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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비는 과연 어떤 인물인가? (2/2)

민비특집(118.41) 2015.07.01 12:03:17
조회 695 추천 0 댓글 0

최근 모 연예인 장관의 별것아닌 발언을 끄집어 진보진영에서는

별 같쟎은 꼬투리를 모조리 갖다 붙혀 매도하고, 쓸데없는 논란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별로 옹호하고 싶지 않은 문제의 그 장관이라지만

표현의 연결이 어색했던 점은 있었을지라도 그 발언이 특별히 문제될 것은 또 무어란 말인지?

 

이 중 '민비'라는 표현이 또 도마위에 오르고 있는데,

이제 식자층들의 노력으로 이 '민비우상론'의 허구적 실체나

'민비' 호칭의 일제비하설은 전혀 사실무근함이 밝혀졌건만,

또다시 민비 호칭에 대한 오버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언제는 '대동아전쟁' 표현 가지고 시비질이더니

그러면, '대동아전쟁'은 친일표기이고 '태평양전쟁'은 친미표기인지? )

 

'민비'는 살아생전 호칭일 뿐이며, 당시에도 민후(閔后)나 민비로 표기해 왔으니

이는 특별히 지어낸 비하어나 일제의 비속어라는 주장과는 전혀 무관한 일이며,

'명성황후'는 대한제국 선포 이후 추존된 시호일 뿐입니다.

 

오랜기간 조선의 종묘예법 호칭이나 당시의 일반적 표기를 무시하고,

지극히 짧은 순간이었던 대한제국의 시호만 따라야 한다는 대전제라면,

왜, 유독 '민비'만 '명성황후'로 불려야 합니까?

 

'민비'가 반드시 '명성황후'여야 한다면-

정작, 칭제건원한 주체 '고종'이야말로 '태황제' 혹은 '광무제'로 표기해야 더 적절하고

대원군도 대한제국에서 추존된 그대로 '대원왕'이라 칭해야 일관적입니다!

몰지각한 진보좌파진영의 넋두리나 무지몽매한 좀비민초들의 옹알이대로라면

고종이나 대원군도 일제비하어에 다름 아닌 친일매국표기(?)일 뿐입니다. 

 

우리가 잘아는 정조 임금도 사실상 조선왕조에서 정한 묘호대로라면,

'정종문성무열성인장효대왕(正宗文成武烈聖仁莊孝大王)'- 즉, '정종'인데, 이를 대한제국 선포당시-

정조경천명도홍덕현모문성무열성인장효선황제(正祖敬天明道洪德顯謨文成武烈聖仁莊孝宣皇帝)..로

추존했으니, 조선왕조의 기준대로라면 '정종대왕'으로 불리워야 하고

민비 문제와 일관성을 띄려면 대한제국 묘호대로 '정조 선황제'라 칭해야 맞습니다.

이외, 순조 숙황제, 헌종 성황제, 철종 장황제, 순종 효황제 등으로 불리워야 합당할 것입니다.

 

민비 호칭 시비 붙을 때마다 다음의 '표'를 던져주고 그대로 부르라 해야겠습니다.

태조 고황제의 존휘- 이.성.계.를 함부로 들먹이는 것 조차 일제식의 비하표현이며,

위화도회군이니 쿠데타니 언급될 때에는 정말 재미있어지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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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太祖) 고황제(高皇帝) 이성계(李成桂)

(묘호변경일자:1899년(광무3년) 12월 23일)

 

진종(眞宗) 소황제(昭皇帝) 이행(李緈) (추존) 경의군(敬義君), 효장세자(孝章世子)

(묘호변경일자:1908년(순종1년).1월5일)

 

장조(莊祖) 의황제(懿皇帝) 이선(李愃) (추존) 사도세자(思悼世子), 장헌세자(莊獻世子)

(묘호변경일자:1899년(광무3년) 12월 23일)

 

정조(正祖) 선황제(宣皇帝) 이성(李祘) 1776년~1800년 왕세손

(묘호변경일자:1899년(광무3년) 12월 23일)

 

순조(純祖) 숙황제(肅皇帝) 이공(李玜) 1800년~1834년

(묘호변경일자:1899년(광무3년) 12월 23일)

 

문조(文祖) 익황제(翼皇帝) 이영(李旲) (추존) 효명세자(孝明世子)

(묘호변경일자:1899년(광무3년) 12월 23일)

 

헌종(憲宗) 성황제(成皇帝) 이환(李奐) 1834년~1849년 왕세손

(묘호변경일자:1908년(순종1년) 1월 5일)

 

철종(哲宗) 장황제(章皇帝) 이변(李昪) 1849년~1863년 덕완군(德完君)

(묘호변경일자:1908년(순종1년) 1월 5일_

 

고종(高宗) 태황제(太皇帝) 이재황(李載晃)/이희(李熙) 1897년~1907년 익성군(翼城君) 광무황제(光武皇帝)이태왕(李太王)

(묘호변경일자:1907년(순종원년) 8월 27일)

 

순종(純宗) 효황제(孝皇帝) 이척(李坧) 1907년~1910년 왕세자, 왕태자, 황태자 융희황제(隆熙皇帝)이왕(李王)

(묘호변경일자:1926년(순종19년) 3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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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던, 민비가 언제부터 우상화되었는가?

 

만약, 역사상의 업적을 들어 호칭을 좌우해야한다는 시각이라면

민비는 오히려 '명성황후'가 아니라 민가년으로 불리워도 부족할 지경.

관련 뮤지컬과 드라마에 뽕먹은 민초들에게 적극 권장할 책은 황현의 '매천야록' (필독서).

근현대사에 조금만 관심이 있더라도 이 가공할 매국구미호에게 학을 뗄 것입니다.

 

민비예찬의 트렌드는 친일마녀사냥에 환장한 좌좀세력들과

여성위인 못찾아 환장하던 페미세력들의 절묘한 합작으로 형성.

또한, 드라마와 뮤지컬의 히트로 몰상식한 상업주의까지 맞물려 포화된 기현상.

이외, 일제 낭인에게 무참히 시해된 국모,,라는 동정론의 영향...정도일까요?

 

민가년이라 부르기에도 모자란 민비일족의 천인공노할 실상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청나라에 서태후가 있었다면 조선에는 민비가 있었다

 

 

민비는 명례궁 수입의 88%를 당오전으로 충당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출은 수입 291만 량을 훨씬 초과하는 444만 량이었다. 식료비는 354만 량 이며 총지출의 79%에 달하였다.

 

1855년부터 조선왕조는 이전에 알지 못했던 경제적 위기에 직면하였다. 農業生産(농업생산)이 급속하게 감소하고, 物價(물가)가 지속적으로 치솟고, 市場(시장)이 분열하였다(李榮薰 2007). 이 위기의 기간에 명례궁의 수입은 <표1>에서 보듯이 1853-1854년 32,954량에서 1892-1893년 2,916,290량으로 무려 88배나 팽창하였다. 동기간 물가도 급하게 치솟았다. 예컨대 米(쌀) 1석의 가격은 6량에서 138량으로 23배나 올랐다. 이를 감안하면 명례궁의 실질 수입은 동기간 3.8배 증가하였다.

위기의 시대를 반영하여 宮房田(궁방전)으로부터의 실질 수입은 감소하였다. 액면으로는 8,742량에서 184,824량으로 21배 증가하였지만, 물가가 23배나 올랐기 때문이다. 정부의 공상도 액면으로 8.5배 증가하였지만 물가의 상승폭에 크게 미치지 못하였다. 위기의 시대에 정부재정의 형편도 악화되었기 때문이다.(*5) 그런 가운데 명례궁의 실질 수입을 3.8배나 끌어올린 것은 왕실로부터의 內下(내하)였다. 내하가 1892-1893년에 연평균 257만 량을 초과한 가운데 총수입의 88.2%를 차지하였다.

명 례궁에 대한 왕실의 내하는 이전에도 있긴 했지만 비정기적이었다. 대개 銀(은)으로 내려졌는데, 때때로 다른 현물일 수도 있었다. 받자책에 의하면 錢(전)의 형태로 내하가 매년 행해지기 시작하는 것은 1882년부터이다. 이후 1894년까지 內下(내하)의 추이를 제시하면 [그림2]와 같다. 이에서 보듯이 내하는 1882년 38,100량에 불과하였는데 1887-1888년에 연간 50만 량을 넘었으며, 1891년 이후 급증하여 1894년에는 270만 량 이상의 거액에 달하였다.

 

이 내하금이 1882년부터 발행된 當五錢(당오전)임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바로 그 해부터 錢(전) 형태의 내하가 연례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당오전의 발행은 閔妃(민비/명성황후)를 중심으로 한 閔氏(민씨) 政權(정권)의 유력한 재정수단이자 민씨 일족의 致富(치부) 方策이었다. 당오전의 발행은 물가를 급하게 끌어올리는 등, 여러 가지 폐단을 낳았다. 그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당오전은 1885년부터 한동안 발행이 자제되다가 1889년부터 1894년 폐지되기까지 품목에 못 미치는 惡貨(악화)의 형태로 대량 발행되었다(吳斗煥 1991: 61-81).

 

명례궁의 연말 시재는 1863년 高宗(고종)의 시대가 열리면서 차입 구조로 들어섰다. 1873년에는 일시 차입 구조를 벗어났다가 1883년까지 조금씩 累積借入(누적차입)을 늘려갔다. 그러다가 그림에서 보듯이 1884년 이후 가파르게 누적 차입이 증대하기 시작하여 1892년에는 66만 량의 거액에 달하였다. 동기간 민비(명성황후)를 중심으로 하는 민씨 일족의 집권은 확고하였다. 借入先(차입선)이 어딘지, 정부재정인지 市中(시중)의 商人(상인)인지는 회계책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당시의 정부재정이 매우 困乏(곤핍)했음을 고려하면 아무래도 후자였을 가능성이 크다. 다시 말해 명례궁은 1884년 이후 급속하게 지출규모를 팽창시키면서 당오전의 내하로 그 상당 부분을 충당하였을 뿐 아니라, 그래도 부족한 수입을 시중 상인들로부터의 차입으로 충당하였던 것이다.(*6)

그 위기의 시대에 민비(명성황후)는 무슨 목적으로 그렇게나 過濫(과람)하게 명례궁의 재정을 확장하였던가. <표2>에 보듯이 1893년 명례궁은 354만 량 이상의 食料費(식료비)를 지출하였다. 총지출에서 식료비의 비중이 79.6%에 달하였다. 식료비가 그렇게 크게 늘어난 것은 무척 잦아진 告祀(고사)ㆍ茶禮(차례)와 宴會(연회) 때문이었다. 차하책에 의하면 1893년 한 해에 모두 29회의 고사와 다례가 행해졌다. 민비(명성황후)는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궁중에 神堂(신당)을 짓고 巫堂(무당)과 중을 불러들여 고사와 다례를 행하였다. 모두 성리학의 나라가 오랫동안 祖宗之法(조종지법)으로 금지해 온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1893년 한 해에 도합 37회의 연회를 베풀었다. 왕의 誕日(탄일)을 축하하기 위한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 궁중의 後苑(후원)에서 임시로 내외의 賓客(빈객)을 맞아 왕실의 위엄과 은혜를 과시하기 위해 베푼 연회들이었다. 1894년 2월의 받자책의 한 구절은 220만 량의 거액을 내하하면서 ‘誕日熟設條(탄일숙설조)’라고 하였다. 왕의 생일을 축하하는 연회를 풍족하게 열 용도라는 뜻이다. 연회가 끝나면 빈객들을 대상으로 한 ‘賜饌(사찬)’이 이루어졌다. 일본에서 수입한 쟁반에 음식을 가득 담아 褓(보)에 싸서 지게꾼에 지워 빈객들의 집으로 운반하였다. 아울러 소주방, 생물방, 생과방에 소속된 熟手(숙수)들에게 工錢(공전)이 풍성하게 베풀어졌다. <표2>에서 보듯이 식료비만이 아니라 공업비와 임료가 크게 증가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1893년의 차하책에서 고사ㆍ다례와 연회에 관련된 식재료, 공업비, 임료를 모두 합하니 당년의 총지출 444만 량의 절반을 넘는 247만 량이나 되었다.

민비(명성황 후) 이전의 宮主(궁주)들이 이렇게 풍성한 연회를 베푼 적은 없었다. 大院君(대원군)의 통치와 개항 이후 몇 차례의 政變(정변)을 겪는 과정에서 왕실의 살림살이를 유교적 公의 명분으로 규제하던 정치세력들이 모두 소거되고 말았다. 그 나머지 왕실은 1884년 이후 千年王國(천년왕국)의 宴樂(연락)을 누렸다. 지극히 공적으로 취급되어 온 銅錢(동전)을 남발하여 연회로 낭비하는 일은 18세기의 근엄했던 朝廷(조정)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7) 그 좋았던 시절이 1894년의 淸日戰爭(청일전쟁)으로 끝이 났다. 왕실을 비호하던 淸帝國(청제국)이 조선에서 물러났다. 일본의 지원으로 성립한 內閣(내각)은 왕실을 立憲君主制(립헌군주제)의 굴레로 묶으려는 정치적 개혁을 추진하였다. 시련의 계절이 왕실을 기다리고 있었다.

 

명례궁 재정은 민비가 살아 활동한 1893-1894년이 절정기였다. 명성황후는 궁주로서 번다한 고사와 연회를 주관하였을 뿐 아니라 1903년에는 죽은 궁주로서 번다한 상식과 다례를 받아먹었다. 1903년의 지출 용도를 보면 식료비가 77% 의 비중을 차지하였다. 

 

명례궁 재정은 1894-1895년의 甲午更張(갑오경장)으로 적지 않은 타격을 받았다. 우선 無土(무토) 궁방전이 폐지되었다. 갑오경장은 宮房田(궁방전)과 衙門屯土(아문둔토)에 부여해 온 免稅(면세)의 특권을 폐지하였다(甲午陞總/갑오승총). 그에 따라 民有地(민유지)로서 해당 結稅(결세)를 궁방에 상납하던 무토 궁방전이 폐지되었다. 또한 무토가 폐지되는 과정에서 有土(유토)의 일부도 함께 폐지되었다. 유토 가운데는 무토와의 경계가 애매한 것들이 있었다. 사실상의 민유지로서 아주 낮은 수준의 賭地(도지)를 궁방에 바쳐 온 유토였다. 이런 부류의 유토를 갑오경장 당시에 第2種有土(제2종유토)라 하였다(李榮薰 1988: 135-6). 실은 갑오경장 이전에 이미 12처의 제2종유토가 명례궁의 수취 대상에서 이탈하였다. 18세기말 이래의 일이었다. 그 같은 추세의 연장에서 갑오경장으로 무토가 폐지되자 13처의 제2종유토가 더불어 폐지되었다. 전술하였듯이 18세기말 명례궁의 유토는 전국적으로 41처에 분포하였다. 그러했던 유토가 갑오경장 이후는 22처에 불과하게 되었다.(*8) 궁방전의 수입원으로서의 가치는 현저히 감소하였다.

갑오경장이 명례궁 재정에 가한 가장 심각한 타격은 當五錢(당오전)의 폐지였다. 그에 따라 1892 -1893년 총수입의 88.2%나 차지했던 王室(왕실)로부터의 內下(내하)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1895년에는 궁주인 閔妃(민비/명성황후)가 일본의 자객들에 의해 시해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乙未事變/을미사변). 명례궁은 가장 든든한 정치적 후원자를 상실하였다.

갑오경장으로 성립한 내각은 日本貨幣(일본화폐)와 동일 稱量(칭량)의 新式貨幣(신식화폐)를 발행하였다. 신식화폐 1元은 舊 常平通寶(구 상평통보) 5兩(양)에 해당하였다. 명례궁의 차하책은 1895년 정월부터 지출 수단을 구 상평통보에서 신식화폐 白銅貨(백동화)로 바꾸었다. 그 때부터 제반 물가가 일률적으로 1/5로 切下(절하)되었다. 그런데 화폐의 단위만큼은 이후에도 여전히 구래의 兩(양)을 고집하고 있었다. 명례궁의 받자책은 1895년 8월까지 구 상평통보로 수입을 기재하다가 이후 신식화폐로 바꾸었다. 여기서도 화폐의 단위는 여전히 구래의 兩(양)으로 표기되었다.

1894-1904년 명례궁의 수입과 지출의 추이이다. 1894년의 수입과 지출은 구 화폐로 이루어진 것이지만 비교의 편의를 위해 1/5로 절하하였다. 동기간 화폐의 단위는 받자책과 차하책에서 여전히 兩(양)이었지만 독자들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 元으로 표기하였다.

 

자료 : 『明禮宮捧上冊 (명례궁봉상책)』 『明禮宮上下冊 (명례궁상하책)』
(奎章閣圖書 19003-4, 41, 40, 39, 38, 37, 36, 35, 34, 33, 32)
(奎章閣圖書 19001-68, 73, 67, 57, 6, 64, 16, 61, 63, 9, 74)

명례궁의 수입은 갑오경장의 충격을 받아 1894년 69만여 元에서 1896년까지 10만여 원으로 크게 줄었다. 이후 1897년 大韓帝國(대한제국)의 성립을 맞아 1899년까지 48만여 원으로 회복되었으며 그 수준에서 1902년까지 정체하였다. 연후 1903-1904년에 148만여 원 이상으로 급증하였다. 이 같은 각 연도의 수입에 있어서 80% 또는 90% 이상은 內下(내하)였다. 1903년에 수입이 크게 증가한 것은 내하가 전년의 33만여 원에서 127만여 원으로 크게 증가하였기 때문이다. 받자책은 그 중의 100만 원에 대해 ‘未下條(미하조)’라고 용도를 밝혔다. 즉 각종 재화를 구입하고서도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것들을 상환할 목적이었다. 실제로 그림에서 보듯이 1894년 이후 지출은 언제나 수입을 초과하였다. 명례궁 재정은 1894년 이전에도 그랬지만 이후에도 변함없이 借入(차입)에 의해 꾸려졌다. 그것을 상환하기 위해 1903, 1904년에 대량의 내하가 이루어져 흑자재정으로 돌아섰지만, 누적되어 온 차입이 얼마나 상환되었는지는 의문이다. 1903년의 흑자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을 뿐 아니라 1904년에는 지출이 증가하여 거의 收支(수지) 균형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자료 : 『明禮宮捧上冊 (명례궁봉상책)』 (奎章閣圖書 19003-33, 32),
『明禮宮上下冊 (명례궁상하책)』 (奎章閣圖書 19001-9)

1903-1904년의 수지 상황을 보다 자세히 제시하면 <표3>과 같다. 兩(양)年의 평균 수입 151만여 원은 거의 대부분 내하로 이루어졌다. 내하의 비중이 무려 96.3%나 되었다. 2.0%의 供上은 宮內府(궁내부)로부터의 지급을 말하는데, 갑오승총으로 폐지된 무토의 수입을 보전하기 위해 1897년부터 행해진 지급과 역대 국왕의 肖像(초상)을 모신 眞殿(진전)에서의 享需(향수)를 충당하기 위한 지급 등을 말한다. 宮房田(궁방전)은 전술한대로 수입원으로서의 가치를 잃어 그 비중이 1.6%에 불과하였다.

1903년의 지출 용도를 보면 食料費(식료비)가 77.7%의 비중을 차지하였는데, 그 점에서 1893년과 거의 마찬가지이다. 그 원인을 살피면 景孝殿(경효전)에서 행해진 78회의 上食(상식)과 茶禮(차례)가 가장 중요하였다. 경효전은 1895년에 시해된 閔妃(민비/명성황후)의 魂殿(혼전)이다. 민비(명성황후)는 1893년에는 살아 있는 궁주로서 번다한 고사와 연회를 주관하였을 뿐 아니라 1903년에는 죽은 궁주로서 번다한 상식과 다례를 받아먹었다. 그 외에 1903년 한 해에 황제에게 進御床(진어상)이 28회나 바쳐졌다. 그 중의 9회에는 賜饌床(사찬상)까지 베풀어졌다. 1902년 나이 50에 耆老所(기로소)에 들어 노인 행세를 하기 시작한 황제는 尊體(존체)를 보전하기 위해 수시로 그의 내탕으로 하여금 珍羞盛饌(진수성찬)의 床(상)을 올리게 하였다. 게다가 1903년은 그의 즉위 40주년이었다. 정부는 성대한 연회를 준비하였으며, 명례궁도 그 비용의 일부를 부담하였다. 식재료에 이어 인건비가 16.6%의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 것은 명례궁에 속한 궁속들이 110명으로 늘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주지하듯이 대한제국기에 典圜局(전환국)이 다량의 백동화를 발행하여 심한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였다. 차하책이 전하는 각종 재화의 가격은 1894-1904년에 평균 3.4배나 상승하였다. 동기간의 연도별 物價指數(물가지수)를 작성하여(*9) 각 연도의 실질 수입과 지출을 제시하면 [그림5]와 같다. 여기서 보듯이 1904년의 실질 수입과 지출은 1894년의 절반에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요컨대 명례궁 재정은 閔妃(민비/명성황후)가 살아 활동한 1893-1894년이 絶頂期(절정기)였다. 갑오경장과 을미사변으로 명례궁은 큰 타격을 입었다. 이후에도 왕실의 내하가 이루어졌고 그 금액이 1903 -1904년에는 145만여 원의 거액에 달했지만 재정의 실질규모는 절정기의 절반에 불과하였다. 그 사이 公的規範(공적규범)에서 이탈한 황실의 살림살이가 虛禮(허례)와 浪費(낭비)의 극을 달렸다는 점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當五錢(당오전)에 이어 그 허례와 낭비를 지탱한 내하의 출처는 어디였던가.

[ 명성황후 신드롬 ]
‘명성황후’는 한-일 교과서 분쟁이 시작된 2001년 한국 문화계의 화두였다. 명성황후란 조선말 개혁에 극단적으로 저항하다가 조-일 혁명세력의 연합공격을 받고 살해당한 왕비를 말한다. 이 여자는 말하는 사람의 평가에 따라 민비, 민후, 명성황후 등으로 불리어지고 있는데 과거 한국에서는 “민후같은 년”이라고 하면 여성에게 가장 치욕스런 욕이었다고 한다. 그만큼 민비는 조선을 망친 왕비로서 인민들에게 경멸의 대상이었다. 그런 인물이 교과서 분쟁 이후 어느 날 갑자기 애국과 충절의 상징으로 떠오르면서 드라마, 뮤지컬, 연극, 영화 등 모든 문화장르에서 만고의 애국자로 추모되기 시작한 것이다.

민비를 구국의 순교자로 미화하려는 시도는 예전부터 간헐적으로 존재해 왔다. 일찍이 극우 성향의 한국 작가 이문열은 <여우사냥>이라는 연극을 만들어 민비의 명예회복(?)에 앞장서왔는데, 최근 이를 한국의 극단이 <명성황후 The Last Emperess>라는 이름의 뮤지컬로 만들었다. 이 뮤지컬은 국내에서도 성공했고 이어 일본과 미국, 영국 등에서 무대에 올려지기도 했다. 이 같은 움직임이 최근 들어 교과서 분쟁으로 빚어진 반일감정에 편승하여 TV의 사극, 연극공연, 소설, 음반, 영화와 뮤직비디오 등으로 확대되면서 반일감정의 상업화 현상이 나타난 것인데, 한국 언론은 이를 "명성황후 신드롬"이라 부르고 있다.

이 신드롬은 1년간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던 KBS 드라마 ‘명성황후’에 이어, 작년 말 성악가 조수미가 참여한 명성황후 OST 음반이 발매되면서 절정에 이르렀다. 조수미는 한국이 낳은 세계 정상의 성악가로서, 카라얀이 ‘신의 목소리’라고 절찬한 바 있는 국보급 가수이다. 정규 소프라노의 노래가 오랫동안 가요순위 1위를 차지하는 사태는 한국에서 사상 최초의 일이었다. 조수미의 뮤직비디오에서는 악독한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가 무사들을 사주하여 조선의 궁궐에 침입, 구국의 희망인 명성황후를 무참히 살해한다는 스토리가 잘 절제된 화면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 뮤직비디오와 OST 음반은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출시되기도 전 이미 30만개가 예약 판매되었으며, 출시 이후 단 3개월만에 수백만장이 판매되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한국의 발달된 인터넷망을 통해 이 뮤직비디오가 거의 모든 웹사이트에 게시되었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말부터 한국인이라면 접속하는 사이트마다 올라와 있는 명성황후 뮤직비디오를 싫더라도 수십번씩 보고들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지난 1990년대 중반 일본에서 X-Japan이 등장한 이래 한국의 신세대에게는 강력한 일본 문화의 바람이 불어닥친 적이 있었다. 이 유행은 X-Japan과 하루키, 재패니메이션을 알지 못하면 그 집단의 정서를 공유하지 못할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 그 결과 한국의 신세대들에게 반일감정보다는 친일감정이 더 보편적이라 할 정도로 일본에 대한 호의와 동경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었는데, 명성황후 신드롬은 이 같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어버린 것이다. 이로 인해 한국 최초의 인터넷 세대들은 10년 만에 친일에서 반일로 획기적인 정서의 전환을 경험하고 있다.

출처 : http://yeoksa.blog.fc2.com/blog-category-67.html

 












[총정리]

1. 민비는 사치와 향락을 부렸다. 그리고 민속신앙에 빠진 사이비 신도에 불과했다.

2. 민비의 행동은 지극히 세도정치에 입각한 행동이었다. 즉 자신의 권력만을 쫒는 인물이었다. 민비는 일본을 견제하기 위함이 아니라 단지 권력만을 위해 친러, 친청을 했을 뿐.

3. 민비찬양은 90년대에 등장하기 시작한 하나의 신드롬이다. 민비의 업적은 단지 일본자객에게 을미사변으로 시해당한것. 그 뿐이다. 민비를 이용해야지 반일 선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4. 흥선대원군의 업적은 최대한 절하하고 민비의 업적은 최대한 뻥튀기하여 이때까지 많은 한국의 어린이들과 학생들이 세뇌당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깨달아야 한다.

5. 조선을 좀먹게 만든 인물인 '민비'에 대해서는 구구절절이 찬양하면서 나라를 팔아먹었다는 '이완용'에 대해서는 구구절절이 비난하는 이 딜레마를 깰 수 있는 인간이 이 한국사회에서는 절실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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