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내 언행 때문에 마음 상한 사람 있으면 미안하다. 나잇값 못했네 ㄹㅇ


근데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닌데 헛다리 짚으면서 엄한 걸로 욕하니 좀 빡쳤던 것도 사실이야.

난 아마 여기에서 글 쓰거나 읽는 애들 99.9프로의 학부 선배일거야. 틀딱이라고 자랑하는 건 아니고, 그냥 오랫동안 이 학교에 있으면서 보고 느낀게 많고 나름대로 고민했던 부분도 많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어서 굳이 쓸데없는 소개를 해봤어.

학벌이니 뭐니 말이 많은데, 사실 우리 학교의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야. 지스트를 진학할때 '학벌에 대한 이득'만 생각하고 진학하는 애들이 어딨어;; 등록금이니 연구니 각종 혜택들 자로 재보고 오는거잖아.

이 학교의 진짜 문제는...학교 전체 시스템이 놀랍도록 경직되어있고 보수적이란거야. 아, 보수라고만 하면 정치적으로 보수진영인 사람들 욕하는 것 같으니까 정정할게. 놀랍도록 경직되어있고 '꼴통'이란거야.

솔직히 만든지 30년 남짓밖에 안된 학교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마인드가 폐쇄적이야. 작은 집단(학교를 넘어서)이 사회에서 살아남고 강해지는 방법은 그 작은 체구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서 시대의 흐름에 유연하고 발빠르게 대처하는 건데 우리 학교는 그 점을 전혀 살리고 있지 못해.

굳이 내가 예를 들지 않아도 다들 하나씩 떠오르지? 진짜 등신이란 말로도 부족한 불통 행정처리, 연구중심대학 유일의 게임 및 인터넷 통제, 학생들과의 논의없이 교수들이 지 입맛대로 개편하는 교육시스템, 제로에 가까운 언론 플레이(언론 플레이가 나쁘게 들릴 수도 있을텐데 기관의 정당한 성과를 대외적으로 알리지 못하는건 굉장한 실책이야), 그러면서 기관의 청렴도는 몇 년 연속 과기원 꼴등.

이런거 고치자고 개선하자고 했을때 학교에서 피드백 온 적 있어? 나는 옛날에 이런거 고쳐보려고 쳐싸우고 다니다가 오히려 역으로 욕만 뒤지게 먹고 나가 떨어졌어. 그 때 대부분 반응은 "대학생 주제에 뭘 안다고 깝쳐;" 이런 류였거든.

혼자는 불가능해. 이런 걸 고치려면 애들이 단합하고 행동해서 뭔가를 쟁취해야하는데, 사실 진짜 문제는 학교 욕하느라 바쁘지만 학부생들의 마인드도 위에서 말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거야. 상당수의 지스트 애들이 이런 문제의식에는 공감하지만 행동하는건 두려워하거나 귀찮아하거든. 이 쪼끄만 학교에서 뭘 굳이 긁어부스럼을 만드느냐, 넌 뭔데 나대느냐, 학교가 다 알아서 하겠지 뭘... 등등... 굳이 나열해서 뭐하냐, 학부 학생회도 없다며 지금은.

까놓고 말해서 여기서 글쓰고 있는 애들도 대부분 이런거 고치자고 나서자고 하면 가-만히 있을 걸. 한 술 더 떠서 "선동하지마!" 이런 애들도 있을지도 몰라. 요즘 세대들 시위니 행동이니 하면 또 이미지 자체가 ㅈㄴ 부정적이잖아. 조용히 있다가 졸업이나 하고 싶어한다고. 이런데 상황이 나아질리가 없지. 학교가 학생들 눈치 볼 필요가 전혀 없잖아; 그니까 애미뒤진 학교란 소리나 나오는거고. 아마 이 글 읽고도 "그걸 내가 왜해요; 학생이 그런거 신경써야하는 시점부터 망한 학교 아닙니까;" 이런 생각하는 사람들 많을걸...

이런 와중에 학벌이니 뭐니하는걸로 어그로 끄는건 내 입장에선 위선적으로 보이지 않겠어? 나도 대학원 나왔지만 사실 대학원생은 대체로 학교 시스템에 '탑승'하는 입장인데, 학벌이 어떻고 학부생들의 뽕이 어쩌고 저쩌고...

걍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게 본인들을 위해서도 이로워. 욕하고 싶고 정말 문제가 있다 느끼면 맘 맞는 사람들 찾아서 달려들어봐. 아니면 미련 딱 버리고 자신의 커리어를 위한 길을 가던가. '학교에 불만은 있는데 나서기는 싫고 알아서 해결됐으면 좋겠는 사람.' 니네가 읽으면서도 뭔가 이상하지 않아?

에휴...글 다쓰고 나니까 갑자기 현타온다... 내가 박사까지 따고 후배들한테 이런 글이나 쓰고 있을 줄은 진짜 상상도 못했는데... 한 편으로는 가슴이 아프기도 하네. 새해 복들 많이 받고... 공부 열심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