음이 편안하고 따뜻했다.

서로 연정을 품은 사이가 아니라도, 이렇게 종종 함께 할 수 있는 관계면 얼마나 좋을까도 싶었다.

그 때, 정적을 깨고 서희가 말을 건네 왔다.


“약주, 많이 드셨습니까?”

“제법... 그랬지.”


제 대답에 서희의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혁이 서희를 돌아보며 사실은 이유가 궁금해 죽겠으면서도 무심하게 물었다.


“왜 묻지?”

“갈지 자 만큼은 아니지만, 비틀거리고 계십니다.”

“그럴 리가. 난 약주가 센 편이다.”

“그럼, 제가 비틀거리는 걸까요?”

“쳇.. 그래도 염려 마라. 안채로 잘 가고 있는 중이니.”

“안채로 향하시던 중이셨습니까?”

“왜? 별채로 갈까?”

“아닙니다. 사장님과의 얘기를 유라가 듣게 하고 싶진 않아요.”


서희의 말에 이혁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녀가 애틋하게 생각하는 유라라는 아이가 유치할 정도로 부러웠다.

애초 제 터무니없는 제안을 받아들인 것도 유라라는 아이 때문이었으니,

서희에게 있어 제가 유라보다 먼저일 수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시 흐르는 침묵 속에 몇 걸음 더 옮기니, 곧 안채가 나타났다.

댓돌을 올라서서 마루를 지나 문지방을 넘어서기까지 서희가 불편하지는 않을까 싶었다.


“서희야, 놀라지 말아라.”


이혁이 서희에게 언질을 주고는 번쩍 서희를 안아들었다.

그리고 이내 댓돌을 올라 마루를 지나고 방 안에 들어섰다.

사방이 열려있는 밖에 있다가 사방이 막힌 방 안에 서희를 안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그만 내려주시어요.”


서희의 나긋한 목소리와 함께 그녀의 숨이 이혁에게 와 닿았다.

의도치는 않았지만, 이 상황은 이혁의 본능을 깨우기에 충분했다.

그가 본능의 충동질에 마음을 달리 먹고, 서희를 책상 위에 앉혔다.

그리고 그녀의 목덜미에 제 손을 얹고 그녀의 입술에 제 입술을 붙이려는 순간, 서희의 입이 열렸다.


“절... 보내주세요.”


잠시 분위기와 서희의 숨결에 취했던 이혁의 몽롱한 머리가 깨이며 목소리에 날이 섰다.


“닥쳐!”


“전... 사장님의 사업상 필요한 기생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런 저 때문에, 총독부가 추진하는 모든 사업에서의 배제를 감수하시겠습니까?”


“다른 걸 내주면 돼!”


“그 분이 원하는 건 분명 저입니다. 다른 선택 사항이 있다면, 미리 언질을 했을 거예요.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이 분명한 분입니다.

사장님의 결정에 따라 상이 따르기도 하겠지만, 벌이 따르기도 하겠죠.

경성에서 쫓기듯 떠나야 할 수도 있습니다.”


“................”


“언젠가 사장님이 물으셨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두려운 거냐고.

전, 연모하는 이에게서 버림받는 것이 두렵습니다.

사장님께선, 가지고 있는 모든 걸 잃고 경성을 떠나야 한 대도 제 손을 놓지 않을 만큼 절 연모하십니까?”


서희의 목덜미에 머물러있던 이혁의 손이 힘없이 떨어져 내렸다. 무서운 말이었다.

그녀를 옆에 두기 위해선 오랫동안 제 삶의 전부였던 모든 것을 잃게 될 거란 말이었다.

비참했던 그 과거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말이었다.

이혁의 눈동자에 참담한 빛이 어렸다.


“부디 자책은 마세요. 사장님과 저의 관계는 애초부터 이런 것이었으니까요.”


서희가 손을 뻗어 이혁의 팔을 붙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훑어내려 그의 손을 잡고 제게로 끌어당겼다.

맥없이 끌려오는 이혁의 손을 제 뺨에 대고 부비더니, 그 손을 내려 제 가슴 위에 얹었다.


“오늘 절 갖고, 잊어버리세요.”


오로지 저를 향한 서희의 말간 눈을 바라보던 이혁의 눈에 물기가 어리더니, 이내 톡...

뺨 위로 흘러내렸다. 참으로 처절한 서희의 작별 인사였다.






p.s. 도무지 길게 적을 만큼 진득한 성격이 못돼서... ㅋㅋ

       짧게 남기고 도망가요. 모두 즐거운 한 주 보내길~ 



애가(愛歌) _ 09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drama109&no=183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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