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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랜드는 존재하지 않는다 (21)

유희자(180.229) 2016.06.24 17:04:40
조회 642 추천 18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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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 네버랜드는 존재하지 않는다 (20)







바다와 바다 사이에 은밀히 감춰진 섬, 네버랜드. 환상의 섬이라는 이름답게 이곳은 몇 백명의 ‘아이들’이 무리를 지어서 온종일 뛰어놀아도 그 끝을 보기 힘들 만큼 넓고 신비로운 섬이다. 도처에 널린 먹을 것들은 언제나 ‘아이들’을 위해 존재했고, ‘아이들’은 섬에 살면서 부족함 없는 환상을 맛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넓고 먹을 것이 풍족해도, 고립된 섬에 둘 이상의 세력이 존재한다면 필연적으로 영역다툼이 발생해버린다. 서로의 이해관계, 음모, 탐욕 따위의 얼룩진 이유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이를 중재할 존재가 없기 때문이다. 아니, 중재자는 있다. 그러나 그 중재자는 이러한 유혈소동에 관여하지 않는다.




“낸다, 결단, 우린, 더 이상, 않는다, 안 참는다.”


“비겁한 놈들!”




안나가 으르렁거렸다.




무기를 든 인디언들, 늑대 부족과 아이들이 서로를 노려보며 대치하고 있었다. 안나가 먼저 앞에 나와 엄숙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나, 안나 P. 팬은 네버랜드의 수호자로서 너흴 용서하지 않는다! 내 단검이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멈추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악귀! 너, 피터, 팬! 죽였다! 넌, 모른다, 형제들, 죽었다, 많이! 네, 손에! 악귀! 악귀!”


“악귀는 너희들이야! 너희들이 먼저 우릴 건드렸어!”


“악귀! 악귀!”




잔뜩 흥분한 늑대 부족이 벌떼처럼 아이들에게 달려들었다. 수가 너무 많았다. 안나는 혀를 차며, 매섭게 덤벼드는 인디언의 공격을 피했다.



‘대체 벨은 어디에 있길래 모습도 보이지 않는 거야?’



“대장! 위험해요!”




투틀즈가 외쳤다. 안나는 잽싸게 몸을 피했다.



‘이대로 가다간....’



아직까지는 아이들이 인디언들과 대등하게 맞서는 걸로 보였지만, 난전이 시작되면 필패하는 건 아이들 쪽이다. 후퇴를 해야 했다.




안나가 후퇴 신호를 내리려던 순간, 숲에서 총소리가 났다.














“아악!”




나무 뒤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늑대 부족 인디언 하나가 엘사의 손에 쓰러졌다. 이걸로 다섯 명 째였다.




“머리도 좋군. 인디언이 양동작전을 쓴다는 걸, 그 누가 믿을까.”




총소리가 나면 안나 P. 팬에게 들킬 위험이 있었기에, 엘사의 검은 소리 없이 저들의 목숨을 가져가야 했다. 덕분에 엘사가 입고 있던 옷은 그들의 피로 흠뻑 젖어있었다. 마치 학살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아냐. 그때완 달라. 그러나... 행위는 같아’



경동맥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단칼에 절명해버린 인디언은 눈을 부릅뜨고 무릎을 꿇었다. 엘사는 얼굴에 묻은 핏방울을 닦아내며 그를 발로 찼다. 왜소한 몸은 고목처럼 소리없이 쓰러졌다.




“그들에게 땅 밑 집의 위치가 발각되다니. 믿기 힘든 일이야.”




그들의 목적은 안나 P. 팬과 아이들의 보금자리였다. 지금 땅 밑 집에는 지난번 싸움에서 아직 상처가 다 낫지 않은 아이들이 쉬고 있었다. 늑대 부족이 일부러 인원을 나눠, 양동작전을 펼처가면서 '아픈 아이들을 돌봐주기 위해' 그곳에 갈 리 만무하했다.




“이게 끝인가?”


<다 끝났으면 빨리 여기서 나가!>


“그렇지 않아도 갈 작정이다. 이따위 일로 날 부르다니, 요정 여왕이 멍청해졌군.”




세찬 방울소리가 들렸다. 그 방울소리 속에 얼마나 신랄한 욕이 담겨있는지는, 그걸 듣고도 비릿하게 웃는 엘사만이 알 수 있었다.




“그만 입을 닥치는 게 좋을 걸. 더 지껄인다면 인디언들이 아이들을 죽이든 말든 두 손 놓고 방관하고 있겠다.”


<이-! 못된 해적이!>


“늑대 부족이 오늘은 물러간다 할지라도, 내일 바로 공격해 올 것이다. 안나 P. 팬 패거리가 무사히 그들을 막아낼 거라고 생각하나? ‘나’없이?”




팅커 벨은 입을 다물었다. 귓가에 쨍알대던 소음이 사라지자 훨씬 기분이 나아졌다. 엘사는 숲 밖에서 들려오는 전투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팅커 벨과 시시한 기 싸움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아이들이 전투를 벌이는 건 흔한 일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조금 위험해보였다. 엘사가 팅커 벨을 흘긋 쳐다보았다. 팅커 벨은 당장에라도 안나에게 가고 싶어 하는 걸 참고 있었다.




요정들은 기본적으로 피를 삿된 것으로 여겨, 가까이 가지 않는다. 요정 팅커 벨로서는 피가 묻은 엘사를 쳐다보고 싶지도 않을 지경일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굳이 여기에 있는 이유는 엘사가 행여 허튼 짓을 하지 않을지 염려가 되기 때문이었다.




“저쪽도 손을 거들어 줘야겠군. 총을 쓰겠다. 총을 쓰면 이쪽 위치가 드러나 버려. 해적이랑 요정이 같이 있는 모습을 보여 봤자 좋을 건 없다는 것쯤은 알겠지?”


<안나를 다치게 하면 가만있지 않을 거야>




아이들은 요정의 축복 덕분에 총에 맞으면 죽진 않지만 고통은 느낀다. 고로, 팅커 벨의 말은 쥐새끼처럼 몰래 숨어서 안나나 아이들을 맞히지 말고, 늑대 부족만을 저격하라는 뜻이었다.




“알았으니 이만 꺼져라. 요정들을 이끌고 가서 뒷수습이나 하라고. 환상의 섬에 흉악한 시체는 있어선 안 되잖나.”




엘사는 조소를 지으며 자신이 해치운 인디언들을 가리켰다. 팅커 벨은 엘사를 노려보다가 이내 반대방향으로 날아갔다.












탕! 탕! 탕!


숲에서 연달아 총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안나 P. 팬을 노리던 늑대 부족 하나가 쓰러졌다. 칼과 활, 혹은 몽둥이 따위로 싸우던 그들, 특히 늑대 부족이 주춤하고 몇 걸음 물러섰다.




“비겁한! 누가!”




늑대 부족 인디언이 이를 갈았다. 그러자 답례라는 듯이, 또 한 번의 총성과 함께 인디언 한 명이 쓰러졌다.


안나는 주변을 훑어보았다. 다친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멀쩡히 서있는 건 안나 자신이나 쌍둥이들, 그리고 간신히 상처가 나은 컬리 뿐이었다. 피부가 창백하게 질려, 쌍둥이들의 부축을 받고 있는 크리스토프와 눈이 잠시 마주쳤다. 크리스토프는 금방이라도 기절해버릴 것 같았다.


죽은 인디언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풀숲이 사락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총소리가 다시 울리자 분노한 늑대 부족이 숲속으로 돌진했다. 순간 안나는 자신이 무시당한 것 같아 기분이 몹시 상했다. 컬리는 안나가 성을 내는 걸 보고서도 우물거리며 제 의견을 전했다.




“대장, 우리....”

“시끄러워.”




안나가 일축했다. 말을 꺼낸 컬리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벨은 대체 어딜 간 거람? 하는 수 없지. 너흰 집에 가서 얌전히 있어.”




안나의 눈은 줄곧 풀숲을 향하고 있었다. 불쾌한 총소리가 낯이 익다. 한 사람이 떠올랐지만 안나는 코웃음을 쳤다. 후크가 자신을 도와줄리 없지 않은가.



‘게다가 그 해적은 날 죽이려고 했다고’



싸울 상대가 없으니 칼을 들고 있을 필욘 없었다. 안나는 단검을 집어넣었다. 마음 같아서는 날아올라서 풀숲에 들어가 보고 싶었지만, 상처를 입은 덕분에 날 수 없었다. 안나는 제 손등에 난 상처를 혀로 핥았다. 찝찔한 맛이 났다. 상처를 핥고 있다가 문득 컬리를 쳐다보았다. 많은 아이들이 다쳤다.




“너희들만으로는 힘들겠다.”




안나는 쓰러진 아이 중 한 명을 엎었다. 그제야 아이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 4명은 땀을 뻘뻘 흘리며 다친 아이들을 땅 밑의 집까지 업어 날랐다. 몇 명이 앓는 소리를 내었다. 다행히 모두 살아있었다. 안나는 아이들의 상처를 살펴, 제일 심하게 다친 아이에게 먼저 약초를 썼다. 금세 약초는 동이나버렸다.




서던에서 훔쳐온 붕대를 찢어서 어설프게 상처를 감싸고, 열이 나는 아이에겐 쓴맛 나는 물약까지 먹인 다음에야 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갈 거예요?”




쌍둥이들이 안나에게 물었다. 안나는 아이들을 치료해주면서도 줄곧 눈길을 문 쪽에 주었던 것이다. 안나가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망설이자, 컬리가 기대하는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가슴이 답답했다.




“쓸모도 없는 요정 같으니...”


<기껏 왔는데, 나 다시 간다?>




갑작스런 인기척에 모두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내 자신이 놀랐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진 안나는 허공에 날아다니던 팅커 벨을 단숨에 낚아채어 빽 소리를 질러댔다.




“넌 대체 뭐하다 이제 온 거야!”




노발대발해하는 안나를 피해 이불 밑으로 숨어든 아이들과는 달리 팅커 벨은 잠자코 그녀의 분노를 받아내었다. 아니, 그보다는 다른 고민에 빠져있는 듯, 안나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팅커 벨은 안나에게 그걸 말할까 하지말까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나 총성이 들린 이상, 안나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내 말 듣고 있긴 해?”


<해적>


“뭐라구?”


<후크 선장이 왔어, 안나>




안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역시 그 총소리는 해적이 낸 게 맞았던 거다. 팅커 벨은 안나가 우쭐거리는 걸 보곤 성대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한숨도 아름다운 방울소리로 들렸다.




<애들은 우리가 돌볼게. 넌 하고 싶은 대로 해>


“당연하지!”




화가 눈 녹듯 사라지고 도로 쾌활한 피터 팬이 된 안나는 빛의 속도로 집을 뛰쳐나갔다. 팅커 벨은 못마땅한 듯 혀를 몇 번이나 찼다. 안나가 나가자마자 이불 밑에 숨어 있던 아이들이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대장이 갔어.”


“갈 것 같았어.”




화를 내도 좋으니 옆에 있어달라는 말을 해보기라도 할 걸 그랬어. 아이들은 저마다 한숨을 쉬었다.







아이들이 가고, 인디언들의 시체만 남은 곳에 여러 빛 덩어리가 나타났다. 제각기 아름다운 방울소리를 내며 시체 주변을 맴돌았다. 요정들이 날갯짓을 할 때마다 요정 가루가 떨어져 내렸다. 인디언들의 시체에 요정 가루가 묻었다. 옅게 낀 성에처럼 요정 가루가 시체의 몸을 대충 덮을 만큼 정도 뿌려지자, 시체에서 비정상적인 속도로 새싹들이 자라났다.


우후죽순으로 커다는 새싹들은 순식간에 요정보다도 커지고, 아이들보다도 커지고, 해적들보다도 커졌다. 잡초가 무성하던 싸움터는 어느새 사라지고, 울창한 숲의 일부가 되어있었다.

요정들은 입을 모아 노래했다. 아름다운 방울 소리와 함께 달근한 향기가 널리널리 퍼졌다.
















“이상하다. 분명 여기 근처였던 것 같은데. 숲이 이렇게 컸던가?”




안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울창한 숲이었지만 뭔가가 달랐다. 그 뭔가가 뭔지 알 수 없어서 답답했다. 그러나 빈 맷돌을 굴려도 나오는 건 먼지가 전부다. 어느새 인디언들과 전투를 벌였다는 사실을 까먹은 안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이 주변을 돌아다니다보면 후크 선장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추측이 들었기 때문이다.


안나는 나무 사이를 가로지르며 더 높이 날았다. 멀리, 멀리, 새처럼 자유로이. 축축이 젖은 공기가 기분 좋게 달라붙었다. 아, 좀 더 재미난 일은 없을까, 해적을 만나면 잔뜩 골탕을 먹여 줘야겠다, 따위의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덧 안나는 인어의 호수 근처까지 와있었다.


그러고 보면 퍽 오랫동안 에리얼을 보지 못했다. 기왕 온 김에 인어도 볼 겸, 혹시 해적을 봤냐고 물어볼 겸 안나는 땅으로 내려왔다.



‘그냥 등장하면 재미없으니까 폭음 열매를 던져서 깜짝 놀라게 해야겠다’



안나는 킬킬 웃으면서 까만 콩알처럼 생긴 열매를 챙겼다. 던지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터져버리는 희귀한 열매인데, 남을 놀라게 하는 데 이만한 것도 없었다.




호수에 다다르자, 에리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조심히 다가갔다. 그러나 에리얼은 혼자 있는 게 아니었다. 두런두런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안나는 엉겁결에 기척을 감추고 귀를 기울였다.




“네버랜드에 관한 기록은 ‘바깥’에도 있어. 아동 동화지만 말이야.”


“요정들 짓인가요?”


“아마도. 참 인간적인 수법이야. 이곳을 동화로 미화시켜 놓고, 아이들을 네버랜드로 유인하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나요?”




말소리가 멈췄다. 그러다 “한 아이만 빼고, 아이들은 모두 자랍니다....”라는 서두와 함께 짧은 동화가 시작되었다. 반쯤 쉰 목소리는 천천히 동화를 낭독했다. 오래 전 기억을 더듬어 나가야 했기에 중간 중간 이야기가 멈추었다. 에리얼은 재촉하지 않고 이야기를 들었다.


영원히 자라지 않는 아이, 피터 팬. 피터 팬을 따라나선 웬디와 아이들은 모험을 즐기다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야기는 어른이 된 웬디와 웬디의 딸이 피터 팬과 만나게 되었다는 부분에서 끊어졌다.




“‘웬디’로 끝내야 했어.”




엘사가 밭은기침을 내며 말했다.




“피터 팬이 웬디의 딸을 데리고 네버랜드에 나타나 요정 족에게 승인을 해달라고 떼를 썼을 때, 요정여왕은 쉽게 승낙을 해버렸지. 그 웬디의 딸이 어른이 되어, 딸을 낳으면 피터 팬은 그 딸을 데려가 웬디로 삼았고...


지금은 웬디의 혈통 따위 아무래도 상관없어졌지만. 이 끝나지 않는 악순환은 결국 나한테까지 왔으니. 증오스럽군.”




엘사의 눈에서 푸른 불꽃이 일렁였다. 엘사는 이야기를 끝내고 시가를 태웠다. 더는 견딜 수가 없어서 독한 연기를 필사적으로 삼키며 간신히 평정을 유지했다.




“당신은 처음에 말했죠. 우리 인어족의 도움 따윈 필요 없다고.”




- 피터 팬에게 관여하지 마라. 그럼 그 족쇄 같은 호수에서 벗어나게 해주지



웬디가 해적, 그것도 후크 선장이 되어 나타났을 땐, 에리얼을 비롯한 모든 인어들이 동요했다. 게다가 엘사 J. 후크는 믿기 힘든 제안을 건네기도 했다. 인어들, 특히 자유를 갈망한 에리얼이 제일 먼저 엘사의 손을 잡았다.



- 우리에게 자유를 준다면 기꺼이



원래부터 중립이었으나 엘사와 손을 잡은 이후로, 인어들은 네버새를 통해 네버랜드의 움직임을 전해주곤 했다. 엘사 J. 후크는 인어의 호수를 거점삼아 휴식을 취하곤 했다. 이따금씩 그들은 대화를 나누었다.


우두커니 호수를 바라보던 엘사는 에리얼에게 예전에 했던 질문을 다시 던졌다.




“자유만큼 부질없고 자유만큼 위태로운 것도 없다. 왜 자유를 원하지?”




에리얼은 분노와 체념이 섞인 어조로 대답했다. 예전과 똑같은 대답을.




“태어났을 때 제일 먼저 보였던 건, 좁은 하늘이었어요. 내가 제일 작았을 때 봤던 하늘인데 좁다고 느껴졌고, 점점 커가면서는 숨이 막힐 것 같았죠. 그러다가 한 인어가 죽었어요. 그걸 보니 내 최후가 보이더군요. 여기서 살다가 여기서 죽겠다고. 난, 싫어. 도저히- 못해...”




에리얼은 어쩌다 안나 P. 팬이랑 친구가 되었지만 그게 더 고역이었다. 그 수다쟁이는 단순히 자신의 모험담을 들어줄 생명체가 필요했을 뿐이고, 에리얼은 그 모험담을 다 들어주었다. 안나 P. 팬의 이야기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해괴망측해서, 어디까지가 허풍이고 어디까지가 진짜인지 구분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피터 팬을 싫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에리얼은 안나 P. 팬이 모험담을 들려주러 올 때를 손꼽아 기다렸다. 그녀의 ‘자유’는 그 것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더 이상 남 얘기를 들으면서 멍청하게 상상이나 하고 싶지 않아요. 나도 직접 보고 싶고, 겪어보고 싶어요. 자유를.”


“....”


“당신은 매일 넓은 바다를 항해하니까 이런 내 심정을 모르겠지만.”


피식, 엘사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었다. 비웃음에 가까운 실소가 입가에 그려진다. 에리얼이 발끈해 화를 내려고 했지만, 엘사의 눈에 번지는 지독한 슬픔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착각이야. 난 단 한 번도 자유로웠던 적 없어.”















에리얼은 기지개를 켰다. 바위에 기대어 깜박 잠이든 모양이었다. 엘사 J. 후크의 모습은 없었다. 그러나 그 자리는 비워져 있지 않았다.




엘사 J. 후크가 앉아있던 곳에 안나 P. 팬이 앉아있었다.




“에리얼.”




안나가 에리얼을 불렀다. 에리얼은 놀란 내색을 감추며 자못 유쾌하게 대답했다.




“오, 안녕. 오랜만이네. 설마 또 내 꼬리 비늘을 얻으러 온 건 아니겠지?”




에리얼은 꼬리를 낼름 감추었다. 안나는 입을 삐죽거리며 “그딴 건 필요 없어”라고 대답했다. 당연하게도 에리얼은 기분이 팍 상해버렸다.




“후크 선장이랑 무슨 얘길 한 거야?”




안나가 이토록 진지한 모습을 보인 건 처음이었다. 그래서 에리얼은 사실대로 얘기해줄 수밖에 없었다.




“네 얘기.”




네 얘길 했어. 에리얼은 힘주어 말했다.




“그녀는 네 얘기밖에 하지 않아. 예전이나 지금이나 말이야.”















“이 앞으로 갈 수 있다는 거지?”




잔잔히 흘러가는 물결에 몸을 맡긴 해적선은 닻을 내려 저 먼 바다를 쳐다보았다. 뱃머리에 앉아 선모를 벗은 해적이 눈에 보이는 바다를 만져보기라도 하듯, 손을 쭉 뻗었다. 하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저 바다가 사실은 네버랜드 해의 반대편 끝부분이기 때문이다.




이 가짜 바다 너머엔 네버랜드 해보다 더 넓은 바다가 있다고 한다. 일전에 후크 해적단 산하 해적들의 말로는, 네버랜드에 있는 건 갑갑해 뒤질 정도라고 했다.




“위, 위대하신 씨 쿡크 선장님!”




엘사 J. 후크에게 번번이 패해서 자존심이 곤두박질 쳐버린 그가 한 일은, 부하들에게 자신을 부를 때 반드시 ‘위대하신’이라는 수식어를 넣으라는 명령이었다.




“뭐냐 이놈아.”


“네버새 띄웠습니다. 출항 준비를 할까요?”


“그래. 여기 있어봤자 뭣도 안 되니까.”




그 잘나디 잘난 캡틴 훅이 먼저 머리를 숙일 줄이야. 씨 쿡크는 쓰게 웃었다. 해적 회의 때, 후크 해적단은 산하의 해적단뿐만 아니라 자신들을 적대시하는 해적단의 편의까지 봐주었다.

국가라는 곳에 소속되어야한다는 전제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차피 네버랜드에 평생 머무를 수도 없게 되었다.




“계집이라는 점부터 뭐든 마음에 안 들지만. 자존심은 자존심이고 그 전에 살고 봐야지.”




허세를 부릴 수 있는 이유도 자신을 따르는 부하들이 있기 때문이다.




“럼주만 계속 마실 수 있다면 머리 따위, 숙여도 백 번은 더 숙여야겠지!”


“옳습니다 선장님!”


“럼주 만세! 씨 쿡크 만세!”





부하들은 웃으며 만세 삼창을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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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타지방 숙박 현퀘 짜증 ㅂㄷㅂㄷ 그래서 지금 올린다. 분량이 적은건지 많은건지;;; 오타는 현퀘 끝나고 고칠게



psps. 앞으로 몇 편 안 남았다 신난다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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