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일은 1947년생으로 지난 1970년 광고 모델로 데뷔한 뒤, 1973년 영화 '바람아 구름아'의 주연으로 본격적인 배우 생활을 시작했다. 굵직한 외모로 수많은 여성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는 '경찰관', '길소뜸', '아제아제 바라아제' 등 다수의 작품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이며 70, 80년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청춘스타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배우로서의 성공에 멈추지 않고, 한지일은 영화 제작자로 변신해 성인영화 '젖소부인 바람났네' 시리즈를 비롯한 300여 편의 영화를 제작하며 흥행에 성공, 100억 원대 자산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당시 경기 평택에 호텔, 대전에 5층 건물 등 부동산을 사는 등 다양한 사업에 도전을 시작했지만, 무리한 투자로 인한 사업실패와 IMF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으며 그의 성공 신화는 한순간에 무너졌고, 순식간에 전 재산을 잃게 되었다.
이후 한지일은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미국으로 건너갔고, 약 10년간 현지에서 트럭 운전사, 자동차 세차, 블라인드 청소, 마트 매니저, 화장품 회사 직원 등 27가지가 넘는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언어 장벽과 문화 차이, 그리고 정신적 고통으로 우울증과 극단적 선택을 고민할 정도로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힘든 와중에도 현지에서 양로원, 보육원 등에서 어르신들을 돕는 일을 하며 봉사와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힘든 시기를 버텼다고 한다.
미국에서의 힘든 생활을 마치고 약 10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온 한지일은 경기도 양평 등지에서 봉사활동과 일용직을 전전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그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경제적인 어려움과 건강 악화로 인해 결국 현재 기초생활수급자 신분으로서 11평 남짓한 임대아파트에서 홀로 생활하고 있다고 밝혀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한 인터뷰에서 한지일은 "톱스타가 땅에 팍 떨어지면 얼마나 괴로운 줄 아냐.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또다시 일어서겠다. 이를 악물고 꼭 일어나겠다"라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는 "내가 이 조그만 집에서 고독사해서 발견 못 했을 때 그게 가장 두렵다. 하지만 마지막 인생은 멋지게 살고 싶다"며, 힘든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있음을 강조했다.
비록 화려했던 시절과는 다른 일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한지일은 여전히 봉사와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자신의 삶을 일구고 있다. 수많은 시련과 역경을 딛고 다시 일어서려는 그의 용기와 진솔한 고백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앞으로도 한지일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인생의 마지막 장을 아름답게 채워가길, 그리고 그가 걸어온 길이 또 다른 희망의 메시지가 되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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