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가격이 역대 최고치를 갱신했습니다.
2주간 가격이 14%가량 급등했는데, 이 기간만 놓고 봤을 때 변동성은 비트코인 저리가라할 수준입니다. 이 외에도 원자재가의 급변동 뉴스는 심심찮게 들려옵니다. 최근에는 카카오 가격이 기승을 부렸으며, 원유·천연가스 등 전통적인 에너지 자원은 말할 것도 없죠.
최근 구리가격 과열로 많은 사람들이 구리 수급 불균형에 주목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단기간 급등을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누군가 시장에 있는 구리를 싹 쓸어가거나 전쟁이라도 나서 구리광산이 폐광하는 게 아닌 이상 설명하기 힘듭니다. 구리가격을 급등시킨 범인이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는 한, 이번 급등에는 투기수요가 붙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2000년대 이후 파생상품시장 접근성 증가·상품 ETF가 도입됨에 따라 원자재의 금융화가 급속도로 이뤄집니다. 구리를 직접 채굴하거나 소비하지 않더라도 방구석에서 클릭 몇 번으로 구리를 사고 팔 수 있습니다.
원자재가 금융화된 것을 방증하는 자료로 원자재 파생상품 미결제약정 증가, 비상업포지션 증가 등이 있습니다. 이들은 각각 원자재
파생상품 시장의 성장, 그 중에서도 구리 이용과 관련 없는 시장 참여자 위주의 성장을 의미합니다. 그 결과 원자재의 투기적 수요가
늘어납니다.
원자재의 금융화는 원자재 가격 안정 및 헤지수단 제공이라는 본연의 목적과 반대로 변동성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생각해보면
나스닥지수와 구리가격이 같이 움직일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주가가 오른다고 구리 공급이 줄어들거나 수요가 증가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추세는 구리가격과 주가지수가 동행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동조화 현상은 비단 구리에서만 나타나는 문제는 아닙니다. 원자재 가격 전망은 기본적으로 수요공급 위주의 실물적 분석에서
시작합니다. 하지만 금융화 시대에서 실물적 분석은 달의 앞면만 보는 것과 같습니다. 원자재를 제대로 전망하려면 파생상품시장 분석이
필수입니다.
원자재 ETF/ETN의 기초자산은 선물옵션입니다. 특히 대부분이 선물을 이용합니다. 가장 기초적인 선물가격 모형인 보유비용모형을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서 보유비용은 크게 이자비용과 보관비용으로 구성됩니다. 이자비용은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선물매도자가 선물 대신 현물을 팔았다면 그만큼의 이자를 받을 수 있었으나, 현물을 담보로 선물을 팔면서 이 이자는 현물 매도에 대한 선물 매도의 기회비용이 됩니다. 다음으로 보관비용은 선물매도자가 만기까지 현물을 보유함으로서 발생하는 창고비용 등을 말합니다. 이 또한 현물을 넘겼으면 지불하지 않았을 비용이지만 선물계약에 따라 일정기간 현물을 보유하여 발생하는 비용이죠. 선물가격에는 이러한 비용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선물을 매수하면 실물 대신 권리를 보유하는 대신, 위와 같은 보유비용을 떠안게 됩니다.
이에 따라 상품선물은 기본적으로 콘탱고를 형성합니다. 만기가 길수록 보유비용이 더 커지고, 그만큼 선물가격도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원자재 상품은 장기투자상품이 아닙니다. 상품선물은 만기가 다가오면 현물가격으로 수렴합니다.
만기가 다가올 때 포지션을 유지하려면 차월물로 롤오버를 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보유비용이 0인 근월물을 청산하고 다시 보유비용이 (+)인 차월물을 매수합니다. 싸게 팔고 비싸게 다시 매수함으로서 보관비용을 떠안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롤오버비용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원자재 관련 상품은 몇 달씩 보유할만한 상품이 아닙니다. 원자재 ETF를 장투했다간 보유비용을 떠안으며 계좌가 녹아내릴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성질은 원자재를 단기 트레이딩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함을 보여줍니다.
원자재 보관비용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는 2020년에 있었던 원유선물 마이너스 사태입니다.
당시 코로나로 인해 석유 수요가 급감했습니다. CME 원유선물은 실물인수도 상품이므로, 선물 매수자들은 차월물로 롤오버하지 못하면
원유 실물을 인도받으면서 보관비용을 그대로 떠안아야 합니다. 이 당시 있었던 원유선물 마이너스는, 선물 매도인이 돈을 주면서까지
원유를 판 대신 보관비용을 선물 매수인에게 떠넘긴 것입니다. 원유 현물이 이 여파에 휩쓸려 가격이 8불 밑으로 곤두박질칩니다.
여기서 재밌는 점은 차월물이었던 6월물 선물가격은 20불대에서 비교적 안정적이었다는 것입니다. 원유선물 마이너스 사태는 실물시장의 수요공급을 떠나 파생상품시장의 쇼크가 현물가격에 영향을 준 사례입니다. 원래 파생상품시장은 현물시장에 영향 받아 움직이지만, 이처럼 파생시장이 현물시장에 영향을 주는 것을 웩더독 현상이라고 합니다.
원자재 파생상품 본연의 목적은 위험헤지입니다. 원자재 생산자는 기본적으로 현물보유-선물매도의 매도헤지 전략을 수행합니다. 가격급락위험을 회피하는 것이죠. 이를 중간재기업·시장조성자·비상업포지션 등이 받아줍니다. CFTC에서는 이들의 포지션을 Producer(상업거래자)/Swap Dealers(시장조성자)/Managed Money(비상업투자자)/Other Reportables(기타)로 구분하여 매주 제공합니다. 이는 지수선물과 유사하게 분석합니다. Producer가 대개 순매도포지션이며, 이를 받아주는 것은 시장조성자인 Swap Dealers입니다. 나머지 부분은 투기거래자인 Managed Money/Other Dealers입니다. 수급주체 간 균형이 가격을 결정하는 것이죠. 선물시장 투자자별 포지션분석은 아주 중요합니다.
수급 분석이 주요하게 작용한 사례는 2022년 3월의 LME 니켈가격 급등 사태입니다. 톤당 2만불 하던 니켈이 이틀 새에 10만불을 찍고 거래가 정지되기까지 이릅니다.
당시 니켈가격이 과도하게 상승한 이유는 중국의 청산그룹이 과도하게 쳐놓은 선물매도 때문으로 드러났습니다. 청산그룹의 예상과 달리니켈 재고 감소, 배터리향 수요 증가 등으로 니켈 가격이 상승세를 지속하며 숏커버링이 시작되고, 투기꾼들이 이를 노려 선물을 동시에 매수하면서 전례없는 니켈가격 폭등 사태를 맞습니다. 이때 청산그룹은 파산 위기에까지 내몰렸습니다.
현재 구리가격 급등도 이와 유사한 움직임이 포착됩니다. 먼저 상업거래자(Producer)의 숏포지션이 3월 이후 눈에 띄게 증가합니다.
약 3주 후 비상업거래자(Managed Money)의 롱포지션 또한 크게 증가합니다. 이들이 무엇을 노리는지는 좀 더 조사해봐야 할 일입니다.
Swap Dealers(시장조성자)는 순으로는 여전히 롱을 유지하고 있지만, 역시 4월 이후 숏포지션이 눈에 띄게 증가했습니다.
원자재 생산자가 매도헤지를 한다면 시장조성자는 매수헤지를 합니다. 선물시장에서 선물매도를 받아준 후 그대로 포지션을 유지하면 가격하락위험에 노출됩니다. 따라서 현물시장에 공매도를 쳐 이를 헤지합니다. 이는 코스피에서 프로그램매매와 비슷합니다. 현재 Swap Dealer의 숏포지션이 증가했다는 것은 현물시장의 공매도가 줄어들거나 매수가 늘어난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구리 현물의 가격 상승을 유발하죠. 현재 구리의 가격 상승은 실물시장의 수급 타이트의 영향도 분명히 있지만, 그 이면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파생시장을 분석해야 합니다.
원자재의 금융화는 원래 의도와 달리 가격 동인을 새로 더한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이 때문에 원자재가격 변동성이 오히려 증가했으며, 분석해야 할 층위가 더 높아졌습니다. 한편 다양한 투자기회 제공, 투자전략 다변화 및 참여자 확대 등 긍정적인 측면도 있긴 합니다.
금융화의 기저에 깔린 사상은 합리성 가정, 그리고 Ceteris Paribus입니다. 가격변동 헤지를 위해 효율적인 금융시장을 이용하고, 큰 충격이 없는 한 이러한 가격은 정상 수준에서 크게 변동하지 않으리란 것이죠. 혹시 충격이 발생해도 합리적인 투자자들이 즉각적으로 정보를 시장에 반영하여 가장 효율적인 시장 균형에서 거래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에 맞춘 각종 여러 가격 모델링 기법들이 개발됩니다.
하지만 원자재 시장에서 나타나는 가격 급등락 사태와 웩더독 현상은 인간에 대한 합리성 가정, 효율적시장가설에 의구심을
불러일으킵니다. 더군다나 Ceteris Paribus는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전제인지조차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많은 경제 분석이
외생적인 충격이 없는 상태를 가정하고 이뤄지지만, 세상에는 대체 정상인 상태가 무엇인지 알기 힘들 정도로 외생적 충격이 많은 듯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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