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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카드 25장

무제or철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1.02.06 23:4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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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은 추웠다. 초 겨울밤의 공기가 온 세상을 짓누르고 있었다. 여기저기 두터운 옷을 겹겹히 걸치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사람들은 몸을 잔뜩 움추리고, 하얀 입김을 내품으면서 분주히 걷고 있었다. 날씨가 많이 추운 것 같았다. 그러나 민호는 온도를 느끼지 못했다. 그 순간 민호를 둘려싸고 있는 공기는 뜨거웠다. 민호의 내면에서 솟구치는 환의와 감동, 기쁨과 희열이 주변의 찬 공기를 압도했다. 민호의 감각세포 하나 하나는 여전히 전율을 느끼고 있었다. 뜨거운 전율이었다. 그 뜨거운 전율은 승리의 순간에 도취된 자들만이 맛볼수 있는 쾌락이었고, 숨을 헐덕거리면서 한발 한발 오른 오랜 등정 끝에 산의 정상에 선 자만이 느낄수 있는 성취의 기쁨이었다. 밤 하늘에 송알송알 맺혀 있는 별들은 민호를 조명하기 위해서 존재하는것처럼 보였고, 스쳐지나가는 뭇 사람들의 웃음소리는 민호에게 선사는 축복의 메세지처럼 들렸다. 한 동안 민호는 실없는 웃으면서 걸었다.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억지로 참아보았지만, 자동반사적으로 삐씩 하는 소리가 입에서 연거푸 튀어 나왔다. 바보 같았다. 주변 사람들이 쳐다보기도 했고, 수근거리는 소리도 들렸지만, 민호는 상관하지 않았다. 타인의 시선은 별로 대수롭지 않은 문제였다. 어차피 타인은 무생물과 다름이 없었다. 민호는 옆방에 사는 고시생 성씨가 왜 타인을 무생물처럼 취급했는지 이제야 이해할수 있을것 같았다. 민호는 속으로 생각했다.

\'어차피 인생에서 나락이나 정상이나 같다. 오직 그 극점에는 자기자신만 존재한다. 결국 인생이란 홀로 걸어가는 나그네길이다. 그 사실을 고시생 성씨는 나락에 떨어진 후에 발견한것이고, 나는 정상에 오른 후 발견한것이다..그 자명한 진실을 알기 위한 수단의 차이만 존재할뿐이다.\' 

이제 모든것이 끝났다고 민호는 생각했다. 태어날때부터 강압적으로 이어져온 지긋지긋한 학업도 끝났고, 취업을 위해 꿀벌처럼 돌아다녀야 했던 시간도 끝났고, 집안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던 시간도 끝났고, 치밀어 오르는 욕정을 꾹꾹 참고 보다 나은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 정진했던 고역같은 시간도 끝났다고 생각했다.

\'65억이라는 단순한 수치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세금을 빼고 계산해도 대략 50억이다. 이 50억을 은행에 보관만 해 두어도 연간 이자가 2억씩 꼬박 꼬박 나온다. 아무일도 안하고, 여행다니고, 취미활동만 하는 대가로 1년에 연봉이 2억이 떨어진다. 이 50억을 보다 생산적인 곳에 투자를 하면, 더 많은 연봉을 얻을수도 있다. 상가 건물 하나를 사면, 월세만 한달에 몇천이 떨어진다. 주식에 투자를 하면? 부동산을 사면? 사업을 하면? 그냥 작은 커피솦이라도 차리면? 그럴 필요까지도 없다. 그냥 은행에 안전하게 보관해 두는 대가가 무려 연봉 2억이다. 이것을 토대로 나는 보다 건설적인 삶을 꾸릴수 있고, 상상에만 머물려 있던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열수 있다. 나는 그 모든것을 쟁취 한것이다. 이로서 지금까지 매달렸던 삶의 과제는 끝났다. 이제 새로운 시작이다.\'
 
민호는 정상에 올랐다고 생각했다. 사실 민호는 저 65억만 있으면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온갖 노력과 열성을 투여하여 매달렸던 목표점은 의미가 없어졌다. 민호는 취업을 할 필요도 없고, 집안의 빛 때문에 머리를 쥐어 뜯으면서 고심할 필요도 없었다. 젊은 날의 모든 과업들은 반드시 수행해야하는 숙제가 아니라 단지 옵션에 불과했다. 반면에 1년 내도록 오락만 해도 되고, 1년 내도록 여자친구를 바꾸어 만나면서 연애만 해도 되고, 1년 내도록 여행만 다녀도 되고, 1년 내도록 동호회 활동만 해도 되고, 1년 내도록 취미 활동만 해도 되고, 1년 내도록 먹고 싶은 것 왕창 사 먹을수도 있는 것이었다. 연봉 2억! 그것이면 충분했다. 설사 민호가 오로지 쾌락과 무의미한 나날에 중독된 삶을 살아 가더라도 사람들은 폐인이라고 부르는일이 없을 것이다. 오히러 능력자라고 부를것이다. 모두가 부러운 눈빛으로 흠모하듯 쳐다볼것이다. 이 남자도 저 남자도, 이 여자도 저 여자도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질 수 없는 것을, 한 평생 꿈 꾸어오던것을, 언제나 동경하던 것을, 삶을 끝까지 보장해 주는 낭만적인 삶의 열쇠를.. 민호는 가지고 있었다. 26살의 나이에 65억을 가지고 있는 이 궁상맞은 청년은 할수 있는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전부가 선택항이었고, 옵션이었고, 또 다른 삶의 지평, 또 다른 열정의 시작점, 그리고 자신에게 던져진 또 다른 가능성을 쥐고, 무한히 펼쳐진 미래의 시작점에 서 있는 것이었다. 민호는 타인의 아무런 제약도, 타인의 아무런 간섭도, 아무런 물리력도, 아무런 압박도, 아무런 마찰도 없는 세상에 홀로 서 있는 기분이었다. 민호는 해방되었다. 민호는 드디어 승리했다. 민호는 쟁취했다.

본래 보통 사람들의 삶이란 최소한의 것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의 연속에 불과하다. 보통 사람들의 삶은 그렇다. 정해진 경로, 정해진 도식이 이끄는 삶의 형태를 만들어가는 것 일뿐이다. 정상적인 학업을 마치고, 정상적인 취업을 하고, 정상적인 결혼 하고, 정상적인 애를 낳고, 정상적인 아버지로써의 삶을 짊어지고, 살아가다가 죽는것이 보통 사람들에게 요구 되는 최소하는 삶의 덕목이다. 이 정상적인 경로에서 이탈하는 경우는 온갖 지탄과 비난의 시선을 감수해야한다. 정상적인 정신과 사고와 신체를 가진 사람이 이처럼 보통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최소한의 덕목을 완결짓지 못할 경우에는 무능력자가 되는것이다. 영원한 아웃사이더. 사회의 반항아. 늙은 오타구. 사이비 예술가. 패배자. 폐인. 부적응. 정신병. 피터팬. 이런 불명예의 가면을 뒤집어 쓴체 살아갈수 밖에 없는 것이 이탈자의 삶이고, 최소한의 과제를 완결짓지 못한 사람들의 그늘이다. 그리고 이 최소한의 것을 쟁취 하는 것은 결코 쉬운것이 아니다. 특히나 자아가 강한 사람들, 현실보다는 이상을 꿈꾸는 예술적 감수성이 뛰어난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을 다 포기한 대가로 얻을수 있는 보석같은 한 조각의 삶인것이다. 누구든지 평범해지기 쉬운것이 아니다. 예술적 감수성이 뛰어난 사람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모든 사람들은 평범. 즉 최소한 것을 쟁취 하기 위해서 투쟁을 하고 있다. 이것이 삶이고, 현실이다...그러나 돈이 많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연봉을 2억을 받는자는 아무런 노력과 투쟁이 없이도 그 최소한의 것이 완료된 상태일것이다. 그 사람들은 언제든지 평범해 질수 있지만, 혹은 그 평범을 유지하기 위해서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자신의 이상과 가치를 위해서 잠시 그 평범이라는 이름의 최소한의 것을 보류 한 체 보다 흥미롭고 재밌는 일에 매진하는것이 가능한 것이다. 민호가 고대 하던 예술같은 삶은 이렇게 시작되어 가고 있었다. 그렇다. 민호는 비가 없는 세상으로 인도 되었다. 울음이 없는 세계로 첫발을 내딛었다. 마치 꿈을 꾸듯이 말이다..그러나 순간 민호의 양쪽 두뇌를 강하게 가르는 번개같은 섬광이 스쳐지나갔다.

\'맞다. 이 복권은 정수의 것이다. 나는 이 로또 복권을 산 적도 없고, 번호를 직접 기입 하지도 않았다. 단지 식당에서 주운 이 종이 한장을 얼마나 신뢰할수 있을까?  뭔가 이상하다...분명 이상하다...이렇게 쉽게 로또가 당첨이 될리가 있을까? 단지 우연이라고 하기엔 뭔가 음모가 있는것 같다. 또한 정수가 자신의 복권을 잃어버린 사실을 알고 분실 신고나 도난 신고를 했다면? 누구한테 소유권이 있는것일까? 정수와 법정 공방까지 가기 싫다...아니다.. 정수는 그 정도로 치밀한 녀석이 아니다. 벌써 3주나 지난 로또 복권을 확인해 볼 위인이 절대 아니다. 기입한 번호도 분명 까먹었거나 직접 기입을 하지 않고 랜덤 번호를 받았을것이 분명하다. 소유권 문제는 그렇다고 쳐도, 1등 당첨이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이상하지 않는가? 설마 정수가 나에게 장난을 칠려고 이미 당첨된 번호를 교묘하게 조작해서, 복사된 거짓 복권을 식당에 일부로 떨었트렸을까???설마??\'

갑자기 한 겨울밤의 공기가 매우 춥게 느껴졌다. 민호는 온몸을 부스르르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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