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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비교 리뷰(옥스포드vs앤스브릭)
옥스포드. 역과 기차가 있다. 미피도 많다. 미피 많다. 미피스케일이라 부르나 이런 걸? 다만 반갈죽이다. 실제 서울역 스케일을 생각하면 반반갈죽 내부는 그럴싸하다. 카페, 휴식공간, 플랫폼까지 있다. 샹들리에도 있고, 지붕 밑에 있어서 안 보이지만 건전지가 들어간 라이트브릭 2개가 들어있어 천장조명도 쏠 수 있다.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 플랫폼이 지붕선보다 나와있는데 사진 각도ㅗ상 안 보인다. 다음은 앤스브릭. 몇년전부터 코레일과 콜라보로 블록을 계속 출시 중인 브릭 회사다. 깔끔하다. 색감은 이쪽이 더 좋다. 한국의 근대건축물을 복원한 느낌의, 깨끗하지만 빛바랜 색감을 잘 뽑아냈다. 옥스포드 서울역 색감은 약간 구식 느낌이 있다. 미피나 따로 동봉된 브릭은 없다. 대신 반갈죽이 아닌 온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비율도 현실에 더 가깝다. 옆모습도 그럴싸하고 뒷모습까지 완벽하다. 다만, 플랫폼이 없다. 기차역이라기 보다는 아키텍쳐 시리즈의 건물 느낌이다. 단점으로, 스티커가 겁나 많다. 특히나 코너부와 같이 난이도 높은 스티커가 많다. 코너부 스티커는 칼집을 내고 붙여야 한다. 아니면 붙이고 2시간도 안 되어 떨어진다. 칼집 내서 붙인 것들은 멀쩡히 붙어있는데, 그냥 붙여본 것들은 자꾸 들떠서 순간접착제 살짝 찍어 다시 붙였다. 전체적으로 후두둑이 많다. 특히 검은 지붕 부분. 이를 보완하려 순접을 썼는데 새어나와서 위 둥근 지붕 부분과 같이 흰 자국이 남았다. 좌) 앤스브릭 우) 옥스포드 앤스브릭은 깔끔한 건물 하나. 장식용으로는 더 예쁘다. 옥스포드는 기차역 느낌. 기차와 같이 꾸미거나 미니피규어 놓기에 좋다. 아이들이 갖고 놀기엔 옥스포드가 좋고 선반에 올려두고 감상하기엔 앤스브릭이 낫다.앤스브릭의 디자인으로 옥스포드와 같은 미피스케일이 나온다면 사이즈와 가격 모두 감당할 수 없게 될테니, 이게 최선인 것 같다. 두 회사 모두 이런 고민을 하고 출시했겠지. 옥스포드 서울역은 수십년 전 실제 서울역이 쓰이던 때를 상정하고 만든 제품이고, 앤스브릭 서울역은 2000년대 이후 신 서울역의 개장으로 쓰이지 않게 된 현재 전시관 용도의 서울역을 그린 제품이라 보면 된다. 앤스브릭은 48000원 (서울역, 부산역 내 트레인메이츠 매장 판매) 옥스포드는 80000원대 (온라인 판매 O 오프라인 판매는 본적 없음) 옥스포드는 기차(기관차, 무궁화호)와 기차길을 넣어주는데, 기차는 레고 레일에도 호환이되지만, 기차길은 아쉽게도 레고 레일과 연결이 안 된다. 공정한 리뷰를 위해 기차 사진도 뒤늦게 추가한다. 기차는 상당히 잘 뽑혔다(사진의 초록색 기차 2칸) 가성비로는 옥스포드 승 하지만, 전시공간의 제약이 있는 우리의 삶을 생각하면, 앤스브릭 제품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결론. 구형 컬러 무궁화호 기차를 갖고 싶다. 기차, 미피와 역을 같이 갖고 놀고 싶다. 공간 제약이 없다. 큰 제품이 좋다. 옥스포드 타운 시리즈를 좋아한다. -> 옥스포드 서울역 아키텍쳐류 미디스케일 건물을 좋아한다. 전시공간 제약이 있다. 깔끔하고 완결된 건축물이 좋다.(반갈죽 x) -> 앤스브릭 서울역 팁. 앤스브릭 서울역은 스티커 난이도가 높다.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싶으면 스티커를 붙이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 dc official App
작성자 : 밤새지말자고정닉
오싹오싹 인류의 운명이 걸렸던 탈출사건
2차대전 프랑스가 독일의 낫질 작전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을 때 영국의 수상 처칠은 울부 짖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군사적 재앙이다" (a colossal military disaster)"그곳에 영국군의 뿌리와 핵심 그리고 두뇌가 전부 묶여있다" (The whole root and core and brain of the British Army)무슨 일일까? 1940년 5월, 프랑스의 해안도시 됭케르크에는 낫질 작전으로 이도저도 못하고 고립 되어버린 프랑스군 10만,영국군 20만 등 연합군이 있었다 이 외에도 유럽 각지 병력도 있어 다 합치면 30만이 넘었다 문제는 영국군 20만은 프랑스를 돕겠다고 본토 방위를 책임져야 할 군대까지 다 보낸 병력들이였다 당시 본토 브리튼 섬에는 병사수는 15~20만으로 꽤 많았지만 소총조차 없는 부대가 절대 다수라서 전투를 할 수 있는 병력 수는 고작 4~5만명이였다 그야말로 무방비나 다름 없었다 오죽 했으면 처칠마저도 "손으로 들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뭐든 다 들고 싸울 준비가 되어있다" 라고 했을 정도 당연히 대영제국은 최대의 식민제국 식민지 이곳 저곳에는 무장한 병력들이 많았지만 얘들 다 끌고 올려면 못해도 몇 달이 걸렸다 제 아무리 영국 해군이 강하다고 한들 이토록 병력수가 턱 없이 부족하다면 영국의 해안선 전부를 막는 것은 불가능 했다 즉, 됭케르크에 묶여버린 20만은 대영제국 최후방 병력이자 몰살 당하면 영국의 안전은 보장 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처칠은 울부짖었고 히틀러는 미소를 지었다 이들만 제거한다면 전유럽 나아가선 세계가 자신의 손아귀에 들어오는 것이나 다름 없다 하지만 히틀러는 결정적 실수를 하고 만다 바로 정지명령(Halt order)이였다 1940년 5월 24일, 독일의 기갑부대는 파죽지세로 됭케르크의 외곽까지연합군을 밀어붙혔혀 독안에 든 쥐였다 당시 연합군과 독일군의 거리는 고작 13km그러나 히틀러는 갑자기 진군 중지를 내린다 먼저 중지 명령을 내린 것은 독일 사령부였는데 군을 이끌던 장군들마저 중지 명령에 충격을 먹었다 이유는 독일군 참모들도 기갑부대의 진군 속도가너무 빨라서 보급과 유지가 안된다고 여겼다 그래서 보병 부대가 합류할 때 까지 기다리라는 것이였다 독 안에 가뒀으니 헤르만 괴링은 공군의 폭격만으로도 이 30만 연합군을 궤멸 시킬 수 있다고 주장 했다 히틀로 또한 아까운 탱크들을 소비 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히틀러도 공식적으로 진군 중지를 내렸다 그래서 24일날 부터 3일동안 눈 앞에 적들을 두고손가락만 빨고 있다가 영국의 탈출선들과 엄호,지원 부대가 나타나자 그제서야 공격이 시작 됐는데 이 때가 27일이였다 당연히 처칠은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렇게 세상의 운명을 건 됭케르크 철수작전이 시작 됐다 당시 처칠은 군함 외에도 어선,유람선,요트,구명보트 등 그야말로 영끌 수준으로 배를 모았는데그 수가 무려 약 900여척이나 되었다 이 중 주력은 220척의 구축함들이였다 독일은 폭격으로 배들을 다 부술려고 했지만 영국에게 이 병력은 목숨줄이였기에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초인적 힘이 나온다 했던가? 영국은 단 한차례도 독일과의 공준전에서 지지 않았고그 덕에 제공권을 확보하여 배들이 해안가로 접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당시 날씨도 안개가 잔뜩 끼어 독일군의 공습으로 부터 가림막이 되어주었다 게다가 아직은 낫질 작전이 끝나지 않았기에프랑스군 4만여명이 됭케르크 전방 릴에서필사적으로 어그로를 끌면서 시간을 벌어줬다 이들의 희생 덕분에 연합군을 탈출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그렇게 5월 26일부터 시작 된 철수작전은 2일차에는 겨우 17,000여명 밖에 철수 시키지 못해처칠은 절규 했지만 끝까지 포기 하지 않았고 9일동안 무려 33만명을 대피 시키는데 성공한다 이 덕에 영국은 병력을 보존 할 수 있었고 이 병력으로 본토 항공전에서 독일에게 맞설 수 있었다 그야말로 2차 세계대전 최고의 기적이였다 고작 10km 남짓 코앞에 거리에서 후방 지원도 없고 날씨 억까도 없고 앞에는 바다 뿐 도망갈 길도 숨을 곳도 없다 탁트인 해안가에 수십만이 바다만 넋 놓고 바라 보는이 상태에서 탱크들이 포를 뻥뻥 쏘면서 들이닥친다면 못해도 절반 이상은 죽는 대참사가 났을 것이다 실제로 처칠도"5만명이나 구하면 다행" , "우리는 충격적인 사실을 국민에게 알려야 할지도 모른다" 소수라도 살아남는 것을 기적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됭케르크에서 미온적인 태도와 정지 명령은 2차대전 히틀러 최대의 실책으로 꼽히고 있으며 지금까지도 if 거리가 되고 있다 이에 많은 역사가들은 히틀러는 영국과의평화 협성을 염두해두고 일부러 진군을 멈췄다고 주장한다 만약 됭케르크에 있는 영국군을 전멸 시킨다면양국간에 치유 불가의 불화가 조성 되므로 실제로 정지명령도 암호화 되지 않은채마치 들으라는듯 그대로 하달 됐다 그리고 기록 중엔 당시 히틀러가 당시 자신이 너무 순진 했었다고 후회 한다는 기록도 있고 나치군 총사령부의 발터 발리몬트 기록에는 처칠이 자신이 내민 스포츠 정신을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한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일부 학자들은 이런 히틀러의 미온적 태도와 탈출 방조는 날조라고 반박한다 그저 히틀러의 판단 미스를 쉴드치기 위한 나치의 체면치레용 선전이라는 것하지만 됭케르크 철수 작전 동안에도 히틀러와 처칠의 내각은 평화협상 조건을 두고 격론을 벌이긴 했었다고 한다 심지어 외무장관 로드 핼리팩스가 평화협정 맺죠 했다가 처칠이 강경하게 반대해서 무산 됐다 진실이 뭐든 당시 나치군 사령관 게르트 폰 룬트슈테트는 진군을 멈추지 않고 그대로 밀고 들어갔더라면 영국군이 쉽게 철수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회고 했고 당시 연합군은 무기도 급하게 다 버리고 튀었는데이 때 노획한 무기의 양은 무려 8~10사단을 무장 시킬 정도였다고 한다 그야말로 인류의 운명을 건 역사상 가장 처절한 탈출이였다
작성자 : ㅇㅇ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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