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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랜드는 존재하지 않는다 (30)

유희자(118.43) 2017.09.29 00:05:09
조회 637 추천 18 댓글 5






전작 - 네버랜드는 존재하지 않는다 (29)









“당신에게 어떤 기억이 남아있습니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말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건 물론이거니와 의식이 있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했다.



“당신의 이름은?”



위로 치켜 올라간 눈동자가 아래로 내려와 똑바로 앞을 쳐다 보았다. 사람처럼 생긴 돌덩이가 있었다. 대답을 망설이자 돌이 재차 물었다. 머리에 든 건 없으나 몇 개의 소리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그중에 하나를 택했다.



“괴물, 인가요?”
“왜 ‘괴물’이라고 하는 거죠?”
“많이 들어봐서요.”
“그밖에 다른 건요?”



다시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너’, ‘영애’, ‘선장’, ‘후크’, ‘웬디’... 단어가 줄줄이 새어나왔다. 돌이 고개를 저을 때마다 고개가 절로 수그러들었다. 틀렸다는 사실이 무서웠다. 한참이 지나서야 간신히 “엘사”가 나왔다.



“어떤 여자가 날 그렇게 불러요.”
“어떤 여자죠?”
“모르겠어요.”



근데 죽은 것 같아요. ‘엘사’는 자신이 몹시도 슬퍼하고 있어서 놀라고 말았다. 엘사는 손으로 눈가를 훔쳤다. 검은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검은 눈물은 엘사의 눈에서 떨어지자마자 소리 없이 사라졌다.



“죽었다고요?”
“얼어버렸으니까.”



온 몸이 돌로 이루어진 신비한 생명체, 트롤은 엘사에게 다시 질문했다.



“저 아이는 누군지 알겠습니까?”



엘사는 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몸을 완전히 틀었다.
그곳에는 기괴한 무늬가 새겨진 검은색 제단이 있었다. 엄숙하다 못해 음산하게까지 보이는 제단 위에는 노인처럼 머리가 새하얗게 쇤 어린 아이가 누워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겨울의 요정 같아서, 엘사는 홀린 듯이 아이에게 다가갔다. 인기척을 느낀 아이가 눈을 떴다. 엘사가 반사적으로 입을 열었다.



“안,”



그러나 아이의 이름을 끝까지 부르지 못했다.



엘사가 집어든 건 자기 자신의 기억이 아닌 아이의 기억이었다. 행여 단 한 줌이라도 놓칠까 손 안에 든 모든 걸 버리고, 양손 가득 아이에 대한 기억을 담았다.
네버랜드. 요정. 피터 팬. 해적. 후크선장. 인디언. 빛바랜 과거. 아이에 대한 걸 떠올리자 엘사는 자신의 일부 기억도 되찾았다. 그러자 속이 뜨겁게 끓어올랐다.



“안나.”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너무 많았다. 막상 눈을 뜬 안나를 보니, 엘사는 도리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안나는 초점 없는 눈으로 엘사를 바라보았다.



“....누구?”



엘사는 덜컥 내려않은 심장을 달랬다. 익숙해질 때도 되었건만, 잊힌다는 건 언제 겪어도 슬픈 일이다. 이로써 안나 안에 있던 엘사는 또 한 번 죽음을 맞이하고, 다시 태어났다. 첫 호흡은 쓰디썼다. 첫 정경은 새하얬다. 첫 순간들이 기억으로 묶여 켜켜이 겹쳐졌다.
안나가 누구냐고 물었다. 엘사는 그에 답해야 했다.



“-”



난 세상에서 제일 못된 사람이야. 엘사는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자 안나가 엘사의 손을 잡았다. 언제나 따뜻했던 안나의 손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엘사의 마음이 더욱 미어졌다.



“깨물면 아프잖아. 하지 마.”
“...그래...”



목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안나가 하지 말라고 하니 입술을 깨물고 있을 순 없었다. 눈물도 참았다. 엘사의 검은 눈동자가 새하얀 안나를 담았다. 엘사는 간신히 웃어보였다.



“난 아픈 거 싫어.”



안나가 힘없이 말했다.



“우르술라, 라는 마녀한테 들었는데, 난 널 따라가야 한대. 원한다면 그냥 여기에 있어도 좋대.”



그런데 여긴 좀 무서워. 무섭고 쓸쓸해. 안나는 엘사를 올려다보았다.



“날 어디로 데려가 줄 거야? 거기로 가면 안 아파? 매일매일 즐거워?”



엘사는 몸을 숙여 안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거긴 아프고 힘들어. 무겁기까지 해. 주저앉을 만큼, 도망칠 만큼 무거울 거야.”



혼란스러운 표정, 겁먹은 표정으로 범벅이 된 안나는 매달리듯 엘사의 옷깃을 쥐었다.



“겁이나.”
“괜찮아. 내가 그걸 들어줄 테니까. 네가 들 수 없는 짐은 내몫이니.”



안나는 엘사를 쳐다보았다. 흐트러진 백금발, 검은 눈과 입술, 창백한 안색. 곧 죽을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다. 정작 도움을 받아야하는 건 그녀 같았다.



“왜 그렇게까지 해줘?”
“네 기억, 내가 가지고 있거든. 네 짐이 무거워도 결코 너 혼자 놔두고 도망가지 않을 거야. 맹세할게. 그러니 나와 함께 어른이 되러 가자.”



갈고리 손으로는 안나를 어루만질 수 없다. 이곳에 남아서 안나가 다 나을 때까지 기다려 줄 수도 없다. 엘사는 애달픈 미련을 떨쳐내었다.



“여기서 조금만 기다려주지 않을래? 너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어른이 되려고 하고 있고, 난 그걸 도와줘야 해. 금방 올게.”



엘사가 가려고 한다.
안나는 그녀를 붙잡고 싶었다. 이렇게 황량하고 추운 곳에서 혼자-마녀와 트롤이 함께 있겠지만 안나에게 있어서 그 둘은 무섭고 낯설고 심지어 인간도 아니라서 차라리 혼자 있고 싶기도 했다-있기는 싫었다. 하지만 엘사를 붙잡을 수 없었다.



“기다릴게. 빨리 와.”



안나는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이젠 괜찮아.”



이곳엔 마녀와 트롤이 있다. 게다가 네버랜드를 공격하고 있는 괴수 크라켄도 마녀의 편이다. 요정은 감히 접근하지 못한다. 이곳은 세상에서 제일 안전한 장소 중 하나이리라. 그러니 이제 안나는 괜찮아질 것이다. 안나가 무사하다면.
엘사는 애써 안나가 있는 곳을 보지 않았다. 일을 마무리 지으러 가야한다. 어른인 양 웃던 스미의 눈은 도와달라고 외치고 있었다. 전황이 좋지 않았다는 건, 안나를 데라고 요정의 성소를 나왔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노란 연기로 가득한 하늘을 보고 헛웃음이 나왔었다. 그 아래서 스미는 웃어주었다. 괜찮으니, 가세요-하고.



“가시렵니까?”



트롤이 물었다. 엘사가 기억을 되찾아 다행이라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불행히도 모든 기억을 찾은 건 아니었지만.



“가야 합니다. 약속했어요. 그런데 우르술라는요?”
“‘예쁜 옷 안 입고 온 못난이랑은 말 안 해’라고 하셨습니다.”



트롤은 마녀 우르술라의 전언을 들려주었다. 무슨 일이 생겨도 제 기분이 먼저인 마녀로서는 아주 당연한 반응이었다. 낡아빠진 해적 옷-실상은 산지 얼마 안 된 옷이라 엘사는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을 입고, 산송장이나 다름 없는 아이와 함께, 얼음 보호막을 두른 채로 해저에 처박힌 걸로도 모라자서, 기억까지 잃은 상태였던 엘사를 상대해줄리 만무했다.



“그리고 크라켄이 착각을 해서 미안하다고 전해달랍니다.”
“안나도 무사하고, 전 괜찮습니다.”
“왜 착각을 했는지 묻지 않으십니까?”



엘사의 침묵했다.



“몸에서 분명 신호를 보냈을 겁니다. 모르셨습니까?”
“....모를 리가요.”



웬디로서 네버랜드에 도착한 이후로, 한동안은 생애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냈었다. 그러나 1년이 넘어가자 엘사의 몸에 이상이 생겼다. 종종 선혈을 토해댔던 것이었다. 이를 맨 먼저 눈치 챈 건, 요정들이었다. 피에 민감한 그들은 엘사에게 어서 네버랜드에서 나가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엘사에게 갈 곳은 없었다.



뭐든 얼려버리는 힘 때문에 그녀의 어머니가 죽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딸을 죽이려 들었다. 그러나 피붙이는 엘사 하나뿐이었고, 가문을 이어야 한다는 압박이 엘사를 살렸다. 그렇게 엘사는 괴물 취급을 받으면서 다락방에 유폐되다시피 살았다. 가문을 잇기 위한 교육을 받을 때만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러다가 안나 P. 팬을 만나고 집을 나왔다. 다시 돌아간다니,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엘사는 버텼다. 그럴수록 엘사가 피를 토하는 일이 많아졌다. 요정들은 하나 둘 피 비린내가 나는 엘사를 피해 다녔다. 그러다 엘사가 요정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시간이 흘렀다. 그녀의 주변에 있는 요정은 팅커 벨이 유일했다. 팅커 벨은 이를 질색팔색하면서,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 등 변함없이 엘사를 괴롭혔다. 그럴 때마다 안나는 팅커 벨과 싸우고, 엘사를 비호했다.


- <죽기 전에 돌아가지 그래?>


안나의 눈을 피해 피를 토하던 엘사를 본 팅커 벨이 톡 쏘아붙였다.


- 이러다 죽어도 좋아. 난 행복해.


엘사가 진심을 담아 말하자, 팅커 벨은 어김없이 그녀에게 경멸의 눈빛을 던졌다.


- <너 때문에 안나 몸에 피 냄새가 밴다구!>
- 난 여기가 아니면 안 돼. 피터가 없으면 안 돼
- <웬디들은 하나같이 이기적이지! 너 때문에 안나가 죽을 거야!>


어느덧 아이들이 몇 번 바뀌었다. 새 요정들이 태어났다. 하지만 네버랜드는 변하지 않았다. 안나도 그대로였다. 그녀의 눈에 시간에 닿아 변해버린 것은 다 사소한 것으로 보였다. 늘 그랬듯이 안나는 새 모험을 갈구하면서 옛일을, 변해버린 것들을 깡그리 잊었다. 그런 안나의 주변에는 변하지 않는 요정들과 웬디, 엘사가 있었다.
안나가 모르는 사이, 엘사의 몸은 몇 차례의 변화를 맞이했다. 피를 토하는 횟수는 극히 줄어들었다. 그러나.



“고통은 몸에서 자길 살려달라고 보내는 구원신호입니다. 그런데도 당신은 이곳에 남았죠.”
“안나를 남겨두고 갈 순 없으니까. 저마저 네버랜드를 떠나면 안나는 정말 혼자가 되어버리는 걸요.”
“설령 인간도 요정도 아닌 돌연변이 괴물이 되어도 말입니까?”



엘사는 뒤돌아섰다.



“다시 오겠습니다. 그동안 안나를 잘 부탁드립니다.”
“잊지 마십시오. 당신의 몸 안에는 검은 물이 있습니다.”



트롤은 사망선고를 내리는 의사처럼 엄숙히 말했다.













불타는 숲. 폐허가 된 마을. 늑대 부족의 부락은 놀랍도록 날개 부족의 부락과 닮아 있었다. 애초에 파카니니 족에서 갈라진 인디언 무리이니 부락이 닮아 있는 게 이상할 게 없지만, 폐허가 된 형태까지 똑같았다. 한 치의 오차 없이 모든 게 다 무너져 내려, 불타오르고 있었다.



“타이거 릴리!”



얌전히 업혀있던 오리스 루트가 소리쳤다. 해적들과 약속했던 시간이 안타깝게 흘러가고 있었다. 해적의 등에서 내려온 오리스 루트가 아픈 몸을 질질 끌며 부락을 돌아다녔다. 날개 부족은 그를 부축하며 타이거 릴리를 불렀다.
적들이 고함소리를 듣고 몰려올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고, 이를 모르는 바보는 없었다. 그럼에도 인디언들의 필사적인 모습을 본 해적들은 차마 소리를 내지 말라고 할 수가 없었다.



“타이거 릴리!”



그때, 부락에서 가장 변두리에 위치한 집 하나가 우지끈-하고 단말마를 내었다. 탐욕스런 불길이 그 지붕을 반쯤 먹어치우자 그 나머지 지붕은 땅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땅에 떨어진 지붕은 빠른 속도로 타들어갔고, 떨어지면서 생겨난 불똥이 뒤에 있던 덤불 속으로 튀었다. 그와 동시에 “악!”라고 짧은 비명소리가 튀어나왔다. 오리스 루트는 벼락에 맞은 양 몸을 파르르 떨다가 소리가 난 곳으로 뛰어갔다.



“cimzaal... cimzaal...”



파카니니 족의 언어였다. 해적들은 이를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같은 파카니니 족이었던 오리스 루트와 날개 부족은 달랐다.



“Tan u hanal...”



그녀는 넋두리하듯 빠른 말씨로 무어라 지껄였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것 같았다.
오리스 루트는 그녀의 뺨을 내리쳤다. 그 충격이 타이거 릴리를 깨웠다. 그녀는 정신을 차렸으나 곧, 걷잡을 수 없는 두려움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해적들과 적대부족이 저 자신을 빙 둘러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광기 속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늑대 부족 여자였다.
타이거 릴리는 제 몸을 손으로 가리며 외쳤다.



“Ma a cimzcen!!!!”



죽이지 말아요. 타이거 릴리의 절규는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을 뒤흔들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해적들조차 타이거 릴리의 참담한 심정이 느껴질 정도였다. 오리스 루트는 그녀의 외침에 잠시 행동을 멈췄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와 함께 갑시다.”
“시, 싫어- 다, 다, 죽었어, 다, 서로, 죽였어-”



먹어버렸어. 타이거 릴리는 몸을 떨었다. 그녀의 찢어진 옷은 어깨가 훤히 드러나 있었는데, 마치 짐승이 물어뜯은 듯한 사나운 잇자국이 남아있었다. 그녀는 다시 빠른 말투로 지껄였다. 서로, 죽이고, 먹었어. 죽였어. 죽였어. 서로. 먹어.
모두 이 말을 듣고 참을 수 없는 구역질을 느꼈다. 이 빌어먹을 섬에서 한시라도 빨리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리스 루트가 애원했다.



“제발 나와 함께 가줘요!”
“안, 믿어, 너, 적! 적! 적!”



갑자기 어떤 힘이 솟아난 건지, 타이거 릴리는 그를 밀쳐내었다. 오리스 루트가 뒤로 넘어가자, 그녀는 제 단검을 뽑아 그의 심장에 겨누었다. 놀란 날개 부족과 해적들이 그를 도우려 했으나 오리스 루트는 이를 만류하며 타이거 릴리를 설득했다.



“날 죽여도 좋아요. 하지만 당신은 저들과 함께 가야 해요. 저들이 당신을 구해줄 겁니다. ca uiɔinoob! 형제여, 제발! 나는 나의 형제가, 당신이 무사히 대지의 어머니께 돌아가길 바랄 뿐입니다!”



타이거 릴리의 절규와는 또 다른 절규가 울려 퍼졌다. 비록 볼썽사납고 나약해 빠진 울림이지만 파장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들어있었다. 그의 진심이 전해진 건지, 타이거 릴리는 극도의 흥분을 가라앉히고 ‘형제’의 눈을 쳐다보았다. 미쳐버리고 만 그녀의 부족들과는 다른, 희망과 절망이 섞인 눈동자였다. 진심으로 형제를 걱정하는 가족의 눈이었다.



“ca uiɔinoob....”



형제여. 타이거 릴리가 힘겹게 오리스 루트의 손을 맞잡았다.












인디언들까지 도착하자 더는 네버랜드에 있을 필요가 없어졌다. 해적들과 상인들은 지체 없이 출항했다. 닻을 올리고 돛을 편 배는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되어, 파도와 함께 섬에서 벗어났다. 해적들은 저마다 깊은 생각에 잠겼다. 저 섬에서 미처 나오지 못한 동료들을 기린다던지, 앞으로 어떻게 살게 될 것인지, 이따 럼주와 뭘 먹어야 하는지 따위의 크고 작은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해적이었다. 이내 한 가지 행동으로 뭉쳤다.



“술통 열어!"



해적들이 입을 모아 외쳤다. 노래도 불렀다. 그 열기가 배에 탄 이들에게 전해졌다. 상인들은 식량과 술을 풀며 분위기를 맞췄다. 인디언들은 어색하게나마 상인들이 주는 건량을 먹으며 해적들 틈에 끼었다.
후크 해적단은 일부러 소리를 높여 다른 해적들보다 더 왁자지껄하게 떠들었다. 그들의 선장, 엘사 J. 후크의 부재를 느끼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러나 이를 견디지 못한 쿡슨은 스미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선장님은?”
“오실 거다. 그리고 선장님도 늦장 좀 부릴 수 있잖아. 말했지? 선장님도 가끔은 쉬셔야 한다고.”
“네 말이 맞아.”



스타키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일도 잘 끝냈다. 이젠 칭찬 받을 일만 남은 거야. 혼나지도 않는데 까짓것 조금 더 기다리지뭐!”



배들은 일제히 해적섬을 향했다. 그곳은 이미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술집 ‘바다해적’의 주인과 종업원은 물론이고, 다른 가게 사람들이 모두 모여 판을 벌인 것이다. 그들은 제 가게를 허물고는 그 자리에 태울 것들을 잔뜩 쌓아두어 거대한 모닥불을 만들었다.
모두 술잔을 높게 치켜들었다.



“마셔라!”



네버랜드에서는 전례가 없을 규모의 축제였다. 모두들 웃고 떠들었다. 이 소란에 잠이 든 아이들이 하나 둘 깨어났다. 아이들은 처음엔 겁을 집어 먹었는데, 쿡슨과 체코, 스타키의 안내 하에 해적들과 어울려 축제를 즐길 수 있게 됐다. 가게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달콤한 과즙을 마시게 해줬다. 인디언들도 이를 지켜보며 소리를 높였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한때는 서로를 죽이려 했던 세 집단이 어울리고 있었다. 저마다 잔을 들고 아우성을 쳤다. 크게 웃는 이도 있었고, 쩌렁쩌렁하게 괴성을 지르는 이도 있었고, 울음을 터트리는 이도 있었다. 기묘한 광기가 이리저리 움직이다 팡 터지고 다시 부풀어 올랐다.



거대한 모닥불이 꺼진 후에야 축제가 끝이 났다. 하늘에서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은 취기를 깨끗이 씻어 내렸다. 모두 신속히 배에 올랐다.



해적들은 저마다 소속된 해적선에 올라탔다.
얀센 상단의 배에는 인디언들과 가게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탔다. 인디언들은 당초 약속했듯이 상인들의 도움을 받아 고향으로 가게 될 것이다. 나머지 이들은 상단에 소속되어 신대륙으로 떠나기로 결정했다.
아이들은 졸리 로저 호에 올라타서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밤이 아니었으나 온갖 난리를 당한 탓에 피곤에 절어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말로,”



스미는 뱃전에 기대어 새로이 불어오는 바람을 천천히 곱씹었다. 서던으로 가면 질리도록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게 다.”



끝났다. 스미는 울고 싶어졌다. 예전, 해적이 되기 전에 상인의 밑에서 혹사를 당하며 빵 하나로 목숨을 연명하던 그 비참했던 시절에는 많이 울었다. 지금은 그때보다도 더 크게 울고 싶었다. 소리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스미는 여전히 캡틴 훅의 대리였다. 이들 앞에서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선 안 되었다. 그래서 해적섬에서도 점잖게 술만 마셔댔다.



결국 스미는 배의 후미로 향했다. 울음을 참기 힘들었던 것이다. 몸을 숙이고 훌쩍훌쩍 울려는데, 바로 머리 위에서 작은 한숨이 떨어졌다.



“좀 성장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찡찡거리기는.”



어느새 엘사J. 후크가 난간 위에 걸터 앉아있었다. 그녀는 다리를 꼬고 팔짱을 낀 채 스미를 삐딱하게 쳐다보았다. 그러나 여전히 검게 물든 눈동자나 시퍼렇게 질린 얼굴이나 까만 입술이 스미의 심장을 덜컥 내려놓게 만들었다. 엘사가 익사체처럼 보였던 것이다.



“죽으시면 안 돼요-”



스미는 뒤늦게 입을 막아버렸다. 그러나 이미 내뱉은 말을 주워담을 수는 없었다.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한테 죽으시면 안 된다는 망발을 함부로 담다니!
엘사의 눈에 분노가 묻어났다. 그는 식은땀을 흘렸다. 엘사 J. 후크가 제 부하를 두들겨 패기 직전의 모습이 딱 저랬기 때문이다.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어요!”



스미가 부리나케 싹싹 빌었다. 저 계속 찡찡이 할 테니까 죽이진 마세요, 네?-하고 찡찡거리기까지 했다. 이번에야말로 맞아죽을지도 모른다고 본능이 경고하고 있었다.



엘사는 다시금 한숨을 쉬었다. 믿음직스러운 부하가 이런 식으로 배신을 할 줄은 몰랐다. 용케 일을 마무리지었다싶었다. 그래도 이 찡찡이가 없었다면 모두를 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직선을 그리던 입꼬리가 삐뚜름하게 한쪽으로 올라가자, 입술 색이 천천히 살색으로 돌아왔다. 안색도 마찬가지였다.



“나한테 총이 있었다면 네 몸에 있는 구멍이 하나 더 늘어났을 거다. 다행으로 여겨라 찡찡아.”



엘사는 난간에서 내려와, 대견하다는 듯 스미의 어깨를 토닥이곤 손을 내렸다. 그와 동시에 검게 질린 눈동자가 바다색으로 물들었다. 보풀이 잔뜩 인 낡은 옷도 언제 그랬냐는 듯 새옷으로 돌아와 있었다.



“고마워, 스미.”



엘사는 굳어진 스미를 지나쳐, 갑판으로 갔다. 그러자 일대에 큰 소란이 일었다. 엘사는 쇠갈고리 손을 반쯤 들어 올려, 좌중의 소란을 잠재웠다.



“여기서 매듭을 짓는다.”



엘사 J. 후크는 오른팔 대신 끼우고 있던 쇠갈고리를 뽑아버렸다. 살점과 피가 거뭇하게 묻어있었다. 끈질기게 박혀서 죽어서도 빼지 못할 것 같았던 쇳덩이가 너무도 쉽게 빠졌다. 엘사는 쇠갈고리를 미련 없이 바다에 던졌다. 쇠갈고리는 두 번 다시 떠오르지 않았다.
해적들도 저마다 물건을 꺼내어 바다에 던졌다. 모든 것들이, 미련이, 구속이 바다에 집어 삼켜져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았다.



그 순간, 거대한 지진이 일었다. 네버랜드 해 전체가 요동치고 있었다. 요정의 환상으로 시공이 뒤틀려있던 바다와 섬이 그제야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려 하고 있었다. 아이스크림이 녹듯 섬 전체가 액체처럼 주르륵 흘러 내려 바다로 떨어졌다. 아름다웠던 환상의 섬은 텅 빈 모래섬이 되어있었다.
네버랜드 본섬뿐만 아니라 해적섬, 무법항 등 네버랜드 해에 있던 모든 섬은 바다에 조용히 가라앉았다. 그런 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네버랜드는 존재하지 않는다’


엘사는 네버랜드의 최후를 마음 깊이 새겨 넣었다. 그러자 눈앞에 새로운 시작이 보였다.



“출항!”



엘사 J. 후크는 마지막 항해로 새 시작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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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픽 쓰다가 노트북 찢고싶다는 기분을 난생 처음 느낌. 진짜... 몇 십번을 고치고 지웠는지 기억도 안나. 포커스를 누구한테 맞춰야하나 뭘 어떻게 줘야하나 이건 꼭 쓰고 싶은데 하는 건 결국 지우고 지우고 장면 하나 통채로 넣고ㅜㅜㅜㅜ 결국 모든 건 용량으로 귀결됨 ㅋㅋㅋ 왜 30kbㅠㅠㅠ 지운거 생각하면 미칠 것 같고 저게 그나마 최선인데 참 마음에 안 드는 최선이기도 하고... 넋두리 끗. 엉성하고 부족하게 보여도 봐주새오...ㅠ




psps. 아 미친 이 파트 넘겼다... 이젠 몇 년 후, 서던으로 갑니다!  한 두편 남았오!!!!



pspsps. 결국 엘사나 안나나 기억 까묵까묵. 안나는 리셋수준; 바이바이 쇠갈고리!



pspspsps. 중간에 나오는 파카니니 족 언어는 마야족 언어를 차용한 거임. 대강 맞는 단어 몇개 주워다가 쓴 거고 문맥적으로 제일 바른 문장이 'Ma a cimzcen'임. 의미는 Don't kill me. 출처는 네이버 카페 바벨의 도서관 http://cafe.naver.com/stjohn1981   카페 홍보 아닙니다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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