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뭔가 거창한 제목이긴 한데 알맹이는 별로 없을듯.
'저는 악령spirit이... 악마daemon가... 재벼 주발Xavyer Jubal을 사로잡고 그의 육신을 괴물처럼 변화시키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악마가 주발의 영혼을 조종하여 주발로 하여금 우리를 공격하게 만드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니, 그게 아닐세.' 호루스가 말했다.
'네?'
호루스가 미소지었다. '자네가 본 게 무엇인지 설명해주겠네, 가비엘Garviel. 오직 몇 명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지. 황제께서는 그 누구보다도 더 많이 알고 계시지만 말이야. 이건 비밀이네, 가비엘. 우리가 감추고 있는 다른 어떤 비밀보다 더 큰 비밀이지. 비밀을 지킬 수 있겠나? 들으면 자네 마음도 많이 가라앉을 듯 하네만, 대신 비밀은 지켜주어야만 하네.'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로켄이 말했다.
워마스터가 다시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워프warp였네, 가비엘.'
'워프...라고요?'
'그렇지. 워프의 힘과 워프가 내포한 혼돈chaos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가. 워프가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도 알고, 워프 안 어둠의 차원 속에 도사리고 있는 끔찍한 것들에 대해서도 알고 있지. 자네도 본 적이 있을 텐데. 에리다스Erridas에서, 사이링스Syrinx에서, 타실론Tassilon의 그 피로 물든 바닷가에서도. 워프 안에는 일견 악마로 쉬이 착각할 만한 것들이 도사리고 있다네.'
'프라이마크시여, 저는...' 로켄이 입을 열었다. '저도 워프에 대해서는 조금 배웠습니다. 워프 속의 공포와도 얼마든지 맞상대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천계Empyrean의 대문으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추악한 것들과도 싸운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네, 워프가 인간의 몸 속으로 스며들어가 사람을 변화시키기도 하지요. 허나 그렇게 되는 건 사이커들 뿐이었습니다. 사이커들이야 그 위험을 언제나 감수해야 하지만, 아스타티스가 변하는 것은...'
'워프의 정확한 성질에 대해서 전부 다 알고 있는가, 가비엘?' 호루스가 물었다. 그는 잔을 들어올리고는 와인의 색을 감평했다.
'아닙니다, 프라이마크시여. 그렇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 또한 다 알지 못한다네, 나의 아드님. 황제께서도 그렇고. 전부를 다 알고 계시는 건 아니야. 무지를 인정하자니 가슴이 아프지만, 그게 사실이지. 사실과 진실은 우리가 그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바 아닌가. 워프는 우리에게 필수적인 도구지. 통신수단이자 이동수단으로써. 워프 없이는 별들 사이를 잇는 지름길도 없고, 인류제국도 성립할 수 없네. 우리는 워프를 사용하고, 워프를 활용하지만, 워프를 완전히 통제하지는 못하지. 워프는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동물이라고 할 수 있네. 우리의 존재를 용납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길들이려는 것은 허용하지 않지. 워프 안에는 힘power이 있다네. 근본적인 힘이fundamental power. 선하지도 않고, 악하지도 않지만, 시원적이면서도 우리에게 있어서 혐오스러운 힘이. 워프는 우리가 위험을 무릅쓰고 사용하는 도구지.'
워마스터는 와인을 전부 들이키고 술잔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악령, 악마. 이런 단어 속에는 그것이 비인간적인 힘을, 사악한 지성과 악의를 가진 존재라는 뜻을 슬며시 비추고 있다네. 어마어마한 책모와 술수를 꾸미는 악의 전형archetype이라고 말이야. 그런 단어는 신이, 아니면 신들이, 사물 뒤에서 모든 것을 조종하고 있다는 뜻을 내비치네. 우리가 크나큰 고통을 겪으면서도 과학의 빛으로 떨쳐내려고 한 미신을 암시한단 말이야. 마법을, 구현화된 악을 암시하는 거지.'
그가 로켄을 바라보았다. '악령, 악마, 초자연체supernatural. 마법. 우리가 더 이상 쓰이지 않게 만든 말들이지. 그 안에 내포된 의미가 좋지 않으니까 말이야. 그래도 사실 이건 그저 단어일 뿐이야. 오늘 본 건... 악령이라고 부르게. 악마라고 불러도 좋겠지. 썩 어울리는 말이잖나. 그런 말을 쓴다고 사람이 과학적으로 풀어낸 우주의 진실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고. 미신 따위가 아니라, 우리가 사는 이 세속적인 우주에도 악마가 있을 수 있다네, 가비엘. 단어가 어떻게 사용하는지 잘 유의한다면 말이야.
'워프 말씀이십니까?'
'워프 말이지. 옛날 말을 써도 충분히 잘 표현할 수 있는데 구지 새 말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겠나? 우리는 "외계인alien"이나 "이종족xenos"란 단어를 우주 곳곳에서 마주치게 되는 인간 아닌 쓰레기들을 나타내는데 쓰지. 워프의 피조물들 또한 그런 "외계인"일 뿐이네. 우리가 보통 이해하는 생물체는 아니지만 말이야. 그것들은 유기체가 아닐세. 그것들은 초차원적인 존재이고, 우리가 볼 때는 마법같아 보이는 방식으로 우리 현실세계에 영향을 미치지. 초자연체, 라고 부를 수도 있을 걸세. 그러니 옛 말들을 가져다 붙혀보세... 악마, 악령, 빙의자possessors, 체인질링changelings.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그저 신 따위는 없다는 것일세. 어둠 속에 말일세. 거대한 악마들도 없고 악의의 화신도 없어. 이 우주에 오직 사악할 뿐인 초월적인 존재 따위는 존재하지 않아. 그런 신파극이 있기엔 우주는 너무도 크고 척박한 곳이지. 그저 우리를 적대시하는 인간 아닌 것들이 있을 뿐이네. 우리가 창조된 이유, 우리가 싸워 쳐부술 것들이. 옼스, 자이콘Gykon. 투쉪타Tushepta. 케이레키드Keylekid. 엘다. 조캐로Jokaero... 그리고 워프의 피조물들, 본질적으로 너무나 이질적이기에 우리에게 정말 기이해보이는 능력을 보이는 그 어느 족속보다 낯선 것들도.'
로켄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램프로 밝혀진 방 안을 둘러보고는 밖에서 들려오는 산을 스치는 바람의 신음소리를 들었다.
'프라이마크시여, 사이커들이 워프에 먹히는 것은 본 적 있습니다.' 그가 말했다. '사이커들이 오염에 노출되어 육신이 변이되고 부풀어오르는 것은 본 적이 있지만, 아직 한 번도 보통 사람이 워프에 먹히는 것은 본 적이 없습니다. 아스타티스가 그렇게 변하는 것도 본 적이 없고요.'
'가능한 일일세.' 호루스가 대답했다. 그가 활짝 웃었다. '놀랐나? 미안하네. 그저 바깥으로 발설하지 않을 뿐이야. 워프는 그 무엇에라도 침투할 수 있네. 그러자고 한다면 말이지. 오늘은 그저 워프의 힘이 더 잘 드러났을 뿐이고. 이 산맥은 이곳 설화에 나오는 것처럼 귀신들린 장소같은게 아닐세. 워프와 현실간의 장벽이 얇을 뿐이지. 그저 그것 때문에 그런 설화가 만들어진 거겠지. 인간은 언제나 워프를 다룰 방법을 찾아왔고, 자네들이 싸운 자들은 그저 그런 방법을 썼을 뿐이라네. 오늘 그자들은 자네들에게 워프를 풀어놓은 거지. 용감한 주발이 거기에 당한 거고.'
'왜 주발이었을까요?'
'주발이 아닐 이유는 또 뭔가? 그는 자네에게 화가 나 있었고, 그 화 때문에 워프가 파고들 취약점이 생긴 거지. 워프는 그러한 마음 속 틈새를 찾아 들어가기를 노린다네. 반군 놈들은 워프를 뒤집어 씌워서 자네들을 수십 명쯤 변이시키려 그랬던 것 같지만, 제 10중대는 그리 나약하지 않았어. 사무스Samus는 그저 주발의 육신에 잠깐 몸을 매였던 혼돈의 영역Chaotic realm의 목소리에 지나지 않았다네. 잘 대처했어. 훨씬 심각한 사태가 생겼을 수도 있었는데.'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호루스가 다시 웃었다. 그 웃음을 보면서 로켄은 갑자기 온기가 마음 속에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잉 매 싱이, 아스트로패쓰들의 여주인이, 자네들이 내려간 직후 이 지역에서 워프가 빠르게 급상승했다고 보고했네. 수치화된 데이터 또한 확실했고. 이 지역 주민들이 워프에 대한 제한된 지식으로 - 아마 자기들은 마법이라고 생각하는 방법으로 - 천계의 공포를 자네들 위에 쏟아부은 걸세.'
'그럼 저희들에게 워프에 대한 지식이 얼마 주어지지 않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로켄이 호루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워프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 자체가 얼마 없기 때문이네.' 워마스터가 대답했다. '내가 왜 워마스터인지 아는가, 아드님?'
'그 자리에 가장 합당한 분이기 때문이지 않습니까?'
호루스가 웃으면서 와인을 다시 한 잔 따랐다. '내가 워마스터인 건, 가비엘, 황제께서는 바쁘시기 때문이네. 대성전에 질리셔서 테라로 돌아가신 게 아니야. 더 중요한 일을 하셔야 하기 때문에 테라로 돌아가신 거지.'
'대성전보다 더 중요한 일이라니요?'
호루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분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셨어. 울라노어Ullanor 이후로는, 이제 대성전은 프라이마크들에게 맡기고 더 숭고한 일에 몰두할 때가 되었다 믿으신 거지.'
'그건 대체...?' 로켄은 대답을 기다렸다. 무언가 초월적인 진리를 듣게 되는 것을 기대하면서.
그러나 워마스터의 대답은 그의 기대와 달랐다. '나도 모르네. 그분께서는 내게 말씀해주지 않았어. 아무에게도 말씀해주시지 않았지.'
호루스가 말을 멈췄다. 영겁 같은 시간이 흐르며, 바람만이 처소의 벽에 휘몰아쳤다. '나에게조차.' 호루스가 속삭였다. 로켄은 프라이마크의 말에서 크나큰 마음의 상처를, 그도, 그조차도 아버지의 비밀을 알기에 합당하지 못했다는 사실로 꺾여버린 자부심을 느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워마스터는 언제 기분이 어두웠냐는 듯 미소지으며 로켄을 다시 바라보았다. '필시 내게 짐을 지우고 싶지 않으셨던 거지.' 그가 활기차게 말했다. '허나 나도 바보는 아니야. 추측은 해 볼 수 있네. 내 아까 말했듯, 워프 없이는 제국도 존재할 수 없지. 우리는 워프를 사용해야만 하지만, 워프에 대해서는 너무도 알지 못하고 있어. 나는 내가 워마스터가 된 이유가 황제께서 워프의 비밀을 밝혀내는 데 집중하시기 때문이라 믿네. 그분은 당신의 위대한 정신을 인류를 위해 워프를 완전히 정복하는 데 기울이고 계신 걸세. 비물질계Immaterium을 완전히 완벽히 이해하지 않고서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행성을 정복하든 결국 몰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신 거야.'
쪼잔한 프라이마크의 소갈머리도 언뜻 드러나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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