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 오라질년, 꼴데출신은 할 수가 없어, 못 쳐서 병, 쳐서병, 어쩌란 말이야! 왜 방맹이를 바루 돌리지 못해!"
하고 원석이의 뺨을 한 번 후려갈겼다. 홉뜬 눈은 조금 바루어졌건만 이슬이 맺히었다. 기멘수의 눈시울도 뜨끈뜨끈하였다.
환자가 그러고도 홈런 보는 데는 물리지 않았다. 사흘 전부터 홈런이 보고 싶다고 멘수를 졸랐다.
"이런 오라질 년! PO도 처음 해보는 년이 홈런은. 또 쳐보고 지랄병을 하게."
라고 야단을 쳐보았건만, 못 펴주는 마음이 시원치는 않았다.
인제 홈런을 쳐 줄 수도 있다. 앓는 돡 곁에서 찌질대는 홍라드(디시잉여)에게 기쁨을 줄 수도 있다.

솩의 투수로 나온 멈춘 사람이 열도인인 줄 기멘수는 한번 보고 짐작할 수 있었다. 오늘 이기기로 작정은 하였건만, 비는 오고 어깨는 아프고 해서 어찌 할 줄 모르다가 마침 기멘수를 보고 뛰어나왔음이리라. 그렇지 않다면 왜 스파이크를 채 신지 못해서 질질 끌고, 비록 \'솩\' 유니폼일망정 노박이로 비를 맞으며 기멘수를 뒤쫓아 나왔으랴.
"우익수 뒤로 넘어가는 홈런 말씀이십니까?"
하고, 기멘수는 잠깐 주저하였다. 그는 이 우중에 우비도 없이 홈까지 칠벅거리고 돌기가 싫었음일까? 1승, 2승으로 고만 만족하였음일까? 아니다. 결코 아니다. 이상하게도 꼬리를 맞물고 덤비는 이 가토쿠라 앞에 조금 겁이 났음이다. 그리고 집을 나올 제 원석의 부탁이 마음에 켕기었다. 앞집 허구라님한테서 부르러 왔을 제 병인은 그 뼈만 남은 얼굴에 유월의 샘물 같은 유달리 크고 움푹한 눈에다 애걸하는 빛을 띄우며,
"오늘은 나가지 말아요. 제발 덕분에 집에 붙어 있어요. 내가 이렇게 아픈데……."
하고 모씹기 소리같이 중얼거리며 숨을 걸그렁걸그렁하였다. 그래도 기멘수는 대수롭지 않은 듯이.
"압다, 젠장맞을 년. 빌어먹을 소리를 다 하네. 맞붙들고 앉았으면 코시로 갈 줄 알아."
하고 훌쩍 뛰어나오려니까 환자는 붙잡을 듯이 팔을 내저으며,
"나가지 말라도 그래, 그러면 일찍이 들어와요."
하고 목메인 소리가 뒤를 따랐다.

"몸쪽 배팅볼 하나만 줍시요."
이 말이 저도 모를 사이에 불쑥 기멘수의 입에서 떨어졌다. 제 입으로 부르고도 스스로 그 엄청난 요구에 놀래었다. 한꺼번에 배팅볼을 불러라도 본 지가 그 얼마만인가! 그러자, 그 홈런 칠 용기가 병자에 대한 염려를 사르고 말았다. 설마 오늘 안으로 어떠랴 싶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제일 제이의 홈런을 친 것보다도 오히려 갑절이 많은 이 PO의 홈런을 놓칠 수 없다 하였다.
"몸쪽 배팅볼 말이므니까."
이런 말을 하며 가턱은 고개를 기웃하였다.

"배팅볼을 출 터이니 빨리 치므니다!."
관대한 일본 투수느 그런 말을 남기고 총총히 유니폼도 입고 배팅볼을 날렸다.
그 배팅볼을 치고 나선 기멘수의 다리는 이상하게 가뿐하였다. 달음질을 한다느니보다 거의 나는 듯하였다. 스파이크도 어떻게 속히 도는지 군다느니보다 마치 얼음을 지쳐나가는 스케이트 모양으로 미끄러져가는 듯하였다. 언땅에 비가 내려 미끄럽기도 하였다.

덕아웃안에 들어서며 홈런볼을 한구석에 놓을 사이도 없이 기멘수는 목청을 있는 대로 다 내어 호통을 쳤다.
"이 오라질년, 주야장천(晝夜長川) 누워만 있으면 제일이야! 남편이 와도 일어나지를 못해."
라는 소리와 함께 발길로 원석이의 다리를 몹시 찼다. 그러나 발길에 채이는 건 사람의 살이 아니고 나무등걸과 같은 느낌이 있었다. 

발로 차도 그 보람이 없는 걸 보자 기멘수는 원석의 머리맡으로 달려들어 그야말로 까치집 같은 환자의 머리를 껴들어 흔들며,
"이년아, 말을 해, 말을! 입이 붙었어, 이 오라질년!"
"비온다고 병신아……"
"으응, 구라치지 마, 비 그친지가 언젠데."
"다시 온다고 병신아 경기 취소됐어……"
"이년아, 거짓말 하지말란 말이다, 왜 경기가 취소돼?"
"원석이를 보상으로 내준게 너무 아쉽다……"
"으응, 이건 뭔 개소리야, 정말 취소됐나보이."
이러다가 크보의 경기 취소 사인을 알아보자마자,
"이 시발! 이 시발! 왜 비가 쳐와서 경기를 안하느냐, 응"
하는 말끝엔 목이 메이었다. 그러자 홈런 취소된 사람의 눈에서 떨어진 닭똥 같은 눈물이 원석이의 창백한 얼굴을 어룽어룽 적시었다. 문득 김첨지는 미친 듯이 제 얼굴을 원석이의 얼굴에 한데 비벼대며 중얼거렸다.
"홈런을 쳐다 놓았는데 왜 경기를 안하니, 왜 경기를 안하니……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