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오랜 기억 속 친구들에게 ‘아직도 그 모습 그대로니?’라고 문자를 보내고 싶어질 때가 있다. 연락을 하지 않은 지 오래됐지만 머릿속에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푸근해지는 친구에게 어느 날 문득, 문자를 보내 여전히 예전 그대로의 모습인지를 물어보고 싶은 기분 말이다.

나에게 파리는 바로 그런 느낌의 도시이다.

‘상젤리에 거리는 여전히 도도함이 넘쳐나는지?’,‘오페라하우스 앞은 지금도 젊은이들로 인해 싱싱함이 가득한지?’, ‘햇빛 속에 빛나는 루브르 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는 여전히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는지?’하는 푸근한 상상을 떠올리게 하는 도시가 파리다.

‘퐁네프의 연인들’이란 영화를 보고 나서 당장에 달려가 주저 앉아 있었던 퐁네프 다리와 드라마의 여주인공처럼 폼 잡고 세느강을 유유히 돌았던 유람선도 자주 그리움의 대상이 되고는 한다.

신입 승무원 시절 파리 첫 비행 때 찾았던 베르사유 궁, 집시에게 소매치기를 당했던 몽마르트르 언덕은 나의 학창시절을 지배했던 순정만화 덕분에 찾아간 곳이었다. 내가 어릴 적 유행하던 순정만화들의 대부분은 과거 프랑스를 무대로 한 작품들이 많았다. 한동안 만화에 심취했던 나는 파리에 가면 꼭 만화의 배경장소를 찾아가 봐야한다는 의무감 비슷한 것을 지니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광경에 다들 사진기를 눌러댈 때 나는 가슴 한 구석에서 ‘유리가면’과‘미스터 블랙’을 떠올렸다. 어릴 적 불후의 명작과도 같았던 작품의 배경지에 내가 서 있다는 건 감동이었다. 내가 처음 접한 파리는 그런 모습으로 나를 맞았었다.

불현듯 몽마르트르를 떠올린 건 낡은 앨범 사이 끼워져 있던 한 장의 그림 때문이었다. 모처럼 쉬는 날, 오래된 앨범들을 정리하다가 낡은 먼지와 함께 종이 한 장이‘툭!’하고 떨어졌다. 입술만 커다랗고 정성스럽게 그린 나의 얼굴이 그려진 그림이다. 몽마르트르 거리의 화가에게 얼굴을 내밀고 앉은 나에게 화가는 입술이 제일 맘에 든다고 하더니 10분 정도 그리는 시간 중 7~8분을 오롯이 입술 그리는 데만 열중했다. 마음에 드냐면서 건네준 얼굴은 정말이지 입술만 도드라져 다소 우스꽝스러워 보였는데 내 입술이 정말 이러냐고 되물으면서 찡그리는 나에게 거리의 화가는 반드시 남자친구에게 전해주라며 웃었었다. 몽마르트르 기억이 가득한 한 장의 그림은 아직도 나의 앨범 한 쪽에 접혀 있다.

베르사유 궁은 드골 공항에서 우연히 만난 학창 시절 동기와 의기투합해 단둘이 찾아 갔던 기억 때문인지 더욱 인상적인 추억으로 남아 있다. 아직 꽃이 피지 않는 계절에 찾은 궁은 찾는 사람이 적어 한적했지만 덕분에 여유롭게 궁을 돌면서 한참을 서로 이야기했던 따뜻한 기억으로 인해 더욱 아련하다.

파리는 이처럼 예상치 못한 시간과 장소에서 문득문득 기억이 떠올려지고 그 순간‘아직 그대로인지?’라는 문자를 보내고 싶은 기분이 드는 오래된 친구와도 같은 도시다.

이번 달에도 ‘혹시?’하는 기분으로 받아 든 나의 스케줄 표에 파리는 찍혀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 오랜 친구는 여전히 도도하고 싱싱한 모습으로 그 곳에 서 있을 테고, 나는 언젠가 그 곳을 다시 찾을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오랜 그리움으로.

<대한항공 승무원>

기사 게재 일자 2007-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