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 - 네버랜드는 존재하지 않는다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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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닙스는 착한 애라구. 만일 어른이 되어도...”
<너 바보니? 아이는 어른이 되면 변한단 말이야!>
팅커 벨이 왱알왱알 소리쳤다. 닙스를 보내기 싫다. 고작 키가 컸다고, 곧 어른이 될 테니 집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건 싫다. 네버랜드의 관행이고 뭐고 싫다.
“닙스라면 어른이 되어도 그러지 않을 거야.”
<네버랜드는 아이들의 섬이야. 그걸 잊지 마, 안나>
다른 아이를 데려오면 되잖아라곤 하지만, 그 아이가 닙스는 아니잖아. 닙스는 닙스고, 새로 데려 올 아이는 새로 데려 올 아이니까. 분명 새로 데려 올 아이도 닙스를 좋아할 게 틀림 없었다. 닙스는 착한 아이다, 닙스 뿐만 아니라 네버랜드에 있는 모든 아이들은 모두 착하다. 제 말을 잘 따르고 악당들을 훌륭히 물리칠줄 안다. 그러니까 언제까지고 함께 모험을 하며 즐겁게 살아야 한다. 이곳 네버랜드에서. 언제까지고. 언제까지고. 영원히.
“그럼 내가 집으로 보내 줄래.”
<안 돼. 다 자란 아이를 보내는 건 요정들 역할이야. 넌 그냥 새 아이를 데려 오면 된다구>
“저 키재기 나무를 뽑아버릴 거야!”
저 나무만 없으면 닙스는 물론 다른 아이들의 키를 잴 수 없을 테니 키가 쑥쑥 커서 어른이 되어도, 나와 함께 있어줄 거야.
<소용없어>
팅커 벨이 ‘나’를 쳐다보는 게 이상하다.
<넌 매번 똑같은 일을 벌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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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P. 팬의 기억은 거기서 끊겼다. 그녀가 느낀 감정이 엘사에게 전이되었다. 슬프고 화가 났다. 닙스라는 아이가 보고 싶었다. 안나의 감정이 일방적으로 엘사를 지배하려 들었다. 아팠다. 엘사는 검은 물을 삼켰다. 통증이 조금 가셨다.
물을 마실수록 이상야릇한 기분에 휩싸였다. 마치 평지를 걷는 것처럼 헤엄치는 게 편해지고, 아픔이 사라졌다.
‘아이가...’
네버랜드에서 어른은 위험한 것이다. 아이들을 위협하고 죽이는 존재다. 어른들은 배제 대상이다. 그러나 아이는 자라서 어른이 된다. 그러니 어른이 되기 전에 섬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
헤어지기 싫은데도.
‘닙스라는 아이는 만날 수 없어’
속고 있는 거야.
누구도 사실을 말해주지 않아.
죽을 때까지 아무것도 모를 거야.
‘죽을 때까지’
엘사는 퍼뜩 상념에서 깼다. 하마터면 안나의 기억에 먹힐 뻔 했다.
‘서둘러야 해.’
엘사는 스스로 기포 속으로 들어갔다.
***
“잡아라!”
성난 경비병과 기사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가만히 숨을 죽이고 나무 뒤에 몸을 숨긴다. 가지에 매달린 나뭇잎 하나가 간질간질 코를 긁는다. 엣취. 저도 모르게 재채기를 하자, 팅커 벨이 낄낄 웃었다.
“벨! 너, 웃으면 가만 안-”
“저기다!”
서릿발 같은 고함에 놀라서 하마터면 떨어질 뻔 했다. 여전히 벨은 웃고 있었다. 네버랜드에 가면 두고 보자! 웃느라 정신이 없는 벨을 내팽겨 치고 창문이 활짝 열려진 방으로 들어섰다. 무진장 넓고 어두운 방이다. 아이를 찾는데 시간이 걸릴 것 같았지만, 이내 촛불을 들고 선 아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약속을 지킨 착한 아이다.
“약속을 지켜줬구나, 칼렙.”
“물론이죠. 내가 네버랜드에 얼마나 가고 싶어 했는데! 나도 하늘을 날고, 모험도 하고, 공부는 안 하고!”
“물론! 그게 제일 중요하지!”
칼렙에게 요정 가루를 묻힌 다음, 하늘을 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칼렙은 몇 번 엉덩방아를 찧더니, 제법 괜찮은 폼으로 떠다녔다. 이제 칼렙을 데리고 네버랜드로 가기만 하면 된다.
“어라? 너 말고 다른 아이도 있었네?”
언제 있었던 건지, 저 구석에 왜소한 몸집의 아이가 서있었다. 칼렙보다도 어린 아이였다. 신경이 쓰인다.
“저 애는 누구니?”
“누구요? 아- 한스? 한스는 멍청이에요! 피터 팬, 신경 쓸 거 없어요! 쟨 구제불능이니까! 아직도 이불에 오줌을 싼다구요.”
“한스는 네 동생이야?”
“멍청하고 창피한 동생이죠. 차라리 없는 게 나을 텐데.”
칼렙은 깔깔 웃으며 손을 잡았다.
“빨리 네버랜드로 가요!”
저 한스라는 애도 데려갈까? 눈짓으로 물으니, 벨이 고개를 젓는다.
<안 돼. 저 앤 네버랜드에 못 가>
“왜?”
<나중에 와야 하니까>
“나중에 언제?”
<나아아아중에 제 발로 올 거야>
요정이 딸랑딸랑 소리를 내자, 칼렙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저를 두고 대화하는 게 거슬린 모양이었다.
“날 무시하지 말아요! 난 왕자인데!”
“난 대장이야. 내가 더 높은 사람이라구. 그러니 내 명령에 따라야 해.”
칼렙에게 몇 가지를 더 일러주려다가 포기했다. 시간이 촉박했다. 어른들의 목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려왔기 때문이다. 혀를 찬 다음, 칼렙과 함께 창문을 넘었다.
그러다 무심코 고개를 돌렸는데,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한스와 눈이 마주쳤다.
왜.내.가.아.니.죠.피.터.팬?
등 뒤로 한스라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애처롭게 들렸다. 다시 되돌아가서 한스라는 아이도 데려가고 싶을 만큼. 왜 저 아이는 안 되는 거지? 한스와 칼렙 둘 다 아이인데 왜 칼렙만 데려갈 수 있는 걸까?
“벨, 정말 데리고 가면 안 돼?”
<늦었어. 저 한스라는 애는 이미 네버랜드에 있어>
“그건 무슨 뜻이야?”
요정들은 이따금씩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내뱉곤 했다. 무슨 뜻이냐고 되물어도 똑같은 말을 할 뿐이다. 지금 한 말도 알쏭달쏭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방 안에 숨어있던 아이가 어떻게 네버랜드에 있을 수 있다는 건지! 요정 여왕이 직접 행차해서 마법이라도 부리지 않는 이상,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벨은 계속 빠른 말투로 지껄였다.
<하지만 너랑 어울리지는 못해>
“왜? 네버랜드에 있는 아이라면 누구든,”
<아이가 아니야>
“아무리봐도 '아이'잖아! 칼렙보다 더 어린 아이! 벨, 너 나랑 퀴즈 맞히기라도 하자는 거니? 요정식 퀴즈는 재미없어.”
<하긴, 맞힌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지 바보 안나~>
“이게 정말, 어, 어? 얘가 언제 저기까지 갔지? 이봐 칼렙! 야!”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벨과 시시한 잡담에 빠지지 않았어야 했는데.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칼렙이 제멋대로 날기 시작한 것이다.
“얏호! 이거 봐! 나, 피터 팬보다 더 멋지게 날고 있다고!”
칼렙은 어느새 손이 닿지 않는 먼 곳까지 둥둥 떠있었다. 요정 가루가 있으면 하늘을 날 수 있지만, 제대로 비행을 하려면 바람을 탈줄 알아야 한다. 안나는 본능적으로 풍향이 바뀌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어, 높게 뻗은 시계탑 사이로 부는 돌풍이 칼렙에게 쇄도하던 찰나였다.
“돌아 와! 지금 그쪽으로 날면 안 돼!”
쿵. 역풍을 맞은 칼렙은 균형을 잃고 추락했다.
***
‘서던의 왕자... 그 때로군’
엘사는 기억을 더듬었다.
엘사가 아직 ‘웬디’였을 때 일어난 일이었다. 당시 새 아이를 데려오겠다고 한 안나 P. 팬은 엉엉 울면서 돌아왔다. 그녀를 어르고 달래어, 간신히 잠재웠을 무렵 팅커 벨이 기묘한 말을 했었다.
- <상관없어. 아이는 많으니까>
- 그게 무슨 뜻이야?
팅커 벨은 대답하지 않았다. 원래 웬디가 하는 말은 씹거나 씹거나 무시하거나 욕으로 되돌려주는 팅커 벨이었기에, 엘사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곤 했다. 평소랑 똑같은 일이니까. 언젠가는 팅커 벨이 저를 무시하지 않고, 외지인이 아닌 네버랜드의 일원으로서 받아주기를 기대하면서. 하지만 안나가 몹시도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 무슨 뜻이냐구!
좀처럼 큰 소리를 내지 않는 엘사가 눈을 부릅뜨곤 팅커 벨을 쳐다보았다.
- <아이는 많아. 웬디도 마찬가지야>
너 말고 다른 웬디도 있어, 하고 팅커 벨은 엘사를 쏘아보았다.
- <하지만 안나는 하나 뿐이야>
팅커 벨은 아름다운 방울 소리를 내며 안나를 깨웠다. 곧이어 안나는 신경질을 내며 눈을 떴다. 그런 그녀의 귀에 팅커 벨은 무어라고 속삭였다. 그러자 안나는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팅커 벨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하루가 꼬박 지난 후, 안나 P. 팬은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씩씩한 어린애로 돌아와 있었다. 안나는 그 일을 조금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하루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야 해. 비단 그 하루뿐만이 아니야. 그 하루를 몇 번이나 겪고 있었는지, 무슨 짓을 당했는지도 알아야 해.’
엘사는 온 신경을 집중했다. 더 깊은 기억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정신이 어디까지 버텨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
나 때문에.
<당신은 잘못한 게 없어요>
죽었잖아.
<많이 아픈가요?>
아파. 자꾸 울음이 나와.
<괴로운가요?>
죽을 것 같아.
<고개를 들어요, 피터. 그리고 이걸 삼켜요>
요정 여왕의 손이 반짝반짝 빛난다. 요정 여왕의 품은 따뜻하고, 요정 여왕이 주는 이 가루는 달콤하다. 한번 입에 넣으니 견딜 수 없이 배가 고팠다. 무심코 가루를 핥아 먹었다. 요정 여왕은 미동도 하지 않고 손을 내밀고 있었다.
요정 여왕의 손은 침 범벅이 되었다. 그런데도 배가 고프다.
“더 없어?”
<많아요. 아주 많으니까 더 삼키도록 해요>
그럴래. 이거 먹으니까 아프지도 않고.
<이젠 아프지 않죠?>
무슨 말인지 몰라서 되물었다.
“나 아팠어?”
요정 여왕이 고개를 젓는다.
****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정의의 수호자이자 아이들의 아군인 피터 팬이 아이를 구해내지 못했다는 건. 게다가 그 아이는 날다가 떨어져서 죽었다. 그래서 안나 P. 팬이 망가지기 전에 요정 여왕이 손을 쓴 것이다. 요정가루로 안나의 상처를 흔적도 없이 지움으로써 그녀를 다시 천진난만한 아이, 피터 팬으로 돌려놓았다.
피터 팬은 망가져선 안 되니까.
‘매번 다쳐도 나으면, 잊어버리면 그만이라는 거야?!’
요정에 대한 반발심과 안나 P. 팬의 기억 속 감정과 엘사 J. 후크의 감정이 핫케이크 반죽처럼 이리저리 뒤섞인다.
‘이상하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말했어야 했다. 그런데 하지 않았다. 엉엉 울면서 괴로워하는 안나를 보는 것보다 언제나 즐거워하는 안나를 보는 게 더 좋았으니까. 그래서 그 일을 깡그리 잊어버린 안나를 보고, 울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안도한 자기 자신이 혐오스럽다.
‘그때부터 모든 게 일그러졌어’
이상한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한 명, 한 명씩 사라지고 새롭게 채워지는 아이들. 매번 기억을 잊어버리는 피터 팬. 서로 죽이려드는 아이들과 어른들.
끔찍한 악몽이다.
*****
아픈 건 싫어. 혼자 남는 건 더 싫어.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가. 어른은 이곳에 있어선 안 돼. 그런 아이들은 집으로 돌려보내야 해. 그럼 아이들 수가 부족해져.
“새 아이들을 데려오면...”
그러면 돼.
“하지만 그 애들은 전에 있던 애들이 아니야.”
뭔가가 부족해.
아이가 가면 새 아이를 데려온다. 아이들이 바뀐다.
요정들도 마찬가지다. 수명이 짧은 편이라 눈을 감고 뜨면 그새 새 요정들이 생겨나 있다.
“후크는... 그대로네.”
후크는 싫다. 후크는 해적이고, 해적은 아이들을 괴롭히는 나쁜 어른이니까. 언제나 나쁜 일을 한다고.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나 때리려고 하고!”
손가락을 하나 접었다.
“애새끼라고 하고!”
나쁘다. 왜냐하면 애나 새끼나 똑같은 말이잖아! '애애' 나 '새끼새끼'라고 말하는 거랑 똑같다고! 애기를 두 번 말할 건 없잖아. 애기애기가 뭐야 애기애기가.
손가락을 또 하나 접었다.
“요정들 괴롭히려고 하고!”
세 손가락이 접혔다. 이거 봐. 손가락이 두 개, 일곱 개 밖에 안 남았다.
“또... 또...”
또.
여기서 막힌다.
“분명 많은 일이 있었을 텐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손가락을 세 개 밖에 접을 수 없다.
“후크 생각을 하려고 하면 체한 건처럼 답답하고 아프고.. 아, 이것도 나쁜 이유에 들어가네.”
네 손가락이 접혔다. 더 없나? 기왕에 새끼손가락도 접고 싶다.
<기억이 안 난다는 건, 그 일이 시시하거나 재미없는 일이기 때문이야>
“‘나쁜 일’이 시시하거나 재미없는 일이야?”
<응. 그러니까 그딴 해적에 대한 건 잊어버리라구>
후크는 기억 할 필요도 없는 무진장 나쁜 해적이니까. 벨은 이 말을 덧붙인 다음, 포르르 날아갔다. 흥. 그 말을 들을까보냐. 내 마음대로 손가락 접을 거야.
쭈삣쭈삣 서있는 새끼손가락을 노려보았다. 뭔가 떠오를 것 같으면서도 떠오르지 않는다.
“더 없나? 한 손가락 더...”
*****
‘시시하거나 재미없는 일’
기억의 일부라는 걸 알면서도 엘사는 안나를 어루만지려 손을 뻗었다. 손에 닿는 순간, 안나는 아지랑이처럼 천천히 사라졌다.
‘가지 마! 날 잊지 마!’
엘사는 제 몸을 통과하고 위쪽으로 떠오르는 기포를 움켜쥐었다. 아까 본 기억이 다시 눈앞에 펼쳐졌다.
******
<고개를 들어요, 피터. 그리고 이걸 삼켜요>
요정 여왕의 손이 반짝반짝 빛난다.
툭툭
툭
툭툭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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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돼! 요정 가루를 삼켜선 안 돼!’
엘사가 기억 속 안나 P. 팬의 어깨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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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는 쌔근쌔근 잠들어있었다. 요정 여왕이 손짓을 하자 안나의 몸은 둥실둥실 떠올라 기포 밖으로 사라졌다.
요정 여왕은 엘사의 등장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놀란 건 엘사 쪽이었다.
<다시 만났군요. 순서가 뒤바뀌긴 했지만>
“어떻게...”
<원랜 이런 식으로 만날 순 없죠. 당신이기에 가능한 일이랍니다>
엘사는 주변을 감싸고 있는 기포를 보곤 앓는 소리를 내었다.
“여긴 안나의 기억 속? 지나간 것에는 그 누구도 간섭할 수 없다고 들었는데.”
이렇게나 쉽게 닿을 수 있을 정도면 이제껏 흘러간 시간이 아까워서 애가 탈 지경이다.
<간섭. 그래요. 간섭할 순 없어요. 현실에선 결코 그럴 수 없죠>
“환상이라서 그렇다는 건가? 하지만 환상에도 한계가 있어. 인간 아이들을 납치해 억지로 환상을 늘이고 유지시키는 불편한 순환 체계로 만들어진 환상 따위, 아이들이 아닌 다른 존재가 개입하면 금방 깨지고 말아.”
<정말 많은 걸 알고 있네요. 아이면 아이답게, 웬다면 웬디답게, 해적이면 해적답게 있어야 할 텐데. 당신 덕분에 이곳에 구멍이 여러 군데가 생겼답니다.
누가 당신에게 귀띔을 해줬나요?>
“내 뒤에 누가 있는지 알 텐데?”
요정 여왕은 이렇다 할 적의를 보이지 않았다. 요정 여왕의 눈동자가 잠시 위를 향하다가 도로 아래로 내려왔다. 네버랜드의 이변을 감지한 것이다.
<인어의 족쇄가 풀렸군요. 피 때문에 환상에 균열이가서 아이들은 물론이거니와 인디언들의 통제도... 이 많은 것들을 한 번에 이루어 낼 줄이야. 대단해요, 엘사. 누군가의 강력한 도움이 있어도 이걸 해내기 힘든데. 안나 P. 팬이 그렇게나 갖고 싶었나요?>
“난 안나를 사랑해.”
엘사는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너희가, 네버랜드가 안나를 몇 번이고 죽게 만들었어. 그러니 다 때려 부술 수밖에 없잖아?”
<그 네버랜드에 당신도 속해있어요>
“알아. 이건 속죄야. 그녀를 여기서 구해내고, 네버랜드를 끝내겠어.”
<그래요. 끝을 내봐요>
요정 여왕의 희미한 손이 엘사의 볼에 닿았다 떨어졌다.
<그래야 다시 시작할 수 있으니>
*******
‘정신을... 잃었나?’
짧게 꿈을 꾼 것 같은데 무슨 꿈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엘사는 제 뺨을 툭툭 치며 몽롱한 정신을 깨웠다. 환상 속에서 정신을 놓고 있다니.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여기서 더 아래, 아래?’
아래가 어디지? 엘사는 헛수고라는 걸 알면서도 주변을 훑었다. 넘실대는 검은 물 때문에 좌우는커녕 위아래 구분도 힘들었다. 그냥 몸이 붕 떠있다는 감각밖에 없었다.
‘길을 까먹으면 안 된다고 그랬는데.... 누가 그랬더라? 그리고 여기에 길이 어딨다고 그러는 건지. 근데 길이 뭐지?’
여긴 왜 어둡지? 안 보여. 뭐든 좋으니 잡을 거라도 있었으면 좋으련만. 조심스레 내민 양손이 무언가를 움켜잡았다. 얇고 부드럽고 따뜻한 것이었다. 두 손에 들어올 만큼 작은 것이 이리저리 움직였다.
‘이걸 놓치면 뭐가 뭔지도 모르게 된다고-’
마치 구명줄이라도 잡은 것처럼 필사적으로 앞에 있는 것을 붙잡았다. 그러자 손에 쥐고 있던 것이 스르륵 미끄러져 내렸다. 그와 동시에, 엘사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소리 대신 입에서 기포와 함께 검은 피가 쏟아져 나왔다. 정확하게 심장을 노린 공격이었다.
‘앞쪽....’
물속이라 확인할 수 없지만 상처에서 피가 줄줄 새어나오고 있을 것이다. 엘사는 손으로 가슴께를 쥐었다. 잘 벼린 검에 찔린 것 같았다. 환상이 주는 아픔과는 차원이 다른, 진짜 통증이었다. 엘사의 눈에 핏발이 섰다. 보이지 않는 적이 검은 물속에 숨어서 저를 노리고 있었다.
요정의 짓이 분명했다.
‘맞아. 요정. 요정을 죽이려고 했었지. 날 이곳에 가둬둔 놈들을 죽이려고 여기에 들어왔었지.
인간은 못 죽인다면서 온갖 고상한 척은 다 떨더니 이런 식으로 기습을 하는군. 어두워서 앞이 잘 안 보인다고 너흴 못 죽일 것 같아?’
용서할 수 없다. 상처를 입은 해적 선장은 손을 휘둘렀다. 그녀의 주변이 꽁꽁 얼어붙었다. 얼음은 검은 물을 탐욕스레 삼키고 위 아래로 뻗어나갔다. 붕 떠있던 몸이 딱딱한 얼음으로 둘러싸였다. 그러나 이것 가지곤 부족하다.
얼어버려라. 차라리 이 모든 걸 얼려버리고 네버랜드, 환상 찌꺼기들, 그리고 나 자신까지 끝장을 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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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너무 오랜만이라 감을 까먹었네. 그래도 완결까지 갑니다! 얼마 안 남음!!!
psps. 오타나 이상한 부분은... 젠장 수정이 안 되다니. 그래도 몇번 고친거니까.... 이상한 부분 있으면 댓글로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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