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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북아프리카 전투 6.

김유식 2005.07.21 18:5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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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토부룩 함락   제361아프리카 연대 제2중대 소속 프필만 소위는 6개월 전부터 브로크맨 중사없이 일을 해 왔다. 중사는 전에 독일 외인부대에서 조직의 천재로 이름이 나 있었는데 1941년 11월 어느날의 전투에서 사냥을 나갔다가 그 길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명부에는 「행방불명」이라고 기록을 했으나 어쩐지 애매한 데가 있었다. 행방불명이라는 말은 여러 가지 가능성을 지닌 말이기는 하지만, 특히 브로크맨 중사의 경우는 행방불명이라는 말이 애매하다는 것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1942년 6월 12일, 제90경기갑사단은 엘 아딤 전면에서 박스에 틀어박힌 인도 제29여단과 싸우고 있었다. 제21기갑사단의 각 부대도 동쪽으로 진군중 이었다. 토부룩 주변의 릿지 방위선을 둘러 싼 싸움의 대 단원도 멀지는 않았다.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배후, 자이데만 소장의 급강하 폭격기와 전투기 기지인 데르나 남비행장 장교 집회소에서 폰 란챠우 소위의 생일 축하연이 벌어지려는 판이었다. 모두들 앉아서 신이니 세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었다. 그리고 〈사막 레인저 부대〉의 파괴공작에 대해서도 경계하라는 명령이 거듭 내려진데 대해서도…….   한밤중―. 그 어둠을 뚫고 〈사막 레인저 부대〉에 속한 제임스 블레 대위는 위장한 병사들을 만재한 트럭 두 대를 이끌고 사막을 달리고 있었다. 차를 세우고 이 패들을 둘로 나눈 다음 명령을 재확인했다.   『비행기는 수류탄으로 파괴한다. 병사를 공격한 다음 전화선을 절단한다. 포로는 한 사람이나 두 사람 정도 잡는 것으로 그쳐라.』   다시 차를 탄다. 출발! 한 패를 거느린 프랑스 소위는 흥분해 있었다. 계속 운전사에게 주의하라는 권고를 하면서 콤파스를 들여다본다.   『곧 도착하겠는데요.』 하고 운전사가 갑자기 차를 세웠다.   『어떻게 된 거야?』   『소위님, 잠깐 이 근처 지형을 보게해 주십시오. 제가 이 근처는 잘 알고 있습니다.』   소위는 시무룩한 얼굴로 승낙했다.   『하지만 서둘러, 급하다.』   운전사는 차에서 멀어지고 다른 군인들은 트럭위에 주저앉아 기다렸다. 1분, 2분, 3분, 5분이 지났다. 이 영국 파괴공작부대의 프랑스 장교가 뭔가 언잖은듯이 소리를 지르고 있을 때 상당한 거리에 있는 독일군 비행장 사령실의 도어가 성급히 열렸다. 묘한 옷을 입은 먼지 투성이의 군인이 숨을 헐떡이며 서 있었다.   『영국놈들이 옵니다. 병력 10명의 특수부대를 제가 유인해 왔습니다. 비행장을 기습할 계획입니다. 빨리!』   사령실의 장교와 사병들은 후다닥 일어섰다. 더 물어볼 말도 없었다. 주저할 것도 없었다. 수류탄과 기관총을 거머쥐자, 이 기묘한 경고자를 선두로 튀어 나갔다.   『개새끼!』   프랑스 장교는 욕을 퍼부었다.   『어딜 갔나? 그놈의 독일 녀석, 내가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을 자주 했지.』   『에이 썅!』   미셀 중사가 소리를 질렀다.   『그놈, 옛날 외인 부대에 있었기 때문에 나치스 강제수용소에 갇혔던 녀석이야. 그 다음에 바로 그 제361연대로 배속되었지. 차도 없이 기관단 총과 수류탄으로 싸우는 부대 말이야 거기서 우리 부대로 도망쳐 왔거든…』   바로 그때, 가까이 사람들의 그림자가 얼씬거렸다. 독일어 명령이 들려왔다. 총을 들려고 했으나 시간이 너무 늦었다.   수류탄이 작열했다. 가솔린 통과 연료가 공중으로 날아갔다. 부상자의 신음소리가 났다. 몇 사람이 트럭에서 뛰어 내렸지만, 기관단총을 맞았다. 도망할 수 있었던 사람은 한 사람뿐이었다. 바로 그 프랑스 소위였다.   독일군은 뒤를 쫓았으나, 캄캄한 사막이 그를 집어삼켜 버렸다. 소위는 며칠후, 영국군 부대에 도착하여 전후 사정을 보고했다.   이 운전사 이름이 브로크맨이었다. 고참병인 그는 1941년 11월, 영국군에게 포로가 된 다음, 전에 프랑스 외인부대에 있었던 실적을 이용해서 사막 레인저 부대에 지원해서 이 작전에 참가했던 것이다. 그는 애매한 전력으로 인해서 상당히 괄시받는 제361연대에 속해서 일을 했다. 그들은 자기네들을 사막의 집시라고 칭했다. 장비도 나빴다. 그래서 다른 연대가 차를 타도 이들은 대부분 도보로 행군했다. 그러나 그들은 용감했고 전우애가 돈독했다.   이 특수한 부대는 아프리카 전선에서 거의 대부분의 화제거리 전투에 참가했다. 그들의 돌격전은 실로 무시무시했다. 그들은 열정이니 애국심 또는 내셔날리즘이란 말과는 인연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특정한 이념을 위해 싸운 사람들이 아니다. 오직 군인으로서의 어떤 집념만을 소중히 생각하고 있는 족속들이었다.   여기는 제8군 사령관실.   릿지는 황폐해진 전 감부트 이탈리아인 지사의 관사 창가에 기대어 탄흔 투성이인 광장옆에 닥지닥지 붙은 집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늘 침착한 그도 오늘만큼은 마음의 불안을 이겨내지 못하고 손가락으로 창유리를 두들기고 있었다.   대지도앞에는 제30군단장 노리 장군이 서서 전황을 설명하고 필요한 결단을 촉구하고 있었다. 노리 장군이 천천히 말해 주는 1942년 6월 12일의 제1, 제7기갑사단의 전황은 정말 비극이었다. 엉성한 영국군 전차부대는 빌 하케임 함락 후, 해안지대를 목표로 북진하는 롬멜군을 개별적으로 저지하려고 애를 썼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여단장은 서로들 자기 의견만 내 세우고 있었다. 제7기갑사단장 메사비 장군은 자기 의견을 관철시키지 못해 상급 부대로 의논하러 갔다. 그동안 휘하 2개 여단은 방향을 잃고서 독일군 속에 들어가 지휘 체계는 엉망이 되고 말았다. 그 결과를 말해 무엇하랴. 람스덴 소장이 이끄는 제22기갑사단이 제7기갑사단을 구출하려고 노력했으나 허사였다. 군단 사령부와 연결을 짓는데도 11시간이나 걸렸으니 말이다.   롬멜은 적의 이러한 혼란을 이용해서 정신없이 방향 감각을 잃고 덤비는 적 여단을 격파했다. 6월 12일 오후의 영국군 기갑병력은 그림자나 마찬가지 였고 사막은 「그란트」, 「클루세이더」, 「스츄어트」등 각종 전차의 잔해로 가득했다.   노리 장군이 지금의 비참한 사태 전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해도 감부트에서 보고한 경보만으로도 위기는 대단했다.   『롬멜의 해안선 진출을 저지할 수 있는 기갑병력은 없습니다. 독일군이 해안으로 나간다면 가잘라 라인에 아직 건재하고 있는 남아프리카군 제1사 단과 영국 본국군 제50사단은 주력과 연락이 끊겨 절망적인 상태에 빠집니다.』   이때 릿지의 참모 하아디 소령이 카이로에서 온 전문을 듣고 들어왔다.   『총사령관께서 카이로로부터 오신답니다.』   『한 시간 이내로 도착하신다는데요.』   릿지와 노리는 얼굴을 마주 쳐다보았다. 반가운 방문이 아니었다.   아닌 게 아니라, 별로 큰 소리를 치지 않는 오킨렉크였지만 그의 말은 잔뜩 비꼬는 것이었다.   불과 열흘 전에 완전히 격멸했다는 적이 이제는 영국군 제8군을 격파하려고 했다. 도대체 롬멜이란 사나이는 악마와 동맹이라도 맺었단 말인가? 영국군의 일선 지휘관들과 장군 중에는 그와 어깨를 겨를만한 사람이 없단 말인가?   장군들과 참모들은 그의 설교를 말없이 듣고 있었다. 그러나 젊은 장교들은 이를 갈면서 안타까와하고 있었다.   이들은 한결같이 속으로 이런 말을 하고 싶었다.   『뻔한 일입니다. 이제 용병술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우리 장군들은 생각하고 명령을 기다리고 또 후방 사령부에 주저앉아 있습니다. 하지만 롬멜, 네링, 클래만, 폰 비스마르크, 클라레만 등 독일 사령관들은 언제나 진두에서 어떤 위기가 오더라도 즉각 명령을 내릴 수가 있는 상태에서 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도대체 영국군 사령부는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관할지역문제로 싸우고 통일도 안된 채…….』   사실 그러했다. 북아프리카 영국군의 보수적인 전략은 롬멜에게 당할 수 가 없었다. 롬멜과 그 동료들은 실로 제2차 세계대전의 전차전, 신속하고 기동성을 주로 한 전차전의 화신이었다. 그들은 전차 전술과 부대의 심리를 올바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롬멜은 분명히 말하고 있다.   『기민한 신경을 써야 하는 전차전에 있어서 전투부대는 언제나 짧은 휴식이 필요하게 된다. 용사만으로 구성된 부대는 없다. 그런 경우에는 이러 이러한 이유로 진격을 할 수 없다고 보고만 하면 된다. 이 자연적인 피로 현상에 대해서 부대 지휘관은 스스로 책임을 지고 장병들의 긴장을 풀어주어야 한다. 지휘관은 전투의 원동력이어야 하며 최전선에 있어서도 언제나 조종계획을 세워야 한다.』   이러한 롬멜식 용병의 비밀을 영국군 소장 참모들은 알고 있었으나 장군들은 그렇지 못했다. 그렇다고 장군들의 의논에 뛰어들 수 없어 이들은 릿지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릿지는 자기 말에 취해 있었고 오킨렉크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롬멜인들 초인은 아닙니다. 그 부대는 큰 피해를 입었고 수적으로도 우리를 당할 수가 없습니다. 설사 롬멜이 적은 병력으로 해안선에 진출한 다고 해도 넉넉히 격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낙천가적 자신은 오킨렉크의 마음에 들었다. 결국 오킨렉크도 릿지의 태평스런 계획을 승인하고 계속 롬멜의 군대가 지칠 때까지 가잘라 아뎀 전선에서 작전을 계속하기로 했다.   총사령관 오킨렉크는 처칠에게 전보를 쳤다.   『분위기는 양호합니다. 정세는 냉정하고 확고히 판단되고 있습니다. 부대의 사기도 만족할만한 상태입니다. 적의 의도는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는것 같지 않습니다. 오킨렉크.』   이 역시 처칠이 기뻐할 만한 전보였다. 그는 곧 회신을 보내 왔다.   『싸움을 계속하겠다는 귀관의 결정은 실로 바람직한 일이오. 귀관의 성공은 무기뿐만 아니라 굳은 의지에 힘입게 될 것이오. 신이여 우리 군을 지켜 주옵소서. 윈스턴 처칠.』   이리하여 영국군들은 토부룩, 가잘라 및 나이트 브릿지, 엘 아뎀을 연 결하는 대사변형지역에서 싸우게 되었다. 그러나 근위여단은 나이트 브릿지에서 전멸하고 인도군은 아크로마에서 격파되어 영국군 전차는 후퇴를 할 수 없었다. 롬멜의 밀집 전차부대가 나타나기만한다면 영국군은 이와 맞서서 싸워야 했다. 후퇴방향은 자연히 해안쪽이 되므로 토부룩에 이르는 길을 비워주어야 한다. 이리하여 롬멜은 자신이 전장을 지정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롬멜은 어느 방향을 공격할 것인가? 나이트 브릿지일까? 가잘라? 아니면 엘 아뎀이란 말인가? 릿지는 어떻게 대비책을 세우면 된단 말인가?   모든 전차를 한 곳으로 집중시킨다면 롬멜은 허술한 곳을 돌파할 가능성이 짙다. 릿지가 전차를 후방에 대기시킨다면 롬멜은 즉각 토부룩 방위선에 달려드는 더욱 큰 위험이 발생한다. 롬멜은 전진하는 기갑사단을 가지고 릿지가 산발적으로 출동시키는 적군을 차례차례 격파하고 있었다. 함부로 얕볼 수 없는 88밀리 포는 영국군 전차의 집중공격을 무산시켜 버렸다. DAK는 불타오르는 영국군 전차 옆을 진격해 가고 있었다. 영국군은 이러한 독일군의 공격을 지탱해 내지 못하고 있었다.   롬멜과 DAK, 사령관 네링 장군은 무시무시할 만큼의 정확도를 가지고 적전차의 파괴라는 근대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왔다. 이야말로 제2차 세계 대전에 있어서 의의 있는 전투였던 것이다. 영국군 제8군의 척추는 부러졌다. 오킨렉크 장군의 비행기가 6월 12일밤 카이로에 착륙도 하기 전에 감부트 사령부에서는 벌써 영국 기갑병단이 소멸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가잘라 라인의 보병과 토부룩 요새를 지키고 있던 철의 장벽은 파괴되었던 것이다.   롬멜은 빌 하케임과 토부룩 사막지대의 왕자였다. 릿지에게는 아직도 상처없는 완벽한 보병 사단이 몇 개 있었다. 그러나 1942년의 전차전이 벌 어지고 있는 판국에 그것들이 어떤 힘이 된단 말인가? 충분한 대전차 화기가 없는 보병 1개 연대정도쯤은 몇 대의 전차로 순식간에 박살을 낼 수 있었다.   6월 14일, 릿지 장군은 36시간 전에 오킨렉크가 지시한 것과는 다른 명령을 내렸다. 암호명령 「프리본」을 발동시켜 남아프리카 제1사단과 영국 본국군 제50사단을 북부 가잘라 라인 진지로부터 철퇴시켜 토부룩에 수용하든가 아니면 토부룩를 빠져나가 이집트 국경까지 후퇴시키려고 기도했던 것이다.   카이로의 오킨렉크는 이에 크게 반대하고 릿지에게 토부룩 방위전선을 버리지 말라는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카이로에 있는 오킨렉크가 상상하고 있던 정세는 릿지가 직면하고 있는 정세와는 판이한 것이었다. 런던과 카이로는 토부룩만을 가슴을 조이며 지켜보고 있었다. 이집트 국경의 이 대기지인 모래의 요새는 어떻게 될 것인가? 1년 전처럼 지켜낼 수 있을까? 또 롬멜은 즉각적인 공격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포위만으로 단념해야 할 처지인가?   하나 롬멜은 큰 수확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만 1년동안 그는 이것 때문에 싸워왔던 것이다. 영국군 기갑병력을 격파하여 그 보병사단을 제8군에서 고립시켜 사로잡고, 곧 힘을 돌려 토부룩를 점령한다. 그 다음은 카이로나 알렉산드리아다. 그리고 나일강, 근동의 유전(油田)과 페르시아만으로 나갈 수가 있다.   하나 롬멜의 사단도 손해가 컸다. 제15기갑사단은 발비아 가도로 나갔으나 전차 6대를 가진 제115연대와 제3대대는 영국군의 필사적인 공격으로 흩어져 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독일군 포병, 전차 및 급강하 폭격기는 남아프리카군이 도주해 가는 발비아 가도에 맹공격을 가했다. 다시 이 가도는 불길에 쌓였다. 이어 나이트 브릿지를 지키고 있던 여단도 사막을 버리고 동쪽으로 도주했다. 모든 부대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어떤 밤에는 독일군과 영국군이 몇 백 미터 사이를 두고 서로 스쳐지나가기도 했다. 이 중에서 영국 본국 제50사단은 대담한 소 부대 분산 탈출법으로 이탈리아군 전선을 돌파해 나가기도 했다. 후퇴아닌 적 후방으로 도망가는 묘한 퇴각이었다.   이리하여 토부룩 방위는 차츰 약해지기만 했다. 하나 처칠은 중화기없는 이 토부룩를 아직 믿고 있었다. 그는 6월 15일에 오킨렉크에게 전보를 쳤다.   『필요한만큼의 부대를 토부룩으로 투입하여 완전히 수비해 두기 바란다.』   오킨렉크는 승낙했다. 처칠은 또다시 전보를 쳤다.   『전력을 다해 토부룩이 지켜질 것을 정부는 기뻐하고 있다.』   이렇게 지켜져야 할 토부룩에 대해 롬멜은 기막힌 트릭작전을 썼다. 즉, 적을 속이기 위해 기동부대를 시켜 도시 앞을 통과시켰다. 그리하여 마치 그냥 토부룩를 통과해서 이집트 국경으로 향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이렇게 해서 롬멜은 제90경기갑사단 선두에 서서 발비아에 도착했다. 영국군은 이에 속아 넘어가 상급부대에 보고했다.   『경보! 롬멜은 이집트 국경을 향해 진격중!』   이야말로 예정대로 들어맞은 작전이었다. 롬멜은 즉각 되돌아와 토부룩 남서쪽에 대기중인 DAK 돌격사단과 역시 우회해서 토부룩 근처에 자리잡은 이탈리아 제20기계화 군단으로 갔다.   6월 20일 날이 밝아올 무렵, 롬멜과 그 참모부는 전투 지휘소를 전진시켰다. 롬멜은 혼자 서있었다. 가슴에는 쌍안경이 걸려 있고, 그는 철모를 쓰고 있었다. 때때로 쌍안경으로 토부룩 방면을 살핀 다음 은폐물을 대신하는 작은 사구 그늘로 들어가 무언가 생각을 하면서 걸어다녔다.   시계바늘은 천천히 5시 20분으로 가까이 가고 있었다. 멀리 폭음에 이어 하늘에 작은 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급강하 폭격기, 수평폭격기, 그리고 전투기 편대였다. 독일과 이탈리아 연합 공군이었다.   롬멜은 있는 비행기를 전부 동원해서 토부룩 남동단(南東端)을 공격하기로 했던 것이다.   제1파장에 이어 제2파장이 공격을 이었다.   인도군이 버티고 있는 동남부에 모래기둥이 번쩍 날을듯이 솟아오른다. 뒤따라 철조망, 콘크리트의 파편 그리고 무기들이 하늘로 날았다. 폭격은 연이어 맹타를 가했다. 방위선 전면의 철조망 벌판은 5킬로미터에 걸쳐 뒤엎어졌다.   그 다음이 기갑사단 차례였다. 제21사단장 폰 비스마르크 장군과 제15사단의 클라제 대령은 대대적인 공격을 가했다. 이를 지원하는 부대는 경험이 풍부한 제15전차 보병사단이었다. 이때에 제361 전차 보병 연대의 제1,제3대대는 전투가 끝나 롬멜의 특별상을 받았다. 에른스 중위의 제8중대는 항만지구로 제일 먼저 돌입했고 빌스하우스 중사가 거느리는 소대는 적 해병대의 저항을 때려 부수었다. 그리고 또 제5기갑연대 제8중대도 있었다. 그들은 1년 전에 전차를 내버리고 간신히 도망해 나온 추억을 되씹으며 공격을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럴 수가 없었다.   방어진지는 1년 전보다 강화되어 있었고 수비병력도 비슷하게 3만 내지 4만명이었다. 그러나 단 한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 대부분의 인도, 남아프리카, 영국군은 가잘라 전선의 싸움으로 몹시 피곤해 있었고 사기도 떨어 진 채였다. 그리고 이긴다는 신념이 없었다.   무서운 급강하 폭격기의 엄호공격에 발을 맞추어 기갑부대는 전진했다. 거의 전차의 포탑에 닿을만큼 저공으로 내려온 비행기들은 100미터 앞에 폭 탄 세례를 가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전차는 전속력으로 폭연 속으로 달려갔다.   포병연대 병력도 뛰어나와 기관총좌를 차례차례 점령해 갔다.   제15기갑사단은 8시 30분에 전차호 돌파작전에 성공했다. 공병과 돌격대의 사전준비는 완벽했다. 빈 기름통들을 호에 채웠던 것이다. 이때 롬멜이 최전선 현장에 나타났다.   『서둘러라, 빨리 빨리! 조금밖에 남지 않았다!』   도처에서 공군의 정확한 엄호가 이번 작전의 특색이었다. 영국군은 이것을 예상에 넣지 않고 있었다. 발비아 가도는 유명한 시디 마호무드 십자로에서 엘 아뎀으로 꺾어진다. 여기서도 이와 같은 돌격전이 감행되고 영국군은 어이없이 지고 있었다. 포병 관측병이 항복했다.   그러나 롬멜에게도 계산착오가 한 가지 있었다. 이탈리아 제20기계화사단의 부진이었다. 그들은 영국군 최전선 앞에서 꾸물대기만 하고 한 치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급속히 진전한 DAK 제15기갑사단 측면은 위협을 받게 되고 적의 포진은 이곳으로 화력을 집중시켰다. 무서운 고전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롬멜은 여기에도 나타났다. 그리하여 위기는 모면되고 진격은 정상화되었다.      토부룩 공방전은 계속되었다. 독일군 포병은 전진하여 방어진지에 직접 사격을 가했다. DAK 제15기갑사단 소속의 포격 솜씨는 실로 놀라울만했다. 제21기갑사단 제48포병대대의 한스 M 파프 하사는 105밀리포로 30분간에 80발이나 쏘아댔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탄약을 날르는 동안 그는 엄청난 선물을 발견했다. 지난해 독일군이 산적(山積)한 채 두고간 포탄더미 였다.   『와아! 이게 웬일이냐?』   구경도 맞았다. 그는 마구 쏘았다. 50발을 쏘자, 그때서야 전진 명령이 내렸다. 몇 백미터 전진―.   18시 30분, 제15기갑 사단은 가블 가젬 보루의 적을 몰아내 버렸다. 그리고 피라스트리나 보루의 항복은 19시―이리하여 전장 3분의 2가 독일군 수중에 들어갔다.   한편 〈총사령관 전대〉또는 직접 지휘관의 이름을 따서 〈킬 전대〉라고 불려진 부대 선두에 선 롬멜은 함께 DAK의 돌파작전에 몸을 내던졌다. 이 부대는 그의 개인 지휘하에 있었다.   약 1개대대 병력쯤되는 이상적 쾌속부대라고 할 수 있는 이 전투부대는 전차 1개중대, 대전차포 및 혼합 고사포 1개중대 그리고 장갑정찰차, 무선차 각 1개 소대로 편성되어 있었다. 롬멜은 이 부대를 거느리고 늘 전투의 초점적 위치를 고수했다. 롬멜은 이들과 함께 지뢰를 파내기도 했다. 또 길도 닦았다.   드디어 영국 측 요새 사령관 클로퍼 장군은 절망상태에 들어가고 말았다. 사령부는 연이어 급강하 폭격기의 공격을 받아 사령관 자신이 여기저기 피해다니다 보니 부대와의 연락도 취하지 못했다. 정오 무렵부터 그는 명령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보고차 카이로로 날아간 릿지 장군은 나일강변에서 토부룩의 사투를 속수무책인냥 방관하고 있었다. 시내 여기 저기에 불길이 오르자, 클로퍼는 릿지에게 호소했다.   『정세는 절망적. 서방으로 탈출 예정.』   카이로는 침을 삼키고 런던은 떨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 클로퍼로부터 마지막 연락이 왔다.   『이제 다 늦었음. 대부분의 수송수단은 파괴되고 행동의 자유도 상실됨. 긴요한 자재 파괴가 끝날 때까지 저항을 계속할 것임.』   이리하여 1년전에는 28주간에 걸쳐 지켜낸 요새 토부룩은 함락되었다. 이에 앞선 가잘라 전투와 독일군의 맹포화 그리고 급강하 폭격과 지뢰와 철조망을 완전무시한 DAK의 돌격전으로 제8군은 무너져버린 것이었다.   6월 21일 새벽 5시, 롬멜은 폐허가 된 토부룩에 입성했다. 항구에는 독일군 포격으로 침몰한 배가 많았다. 물 위로 솟아오른 마스트나 굴뚝이 구슬퍼 보였다. 그는 발비아 가도에서 클로퍼 장군의 항복을 받았다.   클로퍼를 맞은 롬멜은 화가 나 있었다. 차량과 식량 창고까지 폭파시킨 영국군에 대한 분노였다. 그는 클로퍼에게 이렇게 말했다.   『귀관이 수송수단을 파괴한다면 본관은 포로들에게 사막 강행군을 시켜 야하고 또 식량 창고를 폭파했으니 귀관의 부하들은 먹일 수가 없을 것이오.』   클로퍼는 냉정하게 대답했다.   『본관은 명령에 복종할 뿐입니다. 각하.』   3만 3천명의 포로들은 비틀거리면서 집합소로 모여들고 있었다. 영국 저널리스트 알렌 무어헤드는 그 전기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완전한 패배였다. 독일군이 포획한 무기만 해도 사막전 개시 이래 최고에 달했다. 이집트의 길은 열리고 단 하루만에 토부룩을 점령한 롬멜은 이제야 이집트로의 진군을 결심했다.』   롬멜의 전법은 이러했다. 그러나 그는 곧 나일강변으로 향할 것인지? 롬멜은 그게 소원인듯이 보였다. 이제 최종 목표 나일강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날로 그는 군인으로서의 최고 지위를 얻었다. 라스텐부르크로부터 원수진급통지가 온 것이었다. 이제부터 그는 롬멜 원수라고 불리어질 것이다. DAK 기갑부대와 함께 괴로운 짐을 져온 월터 네링은 기갑병단장이 되었다. 롬멜은 자기가 가졌던 낡은 대장 계급장을 그에게 선물로 주었다. 동시에 이탈리아군의 카봐렐로와 바스티코도 원수로 승진했다. 토부룩의 용사들은 모두 승진과 훈장을 아울러 가졌고 풍부한 전리품으로 웃음꽃이 피고 있었다. 그리고 1년 전에 잃었던 보급품도 승리의 기쁨속에 되돌아 온 것이다.   (17) 카이로의 독일 정보망   카이로 시내에 있는 킷 카트 캬바레에 생기가 돌기 시작하는 것은 대개는 한밤중이 지나서였다. 나일강으로부터는 산들바람이 불어오고 별들이 깔린 어두운 하늘은 분수대와 반원형 댄스홀을 감싸듯 내려다보고 있었다. 카이로에서 제일 고급인 캬바레를 둘러싼 높은 담벽은 구경꾼들이 넘겨다 볼 수도 없었다. 부자들이나 지위 높은 고관들만이 몰려 들었다.   우아한 옷차림의 귀부인들도 한몫끼고 있었다. 1942년 무더운 여름밤의 카이로, 여기서는 아직도 아랍과 유럽이 평화스런 숨박꼭질을 하고 있었다.   이집트는 북아프리카전의 영국군 기지이고 수도 카이로는 대영제국의 번화한 병참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중립을 지키고 있었다.   전쟁과 평화가 교차되고 있는 가운데 그래도 이곳은 상업 도시답게 흥청대고 있었다. 소란하고 호들갑스러운 교성이 흐르고 값비싼 위스키, 소다, 페르노, 진나, 피스를 찾는 손님들도 늘어났다. 밴드는 유럽의 탱고나 폭스 트롯트를 연주한다. 그 사이에 아라비아 무곡도 흐르고…….   이날은 특별 무대가 있었다. 헤크마트 파하미의 등장이 있다고 한다. 그녀는 오리엔트에서 톱으로 꼽히는 미인 댄서였다. 그녀의 춤을 보고 폭포수 같은 박수가 일어났다. 꽃다발이 날으고 그녀를 숭배한다는 부자들의 명함을 가진 보이가 바쁘게 돌아간다. 그녀의 파트론이니 친구는 헤일 수없이 많았다.   그러나 그녀가 진정으로 대하고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밖에 없었다. 그는 이집트의 부호 훗세인 가팔이라는 사람이었다. 이 친구는 돈과 기지, 그리고 노름꾼 정신, 또한 여유 있는 시간, 그 모두를 갖고 있었다. 하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훗세인을 미인에게 홀딱 정신을 잃은 얼간이 정도로 밖에 여겨주지 않았다.   그러나 사실에 있어서 그는 독일의 정보부원인 한스 에플러였던 것이다. 동료인 겔트 잔트슈테데와 함께 카이로에서 특별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미국 여권을 이용하여 아일란드계 미국인으로 자처하고 있는 그는 훗세인 가팔의 친구 피터 몬카스터라는 이름으로 와 있었는데 통칭 「잔디」로 불려졌다.   대만원인 킷 카트에는 춤이 벌어졌다.   훗세인 가팔은 급사를 부르다가 가까운 테이블로 시선을 보냈다. 그곳에는 5,6명가량의 이집트 장교가 앉아 있었다. 사다트 소위도 있었다. 그리고 압델 낫셀이라는 어깨가 넓은 중위도…… 이들은 자주 동료 장교들과 어울려 있었다. 이들은 영국의 친구가 아니었다. 어떤 때를 기다리고 있는패들이었다. 이집트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는 패들인 것이다.   킷 카트에서 만난 훗세인 가팔과 사다트의 시선은,   『오, 왔군!』 하는 눈인사를 주고 받았다. 물론 절대로 아는 척 하지 않는다.   이때 바깥이 소란해지고 호외가 한장 날아들어온 모양이었다. 보이가 영국인 테이블 앞에서 설명을 했다. 신나는듯이…….   『롬멜이 토부룩을 점령했다고 합니다. 단 하루만에……. 영국군 제8군은 도망중입니다. 독일군은 곧 이리로 오는 모양입니다. 이집트 국경을 넘어서 말입니다.』   귀를 기울이는 영국 사람들의 놀라는 얼굴을 보고 보이는 한마디 덧붙였다.   『독일군은 모레쯤이면 입성하겠지요. 롬멜 파샤는…….』 하고 존칭을 나타내는 파샤를 롬멜에게 붙였다. 한스 에플러는 신중히 고 개를 끄덕이며 옆자리 신사에게 말했다.   『좋지 않은 소식이군요.』   『정말 대단히 불쾌한 소식입니다.』   신사는 사복을 입었으나 한눈으로 영국 식민지군 장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격정에 쌓인 감정을 감추고 있었다. 이 사람은 카이로 주재 영국 비밀 정보부 책임자 던스튼 소령이었다.   훗세인 가팔은 다시 말했다.   『정말 괘씸한 롬멜놈이지요.』   던스튼은 상대가 친영파 청년인줄로 잘못 알았다.   『그렇지요. 그놈은 악마입니다. 토부룩를 어떻게 해서 그렇게 해치웠 을까요! 지난 해는 여덟달이나 버티어 냈는데, 이번에는 단 하루만에…….』   훗세인은 그말을 가로막았다.   『제8군은 전멸입니다. 토부룩에서 3만명이 포로가 되었어요. 하지만 말입니다. 이집트에는 영국군이 득실대고 있고 또 제10군이 있지 않습니까? 독일군이 시리아에서 뭘 어쩌겠다는 것입니까? 이제 그들은 우리들의……』 하고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방향을 바꾸어,   『우리들은 독일에게 카이로를 넘겨주지 않을 겁니다.』   던스튼 소령은 한순간 그를 의심하는 것 같더니 훗세인의 진지한 눈을 보자, 어째지 못할 사람이라고 느꼈는지,   『안심하십시오. 롬멜이 만일 쳐들어온다면 제10군이 가만히 있겠어요?』   잔디의 눈이 가늘어지며 미소를 지었다.   『참 좋은 말씀이십니다.』   그때 헤크마트가 나타났다. 박수의 물결로 한 순간 소음은 사라지고 환호성으로 넘쳤다. 헤트마트가 무대가 올라섰다. 정말 그녀는 뛰어난 미녀였다. 물론 아라비아식 미인이지만……. 그녀는 다리가 늘씬한 미국식 팔등신 미녀는 아니었으나 완전한 포옴, 고양이처럼 나긋나긋한 동작, 매력 있는 눈을 가진 아라비아 여인은 그야말로 완벽하다고 할 수 있는 춤을 추었다. 이런 춤은 카이로 아니고서는 볼 수 없는 신기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독일 정보부의 정보수집가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꽃이 날으고 우뢰 같은 박수가 터져나왔다.   그러나 이러한 환락의 소용돌이가 계속되는 가운데 호외는 온 카이로 시내에 뿌려지고 롬멜에 관한 소문은 번개불이 떨어져 온 시가를 태우듯이 번져가고 있었다. 이집트 독립을 염원하는 대학생들은 데모까지 벌이기 시작하는 판국이 벌어졌다.   『롬멜이여 진격하라!』 고 외치면서…….   1942년 6월 21일 밤 카이로에서 1만 2천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미국 워싱턴의 백악관에서는 윈스턴 처칠과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마주 앉아 있었다. 처칠 영국 수상은 전황협의를 위해 날아온 것이었다. 별로 재미있는 이야기는 없었다. 유럽은 프랑스, 스페인 국경지역으로부터 노르웨이의 나르빅까지 독일군의 수중에 들어있고 아시아에서는 일본군이 승리의 진격을 계속하고 있었다. 오래된 영국의 요새 싱가포르는 백기를 들었고 히틀러의 잠수함대는 백만톤의 연합군 함선을 수장했다. 그리고 소련 영토에서도 독일군은 볼가강변에 육박하고 있어 스탈린은 미친듯이 제2전선 형성을 부르짖고 있었다.   이런 때 미국과 영국은 어디서 히틀러를 격파해야 하는가가 문제의 초점 이었다. 두 거두는 자기 편의 자위력이 든든한데 일단 만족하면서 롬멜에게 토부룩을 포위할 능력이 있을까 하는 의견을 주고 받고 있었다.   이때 한 장교가 들어와 말없이 루즈벨트에게 종이쪽지 한 장을 건네 주었다. 그 종이를 무심코 받아 들여다보던 대통령의 얼굴은 금방 굳어졌다. 무슨 일이 일어난 모양이었다. 그 옆에서 같이 보고 있던 처칠의 얼굴 역시 창백해졌다.   그 소식은 불길한 것이었다. 토부룩가 함락되어 2만 5천명이 포로가 되었다는 보고였던 것이다.    처칠은 그의 회상록에서 이 순간을 다음과 같이 추억하고 있다.   『이것은 전쟁 회상 중에서 제일 가슴 아픈 타격의 하나였다. 군사 작전면은 고사하고 영국 육군의 위신은 완전히 떨어지고 만 것이었다. 이보다 앞서 싱가포르에서 8만 5천의 장병이 항복했고, 또 다시 토부룩에서 2만 5천 (실제 수는 3만 3천)의 장병이 그 반도 못되는 적 앞에 무기를 내던진 것이다. 나는 루즈벨트 대통령 앞에서 나의 놀라움을 감추지를 못했다. 너무나도 괴로운 순간이었다. 패배와 굴욕이 엇갈렸다. 루즈벨트는 무엇을 도와줄까 하고 물었다. 나는 될 수 있는 한 많은 셔먼 전차를 즉각 근동으로 보내달라고 했다.』   1942년 이무렵, 루즈벨트와 처칠은 한 가지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튜브 아이로스〉라는 암호명으로 불려지고 잇는 원자폭탄이 미영 과학자들에 의해 폭탄으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까지 연구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튜브 아이로스〉계획에 전력을 기울이기로 결심했다. 이런 상황하에 두 사람의 정치가가 원자폭탄 제조를 하기로 하자, 현대의 거대한 괴물이 투기장에 나타난 것이다. 그나마도 롬멜을 두려워한 나머지 이루어진 이 결정은 토부룩의 독일군 승리의 그늘에서 핵시대의 문을 열게 했다.   그러나 원자폭탄을 당장 쓸 수는 없는 것, 이집트도 곧 잃고 말 것이 아닌가? 롬멜은 6월 21일 마트루로, 다시 이집트 국경으로 진출하고 있었다. 이제 알렉산드리아와 카이로, 수에즈를 노리게 되었다. 그리고 영국 세력의 적은 독일군만이 아니었다. 카이로를 중심으로 이집트 독립을 원하는 세력이 있었는데 영국을 증오하고 있는 이 소규모 조직들은 언제 위험한 조직으로 성장할런지 모르는 판국이었다. 독일이 만일 이러한 불평 분자를 통합시켜 키운다면 군부의 사다트 소위, 낫셀 중위, 기타 압델 라우스 일당은 어떻게 자랄런는지도 모른다.   아닌 게 아니라, 독일군 사령부에서는 1940년 이내에 이 문제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제1차로 착안한 것이 영국의 손으로 파면된 이집트군 참모총장 엘 마스리 파샤를 포섭하는 작전이었다. 엘 마스리는 영국을 적으로 알고 있었다. 압델 낫셀과 같은 장교들과 가깝고 또 이집트의 자유를 위해서는 독일이 승리할 것을 바라고 있었다. 이런 인물이 독일측에 붙는다면 강한 힘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이었다.   본국 사령부의 카나리스 제독은 공군과 정보부 근무를 겸하는 니코라우스 릿터 소령의 이 제안을 받고서 처음에는 놀랐으나 결국 이 계획을 승인하여 「엘 마스리 계획을 착수하라. 4주일후에 결과 보고하라.」는 각서를 내렸다.   릿터 소령은 제10공군내에 특별부대를 편성하였다. 그리하여 엘 마스리를 탈출시킬 비밀 공작을 벌였다. 엘 마스리는 나일 델타 지방의 베로로스 부근까지 잠수함을 보내주었으면 했으나 이것은 무리한 청이었다. 그리하여 의논끝에 카이로 전면 사막에서 독일 비행기로 그를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1941년 5월, 크레타 섬이 점령되자, 릿터는 제10공군으로부터 파샤 작전 용 하인켈 He 111 2대를 얻었다. 장소는 사막에 대해서는 자기 주머니 속처럼 알고 있는 현지 첩보원이 오아시스 통로에 접한 붉은 모래언덕 가까운 곳을 선택했다.   이곳이라면 엘 마스리 파샤도 자기 차로 카이로에서 몇 시간 동안이면 올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약속시간인 1941년 6월 7일 18시에 나타나지 않았다.   배신? 아니면 사고? 이들은 헛탕을 쳤다. 이어 공작망에서 보고가 왔다.   『엘 마스리 파샤는 체포된 듯함. 배신한 것 같음. 우리 통신도 위험함으로 금지하겠음.』   그러나 사실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았다. 엘 마스리는 이집트 공군 비행기로 약속 장소에 가려다가 실패한 것이었다. 영국군 관제 장교의 의심으로 감시하는 영국 비행기가 뒤따라왔기 때문이다. 당황한 조종사가 저공으로 날다가 나무를 받았다. 기체는 부수어지고 장군은 다행히 나무에 매달려 목숨을 건졌으나 체포될 위기에 놓여서 일시 도망을 쳤다가 3개월 후에 잡히고 말았다. 이렇게 독일은 여러모로 카이로에 정보망을 움직여 영국군의 근본적인 거세까지도 아울러 고려하고 있기는 했다. 그러나 결국 히틀러의 동부전선 중시책이 결정타를 못놓게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여하간 미미한대로 첩보활동은 계속되었다.   (18) 콘돌 작전   이집트의 늙은 너구리 정보원 알마시는 카이로가 가지고 있는 정보센터 로서의 가치를 잘 알고 있었다. 예를 들면 독일과 이탈리아의 여간첩 비안카 벨가미에 의해 해독되어지고 있는 무선전보의 가치를―, 그것은 카이로 주재 미국 대사관부 무관이 위싱턴에 보내고 있는 귀중한 정보였다.   1941년 이후, 이 루우트로 얻어진 귀중한 정보는 곧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거둔 군사작전의 승리를 갖다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정보의 원천도 어느 때가 되면 말라버릴 것이라고 알마시는 생각하고 있었다. 정보란 원래 그런 것이었으니까.   롬멜에게는 1941년의 겨울까지도 계속 정보가 보내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 정보의 샘이 말라버린 다음 일을 생각하니 몸서리가 났다.   롬멜은 1942년에 나일강변을 덮치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프리카 기갑 군단을 이끌고. 그래서 그는 이집트 지역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요구했다. 독일군이 나일 델타지역으로 진출했을 경우의 중요한 전략적, 경제적 거점의 점령준비, 기습 공격에 대한 대책, 파괴 공작의 방해에 관한 요소 등등 이었다.   롬멜은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골몰했다. 알마시는 자기의 오랜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이제 남은 길이란 육로로 사막을 가로질러서 정보원을 카이로까지 보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카나리스 제독은 알마시를 책임자로 임명하고 나서 작전명을 콘돌이라 붙혔다. 그는 브란덴부르크에 있는 정보사단을 직접 지휘하고 있었다. 카이로에 숨어들어갈 정보원으로 선발된 사람은 베를린 정보본부에 근무하고 있는 에플러와 잔트 슈테데였다.   작전을 준비하는데만 석달 반이 걸렸다.   롬멜이 일시 패전으로 후퇴했기 때문에 콘돌 작전의 기지도 후퇴했다. 그 결과 트리폴리에서 2천킬로나 사막을 가로질러 가지고 나일강변인 아시우트에 간첩을 공수해서 내려 놓아야 했다.   3천 킬로미터의 거리는 마드리드에서 모스크바 또는 노르웨이 북부에서 시칠리아 섬까지 가는 거리에 해당한다. 대부분의 낙하지는 적의 세력하에 있는 인적미답의 사막으로서 물과 염료 식량 등을 보급받을 가망이 없는 곳이었다.   사하라라는 엄청난 모래바다를 넘을 자동차를 위해서 밧줄로 엮은 사다리가 개발되었다. 최고사령부의 특별 명령으로 베를린의 어느 공장에서 만든 것이다.   모래 속에 차바퀴가 빠져서 헛돌아갈 때 이것을 그 밑에 깔아놓는 것이다. 그 밖에도 여러가지 특수한 자재가 필요했는데 이러한 새로운 조달은 전쟁 3년째 들어서서 자재부족 때문에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문제는 통신기에 있었다. 원거리와 근거리에서 모두 쓸 수 있어야 했다. 더더구나 그것은 가볍고 적어야 했다. 슈탄돌프의 무선기사들이 이 까다로운 주문을 명령기간 안에 개발, 제조했다. 훈장을 받을만한 공로였다.   1942년 2월 초순, 두 명의 정보원과 세 사람의 통신사가 자재를 가지고 폰 슈티펜스 상사의 안내로 베를린을 떠났다. 나폴리까지는 기차로, 그곳에서 Ju 52 두 대에 나누어 탈 작정이었으나 일이 쉽사리 풀려나지 않았다. 비행기는 모두 아프리카에 보내는 보급으로 바빴다.   상사는 로마로 되돌아와서 그곳에 공군으로부터 두 대를 빌렸다. 극비라는 딱지가 붙어 있었기 때문에 비행기를 조달하기도 힘들었으나 그래도 그는 정보부의 상사였다. 당장 효과를 거두는 『열려라! 뚝 딱!』하는 식의 주문으로 거뜬히 비행기를 얻는 화술을 알고 있었다.   트리폴리에서는 별장 한 채를 징발해 가지고 그곳을 작전본부로 정했다. 다음은 자동차를 준비해야 했다. 영국군으로부터의 전리품을 골라 잡았다. 디럭스형의 포오드 승용차 두 대, 포오드 1톤 반의 승용 트럭 두 대, 그리 고 신중한 시험 운전도 끝냈다.   행정(行程)의 대부분은 지도에도 없는 무인지대이기 때문에 콤파스 하나를 믿고 달려야 했다. 세 대의 자동차에는 아스카니아형 자이로 콤파스를 달았고 지휘차는 만약의 경우를 생각해서 태양 콤파스를 가지고 갔다.   1942년 4월 29일 출발. 지로 오아시스까지의 편안한 길은 쉬어가며 천천히 갔다. 이탈리아 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오아시스에서 최초의 차질이 생겼다. 이탈리아에서 만든 지도에 잘못이 있었던 것이다. 영국의 군사기지 인 다크라까지는 세릴, 즉 굳은 사지로서 고속주행이 가능하다고 기입되어 있었다. 토인의 말과 알마시의 경험으로는 사구의 연속으로서 이른바 사구회랑을 빠지지 않고서는 돌파할 수 없었다. 알마시의 정찰비행에 의해 광대한 사구원의 직경이 수백킬로에 이른다는 것을 알았다.   알마시는 이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를 알고 있었다.   새벽에 출발. 선발은 알마시와 에플러였다.   알마시는 손을 차량 밖으로 세 번 흔들었다. 속도를 높여라! 세릴은 아스팔트 길과 같았다. 수천년 전래의 바람이 암상위의 모래를 깨끗히 쓸어 놓았던 것이다.   안심하고 시속 1백킬로미터를 낼 수 있었다. 전주도 없고 도랑도, 이정표도 없었다. 사방이 끝없는 가도였다. 운전사는 두 개의 막대로 핸들을 콤파스에 고정시켜 놓고 악셀을 힘껏 밟기만 했다. 이틀만에 세릴 지대는 끝났다.   〈모래의 대해〉가 그들은 가로막고 있었다. 마치 폭풍 때의 노도와 같았다.   사구 횡단에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했다. 차를 사구 앞에 똑바로 세워놓았다가 힘껏 악셀을 밟으면서 뛰어올라야 했다. 꼭대기를 향해서. 하지만 잘못했다가는 큰일난다. 잘못하면 무너져내리는 꼭대기의 모래와 함께 10, 20, 때로는 60미터의 사구 크레이터 속에 빠지고 만다. 그렇게 되면 갈 곳이란 저승길밖에 없는 것이다. 꼭대기 조금 앞에서 핸들을 돌려 비스듬히 산등을 넘어서 반대편으로 빠져 나가는 것이다.   이틀이나 걸려 겨우 40킬로미터를 전진했다. 그것도 50도의 더위 속에서. 밤이면 8도까지 내려가는 대기 속에서 온몸을 떨었다.   사흘만에 군의관보가 사막 특유의 열병에 걸렸다. 덩달아 폰 슈티펜스 상사도 심장이 울렁거린다고 했다. 그는 이 작전에 있어서 기술면의 중요 멤버였다. 슈티펜스는 하루 20시간을 쉬지않고 일했다. 그러나 지금 사하라 사막은 그 결산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의사가 앓고 있는 지금, 환자를 누가 돌볼 것인가. 알마시는 이러한 형편에서 누구나 했음직한 결심을 했다.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출발 후 5일만에 그들은 돌아왔다. 지로 오아시스가 다시 그들을 반겨주었다.   결국 이런 변을 당한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다. 알마시는 모래바다를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자, 새로히 태세를 정비하면서 별도의 코오스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5월 11일 다시 출발했다. 이번에는 의사와 폰 슈티펜스를 남겨 놓았다. 바일할츠 중사도 병으로 남았다.   유명한 〈바리피카터〉를 남하했다. 이것은 모래바다 언저리에 이탈리아 군대가 긴 철봉과 측량용 케른으로 표적을 달아놓은 루우트였다. 그들의 또 다른 길 벗은 사하라의 태양이었다.   엿새만에 그들은 1798년 독일의 탐험가 프리드리히 호르네만이 발견한 후 다음과 같은 글을 쓰게 한 곳에 당도했다.   『우리들은 7일간이나 검은 바위뿐인 사막을 걸었다. 분명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황량한 곳의 하나일 것이다. 무시무시한 경치는 화산의 폭발로 생겨난 것이리라.』   알마시의 특별부대도 이토록 광대한 바위와 사막 속에 들어섰던 것이다.   베드윈족은 이곳을 〈캬레트〉라고 불렀다. 이 곳은 옛날의 화산 분출의 자리로서 사막을 덮은 바위들이 마치 악마가 뭉쳐서 사방에 던져 놓은 것 같은 모양이었다. 자동차만큼 큰 바위가 있는가 하면 그 사이에 주먹과 머리만한 돌들이 수없이 깔려 있었다.   알마시가 수색조를 끌고 몇 시간 동안 살펴본 결과 간신히 빠져나갈만한 루트를 찾아냈다. 특별부대는 시속 10킬로의 속도로 미로를 누볐다.   눈앞에 기괴한 모습의 케빌 산맥이 당당한 모습을 나타냈다. 광대한 고원으로서 서쪽은 8백미터 정도의 높이였으나 동쪽편으로부터 차츰 낮아져서 끝내는 사막과 합쳐진다. 다시 알마시가 앞장 섰다. 산길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되었다.   『1937년에 동쪽으로부터 내려왔던 일이 있었지, 그러니까 서쪽에도 들어갈만한 길이 있을 것이다.』 하고 알마시는 말했다.   암호무전으로 지금까지의 경과를 지아로에 있는 기지와 롬멜의 기갑군에게 알렸다.   브란덴부르크 정보대원인 아베를레와 웨버가 키레나이카의 마메린 근방에 있는 천막 속에서 이것을 수신했다.   통신사인 그들은 그후 롬멜에게 불리어가서 일했는데 그것이 이 작전에 슬픈 결말을 가져다 주었던 것이다.   고원에 올라간 알마시는 침착하게 케빌 산맥을 측량했다. 연장 2백 50킬로 미터의 산맥이었다.   『자연이 만들어준 훌륭한 비행장일세. 1937년에 왔을 때에도 알고는 있었지. 이런 비행장이면 대편대도 일시에 착륙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나일까지는 7백킬로밖에 남지 않았어!』   알마시는 측량을 계속했다.   5월 22일 토요일 저녁, 알마시의 대원들은 눈아래 전개된 낮은 지대에서 찰가 오아시스의 불빛을 보았다.   불을 피우면 발견될 우려가 있었기 때문에 찬 식사로 때울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아침, 일요일의 태양이 아름답게 떠올랐다. 이곳저곳에 있는 오아시스도 보였다. 그곳에는 물이 있었다. 신선한 물이. 푸른 녹음도 있었다.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 살고 있는 것은 적이었다. 그곳을 우회한다는 일은 어렵겠으나 그렇다고 야자수 나무 그늘마다 적의 초소가 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들은 이렇게 짐작하고 대담하게도 산에서 내려갔다.   두 대의 승용차에 여섯 사람이 탔다. 선두차에 알마시가 탔다. 얼마 쯤 내려가니 고갯길은 둘로 갈라져 있었다. 한편 쪽의 길은 오아시스로 통하는 길이다.   『어디 한탕 해볼까.』   알마시가 말했다. 하나 그들의 짐작은 빗나갔다. 길목에 있는 오아시스에 적군이 주둔하고 있었던 것이다. 몇 대의 차와 병사들이 먼지를 뒤집어 쓴 야자수 그늘에 서 있었다. 이제 돌아설 수는 없었다. 이미 그들은 이편을 보았던 것이다.   『그대로 전진!』   알마시가 명령했다.   『피스톨을 쏠 수 있도록!』   그러나 오아시스에 있었던 것은 영국군 아닌 이집트 병사들이었다.   보초가 손을 쳐들었다.   스톱,   『알겠나, 에플러! 우리는 사단의 선발대라고 말하라.』   알마시가 영어로 에플러에게 말했다.   에플러는 차창 밖으로 목을 내밀고 아랍말로 말했다.   『사단 선발대야!』   그리고 엄지손가락으로 윗쪽 고원을 가리켰다.   『장군이 곧 이리로 오신다.』   그제서야 이집트 병사는 손을 내렸다. 그 순간 그들의 차는 바람처럼 그앞을 빠져나갔다.   나무, 그립던 녹음, 그들의 차는 그 속으로 들어갔다. 말없이 담배에 불을 부치고 난 그들은 차 속에 있는 트렁크를 끄집어 냈다. 그 속에는 평복이 들어 있었다.   베를린의 정보부는 양복 속에 카이로에 있는 양복점 마아크를 누벼 넣었다. 그리고 트렁크 속에는 그들이 이곳에서 필요한 것은 모두 들어 있었다. 공작금 2만파운드도 들어 있었다. 독일환으로 당시 시세로 40만 마르크였다. 가짜 아닌 진짜 돈이었다.   이별은 간단했다.   『감상은 버리기로 하세.』   알마시가 말했다.   『그럼 또 카이로에서 만나기로 하지. 멋진 호텔을 구해 놓겠나?』   『그러구 말구.』   잔트 슈테데의 간단한 대답이었다.   에플러는 그이 버릇대로,   『암, 여부가 있나.』 하고, 입을 닫았다. 두 명의 간첩은 카이로를 향했다. 트렁크를 한 개씩들고―.   알마시 일행은 그 길로 돌아섰다. 그리고 2천킬로의 사막을 넘어서 돌아가는 길에서도 탐험가처럼 측량을 하여 지도를 만들고 스케치를 했다. 눈앞에 영국 수송부대를 본 일도 있었다.   6월 초순, 알마시는 빌 하케임 전면에 있었던 롬멜을 찾아가 귀환보고를 했다.   『각하 콘돌작전은 성공했습니다. 나일작전을 시작하셔도 무관하겠습니다.』   그러나 그는 곧, 그동안 이곳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가를 알 수 있었다. 롬멜 자신이 말해주었던 것이다. 롬멜이 그 일을 얼마나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그의 말로서 알 수 있었다.   롬멜은 5월 공세를 시작하기 전에 마메린에 있던 아베루노와 웨버를 불러다가 자기의 통신대에서 일하게 했었다. 이것이 잘못이었다. 혼전 속에서 롬멜의 통신대 일부가 붙들리고 말았는데 그 속에는 아베루노와 웨버의 무선차가 있었고 더구나 콘돌작전 관계 서류가 들어 있었다.   알마시는 크게 놀랐다. 그리고 롬멜에게 성급히 말했다.   『각하! 될 수 있는 일이라면 1개연대 정도의 병력을 끌고 가서 카이로에 보낸 친구들을 구해내고 싶습니다.』   한편 트렁크 속에 비밀통신기를 넣어가지고 가던 에플러와 잔트 슈테데는 알마시와 작별한 후 위험한 고비를 넘겨가면서 무사히 카이로에 들어섰다. 오킨렉크의 사령부가 있는 카이로는 웃고 있었다. 승리를 얻었기 때문에 휴가를 나온 영국 병사들이 돈을 물쓰듯했고 나일강에는 호텔을 겸한 유람선이 떠 있었다.   이집트의 부자 훗세인 가팔로 둔갑한 에플러는 여기서 부자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한편 잔트 슈테데는 아일랜드계의 미국인 피터 몬카스터였다.   두 사람은 유람선 지붕에 안테나를 달아놓고 이집트의 저항 조직과 접촉을 시작했다. 그후 아랍 연합공화국의 장관이 된 안왈 엘 사다트는 에플러의 공작원 중의 한 사람이었다.   사다트는 이집트 육군 정보부대의 소위였고 그의 친구인 그후의 아랍 연방 대통령인 압델 낫셀은 그때 수단에서 근무하던 육군 중위였다. 사다트는 카이로에 있던 반 영국적인 혁명장교였으며 낫셀의 대리 역할을 했다. 그들은 두 명의 독일인 간첩을 마담 아멜의 비밀정치 살롱을 통해서 전 이집트군의 참모총장 엘 마스리 파샤에게 소개했다. 두 사람은 이 반 영국적인 혁명파 군인으로부터 여러가지 귀중한 정보를 얻었다.   그러나 정보의 핵심은 그 당시 유명했던 무희 헤크마트 파하미였었다. 그녀는 영국 장교 사이에 인기가 있었기 때문에 최고의 정보를 얻을수 있었다. 인기의 절정에 있었던 아랍계 미인 댄서는 영국을 증오했고 영국을 괴롭히는 일이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았다. 에플러도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수단을 가릴 수 없었다.   그녀는 에플러에게 시리아 및 파레스치나의 영국군 제10군의 일부가 이동한 것과 알라메인 전선에 10만개 이상의 지뢰가 보내진 사실을 알려 주었다. 이 사실로 미루어 영국이 이 지점에 대방어선을 구축하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프레이버크 장군의 뉴질란드 제2사단이 마르사 마트루로 이동할 예정인 사실도 사단이 출발하기 전에 그녀가 알려주었다.   미국인 피터 몬카스터로 행세하는 잔트 슈테데는 날마다 약속해 놓은 시간마다 무전기 앞에 앉아서 귀를 기울였으나 연락이 없었다. 그 옆에는 이편에서 보내려는 통신문이 놓여 있었다.   훗세인 카팔과 피터 몬카스터는 롬멜의 눈과 귀가 되어 일하고 있는 터였으나 본부와 연락이 닿지 않아 침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알마시와 함께 2천킬로미터의 사막을 넘었단 말인가? 베를린의 정보본부와 롬멜은 콘돌에 어떠한 희망을 걸고 있었는가? 왜 이런 실패를 하게 되었는가.   두 명의 독일 간첩은 무사하게 카이로에 도착했고, 유람선에 안테나를 설치했고, 연락망을 조직했고, 무희인 헤크마트로부터 기막힌 정보를 얻었고 이집트의 반영 조직과도 접촉했다. 그러나 이 훌륭한 활동이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왜?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 일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다.   낫셀 정권의 장관 안왈 엘 사다트는 「이집트 혁명 비밀 일지」라는 그의 저서 속에 다음과 같은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어느날 에플러가 말하기를 『아무래도 송신기가 이상한 것 같다.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보부대의 장교인 사다트는 무선기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기계를 한 번 보아 주겠다고 약속했다.   『두 명의 독일 사람을 유람선으로 찾아가서 무선기를 찾아보았으나 어디 숨겼는지 알 수가 없었다. 지붕에는 안테나가 보였으나 요긴한 송신기 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자, 에플러가 전기 축음기 옆으로 갔다. 그리고 단 추를 누르자, 뚜껑이 훌렁 열렸는데 그 속은 비어 있었다. 이곳에 송신기 를 장치해 놓았던 것이다. 램프도 준배되어 있어서 뚜껑을 닫고 레코드를 들어가면서 송신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제아무리 의심이 많은 사람 도 이런 장소에 독일의 군용 송신기가 감추어져 있는 이것을 독일 정보부 원이 쓰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사다트는 세밀하게 기계를 조사했으나 고장은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의심이 많은 이집트의 혁명가는 이 사람들은 정보를 보낼 마음이 없는 것 이 아닌가하고 의심했던 일도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압델 낫셀의 열광적인 저항전선의 용사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 다.   『유람선의 내부는 도색영화를 방불케하는 관능적인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었다. 타락한 생활이었다. 아마 두 명의 간첩은 자기들의 임무를 잊은 것이 아닐까? 이런 생활에 대해서 의심까지 생겼다.』」   그러나 잔트 슈테데와 에플러가 모르고 있었던 일은 사다트도 역시 모르 고 있었다.   독일의 정보본부는 그들이 애써 보냈던 간첩들의 통신을 받을 생각이 아 예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송신을 받고도 모른 척했던 것이다.   왜? 어째서?   나에게 이 수수께끼를 풀어준 사람은 중동방면의 독일 정보활동을 지휘 했던 S소령이었다.   그는 안제로라는 가짜 이름으로 영국과 독일의 정보 전문가 사이에 알려진 인물이었으나 지금까지 본명은 알려지지 않고 있었다. 나 역시 이것을 폭로할 생각은 없다.   그들의 불행은 아프리카 전투에 있어서였다. 안제로는 아베루노와 웨버의 소식을 알자, 곧 통신대에 명령을 내려서 콘돌의 연락을 수신하지 못하도록 했다. 안제로는 생각했다. 어차피 붙들린 친구들은 입을 열고 말 것이다. 그리고 콘돌의 비밀을 일부나마 토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콘돌의 암호표가 영국의 수중에 들어갔다면―사실 영국은 이것을 입수했다. 영국의 전문가들은 통신사인 그들을 족칠 것이다. 그리고 충분한 지식을 얻은 연후에 통신극을 연출해서 독일 정보부를 혼란시킬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콘돌의 정보에는 가치가 없어진다. 먼저 에플러와의 연락을 끊으라는 안제로의 명령은 카이로에 숨어든 두 사람의 간첩의 안전을 위해서는 필요했던 조치였다. 이렇게 하는 것만이 그들에게 살아날 기회를 주는 것이 된다.   문제는 롬멜에게 있었다.   영국의 방첩부가 나일강의 유람선에서 그들을 찾아내기 전에 롬멜의 전차가 카이로를 점령해야 했다. 시간과의 경쟁―그러나 영국이 결국 앞서고 말았다.   잔트 슈테데와 에플러는 1942년 9월 유람선 안에서 체포되고 만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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