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상어(Whale Shark)는 초대형 상어의 일종으로, 몸길이 최대 15~18m / 몸무게 15~20t 까지 성장하는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한 물고기입니다.
실제로 보면 살짝 겁이 날 정도로 덩치가 크지만, 온화한 성격을 지녀 사람이 옆에 다가가도 신경 쓰지 않거나 같이 헤엄쳐 다니기 때문에, 해외에서는 온화한 거인(Gentle Giant) 라고 불리는데요.
이런 특성과 묘하게 귀여운 앞모습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만나보고 싶어하는 어종이지만, 전 세계의 바다를 끊임없이 돌아다니는 특성 때문에 야생에서 직접 만날 확률은 매우 낮은 종입니다.
하지만 이런 고래상어들을 야생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장소가 존재하는데, 바로 필리핀 세부 섬의 남부에 위치한 오슬롭(Oslob)이라는 지역입니다.
1인당 100달러(한화 약 13만원) 정도의 비용을 지불하면, 현지 가이드가 모는 배를 타고 나가 고래상어들을 만나볼 수 있는데요.
평생 한 번 보기도 힘들다는 야생의 고래상어들을 이 곳에서는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기 때문에, 조용한 시골에 불과하던 오슬롭은 현재 세부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자리잡았습니다.
지금이야 고래상어가 어마어마한 관광수익을 가져다 주면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대접받고 있지만 예전부터 이런 취급을 받던 건 아니었습니다.
현지 주민들에게 있어, 고래상어는 그물에 걸린 물고기들을 훔쳐먹는데다 그물까지 망가뜨리는 커다란 골칫덩어리에 불과했는데요.
그래도 살코기가 많이 나오는데다, 덩치가 크고 느릿느릿 헤엄치기 때문에 옛날에는 잡아서 식용으로 사용하기도 했지만, 이로 인해 고래상어의 개체수가 감소하기 시작하자 필리핀 정부는 1998년부터 이들을 보호종으로 지정해 포획과 유통을 금지했습니다.
고래상어가 잡을수도 죽일 수도 없는 국가 인증 촉법동물이 되어버리면서, 어민들은 고래상어들을 쫓아내기 위한 다른 방법들을 물색하기 시작했는데요.
처음에는 낚싯줄과 그물로 다가오는 고래상어에게 돌을 던져 쫓아내는 방법을 시도했지만, 효과는 미미했습니다.
녀석들은 날아오는 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미끼와 물고기들을 전부 삼키고는 유유히 사라지면서 어민들의 혈압을 올리곤 했죠.
그러던 어느 날, 어민들은 소량의 미끼용 젓새우를 배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던지면, 고래상어를 다른 곳으로 유인할 수 있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이 광경을 본 어느 다이빙 센터의 주인이 어부들에게 돈을 지불해 고래상어들을 손님 쪽으로 유인하였고, 이를 계기로 더 많은 고래상어들이 오슬롭을 방문하기 시작했는데요.
이것이 입소문이 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오슬롭을 방문하기 시작했고, 2011년 12월 22일에 영국의 데일리메일에서 고래상어를 타고 있는 남자에 대한 사진과 기사를 올리면서 더 많은 관광객들이 오슬롭에 모여들었습니다.
이로 인해 조용하던 어촌 마을은 갑작스레 유명한 관광지로 바뀌어버렸고, 마을에는 수십 개의 기념품 가게가 들어섰으며, 고래상어 관광을 안내하는 ‘보트맨’ 이라는 새로운 직업도 생겨났습니다.
보트맨의 하루 수입은 약 300~400페소(한화 약 7,000~9,000원)으로, 일이 훨씬 고된 어부 일을 할 때보다 월 수입이 훨씬 많자,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어부를 그만두고 보트맨으로 취직했는데요.
골칫덩이였던 고래상어 덕분에 어마어마한 관광 수익을 벌어들이게 되면서, 오슬롭 주민들은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돈의 풍요를 맛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사람과 고래상어 둘 다 행복해 보이는 고래상어 투어에는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존재합니다.
고래상어 투어의 첫 번째 문제점은 고래상어와의 접촉입니다.
필리핀에서는 고래상어를 보호종으로 지정해 법적으로 보호하고 있어, 이들을 괴롭히거나 만지는 행위가 적발될 경우 처벌을 받을 수 있는데요.
여러분이 고래상어 관광에 참여할 경우, 고래상어를 만나러 가기 전에 이에 대한 사전 교육을 받고 출발할 것입니다.
이 사전 교육에서는 고래상어와 일정 거리 유지, 구명조끼 착용, 플래시 사용 금지, 썬크림 씻어낸 후 입수하기 등의 기초적인 주의사항을 알려주죠.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위와 같은 사전 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지키지 않고 있다는 것인데요.
필리핀 대형해양척추동물연구소(LAMAVE)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약 64시간 동안 오슬롭 고래상어 투어 관광객들을 관찰한 결과, 고래상어와의 불법 접촉이 무려 1823회나 이루어진 것으로 보고되었습니다.
이를 환산하면 무려 시간당 29번의 불법 접촉이 이루어진 것인데, 그 중 89%는 보트맨이 먹이를 더 먹기 위해 다가오는 고래상어를 밀어내거나, 고래상어가 보트에 부딫히는 것을 막기 위해 발로 밀어내는 등의 행위에서 발생한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아무리 보호종이라지만 저 커다란 놈이 좀 만진다고 닳는 것도 아니고 괜찮지 않나?”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위의 사진은 대형 선박과 부딫혀 상처가 난 고래상어의 회복 상태를 촬영한 것으로, 상처가 생긴 지 약 1달 만에 상처가 아문 것은 물론이고 기존의 하얀 반점까지 재생한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이처럼 이들은 내구력과 자가치유력이 매우 뛰어난 생물이라, 단순히 손으로 몇 번 만진다고 해서 쉽게 상처가 나진 않습니다.
그럼에도 함부로 만지면 안되는 진짜 이유는 인간의 피부에 있는 박테리아 때문입니다.
고래상어들은 원래 사람과의 접촉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먼 바다에서 서식하는 동물인데, 이 때문에 인간의 피부에서 살고 있는 박테리아에 대한 면역력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후술할 이유 때문에 상처가 생기기 쉽다 보니, 이로 인해 오슬롭의 고래상어들을 관찰하다 보면, 붉거나 하얗게 올라온 염증을 어렵지 않게 관찰할 수 있습니다.
2020년 LAMAVE의 조사에 따르면, 오슬롭에서 살고 있는 고래상어들의 95%가 이런 염증과 상처를 보유하고 있다고 하니, 몸 성한 고래상어를 찾는 게 더 어려울 정도입니다...
고래상어 투어의 두 번째 문제점은 행동 패턴 변화입니다.
고래상어는 원래 겁이 많아서 보트를 보면 자리를 피하는데, 오슬롭의 고래상어들은 보트 근처로 다가가면 대량의 젓새우를 먹을 수 있기 때문에 보트를 더 이상 피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보트를 보면 더 가까이 가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보트의 선체나 프로펠러 등에 부딫히면서 크고 작은 상처를 입게 되죠.
회복력이 뛰어난 어종이라 상처가 나도 천천히 회복할 수 있긴 하지만, 문제는 오슬롭의 고래상어들이 상처가 난 상태에서도 먹이 활동을 하기 위해 사람들과 보트 근처로 다가온다는 것인데요.
만약 이 과정에서 박테리아에 감염되거나 또다른 상처를 계속해서 입게 된다면, 재생력이 떨어지고 대량의 염증을 일으켜 죽음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또한 보트를 봐도 도망치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상어잡이 어선이 다가가도 도망가지 않거나, 오히려 먹이를 주는 줄 알고 다가가는 일이 생길 수도 있어 이들의 안전이 더더욱 우려됩니다.
또한 고래상어는 원래 이동성이 매우 높은 종이며, 먹이가 풍부한 곳을 찾아 다양한 국가와 관할 구역에 걸쳐 장거리를 이동하는 생물입니다.
과거 오슬롭 연안에서는 고래상어들이 약 60일 정도만 머물렀지만, 지금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지 않고 오슬롭에 훨씬 더 오래 머물기 시작했는데요.
이는 보트맨들이 고래상어들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 다른 지역에서 먹이를 수입해오기 때문으로, 이러한 현상이 계속되자, 오슬롭에서 무려 392일 동안 머무는 개체도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의 번식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기 때문에, 만약 이러한 행동 패턴 변화가 번식 주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고래상어의 생존에 매우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고래상어 투어의 마지막 문제점은 바로 먹이의 영양 부족입니다.
야생의 고래상어는 바닷물 속의 플랑크톤들을 걸러 먹고 사는데요.
이 플랑크톤들은 매우 풍부한 영양분들을 지니고 있지만, 오슬롭에서 보트맨들이 뿌려주는 먹이들은 고래상어에게 충분한 영양분들을 주지 못합니다.
영양가가 부족한 것도 심각한 문제인데, 더 심각한 문제는 이 사료들의 위생상태인데요. 이 저질 사료들은 오슬롭에서 400km 이상 떨어진 곳에서도 받아오기 때문에 쉽게 상합니다.
또한 고래상어들이 보트맨이 뿌려주는 사료들을 먹기 시작하면서, 먹이 사냥보다 보트를 쫓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는데요.
문제는 보트맨들이 고래상어가 배불리 먹을 만큼의 사료를 뿌리지 않기 때문에, 결국 배고픔에 시달리는 상황도 발생합니다.
"그럼 필리핀까지 놀러가서 고래상어 보는 걸 포기하란 거냐?" 라고 생각하실 분들도 계시겠지만, 포기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필리핀에는 오슬롭 말고도 야생의 고래상어들을 볼 수 있는 장소가 몇 군데 존재하는데, 이들을 만나고 싶다면 필리핀 현지의 다이빙 센터에 문의해 보시는 게 제일입니다.
9월~3월 쯤에 고래상어가 주로 출몰하는 포인트로 가면, 스쿠버다이빙을 통해 천천히 헤엄치고 있는 야생의 고래상어를 관찰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다이빙을 하면, 먹이를 주지도 않고 만지지도 않기 때문에, 고래상어에 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래상어가 공기를 내뿜고 있는 사람들을 역으로 관찰하러 다가올지도 모릅니다.
동물원에서 보는 사자와 세렝게티 초원에서 보는 사자의 느낌이 다르듯이, 자연 그대로의 고래상어를 바닷속에서 만난다면 더 좋은 추억을 쌓을 수 있을 겁니다:)
여담으로, 고래상어는 우리나라에선 해양보호생물로 지정되어 있어 포획, 채취, 훼손, 이식, 가공, 유통이 모두 금지되어 있습니다.
혹시라도 우리나라 바다에서 그물에 걸린 고래상어를 만난다면, 119 또는 해양경찰서에 신고해 녀석이 무사히 바다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별 것 아닌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라도 필리핀에 놀러갈 일이 생긴다면 위의 내용을 참고하여 즐거운 추억 남기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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