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AR-80의 전투에 대해서는 별로 올리지 않았군요. 저번에 김삿갓햏께서 올려 주신 좋은 글이 있지만, 인터넷을 찾다 보니, 이 기종의 전과에 관련된 좀 더 긴 글을 볼 수 있어서 번역해서 올립니다.
IAR-80의 최초 배치는 루마니아 제 8 전투 항공단 (Grupul 8 vanatoare) 의 제 59와 60 에스카드릴라(스쿼드론이란 뜻) 였고, 1941년 4월 15일에는 이미 활동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IAR 80의 2차 배치 후에는, 에스카드릴라 41이 합류해서, 제 8 전투 항공단은 완전한 세 스쿼드론을 구성하게 되었습니다. 1941년 6월 22일 소련과의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제 8 전투 항공단은 완벽한 준비를 갖추고 있었으며, IAR-80 역시 동부전선 초기부터 전투를 맛볼 수 있었습니다.
처음, 제 8 전투 항공단은 남부 지역 루프트바페 사령부의 관할 하에 있는 제 4 루프트플로테의 일부로 배속되었습니다. 이곳에는 또한 He 112 (아래 사진)기 2개 스쿼드론을 휘하에 둔 제 5 전투 항공단이 있었는데, 이 5 전투 항공단과 IAR-80의 제 8 전투 항공단은 지상 화력 지원을 주로, 2차적으로는 제공권 장약을 위한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지요. 하지만, 소련군이 루마니아의 플로에스티 유전 지대에 폭격을 가할 것이라는 첩보가 입수되면서, 7월 14일 제 8 전투 항공단은 루마니아 본국으로 소환되게 되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련군의 폭격이 거의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확실시되자, 제 8 전투 항공단은 다시 동부 전선으로 돌아가서 루마니아군의 베사라비아와 오데싸 공격을 지원하게 됩니다. 이 공중 지원은 1941년 10월 16일 오데싸가 함락되어 루마니아군의 공격이 잠정적으로 정지될 때까지 계속됩니다. 이 시기 동안, IAR-80A가 IAR-80을 대체하기 시작하게 되지요.
또한, 이 시기에, 이전에는 P24E 전투기를 사용하던 Grupul 6 vanatoare (제 6 전투 항공단) 역시 IAR-81로 교체를 시작합니다. 제 6 전투 항공단은 오데싸 공격에 1일간 참여했지만, 그 작전이 끝난 후 제 8 전투 항공단과 함께 다른 곳에 배치되게 됩니다. 1942년 초에는, 제 6 전투 항공단의 61과 62 전대는 IAR-81로 완전히 교체되어, 항공단의 명칭도 Grupul 6 bopi (제 6 급강하 폭격 항공단) 으로 개명하게 됩니다.
1942년에 이르러 IAR 80A는 grupuri 3, 8, 9와 에스카드릴라 42,43, 53에도 배치되기 시작합니다. 1942년 8월, 이전에 He112기를 사용하던 제 52 에스카드릴라는 제 42 에스카드릴라와 합병되었다가, 새로운 IAR-80로 대체하기 위해서 루마니아로 돌아갑니다. 이후, 이 전대들은 대부분 루마니아 본국 방어나 흑해 상공의 호위 임무를 수행하게 됩니다. 단지, 제 6 전투 항공단만이 1942년 전반기에 걸쳐서 IAR 80과 80A를 몰면서 동부 전선에서 활동했으며, 루마니아 파일럿들은 계속해서 승점을 쌓아나가고 있었습니다.
IAR-80이 동부 전선에서 순조로운 비행을 계속하고 있는 1942년 여름, 6월 12일에 미국 육군 항공대가 최초로 플로에스티 유전에 대한 공격을 시작합니다. 13대의 B-24가 이집트로부터 엄청난 거리를 날아와서(-_-;;;) 폭격을 시작했는데, 이에 대한 대비가 전혀 없었으므로 B-24는 거의 피해를 받지 않았으며, 단 한 기의 손실도 없었습니다. 이후, IAR-80A의 무장으로는 폭격기에 대한 공격력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절감하고, 13.2mm 기총을 장비한 B모델이 준비되기 시작합니다. 또한, 대공포의 집중 배치 등, 플로에스티 지역에 대한 대공 방어를 엄청나게 강화하기 시작합니다. (독일군에게도 이곳은 목숨줄이었으니까요.)
한편, 독일의 하계 공세 기간 동안의 스탈린 그라드 지역의 방어를 위해, 새롭게 루마니아 제 3군이 파견됩니다. 이 때, 제 8 전투 항공단과 제 6 급강하 폭격기 항공단은 루마니아군 상공의 방어를 위해서 동부 전선으로 파견되게 됩니다. 제 8 전투 항공단과 제 6 급폭 항공단은 Corpul 1 Aerian (제 1 항공군단)을 형성하여, 루마니아 원정군의 공군을 형성하지요. 독일 하계 공세 기간 동안, 두 항공단 모두가 전투에 참여하였는데, 제 6 급폭 항공단은 본래의 목적과는 달리 대부분 전폭기의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10월에는 제 3 전투 항공단의 하나였던 제 43 전대 역시 스탈린그라드 남서쪽의 Kerch Straits 지역으로 파견되어, 독일군의 통솔을 받으며 해안 방어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이때가 루마니아 공군이 가장 상종가를 치던 시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소련군이 1942년 11월 19일, 스탈린그라드에서 반격을 시작하였을 때, 루마니아 항공단의 기지는 매우 후방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이후 며칠간 기상 악화로 출격은 어려웠으며, 날씨가 개었을 때는 이미 소련군이 루마니아 육군과 독일의 전방 비행장을 유린하고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루마니아군의 비행장은 도망쳐 온 독일 항공기로 꽉 차 버렸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루마니아군은 몇 번에 걸친 출격을 하였으며, 이 당시에는 IAR-81은 전폭기가 아닌 본래 목적에 맞는 급강하 폭격기로서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소련군은 12월 16일에 제 2차 공세를 시작하게 됩니다. 소련군은 독일군의 우익을 절단하고, 아직까지 스탈린그라드에 갇혀 있는 제 6군을 구출하기 위한 반격의 기회를 무산시키며, 독일군 주력을 포위하려고 계획했죠. 그 공격의 창끝은 북부의 이탈리아 제 8군을 향하고 있었으며, 초기공세는 그 바로 동쪽의 루마니아군에 집중되었습니다. 루마니아군의 비행기지는 이탈리아군의 바로 남서쪽에 있었기 때문에, 곧 공격이 가해졌습니다. 대부분의 기체들이 비행장에서 뜨지도 못한 채 포기되었으며, 간신히 살아남은 기체와 승무원은 후방으로 퇴각합니다. 결국, 루마니아 제 6, 8 항공단은 1943년 1월 본국으로 귀환하여 재정비를 시작하게 됩니다. 제 43 전대만이 Kerch 근방에 남아서, 1943년 초반에 쿠반 교두보 방어에서 싸우게 됩니다.
이 시기부터, 소련 공군은 IAR 80을 능가하는 새로운 전투기를 도입하기 시작하고, 루마니아 공군은 두들겨 맞기 시작합니다. 1942년 10월의 제 6, 8 항공단의 파견때부터, 1943년 6월의 43 전대의 퇴각때까지, 루마니아 공군은 39킬을 달성하지만, 전투중 26대의 전투기를, 그 외 여러 사고로 토탈 49대의 전투기를 잃게 됩니다. 더 강한 엔진을 적용하는 IAR 80의 실험이 모두 실패해서, 루마니아 공군은 새로운 디자인을 찾게 되고, 결국 Bf 109G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음... IAR 80에 강한 엔진을 적용하는 실험이 있었군요. 역시 엔진만 바꿔 단다고 강력해 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몇몇의 Bf109기는 1941년부터 이미 루마니아군에서 사용되고 있었으므로, 별 저항 없이 받아들여지게 되죠. 이 기간 동안, 루마니아로 귀환한 부대들은 새로운 IAR 80 모델들로 교체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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