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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라를 여행하는 위붕이를 위한 안내서 - 2일차(2)
- 관련게시물 : 아일라를 여행하는 위붕이를 위한 안내서 - 2일차(1)증류소 견학을 마치고 마침내, 어쩌면 내가 이번 아일라 투어에서 가장 기대해 마지않는 곳 앞에 도착하게 되었다. NO.1 VALUT, 즉 '1번 숙성고'는 증류소가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존재했던 저장고인데, 해수면보다 아래에 있어 위스키의 증발이 다른 곳보다 천천히 이루어지고 그에 따라 블랙 보모어 등 이름난 보모어의 제품들 역시 여기서 잠을 청했다고 한다.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의 후기를 보면 다들 서늘하고 춥다는 얘기를 하는데, 오히려 2월에 가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오히려 바깥보다 안정적인 느낌을 받았다. 마치 젓갈을 보관하는 광천 토굴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덕분에 괜스레 친숙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내부에는 오래된 연식답게 오크통이 많이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하나같이 찍혀있는 문장들은 실로 놀라웠다. 퀸 엘리자베스의 문장, 애스턴 마틴의 문장, 산토리 회장의 미즈나라 캐스크까지... 겉보기에는 통도 작으니 긴빠이라도 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잠시나마 해보았다. 이브의 말에 의하면 이곳에는 정말 오래된 개인 주문 오크통이 하나 존재하는데, 본인이 생각했을 때는 캐스크 주인의 가족들이 그 존재를 까먹거나 모르지 않을까 짐작한다고 얘기하였다. 아쉽게도 그 병입년도는 그녀가 끝내 기억을 하지 못해 알 수 없게 되었다. 한 50년 정도 지나면 소유권이 없지 않은가? 어쩌면 회사는 그때를 노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마침내 VALUT SECERT TOUR의 최종장, 시음 시간이다. 보모어에서 이역만리까지 온 손님들에게 대접하고자 고른 캐스크 3종을 꺼내 먹은 다음, 자신의 마음에 가장 크는 캐스크의 원액 100ml를 본인이 들고 갈 수 있는 것이다! 통에서 원액을 추출한 것은 라가불린에서도 했지만, 발린치(캐스크에서 내용물을 소량 뺄 때 사용하는 스포이트 방식의 긴 구리관)를 이용하여 통에서 꺼내어 먹는 것은 보모어에서가 처음이기에 더욱 그 의미가 깊게 느껴졌다. 우리는 버번캐스크 19년 핸드필과 세컨필 샤토 라그랑쥬 와인캐스크 1999년 통입, 그리고 올로로소 셰리캐스크 2001년 통입의 시음 기회를 제공받았는데, 세 제품 모두 오크통 널빤지를 보여줌으로써 그 특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세심함이 나의 보모어에 대한 선호도를 더욱 높여준 이유이기도 하다.보모어의 버번캐스크 핸드필은 그 자체로 탄성이 부르짖는 맛이었다. 처음에는 망고와 같은 열대과일이 팡팡 터지는 듯한 느낌이 들다가 시간이 지나가면서 과일들이 좀 더 세분화되지 시작하였다. 파파야 같은 진득한 느낌이 들기도 하다가 중반부에서는 키위의 청량한 느낌이 실로 농밀하게 밀려들어 왔다. 피트감은 그다지 존재하지 않은데 기저에는 분명 소금기가 있어 본인이 아일라 출신이라는 것을 입증해 주었다. 후반부에서는 사과의 진득한 맛이 혀에 감돌다가 이윽고 배의 향이 길게 여운을 남겨주었다.우와 이게 버번캐스크를 사용한 피트 위스키라니. 통상적으로는 강대강의 조화를 위해 쉐리피트 조합이 더욱 익숙한 편이다. 물론 독립병입 바틀에는 버번피트 조합이 존재하겠지만, 적어도 필자에게 있어 버번피트 조합은 강대강의 극치라고 할 수 있는 옥토모어라는 괴수의 경험 밖에 없다. 하지만 이게 아일라에서 만들어진 위스키라니! 아무리 여리여리한 보모어라지만 이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내가 시음하면서 계속해서 강조하며 적은 키워드는 이것이었다. '상쾌함', 이 한 단어면 족하다고 생각한다.다음은 보모어의 와인캐스크이다. 내가 알기로 보모어의 보르도 와인캐스크의 경우에는 샤토 라그랑쥬에서 전량 받아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샤토 라그랑쥬는 보르도 지역의 그랑 크뤼 3등급에 속해 있는 와이너리로, 1983년 산토리 사가 소유권을 보유하게 되었다. 이 와이너리의 와인은 만화 <신의 물방울>에서도 소개가 된 적이 있는데, 맛을 본 적이 있는 지인의 말에 의하면 딸기향이 엄청 피어오르나 후반부로 갈수록 점차 무너진다는 평을 내렸다. 사실 나는 일전 바에서 이 와인캐스크에서 숙성된 보모어 21년을 먹어본 적이 있었다. 그때 '훗날 산토리 보모어가 역사책에 오른다면, 수작이라고 언급될 바틀'이라는 평가를 적었다. 그렇다면 물을 타지 않은 그 원액은 어떨까. 의도치 않게 비교 시음을 할 수 있게 해 준 대구에 위치한 모 바 사장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이브의 말에 의하면 고숙성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종의 '방어막'이 있는데, 그것이 없어 유달리 이 캐스크의 경우에는 증발량이 많고 알코올 도수가 낮다고 한다. 향을 맡아보면 벌써 새콤달콤한데, 엄청 고급스럽게 만들어진 빨간약의 느낌이 느껴진다. 비싼 위스키 전문 모 유튜버가 달모어 50년을 먹고 "졸라 고급진 판콜, 부루펜 같은 맛"이라는 말을 남겼는데, 같은 궤에서 뜻하는 것일까? 참고로 필자는 텐텐 같은 인상이 더 느껴졌다. 알코올은 전혀 스치지 않는다. 맛에서는 포도 껍질의 탄닌감과 함께 조신한 피트 느낌, 부드러운 초콜릿의 느낌이 들었다. 후반부로 갈수록 갱지 같은 향이 났는데 특이하게도 잔향에서는 발포형 와인 같은 뉘앙스가 꽤나 길게 풍겨졌다. 전반적으로 생기 있으면서도 조신한 느낌이 드는데, 나는 이에 대해 대학 문화를 어느 정도 섭렵한 1학년 된 귀족가문 규수라는 평가를 남겼다.끝으로 보모어 올로로소 셰리 캐스크이다. 지금도 설왕설래 말이 많지만, 보모어와 셰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김성모식 표현으로 한다면 중국집과 오토바이와 같은 관계이다. 블랙보모어, 바이센티너리, 딥앤컴플렉스 등의 바틀들이 그 역사를 반증해 준다. 그렇기에 여전히 보모어의 고숙성 셰리 캐스크는 이름에 걸맞은 가격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보모어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셰리캐스크, 그것도 21세기의 싱글 캐스크는 어떤 맛일까?처음부터 들어오는 향은 무거운 느낌의 초콜렛이다. 이윽고 고소한 향이 나는 견과류가 꾹꾹 비집고 들어오는 듯한 느낌이 든다. 전반적인 향은 고풍스러우면서도 따뜻하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맛에서는 정말 화려하다는 표현 밖에 들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쉐리밤이 때려 들어오는데 여태껏 먹어본 보모어 중에서는 가장 진하다는 인상이 들었다. 후반부로 갈수록 뭔가 고급스러운 발사믹 식초가 연상되는데 아무래도 올로로소 쉐리캐스크의 영향이지 않나 싶다. 피니쉬는 청량감이 느껴지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특히 잔향에 짠 느낌이 황홀할 정도였다. 내가 이 한 잔의 드램에서 느낀 것은 중후한 느낌의 나인이었다. 사극 드라마를 보면 대비전에서 주상과 왕후의 곁을 보필하는 깐깐하고 품위 있는 궁녀. 왜 보모어에서 같은 동네에 있는 집사가 떠오르지 않고 이역만리 조선 땅의 여인이 떠오르는 걸까? 술에 대한 인상은 알다가도 모르는 일이다.오랜 고민 끝에, 필자는 올로로소 쉐리 캐스크를 택했다. 맛도 맛이고 보모어가 쉐리 위스키의 명가라는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이 위스키가 통입된 년도는 필자가 태어난 년도와 동일하기 때문이다. 물론 필자 역시 지인을 통해 2001년 통입한 라가불린 DE를 한 병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이건 솔직히 말이지, 경우가 달라도 너무 다르지 않은가?무라카미 하루키는 보모어에 대해 '보모어 위스키는 사람의 손에서 전해지는 온기가 느껴진다'는 유명한 표현을 한 바가 있다. 하지만 감히 나는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무라카미가 - 그 역시 생빈을 직접 뽑아 먹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없지만 - 보모어에서 자신과 동갑인 위스키를 만났을 때의 찌릿함을 느껴봤냐고. 이역만리에서 똑같은 연도에 태어나 세월을 거쳐 마침내 자신의 손으로 밝은 빛을 향해 만남의 손길을 내민 사람은 결코 많지 않을 것이다. 나는 보모어에서 뜨거운 동지애를 느꼈다. 싸지방이라는 매체를 통해 계속해서 접하고 갈망하다 마침내 그 미궁에서 조우했을 때의 순간, 약동하는 혈맥의 꿈틀거림을 느낄 수가 있다. 상봉의 만남을 가진 순례자들은 분명히 나와 같은 감정을 느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내가 이걸 언제 꺼내 먹을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결혼식? 자식 출산일? 회갑? 어쩌면 임종 직전일 지도 모른다. 허나 이것 하나만은 분명하다. 절대로 리셀하지 않고 죽기 전에는 까서 마실 것이라는 것을. 사실 술을 컬렉팅만 하고 다시 경매에 붙이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정말 혼이 나야 할 일이다. 인간이 먹으려고 만든 존재를 굳이 조명이 비치는 유리관에다가 전시를 해서 보관하고 싶은가? 그렇게 박제를 해서 언제 먹으려고 하는가, 지구 멸망하기 한 시간 전쯤에? 하긴 아노미 상태에서 한 잔하면 네로 같은 황제 놀음을 즐길 수 있기는 할 것 같다. 근데 그때는 일억짜리 보모어 부케나 구멍가게에서 산 참이슬 한 병이나 비슷한 맛이지 않을까나.핸드필을 담으며 이브와 매우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히 현재 산토리 휘하의 보모어에 대한 직원으로서의 의견을 물어보았는데, 그녀는 산토리 사가 보모어에게 권한을 주지 않으면서 관심은 그다지 쏟지 않으냐고 바로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하였다. 특히 자신은 어려서 잘 모르지만, 모리슨 체제에서 범지구적인 산토리로 바뀐 것에 대해서는 보모어 지역에 사는 주민들 역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지금도 익숙해졌다고 설명한다. 그녀는 최근 위스키 애호가들 사이에서 보모어의 품질이 갈수록 떨어져 가고 있다는 문제 제기에 대해서 자신은 가이드 직원이기에 잘 알지는 못하지만, 분명히 핵심 직원들 역시 그 문제에 대해서 인지를 한다고 설명하였다. 특히 쉐리 캐스크의 공급 문제에 대해서 보모어는 와인 캐스크를 가지고 타개해 나갈 것이며, 이를 위해 산토리와 계속해서 강구하고 있다고 귀띔해 주었다.보모어에서는 증류소를 다 돌고 나면 타지에서 온 이방인이 열심히 돌아다녔다는 보상으로 이렇게 맛돌이인 술들을 내어준다. 한국에서는 한 잔이 기본 몇 십만 원씩 하는 놈들이 이렇게나 숨풍숨풍 진열되어 있다. 솔직히 한국에서 먹었더라면 향과 맛이 어떤지에 대해서 진짜 몇 시간씩이나 죽치고 앉아 빙빙 글라스를 돌려 댔겠지만, 놀랍게도 내 노트에는 오직 23년 숙성한 포트 캐스크만이 민트 느낌의 초록색의 인상이 존재한다고만 쓰여 있을 뿐이다. 이걸 본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위붕이 점마 완전히 맛 갔다. 꽐라 되어 가지고 저 비싼 술들을 그냥 질탕 마시기만 했다고.다시 글을 적기 위해 노트와 사진을 대조하며 상고했을 때, 솔직히 나도 이놈 진짜 미쳤냐는 생각을 했었다. 저런 술들을 그냥 퍼먹기만 했다고? 하지만 글을 적으면 그때 당시의 기억과 감정을 천천히 톺아보니, 그게 실로 당연한 일이었다. 술의 제1법칙은 바로 즐기라고 하는 데에 있다. 향이나 맛이라는 요소는 부가적인, 다시 말하자면 쓸데없는 존재일 뿐이다. 어쩌면 우리는 자본주의의 압제로 인해 그 좋은 술의 제1법칙을 무시하고 단순히 교조적으로만 접근했는지 모른다. 이렇게 맛 좋고 비싼 술들을 언제 이처럼 헤실헤실 웃으며 뇌 뺀 상태로 즐겁고 기쁘게 마실 수 있겠는가? 그래도 이런 술을 이렇게 먹는 건 좀...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묻겠다. 당신은 정녕 이런 웃음을 가지고 위스키를 즐겨본 적이 있는가?위스키에 대한 지식이 엄청나게 높은 모 유튜버가 보모어에 대해서 '망가진 전 애인' 같다는 표현을 하였다. 모리슨 시절의 보모어가 너무 출중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산토리가 보모어를 인수하고 근 25년이 지난 이후 필자는 보모어를 접했다. 필자가 처음 입문한 피트 위스키로, 짠맛과 단향, 고소한 향이 모나지 않게 잡혀있는 그 밸런스로 인해 여전히 가장 좋아하는 증류소가 어디냐고 물어본다면 보모어를 꼽을 정도다.SNS를 보면 과거 전 애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남자 혹은 여자 측의 부정적인 과거를 상대에게 폭로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때 결혼까지 생각한 자신의 연인을 버리는 경우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사랑으로 품어내는 경우 역시 존재한다. 왜 갑자기 이런 경우가 연상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엇보다 과거와 계속 결부되는 사랑은 결코 지속될 수 없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원죄 없이 잉태된 인간은 존재하지 아니한다.보모어에서의 즐거운 견학과 시음을 마치고, 우리는 다음 증류소인 부나하벤으로 떠났다. 부나하벤(Bunnahabhain)은 게일어로 강의 하류라는 뜻을 지닌 증류소인데, 역설적이게도 이곳은 아일라에서 최상단에서 위치한 증류소인데, 이러한 지리적 특성 때문에 부나하벤 앞으로는 버스 정류장이 존재하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보모어는 아일라의 7시 방향에 있는데 부나하벤은 1시 방향에 있어, 필자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택시를 이용하였다.사실 군대에서 아일라에서의 일정표를 짤 때는 보모어에서 부나하벤까지 자전거를 이용하여 가려고 생각하였다. 1시간 10분 동안 주위 들과 강을 보면서 가면서 누이 좋고 매부 좋지 않냐는 나름대로의 환상적인 계획이었다. 그러나 숙소의 여주인은 필자의 계획을 듣고 나더러 마약했냐는 상큼한 답변을 건네었다. 안 그래도 2주 전에 독일에서 여행 온 젊은 여성이 자전거 타고 돌아다니다가 강풍으로 인해 팔이 아작 났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그런 강풍 따위는 얼마든지 견뎌낼 수 있지만, 고향에서 늘상 자식 걱정하는 모친을 생각하며 어쩔 수 없이 계획을 접었다.하늘이 흐리다가 별안간 맑아지더니 이윽고 아름다운 무지개가 창공을 가로질렀다. 택시 기사는 북쪽 지역에서는 드물게 보이는 일인데 이국에서 온 사람들이 보는 것은 행운이며, 당신네들에게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고 얘기했었다. 1년이 지난 후에야 하는 말이지만, 실제로 나에게는 크나큰 행운이 찾아보게 되었긴 하다.+) 근처에 아드나호 증류소도 있는데 거기는 왜 가지 않았냐고 질문하시는 분들이 많아 추가적인 설명을 보충하도록 한다. 사실 나 역시 아드나호를 부나하벤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난 다음으로 계획 일정을 잡았었다. 그러나 별안간 첫째 날 루프트한자의 파업과 함께, 아드나호의 증류소 투어 불가 통보가 날아왔다. 증류소 비지터 센터 재개장으로 인해 문을 닫는다는 것이 그 이유다. 만든 지 1년도 안 된 증류소가 갑자기 비지터 센터 재개장? 더러워서 안 간다고 했고 그 해 5월 아드나호의 첫 릴리즈가 출시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밉지라도 않지, 치사해서 안 먹고 만다.그렇게 도착한 부나하벤 증류소. 간혹 다니는 바의 주인장의 말에 따르면, 부나하벤이나 글렌킨치를 주문하는 손님의 경우 긴장을 한다고 한다. 그 속에 있는 맛을 캐치하기 쉽지 않기에 '어 임마 뭐고?'하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부나하벤에 대해 저녁에 편하게 먹는 위스키라는 언급을 본인의 저서에서 남긴 바 있다. 필자의 경우에는 외강내유의 위스키라고 생각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힘깨나 쓰게 생긴 선장이 턱 하니 선두에 서 있고 칠흑의 검은 병에 붉은 씰이 둘러진, 어지간 사람들은 가라!라고 외치는 강렬한 인상의 위스키. 그러나 속에는 피트를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짠기가 돌며 달달하고 쫀쫀한, 그야말로 단짠단짝의 정석. 마술사들이 사용하는 암막 속의 요술상자가 연상되는 그러한 증류소이다.보모어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부나하벤에서도 증류소 투어 후 스근하게 시음까지 진행을 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유감스럽게도 부나하벤의 증류소 투어는 타 증류소에 비해 그 배차 간격이 많지 않다. 하긴, 사람들을 불러 모을 생각이었다면 애저녁에 포트 아스케이크를 넘어 자기네 증류소 앞에다가 버스 정류장을 설치해 두었겠지. 나름대로 낭만 있는 곤조인 셈이다.부나하벤의 NO.1 저장고라고 할 수 있는 Warehouse 9에서 숙성된 캐스크를 꺼내먹는 활동을 진행하는 사람은 놀랍게도 콜린 씨다. 아일라를 온 첫째 날 밤, 자전거로의 모험을 포기하고 택시 예약을 위해 여러 업체들에 연락을 돌렸었는데 공교롭게도 그중 한 사람이 이 사람이었다. 사실 나는 원래 콜린 씨에게 부나하벤에서 보모어로 돌아가기로 약속을 했는데 동행하는 파트너가 생기고 계획의 수정을 위해 당일 예약을 취소하였다. 이런 곳에서 만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나 너님 암'이라고 얘기를 들었을 때 야박하게 굴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하였다. 괜스레 지금 봐도 그의 안질이 심상치 않다.웨어하우스 NO.9은 보모어의 그곳보다는 밝은 전등이 설치되어 있지만, 단층이 매우 낮고 김이 서릴 정도로 한기가 돌았다. 그리고 다른 위스키 증류소의 경우 오크통 옆면에 낙인을 찍거나 색을 칠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의 경우 단지 라벨만 붙여놔 다소 밋밋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런 밋밋한 증류소의 외관, 그렇다면 맛은 어떨까?이번 투어에서 진행되는 웨어하우스 NO.9 투어의 구성 요소는 다음과 같다. 1) 2007년 모스카텔 와인캐스크 숙성 53.9%, 2) 2014년 올로로소 쉐리 캐스크 60.1%, 3) 2004년 페드로 히메네즈 캐스크 53.3%, 4) 2011년 모인 꼬냑 캐스크 59.8%. 위갤에 상주하는 위붕이면 다 알겠지만, 모인이 무엇이냐고 묻는 분들도 분명 계실 것이다. 모인(Moine)은 게일어로 피트를 뜻하는 말인데, 피트 처리를 하지 않는 기존의 부나하벤과는 달리 이 제품은 초창기, 그러니까 19세기 부나하벤의 감성을 살려 제작된 것이다.우선 모스카텔부터 논해보도록 하자. 모스카텔의 경우 보통 디저트 와인을 만드는 것답게 밝고(brightly!) 하얀 꽃의 인상이 느껴졌다. 맛에서는 부나하벤스럽게 짠기와 캬라멜이 공존하였는데, 끝맛에서 미드스러운 뉘앙스를 받았다. 정말 정석적이게도 맛있는, 범생이 같은 위스키였다. 다음부터는 이상하게도 사진을 확인하지 못했는데, 추워서 못 찍었는지 아니면 술맛이 기막혀서인지, 꽐라가 되서인지는 알 수 없다.올로로소 캐스크의 경우 1,500 파운드를 호가하는데, 쉐리는 강하지만 짠맛도 동반하여 든든하게 동반한다고 적혀 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동반한다는 것을 두 번이나 강조해서 적은 것을 보면 분명 그 조화가 대단해서일 것 이다. 또한 플로럴한, 상쾌한 쉐리의 느낌이 퍼진다고 했는데 그래서 후술하겠지만 쉐리 캐스크를 한 병 사가지 않았나 싶다.이상하게도 페드로 히메네즈 캐스크는 전혀 서술되어 있지 않다. 어지간히도 쓸데없는 것까지 써놓은 이 노트에서 가장 중요한 술맛이 작성되어 있지 않은 것은 아직까지도 가장 큰 미스테리로 남겨져 있다. 어지간히 맛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말이 안 나올 정도로 맛있어서 그랬던 것일까? 이 술에 대한 정보는-최소한 나의 식견으로 본 상황에서는-로스트 미디어로 남게 되었다.끝으로 모인 꼬냑 캐스크에 대한 평가다. 아무리 내가 글씨를 개떡같이 쓴다고 하더라도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고, 그래도 적은 글씨를 한 10초 정도 보고 있으면 뭐라고 적었는지 해독할 수 있는데 이건 도저히 못 하겠다. 영화 <황산벌>의 암호 해독가의 심정이다. 죽어도 못 하겠심더. 이래서 승정원일기가 완역되는데 몇 십 년이나 걸리는 것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도 악필이라서 웬만한 글씨를 알아보겠다는 분이 계신다면 꼭 연락을 주시길 바란다.후반부에 들어 정신 차린 나는 콜린에게 조금 더 줄 수 있냐고 물었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줄 수 없다고 했다. 어쩐지 눈빛이 싸하다고 했더니 이럴 줄 알았다. 이래서 세계사에서 나오는 사건의 절반은 영국에서 발생한다고 하는 거지, 에잉. 그나마 내 잔에는 모스카텔 와인캐스크가 꽤나 남아있어 그것을 바이알에 옮겨 담았다. 마침내 사촌동생이 2007년생이라 성인된 기념으로 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년 봄 유혹을 참을 수 없었던 나는 결국 그걸 먹고야 말았다. 미안하다 동생아, 더 좋을 걸로 사줄게.비지터 센터로 돌아온 나는 웨어하우스의 기억을 더듬어 쉐리 캐스크 핸드필, 그중 아몬티야도 캐스크 제품을 구매했다. 얼마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웨어하우스 투어 덕분에 조금 할인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었다. 이 바틀은 아일라에서 가져온 전리품 중 최초로 완병한 것인데, 이 제품은 리뷰글을 남긴 바가 있으니 참고하면 좋을 듯 하다.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whiskey&no=1208460&page=1 BUNNAHABHAIN 1999 AMONTILLADO HANDStory:부나하벤만큼 19세기 위스키 업계에 만연한 낙관적 분위기를 대변해주는 증류소는 없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외진 곳에 증류소를 지을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없으니깐요. 블렌디드 위스키용 원액을 공급하기gall.dcinside.com부나하벤 증류소에서의 활동을 마치고 나오니 세상은 온통 파랗게 물들어 있다. 바다와 하늘이 합심하여 산을 푸른색으로 희롱한 것이다. 산도 끝끝내 웃음을 참지 못하고 하얀색 홍조를 띤다. 소설 <피를 마시는 새>에서는 술이 무엇인지 모르는 인물에게 한 도깨비가 이렇게 답변한다. "차가운 불입니다. 거기에 달을 담아 마시지요." 내 눈앞에 저 전경이 펼쳐지는 그 순간, 나는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다만 도깨비의 비범한 한 문장만이 떠오를 뿐이었다. 어쩌면 앞으로 내게 부나하벤의 맛은 차가운 불에 달을 블렌딩한 맛으로 남게 될지도 모른다.---------------------------------------------------------------번외.숙소로 돌아와 짐을 풀고 증류소 투어를 진행한 분과 외국인 남녀와 함께 즐거운 저녁 식사 자리를 가지게 되었다. 둘은 부부로 남자는 스코틀랜드 출신 영국인, 여자는 홍콩 출신 영국인이었는데 그들 덕분에 식사 후 정말 귀중한 바틀들을 맛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나 역시 보답으로 그들에게 한국의 전통주의 우수성과 다양성에 대해 홍보하였으며, 특히 외국인들이 봤을 때 가장 신기해할 만한 술인 이화주를 추천해 주었다. 하단에 있는 위스키들을 판매하는 곳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좀 더 길게 후술하도록 하겠다.저기 있는 술들 중 아직까지 내 기억에 남는 것은 브룩라디 발린치 1992 칼바도스 캐스크와 롱로우 2010년 루비 포트 캐스크 두 가지밖에 없는데, 전자의 경우 역대급 상쾌한 사과와 사이다의 향이 느껴졌고 후자의 경우 역대급 어렸을 때 먹던 빨간 시럽의 감기약의 맛이 진하게 느껴졌다. 왜 내가 아직까지 그 두 가지의 바틀만 기억하는지는 여러분들도 대충 짐작 갔으리라 생각한다.저녁 식사는 포트 앨런 쪽에 위치한 <SEA SALT>에서 진행하였다. 아일라를 순례하는 사람들은 지나가다 한 번쯤은 봤을 유명한 식당인데, 실제로 맛도 제법 괜찮은 편이다. 영국에 왔으면 영국이 자랑하는 음식(?) 커리는 한 번 정도 먹어줘야 하지 않겠는가? 뿐만 아니라 인도 출신-확실치는 않다-웨이터가 상당히 위트 있게 음식을 추천하고 서빙해 주었다. 음식은 아니지만, 접객만큼은 그가 아일라에서 제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두 영국인 부부와 새벽 3~4시까지 있으며 위스키, 지리, 외교, 시사 등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들과 대화하면서 왜 한 번쯤은 외국, 특히 서방세계로 나가봐야 될지 알 것 같다고 느꼈다. 특히 홍콩계 영국인인 아내의 경우 초반에는 말이 없다가 점차 분위기가 풀어지면서 나와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누었는데, 특히 그녀는 한국인들의 소통 능력을 향상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녀는 홍콩에서 태어났지만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호주에서 성장했으며, 이후 영국으로 건너가 현재 재무 관련 직종에 종사한다고 하였다. 특히 자신이 성장하던 90년대 말까지만 하더라도 여전히 백호주의 정세가 강해 항상 위축 들어 생활했는데, 왜 동양의 문화, 특히 한국의 소프트 문화가 강해진 최근에도 한국인들은 90년대의 본인처럼 활동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그녀는 주장한다. 그녀는 한국인, 더 나아가 동양인들이 좀 더 당당하고 서양 사람들과 같이 좀 더 정력적으로 교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사실 나 역시 아일라를 활보하며 꽤나 소극적으로 행동했던 것 같다. 처음으로 구라파를 가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괜스레 어글리 코리안 소리 안 듣게 행동하자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 같다. 물론 나 역시 그녀의 말에 완전히 동의하기는 어렵지만, 그녀의 얘기는 꽤나 나에게 강심제로 작용되었다.추가적으로 스콧 베일리스라고 하는 그녀의 남편은 음악가인데, 뮤즈나 U2 등 유명 밴드와도 협연한 경력이 있다고 한다. 그는 현재 Ibibio Sound Machine이라는 밴드의 세션(?)을 맡고 있는데, 아프리카 민속 음악과 현대 음악이 가미된 다소 독특하고 컬트적인 음악이 특징이다. 필자는 Protection From Evil이라는 곡이 가장 인상 깊은데, 신선한 느낌의 음악을 원하는 분들에게 꼭 추천한다.
작성자 : 헤르메또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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