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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Vision Pro 공개
양안 4K + 4K Micro OLED 디스플레이사용자의 표정을 보여주기 위한 외부 OLED 디스플레이10개의 비전+트래킹용 고해상도 카메라 3개 모듈로 이뤄진 라이다 센서 4개의 시선추적+홍채인식 카메라컴퓨팅을 위한 M2칩과 저지연 트래킹 센서 처리를 위한 R1 칩 전원 연결시 지속사용 가능, 외장 배터리 사용 시 2시간 사용공간음향 지원 듀얼 유닛 스피커 주변 3차원 공간을 시뮬레이션해 구현되는 오디오 레이 트레이싱전면은 유리 알루미늄 프레임 3D 니트 헤드밴드 안경 착용자를 위한 맞춤형 광학 삽입물 출시가격 $3499, 연말 미국부터 출시 - 이쯤에서 다시보는 16년전 아이폰 공개당시 한국인들 반응 ㄷㄷ막상 사놓고도 안쓴다, 터치패드는 고장이 잘나는대 입력을 터치로 하는게 말이되냐 등등자기들이 쓰던 PDA에서 경험한걸 그대로 아이폰에 투영하기만 하는 한국 네티즌들 "찻잔 속 태풍" 이라는 키워드 하나만으로도 저렇게 까는 기사가 많았음그냥 아이폰 까는 기사만 과장없이 수백개가 올라왔었음 그 당시 IT전문가, 증권가, 기자, 한마음 한뜻이 되어서 깠음 참고로 삼성 직원들 반응그리고 아래 댓글들은 아이폰 출시 때 한글과 컴퓨터 창립자인 이찬진이 클리앙에 아이폰이 시장 판도를 크게 뒤바꾸는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고 아이폰의 차세대 모델은 3G를 달고 나올 것이고 KTF에서 가장 먼저 아이폰을 국내도입할것이며 기존 메이커들에게 큰 타격을 주고 피쳐폰은 거의 사라진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을때 달린 댓글 반응들임 참고로 지금와서 보면 이찬진 글 내용이 전부 하나도 빠짐없이 현실화 됨WIPI 의무탑재 사라지고 와이파이의 시대가 도래하는 것 까지 맞춤 ㅋㅋㅋ 잡스는 아이폰 공개 당시, 스마트폰 시장은 매우 크고, 거기서 1%만 차지하더라도 좋은 시작이라고 말했음지금은 어떨까? 프리미엄 시장 점유율 81% 이상스마트폰 전체 시장 이익에서 85%를 혼자 가져가는 회사가 됐음 - Apple Vision Pro, 15‘ Macbook Air 상세정보두개의 OLED 패널을 이용전용 OS visionOS 사용 예정자체 애플 실리콘 칩 사용칩셋 설명그림자도 생깁NIDAㅋㅋㅋㅋ UI 개깔끔하긴 하네 실제로 체험해보면 신기하긴 할듯디테일 또 변태같은게 저 흑형이 카드주려고 다가오니까 가상창이 근처에서 살짝 흐려지는 듯한 효과를 보여주네대충 실제의 것을 감지해서 상호작용하는 데에 불편함이 없다는 걸 강조하는 느낌이 들었음에어팟 맥스 + 애플워치 울트라 쓰까놓은듯한 디자인내장 배터리는 빼버리고 보이는 저 보조배터리같은게 배터리팩, 허리에 고정하도록 함전원을 연결하면 하루종일 사용 (이게 뭔 소린지?), 배터리팩을 사용하면 2시간 사용 가능이라고 함개인 맞춤형 공간 음향 제공한다고 하는데 에어팟이랑 비슷한 수준인듯VR이랑 AR 왔다갔다 하는 기능대충 꼬집고 까닥이고 혁신인 척하는 사용방법(작은 글씨로) 가격은 3,499$부터 시작ㅋㅋㅋㅋ전체적인 발표를 봤을 때, 기기 성능 등과 같은 내용보단 이 기기가 첫 출시한다는 점에 집중해서 어떤 식으로 활용될지 예시를 많이 보여준다는 느낌을 받았음15‘ 맥북 에어 상세정보색상 4가지15인치 중에서 깡패성능인 건 맞는 듯발표에서도 15인치의 큰 노트북에 집중해서 계속 언급하는 거 보면교육할인 입갤 ㅋㅋ가격 요약, 전체적으로 인상같은 건 없어서 너무 좋음15인치 노트북은 이거로 갈까 고민될 수준이네
작성자 : 나명고정닉
일본의 4대 정경유착 -록히드 사건
미국의 방위산업체인 록히드는 신형 제트 여객기 L-1011 트라이스타라는 최첨단 여객기를 제작한다 그러나 이미 시장에는 보잉 747이나 멕도넬 더글라스 DC-10이 있었기에 이들과의 치열한 경쟁은 불가피했다 그래도 록히드는 어떻게든 트라이스타를 팔아먹어야 했기 때문에 각국의 정부와 정치인들에게 로비를 벌였다 일본도 록히드사의 중요한 로비대상이었는데 이미 전일본공수(ANA)의 라이벌인 일본항공(JAL)이 DC-10의 대량 발주를 결정하면서, 록히드로서는 전일본공수라도 잡을 필요가 있었다 당시 전일본공수는 일본의 고도경제성장에 따른 여객수요의 증가와 1972년에 예정된 삿포로 동계올림픽을 대비해 신형 대형 여객기의 발주를 검토하고 있었다 이에따라 사장 오오바 테츠오를 중심으로 한 선정작업이 이뤄졌다 세 종류의 여객기가 후보에 올랐고, 트라이스타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트라이스타는 롤스로이스사의 신형 엔진 탑재가 난항을 겪은 탓에 전일본공수는 비록 최첨단 여객기라고 해도 엔진의 문제가 있는 트라이스타는 제외하기로 결정했고, 최종적으로 DC-10이 낙점을 받아 1970년 미츠이 물산을 통해 총 3기를 가발주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DC-10의 발주에 관여한 사장 오오바가 사기사건에 휘말렸다는 괴문서가 주주총회 앞으로 배달되었고 결국 오오바는 사직, 전 운수차관 와카사 토쿠지가 후임자로 임명되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와카사는 트라이스타를 차기 대형 여객기 도입 후보에 다시 올리자는 제안을 했고 이에 따라 전일본공수 내부에서 재검토가 이뤄진 끝에 DC-10의 발주가 뒤집어지고 트라이스타를 발주하기로 최종 확정되었다 이런 느닷없는 트라이스타 발주의 배경으로 그해 9월 1일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열린 미일 정상회담이 꼽혔다 당시 미국 대통령 닉슨은 록히드사의 공장이 위치한 캘리포니아가 정치적 기반이었기 때문에 닉슨이 당시 일본 총리 다나카 가쿠에이에게 트라이스타의 발주를 설득했다는 것이다 1974년 1월, 트라이스타가 정식으로 납품되어 2월에 운항을 시작했다 당시로서는 트라이스타의 발주는 상당히 느닷없는 일이긴 했지만 아직은 스캔들로 비화되지는 않았다 다나카는 돈을 밝히는 금권주의 체질이라는 비판을 받아 그해 12월 9일 총리 직에서 사임했다 그러던 1976년 2월 4일, 미 상원 외교위원회 다국적기업 소위원회의 공청회에서 록히드가 일본내의 자사기 판매를 위한 로비를 위해 여러 나라의 정부 관계자들에게 거액의 뇌물을 살포한 사실이 드러났다 일본의 경우는 마루베니 상사를 통해 200만 달러를 일본의 고위 정계인사들에게 건넸다는 것 더구나 전일본공수의 신형 여객기 발주문제 뿐만 아니라 일본 해상자위대의 초계기 도입에도 록히드의 뇌물살포가 있었음이 드러났다 당초 일본 해상자위대는 초계기를 도입하면서 자국 기업의 기체를 도입하기로 결정되었었는데 뒤집히고 록히드의 P-3 오라이언을 도입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록히드의 부회장과 도쿄 주재 사무소 대표가 록히드의 일본내 대리인 역할을 하고있던 코다마 요시오에게 소위 컨설턴트 비용이라면서 21억엔을 건넸고, 다시 코다마와 그의 친구 오사노 겐지를 통해 다나카 가쿠에이에게 5억엔이 건네졌다는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일본 정계는 발칵 뒤집혔고, 당시 관련자들은 소환되어 조사를 받게된다 일본 정계가 뒤집힐만한 이유가 있었는데 그것은 다나카 가쿠에이가 대만과 단교하고 중일수교를 이끌었던 거물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그후 다나카 후임 총리 미키 다케오(단상 앞에 있는 사람)는 검찰과 관련기관에 수사를 지시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다나카 가쿠에이는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자민당내 자신의 파벌들을 적극 동원하기 시작했다 소위 친다나카 성향의 의원들은 록히드 사건 수사가 정권의 표적수사라고 주장하며 미키 다케오를 끌어내릴 궁리를 시작했고 미키 타케오는 자민당내에서는 소수파였기에 위치가 꽤 불리했다 자민당내 대표적 반미키 성향을 지닌 시이나 에쓰사부로는 사건수사를 서두르는 미키를 "너무 까분다"라며 비판했고 다나카와 결탁해 1976년 5월 7일 회동을 가진 끝에 미키를 총리 자리에서 해임시키기로 합의했다 여기에 오히라계, 후쿠다계, 시이나계, 미즈타계, 후나다계 등 대부분의 계파들이 여기에 찬동했고 유일하게 나카소네계만이 미키 총리쪽에 붙어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가운데 요시나가 유스케를 수사주임으로 하는 도쿄지검 특수부는 이례적으로 7월 26일 다나카를 체포했다 이를 나카소네계의 법무장관 아나바 오사무의 역지휘권 발동으로 간주한 다나카계는 맹공을 퍼부었다 1976년 12월 5일 치러진 제34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록히드 사건의 여파를 받아 자민당이 8석을 잃는 등 사실상 패배해, 미키는 패배의 책임을 지고 수상직을 사임했다 뒤를 이어 미키 내림을 주도한 후쿠다파의 리더의 후쿠다 타케오가 수상에 취임했다 그런데도 이 선거에서 다나카는 니가타 3구에 출마하고, 16만 8522표를 획득해 최다득표 당선 기록을 세웠다 ㄷㄷ 재판은 1977년 1월 27일에 시작되었다 1983년 10월 12일, 다나카에게 징역 4년에 추징금 5억원의 판결이 내려졌다 하지만 다나카는 판결에 불복하고 의원직을 사퇴하지 않겠다고 뻔뻔한 모습을 보인다 결국 중의원 의장과 참의원 의장이 중요 제출 법안을 처리해주면 중의원을 해산하겠다는 중재안을 제시해 자민당과 야당들이 동의하여 중의원이 해산되었다 다나카는 당선되었지만 자민당은 되려 역풍을 맞이했다 결과적으로 자민당은 과반수 의석 확보에 실패해 신자유클럽과의 연립정권을 구성해야만 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55년 체제(1955년부터 1993년까지 자민당과 사회당 의석 비율이 각각 2 : 1에 가까운 의석 비율을 유지한 체제)는 잠깐 흔들렸다 이 사건의 관련자인 오사노 겐지는 중의원 예산위원회에 소환되었을때 자신에게 불리한 질문에 대해서는 "그건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記憶にない!)"를 연발해서 유행어가 되었다 록히드 사건으로 인해 골때리는 일도 일어나는데 마에노라는 우익활동가 겸 포르노 배우가 (배신자) '코다마에게 천벌을 내린다'며 소형 비행기를 몰고 고다마의 집에 특공을 하게된다 정작 목표인 고다마는 다른 곳에서 자고 있었기에 무사했고, 마에노 본인만 죽고 말았다 충돌할 때 일장기 완장을 달고 '천황폐하 만세'라고 외치는 등의 행동을 해 일본 언론은 그를 '최후의 카미카제'로 불렀다 사스가 카미카제의 나라다 ㄷㄷ 참고로 전일본공수는 트라이스타를 잘 써먹다가 1995년에 퇴역시켰다고 한다 - dc official App
작성자 : ㅇㅇ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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