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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범죄단지 미처 치우지 못한 흔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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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부갤러고정닉
무너져내린 남아메리카의 사회주의 성채
남아메리카의 빈국 볼리비아는 약 20년간 민주적으로 당선된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운영되었다. 이들은 여러 분야에서 상당한 성과를 기록했으나, 말년의 실정과 내분으로 인해 결국 처참하게 몰락하고 말았다. https://youtu.be/TePcfdKsUQE?si=PWEvUxtCTGghmYEK SoulboundProvided to YouTube by TuneCoreSoulbound · EldrvakSoulbound℗ 2022 EldrvakReleased on: 2022-10-15Auto-generated by YouTube.youtu.be라틴아메리카는 평균적으로 세상에서 가장 불안정한 민주주의 국가들의 집합이라고 할 수 있다. 정권이 수시로 교체되고, 국가 정책 역시 종종 그에 따라 극단적으로 바뀐다. 이런 환경에서 볼리비아는 비교적 오랫동안 일관성을 유지했다. 이 나라의 사회주의자들은 2006년부터 20년 간 집권했고, 주변국에서 우파 열풍이 불었을 때 조차 권력을 지켜냈다. 더이상은 아니다. 2025년 8월의 선거에서 이들은 국회 의석 130석 중 겨우 2석만을 차지하며 처참하게 몰락했고, 이제 볼리비아에는 20년 만에 비사회주의 대통령이 들어서게 된다. 라틴아메리카의 민주주의 국가들 중에서 가장 공고하던 볼리비아의 사회주의 정권은 대체 어쩌다가 몰락하게 되었나?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현대사는 저마다 충분히 비극적이지만, 볼리비아는 그 중에서도 안타까운 편이다. 이 나라는 지리적으로 매우 불리한 위치에 있다. 국토 서부는 안데스 산맥이라 교통과 산업 발달이 매우 저조하고, 오랫동안 차별 받아온 원주민들이 거주한다. 동부의 평야 지대는 그보다 경제적으로 풍족하며 소수의 백인과 혼혈 메스티소들이 주로 산다. 이런 지역/인종 격차에 더해서 이 나라는 파라과이와 함께 라틴아메리카의 유이한 내륙국이다. 이웃나라 칠레와의 전쟁에서 바다로의 유일한 통로를 빼앗긴 것이다. 경제적, 사회적 문제점은 정치 불안을 낳았다. 오늘날 이 세상의 모든 국가들 중 볼리비아보다 더 많은 쿠데타를 경험한 나라는 없다. 독립 200여년의 역사를 가진 이 나라는 무려 190번 이상의 쿠데타를 겪었고, 이런 정치 불안은 경제적 불안정으로 이어지며 악순환을 연출했다. 볼리비아는 오랫동안 남아메리카 최빈국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었다. 2000년대 초, 이런 볼리비아에 새로운 지도자가 등장했다. 볼리비아 사회주의 운동(MAS) 소속 에보 모랄레스는 당시 정치적, 경제적 위기를 겪고 있던 볼리비아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1997년 결성된 MAS는 전통적으로 소작농들과 코카 재배꾼들, 그리고 여러 원주민 권익 단체들의 지지를 받았는데, 이들의 결집은 혼란 속에서 모랄레스가 압도적 표로 대통령에 당선되게 했다. 사회주의 정권의 탄생이었다. 에보 모랄레스가 집권 후 실시한 가장 중요한 정책은 바로 대대적인 국유화였다. 통신과 항공, 수도 등등 각종 산업이 국영화 되었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에너지 산업이었다. 자원민족주의자인 모랄레스는 취임 백일 만에 볼리비아의 번영하던 석유와 천연가스 산업을 국유화 시키는데 성공했다. 해외 투자자들은 분개했으나, 정부는 에너지 수출을 통한 수익을 국고에 직접 충전할 수 있었다. 마침 시기적 행운이 따라줬다. 2000년대 중반 중국의 폭발적인 성장으로 세계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면서, 볼리비아 역시 그 혜택을 맛보았다. 화석연료 수출액이 대폭 늘어나며 경제에 활기가 돌았고, 정부의 수입도 대대적으로 늘어났다. 이 시기 볼리비아의 경제는 매년 평균 5% 수준으로 성장했다. 모랄레스는 2010년 고정환율제를 채택하면서 물가상승률도 억제하는데 성공했다.볼리비아는 화석연료 수출에서 나오는 막대한 수익을 사회 곳곳에 투자했다. 4,500개의 신규 교육 시설들이 건설되었고, 취학 아동들에게 소량의 지원금이 지급되었다. 60세 이상 노인들과 임산부들에게도 금전적 혜택이 늘어났다. 연료 가격 역시 막대한 보조금을 통해서 낮게 유지되었고, 최저임금도 수 차례 인상되었다. 열악한 농촌 지역에 도로와 전기 같은 기초적 기반 시설이 대대적으로 보급되었다. 이 모든 정부 사업에도 불구하고, 볼리비아의 재정은 한동안 흑자를 유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모랄레스는 토지와 농업 분야에서도 대대적인 개혁을 실시했다. 1억 3천만 에이커에 달하는 토지가 국가/민간 지주들의 소유에서 그동안 소외되던 원주민들에게 넘어갔다. 그러나 모랄레스는 동시에 농지 규모를 2.5배 가량 늘리고 중국을 겨냥한 농업 수출을 장려하는 등 농업 분야 큰 손들에게 적당한 당근도 던져주는 실용적인 모습을 보였다. 원주민들의 정치적 권익도 더욱 향상되었다. 볼리비아는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원주민 비율이 높은 나라 중 하나로 그 비중이 무려 40~60%에 달한다. 그러나 이들은 오랫동안 백인 엘리트층에 의해 정치적, 경제적으로 소외되어 왔고, 모랄레스 이전까지 단 한 번도 대통령을 배출한 적이 없었다. 모랄레스는 이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노력했다. 2009년 새롭게 개정된 헌법에서 볼리비아는 공식적인 다민족 국가로 규정되었고, 36개에 달하는 원주민 공동체들은 폭넓은 자치권을 보장 받았다. 이들에 대한 인종 차별은 눈에 띄게 감소했고 여러 원주민들이 고위직에 오를 수 있었다. 모랄레스 정권의 정책은 볼리비아 어린이들의 교육 수준을 크게 향상시켰다. 경제성장과 저물가 유지, 최저임금 인상과 각종 복지 혜택 덕분에 빈부 격차는 크게 감소했고 절대빈곤율은 38%에서 17%까지 줄어들었다. 인구의 다수를 차지함에도 수백 년간 차별 받아온 원주민들은 마침내 자치권을 비롯한 각종 정당한 권익을 얻어냈다. 그러나 동시에 한계점도 명확했다. MAS 정권은 신산업 발굴에 실패해 결국 자원 채굴 의존형 구조를 탈피하지 못했다. 국유화 조치와 각종 규제는 해외 신규 투자에 큰 차질을 줬다. 지속적인 개발로 인해 식생이 파괴되면서 산불이 빈번해졌고, 매장지 근처 거주 주민들도 환경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볼리비아 정부는 이런 비판 여론을 찍어눌렀다. 모랄레스는 자신의 인기를 믿고서 권위주의 정책을 더욱 밀어붙였다. 대통령은 판사직선제를 도입하면서 사법부를 자신의 사람들로 채워넣었다. 모랄레스는 4선에 도전하고자 했으나, 이에 대한 찬반 국민투표는 49:51로 가까스로 부결되었다. 그러자 사법부는 그 후 모든 선출직의 임기를 폐지한다는, 모랄레스 본인이 새로 만든 헌법에도 반대되는 판결을 내렸다. 부패 스캔들이 갈수록 늘어났고, 정부는 새로운 초호화 대통령궁을 지어서 빈축을 사기도 했다. 외교 정책에도 논란이 없지 않았다. 라틴아메리카의 좌파 정권이 미국을 비판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모랄레스는 정치적 반대파들을 전부 미국의 끄나풀로 몰아가며 탄압하는 행태를 보였고, 쿠바와 니카라과, 베네수엘라의 잔인한 공산주의 독재 정권들과 친분을 과시했다.모랄레스 정권 중반기에 마침내 위기가 찾아왔다. 2010년대 초중반, 미국의 셰일 가스 혁명과 중국의 경제성장률 둔화가 동시에 일어났다. 이 두 사건은 각각 산업 원자재의 공급은 늘리면서 수요는 감소시켰다. 10여년간 이어져온 원자재 시장의 대호황은 2014년 경 가격 대폭락으로 끝났다. 이 사건은 당대 라틴아메리카의 양대 사회주의 정권들에게 큰 타격을 줬다. 브라질의 사회주의자들은 경제 위기에 빠지면서 몇 년 후 강경 우파들에게 정권을 내줬다. 베네수엘라의 사회주의자들은 독재 체제 강화로 정권은 유지했으나 나라가 완전히 파탄났다. 그러나 볼리비아는 놀랍게도 경제성장률이 둔화되었을지언정 여전히 안정적이었고, 인플레이션도 낮게 유지되었으며, 각종 복지 혜택도 그대로였다. 어째서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인가? 혹자는 이런 성과를 볼리비아 정권의 우수성이나 혁신적인 거버넌스 덕분이라고 할 지도 모른다. 허나 진실은 그보다 냉소적이다. 볼리비아는 현상 유지를 위해 그동안 축적해놓은 외환보유액을 소비하는 동시에 막대한 재정 적자를 허용하고 있었다. 경제가 당장은 안정되었지만, 장기적으로 지속 불가능한 구조였다. 이렇듯 외형적으로만 안정을 유지하던 볼리비아 경제에는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이미 개발된 석유와 천연가스 매장지들이 점점 바닥나기 시작한 것이다. 모랄레스의 국유화 정책은 당장의 국가 발전에는 큰 도움이 되었지만, 해외 투자자들에게 매우 부정적인 신호를 보냈다. 직접 새로운 매장지를 개발할 역량이 부족한 볼리비아에게 이는 치명적인 문제점이었다. 물론 볼리비아 정부도 완전한 바보는 아니어서 여전히 숨겨둔 비장의 카드가 있었다. 바로 리튬이었다. 한 때 하얀 황금이라고 불리기도 하던 이 자원은 신재생 에너지 붐 덕분에 세계적으로 각광 받는 자원이 되었다. 오늘날 볼리비아에는 전세계 리튬의 거의 20%가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리튬 산업 역시 화석연료와 비슷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음이 드러났다. 2008년 국유화된 리튬 산업은 이후 역시나 공기업 특유의 비효율 문제를 맞이했다. 최초의 생산 시설은 5년 후인 2023년에서야 가동을 시작했고, 그마저도 생산량이 잠재력의 15%도 안되는 수준이었다. 설상가상으로 그 후 2년 간 국제 리튬 가격은 무려 90%나 하락해버렸다. 중국 업체들이 시장에 대량의 저가 리튬을 투하한 탓이었다. 2019년 경, 볼리비아 경제는 연 4%대 성장률을 유지하고 물가상승률도 낮은 등 겉으로는 멀쩡해보였다. 하지만 외환보유액이 5년 만에 150억 달러에서 60억 달러로 감소하고, 재정 적자도 GDP 대비 8%까지 늘어나며, 해외 투자자들도 오히려 철수하는 등, 속으로는 점점 곪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MAS 정권 몰락의 신호탄은 전혀 다른 곳에서 터졌다. 2019년 대통령 선거의 분위기는 그 전과 달랐다. 모랄레스의 지나친 행보에 점차 질려하는 국민들이 늘어나 있었고, 여론조사에서 그의 지지율은 40% 언저리에 불과했다. 1,2위 후보 간 득표율 격차가 10% 미만일 경우 결선투표가 진행되는 볼리비아 선거제 특성상, 이는 모랄레스에게 결선 투표가 일어나고 야권이 결집해서 낙선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심겨줬다. 선거 당일날 개표가 83% 진행되었을 무렵, 모랄레스는 약 45%를 받고 2위 후보는 38%를 기록하는 중이었다. 결선 투표가 유력해보이던 그 순간 갑자기 개표가 몇 시간 동안 중단되었고, 마침내 재개되자 원래 7%였던 두 후보의 득표율 격차가 갑자기 10.5%로 늘어났다. 누가 봐도 수상한 일련의 사건 전개였다.이런 상황이 일어나자 당연히 부정선거 논란이 일어났다. 미국이 주도하는 아메리카권의 국제 기구인 미주 기구는 부정선거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을 내놓아 논란에 부채질을 했다. 모랄레스의 장기 집권에 피로감을 느끼던 우익과 중산층이 폭발해 대대적인 시위에 나섰다. 모랄레스는 강경 진압을 통해서 버티려고 시도했지만, 그에게 돌아선 군부의 압박을 못 이기고 결국 사임한 후 멕시코로 망명을 떠났다. 이 2019년 정치 위기의 진상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많다. 사태가 일어난지 얼마 후 미주기구의 부정선거론이 비약이라는 반론 분석이 제기되었다. 모랄레스를 동정하는 국제 좌파들은 미국이 미주 기구와 군부를 이용해 반미 성향 모랄레스를 몰아내기 위한 쿠데타를 일으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쿠데타설을 입증할 증거가 부족한 상황에서 논란의 진실이 밝혀질 일은 당분간 없어보인다. 어찌 되었든 간에 새로운 선거를 대비하기 위한 우파 주도 임시 정부가 꾸려졌다. 그러나 임시 정부는 코로나 대처와 정국 안정에 있어서 무능한 모습을 보여줬고, 이에 지친 볼리비아 국민들은 결국 모랄레스 정부에서 재무장관 역을 맡던 MAS의 루이스 아르세를 당선시켰다. 망명을 떠났던 모랄레스는 의기양양하게 귀국할 수 있었다. 하지만 MAS 정권은 머지않아 내전에 시달렸다. 모랄레스는 여전히 막후에서 정부의 그림자 통치자로 군림하고 싶었으나, 아르세는 자신의 권력을 양도하기를 거부했다. 모랄레스는 2025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려고 했으나, 이 역시 아르세에 의해 저지되었다. 두 옛 동지들은 곧 서로를 저격하면서 원수 사이가 되었다. 여당이 내부에서 분열하자 국정 운영도 정상적으로 진행이 안 되었고, 국민들의 실망은 커져만 갔다. 모랄레스에게 치명적인 사생활 의혹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가 대통령 재임 도중 15세 중학생과 성관계를 맺어 사생아를 낳았다는 논란이었다. 의제강간 혐의로 기소된 모랄레스에게 구속 영장이 발부되었지만, 그의 열성적인 지지자들이 자택을 둘러싸며 그가 체포되는 것을 저지했다. 모랄레스는 우익의 앞잡이가 된 아르세가 자신을 제거하려 한다며 비난했고, MAS의 내분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경고등을 깜빡이던 볼리비아의 경제는 2024년부터 붕괴의 길을 걸었다. 에너지 생산량이 바닥을 치고 재정적자와 외환유출이 더이상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하자, 인플레이션이 폭증했고 연료를 비롯한 각종 물자가 부족해졌다. 아르세는 지지율을 의식해 경제 개혁 대신 가격통제와 규제 강화 등의 조치를 취했으나, 이는 오히려 물자 부족과 화폐 가치 하락을 유발해 위기를 악화시켰다. 설상가상으로 모랄레스는 나라의 혼란을 더욱 부추기기 위해 분발했다. 그는 모든 것이 아르세의 탓이라면서 정부와 여당 공격에 집중했고, 자신을 비판하거나 둘의 분쟁을 중재하려는 옛 동지들조차 배신자로 몰아가며 공격했다. 모랄레스는 자신의 강성 지지자들을 동원해 전국의 도로 곳곳을 틀어막으며 물류를 방해했고, 덕분에 경제적 혼란마저 심화되었다. 2025년 볼리비아의 경제는 완전히 무너졌다. 정부 부채는 GDP 대비 90%를 초과했으며 외환보유액은 2014년에 비해 8배나 감소해 20억 달러에 못 미쳤다. 물가상승률이 25%에 육박했으며 기름을 채우기 위해 기다리는 줄이 몇 시간에 달했다. 끊이지 않는 부패 스캔들까지 겹치며 아르세 정부에 대한 분노는 극에 달했다.대통령 선거 국면에서 경제 위기를 해결하겠다는 여러 중도 ~ 우파 후보들이 등장했으나, MAS는 이에 대항하지 못했다. 아르세 대통령은 자신의 처참한 지지율을 보고 일찌감치 재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MAS는 새로운 후보를 내세웠으나, 그의 지지율은 전직 대통령의 내부 총질 때문에 5%도 채 넘기지 못했다. 복수에 눈이 먼 모랄레스는 자신이 가지지 못한다면 그 누구도 가지지 못한다는 태도로 나왔다. 그는 아직 상당히 남아있던 열성적인 지지자들에게 MAS의 대통령 후보를 뽑는 대신 무효표를 던지라고 촉구했다. 대선과 총선을 같이 치루는 볼리비아의 특이한 선거제는 대통령 선거 후보의 득표율에 따라 의회 의석을 배분하는데, 이는 사실상 제 정당의 몰락을 기원한다는 뜻이었다. 2025년 8월 17일은 볼리비아 대선의 1차 투표일이었다. 중도와 우파 후보가 결선으로 올라간 가운데, MAS의 공식 후보는 3%를 득표했으며 다른 MAS 계열 후보 역시 8.5%에 그쳤다. 모랄레스는 마지막까지 그들을 배신자라고 비난했고, 그의 강성 지지자들은 그대로 호응해 투표하는 MAS 계열 후보에게 돌을 던지기도 했다. 과반을 우습게 넘기던 대형 좌파 여당 MAS는 130석 중 2석을 차지하는 미니 정당으로 전락했다. 반면 우파 정당들은 개헌선을 훌쩍 넘기는 성적을 거두며 헌법마저 마음대로 개정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모랄레스가 주도한 무효표 운동은 전체 표의 20%나 되었다. 만일 그가 자존심을 내려놓고 여권 후보를 대신 지원했다면 어땠을까? 개헌저지선은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고 어쩌면 결선투표에도 진출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본인이 지난 30년 동안 이뤄낸 성과를 보존하는 대신 자존심을 택했고, 볼리비아의 좌파진영은 완전히 붕괴했다. 10월 19일 일어난 결선투표에서는 중도 성향의 파스 페레이라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SNS 중심 선거 운동을 펼친 페레이라는 ‘모두를 위한 자본주의'라는 구호를 내세우며 규제 완화와 동시에 기존의 복지 혜택을 상당수 유지하겠다는 비전을 내놓았다. 이런 그의 중도적 성향은 여러 전직 MAS 지지자들의 전략 투표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페레이라 앞에 놓인 과제는 막대하다. 그는 인플레이션과 자원 고갈, 정부 부채 문제가 결합된 복합적인 경제 위기를 해결해야 한다. 그의 정당은 의회에서 과반을 확보하지 못해 야권과 타협이 필수적이다. 모랄레스의 광적인 지지자들은 수틀리면 폭동으로 정권을 엎을 수 있다고 협박하는 중이다. 사회주의 시대가 저문 볼리비아에서, 페레이라의 모두를 위한 자본주의는 과연 그 대체제가 될 수 있을까. 참고 자료 https://www.theguardian.com/global-development/2025/sep/03/lithium-mining-bolivia-salt-flats-indigenous-environment-ecosystem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17/dec/03/evo-morales-bolivia-president-election-limits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25/aug/20/bolivia-presidential-election-socialism https://fee.org/articles/crisis-in-bolivia/ https://www.economicsobservatory.com/from-crisis-to-stability-what-next-for-bolivias-economy https://www.npr.org/sections/goatsandsoda/2019/11/26/781199250/how-evo-morales-made-bolivia-a-better-place-before-he-was-forced-to-flee https://foreignpolicy.com/2025/10/23/bolivia-president-right-mas-paz/ https://jacobin.com/2020/10/evo-morales-bolivia-indigenous-president-mas https://jacobin.com/2025/08/bolivia-movement-toward-socialism-election
작성자 : 라파헤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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