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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 예능 발언에 대한 반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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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ㅇㅇ고정닉
[기획] 시진핑 집권3기와 무림맹주를 향한 파워게임
간만의 폴아웃입니다.중국근현대사 기획시리즈 3번째로 23년의 3중회전과 24년의 4중회전을 다루려고 오래 글을 끄적거렸었는데 노구를 끌고 먹고 사는게 고되어 이제 퇴고를 하게 되었습니다. 묘하게도 요즘 중국 상황과 맞물려 많은 뉴스가 쏟아져나와 글의 이해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중국 공산당과 일반적으로 뭉뚱그려 이해되는 상임위원회. 중앙군사위원회, 국무원, 국가주석, 그리고 군과 치안기구 공안의 관계와 파워밸런스 등, 양회와 구성 기관에 대한 이해가 조금은 필요하니 이전 두 개의 시리즈를 먼저 읽어보시길 권하며, 중공 초기부터 현대까지 복기해 보면서 현재 시진핑 집권 1,2,3기의 성쇠를 설명해보겠습니다. 시작합니다.중공의 천하제일인 국가주석에게 중앙군사위는 왜 중요한가.우선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중국에서 국가주석은 매우 권위있는 만인지상의 자리로 보이나 실제로 주석으로서 권한을 행사하려면 3가지 핵심 직책을 모두 가져야 합니다. 1. 당 중앙위 총서기, 2. 주석, 3. 군사위주석. 그러니 '공화국 주석 직함 하나만으로는 실질적 군의 통수권자가 아니올시다.'를 알아야 합니다. 중국의 정치 원칙은 국가를 운영하는 것은 공산당이고, 정치로서 국가를 영도하는 것은 선발된 자들의 과두정치체제입니다. 중국을 움직이는 수 많은 기관들, 우리가 뉴스를 통해 이제는 익숙한 기율위, 정법위, 중앙군사위 등등은 모두 당과 정의 하위기관으로서 기능합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시키는대로 움직이는 피상적인 기관이 아니라 나름의 독립적인 재량과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조금 비틀어서 '일당 중심의 과두정치'라는 체제와 붙여서 생각하면 '누구든 어떤 위원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느냐에 따라 진정 국가권력을 움직이는 사람이 된다.' 라는 결론에도 도달하게 됩니다.즉, 실제 중공의 만인지상의 지위를 행사하려면 1. 당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야 하며 2. 각 위원회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라는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합니다. 이 두 가지 조건을 제대로 충족하지 못할 경우 중국의 국가주석은 껍데기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군은 당의 명령을 따르지만, 당을 장악하려면 군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마오는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홍위병을 일으켰고, 2대 류사오치는 실패해서 몰락했으며, 3대 리셴넨은 뒤에서 군권을 장악한 덩의 얼굴마담으로 살았고, 4대 양상쿤은 양가군으로 천안문 혈해사건을 일으켰고, 5대 장쩌민은 당, 군, 공안 모두를 장악한 덕에 시진핑 집권기에도 편안히 천수를 누렸고, 6대 후진타오 역시 이를 실패해서 말년에 실각, 현재 7대 시진핑의 시대에 도달했습니다. 공화국 주석직을 거머쥐었어도 이런 파워밸런스를 맞춘다는건 쉽지 않은 일 입니다.소수의 엘리트가 실용주의로 중공을 풍요로 이끌 수 있을거라 믿었던 2대 주석 류사오치.마오의 대숙청으로 류사오치와 실용주의계파는 몰락합니다.4대 국가주석이 되는 양상쿤선양군구에서 동생 양바이빙과 양가군을 몰고와 천안문을 혈해로 만들었습니다.그러니 이를 설명하기에 적절한 예가 되는 인물과 사건은 우리도 잘 알고 있는 덩샤오핑과 천안문 6.4 항쟁일 것입니다. 원래 간신히 숨만 몰아쉬고 있던 덩은 예젠잉의 도움으로 마오 사후 문혁 4인방과 마오의 강철의 마누라 정청을 제거한 이후 국가주석에 오르지 않고도 2대 군사위주석직에 머무르며 실질적인 중공의 만인지상 천하제일인으로 국가를 운영했습니다. 마오 사후 실질적 1인자로 평가 되었던 제1 부주석 화궈펑(화국봉 华国锋)과 마오의 마지막 충신 왕둥싱(왕동흥 汪东兴) 모두 덩이 군사위주석직에 머무는 동안 무력하게 실각했음으로도 알 수 있듯이 당시 덩이 2대 군사위주석에 머무르며 국정을 주무르고, 이제는 마오 지우기에 돌입해 정적이 된 오랜 혁명 동지들을 상대로 신나는 칼춤을 추는 동안 덩과 과두정의 동의를 얻은 리셴넨(이선년 李先念) 조차 3대 국가주석으로서 얼굴마담을 맡고 있었으나 아무런 제지도 할 수 없었습니다. 국가주석이라는 자리는 당의 과두정 지지를 얻어 올랐다고 하더라도 군의 통제권이 없거나 상실할 경우 아무런 힘이 없는 껍데기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리셴넨은 청년시절부터 마오와 함께 중공을 일으킨 혁명 원로이면서 1967년 2월 정치국 회의에서 홍위병의 패악질과 문혁의 실패를 정면 비판하다 문혁파의 역류로 실각해 시골 공장의 생산노동자로 전락했던 전적이 있을 정도로 강단있고 강직한 사람이었으나 군을 쥐고 있던 덩의 칼춤을 멈출 어떤 수단도 없었던 것입니다.3대 주석 중공원로 리셴녠배움이 없던 소년 노동자로 20대부터 마오와 동고동락했습니다.같은 중공원로 펑더화와 함께 진정 인민을 사랑하던 위정자였다고 생각합니다.자타공인 마오의 팬클럽 회장이었던 왕동흥마오의 경호사령이기도 했고, 문혁4인방이 숙청되던 그날 밤에도 현장에 있었습니다.화국봉에 이어 정치적으로 숙청되었지만, 99세 천수를 누리며 죽는 마지막 날 까지 마오의 현대 평가를 되돌리려 애썼습니다.천안문이 혈해로 뒤덮인 것은 덩을 정치적으로나 무력으로나 제어할 사람도 기관도 없었기 때문.이렇듯 천안문 6.4항쟁이 피로 물든데에도 원인은 당과 정, 군을 모두 장악한 덩을 제어할 사람도 기관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덩의 오랜 동지였던 후야오방 (호요방)이 사망한 것으로 촉발된 것이 6.4항쟁이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후야오방이 이젠 없기 때문에 온건하게 시민들과 소통하고 민주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사람도 없어졌습니다. 학생들과 시민들을 통제하는 일에 비협조적이라는 이유로 후야오방을 강제 하야시키려는 덩에게 맞섰던 시진핑의 아버지 시중쉰(습중훈), 당 총서기였던 자오쯔양 (조자양)이나 당시 계엄사령관을 임명받았으나 단칼에 거절하고 숙청당했던 제38집단군 사령관 쉬친셴(서근선) 중장등을 제외하곤 당정 정치기구에서 덩을 제어할 사람이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최초 천안문 계엄사령관이었던 38 집단군 사령 쉬친셴은 단칼에 진압 명령을 거부하고 곧바로 체포되어 숙청되었습니다.유배, 농장 노동자 등으로 힘들게 살았으나 사망 전 홍콩 언론의 인터뷰에서 '후회는 없다.' 라는 소회를 밝혔습니다.시중쉰. 중공원로였으나 별다른 발언권도 힘도 없었지만, 유일하게 덩에 맞서 후야오방을 보호하는 등 매사에 온화하고 진보적이었습니다.앞서 중공 만인지상으로 권력을 행사하려면 당정과 군 모두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당시 중앙군사위는 주석을 맡고 있던 덩의 통제에 있었다지만 당.정은 왜 제어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지 그동안 덩이 숙청한 중공의 주요 인물들의 이름과 직책을 알아보도록 합시다. 중국 근,현대 정치사에서 62년부터 89년까지가 정말 공부할 것도 많고 흥미로운 부분이 참 많습니다.화궈펑 (화국봉 华国锋): 중공중앙주석, 중앙군사위주석, 국무원총리왕둥싱 (왕동흥 汪东兴) 중앙정치국 위원, 정치국상임위원, 중공중앙부주석지덩쿠이 (기등규 纪登奎): 국무원 부총리, 중앙정법소조 조장, 중앙군사위원, 중공정치국위원우구이셴 (오계현 吴桂贤): 최초의 국무원 여성 부총리슌기안 (손건 孙健): 텐진시 공업부장, 국무원 부총리리쑤웬 (이소문 李素文): 전인대 여성 부위원장랴오롄웨이 (요연위 姚连蔚): 전인대 부위원장우더 (오덕 吴德): 베이징시위 제1서기, 중공정치국위원천시롄 (진석련 陈锡联): 선양군구사령, 베이징군구사령, 중앙군사위상임위원, 국무원부총리, 중공정치국위원천융구이 (진영귀 陈永贵): 중공정치국위원, 국무원 부총리추야오방 (호요방 胡耀邦): 중국과학원 부원장,중공중앙당교 상무부교장, 중공중앙주석, 중공중앙총서기자오쯔양 (조자양 赵紫阳): 중공정협부주석, 중앙정치국상임위원, 국무원총리, 중공중앙부주석, 중공중앙총서기 후치리 (호계립 胡启立): 중공중앙정치국상임위원, 중앙서기처서기 루이싱웬 (예행문 芮杏文): 상하이시위서기, 전국정협 상임위원, 중앙서기처 서기얀밍푸 (염명복 阎明复): 정협부주석, 중앙서기처 서기천안문 혈해 전, 학생 시위대와 직접 만나 울먹이며 소통했던 자오쯔양. 우측은 후에 국무원 총리가 되는 원자바오.학생과 시위대에게 온건했다는 이유로 숙청되었지만 그 전의 경제정책 실패가 실제 원인이었을 겁니다.덩은 차근 차근 군 뿐만 아니라 당,정의 주요 기관과 위원회의 민주적이거나 학생, 노동자에 온건한 인사들을 숙청해가며 자신의 측근 인물들로 채워나갔습니다. (오덕은... 제외.....)당시 중공의 정치기구나 위정자들이 모두 덩에 동조적이었기 때문에 천안문의 혈해를 막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상황이 이렇다보니 안타깝게도 현실적으로 덩을 제어할 수단을 가진 고위 관료가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비극이라고 보는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쉬친셴이 유혈진압을 단칼에 거부했기 때문에 덩 마저도 어쩔 수 없이 선양군구의 양상쿤, 양바이빙 형제의 양가군을 불러들인 것으로도 당시 중공의 당,정에 덩을 제어할만한 누군가가 조금만, 정말 조금만 더 있었다면 6.4 항쟁의 결과는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또한, 어쩌면 쉬친셴이 못 이기는 척, 베이징군구 38집단군으로 조금 강하게 진압했다면, 굳이 연고가 없어 더 거칠게 없던 선양군구의 양가군이 들어와 베이징 시민의 피를 흘리게 하진 않았을 거란 안타까움이 남기도 하죠.그렇다면 3연벙을 성공한 시진핑은 어느 날 갑자기 통제에 실패했기에 최근의 일이 발생한 것인가?위의 사례들을 통해 현대 중국의 국가주석 또한 늘 각 기관과 위원회에 자신의 사람을 심어서 내가 내리는 시스템 명령어를 위원회 전체가 따르도록 하는데 심혈을 기울입니다. 이걸 소홀히 하다 연판장 사건으로 훅 갈뻔한 인물과 집단이 이전 기획글에서 소개했던 거세된 국가주석 장쩌민과 범장파였고, 이때 보시라이의 아버지 중공원로 보이보가 이들을 구해준 이후 장쩌민은 정치국상임위와 중앙군사위 양쪽 모두에 내 사람을 꽂는데 필사적이었습니다. 덕분에 후진타오의 17차 상임위원회에선 9인 정치국 상임위원회에 다섯명이나 되는 범장파 인사가 자리를 잡고 범장파를 후원했고, 무경과 중앙군사위의 장악에 성공했으며, 이중에는 2013년 보시라이와 함께 시진핑의 목을 거의 쳐내는데 성공 할 뻔했던, 중앙정법위 서기였던 저우융캉 (저영강)도 있었습니다.시진핑이 재임 내내 신경질적으로 각 위원회의 다른 계파 사람들을 쳐내고 내 사람으로 채우고, 또 시간이 지나면 이 사람들을 숙청하고, 다음 세대의 내 사람으로 채우는 일의 반복은 상기한 전례들이 교훈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는 것은 3연임에 성공한 시진핑 국가주석은 이런 일을 그동안 '능숙하게 해왔다.' 라는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겁니다.다만, 최근의 상황들이 더 이상 누군가 절대적 위치에 있는 한 명의 계산대로 권력구도를 개편하면서 유지할 수 있는 상황을 이젠 벗어났다는게 문제가 될 것입니다.중공의 건설이 교육받은 관료나 소수의 엘리트에 의해 이루어지지도 않았고, 혁명, 중일전쟁, 국공내전의 승리 후 드디어 안정기에 접어든 중국을 소수의 온건한 엘리트가 다수의 인민을 영도하는 사회를 꿈꿨던 실용주의 류사오치마저 끝까지 권력을 놓을 수 없었던 마오와 문혁파들에 의해 박살이 나면서 중국은 긴 시간 정치와 이념적으로 표류의 시간을 거칩니다. 인민을 달래려는 여러가지 방법이 고안되었지만 모두 비현실적인 방법들 뿐이었기에, 중국의 인민들은 더더욱 공산당 일당독재를 불신하게 됩니다. 당이 독점한 권력의 민간으로의 이양을 요구하는 갈등의 골이 깊어지다 한계선을 넘어버린 것이 1차, 2차 천안문 항쟁이었다면 현재의 중국을 부강하게 만든 것 또한 당시 천안문 혈해를 무마하기 위한 중공의 정치, 행정 개편이 개혁개방으로 개화된 덕이라고 할 수 있을겁니다. 즉, 누구도 이것에 대해 말을 꺼내지도 화두로 논쟁을 벌이지도 않지만 조용히 당과 인민 양쪽 모두 이 사건을 역사와 기억에서 지워버리는 대가로 각자가 얻은 것은 일당독재체제에 대한 동의와 경제적 풍요라고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 합의는 양쪽이 모두 원하는걸 얻는 동안에는 공고히 유지되어왔습니다. 개혁개방이 성과를 내면서 중공의 경제계획수립과 발전은 무엇이든 결과를 냈기 때문에 당은 소수의 사람들이 권력을 독점하면서 부를 축적해도 중국 인민의 입장에선 딱히 제재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정치적 자유를 포기하고 일당독재를 받아들여도 나의 생활 수준은 계속 향상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전 기획글에서 적었습니다만, 독재 아래에서 인민이 정치에 무감각해지면 일어나는 나쁜 일 중의 하나는 이 시기를 틈타 정치권력은 더욱 폐쇄적으로 권력과 부를 독점하는 집단으로 변질되고, 이를 위해 계층간 사다리는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일으키는 더 큰 문제는 폐쇄적인 권력집단은 반드시 파벌화되어 중앙의 통제를 받지 않는 여러 집단으로 분화되고, 시간이 지나면 내부투쟁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것을 알고 있었던 덩은 생전에 유언으로 '지방 정부에 대한 당 중앙 정부의 권위를 항상 공고히 하라.' 했지만 개혁개방을 통해 엄청난 부의 흐름이 휩쓸면서 권력과 부를 움켜쥘 수 있는 성과 도시의 서기, 국영기업 사장, 위원직을 차지하려고 중앙의 통제를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지방정부에 대한 공산당의 통제권이 약해지면서 부유한 성의 관료들은 인접한 지역을 자신들의 경제식민지로 재편하기 시작합니다. 강시(강서), (안후위)안위, 저장(절강), 하이난(해남) 기타 성들의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으려 푸젠, 광둥으로 몰려들었고, 이들은 푸젠과 광둥에서 일하고, 임금을 받고, 그곳에서 소비하면서 자연스럽게 돈의 흐름이 이 두 곳을 중심으로 고여버리게 되자 인근 지방정부들은 큰 어려움에 봉착합니다. 인구가 빠져나가는 것은 노동력이 빠져나가는 것이고, 노동력이 빠져나가는 것은 생산의 주체와 조세원이 없어진다는 것이죠. 인근 지방정부는 부족한 세수와 자본을 확보하기 위해 지역의 광산과 토지등의 개발권을 푸젠, 광둥의 사업가들에게 넘기고 조금씩 식민지화가 되어 갑니다. 바로 이때부터 장강 이남의 남부연안 지역은 푸젠과 광둥을 중심으로 하는 폐쇄적인 집단이 되기 시작합니다. 막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중앙위원회에서 남부연안을 위한 정책에 힘을 싣는 신(新)연안파가 결성되었고 이게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청년 보시라이가 그렸던 큰 그림은 단순히 국가주석이 아니라 부유한 지역들을 거점으로하는 앞으로도 중국을 쥐락펴락하는 새로운 연합의 결성이었을거라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고, 시진핑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만 보시라이와 시진핑이 지녔던 비전의 차이점은 보시라이가 덩의 도광양회를 충실히 따라 당정과 인민이 큰 욕심 부리지 않고 서로 원하는걸 얻는다면 묘한 긴장관계는 내외적으로도 잘 유지될거라고 생각한 반면, 시진핑은 시좌진파의 당정 정치권력 독점에 대한 정통성, 타당성을 마침내 얻고자 했음에 있습니다.시진핑 1기 시작과 문제의 발견. 국가통계국 : '소나기가 내릴 것 같으니 이제 그만 빨래를 걷읍시다.'시진핑 1기였던 2012년, 시진핑은 압도적인 당의 지지를 받으며 중국권력구도 개편에 나섭니다. 1기 출범 시절엔 워낙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던 덕에 당정과 군사위에는 많은 친 시진핑 인사들이 새로 요직을 차지해 시진핑 집권 1기의 국정과 행정의 추진 원동력이 되어주었습니다. 후진타오 집권을 거치며 한층 풍요로워진 현대 중국, 하지만 이때 시진핑은 국가통계국의 여러 자료를 통해 중국의 경제성장율이 근미래에 한계에 봉착하게 될 것이라는걸 깨닫게 됩니다. 그간 산아제한의 약빨이 하필 이때 먹혀서인지 출산율은 조만간 완전히 꺽일것이라는 전망, 30년간의 고도성장을 댓가로 갈아버린 청년노동자가 드디어 고갈되기 시작해 생산가능인구도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 보편 교육의 낮은 성취율로 인해 첨단산업노동가능인구가 늘어나긴 어렵다는 전망, 증가하는 노령인구가 많은 부담이 될 것이라는 전망, 광활한 영토에 아직도 많이 필요한 인프라투자 등등... 그동안 인민과의 묘한 평화합의의 원천이었던 경제적 부유함을 보장할 수 없을 경우 태자당과 시좌진파는 빠르게 실각하게 될 것 이었습니다. 2020-21년 출산율 (0.75)과 사망율 (0.72)의 역사적인 크로스 직전. 이것은 집권 1기 국가통계국의 예상보다 훨씬 빨랐습니다. 따라서 집권 1기 동안 시진핑은 인민과 정치-경제적 '거래가능' 상황을 연장하기 위한 여러 정책들을 펼칩니다. 상당한 각오를 가지고 중공의 기존 경제성장계획을 뜯어고치려 함은 집권 이듬해 열린 18기 3중전회에서도 드러났습니다. 이때 시진핑의 발언 핵심은 정치요소개혁을 통하여 경제개혁, 사회개혁을 추진하려는 것이었고 이는 인구감소에 브레이크를 걸기 위해 60년만에 산아제한을 폐지했고, 갑자기 공동부유를 내세우며 사회인프라확충과 인민복지개혁 시행, 부패척결로 이어집니다. 집권 초기 한국을 비롯한 서방의 시진핑에 대한 평가는 이런 1기 행정부의 정책이 긍정적 시그널로 읽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공동부유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중국 내에 진출한 외국기업들에 대한 투자자금제한, 중국 내 사업으로 얻은 이익금의 이동 제한, 집권 시작과 함께 꽂아넣은 국영기업의 사업 독점을 위해 마윈과 같은 신흥 기업가에 대한 전방위 탄압, 도시근로자의 증세부담 이런 것들은 모두 중국의 불안해져가는 재정상황과 맞물려 순식간에 국내,외 모두 박한 평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1기 집권 말기 시진핑과 태자당은 장기집권이 목표가 아니라 생존 방법을 고려해야 하는 입장으로 바뀝니다.시진핑 2기. 새로운 목표 : 태자당 시좌진파의 권력독점에 대한 정통성을 인정받는 것경제적 부유함을 주고 정치적 안정성을 얻는 이런 거래 관계가 더 이상 오래갈 수 없음을 깨닫는다면 정치독점을 인민과의 거래가 없이도 영속할 수 있도록 '정통성' 또는 합법성'을 따내면 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팬데믹 이전, 그러니까 시진핑 2기 공산당의 시진핑에 대한 압도적 지지는 당시 관영매체 신화망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신화망엔 지도자 강화(講話) 코너가 있고 (신화망 한국어판에는 시진핑 타임) 현 공산당 최고 과두정치기관인 상임위원회 7인의 강화를 계속 업로드 합니다. 당시 2기 상임위 7인이었던 시진핑 (주석), 리잔수 (율전서 栗戦書 시좌진계, 중앙판공처 주임, 이후 전인대 상무위원장), 리커창(후진타오계, 李克强 국무원총리), 자오러지 (시좌진계, 조락제 赵乐际 중앙조직 부장, 이후 중앙기율위 서기), 왕양(汪洋 후진타오계, 상무부 총리, 이후 정협회의 주석), 한정 (장쩌민계, 한정 韩正 상하이시 서기, 이후 부주석), 왕후닝(시좌진계, 왕호녕, 王沪宁, 중앙정책연구주임, 이후 정협회의 주석) 강화를 보면 하나같이 시진핑의 지침에 지지를 보내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2기의 구성원의 대학 전공을 보면 당시 집권 2기의 방향성과 성격을 알 수 있는데 3명이 사범대, 2명이 상경계(정치경제학), 1명이 철학으로 6인 전원 문과출신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상기했듯이 2기의 목적은 시진핑주의로 대변되는 시진핑과 시좌진파의 집권 정통성을 부여하고 걸리적 거리는 장애물을 빠르게 치우는 것이 최우선 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엔 장쩌민 집권 말기부터 공산당 중앙정책중심 주임을 맡아온 왕후닝의 치밀한 설계가 밑바탕이 됩니다. 왕후닝은 중공 내에서도 극좌로 분류되는 모파(毛派)로 중공은 반드시 절대권위를 지닌 인물을 중심으로 뭉쳐 소수의 인물이 영도해 나가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던 사람이었습니다. 장쩌민, 후진타오 집권시기엔 당내 자유파에 밀려 왕후닝의 극좌 주의는 주목받지 못 했으나 시진핑 집권기를 맞아 발탁이 되어 근래까지 시진핑 영웅화의 근간이 되는 시진핑신시대 신사회주의사상의 주창자가 되어 집권 2기 시진핑의 행정집행에 걸림돌이 되는 모든 것을 치워버리는데 앞장서는 공신이 됩니다. 실각 전까지 시진핑주의의 설계자이자 주창자 왕후닝. 시진핑 중심 연속집권 개헌 로드맵도 이 사람이 설계했습니다.한명회가 오버랩 되기도 하는 이 사람이 후대에 정치 책사라고 평가될지, 어용문인이라고 평가될지 개인적으로 궁금합니다.시진핑주의의 골자는 무엇일까요? '당 주도의 경제적 고도성장은 끝났지만 이런 이런 문제가 있으니 우리(시진핑)가 장기집권을 하는게 정치적으로도 법적으로도 옳다.' 라는 성취를 얻어낸다면, 더 이상 무언가를 주면서 인민을 달랠 필요도, 타 계파의 눈치를 볼 필요도 '이론상' 없어지겠죠. 또한 법률로 제정된 권한을 행사하는데엔 비용도 들지 않습니다. 이렇게 2017년 집권 2기는 당 주도의 민족주의를 고취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내부적으로는 민족주의를 고취하고 밖으로는 일대일로, 전랑외교를 통해 '위대한 중화인민은 시진핑 집권 2기에 이르러 스뜨롱한 중국의 시대를 다시금 거머쥐었다.'를 천명하는데 더욱 집중하게 되죠. 민족주의로 스뜨롱한 중국은 곧 민족적으로 완전무결하게 스뜨롱한 당을 이야기하며, 스뜨롱한 당을 증명하기 위해선 중앙 통제에서 자꾸 벗어나려는 지방 정부를 효율적으로 제압해야 합니다. 이 시기 입법된 많은 법안이 지방 정부를 제압하기 위해 하나의 당, 하나의 중국을 천명하기 위함이었고, 외부적으로는 스뜨롱한 중국을 위협하거나 얕보는 외세에 강하게 대응하는 멋진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게 내치와 외치의 국룰이었기에, 이것이 현재 이르러 에스컬레이드된 양안문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게 됩니다. 결국 이 시기 '신권위주의' 라는 것이 당 내부에서 폭발적으로 일어나 이렇게 집권 1기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법률을 통해 지방을 강하게 통제하거나 국정을 운영하려면 당정의 여러 위원회, 기관과 위원들을 교체하거나 교체 불가능하면 치워가면서 1기 집권 때 시진핑이 직접 꽂아주었던 친 시진핑 인사들 뿐만 아니라 지방 정부 통제에 걸림돌이 되는 계파와 요인들을 반부패법으로 엮어 숙청, 실각시킵니다. 네 글자로 하면 토사구팽이죠. 이때 시진핑은 행정적으로는 당정에 새로운 시좌진파를 물갈이하는데에 집중하고, 군사적으로는 집권을 공고히 해줄 시좌진파 군의 양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육군 밥상 채워주기를 소홀히 한 댓가로 군의 통제력에 균열이 생기다.시진핑은 집권 2기 들어 정치적으로는 자신이 주석으로 있는 중앙군사위원회의 6개 의석에 시좌진파 장성들을 배치하려 노력하고, 실무적으로는 군 내에 시좌진파 장군을 늘리기 위해 군의 현대화 개혁을 통해 직접적 통제권에 두기 어려운 육군에 대한 지원을 축소해, 공군과 로켓군을 키우는데 많은 투자를 합니다. 이를 통해 해군 정치위원이었던 먀오화(苗華), 군사위부주석 허웨이둥(何衛東)이 6석의 의석 중 2석을 가져가게 되었습니다. 2023년 집권 3기 들어 4군 중 특히 해군과 로켓군에 대한 지원을 노골적으로 늘렸기에 해군은 국방예산의 30%를 가져가면서 엄청난 속도로 건함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고, 함대가 늘어나면서 장성 티오도 늘어 시진핑이 임명하는 신규 장성의 숫자가 증가하게 되었습니다. 육군도 해군과 같이 30%정도의 예산을 받지만 30만명 규모의 해군에 비해 100만명 규모의 육군은 예산면에서 3~4배의 손해를 보고 있는 셈입니다. 2020년 기준 중국 국방예산 기획.실제로는 로켓군에서 6%정도를 떼어 각군에 보전해 30%씩을 맞춰주었습니다만 그래도 비율로 따지면 육군에 비해 해,공,로켓군이 3~4배씩 풍족한 예산을 누렸왔습니다.시진핑의 정치인생 타임라인을 복기해본다면, 육군에 대한 시진핑의 불신이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아버지 시중쉰도 중공중앙 아래 군의 기실 파벌투쟁 희생양이었고, 시진핑 자신도 이에 연루되었던 일, 홍위병에 의해 파괴된 가정, 보시라이 사건 때, 당서기직에서 면직된 보시라이가 아버지 보이보와 관계가 있던 청두군구의 윈난성에 주둔하던 14집단군을, 정법위의 저우융캉이 공안국과 무경을, 저우융캉의 심복이었던 베이징군구의 38집단군 사령관 왕시쉰이 각각 협력하여 시진핑의 목을 치고 국가전복을 꾀했다는 혐의가 제기되었던 만큼 기본적으로 (육)군과 무경에 대한 불신이 매우 높았을거라 개인적으로 추측합니다. 또한, 범장파와 후진타오를 몰아내면서도 영수였던 장쩌민만은 건드리지 못하고 천수를 누릴 수 있었던 이유는, 연판장 사건으로 깨달음을 얻은 장쩌민이 육군의 장악력에 필사적으로 매달린덕에 이를 추종하는 군 세력이 육군에 건재했던 만큼 시진핑이 이 틈을 파고들기가 어려웠다는 분석도 가능할 것입니다. 하지만 스뜨롱한 해, 공, 로켓군은 대외적으로는 강력하지만 국내에서 유사시 시진핑을 보호하거나 정적을 물리치는데 도움이 되는 군종은 아닙니다. 저 멀리 골 정벌을 위해 나가있는 로마군단보다 당장 내 옆의 한줌 근위대가 믿음직스럽고, 국경을 맞댄 적국보다 그 국경을 지키기 위해 강력해진 변경백이 두려운 법이지요. 시진핑에게 두려운 것은 당장 중난하이를 포위하고 압박할 수 있는 무경과, 베이징을 둘러싸고 있는 전구들의 육군이었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시진핑의 장기집권에 가장 필요한 이들 역시 그들이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중국을 운영하는 것은 공산당이고, 정치로서 국가를 영도하는 것은 선발된 자들의 과두정치체제이며, 정과 군은 공산당의 명령을 따른다는 대원칙 아래 국가주석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국가주석은 당론을 장악한 때에는 군에 대한 통제도 문제 없지만, 당의 장악력이 약해진다면 군의 통제도 잃기 때문이며 군의 통제를 잃는다면 다시금 당을 장악하는데 필요한 내부투쟁 중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집권 3기 시작과 2기 복기, '팬데믹? 경제부양? 기업의 무기명외환채권 대량부도? 우린 문과라 그런건 몰라요!' 시진핑의 사람들이 무너지다.집권2기 막바지, 탄탄한 것 같았던 시진핑 권력구도에 팬데믹이라는 변수가 발생합니다. 요점만 정리하면 중국에서 공산당은 인민을 바르게 영도하는 최고정치집단이며, 공산당의 결정은 절대 틀리지 않습니다. 따라서 당이 결정하면 하위 정관과, 군, 민은 그것이 맞던 틀리던 일단 따라야 하고, 그냥 따르는게 아니라 당의 결정이 맞았음을 증명할 수 있게 몸을 잘 비틀면서 따라야 합니다. 상기했듯이 시진핑 집권 2기 7인의 최고존엄들은 전원 문과출신이었고 이것이 팬데믹을 거치면서 팬데믹 극복과 경제위기를 극복하는데 필요한 의사결정에는 독이 되어 집권2기 행정부가 행한 많은 정책이 당, 정, 군, 민 모두에게 저항을 불러오며 시진핑주의로 대변되는 신화적인 인물을 컨셉으로 집권 3기를 준비하던 시진핑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봉착합니다.모종의 목적으로 구성된 집권 2기 상임위의 의사결정이 팬데믹을 거치면서 많은 상처를 남겼기에 시진핑이 그동안 집권 3기를 준비하며 두었던 포석들이 전부 악재로 떠올랐습니다. 민으로는 사회통제 강화, 당정으로는 반부패법을 이용해 반대파를 제거하여 지방정부 억제, 경제로는 민영경제 탄압. 집권 2기의 이런 갈팡질팡으로 내적으로는 경제가 심각하게 둔화되었고, 외적으로는 너무 많은 적을 만들었습니다. 이때부터 시진핑에 대한 당의 지지가 약해지기 시작합니다. 집권 3기는 어찌어찌 시작되었지만, 초기부터 많은 소음이 감지됩니다. 당의 지지가 없으면 군의 통제도 불가능했기 때문에 양안문제를 스뜨롱하게 질러왔던 시진핑은 상당한 궁지에 몰렸을겁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집권 3기에는 갑자기 전례없는 유연함으로 내부 선전에 임합니다. 자신이 심어둔 시좌진파 일부는 경고를 통해 이탈을 방지했고, 일부는 집권2기 실책을 문제삼아 실각시켜 반대파를 달래는 카드로도 사용합니다. 대표적 인물이 상기했던 2기 시진핑주의를 주창했던 2기 상임위원 왕후닝과 그가 이용했던 극좌 마오주의자들로 집권 2기 중기까지는 어용문인으로서 시진핑의 총애를 받아 차기 국무원 총리로까지 점쳐지기도 했었으나 팬데믹을 거치며 실용가치가 없음이 드러나자 즉시 권력중심에서 소외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이미 다시 굴러버리기 시작한 당내 파워게임은 군으로까지 번져 2025년 집중적으로 '시진핑 실각' 또는 '쿠데타' 등의 자극적인 뉴스로 시끌시끌 했던 원인이 됩니다. 2025년 10월 4중전회. 차기 무림맹주를 향한 본격적 내부투쟁 파워게임은 막이 오르고2025년이 되면서 시좌진파와 반시좌진파 사이의 첨예한 대립이 가시적으로 드러납니다. 집권 2기까지의 구도가 반부패법을 이용한 시좌진파의 뎀프시롤이었다면, 집권 3기에 이르러선 이반한 당심이 결집해 반부패법을 역으로 이용해 시좌진파에 대한 반격에 나섰고, 24년 3중전회, 드디어 군과 혁명2세대 홍얼다이 장여우샤가 투쟁의 전면에 등장해 엄청난 난타전이 벌어집니다. 이로인해 시좌진파의 피해가 누적되었음에도 25년의 4중전회에서 시진핑은 총서기, 주석, 군사위 주석 3가지 직위 중 하나도 잃지 않았기에 겉으로 보기엔 여전히 공고해보였습니다. 하지만 정치학자들은 4중전회를 준비하기 위한 9월의 정치국회의에서 의도적으로 감춰진 이야기들로 인해 이미 대략적인 파벌간 난타전 교환비의 윤곽을 확인했기 때문에 시진핑은 직위는 유지하고 있으나 위태한 상황이라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습니다. 이 난타전은 최종적으로 시좌진과 반시좌진 모두 11명의 상장(上將)과 100명이 넘는 중장(中將), 소장(小將)이 직을 잃었고, 일부는 4중전회에서 쌍개(당적, 군적 동시 박탈) 처리되었습니다. 얼마나 심한 난타전이었는가 하면, 군사위중앙위원 총원 44명 중 29명이 불참(실종)하여, 시좌진파의 피해로는 군사위주석, 군사위 정치공작부 주임이었던 먀오화 상장 (묘화 苗华), 해군 정치위원 친셩샹(진생상 秦生祥), 위안화즈 상장 (원화지 袁華智), 육군 정치위원 친슈퉁 상장 (진수동 秦樹桐 ), 무경사령원 왕춘닝(왕춘녕 王春寧), 이 실종 또는 실각했고, 이중 종샤오준 (종소군 钟绍军) 중장은 시진핑이 저장성 성위서기 시절부터 상하이시 서기를 거쳐 중난하이까지 데려온 최측근이고, 왕항핑(왕항평 王抗平) 소장과 스정루(석정노 石正露) 중장은 시진핑이 혹시나 모를 육군의 베이징 포위를 막기 위해 배치했던 동부전구와 북부전구 부사령, 육군사령입니다. 사실상 25년의 4중전회로 인해 시진핑은 체면상 3대직은 유지했지만, 군권 통제는 상실한 상황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한편 24년의 3중전회와 25년의 4중전회로 실질적 군권을 거머쥔 장여우샤의 사람들은 리차오밍(이리명 李橋銘 야전군 사령원), 우야난(오아남 吳亞男 남부전구 사령원), 황밍(황명 黃銘 북부전구 사령원), 쉬더칭(서덕청 徐德淸 중부전구 정치위원), 정쉔(정선 鄭璇 북부전구 정치위원)입니다. 이중 남부전구 사령원 우야난과 북부전구 사령원 황밍은 난타전으로 실각한 것으로 추정되어 애초 장여우샤가 구상했던 3대 전구가 동부전구를 포위하고, 베이징 내에서 수도방위를 맡고 있는 38집단군과 무경의 정리는 리차오밍의 야전군이 담당한다는 구상은 틀어졌을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이젠 진짜 친위 쿠데타 뿐인걸까. 장여우샤 이통외국(裏通外國) 의 혐의를 받다.4중전회가 끝나고 당의 지지층이 옅어지고, 군권 통제도 불가능해지면서 시진핑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은 이젠 몇 가지 없다는 정치학자들의 평가가 증가합니다. 시진핑의 정적이라고 할 수 있던 후춘화(호춘화 胡春华 정협부주석)가 아닌 시좌진파였다고 볼 수 있는 쟝여우샤가 무림맹주 지위를 위협할 거라고는 시진핑도 집권 2기까지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어쨌든 장여우샤는 혁명 2세대 홍얼다이로 혈통적 정통성에, 정치군인이 아닌 시작부터 직업군인으로서 이 자리에까지 올랐다는 군문의 정통성까지 모두 가지고 있어 대적하기 어려운 상대가 되었으니까요. 대부분 이제 시진핑도 올해 3월의 양회에서 그간의 집권을 마무리하며 27기 전인대에서 하야 또는 하야 준비를 발표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만... 느닺없이 장여우샤와 류전리(유진립 劉振立)를 중앙군사위에서 쳐내며 "중대한 규율 위반 및 법률 위반 혐의”로 조사하고 있다는 발표를 합니다. 그리고 2013년의 보시라이와 저우융캉의 중난하이 포위사건 때 처럼 상당한 규모의 정보통제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는것으로 보아 이로서 이번 무림맹의 파워게임의 향방 또한 아직 모르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것은 내부투쟁은 맞으나, 시진핑에 대한 군의 쿠데타가 아닌, 군에 대한 시진핑의 친위 쿠데타라고 보는게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후계자 지명권이 박탈된 채 주석직에 올랐으나 크게 성장해버린 장쩌민과 범장파 때문에 자신도 온전히 후계자 지명권을 행사할 수 없었던 후진타오가 시진핑 다음의 미래를 위해 후계로 내정했던 후춘화. 후진타오가 시진핑에게 무력하게 물러나면서, 후춘화도 밀려나지 않았더라면, 시진핑의 후계로 차기 주석은 후춘화가 유력했을지도 모릅니다. 또한, 장여우샤와 류전리에게 제기된 규율 위반 혐의는 지난 12일 중앙기율위에도 장여우샤의 영향력이 미치기 시작한 것을 확인한 시진핑이 더 늦기 전에 먼저 기율위를 통한 제재에 나섰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기율위가 제기한 장여우샤의 혐의는 '외국과 내통한 혐의' 이며, 이게 점점 커져 '중국의 핵프로그램 정보를 유출했다.'까지 확대되었습니다. 기율위의 조사 결과가 어찌 나올지는 모르겠으나 장여우샤는 상당히 폐쇄적인 인민해방군 사회에서 국외와의 접촉이 거의 없던 인물로 언론에서도 외국의 관료와 접촉은 예전에 방중했던 미 국가안보보좌관 제이크 설리번과의 짧은 단체 면담 (심지어 이것은 시좌진파의 왕이 외교부장이 대상이었음.) 정도였기에 제기된 혐의가 상당히 묘하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사실 이런 이통외국의 혐의는 장여우샤가 처음은 아니라 중공원수이자 최고의 맹장이었던 펑더화(팽덕회 彭德怀)가 마오쩌둥에게 숙청당한 방법이었습니다. 펑더화는 59년 여산에서의 중앙정치국회의에서 마오의 대약진운동을 정면 비판했고, 대노한 마오와 문혁파는 대약진운동을 비판했다는 이유만으로는 펑더화를 숙청할 수 없었기에 펑더화에게 이통외국(裏通外國, 외국과 통모하여 국가반역을 꾀함) 혐의를 뒤집어 씌워 잔인하게 숙청합니다. 흥얼다이에 정통 군인인 장여우샤도 펑더화의 이통외국을 떠올리고 있을거라 생각이 됩니다.대약진운동을 정면 비판하여 홍위병에게 조리돌림 당했던 펑더화의 혐의는 이통외국(裏通外國)중공 최고의 맹장이, 이렇게 생을 마감해서는 안되었습니다.맺으며최근의 정국이 다양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합니다. 중난하이 무경 포위사건도 불과 13년 전의 일이니까요. 하지만 3월의 양회를 앞두고 있는 지금, 군사적 상상력이 동원되어 차량화 부대가 베이징으로 몰아닥치고 야전군의 공수부대가 낙하하고 이런 일은 일어나기 힘들고, 일어나서도 안되는 일일겁니다. 무엇보다 이 파워게임의 전개는 현재 절정에 달한게 아니라 아직 보여줄 무언가가 많이 남아있을거라 생각이 되기도 하고요. 또한, 수도 베이징으로의 고속화도로 정비가 아무리 잘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도시 규모와 인프라를 계산 했을 때 도시를 봉쇄하고 차량화 부대가 베이징으로 조용히 들이닥칠 수가 없습니다. 2013년의 잊혀진 7일도 고작 무경의 장갑차량 몇 대가 밤에 몰래 진입한 것에 그쳤을 뿐입니다.예전 퉁화역에서 자정 쯤 이동하던 군 차량 행렬자정임에도 교차로 등등이 많아 대략 3시간 넘게 이어졌습니다. 정보통제가 아무리 완벽하더라도 38집단군과 무경을 제압할 수 있는 규모의 군대가 며칠간 조용히 작전한다는건 불가능 할 것입니다.
작성자 : FallOut고정닉
공포의 말미잘의 '클론 전쟁'.clone war
클론 전쟁...스타워즈를 본 싱붕이들이라면 아~ 그거? 정도는 얘기가 나올수 있겠다 그런데 만약, 지구상에도 이런 클론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종들이 있다면 믿겠는가? 이들의 이름은 군집 말미잘로 학명은 Anthopleura elegantissima라고 불림 북미 태평양 연안의 암석이 많고 조류가 흐르는 해안에서 가장 흔하게 발견되는 말미잘 종임 물 때 물이 빠지면 몸을 잔뜩 움츠리고 모래나 조개껍데기를 뒤집어쓴 채 "나 돌멩이요" 하고 시치미를 뚝 떼고 있다가, 밀물이 들어와 물이 차오르면 비로소 그 화려한 촉수를 펼치고 본색을 드러내는 종임 이 말미잘들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집단 서식임그런데 그냥 이웃사촌끼리 오손도손 모여 사는 게 아님 이 군락을 이루는 개체들은 유전적으로 100% 동일한 클론들임물학 교과서에서는이분법(Binary Fission)이라고 부르지만, 실제론 '아자자자잣!'이런 기합(내 상상임) 과 함께 녀석들은 자기 몸의 한가운데를 찢어버림 말 그대로 스스로를 반으로 찢어서 두 개가 되는 거임이 찢어지는 고통을 인내하며 이들은 숫자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남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넷이 되어, 마침내 수천, 수만 마리의 복제 군단이 바위 하나를 시커멓게 뒤덮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의 말미잘 왕조의 탄생임A 가문(클론 A)이 열심히 몸을 찢어가며 영토를 확장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옆 동네에서 똑같은 짓을 하며 세력을 불려오던 B 가문(클론 B)과 마주치게 됨 갯바위라는 부동산은 한정되어 있고, 입주를 원하는 세력은 많기 때문임 촉수가 닿는 순간, 말미잘들은 상대방이 내 편인지 남의 편인지 0.1초 만에 감지함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말미잘의 표면에는 가문 특유의 단백질 마커가 있어서, 유전자가 동일한 클론끼리는 촉수가 닿아도 서로 엉키거나 공격하지 않음 하지만 유전자가 0.01%라도 다르면? 즉시 전투 모드로 돌입함 이 타자 인식 능력은 실로 놀라워서, 연구자들은 이것이 원시적인 면역 체계의 일종이라고 보기도 함 내 몸이 아닌 것은 모조리 병균 취급하여 박멸하겠다는 것임 자, 이제 본격적인 전쟁이 개전이다 인간들은 총이나 무기를 사용하지만, 말미잘들은 아크로라기라는 물리적이고 치명적인 무기를 씀아크로라기는 평소에는 촉수 다발 아래쪽, 목덜미 부근에 혹처럼 쭈글쭈글하게 숨겨져 있는데 이 기관은 밥 먹는 데 쓰는 일반 촉수와는 차원이 다름 여기에는 자포(Nematocyst)라고 불리는, 고농축 독침 세포가 수천, 수만 개가 빽빽하게 장전되어 있는데 일반 촉수보다 자포의 밀도가 훨씬 높고, 그 독성 또한 강력함말미잘들의 공격 방식은 굉장히 잔인함 부풀어 오른 아크로라기를 적의 몸통에 갖다 대고는 냅다 들이받음 이때 기계적인 자극과 화학적인 자극이 동시에 작용하면서 아크로라기 표면의 섬모 구덩이가 열리고, 독침이 발사됨 여기서 끝이 아님공격한 말미잘은 뒤로 물러나는데, 이때 아크로라기의 껍질(독침이 박힌 표피 부분)이 찢어지면서 적의 몸에 그대로 달라붙어 남음 이것은 마치 자폭 테러와도 같은데, 내 살점의 일부를 떼어내어 적에게 붙여놓고, 그 살점이 계속해서 독을 뿜어내게 하는 거임 당한 놈은 이 독 묻은 껌딱지 때문에 극심한 고통을 느끼며 세포 괴사를 일으키고 결국 놈은 바위에서 떨어져 나가거나, 심하면 죽음에 이르게 됨 더욱 놀라운건 말미잘들도 역할이 존재개미나 벌에게만 여왕과 일개미가 있는 게 아님 말미잘 군단 역시 철저한 분업화가 이루어져 있음 클론 군락의 가장 바깥쪽, 즉 적과 맞닿아 있는 국경선에는 전사계급이 배치됨 이들은 군락 안쪽의 평범한 말미잘들과는 생김새부터 다름전사 말미잘들은 가문(클론)의 영토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생식 기관을 포기했음 생식에 쓸 에너지를 몽땅 무기(아크로라기) 생산과 몸집 유지에 쏟아부은 거임놀라운건 얘네들이 정찰병을 쓴다는거임 전사들의 앞, 혹은 사이사이에는 정찰병이라 불리는 더 작은 개체들이 있음 이들은 덩치가 작아 바위 틈새를 요리조리 잘 다니며 빈 땅이 있는지, 적이 오는지 감시하는 역할을 함 거기에 전투가 벌어지면, 최전방에서 3~4열 뒤에 있는 녀석들까지 촉수를 길게 뻗어 앞줄 동료의 머리 위로 공격을 가함 뒤에서 지원 사격을 해주고, 앞에서 몸빵을 하는 역할이 있는거임A 클론과 B 클론이 맞붙음 전사들이 튀어나와 서로에게 독침을 쏘아대고, 몇 시간, 며칠에 걸친 전투 끝에 어느 한쪽이 압도적으로 강하지 않다면, 전선은 고착됨서로의 아크로라기 사정거리만큼 거리를 두고, 더 이상 접근하지 않는 상태가 되는 것임 이 거리, 즉 서로의 촉수가 닿을락 말락 한 그 공간에는 아무도 살 수 없음 들어가면 쏘이니까...그리하여 두 군락 사이에는 텅 빈 띠 모양의 공간이 생겨난다. 과학자들은 이를 무인지대(No Man's Land), 또는 버퍼존이라고 부름 이 사실은 호주의 데이비드 에어와 UC 데이비스의 릭 그로스버그의 연구 결과로 인해 밝혀진 내용임 그 둘은 갯바위에 있는 거대한 바위덩어리를 통째로 실험실로 옮겨왔음 바위 위에는 두 개의 거대 클론 군락이 살고 있었고.. 그들은 수조에 파도 장치를 만들어 밀물과 썰물을 재현하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음 물이 들어오자마자 전사들이 몸을 3배로 부풀리고, 국경선으로 달려나가 서로를 공격하기 시작한 것임 그들은 이 실험을 통해 전사뿐만 아니라 정찰병, 생식 담당 등의 계급 분화가 존재함을, 그리고 3열 지원 사격 전술이 있음을 밝혀냈음우리는 이 말미잘들을 보며 미물들이 참 치열하게도 산다고 웃지만 과연 인간 사회는 이들과 얼마나 다를까? 국가를 위해, 회사를 위해, 가문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요했던 역사가 우리에게도 있지 않아?아니 어쩌면 지금도 비슷할지도 역사든 말미잘이든, 이들이 말해주는 생존의 진리는 이것 아닐까?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지만....하지만 뭉치면, 반드시 남과 싸우게 된되는거..삼국지에서"대저 천하의 대세란 오랫동안 나뉘면 반드시 합하게 되고, 오랫동안 합해져 있다면 반드시 나뉘게 된다."라고 말하던것 처럼 말야
작성자 : ㅇㅇ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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