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극의 경지에서는 시간이 곧 거리요. 그러나 찰나의 순간에 이루어지는 수천억 가지의 조합 속에서 흐름을 읽는 궁극의 거리를 온전히 터득하는 것은 인간의 감각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소."

진소청이 말했다. 관념과 현실은 다른법이다. 마음보다 빠른 것은 없으나 인간의 마음이 흐르는 속도는 저마다 상이하며, 상대의 마음을 완전히 읽어내어 대응 한다는 것도 실제로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 대신 나는 흐름을 느끼기로 하였소. 그러자 흐름의 아래와 위에는 축이 있고, 연속적으로 만들어지는 모양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지. 흐름은 바로 원이었소. 장삼봉진인이 말하던 원도 바로 그걸 지적하는 것이었지."

이는 고금 제일에 가까운 재능을 지닌 사내 하나가 오백여년을 갈고 닦아온 궁극의 '무'이자, 강론이었다. 백웅은 멍청한 눈으로 머리를 긁적이고, 때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어려운 이야기이지만, 어렴풋이 무언가를 깨달을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백웅은 원을 상상해보시오. 머릿속에서 그려보시오. 어떻소? 원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걸 알면 간단하오."

차분히 설명하는 진소청을 보며, 여동빈은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띄었다. 언뜻 보기에 그것은 부드러운 미소였으나, 한편으론 씁쓸함과 권태가 어려있었다.

'지금 백웅은 진소청의 말을 십분지 일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진소청 정도 되는 사내가 오백여년을 전심전력으로 투자한 일이 큰 쓸모도 없이 소모되었구나.'

안타까웠다. 보기드문 천재가, '둔재'에게 가르치기 위한 무공에 오백여년을 전념해온 상황이 안타까웠다. 이것은 검선의 눈에 더할나위 없이 처연한 비극이었다.

신역에 이르는 길은 한없이 많다. 고금제일이라 불리는 천재 진소청이, 단 한사람만을 위해 예비한 무학은 그 목적에서부터가 본인의 '무'가 아닌 '타인'의 무를 위한 것임으로, 진소청에게 있어 최적의 길은 될 수 없었다. 만약 진소청이 '백웅에게 무학을 전수한다.'는 목적을 배제한 체, 본인의 무 에만 집중하였다면 지금 쯤은 훨씬 더 높은 경지에 이를 수도 있었으리라.

적어도 삼황오제라 불리는 자들에게 통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그 정도의 옛 지배자들을 완전히 '압도'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을 것이다.

'만약 백웅이 없었더라면? 진소청이 무공에만 전념하였다면... 만약 그랬더라면... 으음... 어쩌면...'

어쩌면... 잠시 고민하던 여동빈은 이내 머리를 흔들었다.

'그랬더라도 내게는 미치지는 못했을 것이다... 고작 진소청 정도의 재능으로는...."

그랬다. 진소청이 최적의 길로 신역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여동빈의 상대가 되기엔 부족했을 것이다. 기껏해야 반고와 검을 견줄 정도일까. 여동빈의 경지에 이를 정도의 재능은 아니니.

'그래도 반고와 진소청 둘이 협공을 한다면 왼손 하나로는 상대해 볼만 했겠지. 꽤 재미가 있었을텐데 조금은 아쉽군.'

SSR급 여동빈에게 정상은 고독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