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7월 2일, 기아그룹 문제가 거의 갈무리되어 갈 무렵, 태국 바트화의 가치가 폭락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태국 정부가 변동환율제로 변경하면서 일어난 일로, 변동환율제로 돌린다는 뜻은 환율 방어를 포기하겠다는 뜻이었다. 결국 이렇게 가다가는 국제통화기금의 구제금융을 받을 것이 뻔했다.

강경식 선배는 태국 바트화 폭락이 국내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태국 바트화 폭락은 우리나라에 큰 영향은 주지 못할 거야. 한국은 선진국의 초입에 있는 나라고 태국은 동남아에서나 알아주는 후진국이야. 그런 나라가 부도가 나든 바트화가 폭락을 하든 우리나라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할 거야."

나의 생각은 물론 달랐다. 냉전 시대에는 도미노 이론이라는 말이 있었다. 베트남이 공산화되면 인도차이나가, 인도차이나가 공산화되면 태국이, 태국이 공산화되면 말레이시아와 미얀마가... 이렇게 연쇄적으로 공산화될 것이라고 생각한 이론이었다. 이것이 똑같이 금융에서 적용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우리나라는 펀더멘탈이 보기보단 약하기 때문에 이런 도미노 이론이 한국으로 북상한다면 위기에 빠질 것이라는 것이었다. 

한국의 가용 외환보유고는 해외에서 한국 시장에서 박박 긁어 모은 결과 400억불이 조금 안 되는 수치까지 모였다. 그러나 더 모으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7월 11일 나와 비서관들은 일본을 비공식 방문했다. 아시아 개발 은행이나 아니면 아시아통화기구를 통해서 200억불 정도를 지급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일본에서는 일본도 동남아금융위기가 아시아금융위기로 확산되지 않기 위해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고 1000억불 정도의 아시아통화기구를 조성하려고 했으나 티모시 가이트너 재무부 국제담당 차관보가 반대를 하는 바람에 아시아개발은행을 통해 받는 수단밖에는 없겠다는 답변만 듣고 왔다.

아시아개발은행에서 받을 수 있는 돈은 50억불 밖에 지원받을 수 없었고, 일단 그것이라도 받아올 수 밖에 없었다.

재경원에서는 그것 말고도 5월 중순부터 신디케이트론이나, 백업 퍼실리티, 자산담보부증권을 동원하여 최대한 달라를 끌어오는 방법을 쓰고 있었고 덕분에 외환보유고가 7월 31일에는 562억불까지 증가하는 등, 국가부도 사태는 완벽하게 방지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 되었다.

6-7월에는 혼란 상에도 불구하고 환율이 오른 덕에 수출이 호조세를 보였다. 수출이 호조세를 보이면서 재경원, 경제수석비서관실에서는 긴장감이 풀린 듯한 모습이 역력했다. 

그러나 나는 한 번 기아사태 때 당했기 때문에 항상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어떻게 경제는 다시 환생할 수 있게 될 것인가... 고민 속에 잠이 들기 일쑤였다.

드디어 달력은 8월로 넘어갔다. 8월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 신디케이트론: 최소 2개 이상의 은행이 차관단을 구성해 공통의 조건으로 일정 금액을 기업이나 국가 등에 융자하는 일종의 집단 대출을 뜻한다.

※ 백업 퍼실리티: 단기 증권 발행 따위와 관련하여 차입자의 지급 능력을 보증하거나 차입자에게 필요한 금액의 조달을 보증하는 신용 공여 방식.

※ 자산담보부증권: 기업 및 금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각종 대출채권이나 매출채권, 부동산 기타 다양한 형태의 자산을  기초로 증권을 발행하여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