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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BA와 DS 시절의 포켓몬스터 음악 변천사를 알아보자
포켓몬스터 시리즈가 구축해 온 방대한 세계관 속에서, ‘소리’는 단순한 배경음악 이상의 위상을 차지한다. 투박한 도트 그래픽이 정교한 3D 모델링으로 진화하는 동안, 유저들의 청각적 경험 역시 전자음에서 풀 오케스트라 사운드로의 격변을 겪었다. 하지만 거치형 콘솔과 달리 배터리 효율과 휴대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했던 닌텐도의 휴대용 게임기 라인업에서, 사운드의 발전사는 언제나 ‘하드웨어적 제약과의 싸움’이라는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제한된 용량과 채널 수, 낮은 샘플링 레이트, 그리고 압축 기술의 한계. 이러한 물리적 결핍 속에서 작곡가들은 어떻게 빈약한 파형을 풍성한 공간감으로 탈바꿈시키고, 시리즈를 관통하는 상징적인 멜로디를 각인시켰을까? 단순히 ‘좋은 곡’을 넘어, 기계가 낼 수 있는 소리의 극한을 시험했던 그들의 노력은 때로는 독특한 노이즈로, 때로는 기이할 정도로 정교한 미디(MIDI) 테크닉으로 발현되어 포켓몬스터만의 독보적인 사운드 아이덴티티를 형성했다.이 글에서는 게임보이 어드밴스(GBA)의 루비·사파이어부터 닌텐도 DS의 전성기를 이끈 블랙·화이트, 그리고 최근의 리메이크작에 이르기까지, 포켓몬스터 시리즈의 사운드 시스템이 겪어온 기술적 변천사를 되짚어본다. PSG와 PCM이 혼재하던 과도기적 실험부터 미디 시퀀싱의 정점에 이르기까지, 한계를 넘어 자신들만의 사운드스케이프를 완성해 낸 게임프리크 사운드 팀의 엔지니어링 미학을 분석하고자 한다.루비·사파이어, 파이어레드·리프그린게임보이 어드밴스(GBA) 플랫폼으로 발매된 포켓몬스터 루비·사파이어는 시리즈의 사운드 역사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다. 게임보이 시절의 PSG(Programmable Sound Generator) 음원, 즉 8비트 사운드에서 벗어나 PCM(Pulse Code Modulation) 음원이 본격적으로 도입된 시기이기 때문이다. 다만 당시 하드웨어 성능의 한계로 인해 현대의 게임들처럼 사전에 완전히 시퀀싱된 오디오 파일을 스트리밍하는 방식은 불가능했다. 대신 미디(MIDI)와 유사한 악보 데이터를 기반으로 실시간으로 샘플을 호출하여 재생하는 방식이 채택되었다.엄밀히 말해 이 시기의 사운드 시스템은 완전한 PCM이라기보다는 PCM과 PSG가 혼합된 과도기적 형태를 띠고 있다. PCM 채널은 스테레오 구성을 위해 좌, 우 각각 한 개가 배정되어 있으며 소프트웨어적으로 믹싱해 여러 채널을 구현하는 형태인데 시스템상 효과음 및 기타 여유 채널을 제외하고 음악 재생에 가용할 수 있는 PCM 채널은 총 6개에 불과했다. 한 채널당 하나의 음(Note)만을 재생할 수 있는 구조에서 동시 발음수 6음은 일반적인 작곡, 특히 피아노 반주 위에 베이스와 퍼커션, 멜로디 라인을 얹는 구성을 소화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치다. 이러한 물리적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작곡가들은 게임보이 하위 호환을 위해 탑재된 PSG 채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전략을 취했다. 결과적으로 루비·사파이어의 음악은 6개의 PCM 채널과 4개의 PSG 채널(이 중 1개는 노이즈 채널)이 결합된 하이브리드 구조로 완성되었다.PCM 음원을 구동하기 위해서는 원본 악기의 샘플 데이터가 필수적이다. 트럼펫 소리를 구현하고자 한다면, 각 옥타브에 해당하는 실제 트럼펫 샘플을 녹음한 뒤 이를 13kHz 모노 규격으로 압축하여 저장하고, 재생 시 피치(Pitch)를 조절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이 과정에서 13kHz라는 낮은 샘플링 레이트는 음질의 열화와 공간감의 상실을 야기하며, GBA 특유의 건조하고 노이즈 섞인 음색을 형성하는 주원인이 되었다.후속작인 포켓몬스터 다이아몬드·펄이나 하트골드·소울실버, 블랙·화이트 등이 다양한 샘플 CD와 고성능 사운드 모듈, 가상 악기를 활용해 소리의 풍성함을 더한 것과 달리, 루비·사파이어는 롤랜드(Roland) 사의 Sound Canvas SC-88Pro 사운드 모듈에서 대부분의 샘플을 차용했다. 이로 인해 제너럴 미디(General MIDI) 규격과의 호환성이 높으나, 동시에 하드웨어적 제약으로 인해 선별적인 악기 배치를 강요했다. 작곡가들은 음질 열화에도 불구하고 명료한 소리를 내는 악기들을 주로 PCM 채널에 배정하여 메인 멜로디를 담당하게 했다. 여기에는 스트링 앙상블, 트럼펫, 팀파니, 킥, 스네어, 그리고 흔히 ‘호연 트럼펫’ 소리로 오인되곤 하는 프렌치 호른 등이 포함된다. 흥미로운 점은 리메이크작인 파이어레드·리프그린의 경우 루비·사파이어와 거의 동일한 사운드 뱅크를 공유함에도 불구하고, 전작에서 사용되지 않았던 샘플들을 적극적으로 기용함으로써 전혀 다른 청각적 질감을 구현해냈다는 사실이다.한편, 보조적인 수단으로 여겨질 수 있는 PSG 채널 역시 작곡가들의 치밀한 계산 하에 음악적 완성도를 높이는 핵심 요소로 기능했다. 단순한 전자음으로 치부될 수 있는 PSG 채널은 파형의 변조를 통해 다채로운 음색을 만들어냈다. 3개의 비노이즈(Non-noise) 채널은 주로 서브 멜로디나 신시사이저 베이스(마그마단/아쿠아단 전투 테마 등), 혹은 신시사이저 리드(111번 도로 테마 등)를 연주하는 데 사용되었다. 더 나아가 엔딩 테마에서는 스트링과 유사한 질감을 표현하거나, 챔피언 성호의 테마에서는 일렉트릭 기타와 흡사한 파형을 구현하는 등 PSG 채널을 단순한 8비트 음원이 아닌 하나의 독립적인 악기로서 활용했다. 또한 노이즈 채널은 PCM 채널이 킥과 스네어 드럼을 담당할 때 하이햇이나 리버스 심벌, 혹은 각종 효과음을 담당하며 리듬의 빈공간을 채웠다. 이러한 의도들이 리메이크작 오메가루비·알파사파이어에서는 원 작곡가가 참여하지 않아 단순히 신시사이저 가상악기로 대체되거나 아예 삭제되는 등 퇴색된 것은 아쉬움을 남긴다.이러한 채널 배분의 특성은 리듬 파트의 구성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드럼 라인은 대부분 PCM 기반의 킥과 스네어, PSG 기반의 하이햇이 결합된 단순한 구조를 띨 수밖에 없었다. 특히 마스다 준이치가 작곡한 전투곡들의 경우 PCM 킥 드럼의 타격감이 부족하다고 판단하여 이를 팀파니로 대체하는 기법을 선보이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GBA 포켓몬스터 시리즈의 음악은 PCM과 PSG가 혼합된 독특한 하드웨어 환경 속에서, 주어진 제약을 창의적으로 극복하고자 했던 작곡가들의 노력이 빚어낸 독보적인 결과물이라 평가할 수 있다.다이아몬드·펄닌텐도 DS라는 차세대 하드웨어로 플랫폼이 이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포켓몬스터 다이아몬드·펄의 사운드 아키텍처는 하드웨어의 잠재력을 온전히 발휘하기보다는 전작인 게임보이 어드밴스(GBA)의 기술적 문법을 계승하는 보수적인 형태를 취했다.하드웨어상 PCM 16채널을 지원하게 되었으나, 시스템 효과음을 위해 할당된 채널을 제외하고 실제 음악 재생에 투입된 것은 10채널이었다. 이는 여전히 한 채널당 하나의 음(Note)만을 재생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기존의 ‘PCM 6채널 + PSG 4채널’ 체제가 순수 ‘PCM 10채널’ 체제로 전환된 정도의 변화에 불과하다. 샘플링 레이트 또한 13kHz에서 16kHz로 소폭 상승했을 뿐, 획기적인 음질의 진보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기술적 정체는 다이아몬드·펄이 초기 기획 단계에서 GBA 기반으로 개발되었다는 루머에 설득력을 더한다. 실제로 라이벌 용식의 테마 등에서 들리는 아르페지오나 하이햇 라인은 과거 PSG 채널을 활용하던 작법과 매우 유사한 패턴을 보인다.다만 DS 하드웨어 역시 GBA 하위 호환을 위해 PSG 구동이 가능했기에, 작곡가들은 이를 완전히 배제하지 않았다. 전작처럼 악곡 구성을 위한 필수 요소로 쓰이기보다는 축복시티 방송국이나 기라티나 전투곡 등에서 특유의 질감을 활용한 효과로서 제한적으로 활용되었다.샘플 소스의 측면에서는 롤랜드 SC-88Pro가 지배적이었던 GBA 시절과 달리, 후속 모델인 SD-90을 주력으로 채택하면서도(여전히 제너럴 미디 호환성은 높은 편이다) 다양한 샘플 CD(ProSamples 등)를 적극적으로 혼용하여 사운드의 스펙트럼을 넓혔다. 특히 이 시기에 도입된 파워 스네어, 팀파니, 오케스트라 힛 샘플은 현재까지도 사용되며 작곡가 이치노세 고의 시그니처 사운드로 자리 잡았으며, 이외에도 피아노, 일렉트릭 기타, Sawtooth 등은 DS 시절 포켓몬스터 사운드의 고유한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악곡의 스타일은 전작의 금관악기 중심에서 피아노의 비중이 대폭 늘어나는 방향으로 선회했는데, 이는 하드웨어적 특성과 작곡진의 변화라는 두 가지 요인으로 설명할 수 있다. 우선 음색적인 측면에서 SD-90의 금관악기(트럼펫, 프렌치 호른 등) 샘플이 전작의 SC-88Pro에 비해 강렬함이 다소 부족했던 반면, PCM 채널 수의 증가는 섬세하고 복잡한 피아노 트랙을 구현하기에 유리한 환경을 제공했다.무엇보다 결정적인 요인은 작곡가 라인업의 변화였다. 전작의 주축이었던 아오키 모리카즈의 퇴사 이후, 전문 작곡 경력이 없던 시나리오 라이터 사토 히토미가 과감하게 작곡진에 투입되었다.재즈 지향적인 취향은 기존 사운드를 담당하던 이치노세 고의 스타일 변화와 맞물려 시너지를 일으켰고, 결과적으로 다이아몬드·펄은 특유의 재즈틱한 사운드스케이프를 완성하게 되었다.하지만 이러한 4세대의 사운드적 유산은 리메이크작인 포켓몬스터 브릴리언트 다이아몬드·샤이닝 펄에 이르러 짙은 아쉬움을 남기는 결과로 귀결되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100곡이 넘는 방대한 트랙을 카게야마 쇼타 홀로 전담해야 했다는 점이다. 물리적인 시간 부족과 가혹한 스케줄은 그가 원곡을 재해석하거나 창의성을 발휘할 여지를 원천적으로 차단했고, 결국 작업은 원작의 미디(MIDI) 데이터를 최신 가상악기(VST)로 단순 치환하여 음질만 현대화하는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문제는 원작의 데이터 구조 자체가 현대적 시퀀싱 환경으로 직관적인 이식이 불가능할 만큼 난해했다는 것이다. 당시 하드웨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사용된 빈번한 프로그램 체인지(Program Change), 독자적인 규격으로 파편화된 퍼커션 채널, 그리고 동시 발음수 확보를 위해 하나의 악기(Note)를 여러 채널에 쪼개어 배치한 구조 등은 고난도의 복원 작업을 요구했다. 이러한 데이터를 일일이 분해하고 재조립하는 과정은 작곡가에게 원곡의 맥락을 깊이 이해할 틈을 주지 않았으며, 결과적으로 기계적인 '속성 이식'의 한계를 드러내게 했다.이러한 급박한 개발 상황은 패키지 생산 시점까지도 악곡이 완성되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로 이어졌다. 발매 당일 '데이원 패치'를 통해서야 비로소 정상적인 전투곡이 탑재되었다는 사실은, 이 게임의 사운드트랙이 얼마나 시간에 쫓겨 급조되었는지를 방증하는 결정적인 사례다.물론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주로 원작의 빈약했던 드럼 리듬과 그루브를 현대적으로 보강하려 했던 편곡자의 고군분투가 엿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시리즈의 정식 리메이크작임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공식 OST CD가 발매되지 않았다는 점은, 제작사 내부적으로도 이번 작품의 음악적 완성도에 대해 깊은 아쉬움을 인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하트골드·소울실버포켓몬스터 하트골드·소울실버는 다이아몬드·펄과 동일한 4세대 닌텐도 DS 플랫폼을 공유하지만, 사운드 엔지니어링 측면에서는 세대가 구분될 정도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프로키온 스튜디오(Procyon Studio) 출신의 젊은 작곡가, 카게야마 쇼타의 합류가 있었다. 루미너스 아크 시리즈나 대난투 스매시브라더스 X 등에서 현대적인 사운드 작업을 경험했던 그의 등장은, 전문적인 작곡 교육 배경이 부재했던 이치노세 고와 사토 히토미 체제의 게임프리크 사운드 팀에 새로운 기술적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기존 팀이 오래된 샘플 CD나 MIDIGraphy 같은 구형 툴에 의존하며 다소 주먹구구식으로 작업해왔던 것과 달리, 카게야마 쇼타는 체계적이고 현대적인 워크플로우를 도입하는 기폭제가 되었다.개발 초기, 이치노세 고가 주도하던 시점까지는 다이아몬드·펄의 사운드 뱅크와 시스템을 그대로 답습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닌텐도 DS 하드웨어에서도 고유 사운드 드라이버를 통해 오디오 스트리밍을 구현했던 루미너스 아크 시리즈를 경험한 카게야마 쇼타에게, GBA 시절의 문법에 머물러 있는 다이아몬드·펄의 시스템은 기술적 한계가 명확했을 것이다. 결국 개발 중반 시점에 이르러 사운드 뱅크와 엔진을 전면적으로 쇄신하는 결정이 내려졌다.이러한 과도기적 흔적은 게임 내 악곡 데이터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치노세 고가 단독으로 편곡한 29번도로 테마나 성도지방 야생 전투곡 등은 여전히 채널당 단음(Monophony)을 재생하는 다이아몬드·펄의 사양에 맞춰져 있다. 반면, 이치노세 고와 카게야마 쇼타가 공동 편곡자로 등재된 곡들의 경우, 초기 이치노세 고가 구형 사양으로 작업한 베이스 위에 카게야마 쇼타가 합류 후 새로운 시스템을 활용해 소리를 덧입힌 듯한 층위가 관찰된다.카게야마 쇼타의 주도로 큐베이스(Cubase)와 가상악기(VST)라는 신문물이 도입되면서 사운드의 질감 또한 대대적으로 변화했다. 다이아몬드·펄 시절의 낡은 샘플들은 Plugsound Pro 등 고품질 가상악기 라이브러리로 대체되었다. 개발 초기에는 1:1 대응 방식으로 모든 악기를 교체하려 했으나, 베타 테스트를 거치며 일렉트릭 기타, 팀파니, 드럼 셋 등 기존 다이아몬드·펄 소스 중에서도 양질의 질감을 가진 샘플들은 선별적으로 유지하는 절충안을 택했다. 이 과정에서 악기 번호를 효율적으로 재배치함에 따라 제너럴 미디(General MIDI) 규격과의 호환성은 사실상 소멸했다.기술적으로 가장 눈에 띄는 진보는 샘플링 레이트가 22kHz로 상향된 점과, 드디어 한 채널에서 화음(Polyphony) 처리가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이는 작곡가들을 괴롭히던 채널 수의 압박을 획기적으로 해소해주었다. 더 나아가 확보된 잉여 채널을 활용해 소리를 시간차를 두고 중첩시키는 '유사 딜레이(Pseudo-Delay)' 기법을 적극적으로 도입함으로써, 하드웨어적 제약을 넘어 공간감(Reverb)을 구현해낼 수 있게 되었다.하트골드·소울실버의 사운드적 성취를 논함에 있어 GB플레이어 기능은 빼놓을 수 없는 백미다. 현대적인 기술 관점에서는 단순히 원작의 녹음된 오디오 파일을 스트리밍으로 재생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겠으나, 개발진은 닌텐도 DS에 내장된 GBA 하위 호환용 PSG 채널을 직접 제어하여 실시간으로 파형을 합성하는 하드웨어 네이티브 방식을 사용했다. 비록 하드웨어 구조의 차이로 인해 원작의 삼각파가 사각파로 출력되는 미세한 음색 차이는 발생했으나, 이는 단순한 에뮬레이션을 넘어선 진정한 의미의 하드웨어적 복각이었다.더욱이 이러한 시도는 단순한 과거 유산의 재현에 그치지 않았다. 원작인 골드·실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포켓슬론이나 47번 도로와 같은 신규 콘텐츠의 악곡들까지, 철저하게 8비트 게임보이 사양에 맞춰 새롭게 편곡해 수록하는 장인정신을 발휘했다.이러한 작업은 내부 인력만으로는 소화하기 벅찰 만큼 방대한 분량이었기에, 크리쳐스 소속의 작곡가 키츠타 타쿠토를 외주로 GB 플레이어 및 관동지방의 편곡을 전담하게 했을 정도다. 이는 하트골드·소울실버가 리메이크작으로서 사운드 퀄리티에 얼마나 집요하게 공을 들였는지를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라 할 수 있다.블랙·화이트포켓몬스터 블랙·화이트는 전작 하트골드·소울실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카게야마 쇼타가 사운드 리더로 승격되면서(번외로 당시 캐릭터 디자인 리더 역시 20대 후반으로, 세대교체를 염두에 두고 젊은 세대를 적극적으로 기용하였다.), 4세대의 기술적 유산을 계승함과 동시에 닌텐도 DS 하드웨어 사운드의 정점을 찍은 작품이다. 전작이 과도기적 성격을 띠었다면, 5세대는 시스템의 효율화를 통해 하드웨어의 한계까지 성능을 이끌어냈다.가장 혁신적인 변화는 사운드 뱅크의 운용 방식에 있다. 기존 4세대까지는 거대한 단일 사운드 뱅크(Global Sound Bank)를 메모리에 상주시키는 방식을 채택했다. 이는 데이터 관리 측면에서는 편리했으나, 불과 7~8개의 악기만 사용하는 소규모 곡을 재생할 때에도 불필요한 샘플 데이터까지 모두 로드해야 하는 메모리 비효율을 초래했다.반면 블랙·화이트는 각 곡(Track)마다 필요한 악기 샘플만을 선별하여 로드하는 ‘개별 뱅크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로 인해 확보된 여유 메모리는 음질 향상에 직접적으로 투입되었다. 샘플링 레이트는 32kHz까지 대폭 상향되었으며, 용량 문제로 기피되던 긴 길이의 PCM 샘플, 예를 들어 배틀 서브웨이의 드럼 브레이크나 빌리지 브리지의 보컬 트랙을 과감하게 도입할 수 있었다. 또한 동일한 악기라도 곡의 분위기에 따라 각기 다른 질감의 샘플을 배정하는 것이 가능해져 표현의 스펙트럼이 비약적으로 넓어졌다. 이는 닌텐도 DS라는 플랫폼의 마지막 미디(MIDI) 기반 시퀀싱 사운드로서, 기기가 낼 수 있는 퍼포먼스의 극한을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기능적인 측면에서는 상황에 따라 트랙의 레이어가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다이내믹 뮤직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걷거나 뛸 때마다 퍼커션 트랙이 추가되거나, HP가 붉은색일 때 긴박한 편곡으로 곡조가 바뀌는 등의 연출은 청각적 몰입감을 극대화했다.후속작인 블랙 2·화이트 2에서는 이러한 기술적 시도가 더욱 심화되었다. 특히 타이틀 테마의 경우, 닌텐도 DS 환경에서는 이례적으로 시퀀싱이 아닌 오디오 스트리밍 방식을 채택하여 원음 그대로를 재생했다. 흥미로운 점은 같은 인트로 멜로디를 공유하는 블랙 큐레무·화이트 큐레무 전투곡과의 비교다. 큐레무 전투곡은 시퀀싱 방식임에도 불구하고 스트리밍 방식인 타이틀 테마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정교하게 제작되었는데, 이는 시스템적으로 좌우 패닝(Panning)을 고속으로 제어하여 가상의 리버브(Reverb) 효과를 만들어내는 등, 공간계 이펙터가 부재한 하드웨어의 한계를 소프트웨어적 기교로 극복하려 한 시도가 돋보이는 대목이다.한편, PWT(포켓몬 월드 토너먼트) 등의 곡에서 드럼 브레이크를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마지막까지 고도화된 5세대 사운드 엔진은 의외의 곳에서 마지막 흔적을 남겼다. 차세대 기기인 3DS로 발매된 포켓몬스터 X·Y의 미니게임(착착퍼즐 등)이 바로 그것인데, 레트로한 감성을 의도했거나 효율적 재활용을 위해 5세대의 사운드 사양을 그대로 차용하여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결론게임보이 어드밴스(GBA)에서 닌텐도 DS로 이어지는 포켓몬스터 시리즈의 사운드 변천사는, 단순히 하드웨어 스펙의 향상을 좇는 과정이 아니라 주어진 제약을 창의성으로 치환하고자 했던 개발진의 치열한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역설적으로, 최신 기술로 무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유산을 기계적으로 답습하는 데 그친 브릴리언트 다이아몬드·샤이닝 펄의 실패 사례는, 이 시기 포켓몬스터 사운드가 가졌던 진정한 가치를 재조명하게 한다. 그것은 고해상도의 음원이나 화려한 오케스트레이션이 아니라, 제한된 메모리와 채널 속에서도 최상의 결과물을 내기 위해 데이터를 쪼개고 비틀었던 작곡가들의 공학적 예술성이었다. 이는 GBA와 DS 시절의 포켓몬스터 음악은 현대적인 스트리밍 오디오로 넘어가는 과도기에서, 기술적 한계를 감성적 영역으로 승화시킨 비디오 게임 사운드 역사의 가장 흥미롭고도 독보적인 챕터가 아닐까?
작성자 : 투타임즈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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