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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랜드는 존재하지 않는다 (외전 - 악어 동굴 3)

유희자(180.229) 2016.01.24 01:27:10
조회 770 추천 18 댓글 6
														







전작 : 네버랜드는 존재하지 않는다 (외전 - 악어 동굴 2)







서던의 군함인 라이츠델린 호는 근래에 들어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긴장상태에 빠져 있다. ‘그’ 후크 선장과 피터 팬을 호송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죄인호송용 배가 아니었기 때문에 후크 선장과 피터 팬을 구금해 둘 곳은 단 한 곳, 창고뿐이었다. 병력을 분산시키지 않기 위해 일부러 같은 곳에 가둔 것이었다. 엘사 J. 후크가 부하들의 반 이상을 죽여 버리지 않았다면-사실 안나 P.팬도 부하 줄이기에 한몫을 했지만, 한스는 이를 몰랐다-아무런 문제없이 그들을 서던 본국까지 끌고 가고도 남았다. 불만 사항은 그뿐만이 아니다.



“망할 후크 선장!”



한낱 해적과 교섭을 하는데 왕자인 자신이 직접 나서야 되다니. 해적도 그냥 해적이 아니라 ‘후크선장’이다. 네버랜드, 굳이 말하면 피터 팬과 악연을 가진 그로서는 네버랜드에 관련된 일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다.


‘믿어달라고 했을 땐 믿어주지도 않으셨으면서...’


한스는 분한 마음을 삭일 수 없었다. 더군다나 이는 왕명이 아닌 울프릭 태자의 명령이다. 쓸모없는 왕자인 너에게 특무대 신설을 허가해주고 군함까지 내주었으니 잘하고 돌아오라는 말까지 덧붙여서 말이다.



서던의 왕은 ‘후크 선장’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 몇 십 년 전부터 급변한 세계정세는 각국의 야욕으로 격렬하게 날뛰어 댔다. 당연한 듯이 전쟁을 벌이고 이득만을 쟁취하는 제국들이 하나 둘 씩 생겨났고, 그에 따라 군비증강 추세는 날이 갈수록 치솟았다. 서던은 섬나라인 만큼 해군이 절실했는데, 머릿수를 채우기 위해 국적 없이 떠도는 해적들을 적극적으로 포섭하기에 이르렀다. 통제가 어려운 해적이든, 환상의 섬에서 사는 해적이든 가리지 않고.


- 무역 파트너였던 아렌델 국은 우리보다 강대국이었지만 이제는 망국이 되어버렸지. 우린 지리적 유리함 때문에 살아남은 거나 다름이 없어. 그러나 언제 아렌델 꼴이 날지 모른다


- 언제까지 쓸모없는 놈으로 살 테냐?


- 무능해도 넌 왕자이니, 제 몫을 해라


여기서 화를 참고 엘사를 살살 구슬려 왕의 앞에 무릎을 꿇고 신하가 되겠다고 충성을 맹세하게 만든다면 그간의 실패를 단숨에 만회할 수 있다.



“만일.... 안 된다 하더라도 소득은 있어. 완전히 제로는 아니야.”



한스는 손바닥만 한 헝겊주머니를 꾹 쥐며 냉정해지려 애썼다. 곧, 엘사 J. 후크와 안나 P. 팬을 심문할 시간이다.











타들어가는 고통에 엘사는 잔 신음과 함께 눈을 떴다. 자신의 몸은 밧줄로 꽁꽁 묶여있었다.

새우처럼 구부려진 등은 아직도 피가 새어나오고 있다. 얼음조각에 찔린 상처들이 욱신거렸다. 이 상처들도 저주받은 힘을 가진 죄에 대한 대가의 일부인 걸까. 엘사는 자조했다.

몇 번 눈을 깜박이자 시력이 조금이나마 회복된다. 한 치밖에 떨어져있지 않은 곳에 안나가 누워있었다. 실내가 밝지 않아서 잘 보이지 않을 텐데 엘사는 용케도 웅크려있는 물체가 안나 P. 팬이라는 걸 알아챘다.



“크윽-”



엘사는 조금씩 조금씩 안나에게 다가갔다. 조금만 힘을 주어도 고통은 거침없이 엘사의 신경을 건들었다. 삐질삐질 식은땀이 나왔다.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그러나 고통보다 더 강렬한 증오가 기어코 엘사를 일으켰다. 다섯 걸음만 걸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 칼을 빼어 저 어린 심장을 찔러버리고도 남을 거리였건만 지금의 엘사에게는 천리 길과도 같았다. 그녀는 간신히 상반신을 일으켜 벽에 살짝 기대 쉬었다.



그때 낡은 나무문이 열렸다. 한스와 특무대원, 두 명이 창고로 들어왔다.



“일어나 계셨군요. 엘사 J. 후크 선장님.”



서던에 도착할 때까지 눈 뜰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한스로서는 뜻밖이었지만 이내 잘 되었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엘사는 한스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타오르는 눈으로 안나가 있는 곳을 쳐다볼 뿐이었다. 흠흠, 하고 엘사의 주목을 끌려는지 한스가 헛기침을 해보였다. 그제야 엘사가 그를 쳐다보았다.



“일전에는 끝이 좋게 끝나지 못했었지요. 그간 생각은 바뀌셨는지? 폐하께서는 당신을 높게 사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서던에 귀부하신다면-”

“한갓 해적 따위를 그렇게 높이 사실 줄이야. 이거 참 영광이군.”



엘사가 빈정거렸지만 한스는 여전히 능글맞은 미소를 지우지 않고 있었다.



“오, 선장님께서는 한갓 해적 따위가 아니십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해적 아니, 레이디는 본 적이 없거든요- 한스의 손이 엘사의 뺨에 닿는다.



“만일 선장님께서 폐하께 충성을 바치신다면, 해군 제독으로서 서던의 영광을 위해 헌신하는 영예를 얻게 되실 겁니다. 친애하는 후크 선장님, 어떻습니까?”

“퉤엣-!”



표정은 덤덤했으나 자신의 볼에 닿은 손도 그렇고, 그가 꼴도 보기도 싫었던 엘사는 한스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와악!-하고 한스는 얼굴을 감싸 쥔 채 뒤로 물러났다. 침을 맞은 부위가 얼어붙고 있었다. 놀란 특무대원이 한스의 얼굴에 뜨거운 물을 끼얹자, 한스는 탭댄스 추듯 펄쩍 뛰어올랐다.



“아아아아아악!!!”

“이봐! 선의! 선의!”



한스의 비명소리와 선의를 찾는 특무대원의 고함소리, 그리고 엘사의 웃음소리가 배 안을 가득 채웠지만, 푹 잠이든 안나는 그 소란 속에서도 눈을 뜨지 않았다.











“과연. 이런 취급인가.”



한스가 이를 갈고 부하에게 명령해 엘사에게 아멧(armet)을 씌웠다. 언제 적 골동품인지 곰팡이 냄새와 쇠 냄새가 진동을 했다.

앞으로 무자비하고 피도 눈물도 없는 공포의 해적, 엘사 J. 후크 선장은 입으로 얼음을 뿜는다-라는 소문이 돌아다니리라. 저 겁쟁이 한스에 의해서. 그럼 우스갯소리를 잘 하는 로암은 우리 선장님은 아이스 드래곤이다~하고 으르릉 거리는 흉내를 내고, 부하들은 그걸 보고 낄낄 웃겠지.



엘사는 주기적으로 빨라지는 고통에 입술을 깨물었다. 몸이 뜨거워졌다.

동굴에서의 폭발에서 몸을 지키기 위해 얼음으로 벽을 두른 엘사는 본능적으로 안나의 몸을 껴안았다. 생각보다 폭발의 힘은 컸다. 얼음의 벽이 산산조각이 났고, 파편들은 엘사의 등에 꽂혀버리고 말았다. 과다출혈로 죽어도 이상할 게 없다. 그리고 안나는 조금도 다치지 않았다. 다만 폭발의 여파 탓에 기절을 했을 뿐이다.











마치 잠에서 깨어나듯, “으응...” 안나가 잔 신음과 함께 눈을 떴다. 반 밖에 뜨지 않는 흐리멍덩한 시선이 엘사를 향했다.



“...새?”



멍청한 소리-엘사가 생각했지만 이내 자신이 아멧을 착용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꼭 참새부리처럼 툭 튀어나온 투구의 생김새로 봐서 새로 착각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런 너그러운 생각이 들만큼, 서서히 깨어나는 안나와 정반대로, 이번에는 엘사의 의식이 사라지고 있었다.



“아구구, 머리야.”



안나는 바닥에 부딪친 머리를 마구 문질렀다. 안나는 자신을 이렇게 만든 동굴과 가짜 해적-서던의 특무대원들-, 진짜 해적들에게 욕을 퍼붓고는 몸을 일으켰다. 생각보다 멀쩡한 상태에 깜짝 놀랐지만, 이내 그 짧은 순간에 몸을 무의식적으로 피해 다치지 않았을 거라고 멋대로 판단해버렸다.



“역시 난 대단해!”



안나는 우쭐거렸지만, 곧 여긴 어디야-하고 멍청한 소리를 내뱉었다. 말을 걸 대상은 구석에 박혀있는 ‘새’밖에 없었다. 새 주제에 옷을 입고 있다는 사실이 웃겼지만 안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네버랜드에 살면서 온갖 해괴한 모험은 다 하고 다니는 안나였기에, 저런 새도 있을 법하다는 기묘한 상식이 박혀있는 탓이었다.



“이봐, 새.”

“...”

“너, 다쳤니?”



저 새에게서 지독한 피 냄새가 났다. 안나는 혹시나 싶어 새에게 가까이 다가가 킁킁 냄새를 맡았다. 희미하게 폭약 냄새와 피 냄새가 동시에 진동을 했다.



“뭐야, 그럼 이게 다 피?”



선홍색으로 반짝이던 해적의 옷은 어두운 붉은 색으로 잠식해있었다. 등 부분은 질척거리기도 했다. 특히 오른쪽 날개-안나는 엘사를 새라고 믿고 있었다-는, 안나 P.팬이라도 보기 힘들 만큼 붉은 고깃덩어리가 되어있었다. 심지어 얼어붙었다. 안나는 깜짝 놀라 새의 겉옷의 일부를 벗겼다. 안쪽은 겉옷에 비해 멀쩡한 편이었지만 흰색이었을 블라우스의 등 부분은 붉은 색에 흰색 페인트가 묻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피에 물들어 있어서 더 처참해 보였다. 찢겨진 옷 사이로 보이는 흉터에서 반쯤 마른 피가 굳어가고 있었다.

안나가 서둘러 자신의 어깨 부분을 뜯었다. 자신이 피터 팬이 되자 축하 선물이라며 손수 요정 여왕이 잎을 엮어 만든 의복이다. 의복을 구성하는 잎은 그냥 잎이 아니었다. 워낙 천방지축이라 항상 다치고 들어오는 피터 팬을 염려해, 다쳤을 때 요긴하게 쓸 수 있는 약초인 것이다. 안나는 잎을 대충 씹어 뱉은 후, 조금씩 피가 배어 나오는 부위에 붙였다.



“윽-”



이따금씩 새는 고통스런 신음을 내뱉었다. 호흡도 거칠어졌다, 옅어졌다를 반복했다. 어깨 부분이 볼썽사나울 정도로 다 드러났을 즈음에야 안나는 행동을 멈췄다. 저 오른쪽 날개는 아마도... 요정 여왕이 와야 치료가 가능할 것이다.

새는 제법 고른 숨소리를 냈다. 잠이 든 모양이었다. 안나는 새의 몸을 옆으로 기대게 했다.



“너도 참 이상하다. 어떻게 이런 곳에서 잠을 잘 수 있지? 바닥 안 딱딱해?”

“...”

“진짜 자?”

“...”

“심심한데.”



안나는 다친 새를 훑었다. 분명 처음 보는 새인데 자꾸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꼭 사람 팔처럼 생긴 날개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그러니까 아이라 할지라도-치료를 하는 와중에, 저것이 새가 아니라는 걸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누가 봐도 요상하게 생긴 투구를 쓴, 제대로 팔 다리 달린 사람이다. 직접 만진 이상, 알아차리고 남았을 것이다.



“뭐, 옷도 입고 있는데 사람 손처럼 생긴 날개를 가진 새도 있겠지.”

“...”

“이봐, 어... 널 뭐라고 부르지? 일단 ‘새’라고 하지 뭐. 근데 너 여기가 어딘지 아니?”

“...”



어깨를 내주고 있는 형편이라 일어설 수는 없지만 안나는 감각만으로 이곳이 어딘지를 살폈다. 퀴퀴한 나무 냄새, 바다 냄새, 그리고 이따금 부딪치는 파도소리에 이곳이 배 안이고, 어딘가로 이동 중이라는 걸 알아낼 수 있었다.



“나랑 새를 가두고도 공간이 남아도는 감옥을 가진 커다란 배군. 하지만 졸리 로저 호는 그렇게 크지 않으니 분명 다른 배야! 하지만 후크가 새 배를 만들었을 수도 있고...”



동굴에서 혈투를 벌인 후크 선장은 옆에 없었다. 안나는 필사적으로 기억을 더듬었지만, 굉장한 폭음과 매캐한 화약 냄새, 그리고 붉은 천밖에 기억나지 않았다. 새빨간 무언가가 자신을 덮쳤다는 마지막 기억은 굉장히 뿌옇다.

안나는 자신이 벗긴 새의 옷을 바라보았다. 비록 등 부분이 찢겨지고 피를 머금어 색도 변했지만 기억 속의 붉은 천이었다. 안나는 다시금 냄새를 맡았다. 희미하게나마 자신의 옷에 묻어있는 요정가루 냄새가 났다.



“어어, 그럼 네가 날 구한 거니?”

“...”

“야! 대답 좀- 아, 너 다쳤지 참.”



아마 엘사가 깨어 있었다면 멍청한 애새끼-라고 욕을 했을 것이다.











선의의 도움으로 얼굴에 붙은 얼음 조각을 떼어낸 한스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허둥거린 자신의 꼴사나운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 그의 앞에 선 특무대원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부대장님, 캡틴 훅과 피터 팬을 같은 곳에 가둬놔도 괜찮겠습니까?”



혹여 둘이 손을 잡고 탈출이라도 하는 날에는.... 특무대원이 말을 흐렸지만, 한스는 그를 비웃으며 말했다.



“뭐? 그런 잠꼬대는 침대에 가서 해. 캡틴 훅과 피터 팬이 손을 잡아? 하! 그런 웃기는 소리는 난생 처음 듣는군!”

“그래도...”

“피터 팬은 해적 일이라면 제일 먼저 나서서 훼방을 놓지. 캡틴 훅은 그런 피터 팬을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 나있고. 둘이 같은 독방에 들어가면 아마 서로 죽이려고 몸싸움이라도 벌일 걸?”



몸싸움이라는 말을 꺼내고 한스는 조금 아차 싶었다. 설득은 일단 실패하긴 했지만 둘 다 살려서 데려가면 엄청난 득이 된다. 지금이라도 둘을 떼어 놓아야 할까 잠깐 고민했으나 이내 마음을 돌렸다. 캡틴 훅은 움직일 수 없을 만큼의 치명상을 입었고, 피터 팬은 아직 기절상태였다.



“흠. 혹시 모르니 네가 그 둘을 감시하도록.”

“네.”













누군가가 다급하게 엘사를 흔들어 깨웠다. 엘사는 힘겹게 눈을 떴다. 무거운 헬멧이 거치적거렸다. 벗었다가는 성치 않은 몸으로 자신을 깨운 안나 P. 팬과 2차 혈전을 벌이게 될 테니 그냥 참는 수밖에 없었다.



“새! 방금 밖에 난리가 난 모양이야! 저걸 봐!”



안나는 창고에 단 하나뿐인 창문을 가리키며 외쳤다. 창문을 투과해 들어온 해질녘 노을은 시간이 꽤 경과되었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엘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 너 아프지? 그럼 내가 대신 말해줄게.”



안나는 우쭐거리며 말했다.



“거인이 나타났어! 얼음으로 만들어진 초대형 거인! 고목나무보다 더 커!”

“...”



엘사는 무의식적으로 왼손을 주먹 쥐었다. 흐린 기억 탓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다. 단 하나, 저 거인을 만들어 낸 것이 자신이라는 건 확실했다.


‘힘을... 쓴 건가? 뭔가가... 끊겼어. 억지로...’


안나의 말대로, 얼음으로 이루어진 거인이 배를 때려 부수었다. 배에 큼지막한 구멍이 났고, 돛은 이미 부러진 상태였다. 안나와 엘사가 있는 창고에도 큰 구멍이 뚫려, 그 사이로 바닷물이 들어오고 있었다. 배에 있던 한스와 특무대원들 모두가 작은 보트로 올라탔다. 생존의 위협 앞에서 그 누구도 애써 붙잡은 포로들을 데려오자는 말을 하지 못했다.

엘사가 노리던 때였다.



“튀자.”

“어? 너 말도 하-”



엘사는 망설이지 않고 비교적 멀쩡한 왼팔로 안나를 감싸, 차디찬 바닷물 속에 몸을 맡겼다. 안나가 뭐라고 지껄였지만, 짜디짠 바닷물이 안나의 입을 막아버렸다. 엘사는 안나의 코와 입을 막고, 잠수하듯 헤엄쳤다. 무시무시한 추위가 상처에 스며들어, 영혼까지 얼어붙을 지경이었으나 그보다 더 뜨거운 피가 바닷물을 적셔갔다. 엘사의 몸에 흐르고 있는 피는 그보다 더 뜨거우리라. 하지만 지금 엘사의 머릿속엔 단 하나의 생각밖에 없었다.



그 동안 얼음 거인은 미친 듯이 배를 부쉈고, 군함이 반쯤부서지자 언제 존재했냐는 듯 바닷물에 녹아 사라졌다.



“하-”



금방이라도 다시 기절할 것 같은 정신을 일깨워준 한기에게 감사인사를 날리고픈 심정이었다. 엘사는 남은 팔로 헤엄을 쳤다. 안나도 엘사의 뜻이 전해졌는지, 물장구를 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서로의 몸을 의지해 거친 파도를 함께 해쳐나갔다.



죽여! 죽이란 말이야!



엘사의 의식은 다시 끊겼다.












어떤 나쁜 선장이 바위에 선원들을 남겨 두고 가 버려 밀물 때 모두 빠져 죽게 만들었다는 전설이 담긴 귀양바위는, 멀리서 헤엄쳐오는 두 사람에게 어서 오라는 듯 팔을 벌리고 있었다.

몸이 간신히 귀양바위에 닿았다. 엘사는 헐떡이면서 안나의 몸을 귀양바위 위로 밀어 올렸다. 먼저 바위에 올라간 안나는 연거푸 기침을 하면서 엘사를 붙잡았다. 바닷물을 듬뿍 먹은 옷 때문에 몹시도 무거웠지만, 어떻게든 엘사를 바위 위로 끌어 올릴 수 있었다.



“이젠 어쩌지?”



귀양바위와 네버랜드 섬 사이는 꽤 거리가 있어, 반나절동안 물장구를 쳐야 닿을 수 있다. 안나가 으달달달 이를 부딪치며 떨었다. 추운 바닷물에서 나오자마자 싸늘한 바닷바람의 따귀를 맞는 신세라니, 이보다 더 처량할 수는 없을 것이다.



“넌 날아가면 되잖아. 헤엄을 치든.”



엘사가 힘없이 말했다. 자꾸 감기는 눈을 억지로 뜨고 있으려니 죽을 맛이었다. 안나는 다친 부위를 내보이며 말했다. 피가 거의 멈추긴 했지만, 상처 틈 사이로 붉은 진물이 보였다.



“다쳐서 못 날아. 아깐 네 덕분에 헤엄을 쳤지만 지금은 힘이 없어서 도저히 못해. 넌? 새니까 날 수 있잖아?”

“난 어른이라 날지 않는다.”

“새 주제에 나이 먹었다고 날지 못한다고? 엉터리 새네.”



안나가 놀리듯 말했지만, 엘사는 화내는 대신 꺼져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날지 않는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건 꿈꾸는 아이들이 하는 거야.”

“그럼 어른들은?”

“어른은 대지에 선다. 그리고 하늘로 두 팔을 뻗는다.”

“왜?”

“날다 지치거나 혹여 떨어질 것 같은 아이들을 받아줘야 하니까. 아무리 대지가 불안정해도 꿋꿋이, 악착같이 서서 아이들을 다치지 않게 보호해. 아이들이 자신을 받아주는 곳이 있다고 안심하면서, 어디까지고 날 수 있도록.”

“그러다 다치면?”

“참는다. 그게 어른이니까.”

“아이들이 약을 올려도?”

“심하지 않다면.”



“아이들이 무례하게 굴거나 유치한 장난을 쳐도 그냥 웃어넘길 줄 아는 게 어른이야.” 이 말을 끝으로 엘사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정신을 유지할 수 없었다. 바위는 이제 보이지 않았고, 물은 어느새 엘사와 안나의 발목까지 차올라 있었다. 차가운 물을 견디는 온기는 오로지 두 사람의 맞댄 등에만 존재했다.



“거짓말. 난 그런 어른을 본 적 없어.”



안나는 풀이 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엘사가 무어라 한마디를 더 하려 했으나 기운이 없어서 입을 열지도 못했다.










구조의 손길은 안나에게 먼저 내려졌다. 네버랜드 쪽에서 빛 덩어리가 귀양바위를 향해 날아오더니, 이내 익숙한 형상이 되어 두 사람 앞에 나타났다. 팅커 벨과 그녀의 주변을 지키듯 날아다니는 다섯의 요정들이었다.

안나가 반갑게 소리쳤다.



“벨!”

<너..! 내가 그 동굴 가지 말라고 몇 번이나... 내가 널 얼마나 찾았는지 알아?!>



안나가 무사하다는 걸 보고나서야 팅커 벨은 안심할 수 있었다. 곧이어 팅커 벨의 무시무시한 잔소리가 이어졌다. 그러자 안나는 도리어 짜증을 내며 그녀의 말을 막아버렸다.



“잔소리는 그만하고! 나랑 저 새를 구해줘. 춥고 아프고 배가 고프단 말이야.”

<새?>



팅커 벨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안나가 가리킨 ‘새’에게 다가갔으나, 이내 비명을 지르며 엘사에게서 떨어졌다.



<이 멍청아! 이건 새 따위가 아니야! 극악무도한 해적이라고!>

“뭐?”



안나가 놀라서 ‘새’를 쳐다보았다. 새는 딱딱한 강철부리 사이로 피식-하는 웃음소리를 내었다.



“난 새라고 한 적 없어. 네가 겉모습만 보고 믿은 거야. 넌, 너무도 어리석고 멍청해.”

<봐! 널 속였다고! 그러니 저 해적을 죽여! 저 해적은- 너무도 많은 어린애들을 죽였어!>



안나는 고개를 숙이고, 말없이 단검을 빼들었다. 아이들의 적이라면 살려둘 이유가 없다. 하지만-

안나가 다시 단검을 품속에 집어넣었다. 헬멧 사이로 본 안나의 행동은 너무도 이상해보였다.



“왜지?”

“난 비겁한 짓은 안 해. 이정도로 약한 해적이면, 다음에 만났을 때 단칼에 죽일 수 있으니까.”

<안나!>

“게다가 곧 밀물이야. 바닷물이 귀양바위를 집어 삼키겠지. 그냥 내버려둬도... 죽을 거야.”



보통 때의 안나 P. 팬이라면 아마도 약해빠진 해적을 구해다 네버랜드에 던져놓았으리라. 그리고 그 해적의 상처가 다 치유되었다면 지체 없이 칼을 빼어 결투를 했을 것이다. 역대 피터 팬들이 그랬듯이.

다만 이번 일은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에-엘사 말대로 안나가 멋대로 믿은 것이지만 안나는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모양이었다-충격이 컸는지, 뒤돌아서서 엘사를 쳐다보고 있지도 않았다.












안나 P. 팬도 요정도 이곳을 떠났다. 간간히 들려오는 파도소리와 네버새 울음소리만이 자신이 아직도 살아있다는 증거가 돼주었다. 엘사는 마지막 기력을 짜내서 헬멧을 벗었다. 강철새라는게 있다면 아마 이런 얼굴이리라. 이보다는 더 깨끗하겠지만.

손에 든 헬멧은 조용히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이젠 두 번 다시 볼 수 없다.

등이 시리다. 견딜 수 없을 만큼. 엘사는 피식 웃었다. 시각도 촉각도 꺼진 상태고, 유일하게 남은 청각마저 엘사의 의식과 함께 무너져 내려가고 있었다. 죽음이 보이는 것 같았다.



“-선장님! 들리십니까? 선장님!”

“어디계십니까? 제발 대답 좀 해주십시오!”

“제이크! 귀양바위에 검은 물체가 보여. 횃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음에도 엘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빌어먹을, 배를 대!”

“선장님!!!”

“몸이 차가워... 약을 다 꺼내놔 어서!”



가까스로 귀양바위에서 구출된 엘사는 멍하니 오른손이었던 고깃덩이를 쳐다보았다. 엘사 발아래에는 혀가 잘린 인디언들의 머리통 몇 개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스미는 재수 없다는 표정으로 머리통 중 하나를 발로 차버렸다.

그녀가 지친 듯 입을 열었다.



“잘라버려라. 이 손은 이제 쓸모가 없어.”



엘사가 일부러 오른팔을 들어 보이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 피부가 뒤집어져 거무튀튀하게 뒤틀린 살덩어리. 제이크는 자신의 검을 들었다. 다른 부하들이 안절부절 못하며 그를 말렸다. 엘사는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태였다. 치료를 받지 못할망정 손까지 잘라내면 정말 죽어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제이크는 그들을 싹 무시하고 엘사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시체처럼 온기 따윈 없어 보이는 엘사의 눈동자는 텅 비어있었다.



“만일 제가 검의 방향을 돌려서 선장님의 오른손이 아닌 그 연약한 목을 날려버린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제이크의 무시무시한 말에 스미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엘사가 제임스 후크의 자리를 차지했을 때, 그만이 유일하게 선장대접을 해줬던, 말하자면 충성스런 부하가 아니었던가.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하다니!

그런데도 엘사는 웃어보였다.



“그것도 나쁘지 않군.”



그러자 제이크의 얼굴이 싹 굳어버렸다.



“진심이십니까?”

“단-”



“네놈 목도 같이 떨어질 거다.” 엘사가 입을 닫고 오른팔을 옆에 있던 물통 위에 올려놓았다. 제이크는 굳어진 표정을 풀고 씨익 웃었다.



“잘 돌아오셨습니다, 제임스 후크 선장님.”



높게 치켜든 검은 얼어붙은 살덩어리를 단칼에 잘라버렸다.













5일 동안 정신을 잃고 있었던 엘사는 익숙한 바다냄새를 맡으며 눈을 떴다. 오른손이 있었다는 흔적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붕대가 엘사를 반겼다. 기묘하게도 ‘오른손’이 근질거리고 쑤시기까지 했다. 참을 수 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녀의 요란한 웃음소리에 놀란 스미가 노크도 하지 않고 멋대로 방에 들어왔다. 그런데도 엘사는 웃음을 멈추지 못했고, 스미는 다시 뛰어나가 급히 의사를 불러왔다. 의사는 엘사의 섬뜩한 웃음소리에 몸을 벌벌 떨었다. 그제야 엘사가 웃음을 멈추었다.



“의수... 아니, 갈고리를 맞춰야겠군. 이래야 진짜- 제임스 후크지.”



엘사는 잘린 팔부위에 끔찍한 환지통이 시시 때때로 찾아와 잠도 자지 못하게 만들 거라는 미래를 알았어도 자신은 이렇게 웃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 잘려진 건 손뿐만이 아니었다는 걸 알아버렸으니까.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이만 이 같잖은 환상을 끝내보실까.”



이리도 이상했는데 왜 진작 눈치채지 못했을까. 무엇보다 시곗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비록 오른쪽 방향으로 도는 시계지만, 째깍째깍 잘도 울어대는 시계가 얌전히 입 다물고 있다는 건 이상했다.

말이 끝나자마자 어둠이 그녀를 덮쳤다. 개의치 않고 앞을 향해 걸어 나갔다. 그러자 한 소녀가 엘사의 앞을 가로 막았다. 서럽게도 울어대는 소녀를, 엘사는 역겨운 눈으로 노려보았다.



“너는 여전히 어리석고 나약하구나.”



엘사는 더는 보기 싫다는 듯 차고 있던 레이피어를 빼어들어, 휘젓듯 소녀의 몸을 갈라버렸다. 마치 연기라도 되는 것처럼 소녀의 모습이 사라져버린다. 엘사는 레이피어를 떨어뜨렸다. 달근한 냄새가 엘사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엘사는 지독한 꿈에서, 그날의 악몽에서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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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엘사 꿍꼬또 옛날 꿈꼬도..... 라고 말해도 받아줄 이 하나 없는 네버랜드. 실상으론 안나를 네버랜드에 내버린 다음 졸리 로저 호에 와서 잠들었는데 긴긴 악몽(3편동안)에 빠집니다.



psps. 다음편은 드디어 본편!! 후반부에 접어선 건 좀 된 것 같은데 왜 아직 결말이 보이지 않는건지...ㅠㅠㅠ 분량은 늘어만 가고. 어라?




pspsps. 사연 있어보이는 한스 왕자 얘기도 좀 지나야 나옴. 솔직히 통스니까 좀 험하게 굴려도 양심의 가책은 없음 ㅋ



pspspsps. 시대 배경은 19세기, 제국주의가 팽배하고 전쟁이 우당탕탕 일어났던 시기임. 슬슬 바깥 얘기가 나올 거임 ㅋ 그래봤자 전체 분량의 15%? 정도 나올듯. 아님 그보다 덜 나옴


 

 

pspspspsps. 아래가 아멧(Armet)임. 출처는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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